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문학 345

세계는 이렇게 바뀐다, 단요

세계는 이렇게 바뀐다 - 수레바퀴 이후 단요(지음), 사계절, 2023년 솔직히 중간 정도까지 읽다가 그만 두었다. 소설이라고 보기 어려웠고 그렇다고 에세이라고 하기에도 좀 애매했다. 전체적으로 애매하고 모호했다. 대단하게 복잡한 서사나 은유가 사용된 것도 아니다. 심각하게 불길한 느낌도 아니고 일종의 문제 제기로 읽히긴 하나, 그래서, 뭘, 어떻게 라고 묻기 시작하면 애매해지는 글들이었다. 도리어 이 소설을 두고 찬사를 늘어놓는 평자나 독자가 이해되지 않았다. 토마스 만이나 로베르토 무질을 떠올렸지만, 이들의 소설은 그야말로 정말 사변적이다. 이토록 허술하지 않다. 그냥 읽었으니, 리뷰를 올린다. 또한 누군가는 이 소설 - 이걸 소설이라고 한다면 - 을 정말 재미없게 읽었다는 사실을 기록해 두어야 겠다..

얼론 Alone, 에이미 션, 줌파 라히리 외 17명

얼론Alone 에이미 션, 줌파 라히리, 제스민 워드, 마야 샨바그 랭, 레나 던햄 저 외 17명(지음), 정윤희(옮김), 혜다 책을 찾았지만, 나오지 않았다. 서가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 텐데, 찾지 못한 건...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실은 집 근처 구립 도서관에서 빌려 읽던 중이었는데, 어딘가 두고 잃어버렸다. 서가와 바닥에 놓인 책들 사이로 빨려 들어갔다. 쌓인 책들 사이의 공간은 끝이 없는 미지의 세계다. 때는 업무가 밀려 드는 늦가을이었고 대출 기간을 넘겨 연체를 하던 중, 연체 안내 문자를 보고 부랴부랴 책을 찾았는데, 어디다 두었는지 나는 기억해내지 못했다. 가끔 있는 일이긴 하다. 가지고 있던 책을 다시 사기도 한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을 결국 찾지 못해, 새로 구입했다. 도서관에선 ..

계속되는 이야기, 세스 노터봄

계속되는 이야기 Het Volgende Verhaal 세스 노터봄 Cees Nooteboom (지음), 김영중(옮김), 문학동네 이것이, 내가 믿는 그것이다. 육체적 죽음의 거친 고통이 아니라, 존재의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옮겨가는 데 필요한 신비로운 정신적 행위에 비할 데 없는 고통이다. 그 고통은 쉽게 찾아온단다. 알겠니, 아들아. -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공허함, 그것은 어지러워하는 개의 눈에서 볼 수 있는 공허함이다. 내가 그 낯선 침대에서 느꼈던 것도 공허함이다. (13쪽) 사랑이야기지만, 사랑에 대해선 길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사랑한다는 단어도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확실히 사랑이야기다. 동시에 불륜이야기다. 동료 교사 유부녀와의 사랑 이야기이면서 한참 어린 제자에 대한 사랑이야기다..

사카구치 안고 단편집

사카구치 안고 단편집 사카구치 안고坂口安吾(지음), 유은경(옮김), 지식을만드는지식 자정쯤 잠에서 깼다. 지금은 낯설지만, 실은 수백 년 전엔 일상적인 패턴이었다. 밤의 어둠을 촛불로 몰아낼 수 없듯이, 전등이 등장하기 전 대부분 사람들은 어두워지면 잠자리에 들었다. 이른 저녁 잠에 들어 자정이나 이른 새벽에 깨어, 한밤 중 산책을 나서곤 했다. 유럽에서도 그랬고 조선에서도 그랬다. 그러나 지금은 밤 늦게까지 밝은 전등 아래 생활을 할 수 있다 보니, 새벽에 잠에서 깨는 풍습은 사라졌지만, 쉬이 피곤해지는 나이 탓으로 집에 오면 바로 잠을 청하게 되어, 어쩔 수 없이 자연스레 새벽에 깨어 어슬렁거리곤 한다. 오늘 그렇게 잠에서 깨어, 러시아 피아니스트 스바토슬랴프 리흐테르(Sviatoslav Richte..

저 사람은 알렉스, 욘 포세

저 사람은 알렉스 Det er Ales 욘 포세Jon Fosse(지음) 정민영(옮김), 지식을만드는지식 시간은 겹쳐지고 각기 다른 시공간의 사람들이 하나의 공간 속에서 사건을 만들고 대화를 하며 사라진다. 어슬레의 실종을 다루고 있는 이 소설은, 현재에서 시작하여 그 공간 속으로 어슬레의 고조할머니가 등장하면서 약간의 혼란스러움 속에서 읽는 이는 자연스럽게 욘 포세 만의 흥미로운 세계를 경험한다. 마치 한 무대의 한 쪽 편에서 현재의 이야기가 흘러나오다가 그 무대의 불이 서서히 꺼지면서 다른 편 무대에 불이 환히 들어오면서 과거의 이야기가 전개되듯 소설의 문장도 그렇게 이어진다. 지극히 연극적이거나 영화적인 수법이다. 이렇듯 현대의 장르는 서로 다른 장르들에게 영향을 주며 각 장르들의 표현 방식을 풍성하..

그 날의 비밀, 에리크 뷔야르

그 날의 비밀 에리크 뷔야르(지음), 이재룡(옮김), 열린책들 세상에 참 많은 작가들이 있다. 무수한 작품들이 있고 그 작품 하나하나마다 내가 예상하지 못하는 어떤 세계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놀랍고 안타깝기만 하다. 나이가 들어 영어 공부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글로 번역된 걸 읽다가 영어 원문으로 읽었을 때의 느낌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언어란 신비롭고 예술의 끝은 없다. 일년에 읽고 볼 수 있는 작품의 개수는 한정적이다. 소설가 장강명이 어느 글에선가 1년에 백사십여권을 읽었다고 했다. 이틀이나 사흘에 한 권씩 읽은 것인데, 대단하다. 작품 활동을 하면서 그 정도의 책을 읽기란 쉽지 않다. 애초에 소설가나 시인은 책을 잘 읽지 않거나 문학 작품에만 편중된 독서를 하기 일쑤다. 실은 작품 ..

일인칭단수, 무라카미 하루키

일인칭단수 무라카미 하루키(지음), 홍은주(옮김), 문학동네 다 읽고 보니, 하루키의 소설을 읽는 건 무려 이십년만이다. 가 나온 지도 벌써 이십년이 지났다. 일 년에도 여러 차례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이름을 읽거나 보게 되지만, 정작 그의 소설을 읽진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일년에 읽는 소설은 채 열 권도 되지 않고 심지어 서재에는 읽으려고 사둔 소설만 수십권이 될 터니. 우연히 도서관 서가를 지나치다 이 소설 를 보게 되어 빌려 읽었다. 예상한 대로의 하루키 소설이었다. 늘 기대하는 모습 그대로 이 소설집에서도 하루키는 가볍고 경쾌했다. 내가 마지막으로 읽은 는 너무 진지했다고 할까. 하루키가 어딘가 진지해지면, 그 순간 모든 그의 매력은 반감되고 깔끔하던 그의 작법은 도리어 어설퍼진다. 그 이..

O Do Not Love Too Long 오 너무 오래 사랑하지 마라, W.B. 예이츠

태풍이 지나가자 더위가 이어졌다. 화요일, 공휴일, 광복절, 출근을 했다. 후문이 잠겨 있었다, 정문이 잠겨 있었다, 쉬는 날엔 지하 주차장만 열린다는 걸 잊었다. 출근을 하지 않으려 했으나, 기한이 정해져 있는 업무로 신경이 곧두선 상태라 집에서 일을 하기 참, 어려웠다. 사무실 노트북 전원을 켜고 이메일을 확인하고 소셜 미디어를 둘러보다가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시를 우연히 본다, 읽는다, 소리를 내어 읽었다. 한 언어는 다른 지역의 언어와 겹치면서 퍼져나간다. 각 나라말은 절대 일대일로 옮겨지는 법이 없다. 하나의 시가 다른 나라 말로 옮겨질 땐 여러 개의 시들이 나올 수 있다. 그래서 영어로 된 시를 읽을 땐 하나의 한국어 단어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단어 꾸러미로 연결된다. 훨씬 풍성해지는 느낌..

클라라와 태양, 가즈오 이시구로

클라라와 태양 Klara and The Sun 가즈오 이시구로(지음), 홍한별(옮김), 민음사 클라라는 조시를 위해 자기 나름의 방식을 찾아 돕는다. 클라라에게 햇빛이 자양분이듯, 햇빛을 향해 조시를 낫게 해달라고 빈다.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해 노력한다. 실은 이것도 일종의 프로그래밍일 텐데, 이것을 풀어내는 가즈오 이시구로의 능력이 대단하다고 할 수 밖에. 관찰과 학습을 통해 클라라는 외부 세계를 받아들이고 해석하며 자신만의 성찰로 조시에게 바람직한 행동을 하려고 노력한다. "이봐, 네가 아주 똑똑한 에이에프일지 몰라도 네가 모르는 게 많아. 너는 조시 쪽 이야기만 들으니 전체 그림을 못 본다고. 조시는 엄마만 가지고 그러는 것도 아냐. 항상 날 함정에 빠뜨리려고 해." (212쪽) 하지만 한계는..

헛되지 않을 텐데 Not In Vain, 에밀리 디킨슨 Emily Dickinson

Not In Vain If I can stop one heart from breaking, I shall not live in vain; If I can ease one life the aching, Or cool one pain, Or help one fainting robin Unto his nest again I shall not live in vain. 헛되지 않을 텐데 만약 내가 어느 한 마음이 부서지는 걸 막을 수 있다면, 나는 허무하게 살지 않을 텐데, 만약 내가 어떤 한 인생을 힘들게 하는 아픔으로부터 가볍게 할 수 있다면, 또는 어떤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할 수 있다면 아니면 어느 쓰러지는 새 한 마리를 도와 그의 둥지 위로 다시 보낼 수 있다면 나는 헛되이 살지 않을 텐데. - 에밀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