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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예술의 우주/예술가 +82






리오데자네이루의 어느 아파트 위에 설치된 높이뛰기 선수의 모습. 전형적인 프로퍼간다(propaganda)이지만, 보는 이의 시선을 잡아끄는 건 작품 자체가 가지는 완성도 때문일 게다. 프랑스 예술가인 JR은 이미 이 분야에선 세계적인 명성을 지녔다.  


올해 봄, 그의 장기인 눈속임으로 파리 루브르 박물관을 이렇게 만들었다. 루브르 광장 앞 피라미드에 아래와 같이 작업한 것이다. 그의 의도는 분명했다. 1989년 미국인 건축가 I.M.페이에 의해 만들어진 투명 피라미드는 17세기 지금의 모습으로 재건축된 루브르 궁와 묘한 대비를 이루면서 근대와 대비되는 현대의 정신을 보여준다고 할까. JR는 이 투명 피라미드를 살짝 지우면서, 다시 이 유리와 철로 이루어진 피라미드에 담긴 어떤 태도를 되새기길 원하는 것이다. 






이런 작품만 있는 건 아니다. 아래 작품은 리오의 어느 슬럼가에 그려진 벽화들이다. 



28 Millimeters, Women Are Heroes

Action dans la Favela Morro da Providência, Favela de Jour, Rio de Janeiro, Brésil, 2008

(출처: http://www.jr-art.net/)



예술 작품이 이 정도 규모가 되기 위해선 다양한 측면에서의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지역 주민의 지원은 그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최근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정체불명의 꽃, 나무, 물고기 등 벽화만 그려대는 한국의 모습과 대비를 이룬다고 할까.


JR의 작업은 공공미술이라기 보다는 개인 예술가의 거리 미술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겠지만, 어차피 지원금을 받아 진행하는 공공미술이라면, 좀 더 제대로 접근해서 근사한 작품으로 만들면 안 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참고로 위 작품이 그려진 리오데자네이루의 파베라스(Favelas) 지역은 리오에서 가장 유명한 슬럼가 중 하나다. 이 지역에 '여성들은 영웅들이다'라는 공공미술은! 



출처: http://www.thisiscolossal.com/2016/08/jr-installs-giant-athletes-interacting-with-the-city-of-rio/ 



이번 리오 올림픽을 위해 그가 만든 작품도 정치적 예술(프로퍼간다)의 전형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실제 리오데자네이루에 가서 저 높이뛰기 선수를 본다면, 얼마나 대단할까. 역동적인 모습이 자아내는 스펙터클은. 



* JR 홈페이지 : http://www.jr-ar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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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Knight, Death and Devil  기사, 죽음 그리고 악마

Albrecht Dürer 알브레히트 뒤러 

1513, Copperplate 동판화

 

 

기사 옆으로 죽음과 악마가 그가 가는 길을 방해한다. 이 명료한 동판화는 르네상스 시기의 신념을 보여준다고 할까. 인간이 가는 길을 과거의 유물들 - 죽음, 악마 - 이 훼방 놓으며 가지 못하게 한다. 알브레히트 뒤러는 종종 후기 고딕적 양식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의 사상 만큼은 근대적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기사는 도상학적으로 진리를 수호하는 자로 해석된다. 과거 종교인이 가졌던 역할을 이제 기사가 가지게 된 것이다. 이 극적인 변화는 르네상스 시기를 문예부흥의 놀랍고도 아름다운 시기가 아니라, 급속하게 변화하는 혼돈기였음을 짐작케한다. 결국 고딕적 신앙이 뒤로 물러나고 기하학적 이성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본격적으로 서구의 근대(modern)이 시작되고, 그 이후 거친 풍랑 속에서도 이성을 버리지 않는다. 


거의 1세기 후에야 철학에서 근대적 이성을 이야기하게 된다는 점을 비추어 볼 때, 예술에서의 이러한 선취(先取)는 놀랍기만 하다. 이는 예술의 역사를 통해 자주 있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내가 예술사에 빠진 이유이기도 하지만, 동시대 예술을 유심히 살펴보다 보면, 앞으로 펼쳐질 세계를 짐작하고 예견할 수 있다. 


까뮈의 <이방인>이 나왔을 때, 그 충격은 대단했다. 심지어 프랑스에선 이 소설을 도덕 교과서로 읽히곤 한다. 이유없는 살인은 용서될 수 없다고. 하지만 우리는 이유없는 살인을 너무 자주 목격하고 있지 않은가. 아마 까뮈도 자신의 '뫼르소'가 그토록 많이, 현실 속에 등장하리라 생각하지 않았을 테지만. 


양식(style) 상, 뒤러의 모든 작품들이 근대적이진 않다. 그는 양식적으로는 후기 고딕과 하이 르네상스(르네상스 고전주의) 사이를 오간다. 하지만 그가 외부 세계와 마주했던 태도는 르네상스 시기 그 어느 예술가들보다도 근대적이고 이성적이었다. 뒤러가 끊임없이 연구되며 후대의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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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는 도중, 베로니카는 피와 땀으로 얼룩진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을 닦아 준다. 그리고 그 수건 위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이 새겨진다. 아래 작품은 그 기적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전형적인 이콘화처럼 보이는 이 작품은 엘 그레코가 비잔틴의 이콘화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았음을 알게 해준다. 그리스 태생의 엘 그레코는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르네상스 후기(매너리즘)의 화풍을 배웠고 이후 스페인 톨레도로 가서 화가로서의 명성을 쌓는다. 




엘 그레코, <<수건을 든 베로니카>>, 캔버스에 유채, 84 cm * 91 cm, 1580년경, 톨레도, 산타쿠루즈 성당



슬픔에 젖은 베로니카가 수건을 펼쳐 보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을 보여줄 때, 어떤 비장미까지 느끼게 하는 이 작품은 수건과 뒤 배경 사이의 묘한 대비가 인상적이다. 



실제로 보면 아래와 같은 느낌이지 않을까 싶어, 사진 한 장을 더 올린다. 무표정해보이는 예수 그리스도와 슬픔을 억누르는 듯한 베로니카, 두 손 사이의 수건, 주름진 천 위로 드러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 


16세기 후반 최고의 예술가로 추앙받는 엘 그레코. 이 작품은 보면 볼 수록 빨려든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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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ww.metmuseum.org/art/collection/search/488458 



잠을 자고 있는 두상이라는 주제에 대해 콘스탄틴 브랑쿠시는 거의 20년 이상 몰두했다. '잠자는 뮤즈'를 구상하고 작업할 때, 그는 근본적인 형태와 단순화된 세부를 위해 개념들(ideas)을 줄여나갔으며, 이를 위해 극적인 요소와 디테일을 피했다. 그는 관성으로 인해 무겁게 내려앉은, 그러면서 평화롭게 쉬는, 바닥에 엎드린 머리의 모습으로, 나른함(languor)의 본질을 만들었다. 

-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설명을 번역함. 


 

*     * 


저런 잠이라면, 영원할 것만 같다. 1910년, 브랑쿠시는 왜 저런 잠을 꿈꾸었을까. 잠은 죽음과 맞닿아있고 꿈과 연결된다. 삶은 멈추고 운동하는 것들은 모두 사라진다. 네 태양은 지고 내 어둠은 마음 속으로 들어온다. 사랑은 잠시 숨을 고르고 떠나간 연인은 가던 길을 멈추고 뒤를 돌아다본다. 어쩌면서 우리의 모든 착오, 실수, 잘못, 그리고 실패한 사랑까지도 저 무거운 잠은 가지고 갈 것이다. 가지고 가선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모든 것들이 단순화되면서 명료해지고 매끈해지면서 상처는 사라진다. 


그것은 어떤 종결이면서 시작이다. 우리를 아프게 했던 드라마는 흐릿해지고 그 날의 고통은 부드러운 곡선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브랑쿠시의 저 우아한 모더니즘이 향하는 위안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소란스러운 시절이 가고 고요하고 안정된 평화가 온 것이다. 적어도 저 잠자는 뮤즈 옆에서라면, 그런 평화를 꿈꿀 수 있을 것이다. 





출처: http://www.eroiiromanieichic.ro/constantin-brancusi-i/ 

잠자는 뮤즈의 실제 모델인 Baroness Rene Irana Franch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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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리 위노그랜드Garry Winogrand(1928 ~ 1984) 




현대 도시의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장르가 있다면, 그건 사진일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가장 적절한 작가가 있다면 바로 게리 위노그랜드가 될 터. 





예술에서의 모더니즘Modernism은 도시와 함께 시작한다. 보들레르는 근대 도시 파리를 걸어다니며 모더니티를 이야기하고 익명성에 주목했다. 그 도시의 산책자는 파리를 지나 뉴욕에 와 자리잡는다. 





거대 도시에서 공중전화 박스 안에서 전화를 거는 사소한 일상도 드라마가 되고 어떤 사건의 시작이거나 종결, 또는 클라이맥스가 되기도 한다. 모든 것들이 의미를 가지며 의미들 속에서 한 없이 가벼워진다. 거리에 나서면 발가벗겨지는 기분과 함께 그 누구도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는 희열에 들뜬다. 





길을 가다 아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지만, 그건 매우 드문 일이다. 정해진 길로만 다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도시에서는 모든 것들이 모험이 되고 심지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그래서 도시적 삶이 익숙한 당신은 천성적으로 모험가이면서 탐험가다. 

 



이제 안전한 사랑이란 없다. 도시에서는 사랑마저도 모험이며 탐험이 되고, 사랑을 찾기 위해 도시에서의 밤은 끝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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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혜규. 2010년 아트선재센터의 전시는 꽤 충격적이었다. 즉물적이면서 날카로운 느낌을 자아내면서 동시에 토테미즘적인 분위기는 나에겐 매우 낯선 작품들이었다. 그 세계는 근대적 현실에 기초하고 있으나 근대적 삶을 도려내고 근대의 맨 얼굴을 드러내며 파괴한다. 그리고 그 세계의 복원을 주술적 방식으로 모색하고 있다고 할까. 이번 전시도 이러한 경향을 연장선상에 있다고 해야할 것이다. 



하지만 올해 맡은 프로젝트로 인해 나는 거의 전시를 보지 못했고, 얼마 전 리움에 열린 양혜규의 개인전도 가지 못했다. 뒤늦은 후회를 만회하고자, 양혜규의 몇몇 문장과 이미지를 저장한다. 


*   * 


"몇 년 동안 블라인드에 빠져있었다. 블라인드 사이로 조명이 진하게 지나가는 날카로운 선은 성적인 쾌감에 비교할 수 있을 만큼 멋있게 보였다. 솔 르윗의 '세 개의 탑이 있는 구조물'은 원래 선으로만 이루어진 작품이었는데, 그것을 모두 블라인드 면으로 대체해서 표현해 봤다. 그러니까 원래 작품이 가지고 있던 여러 속성이 달라졌다. 원본을 뒤집고 새롭게 해석한다는 의미다. 사실 블라인드 자체는 미약한 존재다. 반면 성(城)은 공동체의 구역을 배타적으로 구획하는 견고한 것이다. 허약한 블라인드로 된 '성채'는 이러한 배타적인 '공동체에 도전'하기 위한 작품이다." 

- 양혜규, 2015년 4월, <중앙선데이>와의 인터뷰 중에서. 








Sonic Crescent Moon - Medium Regular #4

2014

Steel frame, metal grid, powder coating, nickel plated bells, metal rings

173 x 54 x 54 cm (H x W x D), 23.2 kg






Series of Vulnerable Arrangements - Voice and Wind, 2009 




Haegue Yang, Shooting the Elephant 象 Thinking the Elephant, installation view. Courtesy Leeum, Samsung Museum of Art.




Haegue Yang, Yearning Melancholy Red, 2008 



"빛, 움직임, 소리는 공간의 역학 안에 있으면서 '추상'을 조명해주고, 단 하나의 이미지만을 시사하는 관습적인 서사를 잠재운다. 나는 최근 들어 다양한 기능을 부여받은 무빙라이트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손을 만지는 것처럼, 빛은 천천히 공간을 가로질러 움직이며 다양한 표면을 어루만진다. 나는 이를 투명하지만 실재하는 공기와 관계가 있다고 본다. 조명은 또한 그림자를 만드는 기능적인 기계이다.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무빙라이트의 빛 세례는 다양한 길이와 선명도로 그림자를 드리우며, 자신의 개별적인 시점에서 바라보는 관찰자에 대한 관념을 담고 있다. 빛은 자율적인 형식이다. 물리적 경계를 갖지 않기 때문이다. 설치에는 첨단 극장 조명 장비의 움직이는 빛 세례와 정적인 적외선 히터의 붉은 광열 등 다양한 조명이 사용되었다. 둘 다 광원이면서 서로 다른 효과와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설치에는 각 히터는 선풍기와 짝지어져 있어 서로 상반되는 힘을 가한다. 짝지은 두 장비 사이에는 서로를 향한 일종의 열망과도 같은 대화, 바람과 열이 서로를 맹렬하게 부정하는 역설적인 재앙이 발생한다. 서로를 파멸시킬 것처럼 작용하며 이는 나에게 사랑과 혁명의 법칙을 증거한다. 그들의 존재는 이러한 가능한 파괴에서 온 것이며 강점적 에너지를 남용한다. 나는 이를 전복적인 행위로 본다. 이는 절박하고, 근본적으로 비능률적이다." 

- 양혜규, 2008년, 래드캣미술관과의 인터뷰 중에서. (<셋을 위한 목소리> 에서 재인용)




셋을 위한 목소리 - 10점
양혜규 지음/현실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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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미술잡지를 보다, 오랜만에 선무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주말 사무실 출근 전 건성건성 읽곤 집에 와서 그의 전시 기사들을 챙기며 메모해둔다. 의외로 선무에 대한 글이 검색되지 않는다. 국내에서보다 국외에서 더 주목받는 듯하다. 하지만 그의 삶이 가지는 드라마틱한 요소, 30년 북에서 살다 의도하지 않은 상태에서 탈북하여 한국에서 들어온 사내, 새터민 화가, 홍대 미대 졸업, 그리고 이젠 두 아이의 아빠. 그런 그가 보여주는 흥미로운 작품 세계는 충분히 주목받을 만하고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선무, 들어라!, 캔버스에 유채, 116×91cm, 2009



특히 그가 배웠던 방식의 작품 스타일(일명 주체미술!)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명확한 메시지를 무겁지 않은 화법으로 드러낸다는 점은 보는 이들을 자연스럽게 분단환경을 환기시키면서 작가의 의도를 분명히 전달한다. 



선무, 열다, 캔버스에 유채, 72×60cm, 2009



선무, 선무의 노래, C 프린트, 2014


선무, 창밖의 낯익음, C 프린트, 2014



최근의 작품들에서 그가 적극적으로 서구 현대 미술의 방식을 받아들이고 있음을 알게 해준다. 



선무, 엄마 여기 서울이야, 캔버스에 유채, 91×72cm, 2010



몇몇 작품들은 아프고 슬픈 분단 현실을 드러내지만, 우리들은 그걸 외면하고 있는 지도 모를 일이다. 최근의 한국 예술가들 중에 누가 분단 현실에 대해서 탐구하고 조명하면서 이야기하는가? 비극적인 현실에 대해서 너무 둔감해진 건 아닐까. 이제 분단예술 따윈 없고, 이미 과거형이 되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선무의 존재는 더욱 두드러진다. 



선무, 조선의예수2, 캔버스에 유채, 91×91cm, 2010



한국현대미술에서 선무는 매우 중요한 작가이다. 그는 미래형이다. 탈북자 가족들 중에서 소설가나 시인이 나올 것이며 다문화가정이라는 배경을 가진 예술가들이 나와, 한국 사회의 현재를 조명하고 비판하게 될 것이다. 나는 정말 그것이 기대된다. 우리에게 참으로 많이 아픈 이야기를 들려줄 테지만, 그러는 동안 한국 사회는 성장하게 될 것이다. 



선무, 꽃보라 Piece of flower, 캔버스에 유채, 190×130cm, 2013



* 선무 / SUNMU / 線無   http://sunmu.kr

* 인터뷰기사 -  [RFA 초대석] 뉴욕에서 개인전 연 탈북화가 선무 

(선무의 인터뷰 기사 실린 '자유아시아방송(영어: Radio Free Asia, 약칭 RFA)은 1994년 미국 의회가 입법한 국제 방송법(International Broadcasting Act)에 의해, 1996년에 미국 의회의 출자에 의해 설립된 국제 방송국'이다. 홈페이지 상단의 언어들을 클릭하면, 해당 언어별로 다른 컨텐츠로 나온다.미국 연방 정부 기금에서 지원을 받아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웹사이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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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두, '영웅', 1998.



서경식 교수의 <<나의 조선미술 순례>>를 읽고 있다. 여기에 실린 정연두와의 인터뷰는, 그동안 무심코 보아온 그의 작품들에 대해 다시 생각케 했다. 정연두의 스쳐가는 이미지들 사이로, 그의 작가적 개입과 실천을 보지 못한 셈이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오니 분당의 풍경이 완전히 변해 있었어요. 같은 규격의 아파트가 장대하게 늘어서서 마치 분당이라는 지명이 사라지고 아파트 동호수만 보이는 느낌이었죠. 어느 날 거기서 교통사고를 목격했어요. 작은 오토바이가 충돌해서 운전하던 아이가 다쳤습니다. 소년은 아픔을 참으며 달려온 사람들에게 괜찮아요, 괜찮아요 하고 대답했어요. 짜장면을 배달하러 가는 참이었나 봐요. 그 후에 그 아이가 입원한 병원을 찾아갔고 회복한 다음에 이 작품을 찍었습니다." - 정연두 

(서경식, <<나의 조선미술 순례>>, 반비, 115쪽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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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ersimmon Tree(감나무)

Sakai Hoitsu 

(Japanese, 1761-1828)

Period: Edo period (1615-1868)

Date: 1816

Culture: Japan

Medium: Two-panel folding screen; ink and color on paper

Dimensions: Image: 56 9/16 x 56 5/8 in. (143.7 x 143.8 cm) Overall: 65 1/4 x 64 in. (165.7 x 162.6 cm)

(c)Rogers Fund, 1957. Metropolitan Museum. 




사카이 호이츠(Sakai Hoitsu)의 작품이다. 타라시코미(Tarashikomi)기법으로 제작된 작품으로 일본적이나, 서구적인 태도가 느껴진다. 19세기 초, 일본에는 이미 서구의 문물이 많이 유입된 상태인 듯 싶다. 사카이 호이츠는 유복한 사무라이 집안에서 태어나 나중에 출가하여 스님이 된다. 타라시코미 기법이 어떤 것인가 검색해 보았더니, 한글로는 푸하, 네일아트가 뜬다. 이는 구글도 마찬가지여서, 타라시코미 기법을 알기 위해선 영어로 검색해야 된다. 한글로 온라인 상에서 구할 수 있는 정보는 종종 천박하기 이를 데 없다. 


타라시코미는 일본 회화의 기법 중 하나로, 첫 채색이 마른 후에 두 번째 채색을 하는 기법이다. 두 번째 채색을 할 때 잔 물결이나 꽃잎 등을 흠뻑 젖게(dripping) 표현하는 게 특징이다. 위 작품에선 감잎이나 감에서 이 기법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얼마 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페이스북에 올라온 작품인데, 내 마음에 들었다. 한 쪽을 여백으로 처리하고, 감나무 하나, 그런데 이 감나무도 나무만 남게 될 암시가 가득한 이 작품은 마치 서양의 바니타스(Vanitas)화처럼, 쓸쓸하게 지쳐갈, 외롭게 죽어갈, 그러나 언제가 될 지 모르지만 오게 될 봄을 기다리는 느낌이랄까. 벤야민의 페허 같았다. 


우리는 종종 끝없는 절망이나 견딜 수 없는 우울, 감당하기 힘든 슬픔에 빠지지만, 결국 살게 되고 살게 되는 원천이 이런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떤 심연 속에 빠졌기 때문임을 알게 된다. 그러니 언젠간 봄이 올 것이고 그 때를 위해 고통스럽더라도 현재에 충실하고 오게 될 미래에 대해 생각하자. 어차피 인생은 힘들고 외롭고 쓸쓸한 것이니 말이다. 





참고. 

1) 타라시코미 : http://en.wikipedia.org/wiki/Tarashikomi 

2) 일본 에도 시대의 painting 작품들만 모아 한국에서 전시하면 어떨까? 꽤 흥미로울 것같다. 혹시 진행하게 된다면 내가 가서 자원봉사하겠다. 전시설명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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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Hockney Smoking

Photographer Juergen Teller



유르겐 텔러의 사진. 묘한 이 느낌은 ... 뭐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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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 보이스 Joseph Beuys (1921 - 1986) 





요셉 보이스를 조금 안다고 여겼는데, 나는 전혀 그를 모르고 있었다. 솔직히 지금도 잘 모르겠다. 그의 작품을 실제로 분명히 봤을텐데, 그 기억은 나지 않고 작품 스틸 이미지만 머리에 맴돌 뿐이다.  



Joseph Beuys 1976 

출처: http://uk.phaidon.com/agenda/art/articles/2014/march/03/why-joseph-beuys-and-his-dead-hare-live-on/



그의 예술 세계는 개인적 경험으로부터 시작해, 치유와 회복, 특정 매체에 대한 집중, 은유, 알레고리, 예술과 삶, 과거에 대한 반성과 미래에 대한 진취적 모험에까지 이른다. 심지어 그는 실제 정치 활동까지 한다. 이런 다양성 밑에는 일관된 주제와 표현 방식이 있는데, 실은 이런 일관성이 그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 



How to Explain Pictures to a Dead Hare (죽은 토끼에게 그림을 어떻게 설명할까)

- Performance on 26 November 1965 at the Galerie Schmela(뒤셀도르프)


 

"For me the Hare is a symbol of incarnation, which the Hare really enacts-something a human can only do in imagination. It burrows, building itself a home in the earth. Thus it incarnates itself in the earth: that alone is important. So it seems to me. Honey on my head of course has to do with thought. While humans do not have the ability to produce honey, they do have the ability to think, to produce ideas. Therefore the state and morbid nature of thought is once again made living. Honey is an undoubtedly living substance-human thoughts can also become alive. On the other hand intellectualizing can be deadly to thought: one can talk one's mind to death in politics or in academia." - Joseph Beuys

(나에게 토끼는 육신화의 상징이죠. 이 토끼는 사람이 단지 상상 속에서만 할 수 있는 어떤 것을 진짜 보여주고 있어요. 땅을 파서 그 건축물 자체가 집인 곳을 이 지구에 만들죠. 이렇게 해서 지구에 그 스스로 구체화시킵니다: 그건 유일하게 중요한 것입니다. 적어도 나에겐 그렇게 보여요. 물론 내 머리 위의 꿀은 생각과 관련이 있죠. 사람들은 꿀을 생산할 능력을 가지지 못했지만, 그들은 생각할 수 있고 개념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사상의 오래되고 병적인 본성은 다시 한 번 살아있는 것이 됩니다. 꿀은 의심할 여지 없이 인류의 사상을 또다시 살게 만드는, 살아있는 실체예요. 반면에 합리화는 사상에 있어서 치명적인 것이예요. 그것은 정치나 학문에 있어서 자신의 마음을 죽음과 이야기하게 만들 겁니다.)   

(* 번역해보았는데, 많이 다듬어야 한글로 뜻이 통할 것같은데, 능력 부족이군요. 양해를.) 



작품 이해를 돕기 위해 위 문장을 옮겨왔으나, 작품 이해를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 퍼포먼스는 요셉 보이스의 대표적인 작품 중의 하나이지만, 받아들이긴 쉽지 않다. 다른 작품들도 비슷한데, 그가 기대고 있는 세계가 북유럽, 켈트적 전통에 기반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즉 우리와는 정서적으로 맞지 않다고 해야 하나. 


주술적이거나 제의적이라는 특징은 요셉 보이스 뿐만 아니라 현대 예술가들에게 대부분 해당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특히 요셉 보이스에게 해당된다. 죽은 토끼와 예술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는 다시 되살아남을 느낀다. 즉 이미 죽어야만 다시 되살아날 수 있는 기회를 붙잡을 수 있음을 반어적으로 표현한다. 그가 죽다 살아났던 것처럼, 새로운 세계는 죽음을 거쳐야만 맞이할 수 있는 어떤 것이다. 말하는 동안 그의 숨결은 죽은 토끼를 거치고 그가 퍼포먼스를 한 유리 부스 안에는 죽음을 거쳐온 생기(生氣)로 넘친다. 


실제 그의 퍼포먼스를 본다면 어떤 느낌일까? 짧은 영상이지만, 한 번 보자. 

 




요셉 보이스의 펠트와 지방에 대한 천착에 대해선 모르는 이가 없을 것이다. 이는 전적으로 개인적인 경험 - 진위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 에 의해 치유와 회복의 상징이 되었다. (참고: 요셉 보이스 한글 위키피디아 설명) 그리고 그의 단골 매체가 되었고 일종의 집착처럼 느껴질 정도다. 



Joseph Beuys, The Pack 1969

Staaliche Museen Kassel, Neue Galerie. 

(c) DACS, 2005

출처: http://www.tate.org.uk/whats-on/tate-modern/exhibition/joseph-beuys-actions-vitrines-environments 



지방을 펠트천으로 감싸고 마치 개가 끄는 눈썰매 모습처럼 낡은 폭스바겐 밴에 연결된 이 작품은 일종의 비상 사태를 대비하기 위한 물건들처럼 보인다. 즉 상처입고 죽어가는 누군가가 있다면 썰매에 있는 지방과 펠트천으로 치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 이런 상징과 은유는 ..., 역시 낯설다. (ㅡ_ㅡ)


<7,000 떡갈나무> 프로젝트는 그의 컨셉 - '사회적 조각, 혹은 예술작품으로서의 사회(social sculpture - society as artwork)'를 단적으로 표현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Some of the 7,000 Oaks planted between 1982 and 1987 for Documenta 7 (1982)

출처: http://en.wikipedia.org/wiki/Social_sculpture



Joseph Beuys, 7000 Oaks. Located on West 22nd Street between 10th and 11th Avenues. 

(The 7000 Oaks project began in 1982 with a planting of 7,000 trees, each accompanied by basalt stone columns, through the city of Kassel, Germany. Dia Art Foundation continued this project with plantings in Chelsea in 1988 and 1996.)

출처: http://www.times-arrow.com/joseph-beuys-7000-oaks/ 



"나는 7,000그루의 떡갈나무를 심을 것이다. 7,000그루의 떡갈나무 옆에는 각각 한 개의 돌들이 세워질 것이며, 이로써 최소한 800년을 생존한다고 알려진 떡갈나무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역사적인 순간은 지속될 것이다. 그리고 지금이야말로 노동과 테크놀로지의 개념, 물질주의, 정치적 이데올로기, 산업화, 자본주의 혹은 공산주의란 미명 아래 인간이 취해온 폭력적인 황폐화과정에서 벗어나 올바른 재생의 과정, 다시 말해, 자연 뿐 아니라 사회생태학적인 관점에서 생명을 부여하는 소생의 과정인 '사회적 유기체'를 이끌어낼 때이다. 이를 위해 나는 돌을 필요로 한다." - 요셉 보이스 

출처: 송혜영, <요셉보이스의 <20세기 종말>>(2009. 영남대학교)에서 재인용



생명과 돌이 지니는 영속성, 그리고 이를 직접 땅에 심는 행위(action)으로 시작되고 시간 속에서 지속되는 예술작품. 요셉 보이스는 우리 모두가 예술가이며, 예술을 통해 사회를 변혁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Joseph Beuys

The End of the Twentieth Century, 1983–5, 

(c) DACS, 2014

출처: http://www.tate.org.uk/art/artworks/beuys-the-end-of-the-twentieth-century-t05855



"이것은 새로운 세상의 각인이 새겨진 낡은 세상을 의미합니다. 마치 석기 시대의 식물처럼 생겨난 이 마개를 보십시오. 나는 현무암 덩어리에서 정성 들여 원추형의 마개를 파내었고, 이 마개가 아프지 않고 따스함을 유지하도록 펠트와 점토로 감싼 후 깊숙이 파여진 원래의 자리에 삽입하였습니다. 마치 현무암 그 자체가 한때 지구내부에서 분출하여 응고되었듯이, 이것은 얼어붙은 돌덩어리에서 무언가 움직이고 솟구치고 살아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요셉 보이스

출처: 송혜영, <요셉보이스의 <20세기 종말>>(2009. 영남대학교)에서 재인용 



그런데 이 사회적 예술이 기반하고 있는 세계는 켈트적 전통, 고대 샤먼의 세계다. 일종의 반 지성주의, 반 인간주의이며, 이 점에서 포스트모더니즘과 그 궤를 같이 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실은 20세기 초반 몇몇 예술가들이 매료당했던 원시적 양식의 지속으로도 볼 수 있다. 이는 미술 양식 뿐만 아니라 연극에서는 제의적 양식으로 표현되었다. 아마 다른 장르에서도 이와 비슷한 경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아우슈비츠 이후 더 이상 서정시를 쓰는 것은 야만이다'고 아도르노가 말했듯이, 차마 말할 수 없는 비극 뒤에서 인간적인 것들은 믿을 수 없는 어떤 것이 된다. 요셉 보이스에게 나타나는 인간적인 것들에 대한 배격은 우리 앞에 놓여진 어떤 죽음을 묵묵히 받아들이고 새로 태어나야 된다는 제의(祭儀)로 양식화된다. 그의 작품들의 상당수는 이러한 알레고리를 밑바탕에 깔고 진행된다.


하지만 역시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그의 화법은 우리와는 전혀 다르다. 그가 서구 미술계에 절대적 영향력을 끼쳤던 것만큼 나에게 호소력 있기를 바라지만, ... 그렇진 못한 듯싶다. 기회가 닿는다면, 다시 한 번 그의 작품을 보고 다시 이 글을 업데이트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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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orge Segal,

Wendy with chin on hand, 1982




잊고 지내던 조지 시걸(George Segal)을 보고 울 뻔 했다, 아라리오뮤지엄, 낮고 어두운 실내 한 구석에 있던. 


이 작품은 아라리오 뮤지엄에 있던 작품이 아니지만, 인터넷에서 구할 수 있었던, 가장 비슷하게 느껴지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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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거친 호소력으로 정치적, 역사적 메시지를 던지는 윌리엄 켄트리지(William Kentridge). 


그는 1955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남아공의 인종차별정책, 아파르타이트(Apartheid)에 반대한 백인 변호사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백인 사회에도 섞이지 못하고, 흑인 사회에서도 섞이지 못하는 경계에서 시작한 셈이다. 


그는 경계의 자유(혹은 고독, 혼란) 속에서 눈 앞에 보이는 현실에 대해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그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짓누르는 근대 유럽의 세계관에 대해 본격적인 저항을 한다. 


"자신을 하나의 완성되고 균일한 한 구성체, 자아로 인정하는 서양적 논리는 만들어진 환상임을 표현하고 싶었다." - 윌리엄 켄트리지

(출처: http://www.gaeksuk.com/atl/view.asp?a_id=563)


작년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 소개된 윌리엄 캔트리지의 <Felix in Exile>이라는 애니메이션이다.



윌리엄 켄트리지(William Kentridge), <추방된 펠릭스Felix in Exile>



일반적인 애니메이션과 다르게 거칠고 어색하며 둔탁한 느낌을 주는 켄트리지의 애니메이션. 이 낯선 느낌은 제작 방식의 특수함에서 기인한다. 그는 수십 장의 소묘만을 가지고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하여 애니메이션을 완성한다. 즉 지울 수 없는 어떤 흔적에 집중하고 이를 역사적 차원으로 끌어올려 질문을 던진다. 이런 그의 거친 스타일을 두고 어떤 이들은 케테 콜비츠와 비교하기도 한다. 


"침식과 무성함, 그리고 붕귀 등의 자연 현상으로 인해서 자연풍경이 변형되고, 시간의 흐름과 함께 그 변형된 모습들은 점점 사라져 버린다. 이러한 과정은 지난 날의 일을 잊어버리는 망각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지난 날에 일어난 일의 의미를 되새기고 잊혀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기록, 교육, 미술관, 노래, 그 외의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야만 한다." 

- 윌리엄 켄트리지 (출처: blog.daum.net/iw_sunny/3721689



실은 내가 윌리엄 켄트리지에 대해 이렇게 포스팅을 하게 된 이유는 아래 작품 때문이다. 얼마 전 읽은 미술 잡지에 실린 이 작품 <시간의 거부The Refusal of Time>에 대한 리뷰만으로는 이 작품이 어떤 것인지 감이 오지 않았고, 이 작품을 찾아보았는데, 아! 



윌리엄 켄트리지(William Kentridge), 시간의 거부(The Refusal of Time) 



2012년 카셀도큐멘타에서 전시되었던 이 작품은 실제 전시장의 느낌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는 이 영상만으로도 켄트리지 작품이 가지고 있는 압도적인 기운이 전해오는 듯했다. (2012년 카셀도큐멘타 당시 최고의 찬사를 받기도 했다. 지금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전시되고 있으며, 올해 초에는 일본 쿄토에서 전시되었다. 아, 한국에는 전시될 수 있을까.)


각자의 하늘에 있는 태양이 머리 꼭대기에 위치할 때가 바로 우리가 정오라고 부르는 시간이다. 우리는 하늘의 별들로부터 시간 관념을 빌려 왔으며, 그것을 개개인의 신체 속에 있는 기관의 리듬에 맞추어 인지했다. 심장과 폐와 맥박은 인간을 일종의 숨 쉬는 시계(몸-시간)로 만든다. 

- 윌리엄 켄트리지, <시간의 거부> 도록 중에서. 

(이정연, '시간의 블랙홀 - 윌리엄 켄트리지' 중에서 재인용, 아트인컬쳐 2014년 7월호) 



거창하게 시작된 글이 아닌지라, 간단한 노트 수준에서 끝낼 예정이지만, 윌리엄 켄트리지에 대한 관심을 앞으로도 지속될 것같다. 거의 모든 장르 - 페인팅, 드로잉, 오페라 무대, 조각, 설치, 애니메이션까지 그의 작업 범위 속에 넣은 윌리엄 켄트리지는 현대 예술이란 장르를 뛰어넘어 모든 장르를 한 곳에 몰아놓은 일종의 용광로 같은 것임을, 그리고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시각으로, 어떤 메시지를, 어떤 형식으로 담아낼 것인가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William Kentridge - Shadow Procession

Shanghai Biennale 2000



* 윌리엄 켄트리지 : http://en.wikipedia.org/wiki/William_Kentridge 



2010년 MoMA에서 윌리엄 켄트리지 전시가 열렸는데, 이에 대한 안내 동영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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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과 깨어남 사이의 장소, 의식과 무의식의 접경 지대, 정상적인 구별과 확실한 경계가 와해되어 현실과 상상의 경계선과 대상과 연상의 경계선이 희미해지는 곳" - 빌 비올라, 1994년 




백남준의 어시스턴트로 시작해, 비디오 아트의 새로운 장을 열어보인 빌 비올라Bill Viola. 그의 작품은 의외로 고도의 집중력을 요한다(실은 체력까지도 요하는지도... 갤러리에서 전시된 그의 작품들을 보기 위해선 꽤 많은 시간 서 있어야 했다).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가 비디오라는 매체가 가지는 물질성에 주목한다면(동양적 시선에서 서구적 확대로 나아갔다면), 빌 비올라는 비디오라는 영상이 가지는 추상성에 주목한다(서구적 시선에서 동양적 탐구로 나아간다). 그는 삶과 죽음에 대해 묻고 시간과 사건(혹은 찰라/순간)의 지속성에 대해 탐구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 대부분은 형이상학적이며 압축적이며 반복적이다. 


나는 여기에서 한 번 비디오아트와 영화의 상관관계를 묻고 싶어진다. 실은 빌 비올라의 작업들은 단순하지만 집중적인 서사, 혹은 사건을 압축적으로 담아낸다. 그리고 1-2시간 넘어가는 장편 영화 이상의 감동을 빌 비올라의 작품을 통해 얻는다. 최근 들어 나는 다시 영화를 보기 시작했는데, 과도한 스펙터클과 흥미 위주의 영화들을 보면서 '과연 영화란 예술인가'라고 묻을 수 밖에 없었다. 흥미로운 것은 정반대의 경향을 추구하는 영화들은 극장에서 보기 드물고, 도리어 갤러리에서 상영되는 예술가들의 비디오/영화 작업들에서 보게 되니 말이다. 


하지만 상당수의 평자들이 아직도 영화를 예술이라고 강조할 테고, 이미 아놀드 하우저는 그의 명저,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의 마지막을 '영화'로 끝맺었고, 최근에 읽은 데이비드 호크니는 더 나아가 서사로서의 영화가 아니라, 사진 이미지의 연속으로서의 영화로,  그 매체를 서양미술사의 맥락 속에서 파악해야 된다고 이야기한다. 


여기에서 내 편견을 더한다면, 예술로서의 영화를 이야기할 때, 그것은  극장에서 개봉하는 장편 극영화가 아니라, 갤러리에서 전시되는 비디오 아트, 혹은 필름 아트라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자주 갤러리에서 만나는 영화Film에서 예술로서의 영화가 가지는 가능성과 만난다.


빌 비올라의 작업은 평면 작업이 가지는, 하나의 이미지가 가지는 추상성 위에 이미지의 연속이라는, 일종의 시간-이미지를 덧씌운다. 그의 작업은 정지된 평면과 흐르는 필름의 운동성 사이에 위치한다. 그래서 김홍기는 '슬로모션'에 주목한다.


슬로모션은 운동과 정지 사이의 모호한 상태를 형상화해 새로운 지각의 대상으로 만든다. 비올라는 슬로모션 기법을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해 삶과 죽음, 실재와 가상, 의식의 무의식 등 여러 대립쌍들이 긴장감 있게 공존하는 모호한 공간을 시각해낸다. 이 '사이 공간(space between)'이 강렬한 파토스와 함께 등장할 때, 관객은 세계의 자리와 인간의 운명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시작하게 된다. 

- 김홍기, '사이의 존재론 - 빌 비올라' (아트인컬쳐 2014년 7월호) 중에서


다행히 유튜브에서 몇 개의 작업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요즘 유튜브를 보면 놀랍기만 하다. 클래식 실황 연주 목록도 탁월해졌고, 빌 비올라 작품까지 볼 수 있다니!) 



"비올라는 작품 속에서 관객을 향해 거울을 들어보이고는 완전히 충만한 숭고함의 힘을 보여준다." 

- 리나 아리야 














"튀니지의 사하라 사막의 풍경을 담은 이 작품은 빛과 열이 합작해 낸 초상, 즉 신기루를 보여준다. 사막의 열기는 태양광선을 왜곡시켜 우리로 하여금 존재하지 않는 사물들을 보게 만든다. 나무와 사구는 지면 위에서 부유하고, 산등성이와 건물들은 일렁거리고, 색채와 형태는 아롱거리는 춤사위로 서로 뒤섞인다. 특수한 망원렌즈를 장착한 비디오카메라는 이 비범한 풍경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이렇듯 실재와 가상 사이 공간 속에서 물리적 현실과 심리적 현실은 거리낌 없이 서로 뒤섞이고, 결국 우리는 현실에 대한 지각의 확실성을 의심하게 된다."

- 김홍기, '사이의 존재론 - 빌 비올라' (아트인컬쳐 2014년 7월호) 중에서 







* 이 포스팅은 김홍기의 '사이의 존재론'에 기대어 빌 비올라의 작품들을 기억하고 스크랩하기 위한 것이다. 김홍기의 글에 감사한다. 그의 글을 통해 다시 한 번 나는 빌 비올라를 떠올릴 수 있었고 유튜브에서 빌 비올라를 검색하고 그의 작업들을 다시 되새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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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튀스Balthus의 작품을 본다. 어떤 긴장이 느껴지지만, 내가 선호하는 긴장은 아니다. 나는 그의 작품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 점에서는 나는 취향이 분명한 사람이다. 성적인 압박으로 인한 기괴함이 화폭에 가득 묻어나고 분석가들에게 흥미로운 소재를 던져주겠지만, 딱 거기까지인 듯 싶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발튀스에 열광한다.


내가 모르는(알 턱도 없는) 작가인 탓에 블로그에 몇 편의 작품을 올리고 기억해둔다. 나중에 기회가 닿으면 다시 적을 수 있겠지. 



The Golden Years

Balthus,1945

199 x 148 cm, oil on canvas

Hirshhorn Museum and Sculpture Garden, Washington, DC, USA 




The Fear of Ghosts 

Balthus,1933

162.2 x 114.3 cm, oil on canvas

Indiana University Art Museum, Bloomington, IN, USA 




Three sisters

Balthus,1965

170 x 127 cm,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Paris, France 



Girl and Cat 

Balthus,1937 



Guitar Lesson, 1934, oil on canvas, 63 1/2 by 54 1/2 inch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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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appy Lovers 

Gustave Courbet, oil on canvas, 77*60cm

1844 



외근 후 바로 퇴근하는 길, 서점에 들려, 참 오랜만에 미술 잡지 한 권을 샀다. 그리고 내 눈을 사로잡은 구스타브 쿠르베의 작품 하나. 행복한 연인.


... 뭔가 작위적인 느낌을 풍긴다는 점에서, 이들은 사랑하고 있다, 혹은 있을 것이다. 적당히 흥분해 있으며 이미 마주 잡은 두 손 사이로 비집고 들어갈 음악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남자는 내 사랑의 단어가 그녀에게 호소력 있게 다가갔음을 기뻐하고 여자는 이 남자를 가졌구나 하며 안도의 미소를 띈다. 그들 뒤 배경은 먼 듯 가까운 듯 흐릿하고 군데군데 보이는 붉은 빛은 화창하던 오후가 끝나는 어느 무렵을 짐작하게 한다. 그리고 그와 그녀는 포도주를 마시러 갔을 것이다. 쌉싸리하게 입 안을 풍요롭게 하는 메독 지방 포도주를. 


하지만 쿠르베는 이들이 헤어질 것임을 짐작하게 한다. 그래서 어떤 절정의 순간에 묘한 표정으로 쟁취한 듯한 그들의 미소 속에서 사랑의 본질을 다시 묻는다. 


어, 이게 사랑이야? 진짜 그래? 


마주 잡았다고 해서 사랑이 아니고, 서로 껴안고 있다고 해서 사랑이 아니다. 아마 쿠르베도, 나도, 그도, 그녀도 모르겠지만. 


아마 앙드레 말로의 말처럼 '죽음은 없고 죽어가는 내'가 있듯이, 

사랑은 없고 사랑하는 내가 있는 것일 지도 모른다. 


개념이나 정의는 뒤로 밀리고 오직 행동하고 실행하는 내(moi)가 있는 세상. 

쿠르베는 다시 묻는다.

이 연인은 정말 행복한 것일까? 



* 쿠르베가 언급된 다른 글들. 


2007/07/29 - [예술의 우주] - 낭만주의와 인상주의 사이의 쿠르베

2005/08/30 - [책들의 우주/예술] - 명화를 보는 눈, 다카시나 슈지

2002/10/06 - [책들의 우주/예술] - 클라시커 50 회화, 롤프H.요한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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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로의 소생'(The Raising of Lazarus)

세바스티아노 델 피옴보(Selbastiano del Piombo, 1485 - 1547)

Oil on canvas, 1517-1519

381cm * 299cm, National Gallery, London




시기적으로 르네상스 고전주의와 매너리즘에 속하는 세바스티아노 델 피옴보는 그의 고향 베네치아의 색채와 그가 화가로의 삶을 살았던 로마의 선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대표작 중의 하나인 '나사로의 소생'은 저명한 미술사가인 케네스 클라크로 하여금 '로마적인 형태와 베니치아적인 색채의 조합을 보면, 피옴보가 17세기 고전적 풍경의 진정한 창시자였음을 알 수 있다'는 언급을 하게 하였다. 특히 인물들 뒤로 펼쳐지는 풍경은 마치 니콜라스 푸생의 바로크적 풍경을 보는 듯하다. 


후일 친구가 되는 미켈란젤로의 드로잉이 이 작품에 사용되기도 했는데, 아래가 바로 그 드로잉이다. 부활한 나자로와 그를 부축하는 이들을 그린 작품이다. 



Lazarus and attendant

Michelangelo, 1516 



나자로의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의 다른 치유들과 달리 이미 죽어 육체가 부패하기 시작하는, 죽은 후 나흘이 되던 때 다시 일으켜 세웠다는 데에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사건은 많은 예술가들에 의해 작품화되었고 쉽게 작품들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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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6일자 중앙선데이에 난 이우환의 인터뷰 기사 중 일부를 옮긴다. 몇 년 전 그의 기사를 읽고 노트해둔 것이다. 작품이 좋으면, 그의 글도 좋고 그의 마음도 좋다,고 여긴다. 이 때 좋다는 건, 근사하다는 것과 비슷한 의미다. 그가 쓴 저서들도 몇 권 번역되어 나왔으니, 읽어보면 좋겠다. 


 

이미지 출처:http://commons.wikimedia.org 




“예술도 경쟁입니다.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모노하'란 자기 생각을 절반 정도로만 한정하고 나머지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바깥과 안쪽을 연결하려는 시도입니다. 돌맹이를 그냥 던져놓는 것 같아도 개념, 장소, 시간 등을 따져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주자는 것이었죠.“


“게다가 한국에서는 일본 사람이라고 하고, 일본에서는 조선 사람이라고 하고, 유럽에서는 동양인이라고 하고, 추천을 받아도 명단에서 빠지고 ... 항상 경계인이고 외톨이였죠.” 






-작업은 얼마나 자주 하시나요?

“매일 합니다. 손이 굳으면 안 돼요. 손은 외부와의 가장 중요한 접촉점이자 세계를 알려주는 척도거든요. 신체는 생각보다 훨씬 큽니다. 세계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죠. 가장 예민한 접촉 부분이 손이고 눈입니다. 그래서 항상 훈련시켜 놓아야 합니다. 물감을 개거나 글씨를 쓰거나 하는 식으로라도. 

눈도 마찬가지죠. 의식적으로 사물의 구도와 질서를 바라보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사물을 뚫고 깊고 멀리 바라볼 수 있는 힘이 생겨요.”


- 젊은 작가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손재주나 살짝 떠오른 아이디어 정도로는 안 됩니다. 세계에서 싸울 수 없어요. 어떻게 지탱하고 발전할지 고민해야 합니다. 공부를 많이 해야 합니다. 추사나 겸재도 사실은 대단한 이론가들이었습니다. 손재주만 갖고 크게 된 작가는 없어요.” 



이미지 출처: http://londonkoreanlink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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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의 기준은 바뀌고 미의 대상도 바뀐다. 미소년에 대한 염모는, 어쩌면 현재 진행형일지도 모른다. 18세기 후반, 시대는 로코코로 향하고 티에폴로는 바로크적 몸짓 속에 로코코적 염원을 담아낸다. 동성애적 갈망이 화폭에 담긴다. 칼로카가티아(Kalokagathia), 즉 선미의식은 이런 것이 아닐까. 선한 것이 아름다운 것. 그래서 고대에는 여성의 아름다움보다 남성의 아름다움이 더 추앙받았으며, 이는 근대에까지 이어진다.  



(요즘은 미술에 대해 관심을 가질 시간이 없는데, 예전 싸이월드에 올린 글들을 이렇게 옮긴다. 업무용으로 네이트온을 사용하다 보니, 쪽지로 예전에 올린 글들을 알려주고, 이를 다시 블로그에 올린다.) 





2003년 12월 3일에 쓰다.






The Death of Hyacinth

1752-53

Oil on canvas, 287 x 235 cm

Thyssen-Bornemisza Collection, Madrid



18세기 중엽의 지오바니 바티스타 티에폴로의 작품이다. 시기적으로 로코코 시대에 속해 있으나, 프랑스 지역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는 후기 바로크로 분류될 수 있겠다. 뭐, 후기 바로크가 로코코이기도 하니. 이 구분은 좀 애매한 감이 없지 않다. 


여하튼 이 작품은 아폴로와 히야신스의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아폴로와 아름다운 소년인 히야신스가 원반 놀이를 하다가 히야신스가 그만 원반에 맞아 그 생명을 잃어버리는 장면을 그려내고 있는데, 저 누워있는 히야신스의 몸짓이 예사롭지 않다. 


'에로틱'이라는 표현보다 '농염하다'라는 표현이 더 와닿는 듯하다. 얼마 전에 르누와르의 <Young Boy with a Cat>을 올렸는데, 다들 미소년에 대한 관심들이 있는 듯해, 미소년 시리즈로 작품을 하나 더 올린다. 


요즘에도 미소년에 대한 관심은 여전하다. 일명 '동성애' 그러니 과거의 일은 아닌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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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느와르의 초기 작품들은 정말 매력적이다. 그가 배워왔던 페인팅과 앞으로 나아갈 페인팅이 서로 섞이고, 작품을 통해 성취하고 하는 젊은 열망들이 색채로 뿜어져 나온다고 할까. 한 때 '젊음'에 대한 평문을 쓰고 싶었는데, ... 지금이라면 가능할까. 오랜만에 르느와르 작품들을 찾아 봐야겠다. 





-- 

2003년 11월 28일에 쓴 글. 






Young Boy with a Cat

1868-69

Oil on canvas

43 3/4 x 26 1/4 in (124 x 67 cm)

Musee d'Orsay, Paris 



이 그림을 보면서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를 떠올린 이유는 뭘까. 약간 신비스러워 보이는 이 작품은 르누와르의 초기 작품으로 고양이를 스다듬는 소년의 뒷모습을 담고 있다. 앞의 꽃무늬 천이나 고양이의 처리는 무척 마음에 든다. 그리고 소년의 누드는 무척 이국적이면서 애로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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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답네요..카프카라니,.. 공감입니다. 뭔가호밀밭의파수꾼이 되기전모습이랄까요?^^

    • 그 때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를 읽고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잡지에 글 하나를 썼고요. 그 이후로 하루키를 손에 든 적은 없네요. ㅋ. ~ 호밀밭의 파수꾼은 ... 뭔가 사고 치는 이미지가 떠올라요. 파수꾼 되기 전이라면 ... ㅎㅎ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2003년 11월 17일에 쓴 글을 옮겨담는다. 막상 옮기고 나니, 1990년대 후반인지, 아니면 2000년대 초반부터인지, 나는 이우환을 좋아했다. 이 때, 그의 작품 가격이 얼마 하지 않았던 탓에 작품 구입을 목표로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그의 작품이 구겐하임에 이어 프랑스 베르사이유 궁전에서도 전시된다고 한다. 다시 이우환을 읽어야 겠다. 

(관련 기사 링크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11/24/2013112402357.html )








점에서 from point




이우환의 작품이다. 그는 일본에서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는 일본의 '모노하'의 대표적인 예술가이자 이론가이다. 위의 작품은 그의 초기 대표작에 해당된다. 


이우환은 국내보다 일본에서 더 유명하고 국내보다 유럽에서 더 유명하다. 그의 책, <시간의 여울>, <여백의 예술>이 번역되어 나왔지만, 아직 그의 작품에 대한 일반 대중의 관심은 거의 없는 듯하다. 


이번 전시는 어제로 끝났지만, 오노 요코 전이나 피카소 전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관람객이 방문했을 뿐이다. 


점에서 시작해 선으로 이어지고 선은 바람에 휩쓸려 공간으로 확대된다. 공간 속에서는 조응이 이루어지고 관계항들이 생겨난다. 그의 최근작들은 조응 시리즈와 관계항 시리즈으로 대표된다. 


동양에서는 그의 작품은 미니멀리즘으로 분류되지만, 유럽이나 미국에서의 평가는 동양적이다, 불교적이다,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선'을 떠올리게 된다 등이다. 그러고 보면 이우환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타자'로서 위치해있는 셈이다. 한국에서는 '일본적'이고 일본에서는 '한국적'이면서 '서양적'이고 유럽에서는 '동양적'이다. 


위 작품은 점의 운동에 집중하였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캔버스 위의 점들은 일렬로 움직이는 듯하다. 그렇다면 이 점들은 어디로 움직이는 것일까. 세상 속일까? 아니면 세상 바깥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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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을 획득하자마자 자연의 세계에서 분리되었고 자신의 내부에서 타자가 되었다. 말이 지시하는 실재와 말이 동일하지 않은 것은 인간과 사물들 사이에 - 그리고 더욱 심층적으로는 인간과 인간의 존재 사이에 - 자신에 대한 의식이 개입하기 때문이다. 말은 다리이며 이 다리를 통하여 인간은 자신의 외부세계와 분리시키는 거리를 없애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그러한 거리는 인간성의 일부를 구성한다. 거리를 소멸시키기 위해서는 인간은 인간됨을 포기하고 자연의 세계로 돌아거가나 인간됨의 한계를 초월하여야 한다.

- 옥타비오 파스, 1972년(* 역자: 김은중. 1996년 <현대시사상> 가을호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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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메모를 다시 꺼내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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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net facebook page에서 옮김)




루치오 폰타나의 작업 모습이다. 나를 숙연케 만든다. 


진정한 창조란 저런 모습이어야 한다. 


캔버스 자체를 부정하는 것. 그리고 새로운 공간을 창조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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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ward Hopper
Summer Interior
1909, Oil on canvas, 24 x 29 inches,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New York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따갑고 건조한 여름 햇살이 방 한 가운데로 내리꽂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로 하여금 자신의 몸을 일으켜 세울 정신적 의지는 지난 밤에 사라져버렸다. 꿈일 지도 모른다. 아니면 환상이거나. 만일의 경우 그것은 최악의 현실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지나가버린 것들이며 앞으로 오지 않았으면 하는 것들이다. 너무 가지런한 실내가 도리어 비현실적이다.

뜨거운 여름날 벌어지는 대부분의 일들은 비현실적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스스로 자신에게 오래 전부터 빈혈이 있었다고 믿는다. 그리고 잠시 후 세찬 소나기가 달구어진 대지를 식힐 것이라고. 하지만 그녀는 두렵다. 이 순간이 지나는 것이.

교묘하게 환상과 현실 사이에 육체를 걸치고 있는 그녀는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딱딱한 유화 물감에 자신의 영혼을 붙이고 환상도 아니고 현실도 아닌 어느 공간 속으로 들어가, 멈추어 버렸다. 어쩌면 시간의 틈새로 들어가, 공간의 틈새로 들어가 영원히 자신을 격리시키는 것이 우리 시대의 가장 바람직한 삶이 될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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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가장 핫한 사람이라면 가수 싸이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미술계에서는? 아마 아이 웨이웨이가 아닐까. 적어도 아시아에서는 최고일 테고, 전세계에서도 가장 핫한 미술가 중 한 명이다. 그런 그가 중국 정부를 의식한(비판한) 강남 스타일을 만들었다. 


현재 중국 정부에서는 아이 웨이웨이의 이 동영상을 보지 못하게 하고 있고, 여기에 현재 리움에서 전시하고 있는 아니쉬 카푸어까지 아이 웨이웨이를 응원하기 위해서 자신도 강남 스타일 비디오를 제작하겠다고 밝혔고, 아래 동영상을 첨부했다.







아이 웨이웨이 동영상만 Artsjournal.com에서 확인했는데, 조금 찾아보니 아니쉬 카푸어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니쉬 카푸어 관련 내용은 http://moonsoyoung.com/90156801539에서 볼 수 있다.


아니쉬 카푸어 강남스타일은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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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ww.pop-group.net/blog/nishiumi/2012/08/zurich-30-hours.html)



되도록이면 여유를 가지고 방해 받지 않으며, 생각에 잠겨 있고자 하지만, 내 일상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원고 청탁이라도 받으면 청탁 받은 주제에 대해 몰두할 수 있는 시간에 대해 가족의 허락을 받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고선 집, 회사, 집, 회사, 또는 술자리나 저녁 약속이 무한 반복으로 내 앞에 버티고 서 있으니, 개인적 시간은 사치스러울 지경이다. 연극평론가 안치운 선생도 집 안에서의 자기 존재에 대해 적기도 했다. 가족의 일상과 무관하게 책 읽고 글 쓰는. 


가족이 모두 잠 든 한밤 중 시간이 유일하게 나에게 주어지는 개인 시간인데, 요즘은 왜 그리 졸린 지, 잠이 많은 내가 미워지기도 한다.


오늘 나는 사카구치 교헤Sakaguchi Kyohei라는 일본 예술가를 알게 되었다. 우연히 읽게 된 어느 잡지(LIG 아트센터 매거진)에 그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나를 돌이켜보았다. 


요즘은 뭐랄까, 좀 트렌드에 뒤쳐진다는 느낌이 든다고 할까, 혹은 나이가 들었다는 느낌이랄까, … 그러면서 동시에 비-창의적이고 구닥다리가 되어가는 것 같다. 사카구치 교헤의 태도를 보면서 나를 반성하게 되었다고 할까. 그의 생각과 태도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거꾸로 보는 것, 경계를 두지 않고 자유롭게 생각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  


잡지에 실린 인터뷰 일부를 옮긴다.

(그는 지난 여름, 제 14회 서울변방연극제에 참여하였고, 인터뷰는 그 때 진행한 것으로 보인다.) 



- 저는 거리에서 사는 그 분들을 ‘도시형 수렵채집자’라고 부릅니다. 


- 그 분들은 거리에서 재료를 채집합니다. 사람들은 쓰레기를 생산물이 아니라면서 무시하곤 하죠. 하지만 생각을 바꾸면 우리는 무언가를 새로 살 필요가 없습니다. 도시에 이미 많은 재료가 있으니까요. 쓰레기가 새로운 재료로 바뀌는 곳, 이것은 무언가를 사냥하는 것과 같아요. 내가 무언가를 찾아냈다, 유레카! 그럴 때는 기분이 정말 좋아요. 이것은 아주 건강한 방법이기도 하고요. 


- 나는 ‘생각’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리고 ‘생각의 가능성’을 만들고 싶습니다. 사람이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공간을 만들고 싶습니다. 눈에 보이는 공간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공간에 흥미가 있습니다. 또한 그것을 만들고자 합니다. 사람의 생각에 의해 공간은 시작되니까요. 


- 이야기를 하나 들려드릴게요. 제가 처음 천막에 사는 분에게 ‘집이 너무 좁지 않아요?’라 물으니, ‘이거 집이 아니야’라고 답했습니다. ‘이건 침대인데’하면서 도서관으로 나를 데리고 가더군요. 그 곳은 책장이라고 불렀습니다. 공원에서는 벤치에 앉아서 여긴 거실이라고, 주유소에서는 휘발유 통을 가리켜 이건 콘센트라고, 푸른 하늘은 지붕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이처럼 생각의 틀만 약간만 바꾸어도 뭔가를 건축하지 않고도 세상을 자신의 공간 요소로 삼을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런 공간을 만들고 싶은 거예요. 이것은 곧 살아 남기 위한 기술을 만든다고도 할 수 있겠죠. 그것으로 세계를 바꾸는 것이 나 스스로에게 있어서는 혁명입니다. 눈 앞에는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에 대해 다들 눈치 채고 직접 느끼도록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층위로 세상을 바라보고, 우리가 믿고 있는 많은 것들이 허상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려고 합니다. 



그의 예술 활동은, 그의 생각을 그대로 옮기는 행동이자 실천이다. 일본 정부로부터 1엔도 받지 않았다는 그는, 생각대로 실천한다. 아래 그의 여러 작품들을 옮겨보았다. 시각 예술 작품이라고 하기엔 미적 완성도가 없고 도리어 일종의 연극이며 행위 예술으로 보고 싶지만, 그러기엔 그는 반-시간적이다. 연극이나 행위 예술은 정해진 시간 안에 일회성으로 끝난다면, 그의 작품은 그것들과는 반대다. 그런 의미에서 시간예술적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실은 '반-시간 예술'인 셈이다. 그래서 그의 작업은 엄밀하게 조형 미술적 형태를 가진다.  


   



The House Bike 2001 

http://www.0yenhouse.com/en/The_House_Biker/  

(오토바이 뒤에 싣고 다니다가, 아무 곳에서나 내려서 살 수 있는 이동식 집이다)





움직이는 집 ( A Mobile House)

http://blog.naver.com/mtfestival/100160421189 

(14회 서울변방연극제에 참가한 작품이다)






짓지 않는 건축가, 사카구치 교헤 

http://magazyn.co.kr/11037 

(이 인터뷰는 LIG 아트센터 매거진보다 더 상세하다. 읽어보길 바란다. 아마 신선한 자극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움직이는 집’ 제작 워크숍, 7월 6일(금) 오전 10시 - 야간 / 동숭동 아르코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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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린 신문들을 읽다가 앤서니 곰리(Anthony Gormley)의 인터뷰 기사를 읽었다. 흥미롭게도 그는 고고학과 인류학 전공자이다. 성공한 CEO들 중에 경영학을 전공한 이들이 많지 않듯이, 뛰어난 예술가들 중에는 예술을 전공하지 않는 이들도 꽤 있다. 하지만 한국은 너무 '전공 편향주의'가 심한 듯하다. 미술을 전공하지 않고 순수 미술 분야에서 이름을 떨친 이를 보기 드물고, 학연은 여전히 심하기만 하다. 


이는 미술 뿐만 아닌 것같다. 솔직히 학부 시절 **전공을 이수했다고 해서 그 분야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경우가 태반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내 경험을 이야기하자면 대학원 석사 학위를 받아도 해당 전공 분야 뿐만 아니라 인문학 전반에 대해 무식한 경우를 너무 봐왔기 때문에 ... 사정이 이렇다보니, 해당 전공에 대해서 무지한데, 나머지 분야에 대해선 어떻겠는가! (결국엔 전공자를 찾게 되는 악순환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니 앤소니 곰리 같은 예술가가 나오리라는 기대를 한국에서는 애초부터 접어야 하는 것일까... 하는 씁쓸한 생각에까지 미친다.





출처: http://en.wikipedia.org/wiki/Antony_Gormley



뛰어난 예술가들 상당수는 생각이 깊고 언변이 좋다. 심지어 글까지 잘 쓰기도 한다. 또한 현대 예술가라면 의당 그래야 한다. 칸딘스키가 미술이론가가 되어야 하는 것은 현대 예술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이우환이 여러 권의 책을 낸 것도 여기에 속한다. 앤서니 곰리의 인터뷰를 옮기는 이유는 현대 예술이 고민하는 한 지점을 여실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인간, 의사소통, 공유에 대한 탐구, 육체와 정신, 라이브 캐스팅, 종교 등에 대한 그의 생각들은 현대 예술가들 대부분이 고민하고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인형이나 장난감만 한 크기의 조각을 만드는 것은 매우 재미있고 특이한 경험이다. 문득 전체를 볼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당신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이 순간, 나는 당신의 눈동자나 입술의 표현에 집중하지만 이는 전체적인 몸의 표현이 아닌 부분적인 표현일 뿐이지 않나. 아무튼 나는 신체를 27개의 블록으로 구성하면서 단순화하고자 했다. 그러고 나서 인간의 여러 심리를 전체적인 몸짓들로 표현할 수 있을지 보고 싶었다. 인간의 감정을 뼈와 근육과 피부를 표현하는 블록을 이용해 통역한다는 작업 자체가 매우 흥미로웠다. 블록들이 상호 관계를 맺으면서 어떻게 결합하느냐는 인간 감정을 표현하는 가장 본질적인 요소가 된다. 예를 들어 이 도록에서 서 있는 세 가지 조각은 언뜻 같아 보이지만 블록의 결합이 미미하게 다르다. 그럼으로써 이들은 각각 감사·간절함·자기방어라는 미묘한 감정을 다르게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몸짓을 우리는 의도하지 않는다. 저절로 그렇게 될 뿐이다.” 



“육체의 자유를 제한할 때 우리의 정신은 더 멀리 나아간다. 이것은 인간이 가진 커다란 패러독스다. ‘명상’의 기본 원칙이기도 하다. 라이브 캐스트를 통해 움직임의 반경과 자유로운 표현 능력을 의도적으로 제한하고 모든 육체의 컨트롤을 기꺼이 포기함으로써 한층 더 자유로운 공간으로 이동하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종교는 어린 시절 중요한 부분이기는 했지만 나는 결국 종교를 믿지 않는다. 종교는 천국과 지옥, 죄와 벌, 도덕적인 명령 등 매우 파워풀하면서 중요한 교리를 전파하지만 동시에 이는 위험한 사상이 될 수 있으며 현대사회에서 종교는 더 이상 좋은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불교는 종교를 뛰어넘어 인생의 철학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인생을 있는 그대로 살아갈 것을 가르치며, 물질세계 속에서 우리의 정신·육체·생각·의식이 삶과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를 가르친다.” 

- 중앙선데이, 2011년 5월 15일자 

http://sunday.joins.com/article/view.asp?aid=21699







춮처: http://www.pablogt.com/artists/antony-gormley/


(라이브캐스팅 작품이다. 라이브캐스팅이란 실제 사람 위에 석고를 입혀 틀을 짜는 것을 뜻한다. 포스트 모던 조각가인 조지 시걸도 라이브 캐스팅을 통해 현대인의 정신적 쓸쓸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출처: http://mocoloco.com/art/archives/001040.php


(위 인터뷰에서 인형이나 장난감 크기로 만든 조각이 이 작품이다. 전시장에 인형 크기의 작품들이 빼곡히 들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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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데이비드 호크니는 조수를 써서 작업을 하는 데미안 허스트를 비난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그러나 며칠 뒤 데이비드 호크니는 그런 일은 없었다며, 부정하는 기사가 다시 나오긴 했지만, 작업을 예술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는 마치 영화 제작 현장의 감독 역할을 하고 많은 기술자들이 예술가의 지시에 따라 작업을 하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는 설치 미술이 주류가 된 현대 미술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하다. 작품의 스케일이나 제작 방식이 달라지다 보니, 예술가 혼자 작업하기 어렵게 되었다. 


하지만 데이비드 호크니는 여전히 그림을 그린다. 며칠 전 그의 생일이었고 영국의 사치 갤러리 페이스북 페이지에 아래의 사진이 올라왔다. 



 


 그는 숲 속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가 이런 식으로 그린 작품은 아래 작품이다. 




몇 해 전 파리 피악(Fiac)에서 본 최고의 작품이었다. 더 이상 근사한 풍경화가 그려지지 않는 시대에, 데이비드 호크니는 근사하고 현대적이며 새로운 미학으로 무장한 풍경화를 우리에게 선보였으며, 나는 이 작은 작품이 가진 에너지 앞에 어쩔 줄 몰랐다. 


우리에게 데이비드 호크니 같은 작가가 있다는 건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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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자본주의 사회인가? 아니면 사회주의 사회인가? 사람들은 여기에 대해 뭐라고 대답할까? 몇 명은 사회주의를 가장한 자본주의라고, 또다른 몇 명은 시장 경제 체제를 표방하고 있지만 실은 사회주의 국가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또는 도리어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고 묻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 아니냐고 되물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아직도 중국은 공산당이 정치의 중심에 있고 사회주의적 가치가 국가 통치의 기본이다. 정치적으로 사회주의이지만,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시장경제)라는, 매우 낯선 시스템이라고 할까. (어쩌면 중국 앞에서 좌파, 우파의 구분도 무색해 질 지도 모른다.) 


이러한 현대 중국의 정치-경제 체제는 2012년의 우리들이 보기에도 신기한데, 수 십 년 전 중국 국민(인민)들의 눈에는 어떠했을까? 


사회주의 앞에서 모든 것이 희생되던 시기에 태어난 왕광이(Wang Quangyi)의 눈에는 당황스럽고 이해하기도 전에 받아들여야 하는 기묘한 현실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작품들은 그의 이러한 당혹감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아마도 그의 작품이 인정받게 된 것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고민하고 받아들이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그의 예술이 존재하기 때문은 아닐까.   




그에게 세계적인 유명세를 안긴 '폴리티컬 팝'이란 어떤 의미일까?

"사회주의에서 자라왔고 유토피아 이념을 세뇌받으며 자란 세대인 나에게 눈 앞의 현실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라는 두 개의 큰 물줄기로 보였다. 단지 중간적인 입장에서의 딜레마를 표현한 것이지, 어느 쪽이 옳고 그른가를 비판한 것은 아니었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충돌과 공존, 그러나 세상은 나의 그림을 현실비판으로 받아들였다. 서로 자신의 입장으로 작품을 보니 복잡해지는 거지. 평론가들의 오독이었다." 

- "중국의 눈으로 세계를 바라볼 뿐, 나는 중국의 워홀이 아니다.", 중앙선데이 2011년 10월 9일자 인터뷰 중에서 





1957년 하얼빈 태생의 왕광이는 정치적 팝아트로 중국을 넘어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예술가들 중 한 명이다. 그는 사회주의 체제 하의 정치 선전물에 자본주의를 뜻하는 상업 광고나 브랜드를 결합하여, 자본주의를 향한 개화개방 정책을 펼치던 중국 현실을 매우 상징적으로 표현하였다. 


위의 인터뷰에서 왕광이는 현실 비판이 아닌, 그 애매모호한 뒤섞임, 중복, 대결 등을 그대로 표현하기 위함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서구의 시각에 보자면 기울어져가는 정치적 예술 위로 상업 브랜드가 겹치는 듯하기만 하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자본주의의 출발점이 된 리더로 예수로 꼽았다는 점이다.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이 먹고도 열 두 바구니가 남았다는 성경 속 이야기야말로 물질 중심 사상의 시초가 아니냐"는 것이 작가의 설명이다. 

- "중국의 눈으로 세계를 바라볼 뿐, 나는 중국의 워홀이 아니다.", 중앙선데이 2011년 10월 9일자 인터뷰 중에서 





표현 양식은 단순해 보일지 모르지만, 그의 작품은 현대 중국을 넘어서 1990년대 이후 이념 갈등이 자본 갈등으로 변해가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중국에서도 이제 이념보다는 자본이 중요하듯이. 즉 정치적 혼란의 메시지가 이제는 시장 경제 체제 내에서의, 해외 자본과 국내 자본과의 전쟁을 보여준다고 할까. 2012년의 내가 보기엔 그렇게 왕광이의 작품이 시사하는 바가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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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en.wikipedia.org/wiki/Andy_Warhol






20세기 후반 미술계에서 대중적으로 가장 유명한 이를 꼽으라면 단연코 ‘앤디 워홀’(Andy Warhol)이 될 것이다. 심지어 미술 시장(Art Market)의 측면에서도 앤디 워홀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을 정도로, 그의 영향력은 대단한 것이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앤디 워홀을 대중적인 팝 아티스트로 여기겠지만, 실은 그는 팝 아트(Pop Art)를 넘어서 현대 미술 뿐만 아니라 현대 대중문화가 가지는 숨겨진 의미를 온 몸으로 보여주며, 끊임없이 우리들에게 환기시켜 주었다.


스타에 대한 열광과 매혹, 아우라(Aura)와 복제, 현대적 바니타스(Vanitas)와 죽음, 차용과 반복, 가면과 진실. 앤디 워홀과 그의 예술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여러 주제들을 거쳐 가야만 하고, 심지어 현대 미학(Aesthetics)의 근본적인 의문과도 마주할 수 있다. 그 의문이란 ‘도대체 예술 작품이란 무엇인가?’


이 글은 짧지만, 앤디 워홀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작은 지도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



출처: http://www.hometowninvasion.com/photo/wisconsin/brillo-box-by-andy-warhol




「브릴로 상자」에 담긴 철학


아서 단토(Arthur C. Danto)는 『예술의 종말 이후After The End of Art』에서 ‘「브릴로 상자」가 예술임을 확신했으며, 나를 흥분시킨 물음, 진정으로 심원한 물음은 워홀의 「브릴로 상자」와 수퍼마켓의 저장실에 있는 브릴로 상자 사이의 어떠한 (지각적인) 차이도 사물과 예술 사이의 차이를 설명할 수 없다고 할 때, 양자 사이의 차이는 과연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이다’라고 적는다.


그렇다면 예술 작품인가 아닌가를 결정짓는 것은 무엇일까? 여기에 대해 단토는 이제 작품의 외형이나 표현 양식이 아니라 작품이 지향하고 묻는 의미가, 그 작품이 예술 작품인가 아닌가를 결정짓는다고 단언한다. 그래서 슈퍼마켓에 있는 브릴로 상자를 갤러리 공간에 옮겨놓는 행위만으로도 그 상자는 예술 작품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런 철학적 접근은 우리에겐 매우 난처하게 다가온다. 우리가 예술 작품이라고 하면, 어떤 예술가가 고통스러운 창작의 과정을 거쳐, 노련한 솜씨로 만든 어떤 물질적인 대상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앤디 워홀은 가게에 있는 비누 박스를 가지고 와서 갤러리에 예술 작품으로 전시하고, 더구나 이를 비싼 가격에 컬렉터에게 팔기까지 했다. 그리고 지금도 전 세계 갤러리들과 컬렉터들 사이에서 이 비누 박스-브릴로 상자-는 놀라운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으니, 도대체 예술 작품이란 무엇일까? 우리가 믿는 그 예술 작품은 이제 없어진 것일까? 작품 외형만으로는 그것이 예술인지 아닌지 판단내리지 못한다면, 우리는 일일이 작품의 철학적 의미를 탐구하고 난 뒤에야 ‘이것은 예술 작품이다’라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일까?


하지만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자. 이 유쾌한 「브릴로 상자」는 기존 예술계를 향해 앤디 워홀은 던진 수수께끼이면서 냉소적인 반어법 이상의 의미를 가지진 않으니까. 그리고 단토의 의견대로 철학적 의미로만 작품 감상을 한다면, 이미 (현대) 미술은 끝났을 것이다.



the velvet underground & nico  1967
the velvet underground & nico 1967 by oddsock 저작자 표시



스타가 되고 싶었던 앤디 워홀


앤디 워홀의 꿈은 언제나 스타였다(그 스스로 고백한 적 없지만, 누구도 그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것도 순수 미술계의 스타. 모든 이들이 자신을 알아봐주길 원했다. 그리고 그는 스타가 되었고 스타들의 친구가 되었다. 앤디 워홀의 ‘팩토리(Factory, 공장)’는 그의 작업실 이전에, 뉴욕 예술계의 사교 공간이었고 그 곳에서 앤디 워홀은 자신의 명성을 쌓아갔다. 모든 이들이 자신을 알고, 자신에 대해 궁금해 하며, 자신을 추종한다는 것은 얼마나 흥분되는 일인가!


하지만 클라우스 호네프(Klaus Honnef)의 지적대로 ‘가면은 보호를 의미’한다(『Andy Warhol』, TASCHEN). 앤디 워홀은 자신이 만든 가면-앤디 워홀은 스스로 자신을 꾸미고 포장하며 끊임없이 그에 대한 새로운 스토리를 만들었다-뒤로 숨었다. 그는 “나는 미스테리로 남기를 바란다. 나는 결코 나의 배경이 노출되는 것을 원하지 않으며, 그래서 나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서로 다른 답변을 한다”, “만약 당신이 앤디 워홀에 대해 알고 싶다면 나의 그림의 표면과 영화, 그리고 나를 보기만 하면 된다. 거기에 내가 있다. 그 배후엔 아무 것도 없다”라고 이야기하며 진짜 자신을 숨긴다(실은 ‘진짜 자신’이라는 것도 모호하기 이를 데 없지만).


앤디 워홀에게 있어 ‘진짜 나’란 없는 것이고, 끝까지 숨겨야 하는 것이거나 미스테리한 것으로 남기고 싶은 어떤 것이다. 마치 ‘나는 내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생각한다, 고로 나는 내가 생각하지 않는 곳에서 존재한다’고 말한 자끄 라캉(Jacques Lacan)처럼, 우리 자신에 대해서 가장 잘 아는 것은 우리 자신이 아니라 우리를 바라보는 누군가이듯, 앤디 워홀은 한껏 꾸며진 스타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다. 타인의 눈에 비친 나, 미디어에 담긴 나, 그리고 작품이 전부다. 내가 만날 수 있고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나란 이 세상에 없다. 그리고 앤디 워홀은 이 사실을 매우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앤디 워홀은 그의 작품을 생산해내듯, 그의 언어, 패션, 몸짓, 이야기를 생산해냈다.


NYC - MoMA: Andy Warhol's Double Elvis
NYC - MoMA: Andy Warhol's Double Elvis by wallyg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반복과 복제, 새로운 아우라


현대 미술에 끼친 앤디 워홀의 영향은 치명적이었다. 실은 앤디 워홀에 와서 제대로 된 미국 미술이 시작되었다. 미국 미술이라고 이야기하면 잭슨 폴록(Jackson Pollock)의 추상 표현주의(Abstract Expressionism)을 떠올리기 쉽지만, 이는 유럽적 기원을 가진다. 인상주의 미술에서 시작된 평면에 대한 탐구, 칸딘스키의 음악적 추상 미술 등은 잭슨 폴록 작품의 기원을 형성하는 것들 중 일부다(폴록 이전의 미국 회화도 마찬가지로 유럽에서 기원한 것이다). 그러나 앤디 워홀의 작품은 의식적으로 추상 표현주의와는 다른 방향을 향했고, 더구나 이는 그에게 무척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전후 미국 사회를 특징지었던 대중 문화의 요소를 끄집어내어 작품에 활용하였고, 탁월한 비즈니스적 감각으로 자신을, 그리고 자신의 작품을 꾸미고 포장하였다. 시의적절한 이슈와 이야기를 만들었고, 언제나 화제를 몰고 다니며, 상업 미술뿐만 아니라 순수 미술계의 촉망받는 스타로 올라서기 시작했다.


앤디 워홀은 기존 미술과는 확실한 차별성을 위해 대중 문화(Pop Culture)에 바탕을 두고, 반복과 복제를 자신의 창작 방법으로 삼았다. 기존 미디어에서 활용되었던 이미지를 그대로 가지고 와선 이 이미지를 그만의 방식으로 복제하였으며, 다양하게 반복하였다. 그는 소비 사회의 특징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은유화하였으며, 소비할 수 없는 것은 그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따라서 예술 작품의 유일성은 무시되었고, 작품의 아우라는 거듭된 복제-생산 뒤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즉 유일한 작품에만 아우라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한정된 수로) 복제된 작품에도 아우라가 있음을 앤디 워홀은 보여주었고 현대 미술계와 시장은 열광했다.


하지만 편집증적이고 과도하고 반복된 소비 행위 뒤에 어떤 불안이 숨겨져 있듯, 반복과 복제의 테마는 앤디 워홀이 가졌던, 삶과 죽음에 대한 양면성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했다.



NYC - MoMA: Andy Warhol's Campbell's Soup Cans
NYC - MoMA: Andy Warhol's Campbell's Soup Cans by wallyg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현대적 바니타스(Vanitas)와 초상화


마를린 몬로(Marilyn Monroe)가 죽은 며칠 후, 앤디 워홀은 몬로가 나온 광고 사진 이미지로 작업을 하기 시작한다. “나는 몬로와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우리 시대의 섹스 심벌로 재현하려 하지 않았다. 나는 그들을 평범한 인물로 보았으며, 몬로 그림은, 죽은 사람을 다른 방식으로 다룬 죽음 시리즈의 일부다.”, “내가 하고 있는 모든 것들은 ‘죽음’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이야기하는 앤디 워홀.


후대의 미술사가들은 앤디 워홀을 팝아티스트가 아닌 20세기 최고의 초상화가로 기억할 지도 모른다. 초상화가 순수 미술의 부수적인 장르로 치부되던 20세기 후반, 그는 일련의 초상화를 선보였고, 한결같이 17세기 바로크의 바니타스 정물화처럼, 긴장된 화려함 속에 죽음을 향한 숙명 같은 것을 심어놓는다. 그래서 그의 최고 걸작은 「금빛 마를린 몬로(Gold Marilyn Monroe)」일지도 모른다.




Gold Marilyn Monroe
Gold Marilyn Monroe by IslesPunkFan 저작자 표시비영리





현대 예술의 이콘(Ikon), 앤디 워홀


내가 살아있다는 것, 내가 지금 여기에 있다는 것을, 나에게 알려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앤디 워홀은 그 자신의 이미지를 스스로 창조해 내며, 대중의 시선 속에 자기 자신을 위치시킨다. 사각의 프레임 안에 언제나 앤디 워홀 자신이 있다. 그가 생전 마지막으로 만들었던 작품들이 자화상 연작이라는 점은 흥미롭다. 대중 스타들이 영원한 현재를 살 듯, 앤디 워홀도 스타로서의 그런 삶을, 끊임없이 대중 앞에 꾸며진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며, 자신의 모습을 담은 작품들을 스스로 만들었다.


하지만 그 속엔 언제나 죽음이 있다. 포장되고 꾸며진 자신 위로 포장되기 전의, 꾸며지기 전의 자신의, 진짜 나의 죽음. 그래서 워홀에게 과거란 없는 것이며, 오직 꾸며진 현재만 의미를 가질 뿐이었다. 「금빛 마를린 몬로」는 비잔틴 양식의 이콘화(Ikon)를 떠올리게 하지만, 금빛 배경의 중앙에는 세속적이면서, 환하게 웃고 있는, 이미 죽은 몬로가 있듯.





이 글은 북릿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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