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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예술의 우주/미학연습 +21



영어공부를 위해 방송통신대 영어영문학과를 편입했다. 그러나 영어 공부 대신 나는 영미시의 아름다움과 셰익스피어를 알게 되었다. 문학 전공자로서, 시 창작까지 공부했지만, 영미시의 아름다움을 중년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는 건, 내가 다닌 학부 과정이 형편없었거나, 내 지적 역량이 떨어졌던 탓일 게다. 


셰익스피어는 매너리즘 후반과 바로크 전반기에 속한다. 근대에서 속하면서도 근대가 시작되던 시기의 혼란스러움이 셰익스피어 극작품 속에 숨겨져 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처럼, 극중 인물들의 운명을 가로지르며 절정을 지나 결말에 이르게 한다. 맥베스는 셰익스피어의 다른 극작품들과 비교해 그 분량은 짧으며, 극적 완성도나 속도감은 최고다. 하나의 사건은 곧장 다른 사건으로 이어지며 인물들의 감정도 마치 폭풍이 치는 해안가의 파도처럼 격정적이다. 그리고 나는 이러한 것들이 매너리즘적 속성이라 파악하고 이를 매너리즘 양식 속에서 해석하는 것을 방송통신대 영문학과 졸업 논문 주제로 정했다. 아래는 졸업논문계획서다. 바쁜 프로젝트 중에 겨우 시간을 내어 급하게 적어 제출했다. 회사를 다니면서 방송통신대 다니는 것은, 그냥 졸업했다는 것만으로도 박수 칠만한 일임을 휴학을 밥 먹듯 한 뒤에서야 알게 되었다. 작년에 졸업할 수 있었으나, 결국 하지 못하고 올 1학기에 졸업한다. 얼마 남지 않았으니, 최선을 다해보기로 하자. 


*     *  

<<맥베스>>의 매너리즘적 성격에 대하여



셰익스피어가 활동했던 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 초반은 문학과 예술의 역사에 있어서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시기였다. 중세가 끝났지만, 중세의 여운이 남아 있었으며(<<맥베스>>에서는 세 명의 마녀들로 표현된다), 동시에 운명의 손(또는 기독교의 질서)을 벗어나 개인의 능력, 이성과 과학을 믿는 시대로 나아가려고 몸부림친다. 그래서 한 손에는 종교를, 한 손에서는 이성을 들고 서로 갈등하면서 혼란스러워 하고 그 사이에서 고통스러워한다. 


셰익스피어는 세르반테스와 함께 매너리즘의 가장 위대한 작가들 중의 한 명이다. 하지만 매너리즘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모호함은, 양식적인 측면에서의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분석하고 적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한다. 이에 필자는 1)문학에서의 매너리즘 양식의 특성을 먼저 정의하며, 2)세익스피어가 살았던 시대의 영국과 유럽 상황에 대한 이해를 구하고 난 다음, 3)세익스피어의 <<맥베스>>가 가지는 매너리즘적 특성을 분석하고자 한다. 


매너리즘은 일반적으로 르네상스 고전주의와 바로크 사이의 반동적 양식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속하는 이들로는 말년의 미켈란젤로, 세르반테스, 마키아벨리, 엘 그레코 등이 있다. 이들은 다가오는 미래-이성의 시대인 근대-를 예감하면서도 동시에 종교적 질서에 대한 믿음(혹은 의심) 속에서 끊임없이 번민하고 갈등하는 세계를 공유한다. 그래서 마키아벨리는 <<군주론>>를 통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비도덕적 수단까지도 용인할 수 있으며, 실제로 그러하다고 말하면서 노골적인 폭로주의적 태도를 취한다. 즉 잘못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면서 전도된 이상주의자의 면모를 보여준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는 몽상(꿈)에 빠진 인물을 통해 시대착오적 현실-근대이지만 중세인-을 비아냥거리며 비판하고 절망한다. 셰익스피어의 작품들도 현실의 세계가 비현실적 요소(꿈, 유령, 마녀 등)로 영향 받고 흔들리며 결말에 이르게 된다. 이를 통해 우리는 비극적 현실 속에 숨겨진 인간 군상의 진실을 보며, 그 앞에서 신의 세계에서 벗어난 인간의 개별성에 주목하게 된다. 매너리즘은 신의 세계를 떠나 인간의 세계로 가는 도정 상에 위치하면서 그 길 위에서 흔들리는 시대상을 대변하는 양식인 셈이다. 


필자는 이러한 매너리즘적 세계가 어떻게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구성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러한 구성이 그 당시 영국과 유럽의 상황을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가를 분석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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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내일 일을 알지 못한다고 해서 공평한 걸까. 내일의, 어떤, 발생하지 않은 일이 현재, 혹은 과거에 미쳤던 영향은 대단하기만 하니, 내일을 아는 이 없다고 해서 세상이 공평한 것은 아니다. 


예측가능성(predictability)은 인과율(law of causality)을 바탕으로 움직이며, 우리 모두는 인과율적 문명의 노예다. 우리 문명은 인과율 위에 축조되었고 우리 사고도 인과율을 벗어나 한 발짝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 모두가 각기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인 이 노예 근성은 현 문명에 반하는 모든 혁신을 거부한다. 그래서 (실제로는 어떻게 진행될 지 모르고,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될 수도 있었던) 운명에 순응하는 개인이라는 표상이 생기고, 모든 이들 - 배운 자나 못 배운 자, 나이 든 이나 아직 세상 물정을 모르는 어린 이나 - 이 '역시 이럴 줄 알았어'라며 자신의 파괴되어지고 부서지고 있는 보금자리 - 그 곳이 물리적 장소이든 마음 속의 위치든 - 에 들어가 꿈쩍도 하지 않으려 한다. 


하버마스가 말한 바 있는 공론장의 붕괴는, 어쩌면 우리 문명이 지닌 치명적이고 근원적인 약점이면서 충분히 예견된 일이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직도 그리스 비극이 감동적인 걸까. 고전 비극은 이 치명적 약점 위에 서서, 끝내 실패하고야 말 생(生)의 혁신을 꿈꾼다. 위대한 고전주의자들의 낭만성은 여기에서 싹튼다. 우리가 종종 고전주의자를 낭만주의로 오해하는 이유는, 범속한 낭만주의가 기존 질서에 반하여 무질서, 혼돈, 상상을 이야기하는 것과 혼동하기 때문이다. 


고전주의자들은 기존 질서 위에서 그 질서와 싸우며, 그 질서와 함께 무너지는 순간에도 질서의 문제점을 말하며, 자신의 몸으로, 자신의 삶 전체로 투쟁하고 저 질서 너머의 어떤 새로운 질서를 요청하기 때문이다. 플라톤이 고전주의자이면서 낭만주의자일 수 있는 것은, 질서를 받아들이며 요청하고, 눈에 보이는 현실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철학 전체는 한 편의 비극이며, 새로운 시대의 요청으로 점철되어 있다. 



잠시 들른 까페에서 위의 글을 메모하면서... 출근 전 잠시, 혹은 아주 길게, 게오르그 짐멜의 렘브란트와 메리 올리버의 고래 사이에서, 커피를 마시며 잠 들었다. 아. 아무도 날 깨우지 않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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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에 진학해 공부하지 않은 것을 두고두고 다행스러워 할 줄 그 땐 몰랐다. 막상 직장 생활을 해보니, 이 자본주의라는 것이 정말 공포스러운 괴물이라는 사실을 몸으로 알았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잠재태/능동태를 이야기한다거나 미켈란젤로의 시를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나 낯설고 이상한지, 심지어 갤러리에 가서 작품을 보고 옆에 서 있는 작가와 이야기하는 것이, 내가 일상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저 세상 일임을 알게 되었을 때, 내가, 혹은 우리가 바라는 바 변화란 '이론에서 실천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실천에서 이론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걸 알았다. 

진시황의 '분서갱유'도, 나랏일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으며, 심지어 농부는 곡식이라도 생산해 보탬이 되는데, 책을 읽고 글을 쓴다는 학자들은 말만 앞 세우며, 도리어 나랏일에 참견하며 방해될 뿐이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고, 실제로도 그랬다고 한다.


오늘 읽은 진태원 교수의 논문 관련 기사.  "비판적 사유의 미국화, 이론과 실천의 괴리 불러"

그는 현재 유행하는 인문학 담론들이 미국을 통해 유통되고 있으며, 미국화된 담론을 세계적인 것으로 이해하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실은 그가 이야기하고 싶은 건 이것이 아닐 것이다. 


진 교수는 이러한 '괴리'의 원인을 찾기 위해 이런 담론들, 특히 지제크, 바디우, 아감벤의 이론적 성격을 분석한다. 진 교수는 "해방의 정치를 제도정치 바깥에서 찾고 있는 점"과 함께 '좌파 메시아주의'를 이들의 특징으로 규정한다. 이는 "이들이 자본주의 및 자유민주주의 체제와의 급진적이고 전면적인 단절을 주장할 뿐 아니라, 이를 기독교 전통에 대한 재독해에 기반해 혁명적 사건성의 관점에서 해명하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진 교수는 "이러한 메시아주의 정치는 매우 사변적인 정치철학"이라며 "이들 중에서 누구도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나 국가에 대한 구체적 분석을 제시하지 않으며, 그것에 맞설 수 있는 대안적인 운동이나 조직에 관한 구체적 성찰도 보여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사변성'이 바디우의 '대상 없는 주체', 지제크의 '신적 폭력', 아감벤의 '계급 없는 사회' 등의 개념에서 나타난다고 분석한다. (기사 중에서 인용)



진태원 교수의 의도는 현실적인 고려나 실천적 방안의 제시 없는, 사변적 이론가들의 유행를 질타하기 위함이겠지만, '비판적 사유의 미국화'는 좀 뜬금없어 보인다. 진태원 교수가 보기에도 참 문제 많은 유행이겠지만... 

(몇 권 읽지 않았지만, 리뷰하자면, 지젝은 센스있게 얄팍하고 바디우는 정말(혹은 과격하게) 사변적이고 아감벤은 그래서 뭘?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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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저녁, 레비나스에 대한 리뷰를 읽다가 레비나스의 문장을 옮겨적는다. 아련한 느낌이 든다.




주체가 어떠한 가능성도 거머쥘 수 없는 죽음의 상황으로부터 타자가 함께 하는 실존이라는 또 다른 특성을 끌어낼 가능성이 있다. (... ...) 미래는 손에 거머쥘 수 없는 것이며, 우리에게로 떨어져서 우리를 엄습하고 사로잡는 것이다. 미래, 그것은 타자이다. 미래와의 관계, 그것은 타자와의 관계 그 자체이다. 오로지 홀로 있는 주체 안에서 시간을 이야기한다는 것, 순수하게 개인적인 지속에 관해서 이야기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불가능해 보인다. 

- <<시간과 타자>> 




죽음이 확실함일 수 있다는 것은 확실하지 않으며, 또 죽음이 무화의 의미를 가진다는 것도 확실하지 않다. (... ...) 현존보다 더 영향을 미치는 파열, 선험성보다 더 선험적인 선험성, 죽을 수 밖에 없음, 이것은 예측으로 환원할 수 없는 시간의 양상이며, 비록 수동적이지만 경험으로, 무의 이해로 환원될 수 없는 시간의 양상이다.

- <<신, 죽음 그리고 시간>> 




 나이가 들수록 '현 미래는 적대적이다'라는 생각을 떨치지 못한다. 나만 그런 것일까. 어제 하루 종일 컨디션이 좋지 못했다. 기분이 좋지 않았고 울적하기만 했다. 


그리고 사무실에서 거의 마지막으로 퇴근하고 난 뒤, 집에 오자마자 식사를 하고 바로 뻗었다. 하긴 그 시간도 오후 10시를 넘겼더라.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기만 하고, 내 인생의 열차는 끝도 없는 어두운 터널로 들어가는 듯하기만 하다. 


이번 겨울, 레비나스의 책 몇 권을 읽어야 겠다. 




시간과 타자

엠마누엘레비나스저 | 문예출판사 | 1996.01.30

출처 : 반디앤루니스 http://www.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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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책을 10대 읽을 때, 20대 읽을 때, 30대 읽을 때, 40대 읽을 때... 다르게 읽는다. 읽으면서 깨닫는 게 다르다. 


이것 참 큰 일이다. 


만약 그 책을 60대 읽을 때, 70대 읽을 때, ... 140대 읽을 때, 150대에 읽을 때 나는 어떤 걸 다시 알게 될까? 


우리 문명은 딱 우리 수명만큼 그 깊이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머리로 알지만 몸으로는 실천하지 못하고 지식은 쌓아가지만 지혜를 쌓지 못하는 것이다. 딱 우리 수명만큼이다. 


(너무 비관적인가)




Let things age
Let things age by Celeste 저작자 표시비영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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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읽은 미술 잡지에서 우리의 현재에 대해서 다시 고민하고 되새겨볼 만한 문장들을 읽었다. 그리고 아래와 같이 옮겼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발적이며 능동적이고 탈식민화된 예술적 실천이다. 그런데 나도, 우리도 그걸 자주 잊는다. 다시 이 블로그가 거기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봐야 겠다. 





우리 사회의 현실을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게 현명하다. 이 때 현실이란 혼종성, 디아스포라, 그리고 상호교환적인 네트워크가 점차 강해지는 상황이 영속화되고 있는 것을 말한다. 전체 구조를 바꾸는 것은 힘든 일이고, 그럴 필요도 없다. 우리가 자기 자신과 사회, 현실을 위해 무언가를 창조하는 게 더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경쟁력 있는 기관을 설립해야 하고, 가치 중심적 시스템 하에 더 많은 지식인들을 양성해야 한다. 나아가 억측하기를 그만 두고 우리 현실과 관련된 증거들을 생산해야 한다. 이 증거들은 강력하고 새로운 시나리오를 가져올 것이다. 

- 슈시 술라이만 (말레이시아 12Art Space 디렉터) (경향 아티클, 2013년 4월호에서 인용) 




Playing for Dying Mother, 2009

After Puvis de Chavannes’ “Jean Cavalier jouant le choral de Luther devant sa mere mourante,” 1851

Wong Hoy Cheong



The Charity Lady, 2009

After Jean-Baptiste Greuze’s “La Dame de Charite,” 1775

Wong Hoy Cheong






앨버트 허쉬만의 '반동의 수사학'에서 빌어 와 말하자면, 그것은 개선할 수 있는 가치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를 흉내내는 것일 뿐이다. 이것은 반동의 미사여구를 기만적인 것으로 만든다. 가치 밑바닥에 숨어 개선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만약 당신이 그런 수사적인 논쟁을 하게 된다면, 당신의 결론은 '무반응'일 것이다. 당신은 어떤 개선 가능한 행동들을 할 필요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어떤 행동도 효과가 없으며 오히려 역효과를 낳거나 혹은 성취된 것들을 파괴하는 행위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런 반동의 수사학은 여러 분야에서 우리의 삶을 점유하고 있다. 경제적인 인플레이션과 핵무기, 노동자 착취, 도시 개발, 우리 사회에 만연한 정치적 거짓말 등. 만약 아시아 예술가들이 아직도 그들의 가치를 증명하는 데 서구의 시선에 의존하고 있다면, 그것은 혁신적인 게 아닌 자기 식민화일 뿐이다. 당신이 스스로 원하는 바대로 할 지, 아니면 남들이 무얼 하라고 얘기해주길 기다리고 있는지, 당신이 선택하기 나름이라고 난 믿는다. 

- 우 따건 (대만 콴두 미술관 수석 큐레이터) (경향 아티클, 2013년 4월호에서 인용) 








Tu Wei-Cheng

Happy Valentine’s Day

installation

http://collabcubed.com/2012/08/27/tu-wei-cheng-happy-valentines-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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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eepthestyle 2013.06.18 14:36 신고

    '만약 아시아 예술가들이 아직도 그들의 가치를 증명하는 데 서구의 시선에 의존하고 있다면, 그것은 혁신적인 게 아닌 자기 식민화일 뿐이다'
    멋집니다.

    제가 작년에 국내 모 예술제에 다녀왔는데 엄청나게 실망하고 왔다죠.
    솔직히 한국작가들이 창조해 낸 거라면
    그래도 작품속에 타국의 작가들과 구별되는 한국적인 느낌이 담겨있을 줄 알았는데..

    팔기위한 작품을 내놓는 자리의 성격이 강해서인지...
    그 예술제를 한국전체의 작가들의 작품에 확대해석하는 것은 좀 무리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거의 70%는 서구사회에 대한 동경만 담고 있더군요.
    (다행이 30%정도는 한국의 미가 물씬 느껴져서 너무 좋았습니다. 굳이 한국적인 모티프를 사용하지 않았어도 말입니다.)
    게다가... 앤디워홀 모작은 왜 그리도 많던지,,

    여튼 그 이후로 음악이나, 옷이나 주변에 모든 것들을 접할 때마다,
    서구사회와는 구분되는, 그리도 중국과 일본과는 구분된 한국적인 특성이 드러난 것을 발견하려
    부단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물론 전 이 분야의 전공자가 아니기 때문에
    제 편협한 시야로는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요.

    발행하신 포스팅 잘 읽고 갑니다.^^

    • 정체성identity가 중요한데, 우리 사회가 자신의 정체성 찾기에는 소극적인 듯 합니다. 그리고 타인들과 뚜렷하게 두른 '개성적인 자기'를 드러내면 도리어 소외를 당하게 되는 건 아닌가 하고요. 미술 사회(일종의 장 champ)도 마찬가지인 듯합니다. 그 곳도 한국 사회의 일부인지라... 막상 부딪혀보니, 쉬운 일은 아니더라고요. 개성적인 작품을 그린 것도, 그 작품으로 인정 받는 것도 ... 우리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헤쳐나가야 되는데, ... 여튼 대중의 관심이 많이 필요한 부분이 순수 미술 분야인 듯합니다. ~.. ^^
      댓글 감사합니다.!!



"내가 알기로는 19세기에 두세 명의 어린 아이가 태어났다. 사람들이 예기치 못했던 그들은 맑스와 니체, 그리고 프로이트다. 그들은 자연(la nature)이 풍습과 도의, 도덕, 그리고 예법(savoir-vivre)을 해친다는 의미에서는 '사생'아들(enfants naturels)이다. 자연(nature)은 위반된 규칙이고 미혼모이고, 따라서 합법적인 아버지의 부재인 것이다. 서구의 이성은 아버지 없는 아들로 하여금 그것에 대한 비싼 대가를 치르게 하였다. 맑스, 니체, 프로이트는 때로는 잔혹하기까지 한 생존의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그 대가는 배척, 비난, 모욕, 가난, 배고픔과 죽음, 혹은 광기로 기재되어 있다. 나는 지금 그들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다(색깔, 소리 혹은 시 속에서 사형선고를 체험했던 다른 저주받은 자들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들이 과학 또는 비판의 탄생이었기 때문에 그들에 대해서만 말하고자 한다."

- 루이 알튀세르, 프로이트와 라깡, 1964년 ('아미앵에서의 주장'(솔 출판사)에 실림)



오래 책을 가지고 있었지만, 필요한 부분만 읽었다. 그니까 처음부터 완독하지 않았다. 작년에도 한 번 꺼냈다가 읽지 못했고 올해 다시 꺼내 읽기 시작한다. 


실천적 상태로 존재하는 마르크스를 과학적이고도 이론적인 견지에서 다시 재해석하고자 한(이론적 실천) 루이 알튀세르. 하지만 젊은 마르크스가 시인을 꿈꾸었듯이 루이 알튀세르는 한 명의 냉철한 이론가이기 이전에 한 명의 작가로, 예술가로 여겨지는 건 어떤 이유 때문일까.  



아미엥에서의 주장, 루이 알뛰세르(지음), 김동수(옮김), 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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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쿠이 엔위저Okwui Enwezor는 광주비엔날레로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큐레이터이다. 그는 지난 2009년 니콜라스 부리요Nicolas Bourriaud가 기획한 '얼터 모던 Altermodern' 전(영국 런던 테이트미술관)의 카탈로그에서 네 개의 모더니티를 제안하였고 그 내용을 오늘 읽은 '시선의 반격' 도록에서 김현진의 글에서 확인했다. 간단하게 인용하자면 이렇다. 



오쿠이 엔위저는 모더니티를 서구 1세계의 supermodernity, 아시아의 고속개발국가들의 andromodernity, 이슬람권의 speciousmodernity, 아프리카의 aftermodernity로 분류.



큐레이터 오쿠이 엔위저는 자신의 글에서 네 개의 서로 다른 모더니티의 모델을 규정하면서 한국, 중국, 인도와 같은 나라들의 모더니티를 '앤드로 모더니티'andromodernity라고 설명한다. 이것은 서구의 supermodernity를 모델로 받아들여 발전과 선진화에 방점을 두는 개발적 모더니즘을 추구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을 개발의 대안적 모델들을 고민하면서도 일종의 고속 개발을 통해 성취되는 이 하이브리드형 모더니티라고 설명하면서도 남자를 뜻하는 andro라는 단어로 묘사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세우고 부수면서 건설하고 전진해 나가는 남성적인 속성이 여기에 잠재해있다. 


- 김현진(큐레이터) 




내가 위 내용이 무척 흥미로운데,  그 이유는 아직도 '모던modern의 문제'를 다룬다는 것이고, 그 모던-유럽에서 시작된-이 세계 각지로 흩어져 변형되는 것을 오쿠이 엔위저만의 시각으로 해석하고 설명했다는 점이다. 엔위저가 설명하고 구분한 네 개의 모더니티에 대해선 이견의 여지가 있을 수 있지만, 각기 다른 모더니티임에도 불구하고 단일한 시각에서 각 로컬 모더니티를 바라보고자 하는 일반적 접근에 대해 그의 구분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09년 12월에 진행된 전시 도록이다. 아트선재 센터에서 무슨 이유였는지 모르겠지만, 한 권 사서 서재에 놔두었다가 오늘 펼쳐보았다. 


위에서 언급된 오쿠이 엔위저의 의견을 볼 수 있는 글은 'Modernity and Postcolonial Ambivalence'이다. 전자 논문으로 확인할 수 있고 잘 검색하면 복사본 pdf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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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올린 칼스텐 해리스의 글에 이어, 다시 한 편 더 올린다. 전문 잡지에 오래 전에 실린 글은 구하기 어렵다. 좋은 글들이 많지만, 누군가 꺼집어 내지 않는 이상 누구도 찾아보지 않게 된다. 블로그에 누군가의 글을 그대로 옮기는 일이 드문데, 자주 그래야 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찌 된 일인지 좋은 글 보기가 시간이 갈수록 어려워진다는 느낌 때문이다. (내 게으름이 한 몫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아래 글은 월간미술 2002년 2월호에 실린 글이다. 현대미술에 대한 적절한 시각과 평가를 가진 칼스턴 해리스의 인터뷰이다. 지금 읽어도 놀라운 설득력을 가진다는 점에서 필독을 권한다.


- 2002년 2월 월간미술 게재.


독일 철학, 미술사, 건축 이론, 그리고 현대 과학의 역사에 걸친 광범위한 지식을 토대로 모더니티와 그것의 약점에 대해 급진적이고 도전적인 논의로 유명한 칼스텐 해리스 예일대 교수가 최근 건축철학서 《무한과 원근법(Infinity and Perspective)》을 펴냈다.

원근법을 중심으로 보는 것과 그것의 인식론적인 뿌리를 통해 건축뿐만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모든 사람에게 예술의 가치를 설파한 그를 본지 이건수 편집장이 이메일로 인터뷰를 나누었다.


- 2년 전 당신은 《월간미술》에 소개된 특별기고문에서 ‘테크놀러지 사회에서 인간 정신의 존위가치를 보존하는 예술’을 밀레니엄의 예술적 지표로 설정한 바 있다. 이에 대한 생각은 변하지 않았는가?

"나는 그 동안 예술의 최신 흐름과 발달 양상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많은 부분에서 실망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오늘날의 예술세계는 ‘개방성’이 특징이다. 뚜렷한 목표 없이도 오늘날 작가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자유는 정작 작가가 자신의 작업의 의미에 대하여 확신을 갖지 못하게 한다. 대다수 젊은 작가들은 최근 예술경향에 흽쓸려 방황하는 것 같다.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예술을 향한 접근방식에 깔린 불만족은 예술의 윤리적 기능을 다시 찾으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이어지게 한다. 그러나 많은 작가들이 인종, 성(性), 그리고 성적 경향 등 오늘날 주요 문제에 대해 여전히 미숙한 생각을 보여주는 데 만족하는 것 같다.

이는 곧 ‘몸’에 대해 여전히 혼란스러운 우리의 인식과 함께 얘기할 수 있다. 나는 새로운 테크놀러지의 무한한 가능성이 이러한 혼란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몸을 조작하는 새로운 가능성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몸에 대한 우리의 관계가 정말 혼란스럽다면, 그것이야말로 ‘예술의 미래’를 향한 주요한 열쇠가 될 것이다. 책임감이 결여된 무분별한 자유는 그 자신을 전복시킬 것이다. 무엇보다 인간 존재에 대하여 반응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어떤 책임도 없을 것이다. 어떤 사람을 경험한다는 것은 몸, 즉 물질 안에서 구체화된 정신을 경험하는 것과 같다. 과학과 테크놀러지를 통해 가정된 현실을 이해하는 것은 이러한 구체화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없이, 오직 물질만을 이해하는 것이다. 사람을 사람으로 반응할 수 있는 능력은 우리가 과학 밖의 현실을 경험할 수 있음을 가정한다.

예술이 오늘날 직면한 하나의 - 아마 가장 중요한 - 임무는 과학이 세운 세계라는 건물의 창을 이성이 이해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현실적인 것으로 여는 것이다. 나와 다른 사람을 각각 유일무이한 개인으로 경험하는 것은 존중을 전제로 하며, 그러한 창을 여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경험에 관해 예술은 그 자신의 기준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예술이 그 기준이 요구하는 것을 계속해서 만족시킬 수 있을까?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으며, 예견할 수 없다. 그러나 만약 예술이 위에서 언급한 것을 성취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면 더 많은 것을 잃게 될 것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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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또한 그 인터뷰에서 테크놀러지가 하나의 ‘수단(tool)’으로 끝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지털’로 상징되는 테크놀러지가 현대예술에 끼치는 영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또한 테크놀러지의 발전에 따른 인문학과 예술의 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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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내가 주장했던 것은 테크놀러지가 우리의 수단이고 우리는 그것이 우리의 주인, 즉 우리의 삶을 주장하는 독재자가 되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테크놀러지가 인간 본성과 대립하는 방식으로 우리의 삶을 지배할 수 있다는 위험을 경고한 것이다.

이미 말했던 것처럼, 테크놀러지의 전제인 ‘객관화된 이성’은 근본적으로 인간과 인간의 가치를 인지하지 못한다. 바로 이것이 테크놀러지가 우리 삶에 들어와 지배하고 위협할 때 그 테크놀러지를 거부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다. 앞에서 강조한 대로, 오늘날 예술의 중요한 기능은 객관화된 이성이 만든 세계의 창을 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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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테러는 하나의 거대한 참사에 그치지 않고 ‘인류’와 ‘문명’이라는 틀 아래 다양한 의견을 양산했다. 예술철학자로서 당신은 9.11테러를 어떻게 보는가? 그리고 그것이 향후 인류의 역사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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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1일 이후 ‘테러’는 뉴스와 우리 마음속에 너무 많이 언급되어 왔다. 그날 아름다운 아침에 멋진 건축작품이 테러의 목표물이 된 것이다. 어쩌면 세계무역센터가 테러리스트의 마음속에 테러의 목표물이 되도록 유인한 것인지도 모른다. 테러리스트는 세계무역센터가 갖는 상징성을 자신들이 생각하는 가치 있는 삶과는 모순된 것으로 보았고, 따라서 파괴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음이 틀림없다. 세계무역센터의 부재는 이제 미국도 상처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의 상징이 되었다. 테러리스트가 남긴 이 ‘빈 공터’는 우리 삶을 불안하고 공허한 창문으로 여기게 만들었다.

어떤 이는 테러리스트를 겁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이 헌신하는 명분을 위해 자신의 삶과 수천 명의 삶을 희생하는 행위가 비겁함이란 말로 이해되는가? 내가 보기에 그들에게 죽음은 어떤 공포도 주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들이 테러리스트가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경험이 그들에게 이 세상에서의 삶을 쉽게 포기할 만큼 의미 없는 것이라는 확신을 주었을까? 우리는 그러한 부정적인 확신에 대해 논의해야 하고, 그 파괴된 자리에 세계무역센터를 대신할 어떤 기념탑을 세움으로써 그런 확신을 타도해야 할 것이다. 그런 테러를 완전히 종식시킬 수 없음을 깨닫고 약하고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삶을 인정해야 한다. 예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뉴욕커(The New Yorker)》라는 잡지는 9월 11일의 참사에 대하여 아담 자가제스키(Adam Zagajewski)의 시로 끝맺었다.

파괴된 세상을 찬미하려고 노력하라 / 6월의 해가 길던 날들과 / 와일드 스트로베리와 몇 방울의 와인과 이슬을 기억하라 / 그리고 망명자들의 버려진 집을 뒤덮은 쐐기풀도 / 파괴된 세상을 찬미해야만 한다

나는 《뉴욕커》가 9.11테러 기사를 실으면서 잡지 중앙에 파괴되기 전, 석양 속에서 빛나던 세계무역센터의 이미지를 실은 그들의 결정을 높이 평가한다. 또한 잡지의 표지를 검은색으로 처리한 그들의 결정 역시 높이 산다. 왜냐하면 그 검은색 속에서 세계무역센터의 실루엣을 더 검게 했기 때문이다. 그 검은 실루엣은 《뉴요커》의 중심에 있는 빛을 더욱 강조해 주었다. 다시 말해, 어떤 기념물이 들어서든지 그 파괴된 세계를 찬미해야 한다. 나는 세계무역센터의 잔해를 보존하여 쐐기풀들이 그것을 덮은 채 자라길 원하는 지도 모르겠다. 테러에 직면하여 예술은 ‘파괴된 세계’를 찬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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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사회학을 연구하는 버클리대의 마누엘 카스텔스(Manuel Castells) 교수는 ‘정보화시대’에 관한 그의 연작 《네트워크사회의 출현》, 《정체성의 힘》, 《천년의 종언》에서 산업사회의 핵심이었던 정치, 경제 논리와 문화적 정체성이 21세기 정보화 시대를 맞아 그 힘을 잃고, ‘네트워크’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사회로 옮겨간다고 지적했다. 당신은 21세기를 주도할 가장 중심적인 흐름을 무엇으로 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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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내다볼 수는 없지만, 새로운 정보 테크놀러지가 우리의 삶을 변화시켰다는 사실은 알 수 있다. 정보와 테크놀러지가 자유를 가져왔으며 다가오는 시대에도 변함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의심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문명이 발달한 사회는 특정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자신의 성(性)을 갖고, 자신의 언어를 갖고 태어났다는 사실이 어떠한 출구도 없는 운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과거에 생각하지 못했던 물리적, 정신적인 자유를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 몸을 자유롭게 가눌 수 없거나 우리의 성을 바꿀 수 없다면 이것이 하나의 짐처럼 여겨질 수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이며 누가 이런 조작을 하는 것인가? 아직도 본질적인 자아가 남아 있는가? 무엇보다 테크놀러지의 발달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자유를 약속할 수도 있지만, 자아 상실을 가져올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위협이 예술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정보의 충격과 네트워킹과 같은 테크놀러지가 우리 삶에 들어오면서 우리 자신으로 돌아가기 위해 예술을 필요로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우리에게 부여된 가장 중요한 임무일 것이다. 이러한 임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 새로운 테크놀러지는 많은 도움을 주지 못한다. 그러나 예술을 통해 우리의 현재를 논의하기 위해서는 테크놀러지의 도전을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최근 출간된 당신의 저서 《무한과 원근법》을 직접 보내 주어 잘 읽어 보았다. 책을 살펴 보면 독일 철학과 이론, 미술사, 건축 이론, 과학 등에 걸친 광범위한 지식을 토대로 모더니티의 르네상스 신학적인 뿌리와 철학에 대해 깊이 연구했음을 알 수 있다. 알베르토 페레즈-고메즈 맥길대학 교수는 쿠사너스부터 갈릴레오까지 초기 모던 사상가를 연구해 우리 시대를 위한 희망과 가능성의 이야기를 만들어냈다고 극찬했다. 한스 브루멘버그와 알렉산더 코이레 같은 과학 철학자의 사상에 대한 비평적인 자세를 취하며 모더니티의 숨겨진 가능성을 밝혀냈다는 것이다. 최근 당신의 연구 분야에 대해 간단하게 소개해 달라. 미술의 철학적 의미를 찾기 시작했던 때와 지금을 비교할 때 당신의 철학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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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에 출간된 《무한과 원근법》은 작가에게 유용한 책이 되기를 바라지만 예술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그 책에서 나는 몇몇 포스트모던 비평가에 반대하며 ‘모더니즘’을 변호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모더니티가 니힐리즘이라는 그림자에 가려졌던 사실을 이해하고, 그 그림자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밝히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나는 과학과 테크놀러지가 가정하는 현실에 대한 이해를 고찰했고, 그것이 중세 기독교 문화의 자기 발전의 산물임을 증명했다. 우리가 이런 발달의 합리성을 이해할 때, 과학이 가정하는 현실 자체와 동일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이성이 지은 체제의 창을 모든 의미의 근원으로 ‘여는’ 것이 왜 중요한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미 발표된 논문 <이방세계에서. 니힐리즘의 탐험(In a Strange Land, An Exploration of Nihilism)> (19 61)에서 이 문제를 다루었고, 역시 예술의 문제도 다룬 바 있다. 그 논문에서 나는 최근 저서에서 더 자세히 다룬 15세기 추기경 니콜라스(Nicholas)의 작품을 언급했고, 현대예술의 의미를 논의했다. 새로운 리얼리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이제 다시 리얼리티의 의미와 세계와 예술의 관계가 중요한 이슈가 되었다. 그 논문을 통해 나는 예술을 ‘객관화하는 이성으로 세워진 세계’라는 건물의 창을 열 수 있는 하나의 방법으로 보았다.

또한 이것은 《바바리안 로코코 교회:믿음과 탐미주의 사이(The Bavarian Rococo Chu-rch:Between Faith and Aestheticism)》(1983)에서도 쟁점이 되었다. 철학을 전공한 내가 이 책을 썼다는 사실 자체가 바로 아카데믹한 철학을 참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이 하이데거와 르네상스에 관해 다룬 나의 다른 철학 저서와 별다른 차이점은 없다고 본다. 책의 대부분이 18세기 교회를 다루고 있지만 《바바리안 로코코 교회》는 모더니티의 합리성과 한계에 관해 중요한 얘기를 소개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한 현대 세계의 건축의 창을 지금 세계가 무시하려는 리얼리티의 차원으로 다시 열려는 시도였다. 뿐만 아니라 《부서진 프레임, 세 개의 강의(The Bro-ken Frame, Three Lectures)》(1989)와 중국어로도 번역된 《건축의 윤리적 기능(The Ethical Fu-nction of Architecture》(1997)에서도 비슷한 논의를 한 적이 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현재 쓰고 있는 책의 중요한 이슈이기도 하다. 《왜 예술가인가(Why Art)?》라는 가제를 붙인 이 책은 오늘을 살아가는 작가와 현대 예술에 관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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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평소 즐겨 보는 책은 무엇인가? 또한 당신은 어떻게 정보를 섭취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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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질문이다. 역사를 통해 뛰어난 철학가의 책을 포함해 수많은 책이 내게 중요하다. 그중에서도 하이데거(Heidegger)는 특히 중요하다. 또한 《무한과 원근법》에서도 알 수 있듯이 15세기 추기경 니콜라스도 내게 각별하다.

그러나 나는 내 사유의 전개가 책보다 미술작품이나 건축작품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어려서부터 나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무엇이 그림 그리기에 집착하게 했는지 잘 모르나, 그림은 나의 수많은 생각과 늘 함께해 왔다.

건축에 대한 관심도 일찍 시작되었다. 7세 때, 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공습이 계속되는 베를린에서 쾨니쇼펜으로 이주했다. 지금 내게 남아 있는 어린 시절의 기억은 파괴된 건물과 사이렌이 울린 뒤 다락방에서 보았던 불타는 베를린, 그리고 나와 함께 놀던 친구와 그의 집이 폭탄에 맞아 사라진 것이 대부분이다.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세계무역센터가 무너지는 장면을 보았을 때 이런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그러나 나는 베를린을 떠나 피난처로 찾았던 쾨니쇼펜, 그 작은 도시에서 즐거웠던 경험을 말하고 싶다. 그곳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작고 아름다운 교회가 있었다.

그 작은 교회는 나에게 전쟁 중 베를린에서 보았던 것과 완전히 다른 세계를 보여 주었다. 하이데거가 지구를 표현함에 있어 고대 그리스 신전이 세계를 확립했다고 주장하며, 그 신전에 윤리적 기능을 부여했던 것과 같이 나 역시 그 교회에 대하여 미학적이라기보다 윤리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때 나는 이 교회가 세운 세상이 나를 배제시켰을지라도 그 교회가 제시하는 지구에 내가 속해 있음을 깨달았다. 지구와 사람들은 교회나 책보다 내게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 지난 1월 24일 타계한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가 지적한 대로 세계화를 위한 테크놀러지, 경제 등은 문화를 포함한 모든 것을 흡수하려는 성격을 갖고 있다. 과거 인류의 문화유산을 생성해 오던 교육, 교양, 사회활동이 미국이 주도하는 영화, 엔터테인먼트, 오락산업에 흡수되고 있는 게 대표적인 경우다. 이렇듯 세계화에 따른 문화단일화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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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피에르 부르디외가 지적한 ‘발전’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다. 그리고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적인 엔터테인먼트 문화의 등장에 적지 않은 우려를 갖고 있다. 무엇보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는 예술을 위하여 ‘본질’을 회피하고자 하는 엔터테인먼트를 반대해야 한다고 본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세계적인 엔터테인먼트 문화를 만들어 내서는 안 될 것이다.

세계화에 대한 불안감은 근본주의와 파시즘을 더욱 잘 받아들이게 했다. 세계무역센터 테러로 인해 우리는 서로 충돌하는 다른 가치체계와 그것이 갖고 있는 근원적인 약점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문화적 가치는 변화한다.

그러나 그런 가치의 어떤 변화도 그저 주어지지는 않으며, 거기에는 매우 사려 깊은 숙고와 저항이 요구된다. 작가들이야말로 그러한 심사숙고와 저항에 많은 기여를 해야 하며, 철학자 역시 의미 있는 기여를 해야 한다. 철학자는 무분별한 철학 용어를 남발하지 않는 가운데 자신의 방식을 지킬 수 있으므로 엔터테인먼트 산업과 철학을 연계하는 것에 쉽게 빠져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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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변화하는가? 만약 변화한다면 어떻게 느낄 수 있는가?

"세기를 거칠수록 예술, 그리고 예술의 사회적 기능은 변화하고 있다. 유럽에서 18세기는 중요한 시작을 의미한다. ‘예술을 위한 예술’이 종교적?윤리적 기능의 예술을 대신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수백 년 동안 예술은 많은 변화를 거쳐 왔다. 가장 중요한 발단은 1960년대일 것이다. 아서 단토(Arthur Danto)는 ‘예술의 죽음(종말)’에 대해 말했다. 나는 추상표현주의의 절정이 예술의 종말이라고 말했던 단토의 주장을 반박할 수 없다. 단토의 주장처럼, 지난 40년간 예술(세계)에 어떤 명확한 방향을 제시한 새로운 담론은 나타나지 않았고, 우리는 이런 현상을 슬퍼하기보다 오히려 ‘해방’으로 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방/자유’란 방향 상실을 의미한다. 예술은 점점 그 중요성을 잃어가고 있다. 쿤데라는 예술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 대해 말했다. 그러한 가벼움이 헤겔이 예술의 최고 기능으로 간주한 인간의 심오한 관심사에 대한 예술의 참여를 되찾으려는 갈망을 품게 하는 것이다. 헤겔은 예술을 보지 않고 그에 대한 관심을 언급하는 학문이 내놓는 견해를 들으려는 것이 ‘모더니티’의 특징이라고 했다. 사고와 숙고가 예술을 대신하게 된 것이다. 헤겔의 생각은 쉽게 무시할 수 없다. 성(性)?인종 같은 이데올로기적 문제에 관한 언급을 예술이 다시 감당할 수 없다. 미숙한 철학적 개념을 품고 있는 일러스트레이션이 과거 예술이 갖고 있던 최고의 기능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예술의 최고 기능을 되찾음으로써 헤겔이 틀렸음을 증명하는 예술을 중시하는 하이데거와 의견을 같이한다. 다만 오늘날 한 명의 뛰어난 작가에게 이러한 예술을 기대할 수 없다는 점이 애석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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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이미 지적한 대로 현대미술은 진정한 대안을 제시할 힘을 상실한 채 공허한 반복을 거듭하고 있다. 여전히 현대미술은 종결되어야 하는 것인가? 현대미술을 대신할 수 있는 그 ‘무엇’이란 과연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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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예술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이성이 세운 세계의 창을 여는 것이다. 텔레비전, 인터넷 그리고 영화가 이런 창을 열 수 있을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비유를 들어 답을 얘기한다면, 15세기 서양에서 미술은 원근법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 원근법은 부르넬레스키(Brunelleschi)와 알베르티(Alberti) 때의 작가에게 마술과도 같았던 세계의 모습을 재현하는 인위적인 방식이었다. 그러나 플라톤이 예견했듯이 이러한 마술의 대가는 리얼리티의 상실, 초월성의 상실이었음을 곧 깨닫게 되었다. 리얼리티는 그것의 연극적인 재현으로 대치되었다. 미술 자체가 시뮬라크라의 창조물임을 인지한 미술이 어떻게 관람객을 리얼리티로 이끌 수 있단 말인가? 내 대답은 이렇다. 관람객으로 하여금 자신이 육체에서 분리된 눈 이상임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관람객이 자신의 물질성, 물감?캔버스?종이의 물질성, 그리고 종이 위의 붓자국을 통해 물질 속에 정신을 구체화하는 경험으로 깨닫게 해야 한다. 인간을 보는 것은 물질이 지닌 의미의 구체화를 경험하는 것이다. 객관화된 이성은 근본적으로 사람을 만나 겪는 것과 기계를 경험하는 것을 구별하지 못한다.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서, 텔레비전, 인터넷 그리고 영화 등은 ‘초월성’으로 창을 열 수 있으나 단지 우리가 관심을 갖는 작품의 ‘인공성’을 깨닫는 데 쓰일 뿐이다. 이러한 인공성을 깨닫는 방법은 르네상스 작가가 원근법적 재현의 기교를 물감과 캔버스의 물질성을 비교하여 그 인공성을 보여 주었던 것처럼, 뉴미디어가 만들어 내는 시뮬라크라(simulacra)와 진짜 사람을 구별하는 것을 찾아내는 것이다."

- 동양과 서양이 모든 면에서 차이가 있는데도 지금까지 서구의 문화를 기준으로 동양의 문화를 바라본 게 사실이다. 동양과 서양의 차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리고 동양과 서양 미술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 예술 작품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요구되는지 잘 알고 있다. 또한 동양 예술에 대한 나의 지식이 매우 부족하기에 이 질문에 답하기가 머뭇거려진다. 위험을 무릅쓰고 두 가지 점에 대해 얘기하려고 한다.

전통적인 동양 예술은 내게 완전히 다른 세계의 것이 아니다. 나에게 친숙한 서구 역사에서 동양 예술을 쉽게 접할 수 없기 때문에 오히려 그것의 본질을 직접 경험할 수 있다. 다른 시대, 다른 문화의 예술 작품을 경험함으로써 본질적인 인간성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동양과 서양의 중요한 차이는 서양이 동양에 비해 혁신과 발전에 가치를 두어 왔다는 점이다. 테크놀러지를 생각해 보자. 그리고 경제학자의 생각 속에 자리한 발전에 관한 수치를 생각해 보자. 이런 것은 현대미술에서 매우 흥미롭게 나타난다. 뒤샹이 보통 변기를 전시하고 그것을 작품이라 불렀을 때, 변기와 작품의 분류에 대한 고의적인 혼란은 분명 아름답지 않았지만 매우 흥미로웠다. 오래 전 키에르케고르가 보여 주었듯이, 흥미로움을 추구하는 것은 종말로 끝나기 마련이다. 지금 현대미술은 그 종말에 다다른 것이다.

따라서 창의성과 혁신, 그리고 발달을 별로 중시하지 않던 전통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필요하다.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해 보자. 자원이 한정된 지구가 얼마나 많은, 그리고 어떤 종류의 발전을 감당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 그것이다. 아직 멀게 느껴지나 자연의 재앙을 대비하는 일에 작가들도 참여해야 한다. 동양, 특히 동양의 작가들은 이런 문제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발전은 때로 유익한 것이나 종종 그에 대해 반대의견을 개진할 수 있어야 한다."

- 동시대 예술과 관련하여 반미학 또는 탈예술 논의는 이제 공공연한 현실이 되었다. 이런 현실에서 ‘숭고’와 ‘아우라’를 향한 논의가 과연 어떤 의미를 갖는가? 만약 의미를 갖는다면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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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건축은 현대 회화나 조각보다 내게 더 많은 의미를 준다. 금년에 탄생 150주년을 맞는 안토니오 가우디(Antonio Gaudi)와 수많은 현대 건축가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특히 가우디의 건축물은 나를 감동시켰다. 그의 건축물은 현대 세계로의 창을 열어 주었다. 현대 건축에서는 일본의 안도 타다오(Ando Tadao)가 있고, 핀란드인인 주하 레이비스카(Juha Leivisk?도 있다. 그의 작품 미르마크(Myrmakk) 교회는 핀란드의 우울한 겨울에도 빛으로 가득 차 있다. 또한 베를린에 있는 다니엘 리베스킨드(Daniel Libeskind)의 유대인 박물관은 완성되기도 전에 나를 감동시켰다. 나는 이러한 건축가들로부터 빛이 물체를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방식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내게 감동을 안겨 준 미술작가의 이름을 말하는 것은 쉽지 않다. 최근에 게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 안젤름 키퍼(Anselm Kiefer)의 작품이 나를 감동시켰다. 그러나 세잔(Cezanne), 드가(Degas) 혹은 멘제(Menzel)에 감동했던 것에 비할 바는 아니다. 나는 헤겔의 주장처럼 ‘예술이 죽었다’는 가능성을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시 반복하자면, 하이데거처럼 나 역시 헤겔의 생각에 이의를 제기하고 반대한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곧 출간될 책에서 오늘날 예술이 필요한가에 대한 논의를 심화시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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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 아트와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동시대 예술은 대중문화와의 상관성 속에서 이해되고 논의되고 있다. 이런 현실은 ‘스펙터클의 사회’ 또는 ‘키치’ 개념이 대변해 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키치’가 갖는 의의는 무엇이며, 키치가 동시대 미술에 기여하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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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더니즘은 잘 정의되지 않은 현상 혹은 모더니즘에 대한 적대감을 공유하는 현상이다. 나는 최근 저서에서 이런 적대감에 잠재된 가설을 고찰했다. 우리는 아직 모더니스트의 프로젝트도 이루지 못했고 모더니즘의 도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나는 이미 건축에서 모더니즘의 표현방식으로 회귀하는 움직임을 보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현대의 건축가 대부분은 후기 모더니스트의 표현방식을 사용한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화가와 조각가에게서도 나타나고 있다.

모더니즘의 초기 단계부터 키치와의 논쟁이 있었다. 이 논쟁을 제쳐두고 현대미술을 생각할 수 없는 것도 분명하다. 키치는 스스로 윤리적 기능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노먼 록웰(Norman Rockwell) 또는 살바도르 달리(Sal -vador Dali)를 보자. 아니면 안젤름 키퍼는 어떨까? 그 역시 키치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것은 나의 저서 《건축의 윤리적 기능》에도 해당된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키치라고 불리는 작품을 경멸하는가? 여기에는 무언가 부정적인 것이 암시되어 있다. 우리는 키치가 주장하는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가치가 리얼리티로 향한 창을 여는 대신 단지 시뮬라크라 혹은 폐허가 된 가치체계의 단편으로 그저 세계를 치장하는 생각쯤으로 여기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미술이 키치에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금송아지 우화’의 교훈처럼, 신(神)이 부재하면 인간은 시뮬라크라를 만든다. 그러나 시뮬라크라에 의존하는 것은 인간 스스로 자신을 시뮬라크라로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키치에 대한 논쟁과 투쟁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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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전문지를 즐겨 보는가? 만약 미술전문지를 보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현재 미국 등 각국의 미술전문지가 지향해야 할 방향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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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전문지에 큰 관심은 없으나 내 아내가 미술사학자인 관계로 정기적으로 꽤 많은 잡지를 구독하고 있다. 무엇보다 미술전문지는 현재 미술(세계)에서 일어나는 일과 미술이 발전하는 양상을 계속 보여 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미술전문지는 현재 이루어지는 비평과 이론을 더 많이 소개해야 한다. 그러한 이론과 사고가 예술세계의 중요한 부분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미술전문지는 미술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에만 관심을 국한해서는 안 되고, 미술 관련자만을 독자로 생각해서도 안 된다. 미술전문지는 미술과 세계의 관계에 대한 질문, 즉 왜 미술이 중요한가, 왜 미술이 있어야 하는가, 그리고 어떤 종류의 미술이 필요한가와 같은 질문을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

정리 - 윤동희 기자 | 번역 - 김민아 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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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스텐 해리스(Karsten Harries)는 1937년에 태어나 예일대에서 박사학위(1962)를 받았다. 저서로 《Ba -varian Rococo Church》, 《The Broken Frame : Three Lectures》, 《The Ethical Function of Archit-ecture》 등이 있으며, 《The Meaing of Modern Art》는 《현대미술 - 그 철학적 의미》로 국내에 번역되어 소개되었다. 현재 예일대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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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예일대 칼스턴 해리스 교수가 2000년 월간미술에 기고한 글이다. 독자들에게 현대 미술에 대한 철학적 접근을 도울 수 있는 좋은 글이 될 것이다.

칼스턴 해리스 교수는 국내에서는 '현대 미술, 그 철학적 의미'(서광사)라는 책으로 잘 알려져 있다. 책의 가치에 비해 널리 알려진 책은 아니지만, 현대 미술에 대해 인문학적 견지에서 알고 싶어하는 이들에겐 내가
강권하는 책이다. 나 또한 이 책 이후로 현대 미술에 대한 뚜렷한 시각이 생겼을 정도이니까.

현대미술
K. 해리스 저/오병남,최연희 공역


월간미술 2000.2 특별기고



세 번째 밀레니엄을 맞이하여, 본지에서는 지난 호에 미술계의 주요 담론인 ‘예술의 죽음’에 대한 세계 석학들의 의견을 소개한 바 있다. 이번 호에는 예일대에서 예술철학을 강의하고 있는 해리스의 글을 통해 21세기 세계 예술을 예견해본다. 현대 예술의 범주와 역할을 헤겔, 하이데거, 단토의 미학적 논의로부터 이끌어내는 그는 테크놀러지 사회에서 인간 정신의 존위가치를 보존하는 예술을 새 천년의 예술적 지표로 설정하고 있다.



예술의 죽음에 대한 소고
- 칼스턴 해리스(Karsten Harries, 예일대 교수 Brooks and Suzanne Ragen Professor of Philosophy)   



수의 신비(mysticism)는 지금까지 나의 주의를 끌지 못했다. 그러나 2000년이 다가오면서 내가 제일 걱정했던 것은, 혹시 내가 세기가 넘어가는 그 순간에 잠들어 인류가 세 번째로 맞이하는 밀레니엄을 깨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맞이하게 되지나 않을까였다. 인류 전체가 흥분하는 그 시간대에, 폭죽과 흥분이 나의 주위에서 역력할 때, 그리고 무엇보다 세기가 교차하는 그 순간에 만에 하나 잠이 들어 있다고 한다면 조금은 무책임한 사람으로 간주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우리는 앞으로의 문화 전체를 바꾸거나 위협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이 진행과정에서, 연도를 쓰는 자리에 0이 세 개나 들어간다는 것에 대해서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우리들이 진정으로 가야 하는 방향이 어디인지 또는 무작정 무언가에 이끌려가고 있지는 않은지 좀더 책임감을 가지고 앞길을 헤쳐나가야 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하여 생각해봐야 할 때다.

나는 작가들에게 두 가지 질문을 해보고 싶다. 예술 역시 문화의 다른 측면들과 같이 그 형태가 과거와 많이 달라질 것이라는 도전을 받고 있으며, 긍정적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위협적일 정도의 힘찬 진행과정에 잡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변형은 가끔은 우리들에게, 과연 이 모든 프로세스가 끝났을 때 그 결과물을 우리가 예술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될까라는 의문을 가지게 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아더 단토(Arthur Danto)는 이러한 이유에서 ‘예술의 종말(End of Art)’에 대해 말한다. 오늘날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또 자칭 예술이라고 하는 여러 부류의 작품들이 만들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이렇게 현재 세계의 미술시장이 호황을 거듭하며 번창하고 있을 때 예술의 종말에 대해 얘기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반박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진정 번창하고 있는 오늘날 미술세계의 지표는 과연 무엇일까? 오늘날 미술의 단면도들이 그 종말을 예고하거나, 벌써 죽어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단토는 현재 평론가로서 활동하며, 유동적인 미술시장에 대해서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자신도 미술의 종말론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이 전혀 새로운 관점이 아니라는 사실 또한 알고 있다. 그는 헤겔의 이론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헤겔 역시 미술의 종말론에 대해 언급했기 때문에 그의 이론과 단토의 이론은 비교해볼 만하다.

하이데거는 자신의 저서 《예술 작품의 근원》에서 헤겔의 세 가지 입장을 밝히고 있다.
a. 예술은 더 이상 우리에게 진리라는 이름하에 형상을 가진 가장 높은 형식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b. 혹자는 예술이 계속 발전하고 완벽한 형태를 취하기를 바라겠지만, 그것은 이제 더 이상 우리의 영혼이 애타게 찾는 것이 아닐 것이다.
c. 이러한 상관관계 속에서 예술은 우리들에게 그 역할이 주는 의미에 한해서 과거의 것으로 남겨지게 될 것이다. 헤겔이 이 말을 한 것은 1820년대의 일이다. 그 이후에도 많은 컬렉터들을 만족시켜주었던 수많은 작품들이 나왔다는 사실은, 어쩌면 이 말이 근거 없는 이론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서 짚어볼 만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예술이 지닐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는 측면’에서 생각해본다면, 과연 ‘예술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하는 것이다. 예술의 역할이 무엇일까? 그리고 그 역할을 충족시켜주는 예술이 있다고 하다면 과연 그것은 우리들에게 앞으로 어떤 변화를 가져다 줄 것인가?

헤겔의 이론은 19세기 초반에 씌여진 것이고 단토가 자신의 예술 종말론에 대해서 생각을 펼친 것은 20세기의 예술 전반을 관찰한 후였다. 이러한 사실은 두 사람 모두 예술의 종말론에 대해서 말은 했지만 서로 다른 이해 속에서 그 이론을 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여기서 현재 우리의 생각에 가장 큰 도전장을 내는 것은, 현재의 예술시장이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이하면서 전보다 더 생동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의문이다.

예술시장은 다른 어떤 때보다 현대에 와서 번성하면서 거대해지고 있다. 이러한 때에 우리들은 단토가 말한 예술의 종말론과 이렇게 번창하는 예술시장의 거대한 사업들이 어떤 식으로든 관계가 있을 것이라는 의혹을 갖게 된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를 캐묻는다면 현재 예술이 종말을 맞이하였다고 말할 근거가 과연 어디에 있을까?

‘예술이 죽었다’는 것은 현재의 예술시장의 단면도를 보면 자연스럽게 드는 생각이다. 지금 세기를 이끌고 나가고 있는 화랑들이 내보이는 예술 형태들은 우리에게 예술의 진정한 의미를 뒤에 버려둔채 전진하고 있는 것 같은 의구심을 갖게한다. 단토는 현재 미술시장에 놓인 ‘거대한 먹구름’ 에 대해서 말을 한다. 이는 예술가들과 평론가들 사이에 “과연 예술이 미래가 있을까” 와 같은 비관주의가 퍼져 있는 것을 지적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앞시대의 폴록과 로드코, 그리고 칸딘스키와 피카소는 가졌지만 현대 예술가들에게 없는 것은 무엇일까? 일단 먼저 답을 해보면 칸딘스키와 피카소는 그들의 예술세계 안에서 하나의 이야기(narrative)를 완성함으로써 작품 자체를 하나의 완성된 예술 형태로 인식하게 했다. 오늘날 이러한 이야기 방식의 예술은 대부분의 현대 예술가들에 의해서 예술의 진정한 형태가 아니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헤겔과 단토가 말하였던, 예술이 종말을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이 분명하게 드러나게 된다. 헤겔은 훌륭한 예술작품은 그 작품성 자체보다도 그 작품이 전해줄 수 있는 진리의 형상을 사람들이 읽고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진리는 예술을 통해서만 전달될 수 있는 것이다.

즉, 예술작품은 비록 하나의 물질이지만 그 안에서 의미가 구현되어 나타날 수 있음을 본 것이다. 지금과 같이 과학적인 이성이 사회 전반에 진리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을 때에 예술 역시 또 하나의 진리의 형상이라는 말을 할 여력은 우리에게 남겨져 있지 않다. 헤겔이 예술의 가장 높은 가치로 간주했던 ‘예술의 죽음’은 단토가 ‘예술을 위한 예술’이 죽었음을 알리는 전주곡(presupposition)이 되었다.

‘예술은 죽은 것’이라는 생각의 시초는, 예술가들이 철학적인 사고의 바탕 위에서 예술의 정수와 죽음에 대해서 생각한 것에서부터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다. 단토는 여기에서 포스트 모던 예술의 개념을 처음 시작했던 마르셀 뒤샹과 앤디 워홀의 중요성에 대해 말한다. 오늘도 여러 형태의 작품들이 제작되면서 예술의 의미를 찾으려고 하고 있으며 또한 작업을 하면서도 자신들 내에서의 의미에 대해서도 캐묻고 있다. 현대 예술은 가끔 지나온 자리를 돌아보면서 ‘미’ 에 대해서 의문을 품으며 그 문제에 대해 질문을 던지곤 한다. 하지만 예술이 이제는 보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미학적인 오브제로 즐거움을 준다는 생각은 현대의 예술가들에게는 적용되지 않게 되었다.

단토는 워홀이 제작했던 브릴로 박스의 중요성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브릴로 박스는 추상회화를 추구했던 스티브 하비라는 작가가 생계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만들었던 것임을 지적한다. 하지만 워홀의 브릴로 박스는 그 진짜 제품보다 올덴버그나 리히텐슈타인의 작품들과 더 흡사한 면을 가지고 있다.

나는 여기서 단토가 지적하는 이 두 개, 즉 우리가 가게에서 살 수 있는 브릴로 박스와 작품안에 있는 브릴로 박스의 차이점을 지적한 것에 대해서 동감하지 않을 수 없으면서도 다른 관점으로 이것을 해석하고 싶기도 하다. 단토가 지적하였던, “왜 상점에 있는 브릴로 박스는 예술이라는 이름이 붙지 않고 워홀이 만든 브릴로 박스는 예술이라고 불리는가”에 대해 더이상 예술이라는 테두리 내에서는 그 답을 찾을 수 없다. 여기에는 철학적인 사고가 개입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논쟁들은 또한 헤겔과 같이 진정한 예술은 정신과 영혼에게 호소할 수 있어야 한다는 단토의 이론과 맞지 않게 된다. 물질 속에서 정신은 느껴져야 한다. 위대한 예술이 우리들에게 주는 의문점은, 어떻게 그것이 우리의 영혼에 호소하여 하나의 정신으로 구현될 수 있는지 그 궁금증을 자극한데서 시작한다. 과거의 위대한 예술품들은 수수께끼로 남아 있게 된다.

이렇게 예술을 이해하게 되면, 극단적인 경우에는 예술작품을 보았을 때 관객들이 그 작품을 작가 아이디어의 한 도면으로만 인식하게 되어 그 예술작품은 언젠가 버려질 수 있는 것이 될 것이다. 오늘날 예술이라는 이름하의 작품 대부분은 이렇게 하나의 이슈가 아이디어가 되어서 기호화된 것이다. 성과 인종, 건강, 그리고 테크놀러지 등의 이슈들을 내걸고 세계를 자극하려고 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예술은 그 의미가 가벼워졌다. 작품들은 생각의 이미지들을 나타내주는 하나의 장식으로 그 역할이 축소되었다. 예술이 이렇게 작가의 생각과 이론들을 나타내주는 하나의 장식적인 도구가 되었을 때에는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이 주장은 확실히 예술은 물질 안에서의 의미의 화신이 되어야 함을 가정하고 있다. 여기에서의 의미는 손실 없이 다른 표현방법에 의해 해석될 수 없는 의미다.

단토는 뒤샹과 워홀이 - 그리고 현대의 앞서가는 예술가들이 - 철학적이었다는 것을 우리들에게 이해시켜준다. 이렇게 예술을 ‘철학적인 것’으로 한정하는 것은 곧 하나의 역사가 단락될 것을 말한다. 예술작품을 완벽하게 이해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은, 그것을 다른 각도로 볼 수 있게 하는 객관성을 무시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헤겔은 이러한 이론을 예술이 아닌 다른 측면을 설명할 때 펼치기도 하였다. 즉, 영혼에 대해서다.

헤겔은 정신적인 세계는 그 발전과정에서 감각적인 것과 예술의 영역을 버리고 앞으로 나아갔다고 한다. 헤겔에 의하면 우리 현대인들은, 이보다 진화가 덜 되었던 문명보다도 예술의 필요성을 더 느끼지 않는다고 하였다. 헤겔이 예술의 종말론에 대해서 말을 했을 때에는, 이른바 발달하는 정신세계의 단면과 연관지어서 설명 하는 것이었다. 헤겔은 이렇게 예술이 그 진정한 의미를 잃고 죽어 가는 것에 대해서 우리들은 슬퍼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것은 다만 인류가 나아가는 방향일 뿐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해석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우리들은 현대의 예술을 심사숙고하면서도 과연 무엇인가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혹은, 이러한 예술의 죽음에 대해서 말을 하는 단토의 이론 속에서, 우리들은 죽음 뒤에 승화된 새로운 예술형태, 즉 헤겔이 밝힌 가장 긍정적인 결과물에 대해서 가능성을 가져야 할 것인가?

하이데거는 이렇게 예술을 다시 이해한다. 즉 “진리가 그 형상을 드러낼 수 있는 가장 최고의 방식”으로. 하이데거는 이렇게 예술이 참된 존재로 남겨지기를 요구한다. 하이데거는 현대의 사회 형태, 즉 이성적인 사고, 그리고 과학과 테크놀로지가 지배하는 사회 내에서는 진리를 찾을 수 없다고 말한다. 하이데거 역시 헤겔이 밝혔듯이 사람들에게는 전환점이 필요하며, 그 전환점을 통하여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아가는 이유를 그리고 그 삶의 의미를, 물질을 통한 정신적인 승화를 줄 때, 그 경험을 통하여 진리의 형상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헤겔은 이러한 하이데거의 극단적인 이론을 반기지 않을 것이다. 그는 데카르트적인 이성 쪽에 서 있었다. 즉, 헤겔은 예술이 죽음으로써 줄 수 있는 가장 긍정적인 결과물로 승화된 정신성이 재현될 것이며 인간이 발전하는 데 정신성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인다. 단토 역시 이 이론을 따르고 있다. 단토는 현대 예술이 종말을 맞이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예술이 탄생할 것이라는 말에는 동의했다.

단토가 어둡고 신화주의에 빠져 있으면서 리처드 바그너의 전통을 따르고, 헤겔의 분명한 논리를 가지면서 계몽적인 사고방식과 이성적 힘을 소유한 작가 안젤름 키퍼에 대해서 말하며 그를 강조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아마도 우리는 ‘하이데거 : 키퍼 = 헤겔 : 워홀’ 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아직도 키퍼를 저버릴 준비가 안되어 있다.

나의 최근 저서 《건축의 윤리적인 기능에 대하여》에서 나는 물질이 사람들에게 전달해줄 수 있는 의미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나는 그 책에서 나는 ‘물질의 리얼리즘’ 에 대해서 언급하였다. 즉, 건물들이 유리?콘크리트, 그리고 돌과 벽돌 및 나무들로 지어지지만 건물의 완성된 형태 속에서 전혀 다른 이미지로 새로 태어나며 그 물질들이 시각적으로 의미를 지원해 줄 때, 다양한 물질들이 줄 수 있는 다양한 예술에 대해서 생각하였다. 여기에서 결코 의미가 물질을 완전히 떠난 것이라는 이해는 피해야 한다.

이러한 예술 형태와 건축물은 물질 속에서 같이 공존하는 의미를 더 나타내주는 것이다. 여기서 나는 헤겔과 단토를 반박하며 하이데거의 이론에 동감하게 된다. 나는 물질에 대한 진정한 탐구 안에서 의미있는 진수를 알 수 있게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물질세계의 실제주의에 대한 언급들은 나의 첫 저서인 《현대예술의 의미》로 시각을 돌리게 한다. 나는 그 책에서 당시 프랭크 스텔라에 의하여 대표되었던 미적 이론을 반박하였다. 그 안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 내에서 찾을 수 있는 수많은 의미들을 직면하고 포용할 수 있는 사실주의, 즉 ‘새로운 사실주의’ 에 대한 필요성을 말하며 결론을 내린바 있다.

스텔라는 당시 다른 현대의 작가들과 함께 현재성을 강조한 예술을 하였었다. “나의 작품들에서 사람들이 느꼈으면 하는 것은, 그리고 내가 내 작품 안에서 가질 수 있는 것은 작품을 대했을 때 혼돈스러운 잡음없이 바로 작품 전체를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당신의 앞에 놓인 것을 보는 것이 바로 당신이 얻어 가는 것이다.” 이것은 예술이 곧 그 자체로서 이해되어야지 다른 이중적인 의미나 그 너머의 세계가 있을 것이라는 전제를 없애버리자는 사고였다.

즉, 예술은 더 이상 하나의 암시적인 의미를 표현하거나 수수께끼가 되기를 멈추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물질’은 ‘정신’이 되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미술품은 의미를 버린 채 다만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작품 자체의 존재성을 위하여 작가는 의미에 등을 돌리게 된다. 이 이론을 바탕으로 누군가는 새로운 물질주의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새로운 물질주의는 의미에 관심을 가지지 않은 채 떨어져 있으려고 한다.

이렇게 의미를 찾으려 하다가는 그 물질의 현존적인 의미가 가려질 수 있다는 이론도 나올 수 있다. 가령 글자가 인쇄된 한 장의 인쇄물을 생각해볼 수 있다. 당신이 매일 읽는 신문도 마찬가지다. 이야기에 심취되어 당신은 그 문자들이 거기에 있다는 생각도 잊고 있을 것이다. 문자들은 이렇듯 물질로서 올바르게 작용하였을 때에 투명한 물질이 되어 그것이 처음에 하려고 하였던 역할을 완수할 수가 있다.

우리들은 문자들을 통과하여 그것들이 주는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가끔 이러한 문자들은 카메라나 혹은 작가들에 의해서 크게 키워지기도 한다. 그것들은 처음에 맡았던 역할에서 벗어나 브루수 나우먼이 작업에 사용했던 것같이 AH HA 라는 문자들로 재현되기도 한다.

작가의 손에 의해서 한때 의미가 충분하였던 문자들은 문자 그 자체가 하나의 물체가 되어버린다. 이렇게 되었을 때는 반전이 일어난다. 문자들은 의미가 없어져 버린다. 사람들이 보통 놀랐을 때에 드러내는 단순한 표현이 갑자기 부풀려져 소리가 없는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다. 우리들은 이 세계에서 의미를 찾고 있다. 침묵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 끝없는 대화들은 곧 침묵을 덮어버릴 것이다. 사람들이 나우먼의 작품을 화랑에서 본다면 그들은 쉽게 그곳에 의미를 부여해버릴 것이다. 그것을 현대예술의 한 측면으로 이해하고 아우라를 통하여 신성함을 나타내줄 수 있는 추상회화로 판정할 것이다. 어떻게 벤야민과 보들리에를 읽으면서 성장한 현대 평론가가 현존에 대한 찬미를 할 수 있을까?

나우먼은 절대적으로 자신의 작품이 아우라를 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부인한다. 나우먼은 말레비치가 그의 신비로운 작품 〈아하 - 체험(Aha-Erlebnis)〉을 통하여 추구한 바 있던, 즉 거의 아무런 형상도 그려지지 않는 캔버스의 침묵이 줄 수 있는 의미를 관객들이 그 빈 공간의 의미를 파악하도록 했다. 하지만 나우먼의 ‘AH HA’ 는 우리들에게 이러한 말레비치의 의문점을 더 심도있게 경험하게 해준다.

나는 이 상황에서 아주 자신만만한 관객이 자신있게 “Aha!” 하면서 “역시 내가 예상했던 대로 임금님은 아무 옷도 입고 있지 않군”하는 것을 상상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을 추상회화의 흐름으로 간주함에 따라 나우먼의 작품은 존 발데사리의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은 2차원의 화면에서는 아무것도 찾을 것이 없다〉와 같은 부류에 속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마크 로센탈은 나우먼의 그 작품을 〈순수 추상 비판전〉에 포함시킨 것이었다. 하지만 여기에서 또다른 점에 착안하지 않을 수 없다. 왜 발데사리의 작품 제목이 도리어 그의 작품을 더 실감나게 하지 못했을까.

분명히 그 검은 마크들은 하얀 캔버스의 침묵을 깨고 있다. 말을 하라고 한다. 하지만 너무나도 분명한 그 제목은 우리들을 점점 더 의미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우리들은 그 검은 마크들에 쏠리게 된다. 그리고 그것들은 작품에 있어서 의미를 모두 버리게 한다. 마치 너무나도 당연하고 의미없는 작품을 우리들로 하여금 보게 하듯이. 여기에서 물질은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도 주지 못하게 된다. 우리들은 도리어 더 분명해져야 하는 상황에 고개를 갸우뚱하며 의문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스텔라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물질적 현전에 대한 모더니스트들의 찬미는 “작품은 존재하는 정신성의 현존”이라고 말하는 비평가들의 이론과 대비된다. 하지만 이 이론 역시 의미와 물질의 관계를 엮어주지는 못한다. 이렇게 불분명한 관계는 도리어 우리들에게 의미를 줄 수 없는 물질들, 그러나 종국에는 의미를 완전히 저버리게 하는, 즉 의미가 있음에도 의미를 보지못하게 하는 물질들을 남겨준다.

이렇게 분리된 의미와 물질 사이의 공백은 새로운 형태의 예술 분석 방법을 필요로 한다. 의미가 계속 발견되려면 의미는 물질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 물질은 그 안에 의미를 가득 담고 있어야 한다. 그 둘이 떨어질 수 없는 관계가 될 때까지. 현대에 들어와서 얼마나 많은 물질 안에서 새로 승화되는 의미에 대한 논란이 많은지 우리는 알고 있다. 이것은 우리 주변에서 지금 행해지고 있는 자연과 물질에 대한 연구와도 흡사한 것이다. 이 연구 안에서 물질은 그 순위에서 뒤로 처지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이론들이 현실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우리들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우리들에게는 예술이 필요하다. 객관적인 이성이 지어 놓은 집에 있는 우리들에게는 창문이 필요하다. 창문을 열어서 우리들을 초월적인 세계로 인도해줄 예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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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Karsten Harries

“인간의 존위가치를 보존하는 예술이어야 ”

당신은 헤겔과 단토가 말한, ‘예술의 종말’을 두고, 그들의 관점에서 바라본 예술의 역할론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제기하고 있다. “물질에 대한 진정한 탐구”는, 곧 테크놀러지의 본질은 인간의 도움없이 그 자신의 변화를 이끌 수도 없고 또 인간적으로 극복되는 것도 아니라는 말인가?

21세기를 맞이하면서 예술과 철학이 직면할 수 있는 가장 큰 쟁점은 테크놀러지 전반에 대한 사회적 이해의 중요성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현재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숙제는 테크놀러지 가능 영역이 갖는 힘과 그 한계를 인지하는 일이다. 테크놀러지가 가능하게 해줄 수 있는 과학의 여러 영역을 빠른 시일 내에 분석하여 그것이 넘어설 수 없는 부분들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일찍이 니체가 그랬던 것처럼, 테크놀러지가 우리들의 삶을 위협할 때에는 그 합법성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할 것이다. 과학 그 자체의 지적 능력에는 가치라는 영역이 없기 때문이다. 테크놀러지가 사회내에서 좀 더 확대된다면 우리를 니힐리즘으로 인도할 것이다. 이런 사실로 우리들은 테크놀러지가 가치를 지배하는 사회는 결코 있어서는 안 될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하나의 수단(tool)으로 끝나야 하는 것이다. 테크놀러지가 하나의 자율적 인격체로 승격되어서는 안 된다.

인간과 동일한 지능을 가진 컴퓨터 시스템을 만들려는 노력이 지속되고 있다. 반면 이런 노력의 무모함을 지적하는 논변 또한 제출되고 있다. 인공지능(AI:Artificial Intelligence)의 가능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는 테크놀러지가 만들어낼 수 있는 인공적인 지적 능력과 인간의 지적 능력 사이에는 도저히 연관될 수 없는 차이가 있음을 말하고 싶다. 나보다 인간 뇌의 구조를 더 잘 아는 학자들은 이렇듯 개발되고 있는 인공지능에 대해서 ‘불확실성 이론’이 적용될 수 없음을 밝히며, 이러한 마이크로 스케일의 작업을 컴퓨터가 해낼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인간과 기계가 가질 수 있는 이러한 지적 능력에 대한 차이점이 끝까지 넘어서면 안되는 벽이라고 생각하며 예술이 테크놀러지의 한계점을 밝혀주는 가운데 인간 존위의 가치를 보존하는데 일익을 담당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21세기 예술의 주된 흐름이라 할 수 있는 ‘테크놀러지 아트’를 둘러싼 논의는 문화적 맥락에서 복합적으로 행해지고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 역시 테크놀러지 아트가 미래에 중요한 역할을 하리라는 사실에는 동감한다. 테크놀러지 아트가 발달함에 따라 사람들은 그것이 주는 매혹적인 힘에 반하겠지만, 또한 그것이 주는 한계에도 싫증을 느끼리라 예견된다. 현실은 점점 더 불가능한 일들이 없어지는 사회가 될 것이다. 사람들은 컴퓨터가 만들어내는 세계에 빠지게 되겠지만, 그와 함께 이 모든 것의 의미가 과연 무엇일까에 대한 의문도 더 깊어질 것이다. 테크놀러지 미디어 아트는 새로운 소통 방식을 시도한다. 그 주요 수단은 디지털 시스템일 것이다.

디지털 매체가 아날로그 시스템과 다르게
제공하는 예술적 소통체계의 변혁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뉴미디어 테크놀러지는 하나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앞으로 도구(tool chara - cter)라는 생각은 이러한 부류의 예술이 진행됨에 따라 점점 강해질 것이다. 즉, 테크놀러지 예술은 자신만의 강하고 자유로운 힘을 발휘하는 과정 속에서 ‘빈곤함’또한 눈에 띄게 될 것임을 예견한다. 이런 진행과정 속에서 진리를 깨닫게 되면 사람들은 부족한 부분을 메워야 한다는 탈출구로 다시 의미를 찾을 것이다. 본문에서 말했듯이, 인간을 초월적인 세계로 인도해줄 창문은 열려야 한다.

이미 마샬 멕루한은 구텐베르그식 활자문화의 종언을 선언하지 않았는가. 이른바 멀티미디어 시대에 예술가에게 중요하게 부각될 수 있는 예술 창작의 개념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빅토르 위고(Victor Hugo)는 한때 구텐베르그의 프린팅 프레스가 예술의 전통적인 개념을 깨버렸다고 말했었다. 지금 우리 주위에서 진행되고 있는 전자혁명도 마찬가지의 말을 되풀이하고 있다고 본다. 컴퓨터가 만들어내는 가상 현실은 점점 더 우리들에게 현실 그 자체보다 더 다가온다. 이런 위협 속에서 예술이 한번 더 현실의 진정한 의미, 즉 진리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깨우쳐줄 것이라고나는 믿고 있다. 가상은 가상으로밖에 끝날 수 없다. 가상 음식은 우리들에게 어디까지나 먹을 수 없는 음식인 것이다.

생명에 대한 존중, 자연과 인간의 합일, 인간과 기계 혹은 예술과 테크놀러지의 조화는 21세기의 주요 관심사다. 이에 따라 이미 하이데거의 관심사였던 ‘진리를 밝히는 예술’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미적 상상력을 요구하는 것 같은데 …

뉴 테크놀러지 아트가 나타나면서부터 지금까지 있었던 예술의 형태들을 마치 과거의 것으로 간주하며 그 생명력마저 없어질 것이라고 예견들을 하지만, 예술에 대한 그런 위협은 전에도 있었다. 프린팅 프레스가 처음 나왔을 때에도 그랬고, 사진이 발명되었을 때에도 예술은 마치 커다란 위협을 받은 것만 같았다. 이제 프린팅 프레스와 사진의 자리에 컴퓨터가 들어선 것뿐이라는 생각을 나는 하게 된다. 이렇게 예술의 형태가 완전히 변형될 것이라고 위협받을 때마다 예술은 다만 그 기능의 일부를 잃었을 뿐이다. 여기에서 나는 예술의 가장 중요한 역할을, 본문에서 밝혔듯이, 물질 내에서 의미를 구현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성공한 예술작품은 흡사 사람의 얼굴과 같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신이 구현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면을 과연 테크놀러지 아트가 오랜 생명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가 궁금하다. 임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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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스텐 해리스(Karsten Harries) 1937년 출생. 예일대학 박사학위(Ph.D) 취득(1962년). 주요 저서로는 《Bavarian Rococo Church》 《The Broken Frame:Three Lectures》 《The Ethical Function of Architecture》 등이 있으며, 《The Meaning of Modern Art》는 《현대미술 - 그 철학적 의미》로 국내에 번역 소개되어있다. 현재 예일대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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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와 글 쓰기에 예전만큼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밀린 원고마저 있다. 회사 업무로 읽어야 하는 리포트와 아티클도 쌓여있다. 지난 번 읽은 '슬픈 열대'(http://intempus.tistory.com/1353)의 역자 서문에서 기억해둘 만한 내용을 노트해두었다. 이를 되새길 겸하여 블로그에 옮긴다.

'슬픈 열대'라는 책이 레비-스트로스의 명성을 크게 알린 책이나, 그의 주저라고 보기엔 한계가 있다. 그의 학문 체계를 알기 위해서는 다른 책을 읽어야 한다. 그래서 '슬픈 열대'의 역자는 다른 책들에 대해서도 소개하고 있는데, 레비-스트로스의 박사학위논문에서 나온 '친족의 기본구조''야생의 사고'였다. 특히 후자는 인문학 전공자라면 필독서에 해당된다.


'친족의 기본구조'
- 미개인이 생물학적 충동으로 단순히 반응하는 '자연'으로부터 미개인이 그의 사회집단을 기능화하는 '문화'로의 이행과정에서 나타나는 몇 가지 특징을 탐구한 것이다.
- 자연적 환경이 제공하는 것을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조직화한다는 사실.
- 모든 기존의 사회 집단에 의해서 동등하게 실천되고 있는 근친금혼(incest taboo)
 : 이 제도는 문명 사회나 미개 사회를 막론하고 인간 사회에서는 어느 곳에서든지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일 뿐만 아니라, 인간을 동물로부터 구별시켜주는 경계선.
- 근친금혼에 대해서는 인류학자들마다 다른 의견을 피력하고 있음.
  : 모건(John Pierpont Morgan)의 생물학적 해석 - 유전학적 악화를 방지하기 위해
  : 웨스트마크(Edward A. Westmarck)의 도덕적/심리학적 해석 - 친족 질서의 위계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 레비-스트로스 - 근친금혼이 사회적,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음.


야생의 사고 - 10점
레비 스트로스 지음/한길사

'야생의 사고' La Pensee Sauvage
- 원시적 사고란 동식물의 세계를 민감하게 이해하고, 우주적 조화를 구축하려는 감각 속에서 균형과 연속성을 추구하는 우리들의 과학적 태도와 다른, 어떤 지식 획득의 방식일 뿐이라고 생각.
- 원시인이 사용하는 논리는 하나의 구체적이고 감지적이며 심미적인 논법인 것. 레비-스트로스는 야생의 사고의 특징을 '무시간성'에서 발견한다. 왜냐하면 야생의 사고의 목적은 세계를 하나의 통시적, 공시적 전체로 파악하려 하기 때문이다.

위 노트는 박옥줄 교수(불문학)의 '문명과 야만의 이분법적 사유에 대한 비판'에서 옮긴 것임.



레비-스트로스의 말들.

“나는 태생적인 구조주의자입니다. 내 어머니는 내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어요. 내가 제대로 걷지도 못할 때, 글을 읽기 한참 전인 시절, 하루는 내가 유모차에서 ‘부세(boucher, 정육점)’와 ‘블랑제(boulanger, 제과점)’ 간판의 첫 세 알파벳이 ‘bou’인 것 같다고 소리쳤다는 거예요. 그 두 단어의 앞 철자들이 동일했으니까요. 그 나이에 이미 난 불변자(不變者)들을 찾고 있었던 것이지요!” 
(아래 '가까이 그리고 멀리서'라는 회고록에서 실린 대화의 일부다)

가까이 그리고 멀리서 - 10점
디디에 에리봉 지음, 송태현 옮김/강


“구조(structure)는 체계(systeme)로 환원되지 않습니다. 체계는 요소들과 그 요소들을 결합시키는 관계들로 구성된 총체를 말하지요. 구조라는 말을 할 수 있으려면 요소들과 여러 집합들의 관계들 사이에 불변하는 유사점이 드러나야 합니다. 한 집합이 변형을 통해 다른 집합으로 이행해 갈 수 있도록 말이에요.” 

위 인용은 서동욱 교수의 글에서 옮김.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4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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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운동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이데아에 공허나 부정적인 것을 덧붙여야 한다. 플라톤의 "비존재"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질료"는 이런 것들로 구성된다. 그것은 마치 산수의 한 단위에 영이 합쳐지듯이 이데아와 합쳐져서 이데아를 공간과 시간 속에서 다수화시키는 형이상학적 공허인 것이다. 불변적이고 단일한 이데아는 이에 의하여 무한히 퍼져가는 운동으로 분산된다. 권리상으로는 오직 불변적인 이데아들만이 있어서 상호간에 움직일 수 없이 꽉 들어차 있어야 한다. 결과적으로는 질료가 나타나서 공백을 거기에 덧붙여주고, 동시에 우주적인 생성을 분리해 낸다. 질료는 파악할 수 없는 무가치한 것이면서 이데아들 사이에 잠입하여 마치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 사이에 스며든 의심처럼 끝없는 동요와 영원한 불안을 자아낸다. 불변의 이데아의 지위를 하락시켜 보자. 그러면 그에 의하여 우리는 사물의 영구적인 변화를 획득하게 된다. 이데아 내지 형상은 의심할 것없이 예지적인 전 실재, 즉 전부 모여 [파르메니데스적] 존재의 이론적 평형을 나타낸다는 점에서 진리의 전부라고 하겠다. 감각적 실재에 대해서 말하자면, 그것은 이 평형점의 양쪽으로 끝없이 일어나는 동요인 것이다.
- 베르그송, '창조적 진화', 315~316쪽. ('베르그송의 생명과 정신의 형이상학', 서광사, 183쪽)


고전주의자, 혹은 플라톤주의자가 되어본 적이 없는 사람은 절대로 낭만주의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고 그렇게 확신하고 있다. 저 하늘의 별빛과 내 마음의 별빛이 일치하던 시대의 아름다움을 꿈꾸던 시절이 있었다. 플라톤의 책을 읽으면서, 그의 사상을 접하면서 나는 지고지순한 사랑의 마음이라든가, 이상적인 아름다움, 영원한 가치 따위를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퇴근길에 베르그송의 저 문단을 읽으면서 약간 울컥했다. 모험으로 가득찬 그리스 시대를 살았던 사상가들은 마음 속으로 모험이지만 모험이 아닌 어떤 세계, 움직이지만 실은 정지해 있는, 그래서 꽉찬 어떤 세계를 염원했고 그것을 남겨놓았다. 화이트헤드는 서양철학사는 플라톤 철학의 각주 달기라고 하지만, 플라톤 철학도 알고 보면 파르메니데스와 피타고라스에 나왔고 이 둘의 사상은 고대 이집트의 세계관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고대 이집트가 어떤 곳인가. 이 곳에선 죽음은 또다른 탄생이고 영원이며, 운동은 일종의 반복이고 시간을 끊임없이 도는 것이며 직선적으로 변화되는 것이란 없다. 세상은 이미 정해져있는 것이며, 여기에 예외란 없다. 

그런데 베르그송은 몇 천 년 후에 이것이 얼마나 잘못된 생각인지 지적한다. 그의 철학은 여러모로 아슬아슬한 곡선을 그리는 듯 하다. 그의 문장은 대단히 아름답고 비유적이다. 그리고 설득력까지 가지고 있었다. 아마 10년 전의 나라면 베르그송을 인정하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의 나, 이래저래 실패의 흔적들만 얼굴에 남긴 채 일상을 보내는 나에게, 베르그송은 아주 슬픈 위안이다. 그는 나에게 정지해있는 모든 것들은 실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고 말한다. 생명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그것의 신비나 가치, 아름다움에 대해서 논한다. 하지만 난 아직 그것의 신비나 가치, 아름다움에는 관심없고 플라톤이 잡고자 했던 어떤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실은 나도 그런 것을 마음 깊숙한 곳에서 추구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내 옆의 사랑이 변치 않았으면 바랬고 내 언어가 영원하길 염원했으며 변하지 않는 어떤 것, 그것이 이데아이든 형상이든 물자체든, 반드시 있다고 믿었다.  

'영원의 움직이는 이미지인 시간', 플라톤의 '티마이오스'에서 언급한 표현이다. 그는 시간마저도 붙잡아버렸던 것이다. 그는 시간을 부정했다. 그러니 시간이 지배하는 이 현실 세계는 도대체 평가할 만한 가치라곤 손톱만큼도 없는 세계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죽음이 아니라면 우리는 이 현실 세계를 한 발짝 벗어나지 못하지 않는가. 칼 포퍼가 그렇게도 싫어했던 것도 바로 이런 경향 때문은 아니었을까. 

베르그송이 그간 읽히지 않았던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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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도 플라톤 주석 달기라는 애기를 많이들었는데요..
    플라톤의 필레보스를 읽고 있노라면 뭐랄까..
    정제되고 순환되지 않는 이데아라는 개념이
    무한이 반복하고 진화되고 있는 이상의 개념으로 바꼈었는데요...
    전 철학과라 관심이 많네요 ㅋㅋㅋ

    • 화이트 헤드의 표현입니다. 너무 깊이 생각하시지 마시고, 그냥 플라톤 철학이 서양 철학사 내에서 가지는 위상에 대한 표현 정도로 이해하시면 될 것같습니다.

*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을 두 개의 글로 요약하면서  느낀 바를 적은 글이다. 매우 개인적인 견해를 담고 있는 글이라 할 수 있겠다.


나에게 종교의 문제는 가끔 매우 첨예하게 다가온다. 나같이 유약한 이에게 보이지 않는 세계의 불가사의함이란 때로 견디기 힘든 공포와 유혹으로 다가온다. 한 때 현세에서의 고독이나 무력감, 허탈함을 극복하기 위해 종교를 심각하게 고려한 적도 있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보여주는 자기 내면에 대한 솔직한 고백은 로마에서 중세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세계에 풍부한 영감을 던져주었으며 정신적인 영역에 있어서 거대한 방향을 설정하였다. 그는 자신의 내면 속에서 신의 목소리(계시)를 발견하고자 하였으며, 때로는 신비주의적 면모까지 엿보이게 한다.

이러한 내면의 발견은 종교 개혁 이후의 기독교에서도 다시 한 번 일어나게 된다. 즉 성경만 있으면 어디에서든지 자기 내면 속에서 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확신이야말로 개인화된 신앙은 아우구스티누스에게서 이미 보였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루터와 칼뱅에 의해 주도된 종교개혁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시대로 되돌아가자는 것이다. 초기 교회의 시대로.)

하지만 이러한 내면의 발견이 자아나 자유의지에 대한, 외부 세계에 대한 명확한 확신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신의 계시, 교회 중심의 신앙 생활의 강조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정신주의적인 중세적 경향을 특징짓게 된다. 이러한 정신주의적인 태도는 현대 기독교에서도 종종 나타나는 경향이라는 점에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세계와 현대가 그리 멀지 않음을 엿보게 한다.

시간의 문제는 유한한 인간에게 있어서 신의 본성을 깨닫게 해주는 매우 중요한 지점이다. 신은 유한의 세계에 속한 것이 아니라 영원성의 세계에 속해 있으며 시간을 평면적으로 인식하는 존재이다. 신은 만물과 만물의 유전을 눈 앞에 펼쳐진 대로 보기 때문에 시간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며, 세계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알고 있지만, 그것은 단지 ‘보는’ 것일 뿐 영향을 미친다고 여기지는 않았다. 이것이 그가 ‘예정설’이라고 하는 과격한 결정론적 관점을 다소 완화시키는 방향이다.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하지만 이미 신의 앎 속에서 과거-현재-미래는 결정되어 있음을 우리 인간은 예정된 어떤 결과를 변화시킬 수 있는 자유 의지란 존재하지 않는 것은 변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중세를 물들이는 어떤 절망이나 당혹스러움, 불안함은 아우구스티누스가 표현하였던 이런 세계관의 영향 때문은 아니었을까.

데카르트적 세계관이 현대에 와서 ‘독단론’, ‘기계론적 인과주의’라는 이유로 비난받고 있는데, 반데카르트주의자들이 보여주는 정신주의적, 심미주의적 태도는 혹시 아우구스티누스가 지향하였던 바의, 그 모습이 아니었을까? 그냥 이런 의문이 밀려든다. 눈 앞에서 보이는 불안함, 불가해함, 유한한 시간, 유한한 인간이 느끼는 어떤 절망을 극복하기 위하기 위해 영원한 신의 진리로 귀의한 아우구스티누스처럼 현대의 정신주의는 데카르트적 세계관가 실패했다는 당혹스러움을 바탕에 깔고 보이지 않는 세계의 불가해함을 받아들이고 어떤 가상적 세계를 향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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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우스티누스 - 1에 이른 글임. 몇 권의 책(로버트 램의 ‘서양문화의 역사’ 2권(사군자), 슈퇴릭히의 ‘서양철학사’(분도출판사), 프리틀라인의 ‘서양철학사’(서광사) )을 읽고 간단하게(?) 정리한다. 아우구스티누스에 대한 정리임. 대부분 슈퇴릭히의 '서양철학사'를 발췌요약한 것임.

三位一體說

‘무엇 때문에 그대는 바깥세계를 헤매고 다니려 하는가? 어서 그대 자신의 내면세계로 되돌아가라, 왜냐하면 바로 그 내면 세계에 진리가 깃들여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해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이후의 여러 신비주의 사상에 영향을 주었다.

‘단지 인간의 내면적인 힘과 동일시될 수만은 없는 하나의 동력인, 또는 어떤 무비(無比)의 존엄성을 발휘하는 우월하고도 은혜를 안겨주는 위력적 요소,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단순히 우리 자신의 소리의 반향일 수만은 없는 다름 아닌 진리의 소리를 찾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른바 기억이라고 불리는 나의 능력을 초탈함으로써, 그 다음에 가서는 감미로운 빛과도 같은 당신에게 다가가려고 합니다!’

이와 같이 그는 신에게서 진리와 광명을 발견하려고 하되, 그러나 우리는 이 신을 인식하거나 포착할 수도 없으며 또한 그러한 신 앞에서는 우리의 사유와, 그리고 우리의 모든 범주기능까지도 마비되고 만다. 왜냐하면 그는 양적인 한계를 지을 수 없을 정도로 크고, 그 질을 측정할 수도 없으리만치 선하며 또한 공간을 떠나 있는 상태에서도 우리 앞에 현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는 시간을 초월한 영원의 세계를 감돌고 있기 때문이다. - 이 신은 오직 신의 언어를 통해서 우리에게 ‘계시’될 따름인 것이다.

그는 마침내 세계를 인간 정신의 산물로 간주하려는 온갖 철학과 그리고 오직 인간 내심에 몰입하는 것만으로 진리를 발견하고자 하는 일체의 시도를 뿌리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즉 인식대상이란 결코 인식행위에 의해서 조성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사유와는 무관하게 그 자체로서 존립하는 하나의 현실인, 다름 아닌 신의 질서와 현실이 있는 것이다.

신적실체(神的實體)는 성부, 성자, 성령이라고 하는 삼자적 위격체내(位格體內)에 존재하며 동시에 그 신적실체는 이 모든 위격 속에마다 완전히 현현되어 있는 것이다.

즉, 존재와 생명과 인식을 바탕으로 한 (혹은 그가 다른 곳에서 말하듯이 존재와 지식과 생명을 바탕으로 한) 인간의 영혼이 하나의 통일적 본질을 형성하듯이, 역시 이것은 하나의 불가사의한 신적 삼위일체를 상징하는 것으로, 이것이 결코 단순한 비교일 수 만은 없는 이유는 인간이란 곧 신상과 동일하게 만들어진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창조와 시간성

시간이란 우리의 의식과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란 오직 세계가 있는 곳, 따라서 변화도 역시 존재하는 곳에서만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당연히 시간과 영원성을 구별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시간이란 반드시 변화와 유전을 수반하게 마련이지만, 영원성에서는 그와 같은 변화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정한 상태의 변화까지도 그 자체 내에 포괄하는 어떤 종류의 운동 현상이라고 할 피조물의 생성이 없이는 시간도 역시 있을 수 없었으리라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결국 이와 같이 활력적인 형태의 변화와 또한 동시적으로 결코 병존(竝存)할 수 없을 그 어떤 양자간의 선후관계를 통해서나 혹은 어떤 한가지가 자리를 비우면 또 다른 어떤 것이 그 자리를 메꾸어감으로써만 생겨날 수 있을 짧고도 긴 갖가지 중간 과정에 의하여 비로소 시간은 형성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신은 그 스스로의 영원성을 바탕으로 하여 일체의 변화와 유전을 배제하는가 하면 또한 시간의 창조자이자 바로 그의 통제자이기도 한 까닭에, 결국 나의 생각으로는 일정한 시간이 경과한 뒤에 가서야 비로소 신이 이 세계를 창조하였으리라고는 볼 수가 없을 듯하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역으로부터의 논증, 즉 세계가 발생하기 이전에 이미 피조물이 있었음을 물론, 바로 이 피조물이 운동을 개시함으로써 비로소 시간의 유전도 시작되었다고 하는 결론만이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결국 세계는 시간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함께’ 창조되었으리라고 보는 편이 옳다고 하겠다. 왜냐하면 시간 속에서 생기하는 것은 모름지기 시간 이전이나 아니면 시간 이후에 - 다시 말하면 이미 지나가버린 어떤 것보다도 늦게이거나 혹은 아직도 앞으로 있게 될 어떤 것보다 앞서서 생기한다고 밖에는 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세계보다 앞서서 있을 수는 없는 것이, 왜냐하면 그와 같은 상태 하에서는 다름 아닌 스스로의 활력적인 변화 작용에 의하여 비로소 시간을 생성 시키기데 될 바로 그 피조물조차도 존재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히려 우리는 시간과 함께 세계도 동시에 창조되었다고 보아야만 하겠는바, 왜냐하면 오직 시간과 더불어서만 다름아닌 운동, 즉 상태의 변화도 시작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의지의 자유와 예정설

영국인 수도자였던 ‘펠라기우스’(Pelagius)는 인간이라 원래 아무런 죄도 지은 것이라곤 없는 자유로운 상태에서 태어난 고로 결국 이 인간은 그리스도의 선행과 교리를 지켜나감으로서 스스로 축복을 받을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고 하였다. 펠라기우스는 특히 동방교회 내에 수많은 지지자를 보유하고 있었으나, 그를 반대하는 최선봉에 나섰던 아우구스티누스는 그의 유명한 ‘예정(豫定, Pradestination, 神의 섭리)설을 들고 나오면서 이 논쟁에 뛰어들었다.

그의 예정설에 의하면 인간의 시조였던 아담 만이 자유로운 의지를 지닌, 죄악을 범하지 않은 상태에서 태어난 가운데 오직 신의(神意)를 좇아서 불멸의 세계에 다다를 수 있는 가능성을 지녔으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탄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한 아담이 죄악에 말려든 탓으로, 결국 모든 인간도 원죄의 씨를 물려받아서 마침내 죄악을 범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하여 ‘더이상 자유로울 수 없게 된’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죄악에 물든 채 죽음 - 聖 바오로에 의하면 이것은 죄악의 代價라고 한다 - 에 내던져질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그러나 자비로우신 신은 그들에게 은총을 베풂으로써 중생을 구원하시기는 하되, 그렇다고 모든 인간이 그러한 구원을 요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즉, 神은 그들 중의 일부에게만 은총을 베풀 뿐, 그 나머지는 선택범위에서 제외시키는 바, 인간의 입장에서 볼 때 이와 같이 오직 ‘신의 意思에 따라서 결정지어지는 현명하고도 불가해한 好意’는 자의성을 띤 것으로 보일 수가 있다. 그리하여 결국 영원한 신의 의사에 따라서 어떤 인간의 경우에는 구원을 받을 것이며, 또한 그 나머지 사람들은 영원한 저주를 면치 못하는 것이다.

우리 인간은 자기의 운명을 스스로 짊어진 주인공이라고 하는 우리들 누구나가 지니고 있는 불가사의한 감정에 위배하는, 그의 과격한 내용을 담고 있는 예정설은 일부 특정인에게는 헤어날 수 없는 절망과 불안감을 안겨주었다는 점에서 교회의 의사와 이익에도 위배될 수 밖에 없었다. 이에 스스로 지론을 완화하여, 神은 애당초부터 인간을 구원의 길로 유도하였거나 혹은 저주한 것도 아니고 다만 스스로의 전지전능한 힘에 의하여 유한자로서의 인간적 결단의 방향을 사전에 ‘파악한다’는 것으로 되었다.

그러나 예정설 속에서 오직 신의 의지만을 설명하였던 아우구스티누스로서는 결국 세계 내에서의 ‘악’의 발생에 대해서는 설명을 내리기가 극히 힘들게 되었다. 그는 자기 논문의 여러 곳에서 마치 암흑을 단지 광명이 결여된 상태라고 보듯이 악에 대해서도 단순이 선이 결여된 상태 정도로 보았다. 이 문제에게 그는 자신의 명확한 입장을 확정짓지 못했다.

역사와 신국

그의 신국론에서 천지창조로부터 자기가 생존하던 시대와 다시금 그 이후로부터 모든 역사의 종말에까지 이르는 인류의 전역사를 신의와 구원의 계획에 따라서 진행되는 일회적 역사과정으로 보고 있다. 괴테가 말한 바와 같이 아우구스티누스도 역시 종교와 반 종교간의 투쟁이 이 세계사의 중심문제라고 하는 근본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은총을 누리는 자는 ‘신국’을 건설하게 되지만, 다른 한편에는 파멸이 있을 뿐인, 저부받은 자들에게만 필요한 세속국가적 질서가 대립된다. 이에 현세의 교회야말로 신의에 따라서 구원을 누리게 된 자들을 한데 모은 그리스도의 교단으로서 이와 같이 교회를 떠나서는 그 어디서도 구원을 바랄 수 없다는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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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권의 책(로버트 램의 ‘서양문화의 역사’ 2권(사군자), 슈퇴릭히의 ‘서양철학사’(분도출판사), 프리틀라인의 ‘서양철학사’(서광사) )을 읽고 간단하게(?) 정리한다. 아우구스티누스에 대한 정리임. 대부분 슈퇴릭히의 '서양철학사'를 발췌요약한 것임.


초기 교회의 성립

사도 바울 - 그리스도교의 교리를 이교도에게까지 전해야 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음. 현재 그리스도교의 전투적으로까지 보이는 전도 의지는 사도 바울에게서 연유된 것이다. 하지만 베드로는 유대인에게 국한시키고 싶어 했다.

베드로 - 초대 교황으로서 로마 제국의 유산을 계승하며 새로운 교회의 지도력을 굳혀놓았다.

아우구스티누스 - 많은 성직자들이 있었으나, 신앙의 수호와 전파를 위한 제도적 수단으로서 교회가 폭넓게 수용되기 위해서는 좀 더 명료하고 체계적인 교리가 있어야 했는데, 이를 확립한 이가 바로 아우구스티누스였다. 


마니(Mani)교
- 유대교를 거부하고 그리스도교적 이념에 인도 사상을 결합시킨 교파
- 페르시아인 ‘마니’(Mani, 라틴어로는 Manichaeus)에 의해 창시됨.
- 광명으로서의 하나님 아버지에게 지배되는 광명의 세계와 암흑과 그의 마귀에 의해 지배되는 암흑세계라는 이원론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으며, 예수란 광명의 세계로부터 강림하신 인류의 구세주임.
- 마니교는 엄격한 고행을 요구하며, 계율을 엄수하도록 강요당하는 선발된 ‘지식의 소유자’(이들에게는 육식이나 성적 만족은 물론 하찮은 수공(手工)에 종사하는 것조차 금지되어있다)와 이와 같은 계율로부터 별다른 속박을 받지 않는 단순한 청중이나 신도들을 서로 구별하였음.
- 근본적으로 구약성서를 파기하고 두 개의 세계를 상정하는 이원론적 입장을 취하였을 뿐만 아니라 또한 인간으로 하여금 예수의 가르침에 따라서 자기의 구원을 ‘스스로’ 성취하도록 설법한 새로운 종류의 구제(救濟)론을 주장한 점에서 마니교와 그리스도교는 차이가 있음.
- 특히 동양이나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신장(伸張)되어 나감으로써 하나의 독립적 종교집단을 형성하였으며, 일시적으로 마니교를 맹렬히 공격하고 나선 그리스도교들의 위험한 적대자로 간주되기도 하였음.


아우구스티누스

당신은 당신을 위해 우리를 창조하셨기에, 당신의 품 안에 쉬게 되기까지는 우리 마음이 안정될 날이 없나이다. Fecisti nos ad Te et inquietum est cor nostrum, donec requiescat in Te.
- ‘고백론(Confessiones)’에서

마니교도에서 플라톤주의자로, 다시 그리스도교로 옮겨온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의 궤적에서 그가 진리를 찾아가는 여정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이렇게 회상하였다. ‘플라톤주의자가 - 견고하고 부동불변하며 또한 모든 피조물의 원형까지 내포하는 - 진리를 간취(看取)하였던 것만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이러한 진리를 단지 먼 곳에서 바라보는 데 그쳤던 그들로서는 결국 그렇게 위대하고도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정도의 축복을 담고 있는 것을 획득할 수 있는 길을 발견하지는 못하고 말았다.’

아우구스티누스야 말로 희랍철학에서 비롯된 고전주의 시대 이후로는 처음 보는 위대한 철학적 천륜(天倫)을 타고난 사람으로서, 새로운 발흥하는 그리스도교문화에 대한 더없이 고매한 철학적 표현을 우리는 바로 그의 사상이 담겨있는 저술 속에서 처음으로 발견할 수 있다. 실로 그가 남긴 족적은 5세기에서 6세기에 이르는 동안에 그리스도교가 침투된 서양전역에 그 힘을 발휘함으로써, 마침내 중세 전체를 통해서 더없이 귀중한 정신적 유산으로 化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중세초기로부터 이어진 장구한 기간에 걸쳐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이 끼친 영향은 너무나 지대하였으므로 거의 모든 사람의 관심도 또한 오직 종교적 영역과, 그리고 신과 영혼이라고 하는 바로 그 종교적 영역 내의 양극점에만 집중된 나머지, 문예창작이나 자연과학과 같은 분야에 대한 관심은 태무(殆無)한 상태였다.

왜냐하면 아우구스티누스로서는 神의 인식과 그에 대한 사랑만이 정신적 노력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하리만큼의 값어치가 있는 유일의 목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생명력이 없는 지식이나 불필요한 호기심 따위는 단연(斷然) 지식을 위한 지식, 혹은 외적 목표만을 추구하는 무가치한 노력이라고 여겨졌던 것이다.

“비록 이 모든 것에 대해서는 알고 있으면서도 당신을 모르는 자는 틀림없이 불행할 수 밖에 없지만, 이와는 반대로 다른 모든 것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하더라도 당신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면 행복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누군가가 당신과 그 밖의 모든 것에 대해서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다 할지라도 결코 그가 당신 혼자만을 알고 있는 사람보다 더 행복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철학은 체계적이지 않지만, 그의 사상을 전체적으로 총괄하는 문제의 핵심은 그리스도교적 근본심성과 또한 그 철학을 창시한 하나의 인격이 지니는 힘과 통일성에 있다. 읽는 이마다의 마음의 잔물결을 일게 하는 자기 직시적인 고백록이나 끈질기면서도 말없는 빛을 발산하는 삼위일체의 이론, 꾸밈없이 파고드는 대화록과 화사하게 꾸며진 찬송가집, 그리고 위용도 당당한 신국(神國) 옹호자의 역할 등등을 역설한 그 한마디 한마디에는 아우구스티누스 특유의 인간적인 풍모가 여실히 반영되어 있다.

영혼의 심층

‘하느님이시여, 이 얼마나 마음 조이게 하는 깊고도 한없이 넓은 오의로 충만된 세계입니까! 이것이 곧 영혼이며 이것이 곧 나 자신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이시여, 바로 이 나는 도대체 무엇이겠습니까? 나는 도대체 어떤 성질의 존재란 말입니까? 그야말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갖가지의 형상을 지닌, 너무나 깊은 뜻을 지닌 생명체라고나 하겠습니다! 이제 나의 기억을 한 번 되살려 봅시다. 이때 나는 헤알릴 수도 없이 갖가지 종류의 사물로 가득찬 무수히 많은 들판이나 굴, 또는 구부러진 골짜기들, 모든 물체들을 나타내주는 상징과 학문의 세계에서 다루어지게 마련인 뭇사상들, 또는 비록 정신은 더 이상 작용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기억 속에 아로새겨져서 정신의 내부에 자리잡은 감정의 움직임을 바탕으로 한 개념이나 문자를 생각하게도 됩니다. 바로 이 모든 것을 스쳐 지나가면서 나는 이곳저곳으로 움직여다니거나 이리저리 날아다니기도 하는가 하면, 또한 힘이 닿는 데까지 깊이 파고들기도 하면서 결국 그 어디에도 끝맺음이 없음을 알게 되곤 합니다: 우리의 기억력이 그렇게도 거창한 포용력을 지니듯이 유한한 생을 살아가는 인간의 생명력도 역시 그에 못지 않게 거창한 것입니다!’

위대한 희랍의 사상가들도 인간 정신의 심층까지 파고들었으나, 아우구스티누스는 그의 심리적 통찰력이 좀더 날카롭다는 사실 이상으로 그는 가장 내면적인 개체적 인격성을 외부로 전환시킬 수 있었던 열정을 바탕으로 하여 자아를 음미하며 또한 자기에게 비판을 가하였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서는 ‘고백론’에서 행한 독백을 통하여 가장 내면적인 스스로의 인격성을 세인의 목전(目前)에 펼쳐보일 만한 가차없는 결단성과 직선적인 자기표현을 서슴치 않았다는 데에 있다. 이와 같이 솔직한 자기노출방법이란 신화적인 방법을 이용하여 오히려 문제의 핵심을 은폐하거나 아니면 어떤 가면을 앞세워서 표명하는 것으로 그쳤던 희랍인에게는 낯선 것이었다.

내적 심연을 꿰뚫어보려는 끈질긴 탐색과 목색의 결과로서 마침내 아우구스티누스는 오늘날의 심리학이 ‘무의식’이라고 부르는 인간 내심 속에 도사린 바로 그 미지의 영역을 처음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데카르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있어서도 역시 사유의 자기 확실성이 곧 더 이상 의심할 여지도 없이 확실한 출발점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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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숙, ‘인간성과 신성의 조화, Trecento’, 미학-예술학연구, 1992, 2권


논문의 초반과 후반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르네상스의 인간 존엄 사상에 대해 많은 설명을 하고 있으나, 이를 작품 해석으로 연결짓지 못하며 고대, 중세와도 연결짓지 못하고 있다. 조금 더 다듬어서 발표했다면 참 좋은 논문이 될 수 있었으리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보라색 글은 내가 부연설명을 한 부분이다.


페트라르카

현세의 경험과 인간의 감정을 중시하며 세속적 욕망과 종교적 양심 사이에서 갈등함

: 낡은 요소(중세적)와 새로운 요소(르네상스)의 공존.


고딕과 르네상스는 서로 별개의 시대가 아닌, 동일한 감수성 위에서 형성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르네상스인들이 경멸했던 고딕 양식의 건축물들과 스콜라철학은 르네상스시대와 똑같이 경험적 세계(세속적 욕망)의 부상 위에서 그것을 종교적 세계 속에서 다스리기 위한 몸짓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결국 종교적 세계를 우위에 두는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르네상스는 이 두 세계의 갈등 속에서 경험적 세계를 우위에 두기 시작한다. 즉 동일한 갈등 속에서 어느 것에 무게를 두느냐에 따라 하나는 고딕, 하나는 르네상스로 나누어진다.



'De Secretos conflictu curarummearum: Decontemptu mundi, 1342~3'

영혼의 자유 또는 정신의 자유의 실현으로서 천상생활의 지복과 지상생활의 매력이라는 두 가지 이상 사이를 방황하는 그의 심적 갈등을 표현하고 있음.


인간의 의지가 육신에 사로잡히면 인간 자신의 근원인 창조주를 잊고 善에 대한 순수한 사랑이 성립될 수 없다.


인간의 의지가 천국을 향할 때 육신의 욕망이 사라져 고귀한 영혼에 도달하게 되며, 이 끊임없는 정신운동이 영혼의 내면적이며 인간의 계속적인 자기 창조의 과정임. 의지란 동적인 힘.


‘영혼의 갈등’의 제 1부는 진리의 망각을 다룬다. 즉 인간의 도덕적 진리, 덕성과 구원에 이르는 진리를 망각함으로써 야기되는 인간의 불행과 비참한 생활을 다룬 것으로, 인간의 비참은 인간 자유의지의 결과이다. 이 영혼의 병에 대한 치유책은 명상을 통해 인간의 본성과 한계를 깨닫고 마음의 평정과 구원의 내먼적 확신을 얻는 것이고 이를 위해 자신의 도덕적 생활을 엄격히 반성하는 일이다. 제 2부는 영혼의 병인 아키디아(accidia)에 관한 것이다. 여기서는 기독교의 덕성과 신앙으로 귀의함으로써 마음의 평정을 얻는다고 했다. 모든 사물과 인간에 내재한 영원한 불안정, 그리고 그것을 철저히 인식하고 난 뒤 오는 우울감, 그렇지만 그것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숙명, 이런 지적 이원성과 영혼의 반복되는 갈등, 세속적 경향 등이 잘 드러나며, 이는 페트라르카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고 르네상스 인간의 공통된 문제였다. 제 3부는 가장 힘든 영혼의 병인 ‘사랑과 명예’의 추구에 대한 참회이며 결국 그는 진정한 명예와 자유를 위해 세속인으로서의 야심을 포기하고 명상에 몰두하라는 어거스틴에게 굴북한다. 이 책에서 어거스틴은 도덕적, 종교적 진리로서 인간이 궁극적 목표로 삼아야 할 진리이고, 베리타스 여신은 인간의 경험 세계의 진리를 상징한다


인생의 궁극적 목표는 신의 은총과 천상의 지복을 향유할 수 있는 경건한 생활에 두면서도 사실 그가 강조한 것은 현세에서 그 목표에 이르는 길은 학문 연구를 통해 덕을 쌓는 것이며, 이것은 인간의 의지와 능력으로 가능함. 인간은 인간 정신의 한계 내에서 자기 영혼의 설계자이며 자기 세계의 창조자임을 밝힘


인간 중심의 사상은 인간을 신과 동일시 하거나 신의 위치로까지 끌어올리기 위한 방편이다. 신의 세계를 몰아내고 인간 위주의 세계로 만들기 위한. 르네상스 시대 이후 신의 세계를 천천히 줄어들어 19세기는 무신론자들이 득세하는 시대가 된다. 우리가 흔히 '모던'이라고 이야기할 때, 그것은 유신론의 세계가 아닌 무신론의 세계를 지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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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mous Persons: Francesco Petrarca
c. 1450
Fresco transferred to wood, 247 x 153 cm
Galleria degli Uffizi, Florence

ANDREA DEL CASTAGNO
(b. 1423, Castagno, d. 1457, Firenze)



르네상스인들에게 ‘신은 인간에게 무엇이나 스스로 선택한 바를 갖고 스스로 원하는 바가 되기를 허락함으로써 인간에게 자율성과 자유의지를 강조할 수 있게 해주는 존재’


인간 존엄의 사상

‘인간성이란 말은 역사적으로 확실히 구별할 수 있는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첫째는 인간과 인간 이하의 것과의 대비에서 생기는 의미이고 둘째는 인간과 그 이상의 것과의 대비에서 생기는 의미이다. 전자의 경우 인간성은 가치를 의미하고, 후자는 그 한계를 의미한다.’
- 파노프스키


페트라르카와 살루타티의 인간 존엄성에 대한 견해는 모두 초자연적인 은총으로서의 구원을, 인간이 파국을 피하기 위해 수용해야 하는 것으로 규정했다. 즉 의지는 자유이며 이것은 신의 섭리와 조화된다. 한편 로렌조 발라는 신의 이미지와 닮은 인간은 삼위일체적 정신(또는 영혼에너지, 지성, 정서)을 가진 실체로 보고, 인간이 신과 경쟁하며 그의 이미지를 닮음으로서 인간의 본성과 존엄성을 성취하게 되는 인간 행위의 열정과 섭리를 강조한다. 이러한 인문주의자들의 인간 존엄에 대한 입장은 첫째, 인간의 존엄성은 신의 이미지와 닮음에서 나왔고 완전한 동화를 위한 진보에 의해 궁극적으로 신성화된다는 점과 둘째, 인간 본성의 지배, 이용 및 지도안에서 신과 같은 태도로 사고하고, 느끼고, 행위함으로써 결국 신성화된다는 두 입장을 함께 하고 있다. 이런 기반 위에 인간 존엄성의 문제를 철학적으로 접근했던 피치노와 피코에서 인간 존엄 사상의 정점을 볼 수 있다.


피치노
고전적 전통과 성서, 플라톤 사상을 모델로 하여 신성화의 성취라는 골격 내에서 현세 인간 존엄성의 명백성과 어거스틴의 사상을 정교하게 종합한다. 인간은 이성의 의지를 통하여 어떤 존재에 대해서도 수용, 거부할 수 있으며 우주의 위계질서 내의 한 부분이지만 또는 그것을 초월, 회피할 수 있다 해서 인간의 자유와 창조성을 말했다. 또한 그는 초자연적 힘에 관심을 두었지만 현세의 경험과 성취와 인간의 자연적 욕구를 깊이 인식했다.


피코
‘인간 존엄에 대하여’

인간은 진화의 소산이 아닌 창조의 소산이며 인간의 신적 근원성을 말하는 것이다. 인간 중심주의에 의하면 인간과 신의 관계는 자리바꿈을 하여 인간이 신격화된다. 쿠사누스가 ‘인간은 비록 절대적이지는 않을 지라도 신이다. 왜냐하면 신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신은 인간적인 신이다. 인간적인 방식으로 신인 것이다’라고 한 것이나, 부르노가 기독교적인 인간의 자기 감정이 하나님께 겸손한 복종을 한데 반하여 자율성과 창조성을 갖고 있는 인간은 ‘다른 신alter deus'으로 지칭하여 르네상스가 개인의 존엄성을 강조한 사실은 인간 자신의 신격화를 증명하기에 충분하다.


신의 특별한 창조물인 인간만이 신적인 특성을 가진 존엄한 존재로서 다른 피조물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이 그들로 하여금 예술에세 인체에 눈을 돌리게 하였다. 신 안에는 모든 피조물의 창조적 이념이 존재하고, 이는 모든 피조물의 비례는 신의 지혜에서 유래하고 신적 미 안에 모든 피조물의 비례라고 있다고 해서, 신과 피조물 사이에 비례가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르네상스인들은 전지전능하신 신에게로 향하는 점진적 안락함 속에서 신의 모습과 닮은 인간의 형태에서 기쁨을 느끼고 특히 인간의 미를 특별히 취급하였다. 그들은 잘 비례화된 인체는 신의 능력과 이데아를 확인할 수 있는 것으로 드러나며 이성으로 확인된다고 믿었다. 인체의 미는 이데아와 이성과의 조화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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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러의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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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장 예술가와 사회

19세기의 특징
- 18세기에게 본격적으로 등장한 부르주아가 확고한 기반을 다짐
- 패트론 제도가 유명무실화됨: 19세기적 상황이라기 보다는 17세기부터 진전되어왔으나 18세기 후반부터 계급 갈등이 본격화되고 세속화가 첨예한 형태로 진행됨
- 이 상황 속에서 부르주아의 속된 취미에 봉사하는 예술 양식이 유행하게 됨
- 인상주의자들의 성장 배경을 형성함.

예술가의 자의식
- 현실과 이상의 갈등 속에서 자신의 예술 세계 속에서 예술적 이상을 구현하기 위해 현실 세계를 폄하하고 벽을 쌓아올림.
- “가령 셸리의 ‘민감한 식물sensitivie plant’, 비니(vigny)의 요람Moise, 보들레르의 거대한 날개 때문에 땅 위를 걷지 못하는 신청옹albatross 등이 이러한 예술가의 자의식, 예술가의 운명, 지위 등을 상징한다.”
- ‘상아탑tour d’ivoire’ : 생뜨 뵈브가 알프레드 드 비니의 생애를 묘사하기 위해 사용한 단어. 미적 은둔 생활을 위해 사회적 의무를 포기한 삶.

L’art pour l’art
테오필 고티에. “책은 젤라틴 수우프와 바꿀 수 없고 소설은 봉합흔적이 없는 한 컬레의 장화가 아니다.”, “나는 예술의 자율성을 믿는다. 나에게 있어 예술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다. … “, “호머의 시, 피디아스의 조각, 라파엘의 그림은 도덕주의자들의 온갖 논문보다 인간의 영혼을 더 많이 고양시켰다.”
미의 종교religion de la beaute’ : 플로베르
esse est percipi (존재하는 것이 지각되는 것이다)
말라르메: 세계는 한 권으로 책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존재한다.
오스카 와일드 : 예술이 삶을 모방하기보다는 삶이 예술을 훨씬 더 많이 모방한다.

사실주의
후기 낭만주의적 경향으로 이해하는 학자도 있음.
빅토르 위고와 구스타브 쿠르베 : 과학과 진보에 대한 믿음.
졸라. “우리는 실험화학과 물리학을 가지고 있다.” <- 실험소설론.

사회적 책임.
위고. “예술을 위한 예술은 훌륭하다. 그러나 진보를 위한 예술은 훨씬 더 아름답다.”
콩트. “예술은 사실의 이상적인 재현이다. 그리고 예술의 목적은 우리의 완전성에 대한 감각을 함양하는 것이다.”
푸리에. 유토피아로 가기 위해 예술과 미는 필수 요건임.
프루동. “예술은 자연과 우리 자신의 이상화된 재현으로서, 그것의 목적은 인류의 신체적, 도덕적 완전성이다.”

러스킨와 모리스의 경우.
러스킨 : 미적 양식의 기능주의
“산업 문명은 인간을 기계로 바꾸어 놓았다.”
윌리엄 모리스: 장식적 예술. 바우하우스. 아르누보. 현대 디자인 개념을 만듦.
톨스토이.

12장. 오늘날의 전개 양상.
크로체와 형이상학자들.
크로체. 직관 = 표현. 따라서 “예술은 곧 표현”, 정서의 표현.
예술적 직관은 서정적일 뿐만 아니라 우주적이다.
콜링우드 : 크로체의 세계를 그대로 이어받음.
베르그송.
산타야나. 도덕주의자.
듀이. 정제되고 강화된 경험형태인 예술 작품과 일반적으로 경험을 구성한다고 여겨지고 있는 일상적 사건들 사이의 연속성, 행함과 겪음 사이의 연속성을 회복시키는 것, 이것이 과제이다.
미적 경험은 한 문명의 삶의 표명과 기록과 기념이며, 그 문명의 발전을 촉진하는 수단이다. 그것은 또한 한 문명의 질에 대한 최종적 판단이다.

기호학적 접근
다른 어떤 하나의 기호로서 기능하는 과정, 즉 기호화semiosis의 문제.
의식의 새로운 차원, 즉 자의식에까지 뚫고 들어갔으며, 기호sign와 지시체significatum (referent)를 구별해야만 수월하게 사고 할 수 있게 되었고 따라서 특징적이게도 기호론적 차원을 염두에 두면서 문제들에 접근하는 것 같다.

마르크스-레닌주의
플레하노프. 예술작품이 그릇된 관념에 기초해있으면, 내재한 모순이 필연적으로 그것의 미적 성질의 타락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재능을 입증받은 어떤 예술가라도 우리 시대의 위대한 해방적 이념들에 몰두함으로써 자신의 작품의 강렬도를 상당히 증폭시키게 될 것이다.
현상학.
예술작품은 “세계를 건립하고 대지를 생산해낸다”는 점에서 ‘단순한 사물’이나 유용한 사물(도구)과 구별된다. – 하이데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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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론이란 인간의 지식이 관찰과 실험을 통한 경험의 과정 속에서 점차적으로 생긴다고 주장하는 인식론적 견지를 말한다. 경험론자들은 일반적으로 제일원리, 본유관념, 그리고 이성의 구성이라는 것들에 대하여 회의적이다. 대체로 그들은 사물의 진리를 파악하는 가장 적절한 길은 그 사물의 관찰하고 만져보며 그 사물에 관한 앎에 대한 학을 믿는 것이라는 견해에 대해서 호의를 가졌다.

로크는 근대 인식론의 창시자였다. 그가 궁금하게 여겼던 것은 ‘우리들의 인식은 과연 확실한가’였다. 그리하여 그는 우선적으로 ‘인식능력을 탐구하고 인식의 성립, 타당성, 그리고 한계에 대한 명확성을 확보’하여야 된다고 믿었다. 이러한 로크 사유의 중심점에는 인간이 위치하며, 인간으로부터 기술적, 정신 발생학적(descriptiv-psychogenetisch) 방법이 설명된다. 즉 로크의 인식론은 본질적으로 인식심리학이 된다. 그의 대표작 <인간 오성론 Essay concerning human knowledge>는 인간 인식(knowledge)의 확실성과 범위를 구하고자 한 저작이다. 그는 이 책에서 ‘인간은 이론적 원칙도 실천적(윤리적) 원칙도 타고 나지 않았다. 의식은 어떤 관념도 없는 백지 상태이며 경험을 통해 의식은 관념을 갖추어 나감’을 설명한다.

로크는 원리도 관념도 본유적이지 않다고 말한다. 그는 명확하게 ‘본유관념(ideae innatae)’를 부정한다. 그래서 우리들의 모든 인식은 경험에서 나오며 경험에 없었던 것은 아무 것도 오성(悟性)에 없다. (nil est in intellectu, quod non fuerit in sensu.) 오로지 인식 능력만이 본유적이고 인식 자체는 획득된 것이 된다. 아무런 본유 관념도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들의 영혼은 원래 완전히 비어있는 상태가 된다. 영혼은 아무 것도 쓰여 있지 않은 종이(tabula rasa)가 되며 우리들의 경험은 이것에 관념을 새겨넣는다.

로크는 경험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보았는데, 하나는 외적 감각을 통해서 매개되는 외적 경험(sensation, 감각)이며 또 하나는 내면적 감각(internal sense), 곧 자기 지각을 통하여 성립되는 내면적 경험(reflexion, 반성)이다. 그리고 이 두 종류의 경험은 인식의 원천이지만, 시간적으로 ‘감각’이 ‘반성’에 선행한다고 보았다.

또한 그는 관념(ideas)에는 단순관념과 복합관념이 있다고 보았는데, 정신 활동이 첨가되지 않고 이 두 가지 종류의 경험에 의하여 의식에 이르는 모든 관념을 단순관념, 그러니깐 한 가지의 감각에 의해서만 의식되는 관념, 한 가지 이상 감각의 작에 바탕한 관념, 자기 관찰을 바탕으로 한 관념(사고, 기억, 추리, 판단), 동시에 감각적 지각과 자기관찰에 바탕한 관념을 의미한다. 그리고 단순관념으로부터 결합된 표상들을 복합관념이라고 한다. 그는 ‘철자로부터 단어가, 그리고 단어로부터 문장이 형성되는 것과 유사하게 결합된 관념 또는 복합관념은 단순 관념의 다양한 결합을 통하여 정신에 의해서 산출된다. 이렇게 우리들의 세계상이 생긴다’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그는 보편관념(general idea)를 언급하는데, 이는 추상작용을 통해서 생겨나는 것이었다. 이러한 로크의 태도는 피에르 가상디(Pierre Gassendi,1592 ~ 1655)의 자연철학적 원자론에 대한 인식론적 평행선을 이룬다. 로크와 같은 연상심리학적 태도를 지닌 이들에게 있어서 정신이란 뇌 안에 흩어진 단순 관념에 불과하며 전체적인 것, 영원한 형상, 필연적인 명제란 없는 것이 된다.

이렇게 로크의 철학을 볼 때, 우리 영혼은 특정한 ‘정신의 문제들’을 타당한 것으로 만들기 때문에, 엄밀하게 말해서 영혼은 백지(tabula rasa)가 아니고 모든 증명을 목표로 삼는 의식이 된다. 그리하여 관념의 타당성을 묻는 것은 영혼에 있어 당연한 일이 되며 영혼은 ‘과연 관념에 대상이 일치하는가’를 끊임없이 묻게 된다. 그런데 복합관념은 영혼의 활동에 의해서만 성립되었으므로 그것들은 어떤 외적 대상에도 대응할 수 없다. 그것은 단지 외적 지각에만 실재하는 외적 대상이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하게 된다.

그는 사물의 성질을 제 1 성질(primary qualities)와 제 2성질(secondary qualities)로 나누는데, 제 1성질은 사물 자체에 속하는 성질(연장, 형태, 운동성, 정지, 불가입성)이며 제 2 성질은 우리의 감각 기관의 조직과 기능에 의하여 제한되는 주관적인 것(색깔, 소리, 냄새, 따뜻함 등)을 뜻한다. 로크의 제 1 성질에서 우리는 근대 물리학에서 이야기하는 물질matter 개념을 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기하학적 이성을 바라보는 물질의 개념이다.

지식의 확실성의 정도에 있어서 로크는 가장 높은 수준의 지식을 직관적 지식intuitive knowledge으로 보았다. 이 지식에 있어서는 외부의 경험에 의해 매개되지 않을 뿐 아니라, 관념의 일치 불일치 문제가 저절로 해결된다. 예컨대, 자아의 존재에 관해서 갖고 있는 지식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것은 가장 확실하며 자명한 존재에 관해서 갖고 있는 지식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것은 가장 확실하며 자명한 지식이다(데카르트의 Cogito ergo sum의 연장선 상에 있다). 다음 단계의 지식은 논증적 지식demonstrative knowledge이다. 이것은 오성이 추론에 의해, 즉 단지 관념들의 논리적 관계에 의해 얻을 수 있는 지식이다. 가장 낮은 단계의 지식이 감각적 지식sensitive knowledge이다. 이것은 개개의 사물의 감각에서 얻은 지식이다.

그래서 로크에게 참다운 지식은 오직 직관과 증명에 의해서만 가능하며 수학, 도덕, 합리적 신학에 있어서 그러하다. 모든 다른 것은 ‘의견’이나 ‘신념’이며, 외계의 존재와 실체성에 대한 문제에 있어서도 그러했다. 이 지점에서 로크의 철학은 순수한 경험론의 고유하고 지양 불가능한 난점을 드러낸다. 왜냐하면 경험은 본질적으로 주관적으로 제한된 표상에 대한 인식에 이르는 반면, ‘참다운 지식’은 합리적 원리를 기초로 해서만 획득 가능하다면 그것은 순수한 경험론이 일관성 있게 성취될 수 없다는 것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버클리는 그것으로부터 결론을 이끌어 내었으며 그는 순수한 경험론의 원리로부터 실재적인 외계의 존재를 철저하게 부인하였다.

전체적으로 객관주의에서 주관주의로 넘어가는 로크의 인식론은 개별적 사물이나 실체에 대한 앎은 ‘그다지 충분하지 않고’, 이럴 때 우리들의 관념은 사물들과 일치될 수 없으며 또 실제로 일치되기 않을 때도 많다. 로크에 있어서 자연과학은 참된 학문(과학)이 아니라 신념(신앙)이 된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생각은 흄의 심리주의로 바로 이어진다.


참고문헌.
프리틀라인, 서양철학사.
힐쉬베르거, 서양철학사.
?, 인식론 강의 노트(* 복사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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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

베이컨은 르네상스 시기의 인물이다. 그래서 그의 위치는 중세와 근대 사이에 있다. 분명 그는 현재 우리가 이야기하는 경험론 철학의 선구자이다. 하지만 그는 모든 종교적 신앙은 철학의 범위에서 제외해버렸다. 

‘우리는 신에 관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 다만 우리는 감탄하고 숭배할 뿐이다. 철학은 눈에 보이는 세계와 인생을 그 대상으로 삼는다’. ‘이 인생이라는 극장에 있어서 관람객의 자리에 앉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신과 천사 뿐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리하여 그는 ‘인간은 자연의 하인이요 해석자인 까닭에 자연의 진행을 사실에 있어서 또는 사유에 있어서 관찰하는 한계 안에서만 행위하고 이해할 수 있다. 이 한계를 넘어서서는 인간은 아무 것도 모르고 아무 일도 못한다’고 단언한다. 

그는 사람을 종종 그릇된 판으로 이끌기 쉬운 위험한 요소들을 지적하면서 마음의 우상(idols)을 이야기한다. 여기에서 우상은 그것을 그대로 내버려두면 사람을 거짓에로 말려들게 하는 마음의 모든 경향을 일컫는다. 이 우상에는 ‘종족의 우상’, ‘동굴의 우상’, ‘시장의 우상’, ‘극장의 우상’ 등이 있다.

위에서 언급했지만, 베이컨의 한계는 분명하다. 종교의 문제에서도 그러하지만, 자연과학의 이해라는 측면에서도 그러하다. 그는 자연과학을 양적 측면의 관점에서 이해하지 않고 사물의 관한 질적 기술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하였다. 또 질은 양과 수를 상관 관계시킬 수 있다는 것, 또 양과 수에 의거하여 가장 잘 표현될 수 있다고 보는 근대 물리학의 기본 개념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근대 자연과학이 양적 측면에서 이해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는 케플러, 브루노, 갈릴레이가 공유했던 생각이며 고대, 중세와 본질적으로 틀린 근대의 측면을 부각시킨다.




참고 문헌
렘프레히트, 서양철학사
슈퇴릭히, 서양철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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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 장 계몽주의 시대: 데카르트적 합리주의


이 시대를 이해하기 위해선 데카르트의 태도만 알아도 충분하리라 생각된다. 그만큼 중요하다. 17세기 바로크 예술이나 그 전 르네상스 고전주의 예술을 이해하는 데 데카르트 철학은 꼭 필요하다. 그러나 종종 미학과 예술이 서로 평행을 유지하며 나란히 가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도리어 미학과 예술이 무관한 경우도 더 많다. 개인적으로 미학은 예술 이해에 도움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차라리 사상사적 맥락이나 철학사적 맥락을 그 시대의 예술 양식과 서로 연관 지어 이해하는 것은 예술 이해에 도움이 될 수 있으나, 미학의 역사를 이해하는 건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는 있다.

비어즐리는 데카르트는 아래와 같이 요약한다.

“데카르트는 본질적으로 단순하고 따라서 매우 명석하고 판명한 관념들을 분석을 통하여 발견할 것을 제안하였다. 이 관념은 지식의 기본적 구성요소가 된다. 명제에 관하여 그는 직관과 연역법을 필연적 진리의 원천으로 취하였다. 직관은 “오직 이성의 빛에서 나오는, 청명하고 세심한 마음의 회의 없는 개념작용이고” 연역법은 결국 직관들의 사슬이다. 데카르트의 가장 중요한 요청들 가운데 하나는 확실한 보편적 진리를 얻기 위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어떤 방법을 발견하는 일이었다. 여기에서 보편적이라 함은 모든 합리적 존재에 타당할 것과 모든 것, 주어진 탐구분야 내에서의 모든 것에 적용될 것이라는 점에서이다.
그러므로 데카르트의 방법은 선험적이고 추상적이었다. 그가 추구하였던 종류의 지식은 자연에 관한 경험적 연구를 통하여는 기대될 수 없었다. 그것은 본유개념과, ‘자연의 빛’에 직접 내맡겨지는 명제에 의존했다. 그리고 지식으로서 그것의 안정성은 명제들을 보다 근본적인 것과 덜 근본적인 것으로 정리하여 그들이 서로 논리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것을 드러내는 것과 함께 그 지식의 명백한 명료성과 연역적 체계화에 의해 입증될 것이었다.”

위에서 몇 개의 핵심 개념을 끌어내면, ‘이성’, ‘보편’, ’자연’이다. 이는 매우 중요하다.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기계론적, 인과율적, 기하학적 이성은 보편적인 것이며 이는 다시 자연 탐구를 통해서 얻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가 미, 또는 미적 대상에 대한 탐구에까지 확장되는 것이 이 시대 미학자들의 태도인 셈이다.

모방을 하고자 하는 자연 대상을 이성을 통해 정확하게 재현한다면 이는 보편적인 지위를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시대 대륙의 미학자들이 공통적으로 가졌던 태도이다. 따라서 이 시대의 모방론은 ‘이상적 모방론, 즉 본질적인 것, 특징적인 것, 훌륭한 것을 다양한 비례 가운데 결합시키는 것’이었다.

그 자신이 화가이기도 했던 조슈아 레이놀즈는 ‘예술에 관한 담화’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말하는 이 예술의 미는 그 대상에 근거한다. 이것을 발견하고 표현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이다. 그런데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그 대상의 미는 보편적이고 지적이다. 그리고 마음에 남아있는 것은 오직 관념뿐이다. 시각은 그것을 보지 않았고, 손은 그것을 표현하지 않았다. 그것은 화가의 가슴 속에 머무는 관념이며, 그는 항상 그것을 전하려 애쓰지만 끝내 그것을 전하지도 못하고 죽는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사상을 제기하고 관객의 시야를 확장시켜 줄 만큼은 전달 수 있다.”
“그는 철학자처럼 자연을 추상하고 고찰하고 그가 그리는 상 하나하나에서 그 종의 특성을 재현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심리 상태를 어떻게 모방할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해선 비어즐리의 책에 인용된 한 연구자의 글을 살펴봄으로써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정식화, 내지 규범화의 문제는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그래서 하나의 예술 모방, 또는 표현의 규칙을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은 이 자연 세계 또는 보이지 않는 심리적 세계를 확실히 드러낼 수 있다는 신념을 만들어내는데, 이는 기계론적 세계 인식에 기인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는 아카데미 미술의 편협함으로 마무리된다.

“그러나 그들이 볼 수 없는 마음의 상태를 볼 수 있는 표현으로 정식화함에 있어서 보여주었던 그 범주적 정확성의 배후에는 철저하게 합리적인 데카르트의 방법 뿐만 아니라 데카르트 물리학의 중심 개념, 즉 전체 우주와 모든 개체는 일종의 기계이며 따라서 모든 동작은 기계적이라는 개념이 놓여 있었다. 따라서 르 브렁의 정념 해부학의 다함 없는 정밀성은 신체를 인간적으로 중요한 정서적 삶의 매체로서보다는 오히려 정서적 충격의 불변적 효과를 기계적인 정확성으로 기록하는 복합적 기구로 취급한다.”


* 비어즐리, <<미학사>>(이론과실천)을 요약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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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어즐리의 미학사(이론과실천)을 읽고 요약한 글입니다. 오래된 글이네요.)


제 6장 르네상스



비어즐리는 르네상스를 15세기 니콜라우스 쿠자누스의 탄생부터 16세기말 지오다노 브루노의 사망까지로 잡는다. 매우 의미심장한 구분이라고 할 수 있다. 쿠자누스는 철학사에서는 중세 말기의 철학자로 구분되나, 실제 그가 살았던 시대는 고딕 후기, 또는 르네상스 시대였다. 여기에서 고딕과 르네상스의 시대 구분이 문제로 떠오르는데, 지역적으로 그 사정이 틀리다. 이탈리아의 경우 15세기면 르네상스 중기이고 북유럽의 경우에는 고딕 후기에 해당된다. 따라서 학자들마다 어느 것에 무게 중심을 두느냐에 따라 그 구분이 제각각이며 읽는 이가 알아서 잘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예술이나 사상에 있어서 시대 구분은 몇 년부터 몇 년까지 확정적으로 나누는 것은 이해의 편의를 그러는 것일 뿐, 정확하게 말한다면 도리어 대략 몇 년 즈음 정도로 말할 수 밖에 없다.

이탈리아의 경우 스콜라철학의 후퇴가 분명한 사실이었고 이를 대신해 신플라톤주의가 유행의 급물살을 타기 시작한다. 그리고 여기에 많은 영향을 준 이가 Marsilio Ficino였다. 그는 플로티누스를 라틴어로 번역하였고 플라톤도 번역하였다.

그는 신이 창조한 세계, 즉 "모든 형상과 이데아들의 이 합성체를 라틴어로는 mundus, 희랍어로는 cosmos, 즉 조화체라 부른다. 이 조화체의 매력이 미이다." 이 때 사랑(eros)은 '미에 대한 갈망'으로 정의된다. 사랑은 미의 상 아래에서 선에 끌리는 데 있다. 이제 미의 매력은 여러 요소들의 조화에서, 즉 정신에서는 여러 덕목들의 조화에서, 가시적인 것에서는 색채와 선의 조화에서, 음악에서는 음조의 조화에서 발견된다. "정신의 미는 마음에 의해 지각되고, 육체의 미는 눈에 의해, 소리의 미는 오직 귀에 의해 지각된다."

또한 "비례를 잘 갖춘 사람의 그 외모와 자태가, 만물의 창조주로부터 우리 정신이 포착해 가지고 있는 저 인간 개념과 아주 명확하게 일치하기" 때문이다. 마음 속의 '인간의 참된 이데아'라는 플라톤적 형상이 있어서, 그것이 현실과 맞아 떨어지고 그래서 그 현실에서 식별되게 된다는 것이다.

지오다노 브루노의 <<영웅적 광신자들에 관하여>>(The Heroic Enthusiasts)도 중요한 책인데, 그는 이 책에서 "감각적 미와 순수 절대적 미 간의 대조를 반영하였고 전자에 탐닉하는 사람들이 후자로부터 멀어지고 위험, 저급한 미에 접근하더라도 올바른 정신만 있으면 고차의 미를 사랑하는 디딤돌로 그것을 이용할 수 있다는 확신"을 보여준다. 그래서 "예술가는 규칙을 뛰어넘는 특유한 천재, 자유와 활동의 기회를 필요로 하는 영웅으로서 상위의 인간으로 판단되고 있다. 그는 자기의 작품에 스스로의 개성을 각인함으로써 부분적으로는 (혹은 주로) 그의 작품을 그의 것이기 때문에 흥미 있고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든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회화론이 발달하는데, 알베르티, 다 빈치, 뒤러를 통해서 이다.

알베르티의 <<회화론>>은 국내에 번역되어 있으니, 한 번쯤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회화는 원래 재현적이라는 개념이 전통적인 데 반해, 알베르티는 시각적 유사성(verisimilitude, 양감과 깊이)을 강조하고 어떤 고차의 상징적 목표에 집착하지 않음을 분명히 하였는데, 새로운 르네상스 정신을 반영한 것이다. 즉 그에게는 르네상스 예술가들을 대변할 필요성이 있었던 것이다. 아마 11세기에 지오토, 마사초 같은 화가가 나타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마녀사냥을 당하지 않았을까.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 현대의 미술사학자 파노프스키는 이렇게 정리한다. "중세기 동안 그림은 삼차원적 대상의 징표나 상징으로 해석되어져야 할 선이나 색채로 덮인 불투명한 이차원적 평면으로 인식되었다. 르네상스 시기에 와서 그림은,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를 인용하면, '가시적 세계의 한 단면을 들여다 보는창'으로 인식되었다."

알베르티는 특히 istoria를 강조하였는데, 이는 '극적인 주제 혹은 장면'을 뜻하는 단어로 "화가의 가장 위대한 작업은 istoria - 행위, 표현된 정서, 그 과정에 내포된 테마 - 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래서 화가는 다양한 인문 지식이 요구되었으며 동시에 실제로는 깊이가 없는 곳에서 깊이의 환영을 만들어내는 대단히 어렵고 특별한 작업을 수행해야만 했다. 그리하여 화가는 수학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고 이는 선형 원근법과 비례론으로 연결된다.

알베르티는 '그 본성 상 사물을 아름답게 해 주는 특질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아래와 같이 답했을 것이다.

"수, 그리고 내가 마무리와 배열이라고 불러온 것이다. 그러나 아직 그 밖에 어떤 것이 있다. 그것은 이 다른 부분들의 접속과 결합에서 생겨나서 전체에 미와 우아함을 부여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조화라고 부르고자 하는 것인데, 이것을 우리는 우아하고 멋진 모든 것들의 원형으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조화의 임무는 그 본성이 서로 다른 구성원들을, 하나의 아름다운 전체를 형성하는 데 힘을 모을 수 있는 그런 방식으로 함께 배치하는 것이다. 그 결과 그러한 구성이 시각을 통하든 다른 감각을 통하든 우리 마음에 제공될 때마다, 우리는 이 조화를 즉각적으로 지각한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이해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예술가이다. 그에게 회화는 학문이었다. 왜냐하면 1. 재현원리는 체계적 정식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며, 2. "회화는 신체의 동작과 행동의 신속성을 다루기 때문이다." 그리고 3. 그것은 "명암의 비례 뿐만 아니라 모든 연속적인 양(量)을 다룬다"는 점에서 수학적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양뿐만 아니라 질까지도 포함하므로 산수와 기하학보다 더 훌륭하기조차 한 것이다.

따라서 "모든 사물은 자연에서 태어나고, 회화는 이 사물에서 태어나기 때문에 우리는 회화를 자연의 손자며 신과 관련되어 있다고 부르는 것이 옳다." 혹은 화가를 '신의 손자'라 부를 수 있다고 믿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다 빈치만의 생각이 아니라 그 당시 위대한 예술가를 바라보는 이탈리아 사람들의 태도이기도 했다. 그래서 예술가는 장인의 단계를 지나 학자로 인정받기 시작했으며 다 빈치나 미켈란젤로 같은 이는 위대한 천재로서, 신의 영광을 재현하는 이로서 추앙 받았다.

뒤러는, 자신의 두 연구 분야에서 추구하는 수학적 법칙이 회화의 두 가지 근본적 요구, 즉 재현의 정확성과 시각적 질서나 조화 간의 화해를 목표로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미가 양극단 사이의 중용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유용성은 미의 일부이며", "어떤 것과 다른 것의 조화는 아름답고 따라서 조화가 결여되면 아름답지 않다. 진정한 조화는 서로 다른 사물들을 결합시킨다."라고 말한다.

“16세기 이래로 음악이 그 영감을 끌어들여 온 두 가지 주요 관념, 즉 표현으로서의, 즉 음의 회화로서의 음악과, 테마에 바탕을 둔 구조로서의 음악이라고 하는 이 두 관념은 르네상스에 그 기원을 두었다.” 또한 르네상스 시대에 시와 음악이 긴밀하게 협력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한 개인이 이 두 예술을 결합해서 구사했다는 사실, 그리고 가사와 선율이 합쳐 있는 뮤지케mousike(아우구스티누스의 musika 개념과 유사한)라는 개념이 있었다.

르네상스 음악에서 중요한 미학적 관심사들 중 하나가 음악에 요청되는 정서적, 윤리적 효과가 어떻게 산출될 수 있는가 였다. 그리고 여기에 대한 한 가지 방법으로 음악적 자원을 증가시키는 것. 즉 보다 풍부한 화성적 언어, 음계의 혼합, 한 음계에서 다른 음계로의 전조, 보다 넓은 음역을 지닌 새로운 악기의 도입 등이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방법은 음악을 그 텍스트에 종속시키는 것이었다. 그래서 기요세프 짜를리노(Gioseffe Zarlino)의 <>를 인용해보자면, “설명에 의한 것이든 아니면 모방에 의한 것이든 간에 (가사에는 항용이 두 가지가 함께 있다) 가사에서 유쾌하거나 슬픈 제재, 엄숙하거나 엄숙하지 않은 제재, 혹은 점잖거나 음란한 제재가 다루어진다면, 우리는 이것들을 비례에 맞게 결합하여 목적에 부합하는 어떤 멜로디를 산출하기 위하여 그 발화에 담겨진 제재들의 성격에 유사한 어떤 화음과 리듬을 선택해야 한다.”

그래서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음악의 형식적 특성보다는 그 내용을 형성하는 시에 담겨져 있었다. 이는 알베르티가 istoria를 강조했던 것과 유사한 맥락인 셈이다. 이러한 형식과 내용의 관계를 이후 예술 양식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관점들 중 하나이다. (* 철학의 분과학문으로서의 미학에서는 그렇게 중요하게 다루어지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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