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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지하련의 우주/Jazz Life +800


안경을 바꿔야 할 시기가 지났다. 나를, 우리를 번거롭게 하는 모든 것들은 우리의 예상보다 빨리 도착해 신경쓰이게 한다. 글자가 흐릿해지는 만큼 새 책이 쌓이고 잠이 줄어드는 만큼 빨리 지치고 상처입는다. 변화는 예고 없이 방문하고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곤 사라지며 흔적을 남긴다. 


처리해야 할 일들이 빠르게 늘어나 거의 매일 노트북을 들고 다닌다. 노트북이 가벼워진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다. 가벼워질수록 이 녀석이 자주 나타난다. 사무실뿐만 아니라, 거리에서, 까페에서, 심지어 집 거실에까지 나타나 나를 괴롭힌다. 메일이 오고 문자가 오고 전화가 온다. 


미팅을 끝내고 사무실에 들어가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근처 카페에 들어와 메일을 확인하고 일을 한다. 그렇게 오후에서 저녁이 되었다. 또 야근이었다.


스트라다 로스터스 STRADA ROASTERS




합정역 인근의 커피숍. 높은 천정. 단순한 인테리어. 직사각형의 공간. 낮은 테이블 맞은 편으로는 높은 선반 위에 그 모습을 뽐내는 커피머신들. 그리고 혼자 샵을 지키는 소녀. 커피를 내리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커피 향이 퍼지고. 





무심코 시킨 아메리카노. 그러나 예상을 뛰어넘는 놀라움. 커피는 매우 근사했다. 견고한 아로마. 고소하면서도 깊이 있는 풍미. 끝 여운 속에서, 일부는 부드럽게, 일부는 거칠게 입 안을 휘감아 돌았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여기저기 전화를 받았고 전화를 했고 스트레스를 받았으며 잠시 내 삶을 생각했고 길게 그동안 내렸던 내 의사결정들을 후회했다.






스트라다 로스터스의 커피에 매료된 나머지, 드립용으로 분쇄한 커피를 사가지고 왔다. 오래된 칼리타 서버, 드리퍼도 작은 것으로 새로 장만하고 드리핑을 했다. 물줄기는 얇게, 속도는 천천히, 그렇게 빙빙, 빙빙, 돌렸다. 그러고 보니, 내 인생도 빙빙 돌아 여기로 온 걸까. 물줄기는 빙빙 돌아 커피와 섞여 근사한 드립 커피가 되는데, 나는 빙빙 돌아, 돌아, 왜 뒤쳐진다는 생각만 드는 걸까.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다시 읽으며 문학과 연극, 예술과 삶에 대해 중얼거렸다. 중얼거림에 대한 결론은 없고 오직 죽음만이 우릴 기다린다. 그렇게 시간은 흐른다. 칼 야스퍼스였던가. 오직 죽어가는 나만 있을 뿐...이라고. 어쩌면 실존이란 바로 저것이다. 죽음을 향해 내달리는 것. 나와 너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그렇게 정해져 있는 것. 



햄릿: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참혹한 운명의 화살을 맞고 마음 속으로 참아야 하느냐. 아니면 성난 파도처럼 밀려오는 고난과 맞서 용감히 싸워 그것을 물리쳐야 하는냐. 어느 쪽이 더 고귀한 일일까. 남은 것이 오로지 잠자는 일뿐이라면 죽는다는 것은 잠드는 것. 잠들면서 시름을 잊을 수 있다면, 잠들면서 수만 가지 인간의 숙명적인 고통을 잊을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진심으로 바라는 최상의 것이로다. 죽는 것은 잠드는 것 ...... 아마도 꿈을 꾸겠지. 아, 그것이 괴롭다. 이 세상 온갖 번민으로부터 벗어나 잠 속에서 어떤 꿈을 꿀 것인가 망설여진다. 

- 셰익스피어, <햄릿>, 제 3막 1장 



하지만 다행이다. 작은 것들은 지친 우리를 위로해주고 있으니. 저 커피처럼. 


혹시라도 합정역에 가게 된다면 저 커피숍에 가길 바란다. 최근 몇 해 동안 마신 커피 중 최고였다. 스트라다 로스터스 Strada Roas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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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복도 창가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



대도시에서 대도시로의 출장. 그냥 평범한 가을날. 바다가 아닌 곳에서 바다 앞 도시로. 그렇게 서울에서 부산으로. 고등학교까지 마산시-지금은 창원시로 바뀐-에서 다녔고 가끔 부산에 갔던 터라, 왜 서울 사람들은 부산에 가고 싶어할까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출장으로 그간의 오해가 풀렸다고 하면 과장일까(아니면 내가 서울 사람이 다 된 것일까).



부산 출장은 이미 여러 차례 있었고, 휴가를 가기도 했으며, 그 때마다 어떤 연유에선지 몰라도 해운대 근처 호텔에서 묵었다. 많은 이들이 광안리나 해운대를 좋아하지만, 너무 관광지의 느낌이 강하다고 할까. 멋진 수평선과 높은 파도로 뒤덮이는 넓고 긴 백사장이 매력적이긴 하지만, 무수히 넘쳐나는 외지인들의 일부에 휩쓸려 들어가 관광객으로만 머물다 그렇게 나온다. 하지만 이번에 묵었던 남포동은 달랐다. 



약 두 달 전 2박 3일의 일정으로 스탠포드인부산 호텔 사진 촬영을 다녀왔다. 내가 사진을 찍었던 것은 아니니, 큰 일을 한 것은 아니다. 그저 사진을 찍던 이 옆에서 이런저런 도움을 주면 호텔 체험을 할 뿐이었다. 그리고 하나하나 살펴볼수록 새로 오픈한 호텔의 깔끔함이 좋았고 부산 한복판의 경쟁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하려는 호텔 직원들의 각오가 좋았다. 


사진 촬영 중



이미 남포동 일대는 부산국제영화제나 자갈치시장 등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었지만, 내가 갔던 9월 중순은 다소 한가해 보였다. 부드러운 바람이 한낮의 열기를 식혔고 멀리 보이는 바다 풍경은 지친 마음을 누그러지게 해주었다. 주변에 맛집들이 즐비한 탓에 호텔 1층에 있던 카페 스탠포드는 정성스럽게 준비한 음식마저도 한 번 더 쳐다보는 노고가 있어야만 했지만, 새벽마다 분주히 움직이며 호텔 직원들은 하나하나 조식 요리들을 마련해 테이블 위에 가져다 놓았다.  



스탠포드인부산 호텔 바로 뒤로는, 마치 시간이 정지된 듯, 수십년 전에나 볼 법한 좁은 뒷골목이 이어졌다. 그 골목에서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바로 항구가 들어서 있고 자갈치시장이다. 그런데 이 뒷골목은 숨겨진 보물과도 같은 곳이다. 이미 매스컴에도 여러 차례 나온 양곱창 집들이 일렬로 골목 끝까지 이어진다. 서울과 비교해 가격도 저렴하지만(그래도 소고기이니 두 세명이서 먹다 보니 가격이 상당히 나오지만), 맛은 더욱 놀랍다.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양곱창에 소주가 부담스럽다면 바로 길 건너 위치한 용두산 공원 근처, 근사한 수제 맥주를 파는 맥주 전문들이 모인 골목으로 가도 좋을 것이다. 회를 먹고 싶다면 자갈치 시장으로 가면 되고. 


양곱창구이. 바로 앞에서 구워준다.




하지만 그런 걸 즐길 시간은 드물었다. 사진 촬영은 꽤 힘든 일이었다. 검은 외계인처럼 생긴 조명을 계속 끌고 다니면서 사진 촬영을 했고, 테이블이나 의자 배치를 바꾸기도 하고 창을 열기도 하고 커튼으로 닫기도 하고 침대를 가지런히 정리하는 등 사진 촬영 준비도 병행해야 했기에 객실마다 두세 시간은 기본이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사흘 내내 사진 촬영만 했다. 완연한 가을 날씨였던 탓에 땀에 젖지는 않았으나, 객실마다 있는 욕실은 무척 좋았다. 알고 보니, 남포동 인근의 호텔들 대부분은 샤워 시설은 있었으나, 욕실까지 갖춘 곳은 이 곳 밖에 없다. 올해 여름에 오픈한 객실 중심으로 꾸며진 비즈니스 호텔이라고 하기엔 너무 근사했다고 할까. 하긴 비즈니스호텔이라고 하긴 너무 근사하고 편안했다. 



며칠 머물렀던 호텔 객실


최고급 호텔에서의 휴식처럼 잠자리는 무척 좋았고 객실 내의 구비품이나 시설은 완벽했다. 나이트가운은 왜 없냐고 물었더니, 침대 밑을 보라고 했다. 침대 밑에서 조심스럽게 모습을 드러낸 나이트가운, 금고, 슬리퍼까지. 그리고 그 외 다른 것이 필요한 경우 1층 데스크에 요청하면 된다고 했다. 그 대답이 마치 내겐 호텔에 머물면서 필요한 건 그냥 데스크에 요청하면 된다는 이야기처럼 들렸다.  


호텔 입구 밤풍경


그러나 호텔 객실이나 레스토랑에서의 조식이 전부가 아니다. 호텔에 계신 분들 모두 친절했고 마치 그것을 사명처럼 여기고 있었다. 짧게 일로 갔다 왔지만, 이렇게 출장 후기를 남기게 되는 건 그 출장의 일정 중 절반은 손님처럼, 그리고 나머지는 깊은 감동, 따뜻한 환대, 근사한 추억의 주인공처럼 지내다 왔기 때문이다.  



서울 올라오는 길에 잠시 들렸던 감천문화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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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탑방이다. 막상 사진을 올리긴 했으나, 사진에 따라 쓸 글이 마땅치 않다. 위 사진을 보고 몇 명이 연락을 해선 촬영이 가능하냐고 물었지만, 스마트폰 카메라로는 저렇게 나오지만, 실제 촬영은 어렵다. 그만큼 공간이 협소하기도 하거니와 주위 풍경이 좋지 않아 옥탑방의 특성을 드러내기 어렵다. 


옥탑방. 어떤 이들은 이 공간을 낭만적으로 여길지 모르겠으나, 막상 살아본 이들에게 옥탑방은 유쾌한 곳이 아니다. 더울 때 가장 덥고 추울 땐 가장 춥다. 그게 옥탑방이다. 


위 사진은 한강대교 남단 어느 게스트하우스 옥상을 찍은 것이다. 외국인 게스트들과 함께 놀던 때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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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과 계절 사이. 도로와 도로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 그 사이에 앉아 책을 읽으며 창 밖과 창 안쪽을 번갈아 바라다보았다. 풍경 안에 있지만, 풍경 밖으로 계속 밀려나갔다. 단어들이 쉴 새 없이 떠올랐지만, 그 어느 것 하나 문장이 되지 못했다. 복 없는 단어들이여. 결국 사라질 것들이다. 


고비 사막에서 발견되었다는 미이라의 뉴스가 떠올랐다. 하지만 가고 싶은 곳은 타클라마칸 사막이다. 어쩌면 우리들은 모두 사막 속으로 사라질 지도 모를 일이다.


토요일 오전, 동네 카페에 앉아 이 사람, 저 사람 보면서 잠시 나를 잊었다. 내가 있는 곳, 내가 처한 곳, 내 앞 절벽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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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과, 내 처지와 다르게, 하늘은 맑고 바람은 불고 대기는 상쾌했다. 아마 누구에겐 이런 날씨가 감미로운 휴식이 되겠지만, 누구에게는 감미로운 불안이 되었을테지. 그 불안 속에서도 다행히 한낮의 더위는 견딜만했고 아침과 저녁의 한기寒氣는 때때로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 마음 위에 앉아 아침 저녁으로 지친 손 두 개를 모으고 신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넨다. 파스칼Pascal을 읽은 까닭에, '저 끝없는 우주의  영원한 침묵' 앞에서도 놀라지 않았다. 그 동안의 독서가 삶의 고통을 견디게 하는 사소한 위안이 될 것이라 여겨지 않았건만, 예상하지 못한 사이, 다행스러운 일 하나가 더 늘어났다. (이렇게 '다행多幸'이 쌓으면 내 삶도 복으로 가득차게 될 지 모른다)


나이가 들자 눈물이 많아지고 건강은 나빠졌다. 주량은 변함이 없으나, 술친구는 줄고 술 깨는 시간은 늘어났다. 여자친구들은 사라졌고 남자친구들은 만나기 어려워졌다. 때로 술에 취해 전화를 하려고 꺼내지만, 걸 곳이 없다. 그 시절, 그 계절, 그 바람 속에서 건조한 전화기 속에 잘도 숨어있었던 그/그녀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그러나 정신없이 바쁜 탓에 쉽게 감상에 젖지 않는다, 못한다. 



8월의 어느 금요일 동네 근처 공원에 올라가 한강 북쪽을 향해 보았다. 남산타워가 저렇게 보이는 날도 일년에 몇 번 있을까 말까 인데, 그런 날 속에 있었다. 하지만 기쁘지도 슬프지도, 그저 무덤덤했다. 무감각해졌다. 애써 태연한 척했던 것일 지도 모른다.  



그 다음 날, 토요일 오후 약속이 있어 집 밖으로 나서는 길가에 서서 사진을 찍었다. 하늘 모습이 좋았다. 서쪽 하늘은 들떠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 하늘 아래서 저렇게 노래 부를 일들만 생겼으면 하고 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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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듯이 누워 밑에서 올라오는 열기와 얇게 흔들리는 콘크리트 건물의 건조함에 묻혀 아주 짧게 내 삶을 되새기며 슬퍼한다. 이름 모를 바람이 들어와 잠시 내 몸 위에 살짝 앉았다 지나고, 매 순간 매 순간, 아니 그 때, 그리고 그 때도, 그리고 그 때도, 후회는 대양의 밀물처럼 밀려와 내 마음을 휩쓸고 지난다. 


나이가 든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긴다. 그건 피부가 쭈글쭈글해지는 것이 아니다. 아무렇지 않던 곳이 아파지는 것도 아니다. 갑자기 잘 보이던 글자가 흐릿하게 보인다고 해서 나이가 드는 것도 아니다. 나이가 든다는 건, 후회와 한탄이 많아지는 것이다. 젊을 땐 후회스럽지 않던 것이 갑작스레 잘못한 것임을 깨닫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잘못으로 나이든 지금 아파하고 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많이 아프다. 


그렇게 우리는 나이를 먹는다. 나이를 먹는다고 마음이 건강해지는 것도 아닌데, 나이 먹는 게 마치 훈장처럼 보일까 고개를 푹 숙이고 걷는다. 조심하게 된다. 함부로 말을 놓지 못하고 깍듯해지려고 노력한다. 늘 배우려고 하고 겸손하려고 하고 말을 아끼려고 한다. 하지만 나이를 먹은 나는, 그것을 무시라고 종종 오해하기도 한다. 


반듯이 누워 천정을 바라보다, 삶과 죽음 사이를 흐르는 시공간과 숨겨진 우주를 생각했다. 현대물리학에선 미래란 이미 정해져있다고 말하지만, ... 나는 한사코 그걸 부정하고 싶다. 다시, 다시, 나이 먹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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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바람이 부는 바다 앞에 서서 수면에 닿자마자 사라지는 눈들을 바라보곤 했다. 그 도시의 거리에나 그 도시 앞 바다에나 눈을 쌓이는 법이 없었다. 자주 만나면 사랑이 싹틀 것이라는 바람 대신 그녀는 다른 남자를 만나 떠나는 것처럼, 몇 시간 동안 내린 눈은 내린 시간 보다도 더 빨리 녹아 사라졌다. 


바다를 그리워하게 될 것이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통영은 그 도시 근처에 있지만, 자주 가지 않았다. 자주 갈 일도 없었다. 





거래처와 미팅을 하고 점심을 먹고 저녁을 먹었다.




윤이상 음악당이 통영국제음악당으로 이름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곤, 고 윤이상 선생의 세계를 알려고 해도 알지도 못할 이들이 나서서 명칭을 바꾸었다는 사실에 속으로 분개했다. 


'내 고향 남쪽바다'라고 일컫어지던 고향 앞바다를 떠올리며, 잠시 향수에 젖었다. 그러고 보니, 내 고향엔 세계적인 조각가가 있었다는 사실을 이 글을 쓰며 깨닫는다. 


어젠 사람들 앞에서 미켈란젤로의 '피에타Pieta'에 대해 한참 이야기했다. 그의 신앙심과 절망을, 그의 예술과 매너리즘에 대해서. 미켈란젤로에 대해 한 권을 책을 써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이가 들어... 


Michelangelo Buonarotti

Rondanini Pietà (론다니니의 피에타)

1552–1564, height 195 cm

Castello Sforzesco, Mil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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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에 까페 하나가 생겼다. 몇 번 지인들과 자리를 함께 했다. 그 까페 한 쪽 면의 창문들은 어두워지면 저 멀리 63빌딩이 보이고 강변북로를 잔잔하게 물결치는 파도처럼 수놓는 자동차 불빛들이 한 눈에 들어오는 야경을 가졌다. 사무실의 술자리를 줄이니, 동네 술자리가 늘어났다. 동네 술자리가 마음 편하다. 술을 많이 마실 염려도 없고 많이 마시더라도 걸어서 집에 가니 걱정 없다. 


비가 많이 내렸다. 내린 비만큼 내 치아와 잇몸 상태도 엉망이었음을 최근에서야 알았다. 매주 치과에 가서 치료를 받고 있다. 나이가 든다는 걸 마음보다 몸이 먼저 안다. 우리는 나이 드는 훈련을 받지 못했다. 늘 상투적으로 말한다. "몸은 늙었으나, 마음만은 이팔청춘이야"라고. 


그런데 저 상투적 표현이 얼마나 우리 사회를, 우리 마음과 몸을 병들이는가에 대해선 주목하지 않는다. 청춘의 마음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경험해본 이는 다 아는 사실 아닌가. 무수한 도전과 실패로 얼룩져 중년의 몸과 마음까지 영향을 주는 그 이팔청춘! 이팔청춘이 뭐가 좋다고. 


그래, 이팔청춘 시절 그대의 사랑은 행복했나요? 그대의 학창 시절은 즐겁고 유익했나요? 그대의 대학 시절은 바람직했나요?  


제대로 된 사회는 그 나이에 맞는 역할과 책임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제대로 된 역할과 책임에 대해 고민해 볼 시간 없이 오직 대학 입학만을 준비한다. 사춘기의 철없지만 향기롭게 들뜬 사랑에 대해서도 그 어떤 조언도 받지 못하고, 머리 가득하게 퍼지는 성적 유혹에 대해서도 온 몸으로 부딪히며 아파할 뿐이다. 그렇다고 대학이 딱히 나은 것도 아니어서, 그 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건 성적 방종이거나 자유, 혹은 학문 탐구에 대한 무책임함이다. 그리고 이 때부터 갑자기 괴롭히는 것이 생기는데, 그건 취업 준비다. 



이팔청춘이 한참 지난 사람들끼리 모여 앉아 와인을 마셨다. 비는 쉴새없이 내렸고 투명한 유리잔은 채워졌다가 비워지길 반복했다. 말은 끊겼다가 이어졌고 시간은 쉼없이 흘렀다. 어느 새 나이가 들어 이제 살아갈 시간이 살아온 시간보다 적게 남은 우리들에게 청춘이란 무엇일까. 늙어간다는 건 무얼까. 인생은, ... ... 


그저 의미없이 지나갈 뿐이다. 아. 다행이다, 까뮈와 베케트를 읽어둔 것은. 까뮈와 베케트는 내가 젊었던 시절, 이 생이 아무 의미 없음을 알려주었기에, 나는 어떻게든 살아있는 것이다.


치과 치료가 있는 날이면 아련한 고통에 정신이 없다. 진통제를 먹어야 하나. 그나저나 목요일 통영에 가는데, 가서 뭘하지. 회의를 끝내고 뭘하지. 혹시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 통영에 사는 이가 없었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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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내 나이에 놀란다. 때론 내 나이를 두 세살 어리게 말하곤 한다. 내 마음과 달리, 상대방의 나이를 듣곤 새삼스레 나이를 되묻는다. 내 나이에 맞추어 그 수만큼의 단어를 뽑아 지금 이 순간의 느낌 그대로 적어볼까 하는 생각만 하고 있다. 그러게. 아직도 나는 내 글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한다, 않는다. 


나이만 앞으로, 앞으로,  내 글은 뒤로, 내 마음은 뒤로, 내 사랑도 뒤로, 술버릇도 뒤로, 뒤로, 내 몸도, 열정도, 돈벌이도, ... 모든 게 뒤로, 뒤로 밀려나간다. 


한때 꿈이, 이번 생의 끝에서 이 생을 저주하고, 다음 생에선 바다에 갇혀 그 바다에서 나오지 못한 채, 깊은 바다로 내려가 사냥을 하다 홀로 죽는 향유고래가 되고 싶다고 말하고, 적고, 읊조렸다. 그 꿈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한 것이 십 여년 전이다. 아무도 귀 기울이지도 않았고, 기억하지 않았고, 가을에 떨어져 겨울을 뒹굴다 다음 해 봄날 따뜻한 햇빛 속에서 때론 축축하게, 때론 건조하게 썩어들어갈 이파리를 그 꿈은 닮았다. 


다행히, 그런 이파리를 닮은 바다표범이 수조를 헤엄치는 모습을 보자, 내 마음이 놓였다. 잠시 눈을 감았다. 그 수조 속으로 들어갔다. 나는 말을 잃었고 얼굴을 잃었고 사랑을 잃었다, 그러자 물 속 자유를 얻었다,고 상상했지만, 계속 눈을 감고 있을 순 없다, 없었다.


 


어느 토요일 오후, 가족과 함께 한강대교까지 걸어가 칼국수를 먹었다. 거리는 고요했고 마음은 황폐했다. 대기는 건조했고 높은 하늘은 나에게, 우리에게 무관심했다. 



하지만 무관심할수록 매력적인 하늘은, 때론 우리를 기분좋게 한다. 그게 참 짧은 순간일지라도. 그렇게 오후가 가고, 또 오후가 가고. 어린 아이는 흑석동과 본동 사이의 숲에서 이루어질 숲 체험 교실을 기대하고 있었다. 도시에서의 유년기란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까. 나에겐 없는 풍경이다.


나에겐 있고 당신에 없는 걸 내가 줄 수 있으리라 여겼지만, 알고 보니, 내가 가지고 있는 건 거의 없었다,는 걸 태어난 날보다 죽을 날이 더 가까운 어느 날 새삼 깨닫게 되었다. 4월, 5월, 내내 제안서만 쓰고 프리젠테이션만 하다 시간을 보냈다. 어떤 회사로의 이직은 계속 연기되다가 결국 물거품이 되었고, 그 일 여년 사이 두 세 군데의 입사 제의를 거절한 것을 후회하게 될 줄 몰랐다. 


많은 일들이 어긋나기 시작했고, 진행 중이고,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어느 중년의 봄날들 사이, 방통대 영문과 졸업 논문은 스케치만 하다 결국 작성하지 못했고, 어떻게든 마무리해보겠다는 생각만으로 <<Shakespeare and The Mannerist Tradition>>을 주문했다. 여름이 오기 전에 '제안서 쓰는 법'을 사무실 멤버들에게 강의할 예정이고, 그리고 나는 꿈을 꿀 것이다. 그런데, 


나는 어떤 꿈을 꾸어야 할까. 향유고래는 이미 죽었고 내 마음은 식었다. 그 이전의 기억은 나지 않고 그 때를 수놓았던 무수한 단어들은 공기 속에 묻혀 찾을 수 없을 정도로 투명해졌다.  


방통대 졸업 논문 스케치 속, 멕베스는, 그 가련한 멕베스는 마녀들의 예언에 자신을 놓아버렸다. 마녀들의 예언은 실현되지만, 그건 그리스 비극의 신탁이 아니다. 신탁 앞에서 비극의 영웅은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장엄하게 자신의 고결함을 지키지만, 멕베스는 마녀들의 예언 위에서 잃어버린 자신을 찾지 못한다. 고대의 운명과 근대의 운명이 확연하게 갈라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멕베스를 마주 하면서 드는 그 아련한 불쾌감은, 외부의 힘에, 유혹에 끊임없이 흔들리는 나와 닮아있어서 그런 걸까. 


 


늦은 5월의 수요일, 아침부터 덥다. 그대 목덜미도, 내 손도, 당신의 구두도, 내 마음도 쓸쓸한 땀으로 가득 찬다. 두 손을 모아, 행복한 일들이 연거푸 일어나길 기도한다, 마음 속으로, 이 비정한 도시가 떠나갈 정도로 큰 목소리로 외친다, 외치고, 외치지만, 아무도 들리지 않는, 들을 수 없는, 그리고 흔적이 남지 않을 그 소리만 가득 안고 오늘 하루을 산다. 그렇게, 당신과 똑같이, 그렇게 하루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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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바람은 사무실 안으로도, 내 마음으로도, 그대 가슴으로도 밀려들지 않는다. 늘, 그렇듯, 우리에게 싱그러운 바람은 비켜나간다. 그렇게 청춘은 지나갔고 노년은 음울한 기운을 풍기며 낮게 깔려 들어와 자리잡는다. 노안이 시작되었다,는 말을 무심결에 했다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숙였다. 자랑은 아니지만,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라, 젊은 시절 상상했지만, 마치 SF 영화와 같다는 걸 나이 들어서야 안다. 


이런 비-일치는 우리 생애 전반을 물들이고도 모자라, 이 도시를, 이 나라를, 이 지구를 물들인다. 그래서 엘레야의 제논은 '날아가는 화살은 정지해있다'고 말한 것일까. 그 때 그녀의 손가락 끝을 잘 살펴볼 걸, 지금에서야 후회한다. 


일요일 오후, 몇 시간 일을 하고 난 다음, 남은 일을 체크하곤 집에 가긴 틀렸다며, 중얼거렸다. 그렇게 시간은 가고, 봄날은 가고, 주말은 지나간다. 


우리의 희망은 새롭게 시작될 수 있을까. 과연 그럴까. 주말의 여유가 그리운 어느 봄 일요일이 조용히 사라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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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르몽드 디플로마크 한국어판 4월호를 읽으며 자크 랑시에르의 인터뷰 일부를 옮긴다. 끔찍하고 지독한 분석이지만, 동의하게 되는 건, 실제 이렇게 변했는지도 모를 일.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글쎄다. 어떻게든 정치에 대한 관심을 놓으면 안 된다. 그냥 선거 때 반짝하고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계속 지켜보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의견을 전달하고 참여해야 한다. (참으로 말은 쉽구나, 쉽지!)   



"대의민주주의라는 용어는 그 자체로 애매모호한 성격 외에도 국민들이 대표자를 선출함으로써 자신들을 표현한다는 '잘못된' 생각을 의미한다. 그러나 국민은 정치과정에 선행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과정의 결과물이다. 어떤 정치 시스템을 갖추느냐에 따라서 그에 따른 국민이 만들어지는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다. 또한 대의제는 사회의 일반적 이해관계를 대표하는 사회계층이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의 관점에서는 계몽된 지주들이 그런 계층이었다. 대의제의 결과로 국민들은 사진들의 합법적 대표자들이 이런 계층 출신일 것으로 여기며, 투표를 통해 이를 정기적으로 재확인한다. 대의제는 전문가들을 위한 제도로 점차 바뀌어갔고, 이들은 자신들과 똑같은 사람들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이 제도는 자체 역설을 생성하게 됐다. 국민들은 전문가들이 자신들을 대표하기보다는, 그들이 자신들을 정말로 그대로 구현하는 화신이 되어주기를 갈망하는 신화적 사고를 가지게 된 것이다. 이는 선거 때마다 재현되는, 점차 저질이 되어가는 한 편의 연극과 같다."

- 자크 랑시에르 (* 르몽드디플로마크 한국어판 4월호에서 인용)  



*   * 

몇 해 전에 읽었던 랑시에르 책에 대한 독후감. 

2012/05/13 - [책들의 우주/이론] - 민주주의는 왜 증오의 대상인가, 자크 랑시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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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5일 

혼란스러운 사각형의 냉동, 냉장 공간 탐험 끝에 만난 또띠아, 치즈, 오래된 소시지. 늦은 퇴근. 혼자 식탁에 앉아 먹는 맥주. 어쩔 수 없이 아저씨가 되어가는 밤의 쓸쓸한 어둠.




4월 7일 

#혼술 생활의 연속. 아슬, 아슬, 하늘, 하늘, 흔들, 흔들, 빙글, 빙글, 그렇게 #혼술 #중년  



4월 24일 

혼자 술만 마시다 나이가 들었다는 걸 문득 깨달았을 때, 찾는 건 그 때 그녀,들,목소리,들,그,손길,들,그,술자리,로 이루어진 대명사들. 

책상에 앉아 이리저리 흩어진 내 현재를 추스리다가 '내 길이 뭘까', 하고 생각했을 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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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 맨지오니의 저 LP가 어디 있는가 찾다가 그만 두었다, 술에 취해. 몇 해 전 일이다. 혹시 결혼 전 일일 지도 모른다. 아니면 술에 취한 채 이 LP를 찾았는데,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고, 그 사이 나이가 든 탓에 찾았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


'수도 있다'서술어이 가지는 느낌은, 젊었을 때는 '가능성'이었으나, 나이가 들면 무너진 터널 앞에 서 있는 기차같다. '수도 있다'는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이었는데, 무모하게 시도했다는 의미다. 가령, '그녀와 키스할 수 있었는데', '그녀에게 고백할 수 있었는데', 혹은 '사랑하던 그를 붙잡을 수 있었는데' 따위의 표현들과 밀접한 연관를 갖는다.


결국 생명이란 생명의 지속과 연장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니, 그 시작은 작은 만남과 사랑으로 포장될 것이다.


 '수도 있다'는 서술어의 사용은, 아쉽다는 느낌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기적이 세상에 존재한다면, 그건 가능한 일이었음을 주장하기 위한 첫 계단이다. 애초 불가능한 것에 대한 도전(무모한 시도)을 가능성의 회상으로 바뀌고 기적의 출현(열망)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결국 나는 LP가 어디에 있는지 찾지 못했고 대신 다른 LP를 찾아 틀었다. 


'브룩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오역이지만, 그렇게 굳어진)의 '러브이데아'를 들으며 제니퍼 제이슨 리가 분한 트랄라를 떠올린다. 


결국 삶이란, 우리가 어떻게 어긋나는가를 하나하나둘 되새기며 깨달아 가는 과정이다. 되새기지도 않고 죽는 이들이 한없이 부럽기만 저녁, 몇 주 동안 계속된 치통과 함께 불안한 미래는 장막처럼 내 앞에 드러누워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래도 'Feels So Good', 'So Goo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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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술의 비밀. 그건 와인 잔에 맥주를 담는 허세다. 

혼자 고독한 척 쓸쓸한 척 멋있는 척... 척의 비밀. 

그건 아는 자만 아는 유쾌한 허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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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우연히 마주친, 새로 생긴 동네 더치 커피 전문점, 스테이지 나인. 

그리고 잠깐 동안의 커피 여행. 

짧고 굵은 목넘김, 낮고 은은한 향기, 

초봄 햇살이 빌딩 사이로 사라지고 그 틈새를 물들이는 어둠.  

출렁이는 어두움이 입술에 닿을 때, 살짝 미소를 짓는다. 

아, 나는 역시 예가체프구나. 

우아하고 깊은 시원함. 시큼함. 쓸쓸함. 허전함. 

지난 청춘 깊이 숨겨져 있던, 늙어가는 피부 아래 잠겨있던, 그 기억이 

무심한 거리 위로 모습을 드러내며, 함께 다가오는 공포여. 내 삶, 미래의 두려움이여. 

쫓기듯 뭉게, 뭉게, 뭉게

위로, 위로, 올라가는 내 삶의 진정성이여, 

모든 것을 앗아가는 들뜬 모험이여, 

얼마 남지 않은 내 영혼의 불꽃을 앗아갔던 사랑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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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성이란 우리의 출신배경, 언어, 국적이 타자의 존재로부터 자주 우리에게 보호막이 되어줌에도 불구하고 이를 통해 얻게 되는 확실성에 안주하지 않고 이를 넘어서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보편성은 또한 대외 정책이나 사회 정책과 같은 문제에 대해서도 인간적 행위에 대한 단일한 규준을 찾아내고 이를 유지하고자 노력해야 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가 정당한 이유 없이 야기된 적의 침략에 대해 비난한다면, 우리는 또한 우리 정부가 더 약한 집단을 침략할 때 똑같이 비난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지식인은 자신의 언행을 규정하는 어떠한 법칙도 알지 못한다. 세속적 지식인들에게는 확고한 인도자로서 경배하고 숭배해야 할 어떤 신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 에드워드 사이드, <<지식인의 표상>> (최유준 옮김, 마티) p. 11 


나이 들어 뒤늦게 알게 되는 학자가 있다면, 에드워드 사이드이다. 대학 시절엔 그저 '오리엔탈리즘'의 저자로만, 포스트모더니즘 열풍 속에서 읽혀진 학자들 중 한 명으로 알려졌지만, 실은 그는 그런 유행과는 무관한 전통적인 인문주의자였다. 몇 년만에 에드워드 사이드의 책을 읽기 시작했고, 위 문단을 읽으면서 잠시 멈추었다. 


보편성이라는 단어는, 어딘지 모르게 보수적인 느낌이 풍기지만, 21세기 한국에선 저 단어마저도 종북좌파로 오해될 것이다. 실은 권력의 지원을 받는 미디어에 의해 우리가 알고 있다는 단어들의 의미나 배경은 더럽혀졌다. 그렇게 더럽혀진 단어들은 사람과 사람 사이로 전파되며 무비판적으로 이해되고 수용된다. 노무현 정부가 미디어와 대립각을 세우며 서방의 자유주의자들이 하듯 다양한 토론과 논쟁 속에서 보다 나은 방향을 나아가고자 하였다면(그러나 그 정부는 모든 미디어로부터 왕따 당했다, 심지어 진보적이라 불리던 한겨레나 프레시안으로부터도!), 그 이후 들어선 이명박 정부부터는 교묘하게 미디어를 장악했다, 그리고 미디어는 권력 앞에 아무 소리도 못했으며, 기자들은 자랑스럽게 '기레기'가 되었다. 박근혜 대통령 앞에선 그 어떤 질문도 못하는 **들이 야권의 대선 후보들 앞에선 기를 세우고 질문을 해댄다. 


'보편성이란 인간적 행위에 대한 단일한 규준을 찾아내고 이를 유지하고자 노력해야 함을 의미'하지만, 21세기 한국 사회에선 철없는 이상주의처럼 여겨진다. 나에겐 참 보수적으로 읽히는 저 문장이, 한국에선 참 좌파스럽게 이해될 것이라 생각하니, 참 슬프다. (아니면 내 오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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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잠 들었는데, 새벽에 눈을 떴다. 마음이 무겁고 복잡한 탓이다. 

나이가 들면 사라질 것이라 믿었는데, 나이가 들수록 근심 걱정은 더 많아진다. 

내 잘못으로 그런 건지, 아니면 원래 인생이라는 게 이런 건지 모르겠다. 


젊을 땐 내 잘못이 아니라 원래 인생이라는 게 이런 것이라 여겼지만,

지금은 원래 인생이 이런 게 아니라 내 잘못이라 여기게 되는 건 왜 그런 걸까. 

내가 제대로 나이가 들고 있긴 한 건가. 


인터넷을 떠돌아다는 영상이 기억나 다시 보게 된다. 

사랑이라 ~. 

참 미안하고 참 슬프다. 


예능프로라 왁자지껄 웃고 떠드는 사이, 

지나간 사랑에 대한 후회와 회한으로 살아온 지난 세월 사이로 고백하고 되돌이고 싶은 저 노인의 외침이

흰 눈들 사이로 사라진다. 

방송 출연진의 탄식이 흘러나오고 ... ... 

참 미안하고 슬프다. 

그게 첫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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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다리 그림자 김씨는 끝나가는 하얀 겨울 속에서 길을 잃었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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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에 쓴 포스팅이라니. 벌써 12년이 흘렀구나. 함민복과 채호기의 시다. 


*** 2004년 1월 27일 *** 


강화도 어느 폐가에 들어가 산 지 꽤 지난 듯 하다. 세상의 물욕과 시의 마음은 틀리다는 생각에 인적 뜸한 곳으로 들어가버린 시인 함민복. 그의 초기 시들은 무척 유쾌하면서도 시니컬했었는데. 어느 순간 보니 연시들이 많아졌다. 외로워서 그런 걸까. 아니면...


광고를 위해 지은 그의 시 "설중매"는 세상의 술에 취한 영혼을 살며시 깨우고 저기 멀리 달아나는 그리움을 조용히 잡아 세운다.



설중매



당신 그리는 마음 그림자
아무 곳에나 내릴 수 없어
눈 위에 피었습니다.

꽃 피라고
마음 흔들어 주었으니
당신인가요

흔들리는 마음마저 보여주었으니
사랑인가요

보세요
내 향기도 당신 닮아
둥그렇게 휘었습니다.



이 시 때문에 설중매를 얼마나 사 마시려마는, 내 마음 외로운 탓에 차가운 겨울 오후부터 술 생각 동하게 만드는 건 함민복의 시가 가진 힘일 게다. 사랑하는 이가 옆에 있어 술을 마시면 좋을련만, 그 꿈 접은 지 오래. 하지만 꿈을 가지는 상상은 때로 좋을 때가 있다. 그런 상상 속에서 오래된 시 한 편 읽어본다.



몸 밖의 그대 1


1

그대와 마주앉아 그대의 술잔에 술을 따릅니다. 그대의 몸
을 조금씩 채워가는 술. 그대와 마주앉아 내 몸에 따르어지
는 그대를 봅니다. 내 몸 속에 채워지는 그대. 술은 그대 핏
속으로 스며 구멍마다 붉은 꽃송이 내질러 숨막히는 향기로
내 몸을 묶어놓습니다. 그대는 내 몸으로 들어와 영혼을 점
령하고 옴쭉달싹 못하게 합니다.


2

내 몸 속에는 그대가 들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당신을 죽
었다고 하지만 내 몸 속에는 그대가 온전히 살아있습니다.
내가 더 이상 나일 수 없는 슬픔과 절망의 사막에 홀로 버려
질 때 그대는 내 몸을 찢고 밖으로 나옵니다. 내가 그대를
그토록 사랑했듯 그때야 비로소 나는 없고 오로지 그대만이
있습니다.


********


어느새 십이년이 넘어버린 채호기의 시다. 술에 취해 이 시를 읽으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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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 고장. 

아파트 계단을 내려오다 만난 봄,날의 기억. 

언제 인생의 봄은 다시 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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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DID 레이블. 지금은 구하지도 못하는 레이블이 될 것이다. 집에 몇 장 있는데, 어디 꽂혀있는지, 나는 알 턱 없고. 결국 손이 가는 건, 역시 잡지 부록으로 나온 BEST COLLECTION이다. 레코드포럼, 매달 나오는 대로 사두었던 잡지, 그 잡지의 부록은 클래식 음반 1장, 재즈 음반 1장. 제법 좋았는데. 


유튜브가 좋아질 수록 음반은 팔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구하기 힘들던 시절의 아련함은, 우연히 구하고 싶은 음반을 구했을 때의 기쁨, 그리고 그것을 자랑하고 싶어 아는 이들을 불러모아 맥주 한 잔을 하며 낡은 영국제 앰프와 JBL 스피커로 밤새 음악을 듣던 시절은 마치 없었던 일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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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비가 내리는 마산 해안도로를 따라 달렸다. 

도로 옆 수백억 짜리 골리앗 크레인은 어느 신문기사에서처럼 어디론가 사라졌고 그 텅 빈 자리엔 무엇이 들어올까. 

오늘의 아픔은 

내일의 따뜻한 평화를 뜻하는 걸까, 

아니면 또다른 아픔을 알리는 신호일까. 


다시 서울로 올라오는 내내 마음 한 켠의 불편함과 불안함은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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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한국 사회는 망가졌고 시스템은 과거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무척 당혹스러웠다. 


다행인지 몰라도, 작년 하반기. JTBC의 용감한 보도, 그 이후 이어진 촛불 집회가 있었다. 

아마 그것마저 없었다면 계속 수렁 속으로 빨려들어갔을 것이다. 


나만 그렇게 느낀 것이 아니라 조금의 식견이 있는 이들은 모두 그렇게 여겼을 것이다. 


힘 있다고 믿었던 정치인들은 권력 앞에 무능력했고(공무원, 검사, 기업인들을 모두 한 통속이 되어 부패해졌고) 

평범한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쏟아져 나왔을 때야 비로소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 하고 있는가를 깨달았다. 


하지만 여전히 대부분 언론들은 정신차리지 못했으며, 학교는 무너졌고 그 곳의 실질적인 리더인 교수들은 가장 추악한 면모를 드러냈다.

(청와대 비서관들은 대부분 교수 출신이고 이대 교수들은, 아, 말을 하지 말자) 

그들은 추악한 권력 앞에 고개 숙였으며 청문회장에 나와서까지 거짓말을 했다. 


한국 사회는 겨우겨우 제 정신을 차릴려고 하는 순간, 미국은 너무 솔직하다 못해 예의없고 무분별해 보이는 이가 대통령이 되었다. 

그리고 매릴 스트립은, 골든 글로브 수상 소감에서 그 무분별한, 미래의 대통령을 향해 우아하게 공격했다. 


우리 사회는 비판하는 자들에게 냉혹하다. 그래서 비판하는 자들끼리 연대하여 줄 세우기를 한다. 그리고 그것이 계파가 되고 파벌이 된다. 

그 순간 비판에도 경계가 생기고 내부의 감시망이 발동하며 스스로 검열하기 시작한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모든 이들에게 비판의 자유를 허용하자, 모든 이들이 대통령을 욕했다. 

보수, 진보 가릴 것 없이 대통령 욕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그 이후, 어딘론가 대통령 욕하는 사람들이 사라졌다. 비판의 자유를 대신 보이지 않는 검열이 시작된 것이다. 

종편이 시작되고 언론인들도 물갈이가 되었다. 


세상이 얼마나 우스운가 하면, 박근혜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불철주야 온 몸을 바쳐가며 노력했던 이들이 

지금은 앞장 서서 박근혜 대통령을 공격하느라 여념 없다는 것이다. 


먼저 자신의 잘못을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반성부터 해야 할 판국에. 


메릴 스트립의 수상 영상을 올린다. 짧지만, 꽤 울림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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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지 않아요?"라고 묻는다. 매서운 바람이 어두워진 거리를 배회하던 금요일 밤, 그림Grim에 가 앉았다. 그날 나는 여러 차례 글을 쓰지 않냐는 질문을 받았다. 가끔 내가 글을 썼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스스로에게 묻지만 대답할 수 없다. 적어도 그것이 해피엔딩은 아닐 것임을 나는, 어렴풋하게 안다. 마치 그 때의 사랑처럼. 


창백하게 지쳐가는 왼쪽 귀를 기울여 맥주병에서 투명한 유리잔으로, 그 유리잔이 맥주잔으로 변해가는 풍경을 듣는다. 


맥주와 함께 주문한 음악은 오래되고 낡은 까페 안 장식물에 가 닿아 부서지고, 추억은 언어가 되어 내 앞에 앉아, "그녀들은 무엇을 하나요?"라고 묻는다. 그러게. 그녀들은 무엇을 할까. 그리고 그들은 무엇을 할까. 콜드플레이가 왔다는데,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나이는 시간을 먹고 나는 청춘을 먹었다. 게걸스럽게 먹는 사이, 많은 것들을 잃고 얻었다. 노트 한 장을 찢어 길게 반으로 접어, 한 쪽에 내가 잃은 목록을, 한 쪽에 내가 얻은 목록을 적는 사이, 계절이 가고 계절이 오고, 너무 하얀, 그녀의 창백한 볼을 닮은 눈이 내린다. 반쯤 마신 맥주 잔 위로 하얀 눈이 내린다. 하얀 눈이 쌓인다. 쌓인 눈 위로 서로 손을 마주 잡은 그들이 잔 위로 걸어나와 대학로 거리 어둠 사이로 사라졌다. 그렇게 취해가던 금요일 밤, 다행히 나는 그녀들에게 전화를 하지 않았다, 실은, 전화번호도 알지 못했다, ... 그리고 죽을 때까지 그녀들과 만나지도 못할 것이다. 


이 만날 수 없음은 얼마나 큰 행복인가. 적어도 나는 앞으로 그 찬란하던 고통을 받지 않아도, 그렇게 투명하던 눈물도, 끝없는 저주의 언어를 경험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다시 볼 수 없을, 하얀 잔 위로 그 발자국처럼, 그 쓸쓸하고 아름다웠던 청춘의 발자국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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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맘 때 대기가 제일 좋다, 나는. 적당한 차가움이 귀 끝을 스칠 때 따뜻한 술 한 잔이 떠오르고 무심한 거리 뒷골목에서 만나는 인생들에게서 정을 느낀다. 그대들과 함께 술 취해가던 그 해 겨울이 그리워지는 이 맘때, 초겨울, 나는 요즘 대기의 결이 좋다. 




아.. 그리고 술. 마시지 않은 지도 꽤 지났구나. 아름다운 술자리가 언제 였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그리고 아래 광고. 참, 술 생각, 옛날 생각, ... 휴식이 간절해진다. 요즘 너무 바쁘고 피곤하고 힘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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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내렸지만, 사람들은 그 사실을 몰랐다. 알 턱도 없었고 알기도 싫었을 것이며 알려는 의지도 없었다. 이미 선 긋기는 시작되었다. 저 땅은 아무리 노력해도 닿지 못하는 곳이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무모한 용기에 뒤이어 오는 경제적 고초와 무참한 절망, 패배감이 아니라 빠르고 현명한 포기였다. 그리고 그 포기 대신 내 포기는 종북들과 빨갱이들 때문으로 몰아가면 되었다. 지난 잃어버린 10년 정권으로 인한 것이면 되었다. 헬조선도 경제에 뛰어나지 못한 진보 정권으로 인한 것이다. 어차피 세상은 엎지르진 물이고 뒤짚기엔 너무 강력하다. 그러니 왜 나에게 꿈과 희망을 밀어넣는가! 나에게 필요한 건 한 끼 밥과 자극적인 막장 드라마와 종편 TV에서 틀어대는, 나보다 불쌍하고 처참한 북한 사람들의 실상이다. 


갑자기 추워진 29일 오후 6시가 조금 지난 시간, 청계광장으로 가는 길은 을씨년스러웠다. 사람들의 함성 소리가 몇 블럭 떨어진 곳까지 들렸지만, 행인들은 무심하기만 했다. 죽어가던 역사학자 토니 주트는 '정치는 경제를 이긴다'라고 말했지만(그래서 제대로 된 정치가 선행되어야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고), 그런 발언 따윈 좌파 호사가들이나 좋아할 말이다. 한국에서 보수라고 알려진 이들에겐 토니 주트도 좌파로 읽혔을 것이다. 하긴 제대로 된 보수가 어디 있으려고. 내가 보기엔 조선 시대에 통용될만한 세계관과 천민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흥미로운 결합이 한국 보수주의자들가 아닐까 싶지만. 


얼마 전 알게 된 한국학의 대가인 고(故) 제임스 팔레 교수는 조선을 노예 사회로 규정한다. 그는 문헌(호적부)에 기초하여 등록된 인구의 3~40%가 노비였다는 것이다. 더구나 같은 민족을 노비(노예)로 삼은 나라는 조선 밖에 없다. 그리고 그 조선으로부터 현대 한국은 고작 100여 년이 지났다. 그런 사회가 오백년 이상 지속되었다. 그 사회의 정신이 고작 100년 지난다고 잊혀질까. 


종종 나를 혼란에 빠뜨리는 것들 중의 한 가지는, 참 똑똑하고 입 바른 소리도 잘 하며 뭔가 제대로 살 것같은 사람들이 꼴통 짓을 한다는 것이다. 아마 다들 현 정권의 약점을 시작 초부터 알고 있었을 것이지만, 그냥 묻어버린 것이다. 나라의 미래 따윈 신경쓰지 않는다. 어차피 한국의 몇몇 기업들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졌으며, IMF 시기를 통해 단련되었다고 믿기 때문일까. 아니면 국민들은 개 돼지들이고 밥만 먹게 해주면 된다고 여기는 것일까. 이제 공중파는 다 잡았고 종편들까지 우리 편이니, 마음대로 해도 되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 그 어려운 고시 패스했다고, 유수의 국내외 대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고, 대단한 전문 지식과 기술을 갖쳤다고 해서 믿어선 안 된다. 그 전에 먼저 그 사람의 생각, 태도, 성품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라고 말하지만, 과연 사람들은 그렇게 할까) 


하긴 이번 사태가 터지지 않았다면, 세상은 아마 그대로였을 것이다. 조선소들은 이미 문을 닫았고 그 곳을 오가던 사람들의 비명소리는 저 파란 지붕을 가진 저택까지 들리지 않을 것이며, 사람들은 측은한 마음으로 파란 지붕의 안주인만 바라봤을 테니까. 세월호 아이들이 바다 속에서 죽어가고, 조선소 사람들이 갑작스레 직장을 잃고 가정이 파괴되어도, 사람을 겨냥해서는 안 되는 물줄기를 사용해 결국 목숨을 잃게 만들어도, 어차피 고작 한 표 밖에 없는 선거권으로 세상을 바꿀 수 없고 결국엔 다 종북과 빨갱이로 수렴될 족속들이니까. 


결국 다 노비들일 뿐이다. 가인 김병로(김종인 민주당 전 비대위 위원장의 조부) 선생은 보수주의자이면서 정권에 반발해 야당 생활을 했지만, 국회의원 선거 때 선거 벽보만 붙이고 선거운동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아래 것들한테 어떻게 표달라고 고개를 숙이냐"는 것.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젠 한 술 더 떠, 모든 콜센터 직원들은 "갑질 해대는 고객" 때문에 노이로제에 걸려 있다. 주인과 노비가 만날 일은 없고 노비는 노비들끼리 서로 갑질하느라 정신없는 나라가 되었다. 세상이 이러니, 어찌 어디 촌구석에서 나고 자란 상고 출신 대통령을 주인으로 인정할 수 있었을까. 그런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했던 사람과 대면한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이 나라의 상층부는 조선 시대 - 일제 시대 - 현대 한국을 거쳐도 변하지 않았다. 감히 어떻게 위로 올라갈 수 있는가. 올라가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아야 한다. 노비들끼리 몇 프로 되지 않는 재물을 두고 싸우느라 정신없게 만들면 세상 관리는 편해진다. 그리고 정권에 반발하는 이들에겐 가끔 무서운 경험을 한 두번 시켜주거나, 그들에게도 재물의 안락함을 한 번 맛보게 해주면 그 뿐. 이데올로기 시대는 갔고 똑똑한 젊은이들은 한국을 떠나 외국에서 잘 살 수 있으니, 자 이제 밖으로, 세계로 나가라,고 하면 그 뿐이다. 걸핏하면 나가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니면 사업을 해라, 그리고 망해라, 그러면 네 인생의 실패는 네 탓이니, 국가를 원망하지 말아라. 국가는 이미 이런저런 지원사업으로 결국 실패하게 될 네 사업에 돈을 주지 않았느냐.


글이 두서 없다. 아이를 안고 소리를 질렀지만, 청계광장의 많은 인파와 바로 옆 종로 거리의 행인들의 극명한 대비 속에서 나는 길을 잃었다. 그 사이 이태원에선 할로윈 파티로 즐겁게 보냈을 청춘들을 떠올리면, 글쎄, 우리에게 따뜻한 변화라는 것이 올까. 전투력을 잃어버린 야당 국회위원들과 너무나도 예의바르고 신중한 대선 후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사람들은 아무 생각없는 대통령을 불쌍한 사람으로, 그녀를 조종한 최 모 여인만을 공격하고, 그 대신 그 둘의 관계를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아무 조치도 하지 않은 정부 여당, 검찰, 국정원 등에 대해선 아무렇지 않은 듯 길을 걷고 커피를 마시고 단풍 구경을 간다. 마치 느리게 가열되는 냄비 속 개구리처럼 그렇게 이 나라는 무너지고 국민들은 사라지고 대신 영악한 주인들과 바보같은 노비들로 채워진다. 조선 시대처럼. 


한동안 임진왜란 뒤 무능하기만 했던 선조는 왜 왕위를 유지할 수 있었을까 의문이었는데, 왕과 사대부들은 서로의 이익을 위해 상부상조했던 것이다. 왕은 사대부들에게 학문을 배웠고 사대부들은 끊임없이 왕을 가르치려고 들었다. 대부분의 왕들은 사대부들보다 똑똑하지 못했으니까. 왕이 사라진다는 건 사대부들에게 치명적인 일이다. 그들이 가진 권세와 재물은 왕의 대칭구도로 인해 만들어지고 유지되는 것임을. 


지금도 마찬가지다. 무능한 대통령으로 인해 국회의원들과 감찰 기관들, 행정 각료들은 그들이 가진 힘을 충분히 느끼고 즐기며 부를 축적할 수 있으니까. 서로의 약점을 숨기고 미래란 변하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변화할 것같으면 충분히 미디어를 통한 세뇌와 다양한 색깔론과 종북몰이, 그리고 부정적인 수단이 마련되어 있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미 법률은 촘촘하게 정권에 대드는 이를 잡아가두기에 충분하다. 어차피 노비들은 노비들일 뿐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매질과 약값, 또는 기름진 고기를 주면 그 뿐이다. 그러니 상고 출신 대통령에겐 대들어도 무능한 대통령을 감싸고 그녀를 조정했다고 여기지는 무녀까지 배려하는 것이다. 


그래도 청춘들은 10월의 마지막 일요일 할로윈을 즐기느라 정신없을 테니까. 


어제 청계광장을 가득 매운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왜 사람들이 이것밖에 없지 라는 생각을 했다. 이미 나라란 없고 대통령의 의사결정은 신뢰를 잃었다. 그야말로 위기상태다. 한국은 북과 대치하고 있으며 이런 상황에서 내려오기라도 하면 그냥 끝이다. 그건 북 때문이 아니라 미국은 신속하게 답 없는 한국을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 지금이라도 미국은 눈 밖에 나있는 북을 공격하면 그 뿐이다. 딱 1주일이면 충분하다. 일본은 그 상황을 즐길 것이며 중국은 이미 끝난 북의 일부를 가지고 갈 것이다. 사람들은 욕을 하고 비난을 하지만, 말 뿐이다. 헬조선이라고 하면서 헬조선의 연휴를 즐긴다. 나라 걱정한다고 하면서 집 안에서 뉴스만 본다.


변화는 움직이는 자들로 인해 만들어진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최저지지율은 5%대 였다. 지금 대통령의 지지율은 10%가 넘는다. 확실히 노답이다. 내가 이렇게 길게, 두서없는 글을 이유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이다. 우리에게 미래는 짧지만, 아이들의 미래는 길기 때문이다. 이와 똑같이, 살아온 날들보다 살아갈 날들이 많은 이들이 이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이 나라가 제대로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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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각 시절에는 직장의 중요성을 잘 몰랐다. 받는 돈이 적거나 없어도 하고 싶은 일은 언제나 있었다. 하지만 결혼을 하자,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해야만 했다. 그제서야 경영의 가치나 기업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대체로 경영진의 잘못된 의사 결정의 피해는 불행하게도 회사 구성원들이 진다. 그러나 작은 회사의 경우에는 (약간 달라서) 경영진이 책임지고 아예 집안이 망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기업 경영과 연관된, 잘못된 정치적 관행(뇌물 같은 것들)에 대한 책임은 이상하게도 기업가들만 진다. 정치가나 행정가들은 교묘하게 기업가들의 마음을 움직여 금전적 이익을 취하고, 그러다가 일이 잘못되면 그 책임 대부분은 기업가나 기업, 더 나아가 그 기업이 있는 지역사회가 진다(대우조선처럼).


정치과 기업의 밀착 관계를 끊어야 하고, 정부나 정치가들은 기업가들이 올바른 경영을 할 수 있는 인프라를 제시해주어야 한다,고 교과서에선 말하지만, 한국은 아직 한참 멀었다.


고성장 시대를 살아온 노인네들은 저성장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 상당수는 우연히 사놓은 땅이나 가게로 돈을 벌었다. 특히 서울이나 수도권은 이런 경우가 너무 많다. 그들에게 노년은 행복한 일상의 연속이며 그들이 소유한 부동산의 가격만 떨어지지 않으면 된다(그래서 그들 대부분은 모두, 한결같이 박근혜를 지지했다. 이는 정치적 의견이라든가 나라의 미래, 젊은 세대들의 삶과는 무관한 결정이다).


그러나 절약해서 모은 돈으로 기업체를 차린 사람들 대부분은 망해, 흔적도 없다.(일부는 성공하여 큰 기업체를 일구었을 테지만, 아마 문어발 확장을 하거나 노동자의 삶과는 무관한 경영을 할 것이다) 즉 노동의 댓가는 실패이거나 해고이고, 부동산 투자의 대가는 여유로운 일상과 이익이다(그래서 노인 빈곤층은 부동산을 사지 않았던 노동자이거나(땅에 투자하는 것은 어리석다고 믿는 이들), 사업을 하다 쫄닥 망한 이거나, 그 외 사회시스템이 커버하지 못했던 어떤 비극을 당했거나 그런 환경 속에서 나고 자란 이들이다).


잘못된 것인 줄 알지만, 우리 세대 사람들은 결국 실패하거나 해고당할 것이라는 생각에, 돈을 모아 아파트나 빌라를 구입하고 만다. 부동산의 시대가 끝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 앞에서(왜 부동산을 사는가에 대해 원인 분석 없이 맨날 부동산 대책만 낸다. 마치 왜 젊은 부부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가에 대한 원인 분석 없이 출산 대책만 내는 것처럼).


좋은 경영자가 살아남고 승승장구하여 좋은 일자리를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나라가 되었으면 하고 바라지만, ... 쉽지 않고, 쉽지 않을 것이다. 저성장 시대의 우리 삶을 그나마 지탱하게 해줄 것은 좋은 경영자가 아닌 훌륭한 정치가일 테지만, 훌륭한 정치가가 살아남기엔 이 나라는 너무 개판이다. 멍. 멍. 멍.


포스코가 인수하여 망가뜨린 회사에 대한 책임은 포스코가 아니라 그 구성원이 진다. 하긴 경영이란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경영 실패의 댓가는 가혹하기만 하다. 그러니, 올바른 정치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혁신은 실패로부터 시작된다고 하지만, 이래저래 실패는 가난한 기업가나 기업체에 다녔던 직장인들이 지고 말기 때문이다.


왜 사업을 했냐고? 왜 그런 회사를 다녔냐고? 평생 직장이 사라진 지금, 왜 노력을 게을리 했냐고? 웃긴 개소리다. 멍. 멍. 멍. 그건 시스템이 잘못되어 모든 실패의 책임을 개인에게 지우기 때문이다. 시스템의 문제이고, 시스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건 정치다. 경제를 살리는 것도 결국 정치다. 좋은 정치가가 필요한 시대지만, 나이든 이들은 얼마남지 않은 그들의 삶을 걱정할 뿐, 미래 세대들의 삶이나 그들이 살아가야 할 사회를 걱정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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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일상이 건축을 결정짓는 걸까, 아니면 건축이 우리 일상을 결정짓는 걸까. 


대구에서 개인적 공간이 희박한, 하지만 오래전엔 자연스러웠던, 공동체적 가치를 가졌던 건물을 보고 .. 

그런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건축의 가치를 새삼 느꼈다. 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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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수록 명절 보내기가 더 어려워진다. 내가 그런 것인지, 아니면 세상이 그렇게 변해가는지 모르겠지만. 과거는 화석이 되어 이젠 향기마저 풍기지 않고 미래는 어두운 터널을 지나 끝도 보이지 않는 계곡 사이로 이어진다. 중년이라 그런 건가. 돌파구는 늘 위기에 있다지만, 우리 인생은 늘 위기 위에 있다. 올웨이즈 리스크 모드라고 해야 하나. 


음악을 들었지만, 예전같은 감동을 찾기 어려웠다. 이렇게 늙어가는 건가. 



가을이 왔다고들 말하지만, 내 마음은 아직 끔찍했던 여름이 이어져, 계속 지치고 땀이 나고 흔들거린다. 그래도, 기어이 가을은 올 것이고, 그래도 나는 나이가 계속 들어갈 것이고, 그래도 내 아이는 계속 자라날 것이다. 시간이 흐른다는 건, 어쩌면 다행한 일인지도 모르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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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태양은 내 정수리를 향해 내리꽂았다. 투명한 대기는 흐릿한 내 미래와 대비해 더욱 무겁게만 느껴졌다. 동대구역은 내 기억에 남아있지 않았다. 동대구역은 공사 중이었다. 대학 시절 몇 번 대구엘 갔지만, 돌이켜보면 그건 내 소심함 탓이었다. 나는 배려한다는 핑계로 내 소심함을 감추었다. 그래서 나 말고 당신이 적극적이길 바랬다. 어긋나는 건 예정되어있었고 나는 일반적인 캐릭터는 아니었다. 


일 때문에 내려갔다. 일이라는 것도 임시적인 것이라, 적극성을 버리려고 노력했다. 사람은 변하지 않거나 세월 속에 자신의 습성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오해하는 건 나를 오래 만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다만 사는 환경이 달라졌을 뿐. 그래서 내가 적극성을 띄자 당신은 뒷걸음질 치며 떠났다. 



지방 도시의 매력은 낮은 스카이라인이다. 빌딩 숲이 드물고 저 먼 하늘까지 보였다. 유럽 도시는 다들 몇 백년 된 건물들로 이루어져 있지만(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불편함을 겪고 있는가), 여기는 아니다. 백년 넘어가는 집을 보기 드물다. 내가 살던 그 도시에선 19세기말 20세기초 지어진 개항기의 일식 건물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거의 다 사라졌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만 해도 다다미집도 있었는데 ... 하긴 그 전에 지어졌을 법한 초가집이나 기와집들도 다 사라졌으니, 무슨 말이 필요할까. 


자연스럽게 사투리가 흘러나왔고 사투리를 쓰는 여자가 새삼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서울 생활에 지치기 시작한 것이다. 대구에 알던 사람이 있었던가. 지금 아는 사람이 대구에 살고 있을까. 내가 알았던 그 때 그 사람은 지금 그 사람과 동일한 사람일까. 세월은 균열을 만들고 기억을 어긋나게 한다. 내 기억과 당신의 기억은 다르다. 내가 기억하는 당신과 당신이 기억하는 당신이 다르고, 당신이 알아주었으면 하던 나와 내가 알아주었으면 했던 당신은 다르다. 



조심스럽게 대문 앞으로 가서 초인종을 누른다. 그러면 집 현관이 열리고 마당으로 나오는 인기척과 함께 '누구세요'라고 묻는다. 그러면 골목길을 질주하는 아이들의 소리가 대낮 동네를 시끄럽게 한다. 그 때 동네는 아이들의 소리로 요란했다. 지금은 조용하기만 하지만. 아이들은 어딘가로 사라지고, 대문만 남았다. 무수히 작은 손가락들이 거쳐갔을 초인종은 이미 고장났고 철제 대문은 녹슬었다. 



아무도 상처에 눈길을 주지 않는다. 무심해진 걸 '쿨'한 걸로 오해했던 90년대를 지나, 근래에 들어선 우리 모두 상처로 뒤범벅이 되었다. 이젠 너도 상처 입었고 나도 상처 입었으니, 그냥 없는 척 살자고 한다. 상처 입지 않은, 입을 일 없는 그들은 우리와 다르고 다른 곳에 살고 다른 식당에서 밥을 먹고 다른 차를 타고 다른 곳에 놀러가니, 그들은 상처 입은 우리를 보고 너희들은 우리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들 중 일부는 그 때 그 대문 앞에서 초인종을 누른 후 골목 어딘가로 사라졌을 텐데. 


서울의 더위와 대구의 더위는 다른데, 그건 대기 때문이다. 자동차 때문이기도 하고, 빌딩의 수 때문이기도 하고, 당신 때문이기도 하다. 당신은 그 때 대구에서 무엇을 했던가. 그 때 더위는 참 지독했는데. 



골목은 기억은 가지고 있지 않지만, 기억은 골목을 가지고 있다. 골목길 끝은 늘 이야기로 넘쳐났고 쓸쓸했지만 따뜻했다. 아니 지나간 세월로 인해 이제 온기를 가지게 된 것일지도 모르지. 


다시 대구에 내려갈 예정이다. 그리곤 다시 내려갈 일이 없을 것이다. 내가 맡은 일이 끝날 테니. 대구에서 술 한 잔 하고 올라오면 좋을 텐데, 그럴 기회가 있을 지 모르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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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am1969 2016.09.21 20:06 신고

    오래된 대구 중구 서야동 토박이라 이 골목길을 단박에 알아보고 아는척 해봅니다. 사람이 빠져나가고 냄새만 남아 있는 그런 저안 골목이라서 조금 아쉽기는 합니다.

    • 네. 중구 서야동입니다. ^^ 지방 도시의 골목은 다 그럴 것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도 가끔 어렸을 때 뛰어놀던 그 골목길들이 생각나곤 합니다. 그런데 막상 그런 골목길이 이젠 많이 남아있지 않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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