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70

마지막 외출, 조지수

마지막 외출 - 이미 없는 그와 아직 없는 그녀의조지수(지음), 지혜정원   액자 소설이지만, 그 액자는 단단하지 않고 그 안은 너무 진지했다. 사랑 이야기지만, 과연 사랑이야기일까. 늘 그렇듯 사랑은 기만적이다. 그건 일종의 허위인 탓에, 치명적으로 쾌락적이다. 그런데 진정으로 사랑이라는 게 있기는 한 걸까. 사랑에 빠진 남녀는 처음에는 순수한 마음의 떨림과 흥분으로, 중반 이후부턴 기만적인 믿음과 소유욕으로 가득찬 육체의 쾌락으로 이어지다가 차갑게 식고 천천히 가라앉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음과 육체가 예전만 하지 못하다는 생각, 식어버린 마음과 그 가라앉음을 견디지 못해 헤어진다. 그리고 그것마저도 아프고 슬픈 이별로 포장하는 탓에, 세상에는 사랑 노래로 흘러넘친다. 과연 사랑이라는 게 있..

쓸쓸한 아픔

팔짱을 끼고 베갯머리에 앉아 있자니 천장을 보고 누운여자가 조용한 목소리로 말한다. 이제 죽을 거예요.여자는 긴 머리채를 베개 위에 풀어두고, 그 속에 부드러운윤곽의 오이씨 같은 얼굴을 가로누인다. 새하얀 빰에 따뜻한 혈색이 알맞게 비치고 입술 빛깔은 역시나 붉다.도저히 죽을 사람 얼굴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여자는조용한 목소리로, 이제 죽을 거예요, 분명하게 말했다. 나도 이제 죽겠구나 생각했다. 그래서 정말, 벌써 죽는 거야?하고 위에서 내려다보며 물어보았다. 죽고 말고요. 여자는눈을 크게 떴다. 커다랗고 물기 어린 눈이었다. 긴 속눈썹에에워싸인 곳은 온통 검었다. 그 검은 눈동자 깊은 곳에내 모습이 선명하게 비친다.- 나쓰메 소세키, (>, 김석희 옮김, 이소노미아)중에서   나를 귀찮게 하던..

지난해 마리앙바드에서, 알랭 레네

지난 해 마리앙바드에서 L'annee derneire a Marienbad (Last Year At Marienbad) 알랭 레네(Alain Resnais)감독, 알랭 로브그리예 Alain Robbe-Grillet 극작 Giorgio Albertazzi, Delphine Seyrig, Sascha Pitoeff 출연 실은 이 정도의 집중력이 요구되리라곤 생각치 못했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영화들마저도 이 영화 와 비교한다면, 정말 재미있게 볼 수 있다고 해야 할 정도였다. 그래서일까. 상당수의 평론가들은 이 영화를 역대 최악의 영화로 평가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영화평론가들과 애호가들은 이 영화를 누벨 바그 최고의 영화로 평가하지만, 막상 직접 본다면, 더구나 지금, 2023년에 보았다면,..

관측, 이영주

관측 이영주 지구의 중력이 인간의 피를 끌어당기기 때문에 피는 심장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빛이 폭발하면 별을 볼 수 있다. 천체망원경을 들여다보면 마음이 고요해진다. 이곳에 잔뜩 힘주고 서 있는 것이 어둠으로 가는 길이었나. 렌즈 안으로 푸른 숲이 번진다. 수은이 빛나는 의자에서 우리는 노래를 부른다. 가사랑 상관없이 노래를 불러도 되지? 우리는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헤어지는 노래를 사랑을 담아 부른다. 뜨끈하고 이상하고 끈끈해. 새벽에 걸어 들어온 수목림 내가 걷는 숲에는 돌아오지 못하는 피가 물들어 있다. 망원경에 입김이 피어오른다. 물큰하게 젖은 잎들이 흔들린다. 자꾸만 이곳으로 들어가고 싶은 것은 지구에서 흐르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너의 혈액 때문이었나. 붉게 물든 발이 점점 더 커지기 때문인가. 크..

어떤 사랑도 기록하지 말기를, 이영주

어떤 사랑도 기록하지 말기를이영주, 문학과지성사 시인선 532   낭만적인 자리 그는 소파에 앉아 있다. 길고 아름다운 다리를 접고 있다. 나는 가만히 본다. 나는 서 있고. 이곳은 지하인가. 너무 오래 앉아 있어서 그는 지하가 되었다. 어두우면 따뜻하게 느껴진다. 어둠이 동그란 형태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것을 깨려면 서야 한다. 나는 귀퉁이에 서 있다. 형태를 만져 볼 수 있을까. 나는 공기 중에 서 있다. 동그란 귓속에서 돌이 빠져나온다. 나는 어지럽게 서 있다. 지하를 지탱하는 힘. 그는 아름다운 자신의 다리를 자꾸만 부순다. 앉아서, 일어날 수가 없잖아. 다리에서 돌이 빠져나온다. 우리는 10년 만에 만났지. 그는 걷다가 돌아왔다. 걸어서 마지막으로 도착한 귀퉁이에 내가 앉아 있었다. 이 곳은..

아픔이라는 이름의 성장통

바람직한 미래로 가는 길은 험난하다. 그것은 반드시 고통과 아픔을 수반한다. 그것이 성장통이라면 좋겠지만, 때로 그것은 절벽이거나 지옥이거나 나락일 수도 있으며, 그리고 그게 끝일 수도 있다. 오이디푸스가 맹인이 되는 것은 죽음을 뜻하는 알레고리다. 우리는 아픔을 딛고서야 비로소 어른이 된다. 기업도 마찬가지이며, 국가도 마찬가지다. 그 과정 속에서 미래에 대한 비전이나 꿈, 우리가 왜 아파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여야만 한다. 무엇을 잘못 했으며, 무엇을 잘해야 하는지.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꿈도, 일도, 사랑도. 수십년 전 술 한 잔 마시면 외우던 시 한 편 있었다. 그런 삶을 꿈꾸었는데, ... 나이가 들어도 그 시 구절은 변하지 않는데 말이다. 박꽃 신대철 박꽃이 하얗게 필 동안 밤은 세 ..

햄릿과 오필리어

오전의, 텅 빈 카페의 빈 의자 위로 내 마음을 살짝 내려놓고 나온다. 그 마음 위로 누군가의 시선이 닿고 어떤 이들의 수다와 몸짓들이 내려 앉을 때쯤 그제서야 내 자유의지로 숨 쉬기를 시작할 것이다. 결국엔 파국으로 치닫겠지만, 낯익은 결론, 예상되었던 비극, 인과율적인 종말이겠지만, 그래도 나는 내 자유로 그것을 거부하는 용기를 꿈 꾼다. 햄릿 이후 꿈마저도 죽음과 맞바꾸어야 하는인생의 숙명같은 것이 되었지만, 나는 아직 햄릿이 아니고, 너는 오필리어가 아니다. 불륜같은 사랑을 하고, 천생연분같은 결혼을 하고 신탁으로 낳은 자녀들 속에서 잠들지도 모를 일. 그리고 눈을 뜨면, 오후가 되었고, 아직 카페 안이지만, 소리없이 소란스러워져 있고, 길거리 사람들은 마스크를 쓴 채 두 눈을 치켜뜨고 내 앞을 ..

자유 또는 사랑!, 로베르 데스노스

자유 또는 사랑! 로베르 데스노스Robert Desnos(지음), 이주환(옮김), 읻다, 2016 미끈한 뱀의 움직임을 흉내 내면서 사랑이 우리 수중에 들어올 때, 우리는 절망하여, 이어질 것도 생각 않고 다음날들을 남겨두었네 멍청하게도, 성당 앞자리에서 훌쩍거리는 교구 재산관리인처럼 아, 픽션이여, 위안을 주는 네 몸을 꼭 껴안을 만한 제 남성적 정력을 의심하며, 역겨움 느껴가며, 편집증적으로, 확신도 없이, 우리는 녹색 마법 물약을 동물적인 행복감에 젖어들 때까지 들이켰네 지나고 보면 슬픔이란 더욱 좋은 강장제 나무에 피는 접시꽃보다도, 따스한 키니네보다도 우리 모두는 벌거벗은 채, 각자의 플라톤적 지옥에 이르렀다네 기묘한 호랑이에게 살해당한 심장까지를 드러낸 채 괴혈병을 이겨내고, 루이 금화를 씹어..

작은 것들의 신, 아룬다티 로이

작은 것들의 신 The God of Small Things아룬다티 로이Arundhati Roy(지음), 박찬원(옮김), 문학동네 잔인하기만 하다. 몇 명의 죽음 앞에서도 그 잔인성은 사라지지 않고 우리의 마음 한 켠을 어둡게 물들이지만, 그 잔인한 마을의 풍경을 묘사하는 문장은 더 없이 아름답기만 하구나.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6월의 비'는.하늘이 열리고 물이 퍼붓듯 쏟아져내리면, 오래된 우물이 마지못해 되살아났고, 돼지 없는 돼지우리에 녹색 이끼가 끼었으며, 기억의 폭탄이 잔잔한 홍찻빛 마음에 폭격을 가하듯 홍찻빛 고요한 물웅덩이에 세찬 비가 융단폭격을 퍼부었다. 풀들은 젖은 초록빛을 띠었고 기쁜 듯 보였다. 신이 난 지렁이들이 진창 속에서 자줏빛으로 노닐고 있었다. 초록 쐐기풀들이 흔들렸다. 나..

소유 Possession: A Romance, 수전 바이어트

소유 1, 2 앤토니어 수전 바이어트(지음), 윤희기(옮김), 동아출판사 꽤 오래 읽었다. 강렬한 몰입감보다는 잔잔한 호기심이랄까. 두 시인, 랜돌프 헨리 애쉬와 크리스타벨 라모트의 이야기는, 이들의 흔적을 쫓는 롤런드와 모드의 이야기와 겹치며, 끊임없이 독자를 궁금하게 만든다. 너무나도 문학적인 이 소설은 거의 모든 챕터마다 랜돌프 헨리 애쉬나 크리스타벨 라모트의 작품이 인용된다. 이런 이유로, 나는 이 두 시인이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에 실존했던 작가라고 여겼다. 그러나 이 두 작가는 수전 바이어트가 창작해 낸 가상의 인물들이다. 그러나 이 소설을 읽는다면, 이 두 작가가 실제 있었던 이라고 여기게 될 것이다. 그만큼 이 가상의 작가들이 창작한 작품들이 놀랍기 때문이다. 서신들하며, 시 작품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