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파아란 영혼

예술의 우주/리뷰 +151


(출처: 서울시립미술관 홈페이지)



가나아트 컬렉션 앤솔러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에른스트 곰브리치는 어느 대담에서 미술관에 들어가기 전과 미술관에 들어가 작품 감상을 하고 나온 후, 거리 가로수 이파리의 색이 달라져 있을 거라고, 세상 풍경이 더 생생해지고 풍요로워졌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미술관에 들어가 작품을 둘러보고 나오는 일상이 우리들의 삶과 얼마나 멀리 동떨어져 있는가를 생각할 때면, 참 서글픈 생각이 든다. 나 또한 일반인들의 그런 일상을 무너뜨리고 미술 - 순수 미술 - 과 좀 더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을 한 때 고민하고 실천하기도 했지만, 정말 어려운 일이다. 한가람미술관에서 가끔, 인상주의전을 하기만 하면, 비싼 입장료를 내고 길게 줄을 서서 들어가는 사람들을 보면, 더 절망스러운데, 그들 대부분 미술을 좋아하고 그걸 즐기는 것이 아니라 그 전시에 가게 된 다른 목적 - 아이들의 교육이나 일종의 허영의식 - 이 더 커 보이기 때문이다. (한때 미술 작품 구입도 이와 비슷했다. 적어도 미술을 사랑하고 어느 정도 감식안이 생긴 후에 작품 구입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나, 전혀 그렇지 못하고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어느 정도 컬렉션이 되는 이들은 아예 갤러리 후원을 하거나 갤러리를 직접 운영해버린다.) 


정작 무료로 입장할 수 있는 서울시립미술관엔 관람객이 적다. 토요일 오후라면 사람들로 북적이지 않을까 했으나, 의외로 한가하다. 서울시립미술관의 한가로운 풍경은 지방의 국공립미술관의 그것을 예상케한다. 그리고 이는 정부나 지자체 예산 문제와 이어진다. 실은 미술관의 태만도 일부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학교에서의 미술을 포함한 예술 교육 전반이 잘못된 것인데 말이다. 그러므로 국공립미술관에 관람객 수가 적다고 하여 예산을 깎기보다는 도리어 학교에서의 예술, 특히 미술 교육과 연계된 국공립미술관의 역량 강화가 무엇보다 필요하며, 이에 따른 예산을 늘려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글쎄다. 정치인들 중에 예술 교육에 관심 있는 이가 과연 얼마나 될련지. (명품엔 관심 많겠지만!)


'가나안트 컬렉션 앤솔로지' 전은 2001년 가나아트 이호재 대표로부터 기증받은 200점의 작품 중 24명 작가의 대표적인 민중미술 작품 28점을 선보이는 전시다. 대부분 1980년대 만들어진 작품으로 정치적 메시지가 확연히 드러나는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지금 열리고 있는 SeMA 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 2016 전(~11월 20일까지)과 확연히 다른 느낌으로 들어왔다가 그냥 나가는 이도 보았지만 '민중미술'이라는 한국 미술 역사의 한 장면을 연출하였으며 지금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중견 작가들의 초기 작품들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전시임에 분명하다. 작품이 전시되고 있는 작가들은 강요배, 권순철, 김봉준, 김용태, 김정헌, 김호득, 김호석, 민정기, 박불똥, 손상기, 손장섭, 신학철, 심정수, 한성금, 안창홍, 오윤, 이종구, 임옥상, 정복수, 홍선웅, 홍성담, 홍순모, 황재형 등이다. 


강요배, 심정수, 손상기의 작품만 스크랩해본다. 조각가 심정수의 작품은 이번이 처음이었거나 예전에 보았으나 무심코 흘려보낸 듯하다. 강요배와 손상기의 작품은 예전부터 좋아했고. 그 외 김호득, 안창홍, 정복수의 작품들을 좋아했다. 


맥잡기

강요배( 1952~) 

종이에 포스터컬러, 200×200cm, 1983 

(출처: 서울시립미술관 홈페이지)


하지만 강요배의 근작들만 이들에게 위 작품은 참으로 낯선 것이다. 미술관 측의 작품 설명 일부를 옮긴다. 


강요배는 민중미술 1세대 작가로서, 주로 사회의 모순에 대해 발언하는 작품을 발표하였다. <맥잡기>는 작가가 '현실과 발언' 동인으로 활동하던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장식적인 색채 등 민화풍의 소박하고 고졸한 표현 방식으로 그려진 정사각형의 작품이다. 화면 중앙에 흰 무명바지와 저고리를 입고 머리에 흰 천을 두른 한 청년이 쭈그리고 앉아있다. 양손에 나뭇가지를 붙잡고 맥잡기를 시도하고 있는데, 검은 구름이 가득한 하늘은 배경으로 화면 맨 위 중앙에는 '건곤(乾坤)'의 괘가 그려져 있다. (...) 작가는 급속한 서구화가 가져온 전통 문화의 붕괴 현실을 고발하고, 강한 극복의지를 표출하고자 하였다. - 전시설명 중에서



백로즈음

강요배

 Acrylic on canvas, 97×130cm, 2012

(출처: http://topclass.chosun.com/board/view.asp?tnu=201305100007 )


최근의 작품들이 보여주는 서정성 밑에 굳고 일관된 역사 의식이 숨겨져 있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민중미술로 시작하여 현재에 이른 강요배 작품의 변천 과정을 살펴보는 것도 꽤 의미 있을 것같다. 



오늘

심정수(1942~)

동, 103x147x64cm, 1990 

(출처: 서울시립미술관 홈페이지)


심정수는 사회와 괴리된기존의 추상적인 경향의 조각에 반대하며 진정한 삶과 사회의 리얼리티를 담아내려는 조각을 주장하였다. (...) 1980년대 '현실과 발언'의 창립동인으로 활동하면서 비판적 역사 인식을 바탕으로 암울하고 절망적인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였다. 특히 고통받는 민중들의 삶의 모습과 시대의 아픔을 가장 한국적인 조형언어로 선보였다. <오늘>은 행동하는 인물 군상을 통해 오늘의 나아가야 할 바를 강하게 제시하는 작품이다. 새로운 세대에 대한 희망과 바램이 북을 치고 꽹과리를 들고 있는 인물, 어깨동무하고 행진하는 노동자, 민중의 모습을 통해 전달된다. - 전시 설명 중에서


심정수의 작품은 작지만, 힘차고 역동적이다. 강렬한 표현력으로 공간을 사로잡고 지나는 이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조금은 거칠고 덜 세련되었더라도 강인하고 그 내부로부터 솟아나오는, 생명력있는, 정말로 왕성하게 살아 있는 미술을 하여야 하지 않겠는가. 더 이상 잃어버리기 전에 우리 미술의 건강성을 찾아야겠다. 편협되고 일방적인 사고의 강요에서 벗어나, 모든 문화, 가치존중의 평등시대를 이루어야 한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존중하지 못하면 어느 누구에게서도 존중받지 못할 것이다. 지금의 우리 현실의 모습과 역사 그리고 의식과 인식, 또한 우리 속에 잠재되어 있는 건강한 정서, 그 모든 것들을 일깨워내야만 한다.”―심정수, 작가노트 중에서, 1990. 


공작도시 - 붉은 지붕

손상기(1949 ~ 1988)

캔버스에 유채, 111x144cm, 1984 

(출처: 서울시립미술관 홈페이지) 


손상기는 풍경화를 통해 서민의 삶을 표현했던 작가이다. 초등학교 때 척추를 다쳐 성장이 멈추는 불구가 되어 '꼽추화가'로 불리기도 했는데, 39세의 나이로 요절하였다. 초기에는 자연적 이미지를 통해 자전적 이야기를 직, 간접적으로 표현하였으나, 사회와 역사 문제로 작품 세계를 확장시켰다. 80년대 당시 기계화, 산업화로 치닿고 있는 비인간적인 현실을 도시 풍경으로 그리면서 현실에 대한 인식과 사실적 발언을 도모하였다.

<공작도시> 연작은 붉게 물든 도시의 지붕과 잿빛의 담벼락을 보여준다. 시선의 흐름은 전면에 가로막혀 있는 철조망 너머로 붉은 지붕의 수평면을 따라 점차 희미해지며 이어진다. - 전시 설명 중에서 


손상기의 작품들은 보이는 이의 마음 한 구석을 잡아당긴다. 그의 <공작도시> 연작은 너무나 유명해서 미술애호가라면, 아마 다들 한 두번씩은 보았을 것이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2층에서 열리고 있는 이 전시는 작지만, 무척 실속 있다. 전시 관람은 무료다. (현재 열리고 있는 미디어시티서울 전도 무료!) 전시 관람을 추천한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0


몸의 말 Body Speaking Words

2015. 10. 17 ~ 12. 31

한미사진미술관 



작년 겨울, 온 몸이 지쳐있었을 때, 한미사진미술관엘 갔다. 이런저런 이유로 인해 그 인근에 간 틈을 타, 잠시 미술관에 갔다 왔다. 미술관 안은 조용했다. 미술관의 조용함은, 뭔가 비-현실적인 느낌을 주는 탓에 나를 거친 현실로부터 떨어지게 한다. 하지만 이 낯설고 편안한 조용함은 반대로, 사람들이 좀 더 미술에 가까워지면, 미술시장 활성화나 예술가의 생계에 도움이 될 텐데라는 생각과 만나면, 조용함이 깨진 미술관이 어쩌면 우리 미래를 위해선 더 좋은 게 아닐까 하는.  


이 전시는 한미사진미술관이 소장한 작품들을 가늠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몸을 주제로 하여 소장품들을 모아 전시하였고, 작품들의 수준 또한 좋았다. 다만, 몸의 말이라는 다소 추상적인 메시지보다는 사진가들이 몸을 바라볼 때, 어떻게 바라보고 변모하였는가에, 지역이나 시대별로 그 변천사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전시 스토리나 구성이 좀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각 개별 작품의 완성도에 비해 전시 구성은 아쉬운 점이 많았던 전시였다.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내설악), Gelatin silver print, 1977 ⓒ강운구 


하지만 몇몇 사진들이 주는 울림은 대단한 것이었고, 몇 명의 사진작가들을 새로 알게 된 것은 나에겐 꽤 소중했다. 모리스 타바르, 안타나 수트쿠스, ....  몇 장의 사진을 올린다. 아래 사진 작품들은 한미사진미술관 소장품은 아니다. 구글 검색을 통해 찾은 몇 개의 이미지들이다. 


모리스 타바르 Maurice Tabard, Untitled, 1929 


안타나 수트쿠스 Antanas Sutkus 


안타나 수트쿠스 Antanas Sutkus 



* 한미사진미술관 : http://www.photomuseum.or.kr/ 

- 송파구 한미약품 빌딩 꼭대기 층에 있다. 입장료를 받으며, 미술관 창 밖 풍경이 무척 좋다. 근처를 왕래하는 이들에게 한 번 정도 들어가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좋은 곳이 될 것이다. 8호선 몽촌토성역에서 나오면 바로 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0





     산책 a walk 

      이인선 개인전

      정동경향갤러리(경향신문사 별관 1층), 2005년 8월 23일 - 29일

 

 

#1. 상실의 시대


언제부터 가슴 한 켠에선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처음 스치는 낯선 사람들로 가득한 도심의 잿빛 거리에서, 익숙한 간판의 낡은 커피향이 풍기는 찻집에서, 자욱한 담배 연기로 가득한 호프집에서, 누군가를 만나 원색 계열의 즐겁고 화려한 수다를 떨고 있는 동안마저도 거친 세파에 네모진 가슴의 어느 모퉁이에선 무관심에 방치되어 사라져가다가 결국은 형체도 없이 사라져, 겨우 그 어떤 것이 있던 자국만 남아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쓸쓸한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지 모를 일이다.


왜 나는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막연한 느낌을 가지고 있는 걸까. 그리고 이 느낌은 나만 가지고 있는 느낌일까. 가끔 거리 한 복판에서, 그 공간 속에서 나의 이름을 아는 이가 한 명도 없다는 사실에 끔찍한 공포를 느낀 적이 있었다. 19세기의 예술가들이 ‘모더니티’라고 열광했던 그 기분을 느낄 때마다 등에 땀방울 맺히고 시선은 좌우로 흔들리며 파란 하늘은 우주 끝으로까지 밀려나는 듯하고 회색빛 벽에 잠시 몸을 기대고 이마의 땀을 손바닥을 닦아낼 때, 나는 왜 지금 여기에 있는가를 반문해보곤 한다.


왜 지금/여기 지금 여기에 있는가하고 묻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이 질문이 얼마나 허황된 질문을 깨닫게 된다. 아무런 이유도, 그 어떤 필연성도 없다. 그저 우연적인 현상일 뿐. 나의 삶이 이 공간 속에서 펼쳐지는 것에는 아무런 이유도, 목적도 없다.


#2. 현대의 산책자


산책자란 아무런 이유도, 목적도 없이 거리를 떠도는 방랑자다. 자신의 익명성을 즐기며 타인의 익명성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이는 18세기 이후에야 시작되고 19세기에서야 본격화된 낯설고 흥미진진한 경험이다. 19세기의 예술가들을 사로잡았던 그 경험이다. 하지만 21세기의 산책자는 아무런 이유도, 목적도 없이 거리를 떠돌다가는 길을 잃어버리고 만다. 어디로 가야할지 모른 채 안절부절 못하다가 극도의 두려움에 휩싸이곤 한다. 자신을 둘러싼 외부세계의 모든 것들이 낯설어졌을 때, 예술가들은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인 양식에 몰두하게 되지만, 모더니즘의 이러한 양식은 결국엔 낯설어진 세계 앞에서 극단적으로 개인화되고 주관화된 양식으로 변모해갔다.


19세기의 산책자와 21세기의 산책자는 똑같이 낯선, 익명의 공간 속에 놓여진다. 하지만 19세기의 산책자는 그 곳에서 새로운 즐거움을 발견해 내지만, 21세기의 산책자는 그 곳에서 뒷걸음질치다가 결국에는 그 낯선 공간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개인화되고 주관화된 시선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 주관화된 공간 속에서 떨쳐내지 못한 막연한 상실의 느낌과 싸우기 시작한다. 똑같은 산책이지만, 결국엔 19세기의 산책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산책으로 변해간 것이다.


낯선 세계 속에서, 자신을 알지 못하는 익명의 공간 속에서, 버려진 듯한 느낌으로 길을 걷다가도 익숙한 어떤 이의 이름을 듣거나 익숙한 물건이나 음악을 듣게 될 때, 아주 짧은 시간이기는 하지만, 막연한 상실감에서 잠시 벗어나 편안함을 느끼게 되는 순간을 잊지 못한다. 그리하여 이인선은 똑같은 산책자이면서 아무런 이유도, 목적도 없이 거리를 떠돌다가 우연히 마주하게 된 낯선 풍경 속에서 자신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익은 듯한 풍경을 찾아내고 그 풍경을 자신의 시각으로 풀어내고 변용시킨다.


#3. 익숙한 산책


이인선의 <1367-1 번지>는 거대한 익명의 도시 모퉁이에 흔히 볼 수 있는 낡고 오래된 건물을 캔버스에 옮긴 작품이다. 하지만 작품 속에서 드러나 있는 건물은 현실적이라기보다는 비현실적인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 그러나 비현실적이기 때문에 좀 더 익숙하고 편안한 느낌을 풍기는 건 어떤 이유 때문일까. 


이인선의 작품들이 가지는 특징은 여기에 있다. 일련의 <1367-1 번지> 작품들은 거대한 도시 문명 속에서 늘 익명성의 타자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면서 느낀 고립감, 쓸쓸함, 막연한 상실감 등을 익숙하고 편안한 풍경으로 변화시킨다. 그래서 쓸쓸한 도시의 변두리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어떤 건물을 옮겨와서는 비현실적인 어떤 공간 속에 위치시키고 그 건물 속에서 견고하고 따뜻한 어떤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도시의 쓸쓸하고 외로워 보이는 어떤 건물 하나가 화가의 작업을 통해 거칠고 차가워 보이는 형태감이나 색채를 잃어버리고 아주 오래전에 우리 옆에 있었을 법한 어떤 풍경 속으로 자리 잡게 된다. 원래는 하나였지만, 어느 순간 잊고 지내온, 그래서 외부와는 아무런 소통도 없이 따로 떨어진 채로 살아가고 있는 어떤 풍경을 이인선은 외부 세계의 어떤 풍경 속에서 끄집어내고 그것을 화폭에 옮겨놓는 것이다.


이제 낯설음으로 열광하던 산책자에서 낯설음을 익숙함으로 변화시키는 산책자로 자리이동이 시작된 것이다.

 

(글쓴이. 김용섭)






* 2005년에 쓴 글이다. 자료 관리를 위해 블로그에 업로드한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0


대한항공 박스 프로젝트 2015:

율리어스 포프 Julius Popp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비트.폴 펄스(bit.fall pulse)>는 데이터의 최소 단위 정보 조각(bit)의 떨어진(fall), 즉 쏟아지며 짧은 순간만 존재할 수 있는 정보의 일시성과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전파되는 정보의 활발한 맥(pulse)을 의미합니다. 작품은 실시간으로 인터넷과 연결되어 작가가 고안한 통계 알고리즘을 통해 인터넷 뉴스피드에 게재된 단어의 노출빈도수를 측정하고 각 단어의 중요도에 따라 '물 글씨' 단어를 선택합니다. 전시장 안에서 연속적으로 빠르게 쏟아져 내리는 이 '정보 데이터의 폭포'는 1초도 안 되는 시간에만 유효한 정보의 일시성과 현대인이 이해하고 소화시킬 시간적 여유를 제공하지 않는 정보 과잉의 현대 사회를 시각화합니다. 또한 생동감 있게 오늘날의 주요 사건과 연루된 단어들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작가는 개별적인 단어의 가치보다는 인간과 사회가 정보를 어떻게 소비하는지, 또한 소비되는 정보의 의미와 가치는 어떻게 변화하는지 주목합니다. 

- <전시 설명> 중에서 




출처: 직접 찍음(낡은 폰 카메라로 찍은 탓에...) 



이런 작품은 콘텍스트에 의해 많이 좌우된다. 적절한 아이디어와 기술, 데이터(단어)의 조합과 일시성, 조명과 소리. 미디어 설치작품은 공간과 호흡하며 공간 속으로 들어가 공간의 일부가 되거나 공간의 전부가 된다. 공간을 새롭게 하며, 그 공간을 찾아온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으며 우리의 마음을, 머리를, 몸을 환기시킨다. 율리어스 포프의 작품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미디어 설치 작품은 본질적으로 그러하다. 


율리어스 포프는 이 작품으로만 너무 오래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만큼 직접적이고 이해하기 쉽고 도심의 공간 속에 들어가기 용이하다. 또한 다양한 매체들과 연계되면서 21세기 초반 문명의 특성을 고스란히 담아낸다는 점에서도 비평적 찬사를 끌어낼 수 있다. 



이렇게 보면, 결국 대중의 호응(재미있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과 우호적 비평(다양한 매체와 혼합과 연결)을 만들 수 있는 어떤 컨셉만 있으면 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까지 미친다. 인간 삶에 대한 고독한 탐구와 끊임없는 연마가 아니라, 적절한 탐색과 만남, 괜찮은 아이디어(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아니라)가 현대 예술가에게 필요한 것이 아닐까. 





나에게 율리우스 포프의 작품이 매력적인 측면은, 바로 '물소리다. 기계들이 만들어내는 둔탁한 물소리. 어두운 갤러리 공간에서 순간 나타났다 사라지는 글자들 위로 거칠고 무거운 물소리가 들린다. 그 여운은 꽤 길어서 이 느낌은 뭘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마치 디스토피아를 암시하듯. 

더 멀리 나아가선 칸트의 '숭고미'까지. 결국 우리는 자연의 거대한 흐름에 굴복하고 말 것이다. 아무리 현대 문명에 열광할 지라도 그건 순간이며, 떨어지는 물처럼 사라질 것이다. 그저 흘러가는 물이 될 것이다. 어느 새 강이 되고 끝없는 바다가 될 것이다. 

자연의 관점에선 모든 것이 부질없다. 결국 율리우스 포프의 작품이 향하는 곳은 바로 이 지점이다. 모든 것은 허무하고 부질없다는 것. 

이 첨단의 미디어 예술가도 현대의 허무주의와 싸우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허무하다는 것을 환기시키는 걸까. 그건 관람객의 몫이다.   





미술관에서는 율리우스 포프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율리어스 포프(1973~ )는 독일 라이프치히 시각예술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뉴욕현대미술관(2008), 리옹 현대미술관(2008), 빅토리아 앤드 알버트미술관(2009), ZKM(2015) 등의 해외 유수 기관의 기획전에 참가하였으며, 2012년 런던 올림픽을 기념하는 <비트.폴bit.fall> 작품 설치로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다. 과학과 예술의 경계에 위치한 그의 작품은 정보의 특성을 주목하고 디지털 시대의 정보와 인간의 상호적 관계를 탐구해왔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0



구글 어스로부터 온 엽서들(Postcards from Google Earth) 

- 클레멘트 발라(Clement Valla) 

http://www.postcards-from-google-earth.com/










이 흥미로운 프로젝트는 구글 어스에 찍힌 사진들의 모음이다. 그런데 모여진 사진들이 이상하고 낯설다. 그냥 프로그램 결함이나 에러로 여길 법한 이 사진들에 대한 클레멘트 발라의 생각은 다르다. 


내가 제대로 이해했다면, 구글 어스 이미지들은 색인화된 사진들-어떤 장소를 찾고 그 곳을 미리 볼 수 있는 형태가 아니라, 자동화된 데이터 모음으로, 끊김없이 아주 매끄러운 환상을 만들고 업데이트하면서 재현(representation)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사진들은 프로그램 알고리즘의 에러나 결함이 아니라, 시스템 안의 변칙적이며 비표준적인 것이며, 그래서 시스템 안에 존재하는 국외자(outlier)라고 할까. 


결국 우리는 이 사진들을 통해 재현된 어떤 장소를 찾는 것이 아니라, 그런 사진들(these uncanny images)이 나오게 된 알고리즘, 컴퓨터나 서비스와 관련된 저장 시스템, 위성 카메라나 지도 등등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작가는 이를 두고  '재현의 새로운 모델'(a new model of representation)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구글 어스를 찾게 되는 것은 지구(Earth) 위의 어떤 장소 때문인데, 이 기묘한 사진들은 우리가 목적으로 했던 그 장소가 아닌 다른 곳을 향하게 한다. 다소 거칠게 표현하지만, 표상 그 자체가 아니라 표상을 둘러싼 환경을 고민하게 한다고 할까. 클레멘트 발라의, 이런 생각이 너무 흥미롭기만 하다. 그리고 그는 이 프로젝트를 바탕으로 2014년 스위스에서 설치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Postcards from Google Earth Installation

inkjet on vinyl, mdf

2014, Festival des Images, Vevey, Switzerland

(출처: http://clementvalla.com/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0


니나 카렐Nina Canell 개인전 <새틴 이온Satin Ions>

2015년 5월 29일 - 8월 9일 

아르코미술관 제2전시실 





전시 팸플릿을 읽어야만 이해가 되는 예술 작품은 어떻게 받아야 들여야 할까. 그리고 이해만 될 뿐이라면 또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난감하기 이루 말할 수 없다. 작년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린 니나 카렐 개인전인 그런 종류의 전시였다. 마치 '현대 미술의 제 무덤 파기 프로젝트'로 여겨질 정도라고 할까. 


요점만 말하자면, 예술 작품은 본질적으로 '어떤 심리적 환기'를 가지고 와야 한다. 칸트는 이를 '쾌', '불쾌'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그런데 나는 니나 카렐 작품 앞에서 멈칫멈칫할 수 밖에 없었다. 일종의 연구이긴 하지만, 그래서? 연구는 실험실에서 하는 것이다. 마치 외계인의 언어처럼 내 앞에 덩그러니 놓여진 여러 작품들을 보면서 난감하기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또한 이번 전시 <새틴 이온>에서는 오늘날의 무선 인터넷과 같이 와이어리스의 세계의 기반이 되는 지하 매설 케이블에 관심을 두고, 서울 근교에서 수집한 재활용 케이블 덩어리들로 전시의 마지막 챕터를 구성한다. 오늘날 수많은 디지털 정보는 선이 없는(wireless) 상태를 지향하지만, 이는 사실 지하의 보다 많은 양의 케이블 증가라는 아이러니한 현상을 만들고 있다. 작가는 이러한 관심에서 서울 근교의 케이블 재활용센터를 방문하여 녹아 내려 형태가 변화한 상태와 향후를 위해 재탄생되는 미래적 시간을 함의한 상태 사이에 놓여져 있는 케이블 덩어리들을 수집한다. 케이블의 심지가 빠지고 껍질만 남은 피복 플라스틱에 열을 가해 모양이 변형된 이 덩어리들은 수십 미터의 물리적인 길이가 '정보'의 송수신이라는 비물질적 거리를 드러내는 덩어리로 변모한 역설적인 상태를 암시한다. 

- 전시 팸플릿 중에서  




추상화된 디지털 정보는 물질적인 케이블에 의존한다? 그래서? 물질과 비물질의 관계, 혹은 디지털과 케이블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는가? 이는 언어와 책의 관계와 같다. 말과 혀의 관계다. 즉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은 보이지는 것들을 매개로 한다. 표현되지 못한 우리의 생각이 우리 육체 속에 담겨져 있듯이. 마치 뭔가 대단한 연구인 양 포장하고 있지만, 늘 있던 어떤 물음의 동어반복일 뿐이다. 





니나 카넬은 물체의 성질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그 물성과 주변 환경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의식한다. 서로 다른 재료와 물질이 결합하여 이루어지는 작가의 조각은 이러한 인간의 시각에는 쉽게 포착되지 않지만 공간 내에 공존하는 비물질적인 영역의 항상성(consistency)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 전시 팸플릿 중에서  



시각적으로도 흥미롭지 못했고 주제의식도 또한 문제적이지 않았다. 더구나 작품들이 보여주는 미적 완결성은 형편없었다. 재미있지도 않았다. 대단한 테크놀러지가 담긴 것도 아니고 전자파 구덩이로 만든 것도 아니다. 솔직히 이 전시를 위해 내가 낸 세금이 들어갔다는 사실이 안타까웠을 뿐이다. 너무 안타까워서 전시 설명을 위해 서 있던 도슨트(혹은 큐레이터였는지도)에게 물어보았다. 작품이 마음에 드냐고? 아. 그녀는 마음에 든다고 했다. 현대 미술이 암울해지는 순간이다. 지금도 몇몇 예술가들은 끊임없이 현대 미술의 무덤을 파고 있는 중이다. 아주 열심히. 그리고 일군의 평론가들도 여기에 동참에 일반 대중들은 알아듣지도 못할 단어를 사용해가며 깊숙이 깊숙이 땅을 파고 있을 터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0



이불 LEE BUL 

국립현대미술관 현대차 시리즈 2014 

2014.9.30 – 2015.3.1 

(현대자동차 http://brand.hyundai.com/ko/main.do)





그 공간에 서면, 작품 한 가운데 서면, ‘여긴 어디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빨리 나가거나 계속 머무르거나. <태양의 도시 II>에서. 


2014년 이불은 현대자동차의 지원을 받아 국립현대미술관에 2개의 작품을 전시한다. <태양의 도시II>와 <새벽의 노래II>. 둘 다 기계적 초현실주의, 혹은 실험주의라고 할까. 미술에서 초현실주의나 실험주의라고 하면, 반-기계적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그렇지 않다. 이탈리아의 F.T.마리네티Marinetti는 미래주의를 주장하면서 기계적 특징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하지만 그 흐름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고 금세 반-기계주의로 기울었지만.


내가 이불의 작품 앞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그녀의 이번 작품이 기계적 형태를 띄면서도 반-현실적인 유토피아를 향하고 있다고 할까. 




태양의 도시 II, 2014

폴리카보네이트, 아크릴 거울, LED 조명, 전선, 330 x 3325 x 1850 cm

사진: 전병철, 사진제공: 국립현대미술관 

출처 http://brand.hyundai.com/ko/art/with-mmca/mmca-hyundai-motor-series-2014-leebul.do



한 편으로 건축적이면서 반-건축적이기도 하다. 건축이란 사람이 지낼 수 있는 공간, 사람과 호흡하는 공간을 향하지만, 이불의 작품 속에서 사람이 기댈 곳은 없었다. 작품 속을 걸어갈 수 있으나, 그것은 참여가 아니라 바라봄일 뿐이다. 



태양의 도시 II, 2014

폴리카보네이트, 아크릴 거울, LED 조명, 전선, 330 x 3325 x 1850 cm

사진: 서지연 아트인포스트 제공

출처 http://brand.hyundai.com/ko/art/with-mmca/mmca-hyundai-motor-series-2014-leebul.do




이불은 인류의 자유와 해방을 목표로 한 근대 기획의 모든 서사들을 유토피아에 대한 열망으로 보고 이에 대해 물음을 제기한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완벽’에 대한 환상에 대해 언급한다. 완벽에의 헛된 열망과 그 적나라한 실체를 마주하게 함으로써 어쩌면 외면하고자 하는 현실을 거침없이 드러낸다. 이불의 작품 세계는 삶과 죽음, 추와 미, 세속과 신성, 실재와 꿈이 무수히 교차하는 현실 속으로 차갑고도 뜨겁게 그 근원 혹은 경계를 찾아 나아간다. (전시 팜플릿 중에서) 



현대 예술은 종종 질문을 던진다. 이불은 낯선 공간을 보여주면서 관객을 자극한다. 낯선 공간 속에 관객을 밀어넣고 다소 신기하면서도 차갑고 두터운 경험을 선사하면서 작품 속 공간과 작품 밖 공간을 대비시킨다. 그리고 원시적이며 무섭고, 그러면서 기계적이라는 느낌을 가지게 한다. 흥미롭게도 국립현대미술관은 더 기계적인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새벽의 노래 III, 2014

알루미늄, 폴리카보네이트, 메탈라이즈드 필름, LED 조명, 전선, 스테인리스 스틸, 포그 머신, 가변 설치

사진: 전병철, 사진제공: 국립현대미술관



일반 관람객들에겐 이 정도의 경험도 무척 값질 것이다. 하지만 너무 스펙터클에만 집중한 건 아닐까. 다가갈 수 없는 공간에 대한 두려움, 경외감은 이미 자연 속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작품이 조금 어렵게 느껴졌다. 그 공간이 익숙하지 않았고 너무 멀었다. 


2014년 전시 감상문을 지금이라도 정리해두는 이유는 이불은 그만큼 중요한 작가이기 때문이다. 1997년 뉴욕 현대미술관에서의 전시 작품은 정말 대단했다. 





화엄 Majestic Splendor

1997

stills from original installation

Courtesy: Studio Lee Bul

Photo: Robert Puglisi

출처 http://www.mori.art.museum/korean/contents/leebul/introduction/03.html



아래와 같이 죽은 물고기를 전시 했다. 보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시각적 효과를 가졌을 텐데, 전시 기간동안 물고기는 썩어갔다. 썩어가면서 다양한 향을 내품었다. 결국 관람객들의 항의로 인해 철수되었지만, 이 때 이불은 전세계 미술계에 강력한 인상을 남긴다. 이 얼마나 대단한 접근인가. 미술관 공간에 대한 질문부터 니네들도 이렇게 냄새 풍기며 썩을 거라고 경고까지 날리니까. 그리고 그 썩어가는 과정에 대해 경외감을 가진 제목이라니.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0





'싹' 그리고 '정물화: 살아있는 것의 소고' - 김주연 사진전

2016.4.7 - 5.3, 트렁크갤러리, 서울 





트렁크갤러리도 참 오랜만이었다. 설치 작가로 알고 있었는데, 사진 작품으로 만났다. 2008년의 쿤스트독이었나, 아니면 다른 전시에서였나, 김주연의 작품을 만난 적이 있다. 선명한 작품 스타일로 한 번 보면 기억하게 된다. 그 동안 다양한 공간/물건에 식물을 키웠는데, 이번엔 옷이다. 



김주연, 존재의 가벼움I -2, 사진, 피그먼트 프린트, 144×108cm, 2014



시간은 현대 미술에 있어서 중요한 화두다. 김주연은 그 위로 생명의 시작과 끝은 넣으며 식물이 자라고 있는 공간을 탈세속화시킨다. 세속에서 일정 기능을 수행하는 어떤 것에 씨앗을 심음으로서, 그것이 가지고 있던 세속의 기능을 잃게 만든다. 그리고 마치 버려진 물건처럼, 버려졌다가 기적처럼 식물에 의해 전혀 다른 기능과 목적으로 되살아 나는 듯하다. 


그런데 이건 무엇을 지향하는 걸까? 여기에선 고객을 갸웃거릴 수 밖에 없다. 왜냐면 자연 속에 버려지는 모든 것들 위로는 무조건 어떤 것이 자라기 때문이다. 그게 식물이든 곰팡이든.  결국 작품들은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는 어떤 공간을 그대로 옮겨온 것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다만 깊은 산 속에서 마주할 때와 갤러리에서 마주하는 것이 다를 뿐. 

  


김주연, 정물화살아있는 것에 대한 소고I, 사진, 90×60cm



갤러리에서 인류 문명을 부정하는 작품을 만나, 우리와 무관한(혹은 거부하는) 자연을 경험하는 것 자체가 현대 문명에 대한 깊은 의문과 우려가 될 수 있겠다. 우리가 맹목적으로 집착하는 것들 대부분, 그것을 위치한 콘텍스트를 상실하는 순간 전혀 다른 존재가 되기 때문에. 


그래서 김주연의 작품들은 자라나는 식물 속에서 우리를 다시 묻는 일종의 질문이며 반성이 된다.   




김주연, Metamorphosis, 아시바구조물, 신문지 약 18000부(3톤), 씨앗식물, 가변설치, 2008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0

Leandro Erlich 레안드로 에를리치

Port of Reflections 대척점의 항구

2014. 11. 4 - 2015. 9. 13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서울박스 

한진해운 박스 프로젝트 2014 




2012년 송은아트스페이스에서의 전시 이후 다시 만나는 레안드로 에를리치다. 1973년 부에노스 아이레스 출신인 레안드로 에를리치는 2001년에 이미 베니스 비엔날레에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작가로 참여했다. 이십대 후반에 이미 그는 아르헨티나 최고의 작가 반열에 오른 셈이다. 2005년에 다시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가했고, 2000년에는 휘트니 비엔날레, 2001년에는 이스탄불 비엔날레에 참가했다. 


이른 나이에 세계적인 명성을 쌓기 시작했는데, 이번 국립 현대 미술관에 전시된 <대척점의 항구>는 그간 그가 보여주었던 공간의 착시 효과를 통한 물리적 환경의 변화, 경험, 그리고 관람객의 놀라움 등을 느끼기엔 다소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이전 송은아트스페이스는 낮은 천장의 실내 공간에서의 전시라는 점에서 작품은 좋았으나, 관람객의 극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데는 힘에 부쳤다고 할까. 


레안드로 에를리치는 규모있는 작품에서 강한 면모를 보인다고 해야 할까. 하긴 형편없는 작품이라도 규모에서 압도하면 그럴싸해 보이기도 한다.(파리 오르세 미술관 1층을 가득채운 19세기 후반 아카데미 미술 작품들을 떠올려 보라.이 작품들을 보며 흥분하는 관람객들이란!!)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전시 모습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전시 모습



위 사진들은 전시 공간 아래서 위로 본 모습이다. 그런데 저 위에서 아래를 보면 어떤 모습일까?(전시를 관람하면서 그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지만, 안내를 받지 못했고 그럴 여유도 없었다.)  





이미지 출처: http://www.leandroerlich.com.ar/ 


위에서 본 레안드로 에를리치의 <대척점의 항구>는 이런 모습이다. 그러니 반드시 위로 올라가서 두 개의 시선으로 작품을 바라봐야만 제대로 감상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다른 작품 <Swimming Pool>이다. 아래 사진을 보면 풀장 아래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출처: http://whenonearth.net/the-swimming-pool-by-leandro-erlich-in-kanazawa-japan/ 



그리고 아래에선 이런 모습이다. 아, 이건 풀장이 아니다. 



출처: http://twistedsifter.com/2012/08/fake-swimming-pool-illusion-by-leandro-erlich/ 


실제 물은 약 10cm정도만 채워져 있을 뿐이다. 그리고 물 아래 투명한 유리가 있고. 위에서 아래로 보면 영락없는 풀장이지만(실제 물인가 하고 만져보는 사람들도 있다), 아래에서 위로 보면 이건 뭐랄까. 



아래 작품은 2013년 런던 건축 페스티벌에서 전시된  <Dalston House>다. 2004년 프랑스 파리에서 <Batiment>이라는 이름으로 최초 전시된 이후, 세계 여러 도시에서 초대 전시되는 듯 싶다. 


아래 작품 사진을 보자.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약 45도 정도로 기울어진 거대한 유리를 통해 시각적 착시 효과를 노린 설치 작품이다. 아이디어도 흥미롭지만, 더 흥미로운 것은 관람객들의 반응이다. 



출처: http://www.dezeen.com/2013/06/26/dalston-house-by-leandro-erlich/ 


아래는 2004년 파리 전시 모습이다. 


출처: http://www.artforworldexpo.com/InitialProject/works_27_LeandroErlich.html 


레안드로 에를리치의 작품은 관람객으로 하여금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고 관람객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여기에 참여한다. 


이번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의 전시 설명을 읽어보자.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유망작가 레안드로 에를리치는 서울관의 중심 공간인 서울박스의 공간적 특성을 반영한 신작 <대척점의 항구 Port of Reflections>을 선보입니다. 아름다운 항구로 변신한 서울박스 공간을 부유하는 선박들과 가로등은 거울처럼 맑은 수면 위에 반사된 물그림자와 함께 환상적이며, 초현실적인 풍경을 보여줍니다. 현실과 환영, 실재와 가상이 절묘하게 결합된 풍경 속으로 직접 뛰어들어 경험할 수 있는 이 작품은 (...) 순수한 시각적 호기심을 유도합니다. 



위 전시 설명은 이번 전시 작품 이외에 이 글에서 언급한 두 작품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이런 일관된 테마로 10년 이상 작품 활동을 해오고 있다. 이번 전시는 올 9월까지 이어지니, 한 번 가서 경험해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작품 이미지 및 자료 참고)

레안드로 에를리치 홈페이지 : http://www.leandroerlich.com.ar/ 

Dalston House by Leandro Erlich http://www.dezeen.com/2013/06/26/dalston-house-by-leandro-erlich/ 

Leandro Erlich http://en.wikipedia.org/wiki/Leandro_Erlich 

http://www.artforworldexpo.com/InitialProject/works_27_LeandroErlich.html 

http://momaps1.org/exhibitions/view/207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0


움직이는 조각 알렉산더 칼더 Alexander Calder  

July 18 - October 20, 2013 

리움Leeum, Samsung Museum of Art 




전시를 보고 난 다음, 리뷰를 쓰기 위해 몇 편의 논문들과 자료들을 모아두었는데, 역시 직장인이란 늘 시간이 없다보니, 이젠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그냥 메모만 해둔다. 


2013년 여름에 있었던 이 전시는 총 118점이 전시된 국내 최대 규모의 알렉산더 칼더 회고전이었다. 칼더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무척 뜻깊은 자리였으며, 칼더를 모르는 이들에겐 칼더의 조각 인생 전체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었던 자리였다. 



서커스 장면 Circus Scene

1929

Wire, wood and paint

127 x 118.7 x 46 cm

Calder Foundation, New York



알렉산더 칼더(1898-1976)는 움직이는 조각, 모빌을 창안하여 현대 조각의 혁신을 이끌었다. 미술가 집안에서 태어나 일상 속에서 미술을 접하며 자란 칼더는 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했으나 결국 잠재된 예술성을 따라 조각가의 길에 들어섰다. 그는 1920년대 파리에 머물면서 몬드리안과 미로, 뒤샹, 아르프 등 당시 파리 미술계를 이끌던 작가들과 교류하며 추상 미술과 초현실주의같은 당대 최신 미술 경향을 접하고 크게 영향 받았다. 칼더의 대표적인 작업인 모빌과 스태빌은 칼더의 예술적 재능과 동시대 아방가르드 미술, 움직임을 구현하는 그의 공학적 지식이 조화를 이루어 탄생한 20세기 최고의 혁신적 조각이다. - <전시 팜플렛> 중에서



<서커스 장면>이라는 작품에서 우리는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철사로만 표현하는 칼더의 재능을 확인할 수 있다.  <곡예사들>이라는 아래 작품에서 칼더가 지닌 탁월함을 확인할 수 있다. 



곡예사들 Acrobats

c. 1927

Wire and wood

87.6 x 22.9 x 30.5 cm

Calder Foundation, New York

Gift of Katherine Merle-Smith Thomas in memory of Van Santvoord Merle-Smith, Jr., 2010




(... ...) 칼더 예술의 근간이 형성된 1920년대와 그의 혁신적인 작업인 모빌이 처음 등장하는 1930년대의 작업들이 선보인다. 우선, 그의 예술적 관심이 발하기 시작한 학창 시절의 그림들, 동물의 움직임을 세밀하게 묘사한 동물 스케치들, 1926년 파리 이주 직후에 시작된 철사조각들이 전시되어 있다. 대상의 특징적인 형태와 움직임을 예리하게 포착하여 이를 놀라운 솜씨로 표현한 철사조각은 칼더의 천재성을 여실히 드러낸다. 이어 칼더가 파리의 주요 미술가들과 교류하며 추상미술을 익히고 이를 자신만의 양식으로 탄생시킨 1930년대의 역사적인 모빌과 스태빌도 감상할 수 있다. - <전시 팜플렛> 중에서 


Small Feathers

1931

Wire, hout, lead and paint

97.8 x 81.3 x 40.6 cm

Calder Foundation, New York





The Star, 1960

Polychrome sheet metal and steel wire, 35 3/4 x 53 3/4 x 17 5/8”

Bequest of George and Susan Proskauer 



(... ...) 작가의 전성기인 1940년대의 작업부터, 그가 말년에 집중적으로 제작한 대형 공공조각의 모형들이 전시되어 있다. 원숙의 경지에 들어선 1940년대의 모빌은 단순히 균형을 이루는 수준을 넘어 역동적이고 다양한 움직임들을 보여준다. 조각의 형태 역시 작업실 주변 자연 환경에서 받은 영감과 초현실주의의 영향이 반영된 유깆거인 특징이 두드러지면서 다채로와진다. 칼더는 작가로서 큰 명성을 얻은 이후에도 여전히 새로운 실험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2차 대전 동안 부족해진 금속 재료를 대신하여 나무나 청동으로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작업을 선보여 예술가로서의 부단한 노력과 창의성을 보여주었다. - <전시 팜플렛> 중에서 




The three wings

Sculpture by Alexander Calder, 1967. 

Angered, Gothenburg, sweden.

출처 - http://commons.wikimedia.org/wiki/




1960년대부터는 칼더는 공학기술을 이용해 공공 장소에 어우러지는 대형 조각을 만드는 일에 더 흥미를 느꼈다. 산업용 철판을 사용한 그의 대형 조각들은 마치 선박을 건조하듯 볼트로 조립하여 완성되었다. 1960년대는 많은 미국 조각들이 공공조각을 제작한 시기인데, 그 가운데서도 역동적이면서 부드러운 곡석인 특징적인 칼더의 대형 조각은 직사각형의 단순하고 기하학적인 1960-70년대 국제 양식의 건물들과 대비를 이루며 공간에 활기를 불어 넣었고 도시의 랜드 마크가 되었다. - <전시 팜플렛> 중에서 





거대한 속도 La Grande vitesse 

1969

sheet metal, bolts, and paint 



칼더의 <거대한 속도>는 너무 유명한 조각이라, 구글에서 검색해보면 세계 여러 도시에서 이 작품을 볼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칼더의 탁월함은 자연적 요소 - 공간, 바람, 공기 - 등과 어우러지면서 조각이 움직이며 이 움직임 속으로 관객이 참여한다는 것이다. 이 움직임은 지극히 기하학적이면서도 유려하고 아름답다. 더구나 대중적이기까지 하다. 칼더의 작품은 쉽게 볼 수 있으니, 다음에 보게 되면다면 한 번 유심히 보면서 칼더의 작품이 시사하는 바를 곰곰히 생각해보는 것도 무척 흥미로울 것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0



2회 더 브릴리언트 아트 프로젝트 

드림 소사이어티 전 - X brid 

2014. 10. 11 - 11. 16 

서울미술관 




전시를 관람한 지 벌써 한 달이 지났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어제 본 것처럼 아직도 전시 관람의 여운이 사라지지 않았다. 이 전시에 나온 작품들 하나하나는 눈 여겨 보고 기억해 둘 만큼 전시 수준이 높았다. 신경 쓴 흔적이 눈에 보인다고 할까. 


실은 전시를 자주 다니고 한때 미술계에서 일했던 이로서 조금 부끄러웠다. 내가 모르는 작가들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에. 대부분의 작가들이 몇 년에 한 번씩 개인전을 여는 탓에, 신경 쓰지 않으면 좋은 전시도 놓치고 오래 활동해왔으나 모르는 작가가 있기 마련이라고 하지만, ... 내가 게을렀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 이제 미술 애호가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지금은 더욱더. 


이번 전시는 현대자동차가 직접 후원하는 '더 브릴리언트 아트 프로젝트The Brilliant Art Project'의 하나로 기획된 '드림 소사이어티 Dream Society' 전으로, 이번이 2회째다. 1회 때에서 옛 서울역, 지금은 문화역서울 284로 불리는 전시관에서 열렸고 그 때도 대단한 관심을 받았던 걸로 기억한다(하지만 가진 못했다). 


그 때도 대안공간 루프의 디렉터 서진석이 기획하였고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드림 소사이어티라는 단어는 롤프 옌센이라는 미래학자의 저서에서 가지고 온 단어로, 정보사회에 뒤이어 '꿈과 감성을 파는 사회'가 올 것이고 이를 '드림 소사이어티'로 명명한다. 이번 전시를 후원한 현대자동차, 이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 그리고 이 전시를 보러온 관람객 모두 이런 '드림 소사이어티'를 꿈꾸고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사회로 가는 건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있을 테고, 이 여정을 위한 이번 전시의 주제는 X brid다.   



X brid는 혼성물, 이질적인 것의 결합 등을 뜻하는 하이브리드(Hybrid)와 미지의 수 'X'를 충첩시킨 보다 창조적이고 진보된 신조어이다. 'X'는 수학에서 아직 결정되지 않은 기호, 미지수를 뜻하며 '1+1'이 규정, 결정되지 않아 여러 가능성을 열어둔 새로운 '1'의 생성임을 환기시킨다. 이러한 의미에서 'X'는 서로 이질적이거나 상충하는 것의 융합으로 종래 질서와 인식 범위에 갇히지 않는 미지의 다양하고 확장된 세계를 말한다. 


모든 이질적인 요소들이 융합된 'X'는 기존의 관습이나 가치관, 생활방식에서 벗어나고 껍질뿐인 외관, 외양에 찬사를 보내는 삶의 태도나 인식 등을 넘어서 궁극적으로 '완벽한 거듭나기'를 제안한다. 

- 서진석(대안공간 루프 디렉터) 



X brid에 대해 이번 전시를 기획한 서진석의 글 일부를 옮긴다. 하지만 쉽진 않다. 전시 기획의 어려움을 여실히 느끼게 만든다. 수준 높은 작품들로, 왕성한 활동을 하는 작가들로, 한 쪽으로 편향되지 않으면서도 기존의 관습에서 벗어나 새롭고 미래지향적인 느낌을 보여줄 수 있도록 하는 것. 내가 적고 있긴 하지만, 이건 참, 어렵다. 


이에 서진적은 본 전시의 목적 아래 3가지로 요약한다. 


드림 소사이어티 전의 목적

첫째, 21세기 예술의 새로운 환경적 공공성 제시 

둘째, 다양한 장르의 창작자들과의 협업을 통한 무경계 융합 예술 제시

셋째, 21세기 예술계와 산업계 간의 수평적 교류 

- 서진석(대안공간 루프 디렉터) 



전시를 관람하고 난 다음 위 목적에 어느 정도 부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지만, 이러한 메시지가 관람객에게 제대로 전달되었는지에 대해선 의문이다. 하긴 관람객들 대부분은 개별 작품들이 주는 놀라움과 신선함에 먼저 매료되었을 테니, 본 전시의 목적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더라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최우람(CHOE U-Ram)

URC-1 

motor headlights, steel, COB LED, aluminium radiator, DMX controller, PC

312*332*296 cm

2014 



최우람의 작품은 먼저 기계 장치의 조형성, 그리고 그 기계 장치가 보여주는 율동, 운동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끈다. 이번 작품은 자동차 헤드라이트가 가지는 조형성이 돋보였다는 점에서 무척 흥미로웠다.  








백정기(BEAK Jungki) 

Egg Incubator: Candle and Plant 

egg, candle, plant, thermoelement, incandescent lamp, glass, wood, steel, mixed media

dimensions variable 

2014 



이번 전시에서 날 매혹시켰던 작가다. 그는 '달걀 부화기'는 작품을 선보였는데, 화분에서, 양초에서 전기를 얻어 달걀 부화기를 만들고 실제 달걀을 부화시킨다. 과거의 미술 작품이 정지된 조형성, 또는 반복되는 조형적 움직임에 집중하였다면, 이 작품은 조형적인 영역을 벗어나 환경 속에서 무언가를 얻고 이를 과정화시키며 어떤 실질적인 가치를 환기킨다. 그는 이 작품을 위해 많은 것들을 새로 공부하고 배웠을 것이다. 앞에서 소개한 최우람도 마찬가지일 테지만.


하지만 '달걀 부화'라는 컨셉은 재미있고 신선하기는 하나, 묵직한 느낌은 없다. 소년이 좋아할 만한 컨셉이지, 현대 예술이 싸워야 하는 어떤 것들에는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드는 건, 내가 너무 진지하고 심각해서 그런 걸까. 



김기라(KIM Kira)

A Weight of Ideology_Darkness at Noon-Behind of Rainbow 

designed carpet, handmade wool carpet 

300cm diameter circle 

2014 



이 점에서 김기라의 작품은 너무 심각하고 끔찍하기까지 하다. 위 둥근 카펫은 한국의 세대별 자살율을 표현한 것이다. 신발을 벗고 이 카펫 위에 잠시 서 있어 보았는데, 아, 기분이 매우 나빴다. 



파블로 발부에나(Pablo Valbuena) 

Para-Site

site-specific installation

video-projection on exhibition plinths 

2014 



파블로 발부에나의 작품은 무척 흥미로웠다. 우리에게 공간의 해체와 재구성이 어떤 것임을 알려주며 빛과 공간의 하모니를 표현하고 있다. 아래 동영상이 실제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Youtube에서는 그의 다른 작품들에 대한 동영상 몇 편을 찾아 볼 수 있다.  









요시타즈 야마가타(Yoshikazu Yamagata) 

The Seven Gods - Cloths from Chaos 

writtenafterwards 

2013



요시타즈 야마가타는 일본의 패션 디자이너/패션 아티스트로 '융합'이 관점에서 이 전시에 초대된 듯 보인다. 작품은 다소 생경스럽고 일본적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풍겼다. 선호가 분명한 작품이지만, 실제로는 이 작품을 패션쇼 형태로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 전시 오픈 때 요시타즈 야마가타의 패션쇼가 진행되었다. 



강영호 (KANG Youngho)

The Judgement which Prohibits Pride 

pigment ink on fine art paper

225 * 15 cm

2014 



강영호는 사진 촬영을 일종의 퍼포먼스 속에서 진행하였다. 이 퍼포먼스 동영상이 전시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한 마디로, 놀라웠다. 사진들은 마치 살아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고 빨려들 듯한 신비로운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이예승(LEE Yeseung)

A Wild Rumor 

interactive media installation

micro-controller, motion sensors, scientific experiment tools, plastic containers, daily objects, table, lights, chair

dimensions variable 

2013 



이예승의 작품은 보이는 것과 실제로 존재하는 것의 차이를 탐구한다. 이 과정은 무척 재미있고 흥미로웠다. 



몇몇 작가의 작품은 사진을 찍지 못한 탓에 옮기지 못했다. 다음 기회에서 별도로 소개할 수 있을 듯하다. 특히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은! 


전시는 이미 끝났고 전시 기획과 준비에 현대자동차가 큰 후원을 했다. 그들의 예술 후원은 좀 남다른 면이 있다. 이 흥미로운 후원과 지원 프로그램이 지속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이번 전시의 경우에도 전시가 기획되고 작가 섭외가 끝난 후, 전시에 필요한 대부분의 비용을 현대자동차가 지원했다고 한다. 그런데 전시 중에 자동차의 느낌은 없었다. 이러한 간접적 환기는 고도의 전략은 장기간의 접근이 필요하다. 그들의 예술 마케팅이 성공하기를 기원한다. 그리고 성공 케이스가 되어 한국의 많은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예술가들의 직, 간접적 지원/후원 활동을 하였으면 좋겠다. 






제 1회 드림 소사이어티 전 

http://brand.hyundai.com/ko/art/project/the-brilliant-art-series.do 

참고) 

http://www.theartro.kr/arttalk/arttalk.asp 

드림 소사이어티, 예술의 사회적 기능을 다시 묻다 - 안소연(미술평론가)



제 2회 드림 소사이어티 전 : Xbrid, 그 복합적인 결합을 통한 새로운 창조에 대하여

http://brand.hyundai.com/ko/art/project/season2-2014-dream-society-brid.do



전시 제목을 인용한 롤프 옌센의 저서. 



드림 소사이어티 DREAM SOCIETY[재판]

롤프 옌센저 | 서정환역 | 리드리드 | 2005.07.28

출처 : 반디앤루니스 http://www.bandinlunis.com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0

스카이워크 프로젝트

11.29 – 12.7, 가나아트센타(평창동) 

http://www.skywalkproject.com/  





 


우리는 의외로 많은, 벗어날 수 없는 영향권 속에 있음을 종종 깨닫게 된다. 가령 내가 아버지를 닮았다던가, 어머니를 닮았다던가 하는 이런 가족적 내력에서부터 내가 자라온 환경 속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 고스란히 내 행동이나 의식, 혹은 내가 무언가 집중하여 만들어낼 때조차. 


이는 예술 감상에서도 마찬가지이고 예술 창작에서는 더욱더 그러하다. 학창 시절 음악 시간 들었던 모짜르트의 피아노 협주곡이 감동적이기는커녕, 끝없는 졸음의 시작으로 다가오듯, 우리는 이 경험을 깨기 위해 정말 많은 낯선 경험을 해야만 한다. 특히 예술 창작에서는 새로운 것에 대한 열망과 함께, 새로운 것이 과연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함께 공존한다. 그것이 전통일 때에는 따라야 할 것이고 그것이 관습일 경우에는 깨야 한다고 여기지만, 이는 쉽지 않다. 


늦가을과 초겨울 사이 평창동 가나아트센타에서 열리는 스카이워크 프로젝트는 이 고민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보기 드문 공연 전시 예술 협업의 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사진작가 박세준의 실험 '순응과 거부'. 제가 그 동안 만났던 여러 작가의 주장(때론 이해하기 힘든 경우도 있어 주장이라 적음)들 중에 이만큼 단순 명쾌한 실험 주제는 없었던 것같습니다. '한복은 왜 패션의 범주에서 제외되는가?'라는 거부로부터 던져진 의문은 한복과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명의 발레리나를 피사체로 촬영하는 실험을 시작하여 고르고(셀렉트) 자르고(크롭) 전시하는 단계를 맞게 되었습니다. 

- 남궁연(스카이워크 프로젝트 총연출)






한 편으로는 순응하고 한 편으로는 거부하는 스카이워크 프로젝트는 한복에 대한 의문에서부터 시작하여 발레, 무용, 사진, 설치, 클래식과 재즈를 넘나들며 11월 29일부터 12월 7일까지 가나아튼센타에서의 ‘순응과 거부’ 전시뿐만 아니라 9일간 매일 저녁 8시부터 총 9회의 공연이 진행된다. 공연 내용은 아래와 같다. 


11월 28일 - 진양혜 아나운서 사회 + 오진원 조윤성 재즈공연 + "Romantic discord by 미미" 

11월 29일 - 김주원, 이정윤 듀오의 발레 공연 "The One"(12분) + 오진원 써니킴 재즈 "GAIA" (40분) 

11월 30일 - 원일 유닛 공연 "퍼커시브 메인터넌스 Percussive Maintenance" (1시간)

12월 1일 - 연극배우 박정자 "열 개의 엄숙한 노래" (극본: 이충걸) (1시간) 

12월 2일 - 첼리스트 송영훈 솔리 리사이틀(+piano) (1시간)

12월 3일 - 진양혜 아나운서 진행 + 서울시향 chamber '앙상블 수'(11인)(1시간) 

12월 4일 - 플루트 박지은, 클라리넷 채재일 "Duo Ventus" (1시간)

12월 5일 - 김지영, 김용걸 듀오의 "The Road" (20분) + 서영도 밴드 국악 크로스 오버 "외" (40분)

12월 6일 - K-Beat Ensemble(남궁연, 민영치) (40분) + "Romantic discord 미미"(20분)

12월 7일 - 첼리스타 첼로 앙상블(12인) (1시간)





 


조금 일찍 도착해 전시를 관람하고 난 뒤 9개의 공연 중에 마음에 드는 공연 하나 보면 무척 좋을 듯싶다. 국내 최정상급 예술가들이 ‘순응과 거부’라는 주제를 소화하여 보기 드문 협업 예술의 장을 마련하고 있으니 말이다. 실은 이런 형태의 협업 프로젝트는 다소 보기 드문 경우라 할 수 있다. 기회가 닿는다면 몇 개의 공연을 보면서 하나의 주제가 다양한 장르에 걸쳐있는 예술가들의 마음과 손 끝에서 어떻게 펼쳐지는가를 경험해보는 것도 흥미진진해 보인다. 


내가 관심 가는 것이 있다면, 29일, 1일, 5일의 공연? 실은 최근 들어 공연 작품을 거의 보지 못해서 말이다. 



스카이워크 프로젝트

http://www.skywalkproject.com

https://www.facebook.com/skywalkproject



공연 예매 : 인터파크 http://bit.ly/1zupoOK




* 본 글은 ‘스카이워크 프로젝트’로부터 초대권 등의 후원을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 그리고 공연 관람을 하고 난 뒤, 추억의 술집, '평창동 절벽'에 가서 술 한잔 해도 좋을 듯합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0


제자리에서 떠나는 상상의 유목 - 경지연 전 

Portray Magic, Kyung Ji Yeon - 7th Solo Exhibition. 

인천아트플랫폼, 11.1.-11.12.2014. 




정사각형 캔버스에 담겨진 풍경들은 사방으로 뻗어나갈 수 있으면서도 자족적인 완결 감을 가진다. 1m*1m 크기의 같은 규격과 형식을 가지는 단자적 세계들은 확장 가능성이 있다. 세상 사람들의 희망 사항을 그런 식으로 다 모은다면 밤하늘에 뿌려진 별처럼 많아지리라. 현실이 절망적일수록 멀리 있는 희망의 빛은 더욱 빛날 것이다. 설치형식으로 건 그림들 앞에서 관객은 여기에 머물다가 저쪽으로 옮겨갈 수 있으며, 장면전환은 신속하다.구글에서 검색한 무채색 톤의 자료는 지도와 풍경, 실제와 상상의 중간 단계로 재탄생한다. 칙칙한 현실은 원색과 야광 색을 비롯한 비현실적이고 화려한 색채로 거듭난다. 전시장은 고화질의 총천연색 꿈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듯하다. 풍경의 참조대상인 지도는 모노톤이지만, 형형색색의 젤리나 사탕같이 반짝거리는 미디움으로 변형시킨다. 현실이 씁쓸한 만큼 환상은 달콤할 것이다. 현실이 밋밋한 만큼 환상은 강렬할 것이다. 바람 빠진 풍선 같은 현실은 상상의 바람에 의해 부풀어 오른다. 작가는 상상으로 충전된 기구를 타고 세계 곳곳을 넘나든다. 

- 이선영(미술평론가), 전시 설명 중에서. 






전시를 보러 가기 위해 인천까지 가는 경우는 매우 드문 일이긴 했지만, 짧지만 모처럼 기분 좋은 외출이 되었다. 


1930-40년대 지어진 물류 창고 건물을 새로 꾸며 복합 문화 공연 전시 공간인 인천아트플랫폼은 그 시설이나 운영 프로그램 등의 여러 측면에서 부러움을 자아내는 곳이었다. 




경지연의 7번째 전시는 인천아트플랫폼 G1에서 열리고 있다. 


우리의 삶은 여러 개의 층위로 구성되어 있다. 나도 마찬가지다. 직장인으로서의 나와 글을 읽고 쓰는 사람으로서의 나, 아빠로서의 나와 술을 마시는 나, ... 무수한 나들은 서로 경쟁하며 다투고 헤어지기도 하다가 때론 어루만지기도 하면서 나라는 존재를 구성한다. 



경지연, work1. 로마에서의 기적+콜로세움, 캔버스에 혼합재료, 아크릴채색, 100×100cm, 2014



갤러리 한 쪽 벽에는 작가가 모티브를 얻은 구글의 위성 사진들이 프린트되어 있고 이 사진들이 어떻게 조형적으로 구성되고 창조되었는가는 알 수 있다. 그리고 캔버스 위에 물감들이 보여주는 물질감은 장식적이고 화려하며 기분을 좋게 한다. 종종 예술은 꿈을 꾸고 꿈으로의 통로를 마련한다. 




꿈은 현실을 위해 존재하고 현실 속에서 태어나 자라난다. 그러나 꿈은 꿈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꿈과 현실 사이에 예술이 있고 예술가의 작업, 노동이 존재한다. 경지연의 이번 작품들은 그 사이에서, 때로 삶이 우아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실은 나도 그런 걸까. 작품들은 매끈하면서 리듬감이 있으며 다채롭고 즐겁다. 우리 삶이 그렇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경지연, work4. 쓸모없는 노력의 박물관+타임스퀘어_캔버스에 혼합재료, 아크릴채색, 100×100cm, 2014




경지연, work6. 꿈을 빌려드립니다+괌, 캔버스에 혼합재료, 아크릴채색, 100×100cm, 2014


실제 작품에서는 물감 덩어리가 가지는 느낌, 그것이 캔버스 위에서 요동치는 듯한 분위기, 색채와 형태, 물성의 어루어짐을 느낄 수 있지만, 역시 사진 이미지로는 알기 어렵다. 


전시는 이번 주 수요일까지이니, 오늘이 적기일 것이다. 그리고 인천아트플랫폼, 충분히 가볼 만한 공간이다. 아주 매력적이다. 바로 옆에서는 인천 차이나타운이 있으니 ...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0


로니 혼 Roni Horn 

5.20 - 6. 22. 2014

국제갤러리 Kukje Gallery 





늦은 봄, 관람했던 전시에 대한 소개를 지금 올리는 건 너무 태만한 짓인가. 실은 글을 쓸 시간이 없다. 몸도 피곤하다. 해야할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로니 혼Roni Horn.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나하나 작품을 기억하기가 이렇게 어려워졌다는 건, 그만큼 관심사에 멀어졌다는 이야기다. 


형편없어진 '이미지에 대한 기억'력. (현대는 원하지 않는, 그러나 범람하는 이미지들로 인해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고 있는 건 아닐까.) 



로니 혼은 작가 특유의 공간에 대한 감성으로 시간, 기억 그리고 지각이라는 주제들을 탐색하며 강력하고, 절묘할 만큼 아름다운 시각적 명상 속으로 관객들의 시선을 부드럽지만 힘있게 이끌고 나간다. 작가는 몇 초 간격으로 촬영한 사진 이미지들을 쌍을 이루거나 중복시키는 등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활용함으로써 이번 전시의 근간을 관통하는 동일성과 상이성의 본질에 대해 질문한다.  (전시 설명 중에서)





Installation view, 'Roni Horn. Well and Truly', Kunsthaus Bregenz, Austria, 2010

Photo: Stefan Altenburger Photography Zürich

출처: http://www.hauserwirth.com/artists/14/roni-horn/images-clips/20/  



K3에는 본 전시의 주요 작품인 유리 주조 조각들이 소개된다. 이 유리 조각 작품들은 작가의 날카로운 인식론적 문제 의식을 담아낼 뿐 아니라, 관객 개개인이 이 유색의 눈동자 형태 조각들을 유심히 들여다보게끔 유도한다. 전작들에 비해 규모적으로 더욱 확대된 이러한 작품들은 빛을 포획하는 동시에 갑자기 움직임을 멈춘 거대한 물의 덩어리인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킴으로써, 전시 공각 전체를 압도하는 육중함을 지니게 된다. 이들이 띠고 있는 흔치 않은 연두색 계통의 색채는 독특한 빛의 분사를 유발시키는 것은 물론 대지와 바다를 연상시키며 관객들을 사로 잡는다. 조화롭게 설치된 이러한 일련의 유리 조각들은 친밀하고도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공간적 환경을 창조해낸다. (전시 설명 중에서) 





Opposite of White V.1, 2006

출처: http://www.theguardian.com/artanddesign/gallery/2009/feb/25/roni-horn-tate-modern 




국제갤러리에서의 전시는 고요했다. 길게 전시 설명을 옮기는 이유는, 2009년 테이트 모던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가졌던 로니 혼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잘 모르겠다. 확실히 대형 유리 주조 작품은, 사진으로 보여지는 것과 달리, 매우 흥미로운 작품이다. 만지고 싶고 한참을 들여다 보게 된다. 사진 작업들도 흥미로웠으나, 탁월하진 않았다. 실은 내가 좋아할 만한 작품이 아니라는 뜻일 게다.  

 



"Untitled (Weather)" - 2011 - Inkjet / pigment print on paper: 5 COLOR PRINTS, mounted on sintra - 31,11 x 26,03 cm each 

출처 http://www.galleriaraffaellacortese.com/artists/view/24/roni-horn




모더니즘에서 포스트모더니즘 사이로, 텅 빈 캔버스 위에 거울을 올려놓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거울을 올려놓을 순 없는 일. 그래서 응시하는 타인이나 자아. 혹은 마주 보는 타인이나 자아를 거울 대신 배치시킨다. 시선의 가리워진 폭력성, 그리고 철학적 질문 - 타자와 동일성. 


하지만 이는 너무 평범하지 않은가. 나에게 로니 혼은 평범했다. (하긴 이 평범함에도 오지 못하는 작가들이 부지기수이지만)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0



아니쉬 카푸어 Anish Kapoor 

2012.10.25 - 2013.2.8 

삼성미술관 Leeum 





황량한 현대 미술의 첨단에 카푸어가 불과 몇 명의 위대한 아티스트들과 함께 우뚝 서 있음은 하나의 구원이다. 시각의 초월적인 기능, 아트의 건전한 엘레멘트의 구사, 풍요로운 표현방식, 긍정적인 미지의 암시 등으로, 그 환기력의 유효성을 정면에서 입증해주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 이우환 


* * 



(리움에서 출간된 아니쉬 카푸어 도록. 잘 만든 도록이다)



전시를 본 것은 일 여년 전이지만, 아니쉬 카푸어는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책상 구석에서 사라지지 않았던 아니쉬 카푸어의 도록 탓도 있었지만, 전시 공간 안에서 보여주는 놀라움과 경이는 현대 미술의 새로운 영역을 여는 듯했다. 그리고 오늘에서야 도록 - 아니쉬 카푸어는 리움(Leeum)에서 낸 도록을 직접 감수하며 사진하나하나 손수 골랐다고 전해들었다 - 을 펼치며 그의 작품에 대해서 생각했다. 


하지만 호미 바바의 말대로, 내가 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그의 작품을 제한하는 것이 될 것이다. 


카푸어의 작업은 기존에 되풀이 되어온 비평 방식으로 종종 다루어졌는데, 이는 그의 작업을 이미 만들어진 초월적 형이상학의 틀 속에 넣어버림으로써 독창성을 제한해 버렸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공허, 암흑을 절개하는 거울, 아득한, 잊혀진 풍경처럼 수집된, 채색된 꿈의 오브제들, 카푸어의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이같은 특징들은 '동양적인' 성스러움이나 '서양적인' 숭고 같은 낡아빠진 어휘들에 너무 쉬이 흡수돼 버린다. 초월성에 치우친 담론은 개념미술에 문화적인 강령과 해석적인 코드를 교묘하게 부과한다. - 호미 바바 



이렇듯 아니쉬 카푸어의 작품들은 우리가 가진 언어적 세계 너머를 향한다. 그리고 작품 앞에서 우리가 느끼는(혹은 행복하게 강요당하는) 신비한 몰입은 현대 예술의 한 극점을 보여주었다.


카푸어의 고향, 인도를 제외하곤 아시아 최초의 개인전이었으며, 아마 그 규모의 개인전은 한국에서는 꽤 오래동안 힘들 것이다(아니면 없을 것이다). 아래 이미지들은 구글링을 통해 구한 작품 사진들이다. 레비아탄의 경우에는 리움에서 전시되지 않았으며, 2012년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에서 보여주었던 작품이다(이우환은 이 작품을 그랑팔레에서 보았던 놀라움을 도록에 실린 글에서 표현하고 있었다).


*  * 


아니쉬 카푸어에 대한 상당수의 글들이 호미 바바가 지적한 대로의 비평적 방향을 그대로 수용하고, 나 또한 그렇게 해석하려고 했다. 도리어 호미 바바의 글 - 규정하기 어려운 오브제들: 아니쉬 카푸어의 분열적 예술(Elusive Objects: Anish Kapoor's Fissionary Art) - 은 탈식민주의적 관점에서, 또한 포스트모던의 관점에서 기존 사고틀에서 벗어나 새롭게 해석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증 속에서 씌어졌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강박증이야 말로 기존 틀을 벗어나 혼란 속으로 들어가, 미래를, 새로운 공간을 여는 행위로 유도하는 촉매제다. 


아니쉬 카푸어와 호미 바바는 같은 인도 출신이며, 호미 바바는 아니쉬 카푸어에 대해 다수의 글을 썼다. 아니쉬 카푸어에 대한 글을 통해, 나는 이제서야 호미 바바를 읽었는데, 그의 책을 한 권 사서 읽어야겠다. 




Sky Mirror

출처 http://en.wikipedia.org/wiki/Sky_Mirror




Yellow 

출처 http://openhousebcn.wordpress.com/2012/01/27/good-morning-yellow-anish-kapoor-openhouse-barcelona-art/ 




출처 http://www.omnilexica.com/







1000 Names 

출처 http://www.designyearbook.com/2010/06/1000-names-by-anish-kapoor.html




My Red Homeland 

출처 http://chincha.co.uk/2012/11/anish-kapoor-exhibition-review/ 




Leviathan

출처 http://videoinstallationperformanceliupost.wordpress.com/20-2/sung-bok/installation-sung-bok/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2


한글작가 금보성 전 

- 송정미 카네기홀 콘서트 후원전시회 

금보성 아트센터, 2014. 9. 20 - 10. 12 





한글의 우수성을 이야기하고 한글의 조형미까지도 이야기하지만, 한글 폰트에 대한 관심이 이제서야 조금씩 늘어나는 것같지만, 순수 미술에 있어서 한글에 대한 관심은 아직 멀기만 하다. 내가 한글에 대한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건 주제넘은 일이지만, 금보성의 한글들은 참 이쁘기만 하다. 마치 꼬마 아이가 넓은 마당에서 뛰어 노는 듯, 생기 넘치기만 하다. 




단단하면서도 무척 부드러워 보이고 여기저기 튀어나갈 듯하면서 고정되어 있는 모습이 신기하다. 마치 한글의 창제 원리가 우리 입 안의 움직임들로 이루어졌듯이, 금보성의 한글들은 움직이지 않으면서도 끊임없이 움직이며 보는 이의 눈을, 마음을 건드린다. 





실은 저 채색된 한글들은 스티로폼으로 만들어져 있다. 스티로폼이 가지는 가벼움, 거칠지만 쉽게 모양을 만들 수 있는 편의성, 그러나 금보성의 손길 위에서 스티로폼은 그 연약한 물질성 위로 강하고 단단한 조형성을 얻게 된다. 그리고 한글이 가지는 특유의 생명력, 끈기, 부드러움까지도.  



(* 클릭해야만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 클릭해야만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이 리뷰가 너무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이 전시는 이번 주말까지만 이어질 예정이다. 평창동에 위치한 금보성 아트센터는 김종영 미술관 바로 맞은 편에 위치해 있다. 


특히 이번 한글날, 한글작가 금보성의 작품을 만나러 평창동 산책을 계획해보는 건 어떨까? 아마 한글이 가진 미적 우수함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가는 김에 근처에 위치한 여러 갤러리와 미술관도 함께 다녀보고, 평창동 구경도 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 클릭해야만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 클릭해야만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 금보성 작가가 직접 작업을 하는 모습이다. 스티로폼이 인상적이다. 




금보성아트센터 위치 (김종영 미술관 옆)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이 장소를 Daum지도에서 확인해보세요.
서울특별시 종로구 평창동 |
도움말 Daum 지도

Comment +0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http://www.mmca.go.kr/)



문지방(프로젝트팀 이름으로, 세 명의 건축가, 권경민, 박천강, 최장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신선놀음, 2014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이제 네 살이 된 아들과 단 둘이 미술관 투어를 계획하고 실행했지만, 실패였다. 외부에 보이는 모든 것들 위로 물음표로 떠오르는 그 시절, 작품은 바라보는 대상이 아니라 만지고 흔들어보고 던져보는 대상이다. 결국 나는 갤러리에 들어갔다고 소리만 지르다 나와, 사간동을 배회하기만 했다. 


공간 건물에 새로 들어온 아라리오 뮤지엄은 입구 앞에서 발길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다행히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만난 신선놀음. '무화과같다'는 네 살배기 아들의 말. 연신 뛰어다니는 아들 뒤를 따라다니느라, 나는 금세 지쳤다. 


조형적 견고함과 부드러움을 동시에 가진 이 구조물은 미술 작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건축적이다. 건축적 상상력은 건축 안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그 곳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한다. 하지만 미술은 반대다. 우선 밖에서 바라보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 다음 참여를 유도한다. 이 참여란 공간 안으로의 참여라기 보다는 공간의 안 / 밖을 분명하게 구분한다. 너무 편협한 구분법인가. 한 때 미술은 건축과 한 몸이였던 시절이 있었고, 지금 많은 예술가들과 건축가들이 이 미술과 건축의 한 몸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케네스 클라크의 지적, 미술가들이 건축가였던 시절의 행복함은 생각나는 건 뭘까. 


(그나저나 요즘 자주 눈이 침침해진다. 노안의 시작인가. ㅡ_ㅡ;;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갑자기 ... )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0


오르세 미술관 전 - 인상주의, 그 빛을 넘어

국립중앙박물관, 2014.5.3 - 8. 31 





몇 해 전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 가서 놀라웠던 건, 1층에 놓인 거대한 작품들 - 제롬이나 부게로 같은 화가들이 그린 - 을 보면서 참 식상하다는 느낌과는 대조적으로 4층(?)의 낮은 천장 아래 놓인 작은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 앞에서 전율같은 감동을 느껴졌을 때였다. 어쩌면 예상되었을 법한 일일 지도 모르겠지만, 솔직히 예상했던 범위 이상이었고 그 놀라움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하지만 오르세미술관에서의 그 경험에 비한다면, 이번 국립중앙박물관 전시는 다소 어수선하고 산만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급하게 보고 나올 수 밖에 없었던 탓도 있었지만, ... 집중하긴 어려웠다. 그리고 오늘 도록을 꼼꼼히 읽으면서 몇 점의 작품은 본 기억이 없다는 사실에 안타까워했다. 


나의 경우, 이미 국내에 번역된 대부분의 인상주의 연구서들을 읽었고 인상주의와 관련해선 아예 한 학기 수업까지 들었던 터라 왠만한 전문가 이상으로 알고 있다고 여겨지지만, 인상주의 미술에 대한 연구는 현재 진행형이니, 이젠 가물가물해지는10년 전 버전의 지식으로 인상주의를 안다고 하기 조심스럽기만 하다. 솔직히 이런 생각을 할 때면, 내가 공부하는 직업을 가지지 못하는 것이 조금 아쉽긴 하지만, 그 직업을 가졌을 때의 내 모습(괴팍스러워 보이는)도 상상되어, 약간의 다행스러움도 있다.



1. 인상주의, 현대 미술 (시장)의 개화  


사실 제일 처음 인상주의 전시회가 열렸던 1874년의 상황은 간단했다. 제도권 기관인 살롱전의 부당함에 대해 반발하기만 하면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지막 인상주의 전시회가 열린 1886년의 상황은 달랐다. 미술 시장에 대한 화가들 스스로의 독립성을 정립해야 했기 때문이다. 

- 전시 도록, 13쪽  



관심 있는 이들에게는 인상주의의 미술사적 의의는 너무 익숙한 내용일 것이다. 가령 아래와 같은 것들.  


- 반-원근법적 세계관의 시작

- 문학적 세계관에서 회화 그 자체에의 집중(물질성의 강조)  

- 기하학적 세계에서 벗어남. 혹은 새로운 기하학의 시작. 

- 탈중심화, 탈가치화 


그런데 막상 적고 보니, 어려울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이건 서양 미술사 교수님에게 물어보면 될 일이고. 실은 위 짧은 인용문과 관련해서 (내가 아는 바를) 언급하자면, 인상주의 이전의 미술 시장과 이후의 미술 시장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시장 규모가 비약적으로 확대되었다. 공공연하게 인상주의 미술이 현대 미술 시장의 개화를 알리는 신호탄이라고 말할 정도이고, 그 주요한 역할을 한 것은 바로 미국에서의 인상주의 열풍이었다. 지독한 무시와 냉대, 가난 속에서 인상주의가 시작된 것과 반대로, 인상주의 화가들 대부분은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말년을 보내게 된다. 고독한 몇 명의 천재들을 제외한다면. 


19세기는 그 전까지 일종의 미술가 생계 수단 프로그램이었던 패트런이 사라진 시대였다(귀족 계급이 힘을 쓰지 못했던 네덜란드에서는 이미 18세기에 시작된). 부르조아지의 등장과 전통적인 성직자와 귀족 계급의 후퇴가 직접적인 영향이었으며, 이 때부터 미술가들은 자신의 재능을 시장에 내놓아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게 되었고, 인상주의자들의 시작은 이런 상황 속에서 새로운 미술을 들고 나온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기존 미술 권력과 싸우면서 동시에 미술 시장에서 인정을 받아야 하는 처지에 있었던 셈이다.   


이런 측면에서 1886년 전시는 미술계 뿐만 아니라 대중적으로도 인지도가 올라간 인상주의 화가들의 (미술 시장에서의) 자리 잡기가 중요해졌다. 뭐, 이 때에도 위대한 세잔은 무시당하고 있었지만. 


"지난 15년 간 언론과 대중으로부터 가장 많이 공격을 받고 가장 대우를 못 받은 화가는 바로 세잔이다. 사람들은 그의 이름에 모욕적인 수식어란 수식어는 모두 갖다 붙였다. 그리고 아직도 그의 작품에 대고 폭소를 터뜨린다."

- 조르주 리비에르, 1977년. 


하지만 인상주의 화가들은 세잔의 탁월함을 알고 있었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궤적을 찾아가는 흥미로운 동선을 보여준다. 그래서 전시의 목차는 아래와 같다. 


1. 인상주의, 그 이후

2. 새로운 시각, 신인상주의

3. 원시적 삶을 찾아서, 고갱과 퐁타방파

4. 반 고흐와 세잔, 고독한 천재들

5. 파리, 아름다운 시절

6. 세기말의 꿈, 상징주의와 나비파. 


많은 수의 작품이 전시되진 않았지만, 천천히 깊이 살펴본다면 이번 전시 관람을 통해 많은 것들을 얻어갈 수 있다.(하지만 이것이 꽤 어려운 일임을 안다) 



2. 내 마음에 들었던 주요 작품들 



클로드 모네Claude Monet(1840-1926)

야외에서 그린 인물 : 오른쪽으로 몸을 돌린 양산을 쓴 여인 

Essai de figure en plein air: Femme 'a l'ombrelle tourne'e vers la droite 

oil on canvas, 131*88cm, 1886 



이 작품은 왼쪽 버전과 오른쪽 버전이 있고, 이번 전시에선 오른쪽 버전이 전시되었다. 


이 두 작품의 모델은 모네의 두 번째 부인인 알리스의 딸 수잔 오셰데이다. 그는 친 자녀와 의붓 자녀 모두에게 자상하고 다정한 아버지였다.(......) 수잔이 서른 살의 나이에 일찍 세상을 떠나자 그는 깊은 슬픔에 잠기기도 했다. 

- 전시도록, 41쪽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와르 Pierre Auguste Renoir (1841-1919)

앉아 있는 젊은 여인 Jeune fille assise 

oil on canvas, 65.4 * 55.5 cm, 1909 




풍만한 몸매에 널찍한 얼굴, 관능적인 도톰한 입술, 상큼하고 혈색 좋은 얼굴빛, 그리고 까만 머리칼의 엘렌 벨롱은 그 미모가 르누와르 자신의 이상적 여인상에 부합했기 때문에, 르누와르로서는 이런 엘렌의 모습에 매료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쥘의 약혹녀를 모델로 세우기까지는 수개월 간의 설득 기간이 필요했다. 더욱이 르누와르는 그에게 옷을 입힌 상태에서 모델을 그리겠다는 약속도 해야 했다." 

- 62쪽 



작품 이미지를 찾기 위해 구글링을 해보니, 똑같은 제목의 아래 작품도 있다. 제작년도를 보니, 19년 차이가 난다. 나머지는 보는 이들이 알아서 해석하길. 



Renoir 

Jeune Femme Assise 앉아있는 젊은 여인

oil on canvas, 91 * 72cm, 1890.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van Gogh (1853-1890) 

시인 외젠 보흐 Eug'ene Boch(Le po'ete) 

oil on canvas, 60.3*45.4cm, 1888



반짝이는 별이 빛나는 호화로운 청색 배경은 그의 이상향을 떠올려준다. 예술가들 사이에 영원하고 보편적인 애착 관계가 자리잡길 바란 것이다. 별의 무한성을 통해 예술과 예술가들을 한데 엮으면서 예술적 창작력의 무한한 삶을 구현하려던 그의 생각은 친한 동료 화가의 이 초상화 속에서 표현되고 있다. 외젠 보흐의 이 초상화는 외젠 보흐 보인이 루브르 박물관에 유증했다. 

- 115쪽 


 


폴 시냐크 Paul Signac (1863 - 1935)

안개 낀 에르블레, 작품번호 208 Herblay, Brouilladr, Opus 208 

oil on canvas, 33.2 * 55 cm, 1889 


이유가 뭔지 모르겠지만, 폴 시냐크의 그림이 다른 후기 인상주의 어느 화가들보다 더 끌린다. 이건 천천히 고민해보기로 하자. 


대기는 평온하며, 색조는 서서히 옅어진다. 정밀하고 규칙적인 붓 터치는 흰색 위주의 창백한 빛을 분산시키고, 노란 빛과 푸른 빛은 가까스로 느껴지는 정도다. 집요할 정도로 대칭적인 구도는 정적인 느낌을 더욱 강화하고, 지평선을 중심으로 화면이 정확히 둘로 나뉘는데, 수면에 반사된 풍경만이 물의 흐름으로 아주 약간 흔들리고 있을 뿐이다. 

- 전시도록, 72쪽 




에드가 드가 Edgar Degas(1834-1917)

메닐 위베르의 당구대가 있는 방 Salle de billard au Menil-Hubert 

Oil on canvas, 50.7*65.5cm, 1892



"당구대가 있는 실내 풍경을 그려보려고 하네. 내가 원근법에 대해 조금 알고 있다고 생각했고 공간 안에서 각도를 재고 수직과 수평을 열심히 연구하면 원근법에 대해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나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있었다네." 

- 드가, 1982년 



이번 전시에선 드가의 조각 작품들도 볼 수 있다. 실은 이것을 보기 위해서라도 이번 전시는 놓치지 말아야 할 듯 싶다. 


3. 전시장 풍경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를 한다고 해서 전시의 상업성을 배제할 순 없었다. 하지만 상업성이라는 단어 대신 대중을 보고 쉽고 편안하게 끌어들이기 위한 전시 환경의 구성이 아쉬었다. 인상주의 미술의 이해를 돕기 위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이나 참여 프로그램의 운영(돈은 안 되고 노력만 들어가겠지만, 이것이 바로 공공미술관의 역할이 아닐까)이라든가, 보다 넓은 전시 공간의 확보, 다양한 미디어의 활용 등은 전시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비파의 몇몇 눈 여겨볼 만한 작품들도 있었는데, 그 작품들은 다음에 소개하기로 하자. 실은 이 글을 적는 것도 나에겐 꽤 벅찬 일이다. 시간적으로... ㅡ_ㅡ;; 전시가 며칠 남지 않았으니, 서둘러 보기로 하자.  아래는 나비파의 한 명이었던 피에르 보나르의 작품이다. 




피에르 보나르, 흰 고양이, 1894. 


위 작품은 이번 전시에서 소개된 작품은 아니지만, 도록에 흥미로운 구절이 있어 인용해본다. 



19세기 후반의 약 30여 년간, 고양이는 예술 작품 속에서 눈에 띄게 나타났으며, 보헤미아인, 극장식 까페 등과 연계하여 사회주의와 무정부주의를 표방하던 한 세대의 상징적 동물이 된다. 

- 270쪽 



과연 그랬나? 흥미로운 구절이 아닐 수 없다. 애완동물을 좋아하진 않지만, 고양이에 대한 예술가들의 애호는 꽤 유래가 깊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0


Lee Ufan Versilles 2014. 6. 17 - 11. 20 

이우환, 베르사이유 전




"작가에게 만족이란 게 있겠는가만, 이번에 나는 베르사이유에서 하고 싶은 작품을 70%는 한 것 같다. 전시 이후에 작품은 어떻게 되는가 묻는 사람들이 많다. 작품이란 결국은 잠깐 모였다 흩어지고 사라진다. 하이데거는 <<예술 작품의 기원>>에서 이렇게 썼다. '인간은 대지를 일으켜 세우려 하고, 자연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것을 자연으로 되돌리려고 한다.' 그런데 예술가란 세우고 사그라지는 그 양쪽 모두를 보는 사람이다. 그 양쪽으로 열려 있음은 무한의 세계다." 

- 이우환(아트인컬쳐, 2014년 7월호에서 재인용) 

 





이우환이 프랑스 베르사이유에 신작 10점을 선보였다. 그냥 전시가 아니라, 베르사이유를 위해 새로 작품을 만들었다. 


"나는 원래부터 장소와 대화하며 작품의 발상을 얻는다. 공간의 장소성을 훼손하거나 합리화하지 않는다. 베르사이유 정원은 대단히 완벽한 공간이다. 단순히 식물이 놓여 있는 정원이라기보다는 건축 공간 개념에 더 가깝다. 이 완벽한 공간에 내 작품이 어떻게 개입할 것인가? 이 완벽한 정원의 조형을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 그 해답은 바로 무한 개념의 도입에 있다. 인간의 콘셉트인 완벽, 그 완벽 너머 장소와의 대화에서 새롭게 발생하는 무한, 그것이 내 작품의 개념이다." 

- 이우환(아트인컬쳐, 2014년 7월호에서 재인용)  




Relatum - Dialogue Z, 2014 

Lee Ufan

Courtesy the artist ; kamel mennour, Paris and Pace, New York (c) Tadzio 

(출처: http://en.chateauversailles.fr/news-/events/exhibitions/lee-ufan-versailles) 




Lee Ufan, The Arch de Versailles (2014).

Photo: AFP Photo/Fred Dufour.

(출처: artnet.com) 




L'arche de Versailles, de Lee Ufan. ®TADZIO_COURTESY

(출처: http://www.20minutes.fr/culture/1402786-lee-ufan-et-versailles-ca-match)




Relatum - Earth of the Bridge, 2014 

Lee Ufan 

Courtesy the artist ; kamel mennour, Paris and Pace, New York (c) Tadzio 

(출처: http://en.chateauversailles.fr/news-/events/exhibitions/lee-ufan-versailles) 



Lee Ufan, Relatum Dialog X (2014).

Photo: (c) TADZIO/ADAGP 2014.

(출처: artnet.com) 



Lee Ufan, The Shadow of the Stars II (2014).

Photo: (c) TADZIO/ADAGP 2014.

(출처: artnet.com)  



"돌과 금속으로 된 그의 작품은 장소 위에 군림하거나 정복하지 않는다. 대신 풍경에 삽입되면서 기존에 잘 알려진 장소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에 새로움을 던져준다. 이번 전시는 베르사유에서 보기 힘든 가장 모험적이고 시적인 영감을 창조하는 전시의 상징으로 기억될 것이다."

- 르몽드 리뷰 기사 중에서 (아트인컬쳐에서 재인용)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0


오치균 - 빛 

2014. 06.11 - 06.25 

노화랑 Gallery Rho, 서울 Seoul 





Armani lamp on the Santa Fe bench | acrylic on canvas | 116x78cm | 2013 

출처: http://www.rhogallery.com/ 




연필로 글씨를 쓰는 나는 오치균의 손가락과 그의 손가락이 화폭에 남긴 흔적들에 각별한 친밀감을 느낀다. 연필로 쓰기는 몸으로 쓰기다. (중략) 오치균이 손가락으로 물감을 으깰 때 재료가 육체와 섞이는 그 확실한 행복감을 나는 짐작할 수 있다. 재료를 장악하고 그 재료를 육체화해서 재료를 마소처럼 부릴 수 있는 자만이 예술가인 것이다. 언어는 기호이고 또 개념인 것이어서, 나는 오치균이 색을 부리듯이 말을 부리지는 못한다. 그래서 나는 오치균의 손가락을 대책없이 부러워한다. 손가락으로 색을 바르는 행위는 세계의 사물성과 불화일 터인데, 그는 그의 불화의 흔적을 남기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 흔적들이 모여서, 시간의 지속성, 미래에 도래할 새롭고 낯선 색깔의 흐름을 보여줄 때 그의 화폭은 아름답고 강렬하다.

- 김훈, '무너져가는 것에서 빚어지는 새로운 것' (2008)  중에서 




"그동안 내 작품들 속에서 보여지는 빛이 의도된 것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작업을 하고 나면 항상 내 작품 속에서 상징 같은 것이 되어 있었죠. 그런데 이번 작품들에서의 '빛'은 나의 신체적 장애와 심리적 불안 속에서 나온 의도된 빛이예요.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촛불 작품을 봤어요. 촛불이라는 것은 희망과 염원을 담고 있죠. 하지만, 촛불은 작은 흔들림에도 꺼질 수 있는 아주 약하고 순간적인 존재예요. 그래서 나는 그것보다 강하고 영원한 빛을 생각했어요. 심지어 나의 생명이 다해도 남아 있을 수 있는 빛, 영원히 잡아둘 수 있는 빛, 그 안에 내 희망과 의지를 담고 싶었던 거죠."


"사람들은 오치균하면 감나무 작가로 기억해요. 하지만 난 감나무만 그린 건 아닙니다. 보통 어떤 대상에 관심을 가지면 거기에 몰입하게 되지만, 너무 빠져든다 싶으면 손을 놔요. 한 가지만 계속 그리다 보면, 나중에는 작품을 찍어내듯 그릴까봐 두렵고, 또 다른 걸 그리기가 너무 힘들어져요. 그런데 감나무 그림을 그리면서도 이것저것 관심가는 것들을 그렸는데, 사람들은 감나무만 기억해요. 그러다가 작년에 전시를 마치고 나서 하반신 마비가 왔어요. 나 자신으로서는 견디기 힘들었고, 나의 생명이 다하는 건가 두려웠죠. 나는 계속 작업을 하고 싶고, 이렇게 살아있다고 외치고 싶은데, 작품을 할 수가 없었어요. 밖으로 나갈 수도 없었고, 집 안에서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도 없고, 그 때 눈에 띈 것이 실내의 사물들이었어요." 

- 오치균 


* 이은주, <화가 오치균에게 그림이란 무엇일까?>(월간미술 2014년 6월호)에서 재인용. 


  

실내의 사물들에게서 색을 찾아내고 그 속에서 안식을 찾는 걸까. 나는 (내 마음 속을, 저 서울 거리들을) 돌아돌아 인사동 노화랑에 가서 오치균의 작품을 보았다. 그 사이 나는 그림을 잊고 지냈고 작품에 집중하는 법을 잊어버렸다. 다시 기억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어렴풋했다. 


기억을 더듬어 오치균의 예전 작품을 떠올렸고, 그의 세계가 다소 약해진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래도 오치균이다. 그는 무너져가는 육체 앞에서 생명력을 되찾는다. 그것이 불빛이다. 오치균의 불빛이다. 



(하루 종일 회사 업무를 보고 오후가 되고 저녁이 되면, 나는 너무 쉽게 지친다. 글 한 줄 읽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 이 짧은 리뷰를 쓰기 위해서 내가 얼마나 노력하는지 ... 목요일 저녁 갑작스럽게 불러내어 술 마실 친구가 없다는 걸 새삼 느낀다. 그렇게 세월은 흐르고 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0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마르네 강둑에서', 1938 



"언젠가 그(카르티에 브레송)는 내게 자신이 사진을 구성하는 방식은 기하학의 문제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는 그가 세계를 볼 수 있는 능력뿐만 아니라 세계를 즉각 평면적인 방식으로 볼 수 있는 능력도 지녔음을 의미합니다." - 데이비드 호크니 



호크니를 통해 사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사진은 새로운 형태의 드로잉이며 미술이고 예술이다. 이는 브레송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나의 열정은 사진 '자체'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고 피사체의 정서와 형태의 아름다움을 찰나의 순간에 기록하는 가능성, 다시 말해서 보이는 것이 일깨우는 기하학을 향한 것이다. 

사진 촬영은 내 스케치북의 하나다.

-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1994년 2월 8일.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루마니아, 1975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0



사람들이 문화예술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을까? 과연 그럴까? 1년에 한 번 정도 문화예술 관람을 하는 사람의 비중은 얼마나 될까? 여기에 '영화'를 빼고 통계를 낸다면? 여기에다 뮤지컬을 뺀다면? 나는 솔직하게 사람들은 문화예술에 전혀 관심이 없다고 여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보다 문화예술과 친해지길 원한다.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면, 예술적인 것은 어디에나 있다. 가령 예를 들자면, 아래의 건물같은. 



현대모터스튜디오(보도자료 인용)



현대자동차가 문화예술에 보여주는 최근 행보는 무척 흥미롭기만 하다. 현대차는 이미 국립현대미술관에 10년간 120억원을 후원하기로 했다. 금액이나 기간 면에서 국내 최대, 최고 규모다. 그들은 국내 다른 기업들이 산하 문화관련 비영리 법인을 통해 지원하고 운영하는 것과 다른 방법으로, 그리고 파격적으로 순수 예술을 지원한 것이다. 그들은 국내 뿐만 아니라 글로벌에서도 이와 비슷한 행보를 보여주었다. 올해 초 영국 테이트모던 미술관과 11년 후원 계약을 맺었다. 


이번에는 아예 미술관 같은 건물 하나를 오픈했다. 이름하여 '현대모터스튜디오'. 1층에는 스튜디오, 2층에는 도서관과 카페, 3층부터 5층까지는 자동차 갤러리로 구성된 이 공간은 전통적인 자동차 제작으로부터 첨단 기술이 적용되는 최근 자동차까지, 현대차만의 기업의 아이덴터티를 살리면서 놀랍도록 예술적인 분위기로 구성되어 있다. 


1층에는 영국의 미디어 아티스트 그룹은 UVA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으며, 2층에는 자동차와 관련된 전문 서적들과 자료들이 비치되어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1층 - 스튜디오, UVA의 작품. 




2층 - 라이브러리의 일부. 






강남 도산대로에 위치한 현대모터스튜디오에서는 자동차와 관련된 모든 것을 문화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우리는 자동차를 일종의 이동 수단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이미 차는 그 수단 이상의 존재가 되었다. 




2층 - 라이브러리의 일부


제임스 딘을 생각하면, 포르쉐 550 스파이더를 연결짓듯이, 자동차는 수단 이상의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아마도 현대차가 꿈꾸는 것도 그냥 자동차가 아닌 문화 아이콘, 예술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브랜드가 아닐까. 


현대모터스튜디오 3층부터는 자동차 갤러리가 시작되는데, 가장 흥미로운 녀석은 Car Rotator다. 이것을 중심으로 다음 포스팅에서... (생각보다 쓸 내용이 많다. ㅡ_ㅡ;;)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2

  • 찬물 끼얹는것같긴한데.. 현차가 한다고하니 좋게 볼 수 없네요

    • 그래도 이런 노력을 하지 않는 기업들이 많은 탓에, 현대차의 이런 노력을 무시할 순 없을 듯해요. 동시에 소비자에게 인정받는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문화예술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전방위적으로(거의 모든 면에서) 소비자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노력을 해야 하는데 말이죠.(이상적이긴 하지만..) : )





고려시대 향로

국립중앙박물관, 2013. 12. 17. - 2014.02.16




방 안에 향을 피워둔 적이 있었다. 좋은 향은 마음을 진정시키고 머리를 상쾌하게 한다. 어떤 이는 방 안에 향을 피워두었더니, 절간같다고 하기도 했다. 오랜만에 간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시는 향에 대해서 생각하고 향로가 가지는 문화적 위치를 알게 하였다. 고려 청자의 아름다움 뿐만 아니라 향에 관련된 문화적 이해도 도울 수 있는 유익한 전시였다. 





향로는 향을 피우는 데 사용하는 용기이다. 향로에는 3개의 다리가 달린 것, 둥근 받침이 달린 것, 긴 손잡이가 달린 것 등 형태와 크기가 다양하며 시대에 따라 유행하는 향로도 달라진다. 

(...)

고려시대는 향로의 형태와 재질면에서 가장 다양했던 시기로 통일신라시대 향로를 계승하고 발전시켜 새로운 향로를 제작하였다. 뿐만 아니라 북송과 거란 등 주변국으로부터 새로운 향로를 수용하기도 하였다. 또한 이 시기에는 왕실과 불교향로의 형태가 명확히 구별되는 특징이 나타난다. 고려시대 향로는 조선시대 향로의 원형이 된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특히 왕실의례에 향을 피우는 의미와 향로를 설치하는 방법은 조선시대에도 계승되며, 불교향로인 향완은 조선시대에도 계승되어 또 다른 전통을 형성하게 된다. (전시 도록 중에서)







향에 불을 붙여 연기를 발산하는 것을 소향燒香이라고 한다. 소향을 하기 위해서는 향과 향로가 필수적이며 이외에도 다양한 도구들이 사용된다. 고려시대에는 다양한 향과 향로가 사용되었고, 소향을 위한 향은 목적에 따라 다르게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대에는 왕실과 불교의례에 향을 사용하였다. 고려시대 왕실의례에 소향을 한 것은 의례의 시작을 알리기 위함이었고, 불교에서는 소향을 통해 발산하는 향을 부처님의 사자로 인식하여 부처님께 설법을 청하는 권청의 의미로 사용하였다. (전시 도록 중에서) 




청자사자장식향로 

고려 12세기, 높이 21.2cm, 국보 제 60호, 국립중앙박물관

이미지 출처: http://www.cha.go.kr/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0

바티칸 박물관 전 Musei Vaticani - 르네상스의 천재화가들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2012. 12. 08 - 2013. 03. 31 




대체로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기획 전시는 실망스럽다. 일반에게 잘 알려진 대중적인 소재- 인상주의나 바로크, 르네상스 등과 같은 단어가 들어가는 - 로 진행되는 기획 전시의 대부분은 복제화임을 밝히지 않는 작품들과 해외 미술관에서 대여하기 쉬운 유명 작가의 평범한 작품들로만 구성되고, 떠들썩한 매스미디어 홍보와 강남이라는 지리적 장점을 살린다. 


그러나 이는 미술 전문가의 입장일 뿐, 일반 대중의 입장은 아닐 것이다.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모든 전시를 본 것이 아니기에 전시를 보러가지 말라는 의미는 더더욱 아니다. 다만 좀 더 좋은 전시가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상업적인 전시로만 흐르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 하는 말이다. (혼잣말: 그런데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몇몇 전시들은 너무 형편없어!!) 


2012년의 한국 사람이 15세기 경 이탈리아 르네상스 작품을 보고 감동받는다면, 그건 한 마디로 오버다. 우리의 마음은 몇 세기를 횡단하며 그 시대 사람들의 마음을, 감정을 이해할 수 없다. 심지어 예술가의 마음을. 실은 현대 예술가의 마음도 잘 알지 못하면서 15세기 이탈리아 예술가와 그들의 작품을 보고 감동받았다고 한다면, 참으로 난감하다. 


다만 감동받기 위해 적절한 자기 기만 - ‘나는 15세기 르네상스 사람이야’ - 과 15세기 이탈리아 사람들의 일상생활, 그리고 그 당시의 철학이나 문학 등 시대상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이런 전시를 보러 가는 목적은 예술 작품을 보고 즐기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15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 전반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활동의 일환으로 수행되어야만 한다. 이렇게 적긴 하나,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다. 


이 전시는 전체적으로 실망스러웠으나, 프라 안젤리코(Fra Angelico)의 작품을 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 위안이 되었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는 역시 오래된 대리석 건물 안에서 봐야 제 맛이다. 실제로는 우리 눈 높이가 아니라 보다 높은 곳에서 우러러 보게끔 구성되어야 한다.


프라 안젤리코의 작품은 르네상스 세밀화가 어떤 작품인가를 알게 해준다. 그의 화사한 색채와 정교한 표현은 르네상스 시대의 건강한 신앙심이 만드는 위대한 작품이 어떤 것인가를 느끼게 한다.  




Fra Angelico, 

The Annunciation, the interior reproduces that of the cell in which it is located.

1437-1446, fresco, Museo San Marco

출처: http://commons.wikimedia.org/



복자(Beato) 안젤리코라는 별명도 지니고 있는 구이도 디 피에트로는 예술과 도덕 자질이 빼어났고, 도미니크 수도원에 들어가 조반니 수사라는 이름을 받았으며, 수도원에서 세밀화나 그림을 그리는 데 헌신했다. "그리스도의 작품을 만드는 사람은 언제나 그리스도와 함께 머물러야 한다"는 신념으로 한평생 성화를 그린 천사 같은 수도자를 사람들은 '프라 안젤리코'(천사와 같은 수사)라고 불렀고 교황 요한 바오르 2세는 그를 시복하고, 1984년 카톨리 예술가들의 수호자로 선포했다. 하얀 장미를 들고 있는 인자한 성모와 천진하기 그지 없는 아기 예술의 모습. 성인들과 천사들의 선한 표정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성모와 아기 예수>는 프라 안젤리코의 혼과 영성이 깃든 걸작 가운데 하나다. (전시 설명 중에서) 




Fra Angelico, Madonna With Angels And The Saints Dominic And Catherine, C 1437 Tempera On Panel, 23 X 18 Cm Pinacoteca Vaticana, Vaticano, Rome (전시 작품)

출처: http://www.flickr.com/photos/fabien-moulin/4152765254/ 




젠틸레 다 파브리아노의 이 목판에는 바람에 잔뜩 부풀어 오른 하얀 돛단배가 폭풍에 휩싸인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어떤 선원들은 배를 가볍게 하려고 물을 퍼내고 있고, 한 사람은 돛대에 매달려 있으며, 또 한 사람은 기도하듯 손을 모아 하늘을 우러르며 도움을 청하고 있다. 위에서는 성 니콜라스가 구해주려고 나타난다. 성 니콜라스는 3세기와 4세기 사이에 소아시아에서 살았고 리키라 지방 미라(오늘날의 터키)의 주교였다. 수많은 기적을 행했다는 이 성인은 어린이들과 가난한 이들과 선원들의 수호자로 여겨져 왔다. 성인의 무덤이 있었던 곳에서 시작된 성인 공경 신심은 비잔틴 세계에 퍼져나갔고, 그 후 서방에 이르기까지 큰 공경을 받았다.이탈리아, 독일, 북아메리카 민간 전통에 등장하는 산타클로스라는 착한 인물은 성 니콜라스에게 영감을 받은 것으로, 이제는 그리스도교 세상 밖에도 알려져 성탄절이면 어린이들이 선물과 과자를 기다리며 양말을 걸어 두기도 한다. (전시 설명 중에서) 



난파하는 배를 구하는 성 니콜라스_젠틸레 다 파브리아노, 1425 (전시작품)

출처: http://www.font.co.kr/typostory/typonews_view.asp?search_idx=29


15세기 초에 활동하던 젠텔레 다 파브리아노(Gentile da Fabriano,1370/80-1437)는  중기 르네상스 작가로 구분할 수 있겠지만, 그러기엔 너무 딱딱하다. 아마 그의 작품들 중 가장 동적이며 유려한 '난파하는 배를 구하는 성 니콜라스'를 제외한다면, 나머지 작품들의 일부분은 고딕적인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보인다. 하나의 작품으로만 보자면, 젠틸레 다 파브리아노는 전성기 르네상스를 예감하는 듯한 분위기를 풍기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했다. 



Gentile da Fabriano. The Presentation at the Temple. From the predella of the alterpiece in the Strozzi Chapel at the Church of Santa Trinita in Florence. Tempera on wood. Louvre, Paris, France.



그리고 채 100년도 지나기 전에 라파엘로의 작품들을 본다면, 예술에 있어서의 혁신이 어떤 것인가를 알게 된다. 미술사에 매혹되는 건 이런 비약적 발전의 원동력을 이해하고 공감하게 될 때이다. 갑자기 고딕에서 르네상스로 갈 수 없다. 다만 둑이 무너지듯이 어떤 물결이 모든 것들을 집어삼키며 눈에 띄는 변화를 만들 순 있었을 것이다. 젠틸레 다 파브리아노에서 라파엘로 사이에는 이러한 광폭한 물결이 숨겨져 있다.  그리고 후대사가들은 작은 범선의 부풀어 오른 하얀 돛의 자연스러움에서 앞으로 전개될 예술 양식 상의 변화를 짐작할 수 있었다고 추정할 뿐이다. 




Raffaello Sanzio, Theological Virtues1507

oil on panel, Height: 16 cm (6.3 in). Width: 44 cm (17.3 in). (each) (일부 전시)

출처: http://commons.wikimedia.org/




오래 전에 본 전시 리뷰를 새삼스럽게 올리다 보니, 르네상스 작품들을 보지 않은 지도 꽤 되었음을 깨닫는다. 저녁에는 몇 년만에 르네상스 화집을 봐야겠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0

올해의 작가상 2013 

Korea Artist Prize 

2013. 7. 19 - 10. 20 

국립현대미술관 





겨울바다

공성훈

캔버스에 유화97x130.3cm, 2010




을씨년스러운 겨울의 모습이 가득한 화가 공성훈(1965년생)의 그림은 자연에 대한 외경이나 그로부터 비롯되는 숭고미가 아니라, 더 이상 착취될 수 없을 정도로 착취된, 인간에 의해 한갓 연극 무대장치처럼 가공된 자연을 보여준다. (...)


우리가 이들 그림에서 느끼는 경탄은 그림 속에 재현된 자연에 내재한 숭고로부터 비롯하는 것이 아니다. 이 그림 속에 등장하는 자연은 마치 과장된 옷과 차림새로 화려하게 치장하고 있지만 왠지 모를 서글픔과 애처로움을 느끼게 하는 피에로처럼 보인다. 자연은 스스로의 장관을 한껏 뽐내고 있지만, 그 한껏 과장된 웅대함의 장관은 화면 한 구석에 조그맣게 등장하는 인간의 흔적에 의해 일거에 풀죽어버리고 만다. 

- '전시 팜플렛' 중에서 



우리의 일상은 얼마나 미술과 떨어져 있는가. 나는 언제나 마음이 아프다. 많은 사람들이 미술을 보고 공감하고 자신의 영혼 앞에서 솔직해지며 감동받을 수 있다면 하고 바라던 순간이 얼마나 많았던가. 


작년 가을에 있었던 올해의 작가상 전시는 2012년에 비해 다소 약한 느낌을 주었다. 후보로 선정된 네 명의 작가, 공성훈, 신미경, 함양아, 조해준의 작품들은 매우 개성적인 작업들을 보여주었지만, 파격적이거나 실험성 측면에서 2012년에 비해 얌전하게 보였다. 


그리고 올해의 작가로 공성훈이 선정되었다. 그리고 '회화' 작업이 선정되었다는 점은 고무적으로 보였다. 내 취향으로는 함양아의 작품이 마음에 들고 재미있었지만. (아래 비디오 작품이 전시되었는지는 모른다. 다만 youtube에서 구할 수 있는 비디오 작품을 옮긴다.)



Fictionality, 함양아 



전시 기간 동안 보여준 함양아의 <넌센스 팩토리>는 '일종의 부조리극 같은 색채를 띄면서 현대사회를 풍자'했다. 그 점에서 비디오 작업들은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 끌었고 충분히 재미있었고 그러면서 우리들의 일상을 다시 바라볼 수 있었다. 또한 비디오 작업이 가지는 미술적 가치를 대중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보여줄 수 있었다는 점이 매우 좋았다. 


 

‘화장실 프로젝트’의 비누조각상. 신미경



신미경(1967년생)은 조각의 영역에서 '번역'을 화두로 하여 작업을 해오고 있다. 작가의 '번역'은 견고한 재료로 된 각종의 고전적 유물을 부드럽고 무른 일상적 재료인 비누로 옮겨내는 작업이다. 이러한 작업은 우리의 고정관념 속에 자리한 고전적 전범들이 가진 견고함을 무르고 부드럽게 만듦으로써, 그 전범들이 지닌 가치의 영속성에 관해 의문을 품도록 이끈다. 

- '전시 팜플렛' 중에서 



조해준의 작품은 흥미로운 접근을 보여주었고 예술 실천적 의미가 강했다. 


'조해준(1972년생)은 2002년부터 아버지 조동환과 함께 하는 공동작업을 통해 드로잉 연작을 발표해오고 있다. 이 그림들은 격변의 한국근현대사 속에서 평범한 소시민으로 살아온 인물들의 삶의 이야기를 때로는 덤덤하게, 때로는 해학넘치게 드러낸다. (...) 이러한 공동작업은 차츰 진화를 거듭하여, 매체 상으로는 드로잉, 설치, 만화책, 영화로 확장되어가고 있으며, 그 시야는 아버지와 아들의 삶뿐 아니라 일가친척의 가족사, 1980년대의 민주화 활동가, 더 나아가 최근에는 동유럽 출신 독일 이주민, 북한 유학생, 아랍 출신 성직자 들 세계사의 변방으로까지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 작가가 보여주는 <사이의 풍경>은 아버지와 아들의 두 세대의 삶을 이어주는 연결고리 같은 대목으로서 현실과 환상 사이에 존재하는 불가사의한 삶의 순간, 세계사의 사이로 언뜻언뜻 비치는 삶의 면면들, 어느 평범한 생활인의 소박한 창조물들이 사이의 간극을 뛰어넘어 동시대 미술작품으로 재탄생하는 모습들로 이루어진다. 

- '전시 팜플렛' 중에서 



조해준, 미군과 아버지, 종이에 연필 32자의 드로잉, 39x27cm, 2005-2007년




정리를 하다 보니, 함양아의 작품을 가장 좋았다고 하면서 설명은 가장 빈약하다. 전시되었던 비디오 작품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좋을 것같은데, 구할 수가 없으니 전시 팜플렛을 옮기는 것도 큰 의미가 없는 듯하여 인용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구하게 된다면, 이 포스팅에 넣도록 하겠다. 








* 위 이미지와 동영상은 '국립현대미술관', 'Akive.org', 'Arko' 등에서 인용하였음을 밝힌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0


Natee Utarit 나티 우타릿 

2013. 10. 10 - 11. 3 

Gallery HYUNDAI  





1970년생 태국 화가 나티 우타릿은 서구의 눈에서 보기에 너무 익숙하다. 동아시아 미술이 서 있는 지점을 희극적으로 작가 스스로 보여주는 건 아닐까. 중국의 왕광이가 자신만의 화법으로 팝 아트를 비틀어, 현대 중국의 이념적 지형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것과 달리 나티 아타릿은 서구의 화법에 자신의 몸을 숨기고 태국을 드러내려고 하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아무리 서구적 화법으로 포장한 한국 작가의 작품을 가지고 외국에 나간다고 한들, 그 속에서 지역성(locality)을 읽어내듯, 태국 화가의 서구적 작품 속에서 그 지역성을 읽어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나는 그 속에서 도리어 과감하게 지역성을 드러내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을 가진다. 


어쩌면 아시아 현대 미술이 가지는 어떤 한계를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타자의 화법을 빌려오는 행위 말이다. 이 기묘함에 대해 세계 미술 관계자들이 화답하였고, 한국에까지 와서 전시를 한 것은 아닐까 하고. 


결국 이러한 표현 방식의 문제는 정치적 해석을 불러일으키고 아시아 미술의 정체성을 다시 묻게 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현대 태국의 문제들과 그것에 대한 해석까지도. 





All Things Truly Wicked Start from Innocence, 130x114cm, Oil on linen, 2013

(출처: 갤러리 현대)



 

Saying the truth is a suicide, 2012, Oil on linen , 90 x 100 cm

(출처: http://www.arndtberlin.com/website/artist_9828)



Innocence is Underrated. Oil on linen.180×160㎝

(출처: 갤러리 현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0



I'M NOT A PINE TREE 나는 소나무가 아닙니다

YUN SUKNAM 윤석남

10.16 - 11.24, 2013, 학고재 Hakgojae 





너와 11-초록으로 물들고 싶어, 113.5x57.5cm, 2013. 제공 | 학고재갤러리

출처:  http://news.sportsseoul.com/read/life/1254774.htm 



보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작품이 있다. 윤석남의 작품들이 그렇다. 몇 주 전 오랜만에 나간 주말 나들이에서 만난 윤석남의 작품은 어수선하던 내 마음을 어루만지고 위로했다. 


그녀의 작품은 어머니 지구(가이아)로부터 뻗어져 나와 모든 존재에 깃든 모성의 흔적, 혹은 그리움을 담고 있었다. '나무'라는 소재에서 비롯되었다고 하기에는 그녀의 작품은 나무의 느낌은 뒤로 밀리고 그 위에 그려진 형태가 먼저 들어온다. 


개를 그렸을 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그렇다. 마치 나무가 사라지고 나무 위에 그려진 존재만 부각되는 느낌이랄까. '나는 소나무가 아닙니다'라는 전시 제목 뒤로 '그래서 저는 어디에나 있는 아무 것 아닌 모든 것입니다'라는 문장이 있는 것같기만 하다. 


 

'1025 연작' 나무위에 아크릴물감 116×91×91cm 2008 ⓒ 아르코미술관 사진제공

출처: http://blog.ohmynews.com/seulsong/255630 



요즘같이 불투명하기만 한 세상에서 지쳐가기만 우리들에게 윤석남의 전시는 따뜻한 위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혹시라도 윤석남의 전시 기사를 보게 된다면 놓치지 말기를.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0

David Hockney 

Bigger Trees Near Warter

2013. 9. 3 - 2014. 2. 28 

데이비드 호크니: 와터 근처의 더 큰 나무들

과천 국립 현대미술관 




(각 나라의 국립미술관끼리는 소장 작품을 무료로 대여해주는 협정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무료인지 확실하진 않지만, 작품을 전시하는 비용보다 작품 운송/전시 과정에 들어가는 보험료가 더 비싸 한국의 국립 미술관들은 이런 협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괜찮은 전시를 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리고 보험료를 내기 위해 국립 미술관의 예산을 늘여야 된다고 이야기하면 아마 난리가 나겠지. 상황이 이렇다보니, 문화예술 관련 예산은 턱없이 모자라기만 하고, 결국 공공을 위해 존재하는 국공립 예술 기관들이 수익 사업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공익 목적의 과도한 수익 사업은 그 기관의 공익성을 해치는 부메랑으로 돌아오게 되고. 하긴 예술 기관들의 재정적 위축은 비단 우리나라 뿐만 아닐 것이다. 다만 국공립 예술 기관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더 늘어났으면 하는 바람을 가질 뿐이다. 여하튼 그래서 영국 테이트 미술관에 있는 이 작품이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 



데이비드 호크니의 풍경화는 2008년 파리 피악Fiac에 최초로 봤다. 세계 3대 아트페어 중 하나이니, 당연 놀라운 감동적인 작품들로만 가득찼을 그 곳에서 내 눈을 사로 잡은 몇 개 되지 않는 작품들 중 최고가 바로 데이비드 호크니의 어떤 풍경화였다. 피악에 나오는 갤러리나 그 갤러리가 가지고 나오는 작품들은 일반적으로(한국의 여느 갤러리에서) 만나기 어려운 작품들이라는 걸 감안하면, 데이비드 호크니의 독보성은 놀랍기만 했다.


그리고 그가 최근 몰두하고 있는 풍경화들 중의 한 작품이, 그것도 50개의 캔버스로 이루어진 거대한 작품이 한국에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 설레는 일이다. 


(그러나, 아, 아래 이미지로는 이 작품의 실체를 알 수 없다. 아니 아주 작은 일부도 느낄 수 없다.)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홈페이지  




부디 부탁하건대, 과천 국립 현대미술관에 가서 데이비드 호크니를 만나고 오길 바란다. 그가 왜 현존하는 작가들 중 최고인지 느낄 수 있을 테니. 



--- 


<와터 근처의 더 큰 나무들>은 데이비드 호크니의 근작 중 가장 규모가 큰 작품이다. 높이가 4.5m, 길이가 약 12m에 달하는 이 작품은 총 50개의 캔버스가 모여 하나의 전체를 이룬다. 호크니가 자신의 고향 요크셔로 돌아왔을 때 크게 감동을 받은 풍경으로 브리들링턴 서쪽, 와터 근처의 봄이 오기 직전, 나무에 새순이 솟아나는 그 때의 풍경을 표현한 것이다. 그림의 전경에는 키가 큰 나무들과 만개한 수선화들이 피어 있는 모습이 자리하고 있고 화면 구성 상 중심에는 가지를 뻗은 거대한 플라타너스가 있다. 전경의 잡목림 뒤쪽으로는 분홍빛이 도는 또 다른 작은 관목숲이 배경으로 있다. 화면의 왼쪽에는 곡선을 그리며 멀어져가는 열린 길이 있고 오른 쪽에는 사람이 거주하는 듯한 집 두 채가 있다. 그림의 상단부는 나무의 크고 작은수많은 가지들이 얽히고 설킨 형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작품은 그 규모로 인해 앞에 가까이 다가서는 순간, 마치 실제 나무 숲에 들어선 듯한 느낌을 준다. 보는 이들은 이제 호크니가 말하는 “자연의 무한한 다양성” 그 한복판에 자리하게 되는 것이다. 

- 전시 설명 중에서 



호크니가 작업하고 있는 모습 




데이비드 호크니와 관련된 이전 포스팅. 


2012/07/10 - [예술의 우주/예술가] - 데이비드 호크니의 풍경화

2008/10/30 - [예술의 우주/예술마케팅] - 파리의 미술축제, FIAC에 가다.

2006/06/02 - [예술의 우주/예술가] - 'Peter Getting Out of Nick's Pool' by David Hockney 데이빗 호크니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0



대선이 끝나자마자 몇 명의 노동자가 자살했다. 부끄럽다. 슬프다. 노동운동이 치열했던 시기에도 이렇게 많은 노동자가 자살했을까. 


한 때 문학이, 예술이 열성적으로 '현실 참여'를 부르짖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때 언제였는지 아련하기만 하다. 실은 지금 더 필요한데 ... ... 


아내의 사촌 동생(그는 사진을 전공하고 있다)으로부터 아래의 달력을 받았다. 참으로 오랜만이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최소한의 변화를 위한 사진'이라는 제목을 가진 이 달력은 콜트 악기 부평 공장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기업주의 입장과 노동자의 입장은 다를 수 밖에 없겠지만, IMF를 지나고 어느 새 우리 사회는 기업주의 입장만 대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자본주의화는 심화되었고 우리에겐 반성할 여지조차 사라져 버린 걸까.


이 작은 달력이 가지는 외침은 꽤 커 보인다. 


월별로 두 장의 사진 작품이 실려 있다. 사진은 조용하지만, 호소력이 진하고, 무엇보다 삶에 대한, 이 세상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와 좋았다. 아래는 내 핸드폰으로 찍은 달력의 일부이다.  아래 인용된 사진 작품에 대한 별도의 표기는 하지 않았다. 

 





(처남의 사진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2

  • 묵직한 흑백의 사진이 주는 무게가 상당하네요. 사진의 메시지와 별도로 사진 자체가 부럽습니다.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문재인 후보가 당선되었다고 자살하는 사장이나 자본가가 있을까 하구요. 그것만으로도 이땅에 절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수 있는데도 그걸 무시하고 사는 사람이 참 많다는게 마음 아픕니다.

    •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대선이었습니다. 대선 뿐만 아니라 저도 작년 한 해는 꽤 힘든 시절을 보낸 탓에.. ~.
      사진은 무척 좋습니다. 달력도 깔끔하고요. 정치가 개개인의 삶에, 그리고 후세대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치는가에 대해서 고민해야 하는데, 현실은 너무 한 쪽으로 쏠려 있다보니, 모두 한 쪽만 바라보는 형국이라고 할까요. 그런데 우습게도 학력 수준이 높고 월급이 많이 받는 이들에게서 문재인 지지도 높게 나왔다는 사실을 보면서, 세상 참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을 동시에 했습니다. 그냥 제 고민들을 한 번 정리해서 포스팅해볼까 하는데, 쉽지 않네요. 크~.
      제 메일 주소(yongsup.kim@yahoo.com)으로 주소 보내주세요. 달력 한 부 보내드릴께요. ^^


(미술 전시 소개 어플리케이션인 '올댓 주말미술여행'을 가지고 있은 지도 이제 2년이 되어간다. 초반에는 매월 몇 개씩 올리곤 했는데, 바쁜 직장인이 주말 전시 보러 가는 것도 빠듯한 탓에 개점 휴업 상태였다. 이제서라도 반성을 하며, 전시 정보만 담고 있는 글이라도 자주 올릴까 한다. 나도 놓치는 전시 없고 여길 방문하는 이들에게도 약간의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말이다. '주말미술여행'은 구글플레이나 T스토어에 가면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 


가지 않은 전시를 소개하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어쩌다보니 전시 보러갈 시간은 없었고 주말미술여행은 개점 휴업 상태가 되었다. 심지어 전시를 보았지만, 리뷰를 쓰지 못하면 올리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소개하기도 전에 전시가 끝나는 경우가 생겼다. 그래서 이제서라도 볼만한 전시 정보만이라도 올려야 하지 않을까 싶다. 


원래 가을에는 전시가 많다. 여름은 확실히 비수기이고.







아니쉬 카푸어 Anish Kapoor

10.25 - 2013.1.27

삼성미술관리움 Leeum, Samsung Museum of Art




먼저 추천할 만한 전시는 아니쉬 카푸어 전이다.  현대 조각의 최전선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다. 가족끼리 연인끼리 가도 좋을 것이다. 입장료는 8,000원이지만, 이왕 가는 김에 리움의 상설 전시도 같이 보면 어떨까. 





주명덕: 시작과 시작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분관

2012.10.10 - 2012. 11. 25 



주명덕의 작품을 만나는 것은 우리의 어제와 오늘을 만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래서 '시작'이라는 단어를 두 번이나 언급한 것일까. 평일 사당역에 내리게 된다면, 사당역 근처에 있는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분관에 들려 주명덕의 사진 작품을 보면 좋겠다. 




한국현대미술 : 시간의 풍경들 Landscape of Moment

10.9 - 11.25

성남아트센터 큐브미술관 



성남아트센터 큐브미술관에서는 곧잘 주목할 만한 기획전시를 열곤 한다. 이번 전시는 한국현대미술, 다시 말해 컨템플러리 아트를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줄 것이다. 



텍스트가 된 인간 : 이응노, 줄리안 오피 & 소피 칼

TEXT & HUMAN : Lee Ungno, Julian Opie & Sophie Calle

9.26 - 2013.1.13

대전이응노미술관



대전에서 이응노와 만나는 줄리안 오피와 소피 칼을 볼 수 있다. 특히 소피 칼이 기대된다. 이응노의 작품은 이미 많은 이들이 보았겠지만, 소피 칼은 드문 기회가 될 테니 말이다. 




(불)가능한 풍경 (Im)Possible Landscape

11.8 - 2013.2.3

플라토 PLATEAU 


플라토의 기획전시이다. 올 가을부터 내년 늦겨울까지 하니, 전시 일정은 넉넉하다. 한국 현대 설치 미술을 볼 수 있는 전시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0

어둠이 내렸지만, 사람들은 그 사실을 몰랐다. 알 턱도 없었고 알기도 싫었을 것이며 알려는 의지도 없었다. 이미 선 긋기는 시작되었다. 저 땅은 아무리 노력해도 닿지 못하는 곳.....

웹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필립 솔레르스(Philippe Sollers)가 사드(Marquis de Sade)에 대해 인터뷰하는 영상을 보았다. 영상 속에서 한국에서 사드의 책을.....

보르헤스, 문학을 말하다

보르헤스, 문학을 말하다 This Craft of Verse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박거용 옮김, 르네상스 우리는 시를 향해 나아가고, 삶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리고 .....

대학로 그림Grim에서

"글을 쓰지 않아요?"라고 묻는다. 매서운 바람이 어두워진 거리를 배회하던 금요일 밤, 그림Grim에 가 앉았다. 그날 나는 여러 차례 글을 쓰지 않냐는 질문을 받았다. 가끔.....

아우스터리츠Austerlitz, W.G.제발트Sebald

아우스터리츠 Austerlitz W.G.제발트(지음), 안미현(옮김), 을유문화사 병상에 누워, 안경을 쓰지도 못한 채, 제발트의 <<아우스터리츠>>를 읽었다. 병상에서의 소.....

아비 바르부르크(Aby Warburg) 평전, 다나카 준

아비 바르부르크(Aby Warburg) 평전 다나카 준(지음), 김정복(옮김), 휴머니스트 일본인 저자가 쓴 아비 바르부르크(Aby Warburg) 평전이라니! 놀랍기만 했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The Sense of An Ending, 줄리언 반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The Sense of An Ending 줄리언 반스(지음), 최세희(옮김), 다산책방 나는 우리 모두가 이러저러하게 상처받게 마련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

쓸쓸한 커피숍

2016. 06. 10 오늘도 기다림은 이어진다. 그리움은 늘 그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다....

늦은 봄날의 일상
늦은 봄날의 일상
늦은 봄날의 일상
늦은 봄날의 일상
쇼핑몰 멤버십 프로그램 (e-commerce membership)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