책들의 우주/문학 356

한국어, 한국어 공부 - 로스킹 교수

유튜브를 통해 우연히 로스킹 교수의 인터뷰를 보게 되었다. 캐나다에서 한국어와 한국학을 가르치고 있는데, 그의 통찰이 놀라웠다. 정확한 한국어를 사용하며, 한국어 교육이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이야기하였다. 특히 정확한 한국어를 쓰기 위해 한국어 구사를 위한 한자공부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부분에서는 소름이 돋았다. 우리는 몇 천년 동안 한자를 사용했지만, 그렇다고 중국어를 했던 건 아니다. 로스킹 교수의 의견을 조금 비약하자면, 한국어를 위한 한자가 있고 그 한자를 알아야한다는 것이다. 한자 공부를 한다고 해서 중국어를 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것.  또한 한국인을 위한 한국어 공부와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공부는 다르다고 말했다. 특히 한국어를 공부하는 동기가 중요한데, 한국 정부는 이를 간과하고 있다고 ..

마지막 외출, 조지수

마지막 외출 - 이미 없는 그와 아직 없는 그녀의조지수(지음), 지혜정원   액자 소설이지만, 그 액자는 단단하지 않고 그 안은 너무 진지했다. 사랑 이야기지만, 과연 사랑이야기일까. 늘 그렇듯 사랑은 기만적이다. 그건 일종의 허위인 탓에, 치명적으로 쾌락적이다. 그런데 진정으로 사랑이라는 게 있기는 한 걸까. 사랑에 빠진 남녀는 처음에는 순수한 마음의 떨림과 흥분으로, 중반 이후부턴 기만적인 믿음과 소유욕으로 가득찬 육체의 쾌락으로 이어지다가 차갑게 식고 천천히 가라앉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음과 육체가 예전만 하지 못하다는 생각, 식어버린 마음과 그 가라앉음을 견디지 못해 헤어진다. 그리고 그것마저도 아프고 슬픈 이별로 포장하는 탓에, 세상에는 사랑 노래로 흘러넘친다. 과연 사랑이라는 게 있..

지난 날의 스케치: 버지니아 울프 회고록

지난 날의 스케치 버지니아 울프(지음), 이미애(옮김), 민음사   버지니아 울프의 글을 읽는다. 그녀의 >을, ... 고등학교 때 읽은 후, 산문집 몇 편을 읽었을 뿐이다. 그녀의 소설을 읽어야 겠다는 생각에 다시 시도하고 있지만, 겨우 읽은 게 이 짧은 회고록이다. 회고록이라고 하기엔 너무 짧고 모두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하지만, ... 왜 다 죽는 걸까.   인생이 우리가 계속 채워 가는 그릇이라면, 그렇다면 내 그릇은 의심할 바 없이 이 기억 위에 서 있다. 그것은 잠이 들락 말락 한 상태에서 세인트아이브스의 아이 방 침대에 누워 파도가 하나둘 하나둘 부서지며 해변에 밀려오고 노란 블라인드 뒤에서 하나둘 하나둘 부서지는 소리를 들었던 기억이다. 바람이 블라인드를 휘날리며 바닥의 작은 도토리를 끌..

나와 마주하는 시간, 라이너 쿤체

나와 마주하는 시간라이너 쿤체(지음), 전영애, 박세인(옮김), 봄날의 책    오랜만에 쿤체의 시를 읽었다. 실은 잘 모르겠다. 몇 편의 시를 옮겨적긴 했으나, 노(老)시인의 독일어는 한국어로 옮겨져 나에게까지 왔으나, 그 거리는 꽤 멀게 느껴졌다.    나와 마주하는 시간 검은 날개 달고 날아갔다, 빨간 까치밥 열매잎들에게 남은 날들은 헤아려져 있다. 인류는 이메일을 쓰고 나는 말을 찾고 있다, 더는 모르겠다는 말,없다는 것만 알 뿐   아니면 내 문제인가. 나에게 이제 시(詩)는 너무 멀리 있는 건가.    사물들이 말이 되던 때 내 유년의 곡식 밭에서밀은 여전히 밀이고, 호밀은 여전히 호밀이던 때,  추수를 끝낸 빈 밭에서나는 주웠다 어머니와 함께 이삭을 그리고 낱말들을 낱말들은 까끄라기가 짧기도..

전쟁일기, 올가 그레벤니크

전쟁일기올가 그레벤니크(지음, 글/그림), 정소은(옮김), 이야기장수   전쟁의 끔찍함을 말해서 뭐할까. 얼마 전 봤던 짧은 동영상이 떠오른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으로 직무가 정지했었던 시절,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났을 때를 가정한 시나리오를 브리핑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 때 다 듣고 난 노 대통령은 자신의 임무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것.  https://youtube.com/shorts/LQq5RkL1egc?si=zIB81u1yWoy8QKxX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초반, 나는 우크라이나 정치 상황을 한 번 훑어본 적이 있었다. 실은 우크라이나 전쟁은 2014년부터 간헐적으로 반복되어져 왔고, 그 상황 속에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의 우호적인 관..

아침 그리고 저녁, 욘 포세

아침 그리고 저녁욘 포세(지음), 박경희(옮김), 문학동네   > 이후 두 번째로 읽는 욘 포세의 소설이다. 비슷한 느낌이다. 과거와 현재가 뒤섞이고 삶과 죽음이 교차한다. 그리고 페테르는 성냥갑을 집어 건넨다. 그리고 요한네스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두 사람은, 요한네스와 페테르는, 나란히 앉아 담배를 비우며 바다 저멀리 서쪽을 바라본다 그리고 요한네스는 생각한다, 돌멩이 두 개가 페테르의 몸을 그냥 통과해 날아가다니 몹시 이상한 일이군, 아니 그런 일은 불가능하지 않나, 그냥 착시현상이겠지, 그런 일은 일어날 수가 없는 걸, 요한네스는 생각한다, 페테르에게 그의 몸을 만져봐도 되냐고 물어봐야 하려나, 그럴 수는 없어, 페테르가 그를 어떻게 생각할까, 아니지 그렇게까지는 못하지, 페테르에게 몸을 만져봐도..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 1,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 1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 Marguerite Yourcenar (지음), 곽광수(옮김), 민음사 Trahit sua quemque voluptas. 우리들 각자는 자신의 욕망에 의해 드러난다. -  베르길리우스(232쪽) ‘친애하는 마르쿠스여’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병상에 누운 로마 황제의 회고록이다. 전체적으로 애잔하고 슬픈 분위기 속에서, 그 당시 세계 최고의 권력을 지녔던 어느 노년의  담담한 목소리로 채워지는 소설이다.  나에게 나의 삶이 너무나 범속하여 기록으로 남겨질만한 가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다소라도 오랫동안 관조될 만한 가치조차 없고, 심지어 나 자신의 눈에도 어느 누구의 삶보다 결코 더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 보일 때가 있는가 하면, 그것이 유..

야만적인 앨리스씨, 황정은

야만적인 앨리스씨황정은(지음), 문학동네   나이가 들고 보니, 내가 했거나 겪었던 많은 일들이 지금 시점에서 보자면, 매우 비합리적이고 야만적이고 폭력적인 것들임을 깨닫는다. 이런 깨달음으로 인해, 이 사회가 더 나아진 것인지 알 턱 없지만 말이다. 그 땐 몰랐다가 지금 알게 되었으니, 더 나아진 것일까. 도리어 겉으로 보이는 세상은 예전보다 좋아진 듯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좋고 바람직한 변화가 있다면 그렇지 못한 변화가 있고, 그 바람직하지 못한 변화들로 인해 세상은 더 살기 어려운 곳으로 변했다,고 말해도 되는 걸까.  이 소설은 뭐랄까, 상당히 폭력적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낯설지 않다. 우리 세대들이 공유하는 경험들이기 때문일까. 그리고 그것에 저항하지만, 언제나 중간에 그만두거나 ..

슬픔의 위안, 론 마라스코, 브라이언 셔프

슬픔의 위안론 마라스코, 브라이언 셔프(지음), 김설인 (옮김), 현암사 서문은 무척 좋았다. 그래서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생각만큼 집중되지 않았다. 결국 건성으로 읽게 되었다. 슬픔에 대한 것이지만, 대부분 누군가가 죽고 난 다음 몰아치게 되는 슬픔에 대한 글들이다. 나는 슬픔이라는 게 조금 더 추상적이면서 인생의 본질적인 어떤 부분을 건드는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이 책에선 곁의 누군가가 죽은 다음에 대한 위로, 위안에 대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나에겐 동일한 내용이 반복되는 것처럼 읽혀졌다. C.S.루이스는 반복적으로 인용되었다. 인용되는 글들 대부분 문학 작품으로 국한되었다. 가끔 음악이 등장하나, 무시해도 좋을 수준이다. 슬픔에 빠진 이들에게 슬픔의 바퀴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글일지 몰라도,..

스노볼 드라이브, 조예은

스노볼 드라이브조예은(지음), 민음사   대학 때의 소설창작수업이 떠올랐다. 한 번은 유명일간지의 신춘문예 등단 소설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한 때 국내 최고의 소설가였던 담당 교수는 그 당선작이 얼마나 많은 논리적 모순을 가지고 있는지 지적했다. 소설의 기본부터 새로 닦아야된다고 말했지만, 그 당선작의 작가는 지금은 유명한 소설가가 되었다. (논리적 완결성 보다는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능력이 더 중요하니까.)  나는 요즘 국내 작가들이 누가 있는지 잘 알지 못한다(너무 많다). 가끔 이렇게 손에 닿으면 읽게 된다. 스노볼 드라이브. 그렇게 이 소설을 읽었다. 나는 이 소설의 설정, 방부제와 비슷한 속성을 가진 하얀 괴설이 내리는 설정이 무책임하다고 생각했다. 너무 과감한 설정이며, 그것으로 인해 생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