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피티Graffiti에 대한 의견은 다양하다. 우리는 이미 장 미셸 바스키아가 그래피티 아티스트 출신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최근 세계 미술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뱅스키Bansky가 이야기하는 그래피티는 기억해둘만 하다. 지난 달 아트인컬쳐에서는 그래피티, 즉 스트릿 아트에 대한 특집 기사가 있다. 우리의 삶이 시장(Market)과 소비(Consumption)에서 자유롭지 못하지만, 자유로워지기 위한 시도는 끊임없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그 시도의 아방가르드는 예술가들이다.
“그래피티는 미술의 가장 저급한 형식이 아니다. 한밤에 몸을 숨기며 하는 일이며, 주위 어른에게 거짓말을 하며 행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가능한 가장 정직한 예술형식이다. 거기에는 엘리티즘과 허위의식이 없다. 그것은 한 도시의 최고의 벽에 그려져 전시되지만 누구에게도 입장료를 요구하지 않는다. 벽은 언제나 당신의 작품을 알리는데 최고의 장소였다. 우리의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그래피티를 이해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수익을 창출하지 않는 것은 존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신의 가치 기준이 오직 돈이라면, 당신의 생각은 가치가 없는 것이다. 그들은 그래피티가 사람을 놀라게 하고 그 지역 사회의 타락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래피티는 오직 다음의 3 종류의 사람들에게 위험할 뿐이다. 즉, 정치인들, 광고기획자들, 그리고 그래피티 롸이터들이다. 우리들의 이웃과 주변을 진정으로 훼손하는 사람들은 건물을 가로지르며 덮고 있는 각종의 거대한 구호들을 휘갈겨 쓴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들의 물건들을 사지 않으면 우리의 삶이 불충분하다고 느끼게 만들려 하는 버스 광고들이다. 그들은 모든 가능한 공간과 표면에서부터 당신의 얼굴에 이르기까지 그것들이 자신들의 메시지를 외치길 기대한다. 하지만 결코 당신에게 그것에 대답할 권리는 주어지지 않는다. 그들이 이 싸움을 시작했다. 그렇다. 벽은 그들에게 반격할 수 있는 선택의 무기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 세계를 보다 나은 곳으로 만들이 위해 경찰이 된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이 세계를 보다 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반달족(그래피티를 하는 사람)’이 된다.”
- Bansky, <<벽과 그림Wall and Piece>>, 서문 중에서(이태호, ‘스트릿 아트, 도시 정글에 피는 꽃들’(Art in Culture, 2008년 7월) 중에서 재인용
Bansky : http://www.banksy.co.uk/
(* 위 이미지들은 Bansky의 웹사이트에서 가지고 온 것입니다. 비상업적인 사용이기에 그대로 가지고 왔으나, 문제가 될 것으로 삭제될 것입니다. 위 사이트에서 Bansky의 보다 많은 작품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예술의 우주/예술가'에 해당되는 글 30건
- 2008/08/16 Bansky, 그리고 스트릿 아트(Street Art)
- 2008/07/15 시간과 존재에 대한 예술 - 온 카와라 & 로만 오팔카
- 2008/07/05 에드워드 호퍼, <여름실내>
- 2008/03/13 에드워드 호퍼 - "calm, silent, stoic, luminous, and classic" (2)
- 2008/02/22 잭 베트리아노(Jack Vettriano) (2)
- 2008/01/28 수 코우(Sue Coe), 또는 정치적 예술(Political Arts) (4)
- 2007/05/05 외젠 이오네스코 Eugene Ionesco
- 2007/04/06 그뢰즈의 '로코코'
- 2007/02/11 아드리안 파이퍼 Adrian Piper
- 2006/10/10 Philip-Lorca diCorcia
- 2006/10/07 The Death of Bara, 1794. - 자끄 루이 다비드
- 2006/07/30 귀도 레니 Guido RENI
- 2006/06/02 'Peter Getting Out of Nick's Pool' by David Hockney
- 2006/05/30 Andy by David Hockney
- 2006/04/30 앤디 워홀의 'Joseph Beuys'
- 2005/05/22 임원주(Won Ju Lim)
- 2005/05/06 에드워드 호퍼
- 2005/04/16 마네
- 2005/04/06 카라바지오의 'David'
- 2004/05/02 Chaim Soutine의 자화상
살아있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내 심장이 뛰고 내 혈관에 따뜻한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일까, 아니면 이성을 만나 열정적인 키스를 나누고 있을 때,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는 걸까? 그렇다면 살아있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의 인생 전체는 일종의 가상이거나 허위일 지도 모른다. 우리의 인생, 그리고 그 인생을 둘러싼 모든 사건들이 시뮬라크르일 지도, 나란 존재하지 않고 나란 누군가의 눈에 비친, 누군가의 생각과 언어에 의해 형성된 어떤 픽션일 지도 모른다. 더 절망적인 사실은 내 것이 아닌 인생을,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늘 내가 생각했던 것은 어긋나고 내가 한 말은 오해되고 내 글은 무시되고, 내 사랑이 번번히 막다른 골목의 시궁창에 빠지게 될 지라도, 나는 내 인생을, 내 존재를 어떻게 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내가 자살하더라도 나라는 가상의 존재는 세상 어딘가에 남아있다는 것이다. 르 클레지오의 소설의 한 문장 처럼, 내가 죽고 내가 알던 모든 사람들이 죽었을 때야 비로소 무로 될 수 있는 것이다.
도대체 살아있다는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이 가상이든, 허위이든, 살아있는 자는 그 살아있음을 증명할 필요가 있다. 로만 오팔카의 작업이 날 감동시키는 지점은 바로 여기다. 그의 행위는 단순하고 명확하다. '나는 살아있다. 나는 여기에 있었고, 여기에서 숫자를 적고 있었다.' 시간에 대한 탐구는 곧바로 자기 존재에 대한 탐구로 이어진다.
로만 오팔카는 숫자를 캔버스에 적는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국내의 몇몇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으며, 얼마 전에는 사간동 학고재에서 전시되기도 한 세계적인 작가이다. '숫자를 적는 행위' 자체로 주목을 받았지만, 실은 단조로운 색채와 병렬적으로 이어져 있는 숫자들의 나열이 가지는 조형적 아름다움도 무시하지 못한다.
이런 작품과 더불어 그는 자신의 사진을 찍는다. 일련의 사진들은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면서 살아있었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증언한다.
시간에 대한 탐구는 현대 미술의 강박증과도 같아 보인다. 하지만 거대해진 세계 앞에서 한 개인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혹시 지하철 속에서 이 무수한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지? '개인주의'가 유행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익명성 속에 자신의 몸을 숨긴 개인일 뿐이다.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결국 우리는 실패할 것이고 그렇게 죽을 것이다. 현대의 비관주의는 자신의 개별적이고 독창적인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즉물적인 방식을 택하도록 강요한다. 그래서 그 속에는 자신의 감정이나 주장, 일상이 드러나지 않고 객관적인 소재를 택해 '그저 (살아)있었음'을 표현하도록 할 뿐이다.
이 점에 온 카와라는 로만 오팔카와 비슷한 지점에 있어 보인다. 하지만 그의 방식은 더 극단적이고 파괴적이다. 그는 날짜를 적는다. 하나의 캔버스에 0시부터 24시까지, 꼬박 하루동안 하나의 날짜 작품을 완성시킨다. 완성시키지 못할 때는 이를 파기한다. 그리고 그 날의 신문을 아래에 배치한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매일 엽서를 보낸다는 것이다. 엽서의 내용은 언제나 정해져 있다. 'I GOT UP AT 11.10 A.M'
로만 오팔카가 자신의 (시간 위의) 삶을 캔버스와 사진 속으로 넣는다면, 그래서 그 순간만은 자신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증명한다면, 온 카와라는 일정 시간 동안 존재했음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통보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탈로 칼비노의 소설에서 한 인물이 이야기하듯, "천만에! 모두 꾸며낸거야. ... ... 그는 존재하지 않아. 그가 하는 행동도 말도 아무 것도,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아. ... ..."라고 하여도 무방할 정도이다.
극도로 제한된 작업 스타일은 '위태위태한 현대인들의 존재 상실의 위기감'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일 지도 모른다. 실은 우리들은 이미 자기 자신을 잃어버렸다. 자신의 개성이나 독창성 따위는 날조된 것에 가깝다. 어쩌면 라크스의 말대로 우리의 생각이나 행동 패턴은 우리의 물적 토대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일 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는 실제 우리와는 무관한 어떤 생각과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일지도.
그렇다면 과연 나란 무엇이고 살아있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혹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맞부딪혀야 할 상대는 시간(Time)이다.
One Million Years
On Kawara, 1999
2 volumes, each 2.012 pgs., leatherbound
(EDITION/SET: 500 num & 60 num. & sign.)
h: 14.5 x w: 10.5 cm / h: 5.7 x w: 4.1 in
http://www.artnet.com/artwork/424415142/424301160/one-million-years.html
Edward Hopper
Summer Interior
1909, Oil on canvas, 24 x 29 inches,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New York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따갑고 건조한 여름 햇살이 방 한 가운데로 내리꽂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로 하여금 자신의 몸을 일으켜 세울 정신적 의지는 지난 밤에 사라져버렸다. 꿈일 지도 모른다. 아니면 환상이거나. 만일의 경우 그것은 최악의 현실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지나가버린 것들이며 앞으로 오지 않았으면 하는 것들이다. 너무 가지런한 실내가 도리어 비현실적이다.
뜨거운 여름날 벌어지는 대부분의 일들은 비현실적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스스로 자신에게 오래 전부터 빈혈이 있었다고 믿는다. 그리고 잠시 후 세찬 소나기가 달구어진 대지를 식힐 것이라고. 하지만 그녀는 두렵다. 이 순간이 지나는 것이.
교묘하게 환상과 현실 사이에 육체를 걸치고 있는 그녀는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딱딱한 유화 물감에 자신의 영혼을 붙이고 환상도 아니고 현실도 아닌 어느 공간 속으로 들어가, 멈추어 버렸다. 어쩌면 시간의 틈새로 들어가, 공간의 틈새로 들어가 영원히 자신을 격리시키는 것이 우리 시대의 가장 바람직한 삶이 될 지도 모르겠다.
사무실에서 노트북을 가지고 왔다. 택배를 받을 것도 있고 출퇴근 시간을 아껴보자는 생각에서 였다. 하지만 의외로 집에서 시간 관리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북마크된 여러 웹사이트를 돌아다니다가, 에드워드 호퍼 전시 소개 페이지와 마주하게 된다. 미국적 경험(American Experience)의 재료와 구조(grain and texture, 적절한 번역어가 생각나지 않는다.)라는 표현이 마음에 든다. 그런데 에드워드 호퍼가 그렸던, 그 20세기 초반의 미국적 경험은 이제 전 세계적 경험으로 바뀌어져 있다.
고독 속에서 자기를 바라보는 것. 그건 너무 잔인한 일이다.
그런데 우린 모두 지금 그러고 있지 않은가.
Edward Hopper. Nighthawks, 1942. Friends of American Art Collection.
에드워드 호퍼(1882-1967), 소설가 존 업다이트가 묘사하기를, "정적이 흐르고, 고요하며, 금욕적이면서 빛나고, 고전적인" 예술의 창조자인 그는 가장 오랫동안 이어지며 대중에게 인기있는 20세기 미국 화가들 중의 한 명이다. 무척이나 비밀스러웠던 이 중요한 예술가, 호퍼는 고독과 자기 반성(introspection)을 자신의 작품의 중요 주제로 만들었으며, 미국적 경험의 재료와 구조의 한 부분으로 찬미했다. (전시 소개 중에서 번역함)
Oil on canvas
56.4 x 63.8 cm
Walker Art Center, Minneapolis
Oil on canvas
81.3 x 96.5 cm
Collection of Barney A. Ebsworth
출처: http://www.artic.edu/aic/
잭 베트리아노, 꽤 흥미로운 화가이다. 간단하게 잭 베트리아노를 정리해 보았다.
* * *
현재 그는 살아있는 미술가들 중에서 가장 수입이 많은 몇 명 중의 한 명이 되었다. 그의 작품을 소장한 이들 중에는 잭 니콜슨(영화배우), 알렉스 퍼거슨(축구감독), 마돈나(가수) 등이 있으며, 그의 대표작인 ‘The Singing Butler’는 13억 원에 가까운 금액에 팔리기까지 하였다. 하지만 그의 이러한 대중적인 인기와는 반대로, 미술 비평가들은 그를 예외적인 인물로 취급하며 높은 평가를 하지 않는다. 그러나 미술 비평계의 차가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그는 전 세계에서 가장 대중적인 화가로 인정받고 있다.
잭 베트리나노의 작품은 오래된 영화의 한 장면처럼, 흐릿하지만 강렬한 인상으로 보는 이들의 시선을 바로 당기며, 한 때 열정을 불태웠던, 아름다운 사랑의 흔적을 더듬는 듯, 애잔하고 쓸쓸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극적인 색채의 대비와 인물들의 동적인 움직임이 녹아있는 그의 작품은 평범한 이들과의 시선을 맞춘 채, 미술이 가져다 줄 수 있는 평온한 위로를 건넨다.
* * *
잭 베트리아노의 작품을 한정적으로 캔버스에 프린팅한 작품을 가지고 있어서, 얼마 전까지 은행에서 전시했다. 위 글은 전시할 때의 설명문이다. 꽤 낯간지런 글을 적어 좀 쑥스럽긴 하지만.
잭 베트리아노는 대단한 예술성을 가지고 있거나, 실험적이거나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하지도 않는다. 잭 베트리아노는 '딱 그만큼'인 화가이다. 나는 이 점이 굉장히 마음에 든다. 그는 대중화가이다. 그는 시장에서 팔리는 화가이고, 그의 작품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포스터를 계속 찍어낸다. 캔버스에 프린팅된 작품은 멀리서 보면 원화처럼 보일 정도다.
그의 작품은 키치가 아니라 대중 예술이다. 어쩌면 이것도 일종의 '현대적 정직함'의 표현이 아닐까. 솔직히 잭 베트리아노의 작품을 계속 보고 있으면, 너무 재미있다.
미투(http://me2day.net) 친구 pink-lotus님께서 이 작품을 선호하셔서 아래와 같이 사무실에 있는 잭 베트리아노의 작품을 찍어 올린다. (* 한정 수량으로 제작된 캔버스 프린팅 작품이다.)
Woman Walks Into Bar & Is Raped on Pooltable by 4 Men While 20 Watch, 1984.
photo-etching / Rives
9 3/4 x 11"
우연찮게 수 코우(Sue Coe)의 작품을 보게 되었다. 영화 <피고인>으로 잘 알려진 ‘베드포드(Bedford) 성폭행 사건’을 그린 작품이었다. 작은 이미지 만으로도 끔찍해서 보기 힘들 정도인데, 실제로 보게 된다면 어떤 기분일까, 생각만 해도 오싹해졌다. (미주 1)
종종 우리는 끔찍한 성폭행 사건을 접하게 된다. 예를 들자면 ‘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건’ 같은 것이다. 사람들은 그냥 뉴스 기사로만 접했을 뿐이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그 사건은 ‘현실’이지만, 미디어를 통해서만 경험한 것이기 때문에 ‘현실’이라고 할 수 없다. 나는 종종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에게서 어떤 두려움(혹은 공포)을 느끼곤 하는데, 바로 이 지점이다. 한 개인, 한 집단을 비탄과 절망, 죽음으로 내모는 어떤 것들은 분명 ‘현실’이지만 ‘현실 아닌 어떤 것’으로 포장되어 우리에게 전달된다. 포스트모더니즘의 탈정치화, 혹은 탈역사화는 이렇게 이루어지고 결국 우리는 진짜 현실로부터 유리되고 소외된다. 보드리야르를 비판적으로(거꾸로) 읽을 때, 우리는 현대가 어떤 상황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는지 알게 된다.
이 때 예술은 그 현실은 진실하게 옮길 수 있는 유일한 매체가 될 수 있다. 수 코우의 작업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되고 받아들여진다. 주류 언론에서는 그녀를 비난하고 매도하지만, 그녀의 작업이 예술적으로 형편없으며, 사회적 이슈를 제기하여 돈을 벌려고 하며, 떠버리 사회주의자(raving socialist)이라고 할 지라도, (미주 2)
그녀는 1951년 영국 태생이며, 1972년 미국 뉴욕으로 오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이전까지 그녀는 전혀 정치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녀는 뉴욕 타임즈 매거진(The New York Times Magazine)의 일러스트 작가로 일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변한다.
시기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그녀는 ‘인민들의 예술을 위한 위크샵(Workshop for People’s Art)’의 자원봉사 예술가로 참여하면서, 그녀의 정치적 의식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후 그녀의 작품은 놀라운 속도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잡지의 일러스트 작가에서 미국 미술계에서 보기 드문, 정치적이고 공격적이고 직접적인 작품 스타일로 무장한 여성 예술가로 변신한 것이다.
그녀의 정치 예술 작업은 1974년의 ‘KKK(Ku Klux Klan)단에 대한 작업’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1981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자살하는 방법’(How to Commit Suicide in South Africa)라는 책부터 본격적인 주목과 논란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감옥에서 Stephen Biko와 다른 학생 운동가들의 죽음에 대해 파헤친 책이었다. 1986년에는 Malcolm X의 삶과 그의 시대를 다룬 책 ‘X’을 만들어, 인종문제에 대해 다시 다루었다. 이후 그녀는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의 ‘동물학대’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며, (식품)산업 속에서 돼지, 닭, 소 등의 권리(rights)를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Porkopolis’로 알려진 그녀의 이 작품들은 의학적인 측면에서 조사와 유전 공학적인 접근을 통해 제작되었다.
끊임없이 그녀의 작품이 논란이 되는 이유는 민감한 정치적 주제나 소재를 다룬다는 점에도 있지만, 그녀의 작품들이 한결같이 끔찍하고 오싹하다는 점이다. ‘예술은 아름답다’라는 고전주의적 견해를 정면에서 부정한다는 것과 ‘정치적 주제/소재를 끊임없이 예술 작품으로 생산한다’는 두 가지 이유로 인해 그녀의 작품 스타일은 자주 논쟁거리가 되곤 한다.
그렇다면, 우리라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아니, 과연 표현할 수 있을까? 아마 대부분은 이러한 작품을 만들지 않을 것이다. 이는 시도해보기 전에 포기하는 것이고, 포기하기 전에 아예 그러한 시도에 대한 욕망을 자기 스스로 거세하는 것이다. 현대 예술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부정도, 긍정도 아닌, 그저 현실에서 고개를 돌린 냉소주의는 공포스러운 현실을 정면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현대 예술가들의 소극적 태도, 아니 정면으로 대응하더라고 결국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지고 말 것이라는 어떤 니힐리즘에 기반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머지않아, 결국에는 모든 예술은 정치적이고, 현실도 추하기 때문에 결국 예술도 추해질 수 밖에 없음을 인정해야 되지 않을까.
Sue Coe(1951 ~ )
1983. Mixed media, (232.7 x 287.7 cm)
The Nuclear Family Goes Shopping,
Sue Coe,
lithograph on heavy white wove paper
--- 미주
(1) <피고인>을 통해 본 한국의 성범죄 진단, 위드뉴스, 2007. 7. 9.
(기사 본문 중 일부를 인용함)
1983년 3월 6일, 술집 안에서 15명이 환호를 지르는 가운데, 여러 명의 남자가 21세의 여성을 윤간했다. 목격자의 증언에 의하면, 두 남자가 오럴섹스를 강요했고 다른 두 남자는 당구대로 끌고 가서 성폭행했다. 영화에서는 단지 세 사람이 강간을 범하고 세 명이 강간을 유도하는 교사죄를 저질렀을 뿐, 나머지 손님들은 그 사실을 모르는 것으로 설정했다.
즉 영화보다 실제가 더 참혹했던 것이다. 더욱이 한 남성은 경찰에 신고하려는 바텐더를 제지하고 엉뚱한 전화번호를 누르는 등, 범죄를 도왔다고 했다. 이 사건으로 뉴 베드포드의 많은 시민이 분노하였으며, 그 술집은 곧 폐쇄되었다. 그러나 그 후 그 지역에 사는 포르투갈계 주민은 강간범들을 두둔하기 시작했다. 피해 여성이 술집에 들어와서 술에 취해 흐느적거리며 헤픈 웃음을 짓는 행동 자체가 성범죄를 유도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설사 성폭행을 당했다고 할지라도 동정할 여지가 전혀 없다는 게 그들의 논리였으나, 그 이면에는 가해자들이 바로 포르투갈계 출신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이러한 인종적 갈등을 전혀 언급하지 않고, 가해자들을 단지 백인으로 설정하였다
--- 참고한 글(문서)
Sue Coe and the Press: Speaking Out, Judith Brody, <<FlashPoint>>, Spring 1998, Web Issue 2
--- 수 코우에 대해서 보다 알고 싶을 때에는
http://www.graphicwitness.org/coe/enter.htm
http://www.gseart.com/coe.html
--- 비상업적 블로그이며, 위에 사용된 이미지들은 수 코우의 작품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서 사용한 것입니다. 하지만 저작권을 득하지 않았으므로, 저작권자의 요구가 있을 경우 바로 삭제할 것임을 알립니다.
이경의 교수님 홈페이지: http://www.moliere.pe.kr/
1. Biographie
http://www.ionesco.org/livres.html
http://www.alalettre.com/ionesco-bio.htm
http://www.ionesco.org/vie.html
http://cineature.lasecte.com/litterature/ionesco.html
2. Oeuvres
- La Leçon : http://www.lettres.net/livre/lecon.htm
http://www.lclark.edu/~klaus/Ionesco_leconfr.htm
- La Cantatrice chauve : http://www.ionesco.org/cantatrice.html
http://msql.passion-theatre.org/spectacles/pagesspectacles/FICHE_1780.html
http://tetue.free.fr/kulturzera/livres/cantatrice.html
http://www.users.drew.edu/mpierett/fren104/scarbone/IONESCO.htm
- Rhinocéros : http://www.revue-texto.net/Inedits/Mezaille_Etudier/rhino.html
http://www3.ac-clermont.fr/etabliss/stmamet/_private/personnels/rhino.htm
http://www.bibliopoche.com/fiche_livre.php?n=15190
- Le Roi se meurt : http://www.lyc-lamour.ac-montpellier.fr/discip/lettres/textes/mort/ionesco.htm
- Victimes du devoir : http://www.parutions.com/pages/1-15-162-387.html
- Macbett : http://msql.passion-theatre.org/spectacles/pagesspectacles/FICHE_1299.html
3. Dossiers
http://www.alalettre.com/ionesco-intro.htm
http://www.artotal.com/lieux/ionesco.htm
http://www.ionesco.de/findex.htm
http://enkiea.free.fr/Lettres/ionesco.html
http://www.invino.ca/Ionesco.html
http://www.france.diplomatie.fr/label_france/FRANCE/LETTRES/theatre/theatre.html
http://www.proverbes-citations.com/ionesco.htm
4. Liens
http://www.alalettre.com/Ionesco-links.htm
프랑스 로코코 화가 장 밥티스트 그뢰즈의 작품이다. 한 마디로 매력적이다. 매혹의 로코코란 저런 것이다. 화사한 색과 우울한 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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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덧붙이자면, 그뢰즈는 두 개의 로코코 - 귀족의 로코코와 부르조아지의 로코코 - 사이에서 부르조아의 미덕을 표현했던 화가였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그뢰즈, 샤르댕 같은 화가들을 로코코로 포함시키기는 것에 다소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런데 위 작품을 보라. 로코코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가. 몰락해가는 귀족과 상승하는 부르조아지가 바라보았던 아름다움의 세계는 동일했던 것이 아닐까.
영혼을 위한 음식, 이미지 #2
Food for the Spirit Image #2
1971, gelatin silver print, 45.72*40.64cm
아드리안 파이퍼 Adrian Piper
뉴욕 할렘에서 태어난 아드리안 파이퍼는 1974년 뉴욕 시립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1981년 하버드 대학교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0년대 초반, 파이퍼는 임마뉴엘 칸트의 철학서적들, 특히 마음, 정신 그리고 육체의 분리에 관한 숙고에 몰두했다. 파이퍼는 초기 사진에서 주재료로써 그녀 자신의 육체를 사용하고 있다.
여러 대학에서 철학을 강의했던 파이퍼는 그녀 자신의 철학적 신념에 근거한 방법으로 거울을 통한 나체상태의 다양한 단계 촬영에 착수한다. 파이퍼는 <영적 음식 이미지> 연작은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의 문구를 되풀이 하는 녹음된 그녀의 목소리와 거울 속의 자신을 찍은 개념예술 작품이다. 매우 낮은 조명은 그녀의 형체를 안 보이게 하고, 그녀를 둘러싼 그림자 속으로 분해되게 한다. 거울 속의 그녀를 찍은 사진과 그녀의 녹음된 목소리는 의식이 흐르는 순간을 재생함으로써 그녀의 존재를 확인하게 한다. 14장의 연작을 제작하는 동안 칸트의 유명한 금욕주의를 재현하면서 그녀는 단식을 하고, 요가를 하면서 사회적으로 자신을 고립시켰다.
- 전시도록에서 인용함.
Philip-Lorca diCorcia, W. September 1997, #3, 1997. Fujicolor Crystal Archive print. 122 x 152,5 cm.
오래된 미술 잡지를 뒤지다가 2000년대에 기대되는 작가의 한 명으로
Philip-Lorca diCorcia를 외국의 어느 큐레이터가 추천한 기사를 보게 되었다.
여기 올린 이미지의 상태가 좋지 않아, 실제 사진이 주는
'극적인 고독감'을 느끼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 작가의 다른 사진들이 다 이런 류는 아니다.
그의 사진들 중 일부는 마음에 들고 일부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1793년 12월 7일 대서양 연안의 Vendee에서 왕당파 당원들에 의해 살해당한 13살의 소년 '바라'. 고전적이기 보다는 낭만적으로 보이며 소년이라기 보다는 소녀의 모습처럼 보이는 이 작품은 자끄 루이 다비드에 의해 그려졌다고 하기엔 그 전의 작품이나 그 후의 작품과는 판이하게 다른 양식을 보여준다. 이 작품 속에서는 신고전주의 양식에서 보여지는 바의, 확신에 찬 구도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의문은 이 작품이 그려지게 된 목적을 떠올린다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자끄 루이 다비드는 '혁명 정신'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이 작품을 그렸으며 이 작품을 보는 이들에게 혁명의 적들인 '왕당파'들에 대한 반감과 증오심을 가지게 만들게 한다. 정치적 예술의 대가로서의 다비드는 이러한 심리적인 효과까지 염두에 두고 이러한 작품을 그린 것이다.
Guido RENI의 작품. 바로크 초기의 작품이다. 성 세실리아는 3세기 초의 동정성녀로, 음악과 음악가들의 수호성인이다. 천사들의 노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고 하며 음악에 뛰어난 재능이 있어 온갖 악기를 다룰 줄 알았으며 오르간을 발명해 하느님께 헌정하였다고 전해진다. 성 세실리아를 상징할 때는 오르간이 주로 사용되며 여러 그림 속에서 악기를 들고 있거나 연주에 귀 기울이는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귀도 레니의 이 작품 속에서는 바이올린을 들고 있다.
'Peter getting out of Nick's pool'
1966
David Hockney (born 1937)
Acrylic on canvas, 152 x 152cm
Peter Schlesinger. 이 때 나이 19살. 이 당시 데이비드 호크니의 애인(lover). 이 때 호크니의 나이 30대 초반. 원래 피터가 알몸으로 차에 기대고 있는 사진을 보고 이 작품을 그린 것이다. 19살 사내의 알몸을 보면서 호크니는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을까, 아니면 '사랑스럽다'는 생각을 했을까.
나는 이 작품을 보면서 '아름다웠던 우리 젊은 날의 그 시절, 그 한 때'를 떠올렸는데, 이런 내 생각이 정확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대부분의 이들이 미국의 팝아트의 영향권 아래에 데이비드 호크니를 위치시키는데, 내가 보기엔 팝아트보다는 미국의 대중문화의 영향권 아래 위치시키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팝아트보다 2차 세계 대전 이후의 미국 팝 문화가 주도한 유행들 속에 데이비드 호크니는 그것을 선망의 눈으로 쳐다보았으니 말이다.
팝아티스트들이 대중 문화 그 자체를 대상화시켜 본질적인 의미를 추구하는 것과는 반대로 데이비드 호크니는 그 대중 문화를 즐기는 첫 번째 세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 여하튼 이 작품, 19살 사내의 사랑스러운 누드, 아, 받아들이기 힘들다.
Andy, Paris 1974 (1974). By David Hockney, British, born in 1937. Collection of George Hecksher. ?David Hockney. Courtesy, Museum of Fine Arts, Boston
앤디 워홀는 요셉 보이스를 만든다. 주술사 요셉 보이스를 스크린프린팅했다는 게 묘한 느낌을 자아내게 한다. 실은 앤디 워홀에 의한 것이라기 보다는 요셉 보이스의 예술이 가지고 있는 독창성에서 기인된 어떤 분위기가 이 스크린프린팅 작품 속에 녹아 있고 이로 인해 앤디 워홀의 다른 스크린프린팅 작품과는 다른 느낌을 보는 이들에게 선사한다.
Joseph Beuys
Medium : Screenprint with diamond dust on Black Arches paper.
Year 1980
Size 44" x 30"
앤디 워홀에 대한 노트
- 실물 이미지(사진)의 복제와 이의 반복은 유일성(아우라)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 유일성에 대한 환기 작용을 하고 있으며 실물에 대한 유일성을 강화하고 있음.
- 실물에 대한 유일성에 대한 강화. 이는 실물 그 자체에 대한 본질적인 의문을 표시함과 동시에 일어남.
- 보이는 물질 존재와 보이는 것 이면에 숨겨져 있는 어떤 존재의 상관 관계에 대한 현대적 질문을 던짐. 그리고 이를 자신의 삶으로 구현해냄.
Her multimedia work, consisting largely of models, focuses on the tensions between perception, space and subjectivity in the post-modern age.
Kiss 7, 2005,
plexiglass sculpture, 18" x 24" x 6 1/2"
1968년 광주에서 태어난 그녀는 현재 LA에서 작업 중이다. 그녀의 관심사는 공간, 그 공간에 대한 지각, 그리고 미래적 공간의 재현에 있는 듯 싶다. 썩 관심 가는 예술가는 아니다. 얼마 전에 구입한 Art Now에 등장한 유일한 한국계 예술가라는 점이 나의 시선을 끌었을 뿐이다.
Abazzaba, 2004. Plexiglas, acrylic platform, fluorescent lights.68 (white & yellow) Plexiglas models2 acrylic platforms: 40X40X7-1/2 inches each (101 x 101 x 19cm)2, power strips & 4, fluorescent lightsDimensions variable Installation View, 2004
다분히 건축적이며 기하학적이고 공간과 그 공간의 지각, 변화에 몰두하는 경향을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몰두가 무엇을 뜻하는가에 대해 의아하다. 왜냐면 우리의 시대는 공간의 붕괴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며 그 붕괴를 어떻게 재현하고 받아들이는가가 예술가들의 몫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녀의 말. "I have been interested in what I refer to as 'Futuristic Ruins', how Hollywood has rendered futuristic cityscapes in science fiction films'
어쩌면 그녀의 이러한 작업들은 실제 우리의 삶 보다는 대중 문화들이 가지는 세계에 대한 공상적 이해에 바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그녀는 실제의 세계가 아닌 자신이 바라는 어떤 세계를 구현해내고 있는 것일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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