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파아란 영혼

책들의 우주 +663



인간의 본성에 대한 풍자 

라로슈푸코(지음), 강주헌(옮김), 나무생각



원제는 『잠언과 성찰』(Reflexions ou sentences et maximes morales, 1665)이다. 니체가 매우 존경하였으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는 라로슈푸코(Francois de La Rochefoucauld, 1613 ~ 1680)의 잠언집을 읽었다. 17세기 작가의 문장들은 쉽게 읽힌다. 몇 개의 문장들은 흥미로웠다. 적당히 염세적이고 시니컬했다. 생각하는 것보다 팬이 많아서 어느 일본인 작가는 평전을 쓰기도 했다. 그만큼 파란만장한 삶을 살기도 했다. 


몇 개의 문장들을 옮긴다. 


- 우리의 미덕은 대개의 경우 위장된 악덕에 불과하다.


- 철학은 과거의 불행과 미래의 불행을 그럴듯한 이유로 극복하라고 설명하지만, 현재의 불행 앞에서는 아무 말도 못한다.

 

- 질투는 의혹은 먹고 산다. 의혹이 확신으로 변하면 질투는 깨끗하게 소멸되거나 광기로 변한다. 


- 운명의 변덕도 종잡을 수 없지만, 우리의 변덕은 그 이상이다. 


- 사랑을 정의하기란 쉽지 않다. 기껏해야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영혼의 사랑은 지배의 열정이고 정신의 사랑은 동정이며, 육체의 사랑은 많은 비밀이 있은 후에 사랑의 대상을 소유하려는 은밀하고도 미묘한 욕망일 뿐이다. 


- 위선이란 악이 미덕에 바치는 찬사다. 


- 젊음은 언제나 취해 있는 상태를 뜻한다. 즉 이성의 열병이다. 


- 어리석음은 전염병과도 같은 것이다. 


- 운명과 성격이 세상을 지배한다. 


- 노인은 목숨을 걸고 젊은이들의 즐거움을 방해하는 폭군이다. 


- 우리가 어떤 사물에 대해 본능적으로 갖는 취향과 일정한 기준에 따라 사물의 질을 감식해서 판단하는 취향은 다른 것이다. 예컨대 우리는 내용을 판단할 만한 섬세하고 날카로운 감각이 없으면서도 코미디를 좋아할 수 있다. 거꾸로 코미디의 내용을 완벽하게 판단하기에 충분한 감각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코미디를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다. 


잠언집을 좋아하는 이들에겐 충분히 권할 만하지만, 깊이 있는 통찰이 있거나 체계적인 사유를 엿볼 수 있는 건 아니다. 정말 17세기식의 약간 삐딱한 프랑스 경구들이라고 할까. 나는 그냥 쉽게 읽었다. 몇 개의 문장은 좋았으나, 그 뿐이었다. 다행히 읽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으니, 머리를 식히기 좋은 책이라고 하면 이상하려나. 





인간의 본성에 대한 풍자 511 - 6점
프랑수아 드 라로슈푸코 지음, 강주헌 옮김/나무생각



Comment +0



흰밤 



옛성城의 돌담에 달이 올랐다

묵은 초가지붕에 박이

또 하나 달같이 하이얗게 빛난다

언젠가 마을에서 수절과부 하나가 목을 매여 죽은 밤도 이러한 밤이었다 



- 백석, 1935년 11월, <<조광朝光>> 



혼자 술에 취해 거실 탁자에 앉아 시집을 꺼내읽다 왈칵 눈물이 흘렀다. 

예상치 못한 눈물에, 내가 왜 이럴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직 감수성이라는 게 살아있었나 하는 안도감을 아주 흐르게 느꼈다.


글쓰기는 형편 없어지고 책읽기도 그냥 습관처럼 변해, 종종 내가 왜,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요즘이다.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지혜가 생긴 것도 아니고 논리 정연해진 것도, 그렇다고 사람들을 감화시켜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 리더십을 가지게 된 것도 아니다. 

도리어 거짓말장이가 되고 불성실해지고 나이가 든다는 것이 사람들에게 선사하는 나쁜 점들만을 (처참하게) 깨닫고 있다.


그런 시절, 백석의 시를 읽다가 눈물을 흘렸다. 거참. 


***


백석(1912 ~ 1996) 

지금에서야 시집 구하기가 쉽지만 예전엔 월북작가라 이름이 알려지지도 않았던 시절이 있었다. 이번 가을 백석 시집을 추천한다. 


Comment +0


숨은 신을 찾아서

강유원(지음), 라티오 



짧고 간결하다. 신에 대한 책이면서 신앙에 대한 책이며 동시에 근대 철학에 대한 책이기도 하다. 사도 바울의 신과 고대 그리스의 신을 이야기하고 아우구스티누스와 데카르트를 이야기한다. 근대철학의 관점이 아니라 신앙의 관점에서 파스칼은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실은 나도 성당을 다니기 시작했고 세례를 받았으며 신앙을 편안하게 받아들였다. 도리어 편안하게 받아들였다는 사실이 나에게 놀라웠다. 


마르크스와 프로이트가 이미 종교를 부정하였고 이젠 신앙은 중세의 유적처럼 변해버린 이 시대, 현대의 회의론자들은 끊임없이 신과 신앙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할 때, 이 책은 놀라운 성찰을 보여준다. 


데카르트가 신의 관념을 두고 신의 현존을 증명해내는 것은 바로 이러한 겸손함, 경건함이다. 그런 까닭에 이 현존 증명은 인간의 유한함에 대한, 인간의 하찮음에 대한, 인간의 허약함에 대한 강력한 확신에 의존한다. 인간의 유한함과 하찮음과 나약함을 강조하면 할수록 이 증명의 위력은 커진다. - 136쪽 


신앙은 전적으로 개인에게 국한된 문제다. 그러므로 신앙은 자기를 비춘다. 자기 속의 신을 찾아낸다. 세상은 신비롭고 우리는 그 신비 속에 있다. 


작년에 한 번 읽고 올해 한 번 더 읽었다. 뒤늦은 리뷰이지만, 이 책은 참 좋다. 



숨은 신을 찾아서 - 10점
강유원 지음/라티오


Comment +0



이젠 습관이 된 탓에 시간의 여유만 생기면 문학이나 예술에 대한 글들을 수시로 프린트해서 읽는다. 며칠 전에 읽은 인터뷰에 몇 권의, 인상적인 책 소개가 있어 옮긴다. 다소 생소한 작가들의 이름이 눈에 띄었고, 내가 미처 몰랐다는 사실이 다소 미안한 느낌마저 들게 했다. '당신의 침묵은 당신을 지켜주지 못한다'라는 메시지로 사회 참여를 강하게 외쳤던 오드리 로드, 영국 출신이면서 20세기 초반 초현실주의 세례를 받은 화가이자 소설가 레오노라 캐링턴은 국내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였다. 셜리 잭슨은 이미 많은 작품이 영화화되기도 한, 고딕 호러 분야에 있어선 최고의 소설가였지만, 나는 알지 못했다. 데보라 레비는 흥미로운 작가들과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었다. 그녀도 이미 영국의 부커상 최종 후보로 여러 번 올리기도 한 극작가이면서 소설가였지만, 국내에 알려지지 못한 건 마찬가지. 


이 짧은 포스팅으로 몇 명의 작가와 작품을 소개해 본다. 데보라 레비의 소개를 바탕으로 


Deborah Levy: Five Books that Unsettle Boundaries. (데보라 레비: 경계들을 흔드는 다섯 권의 책들) 

데보라 레비는 영국의 극작가이면서 소설가이다. 몇 번 맨부커상 최종 후보로 오르기도 한 그녀는 자기에게 영향을 준 다섯권의 책을 이야기한다. 



Audre Lorde, <Your Silence Will Not Protect You>  

오드리 로드는 알지 못했다. 미국 흑인 운동과 페미니즘 역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작가들 중 한 명인 그녀는 흑인이면서 여성 동성애자로의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기도 했다. 위 책은 오드리 로드의 시와 에세이를 모아 만든 책이다. 최근 한국에서도 오드리 로드의 책 한 권이 번역되어 나왔다. 



Leonora Carrington, <The Hearing Trumpet>

레오노라 캐링턴(1917~2011)도 처음 알았다. 영국 출신의 멕시코 화가이자 소설가다.  막스 에른스트의 연인이기도 했던 그녀는 2차 세계대전 중 멕시코로 이주하였으며 그 곳에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였다. 이 책은 92살의 Marian Leatherby의 이야기로 기묘하고 환상적인 분위기의 소설이다. 



Gertrude Stein, <Picasso> 

워낙 유명한 책이라 번역되었을 것이라 여겼지만, 번역되지 않았다. 소설가이자 비평가였던 거트루드 스타인이 쓴 <피카소>는 피카소가 그려젼 스타인의 초상화를 책 표지로 사용했다. 미국 문학사에서는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한 명이지만, 정작 소설가로서 유명하기 보다는 위 작품으로 더 유명해진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리고 의외로 국내에 번역되지 못한 작가들 중 한 명이다. 



Shirley Jackson, <The Haunting of Hill House> (2014년 한글 번역 출판)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이야기들 중 하나로 인정받는 <힐 하우스의 유령>. 데보라 레비는 소설가 셜리 잭슨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I admire the skill of Jackson's plotting, the sly ways in which she creates suspense, and her deceptively plain but always compelling writing.'  



John Berger, <And Our faces, My Heart, Brief as Photos> (2004년 한글 번역 출판)

존 버거의 책이다. 존 버거의 다른 책들에 비해 특별하게 감동적이라고 여겨지진 않았으나, 데보라 레비에게 있어서 이 책은 인생의 책에 가까워 보인다. 존 버거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 작가이니. 







Comment +0



한국 사진이론의 지형

김승곤 외 지음, 홍디자인출판부, 2000년 



몇 개의 논문은 읽을 만하다. 가령 최인진의 <사진 수용 단계에 있어서 다게레오타입의 전래 유무에 관한 연구>같은 논문은 이런 논문집이 아니곤 읽을 일이 거의 없다. 특히 3부에 실린 세 편의 논문, 이경률의 <현대미술과 사진적 레디메이드>, 박주석의 <초현실주의 사진과 비평>, 최봉림의 <사진 초상에 있어서 은유와 환유>는 무척 흥미롭게 읽었다. 


그러나 대체로 재미없었다. 논문의 질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었고 '김승곤 선생 회갑 기념 논문집'이라는 부제에 어울리지 않게 신변잡기적인 에세이가 실려 있기도 했다. 책의 출간년도가 2000년여서 그런 걸까, 아니면 한국의 사진 비평이나 이론의 수준이 딱 이 정도 수준이라는 걸까. 한국 사진 이론의 변천을 전문적으로 다루지도 못하고 그 때 당시 활발히 활동하던 이들에게서 글을 받아 모은, 그냥 진짜 '기념 논문집'인 셈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구입한 이유가 있었는데, 어느 전시 평문에서 어떤 글을 읽고, 그 문장이 있던 이 책을 구입한 것이다. 하지만 그 문장이 무엇인지 전혀 기억나지 않고, 이 책도 구입한 지 몇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읽으니 ... ... 


사진 이론에 관심 있다면 이 책보다는 다른 책들이 더 나아보이는데, ... ... 아, 사진 이론 관련 책들이 뭐가 있나. 직업적 사진가나 사진 작가, 혹은 사진 애호가는 많지만, 사진에 대한 글/비평에 대해 관심 있는 이는 적거나 거의 없다(이는 문학을 제외한 모든 예술 분야가 똑같다). 그러니 이 책을 추천하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다른 책에는 무엇이 있나 하는 생각에 예술 이론 분야에 한글로 된 책들의 부족을 새삼 느끼게 된다. 





한국 사진이론의 지형 - 6점
김승곤 외 지음/홍디자인

Comment +0


지식인의 표상 Representations of the Intellectual 

에드워드 사이드(지음), 최유준(옮김), 마티 



사진 출처 - http://www.h-alter.org/vijesti/remembering-edward-said 



나이가 들어 새삼스럽게 애정을 표하게 되는 작가들이 있다. 그 중 한 명이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다. 대학 시절, <<오리엔탈리즘>>을 읽었으나, 그 땐 그 책의 중요성을 알지 못했다. 인문학은 나이와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는데, 그건 이 세상과 그 속의 사람들에 대한 학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서야 새삼스럽게 에드워드 사이드를 읽으며 감탄하게 되고 당연한 일


1935년 팔레스타인의 예루살렘에서 태어난 에드워드 사이드는, 어쩌면 그의 인생 전체가 20세기의 거대한 갈등 한 가운데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그의 지적 역량과 방대함일 것이다. 아마 서구 지식인들 대부분이 에드워드 사이드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았을까. 이 책의 계기는 1993년 영국 BBC 방송의 리스 강좌 Leith Lectures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출신의 미국인이었던 그에게(영국 BBC 리스 강좌에 나왔던 미국인은 손에 꼽힐 정도로 적다), 팔레스타인의 권리 투쟁에 적극적이었던 에드워드 사이드에 대한 비판이 쏟아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었지만, 역설적으로 이 강좌의, 그리고 이 책의 존재 의의를 부각시켰다. 


"모든 사람이 지식인이며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사회에서 지식인의 기능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니다."

- 그람시, <<옥중수고>> 중에서 (19쪽 인용) 


이 책은 지식인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지식인에 대해 정의내리고 지식인이라면 어떻게 사고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그리고 지식인을 둘러싼 다양한 의견을 제시한다. 또한 그 스스로 현실 정치에 대해 적극적인 의견을 개진했던 지식인으로서 지식인의 역할에 대해 분명하고 확고한 어조로 어떻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책 후반부에 리처드 크로스만의 <<실패한 신The God that Failed>>를 인용하며 지식인들의 변절을 언급할 때는, 그러한 변절이 얼마나 허술한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정치적으로 이용되는가를 기술할 때는 고통스러움까지 느껴졌다. 


결국 중요한 것은 표상하는 인물로서의 지식인입니다. 즉 어떤 종류의 입장을 분명하게 밝히는 사람, 그리고 온갖 종류의 장벽을 극복하고 청중들에게 명확하게 표현하는 사람입니다. 나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지식인이란 대화를 하건, 글을 쓰건, 가르치건 텔레비전에 출연하건, 표상의 기술을 소명으로 삼는 개인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소명을 공적으로 인지 가능하며 책임과 위험, 대담함과 소심함의 양면을 모두 아우르는 만큼 중요합니다. (27쪽) 


다소 무책임하고 경솔해보일지 모르지만, 주변성이라는 조건은 남의 일을 망치고 동료들을 불안하게 만들 것을 염려와 언제나 조심스럽게 처신해야 한다는 강박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 내가 말하려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지식인이 실제의 망명 상태와 같이 주변화된 자, 길들여지지 않는 자가 되는 것은 권력자보다는 여행자에 가깝고, 관습적인 것보다는 임시적이고 위험한 것에 가까우며, 현 상황에 주어진 권위보다는 혁신과 실험에 가깝게 반응한다는 의미입니다. 망명자적인 지식인의 역할은 관습의 논리에 따르지 않고 대담무쌍한 행위에, 변화를 표상하는 일에, 멈추지 않고 전진해가는 일에 부응하는 것입니다. (77쪽)


오늘날의 지식인은 아마추어가 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아마추어란, 한 사회의 분별력 있고 사려 깊은 구성원이 되고자 한다면 가장 전문적이고 직업적인 행위에 있어서조차 그 행위가 자신의 국가와 관련되고 그 국가의 권력과 관련되며 다른 사회와의 상호작용 방식은 물론 자국 시민들과의 상호 작용 방식과 관련될 때, 그 핵심에서 도덕적인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자격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아마추어로서 지식인의 정신은 우리 모두가 겪고 있는 단순히 직업적인 일상에 들어가 이를 훨씬 더 생기 있고 급진적인 무언가로 변모시킬 수 있습니다. 그저 해야 할 일로 여겨지는 것을 묵묵히 수행하는 대신, 그것을 왜 해야 하며 그것이 누구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며 그것을 어떻게 하면 개인적 기획과 독창적인 사고에 다시 접목할 수 있을 지 물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98쪽) 


자기 자신에게 가해지는 위협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 자신의 신념을 지켜갈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 그리고 동시에 자신의 생각을 바꾸어 새로운 것을 발견하거나 한때 제쳐두었던 것을 재발견하는 일은 훨씬 더 어려운 일입니다. 지식인이 되는 일의 가장 어려운 국면은, 제도에 맞게 경직화되거나 정해진 체제나 방법에 따라 기계적인 방식으로 행동하지 않고, 자신의 직업과 개입을 통해 주장하는 것을 스스로 표상하는 일입니다. (138쪽) 


책 내내 에드워드 사이드는 지식인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반복적으로 강조한다. 어쩌면 그의 삶 전체가 그런 궤적을 그렸던 건 아닐까. 미국인도 아니면서 그렇다고 온전한 팔레스타인인도 아니었으며 더구나 아랍인은 더욱 아니었다. 그의 부모님 모두 기독교도였으며(하지만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으로 오자 유대인이 아니었던 그들 가족은 쫓겨날 수 밖에 없었다), 아랍어와 영어를 섞어 사용하였다. 그의 혼란스러운 정체성은 이후로도 계속 이어졌으며, 결과적으로 주변인으로서, 망명 지식인으로서, 그 어떤 독단적 체계로부터 비판적인 입장에 서 있었을 수 있게 만든 배경이 되지 않았을까


그를 <<오리엔탈리즘>>으로 유명한, 그저 탈식민주의 이론을 이야기한 학자로 국한시키기에는 그의 지적 역량은 놀랍기만 하다. 그는 탁월한 피아니스트들 중 한 명이었으며, 아마 아도르노 이후 클래식 음악에 조예 깊은 학자이면서 다니엘 바렌보임(Daniel Barenboim)과 함께 클래식에 대한 책까지 낸 이기도 하다. 그리고 내가 나이가 들수록 감탄하게 되고 공감하게 되는 학자이기도 하다. 


책을 사놓고 초반만 조금 읽어둔 채 몇 해를 보냈다. 아마 아래 문단에서 가슴이 먹먹해져 읽기를 멈추었던 듯 싶다. 보편성이란 무엇일까. 제주도에 피신해온 예멘 난민들의 기사를 읽으며 우리 마음 안에 굳건하게 자리 잡은 벽을 느낀다. 그런데 한국에도 지식인들의 사회라는 게 존재하는 것일까. 살짝 고민해보게 된다. 내가 보기엔 예멘 난민 문제에 있어서 가장 호소력 있는 이야기를 들려준 이는 그 잘난 한국의 지식인들이 아니라 배우 정우성이었으니까. 


보편성이란 우리의 출신 배경, 언어, 국적이 타자의 존재로부터 자주 우리에게 보호막이 되어줌에도 불구하고 이를 통해 얻게 되는 확실성에 안주하지 않고 이를 넘어서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보편성은 또한 대외 정책이나 사회 정책과 같은 문제에 대해서도 인간적 행위에 대한 단일한 규준을 찾아내고 이를 유지하고자 노력해야 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가 정당한 이유 없이 야기된 적의 침략에 대해 비난한다면, 우리는 또한 우리 정부가 더 약한 집단을 침략할 때 똑같이 비난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지식인은 자신의 언행을 규정하는 어떠한 법칙도 알지 못한다. 세속적 지식인들에게 확고한 인도자로서 경배하고 숭배해야 할 어떤 신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11쪽)






2008/12/08 - [책들의 우주/예술] - 음악은 사회적이다, 에드워드 사이드

2008/06/21 - [책들의 우주/이론] -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 에드워드 사이드




지식인의 표상 - 10점
에드워드 W. 사이드 지음, 최유준 옮김/마티

Comment +0


리퀴드 러브 Liquid Love 

지그문트 바우만(지음), 권태우, 조형준(옮김), 새물결 




예전같지 않다(그런데 이 문장은 식상하면서도 낯설다. 여기서 '예전'이란 언제를 뜻하는 것인가, 정작 나 자신도 그 때를 지정할 수 없는). 나도, 이 세계도. 


세상이 바우만이 바라보는 바대로 변한 것일까, 아니면 변한 세상을 정확하게 바우만은 읽어내는 것일까. 이 책을 읽기 전에 이토록 절망적인 해석을 담고 있으리라곤 생각치 않았다. 적당하게 우울할 것이라곤 예상했지만, 이 정도일 것이라곤. 


우리 시대에 아이는 무엇보다 정서적 소비의 대상이 되었다.

부모가 되는 기쁨은 자기 희생의 슬픔 그리고 예견할 수 없는 위험들에 대한 두려움과의 일괄 거래 속에서 온다.  - 113쪽 



그는 모든 것을 소비 사회라는 필터를 통해 해석하고 재배열한다. 사람들과의 관계로 그렇게 해석하고 이제 관계가 아닌, 언제나 연결/단절을 선택할 수 있는 '네트워크' 속에 사람들이 놓인다고 진단한다. 더 큰 문제는 현대인들이 그것이 문제라고 여기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리고 이제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도 소비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프랑스Louise France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리고 오늘날의 외로운 사람들에게 디스코텍이나 싱글 바는 아득한 추억"이라고 그녀는 결론 짓는다. 그들은 그러한 곳에서 친구를 사귀는 데 필요한 친교술을 충분히 배우지 않았다(그렇다고 해도 걱정하지는 않는다).  - 161쪽 


사람들, 아니 우리들 서로의 관계가 어떻게 변화되었으며 유대를 맺었던 예전 관계가 무너지고 파편화되었는가를 담담하게 말한다. 마치 마트에서 소비 생활을 하듯 사람들과 네트워크를 맺고 성도 사랑도 그렇게 소비된다. 이제 사람들은 직접적 친밀성을 추구할 필요가 없으며, 가상적 인접성의 테두리 안에서 휴대폰을 들고 자신의 집으로, 방으로 들어가 혼자 지낸다. 그리고 그것이 왜 문제인지 깨닫지 못한다. 


소비 생활은 가벼움과 속도를 좋아한다. 또한 그것들이 조장하고 촉진키켜 줄 새로움과 다양성을, 소비하는 인간의 삶에서 성공의 척도는 구매량이 아니라 구매 빈도이다. - 131쪽 


소비사회와 도시는 함께 성장하고 사람들은 그 속에서 버려진다. 버려진다는 사실 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그들 스스로 즐거운 소비 생활로 위로할 것이다. 더 나아가 현대 사회는 다양한 정치적 갈등 속에서 공동체(커뮤니티)는 가상의 의미로, 상상된 채로 머물고, 어쩌면 현대인들 대부분은 불법체류자가 되고 있는 건 아닐까. 


현대국가는 '무국적자들 stateless persons', 불법체류자들 sans papiers 그리고 살 가치가 없는 삶unwert Laben이라는 이념과 동시에 등장했다. 이것은 '호모 사케르homo sacre' 즉, 인간의 법과 신의 법의 한계 밖으로 내던져진 인간은 누구든 면제시키고 배제할 수 있으며, 어떤 법도 적용되지 않는다. 또한 어떤 윤리적 가치나 종교적 의미도 없기 때문에 목숨을 빼앗아온 어떤 벌도 받지 않는 존재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주권자의 권리를 궁극적으로 체현하고 있는 자들이다. 바로 이들이 후대에 환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78쪽 


현대 소비 사회의 사랑, 성, 가족, 사회와 도시를 절망적으로 진단하고 있지만, 그 지점에서 딱 멈춘다. 대안이나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할 뿐, 그저 절망할 뿐이다. 책 후반 칸트를 언급하지만, 칸트에 관심을 기울일 정도가 될 사람이 얼마나 될까. 


지그문트 바우만의 인터뷰 기사를 여러 번 읽었으나, 그의 책은 이번이 처음이다. 초반 잘 읽히지 않았으나, 중반이 지나자 술술 읽혔다. 대체로 어딘가가 읽은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아마 현대 사회를 진단하는 어조가 대부분 비슷하기 때문은 아닐까. 리처드 세넷의 초기 저작에서 풍기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후반부에서 칸트를 인용하는 건, 다소 의외였다. 하버마스에 대해선 이상주의적이라 여기는 듯하다.


책을 읽고 난 다음 바우만의 주저인 <<액체근대>>를 구하긴 했으나, 글쎄다. 도리어 장 보드리야르의 <<소비의 사회>>와 세넷의 <<공적 인간의 몰락>>을 다시 읽을까 생각했다. '러브'라는 단어로 인해 사랑에 대한 철학적 이론적 분석이라고 오해하지 말자. 책은 읽을 만 한데, 이 책보다는 바우만의 다른 책을 먼저 읽는 것이 바우만을 아는 데 더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다 읽고 난 다음 드는 기분은 꽤 절망적이라는 사실은 알아두어야 할 것이다. 



리퀴드 러브 - 10점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권태우 & 조형준 옮김/새물결

Comment +0


<<Axt>>를 가끔 사서 읽는다. 얼마 전에 한 권 샀다고 생각했는데, 작년 겨울에 산 것이었다. 그 사이 시간이 이렇게 흘러가버렸다. 아. 


데이비드 밴David Vann이라는 미국 소설가의 인터뷰가 실렸다. 그의 번역 소설을 보긴 했지만, 읽진 않았다. <<Axt>>라는 잡지가 출간되었을 무렵 자주 사서 읽었으나, 지금은 거의 사지 않는다. 사지 않는 이유는 단순하다. 사놓고 읽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다른 읽을 것들이 너무 밀려있기 때문에. 좋은 잡지이긴 하지만. 


데이비드 밴이라는 소설가와의 인터뷰 중 흥미로운 몇몇 구절을 옮기고 메모해둔다. 흥미로운 관점이다. 풍경 묘사와 가족 이야기. 소설을 쓰는 이들에겐 꽤 유용한 조언이 될 수도 있겠다.  


"나는 소설을 쓸 때 항상 인물과 장소에 집중한다. 인물의 정신은 대체로 풍경 묘사를 통해 그려지는데, 이는 내면의 삶을 발견하는 간접적인 방법이다. 책의 후반에서는 아버지가 주변의 숲을 어떻게 바라보느냐를 통해 아버지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했다. 또한 소설에서 인물은 드라마를 통해, 즉 엄청난 압박에서 벗어날 수 없을 때 우리가 서로에게 어떤 말과 행동을 하는지를 통해 드러난다. 우리가 어비지에 대해 아는 것은 대부분 아들과 주고받은 말과 행동을 통해서다." 


"나는 학생들에게 "가족을 제단에 올려놓고 도끼를 휘두르라"라고 말한다. 나는 그리스 비극을 쓰는데 그리스인들은 가족이 우리를 만들고 망가뜨린다는 사실을 2500년 전에 이미 알고 있었다. 현대의 치유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우리가 어떻게 해서 망가졌는지 이해하지 않고서는 다시 온전해질 수 없다. 이렇게 생각해보라. 책은 의식이 없지만 살아있으며 이 책이 무언가를 하려 한다고 말이다. 작가의 첫째 임무는 책이 하려는 일을 방해하지 않는 것이다. "


"영국과 미국의 문학 시장은 정말이지 전혀 다르다. 영국에서는 주목받는 책의 범위가 넓으며 다양한 주요매체(BBC 프로그램, 여러 신문과 집지, 문학 축제 등)에 서평이 실린다. 미국은 인구가 더 많지만 문학 시장은 더 협소하다. 문학 작품을 다루는 매체는 놀랄 만큼, 부끄러울 만큼 적다. 서평으로 책 판매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신문은 오직 하나, <<뉴욕 타임즈>> 뿐이다. <<워싱턴 포스트>>같은 신문에서 내 책을 극찬했는데도 미국 내 판매량에는 조금도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애석한 일이다."


"내가 물려받은 유산은 두 가지다. 나는 그리스 비극을 쓰는 신고전주의 작가다. 내가 그리는 인물은 무의식적이고 통제할 수 없는 행동을 하며,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입힌다. 또한 나는 미국의 풍경 묘사 전통에 속해 있다. 외부의 자연 풍경을 묘사하면서 인물의 내면을 드러내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기본적으로 풍경을 통해 그리스 희곡을 쓰는 작가다. 풍경 묘사 글쓰기의 모범을 보여주는 최고의 작품으로는 코맥 매카시의 <<핏빛 자오선>>, 애니 프루의 소설, 매릴린 로빈슨, 토니 모리슨, 플래너리 오코너, 캐러신 앤 포터 등이 있다. 하지만 매카시와 프루는 드라마와 비극에서는 죽을 썼다. 오코너는 인물 간의 극적 갈등을 그리는 솜씨가 최고다." 

- <<Axt>>(2017. 11/12)  중에서 





Comment +2


행복한 그림자의 춤 Dance of the happy shades

앨리스 먼로 Alice Munro (지음), 곽명단 (옮김), 문학에디션 뿔, 2010


앨리스 먼로. 작가로 데뷔한 직후의 사진으로 추정된다.



두 번째로 읽은 앨리스 먼로의 단편소설집. 

1968년에 출간된 그녀의 첫 단편집. 

'옮긴이의 말'에서 옮기자면, '여러 해 동안 출판사에서 퇴짜를 맞았다'는 소설집.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녀에게 문학적 명성을 안겨준 책이다.

젊었던 그녀가 쓴 단편들이 모인 책이다.


로이스는 치맛자락을 떨어뜨리고 손바닥으로 내 따귀를 후려쳤다. 나를, 아니 우리 둘을 건져준 따귀였다. 그제야 비로소 우리가 한바탕하고야 말겠다고 내내 벼르고 별렀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 156쪽 


이 짧은 문장만으로 이 소설집, 혹은 이 단편, <태워줘서 고마워 Thanks for the Ride>를 전달하긴 어렵겠지만, 보이지 않는 내일보다 지금, 당장, 오늘 밤을 쓸쓸하게 보내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젊음들이 서로의 아픔을 드러내지 않은 채, 보이지 않는 갈등을 해소하는 장면으로는 최고가 아닐까. 


1950~60년대 캐나다의 작은 도시들, 어쩌면 그보다 더 작은 마을들을 배경으로 앨리스 먼로는 누구나 겪게 되는 일들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전에 읽었던 그녀의 단편집에선 우리의 관계에 집중하고 있다면, 이 소설집에선 성장하면서 결국 홀로 부딪히며 극복하게 되는 이야기들을 담고 있었다. 


어쩌면 먼로의 경험담이 묻어나온 건 아닐까. 그래서 상대적으로 다른 소설집에 비해 더 쓸쓸하고 외롭고 거칠고 황량하다. 누군가의 죽음을, 누군가가 내 곁을 떠나가거나, 그래서 결국 실수하게 되고 후회하고 아파한다. 적당한 착각과 위로가 있기도 하지만, 그것이 거짓임을 아는 까닭에 독자들은 이 이야기의 결말을 알거나, 알게 될 것이다. 


아니면 누군가는 자신의 옛 기억을 떠올릴 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말인데, 가끔 대도시에서 태어나 대도시에서 살다가 대도시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이들의 감수성이 궁금하기도 하다. 앨리스 먼로의 감수성은 지방 중소 도시의 그것이다. 한 두 명만 건너면 다들 아는 어떤 공간. 그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들. 결국엔 포기하거나 잊거나 모른 척하거나, 그러면서 인생이 내미는 손을 잡고 살짝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석양을 행복하게 바라본다고나 할까. 결국 아프지만, 아팠지만, 지금 옆에 누군가 있긴 하니까. 앨리스 먼로의 소설이 가진 장점이다. 그래서 다 읽고 난 다음 쓸데없이 우울해지거나 시니컬해지지 않는다. 어쩌면 어느 소설보다 더 산뜻하게 잠자리에 들 수 있지도 모른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어'하면서. 








행복한 그림자의 춤 - 10점
앨리스 먼로 지음, 곽명단 옮김/뿔(웅진)


Comment +0



면도

안토니스 사마라키스 Antonis Samarakis (지음), 최자영(옮김), 신서원, 1997 




전후 그리스 소설이 번역된 것이 드물었던 탓에 1997년에는 꽤 주목받았던 듯싶은데, 지금은 거의 읽히지 않는 듯 싶다. 번역자 또한 소설을 전문적으로 번역하는 이라가 아닌 탓에, 번역된 문장이 매끄럽게 읽히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마라키스를 한국에 소개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찬사를 받아야 할 것이고 사라마키스의 소설은 다소 거친 번역 속에서도 유쾌하고 감동적이며 왜 뒤늦게 이 소설을 읽었을까 하는 후화까지 하게 만든다. 


전후 그리스의 대표적인 현대 소설가. 그러나 그리스는 고대의 그리스가 아니다. 마치 이집트처럼. 서구 문명의 시작이었으나, 20세기 그리스는 격랑의 현대사 중심에서 벗어나오지 못한 채 침몰과 구조를 번갈아 가며 겨우겨우 버티고 서 있다. 그 현대사를 고스란히 겪고 이를 소설로 쓴 안토니스 사라마키스. 그는 20세기 초반 유럽을 비극적으로 물들인 전체주의를 극도로 혐호하며 문학의 가치와 자유의 중요함을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그래서 이 책 <<면도>>의 초반 몇 편의 단편들보다 후반 단편들 - 정치적 메시지가 분명하고 노골적인 - 이 훨씬 감동적이다. 아마 그의 생애 전반이 전체주의와 독재 정권과의 갈등과 싸움의 연속이어서 그럴 지도 모르리라. 


디미트리스가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 묻힌다. 모두들 달려들어 그를 에워쌌다. 그를 가슴으로 껴안는다. 먼저 그의 어머니 엘레니. 너무 꼭 껴앉은 탓에 저고리 단추 하나가 수갑에 끼어 떨어져 나갔다. 그 다음 모두들, 모두 같이, 어떤 이는 안고, 어떤 이는 입맞춤하고, 어떤 이는 말을 건넨다. 

"우리 디미트리스!"

기쁨이 가득한 이런 장면을 나는 일찍이 본 적이 없다. 환희에 찬 인생. 모두 검은 옷을 입고 춤을 춘다. 모두들 무엇 때문에 오늘 저녁 여기 모였는지를 잊어버렸다. 당연히 내가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모두 잊어버렸다. 내 마지막 장례를 위해 이리로 왔다는 것을. 내 아들 디미트리스가 내 것을 훔쳐가 버렸다. 그런데 나도 나 자신을 잊어버린다. 내가 이미 죽었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모두가 나누는 기쁨에 동참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본다. 육칠 미터 저만치 떨어진 곳. 저 쪽에 서서 그를 쓰다듬고, 웃고, 눈짓으로 가슴으로 말을 건넨다. ... 잘하는 일이다! 나는 괜찮다. 나 에브리피디스는 아무 것도 아니다. 하나의 보잘 것 없는 주검일 뿐. 그러나 저기 저 디미트리스. 내 아들 디미트리스는 삶. 바로 그것이다. 삶의 아름다움이요, 희망이다. 언젠가 우리의 삶이 더 나은 것으로 탈바꿈하고 조금이라도 덜 비인간적이 될 것이라는 희망. 

- 137쪽 ~ 138쪽 


반정부 투쟁을 하다가 잡혀들어간 아들. 그 아들이 수갑을 찬 채 뒤늦게 아버지의 장례식에 온다. 아버지의 관 뚜껑은 닫히지 않았고 사람들은 기다리던 그 젊은이를 반갑게 맞이한다.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슬픔은 사라지고 미래의 희망이 싹튼다. 다시 구치소로 가게 될 터이지만, 디미트리스는 괜찮다. 이미 죽은 아버지는 그 아들을 보며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도 잊은 채 기뻐한다. 그가 삶이며 희망이라며. 짧은 단편의 한 부분이나, 사마라키스의 소설 세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어쩌면 안토니스 사라마키스의 삶도, 문학도 그랬는지도 모른다. 전후 그리스 소설가들 중에서 가장 널리 해외에 알려진 작가이기도 한 그는 현대 유럽의 참여 문학이 어떤 것이 알려준다. 실존주의 소설가들이 개인의 고독과 사색에 파묻혀 결국엔 누보로망으로 이어졌으나, 안토니스 사라마키스는 우리가 왜 사는지, 우리의 미래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이름없는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드러낸다. 


그래서 그는 삶의 가치와 죽음에의 거부를 주장한다. 


"아무 가진 것이 없다 해도, 세상 어딘가에는 당신이 조금이라도 덜 불행하게 해주고, 조금이라도 외로움을 덜어줄 수 있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그 때문에 당신은 존재할 가치가 있으며, 아무도 아무것도 누구도 당신을 부정하지 못한다!"

"당신은 스스로 죽을 권리가 없다! 당신이 조금이라도 덜 불행하게 해주고, 조금이라도 외로움을 덜어줄 수 있는 사람은 언제나 있다. 단 한 사람이라 해도 그는 당신을 삶으로 끌어낸다. 삶과 동시에 타인과 관계를 맺게 한다. 단 한 사람이라 해도 그는 당신이 삶의 가치를 확인하고 의지할 곳이다. 이 단 한 사람이야 말로 당신에게 살 가치를 부여하는 탯줄이다. 고통과 진부함, 걱정과 슬픔과 기쁨이 엇갈리는 지금 이 곳의 일상 속에서 말이다. 그렇다. 당신은 죽음을 택할 수가 없다! 죽음을 택할 권리가 없는 것이다! 한 사람과 또 한 사람, 두 사람만 있으면 삶은 의미를 갖는다. 두 사람만 있으면 [죽음을] '거부'할 가치가 있다."

- 안토니스 사마라키스, <<거부>> 중에서 


그리고 대화를 나누며 앞으로 전진해야 하고 문학은 가치있다고 주장한다. 어쩌면 문학의 내부로 침잠해 들어간 현대 문학의 주된 경향에 반발하고 전통적인 견지에서의 문학의 가치를 말한 보기 드문 소설가였던 셈이다. 그는 정치적 투쟁을 주장하지 않는다. 그는 우리의 삶을, 고통을, 미래를, 사랑을 이야기한다. 이 소설집의 어느 단편에서는 자살을 결심한 어떤 이가 끝내 자살하지 못하는 에피소드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 이유는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건물 바로 밑 거리를 가득 메운 반 정부 시위대 때문이기도 하고 그 아파트의 이웃 때문이기도 하다. 결국 우리는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고 그 연결은 한 개인의 운명이 그 한 사람의 몫이 아닌 여러 사람들과 연결된 어떤 것임을 사라마키스는 우회적으로 드러낸다. 


문학은 지고의 위안이다. 인간의 광기와 생존 경쟁의 거칠고 암담한 지평을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진부한 일상과 사회생활의 혼선과 갈등 속에서 문학은 오로지 위안을 가져오고 신비로운 환희로 우리에게 용기를 심는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타인과의 사이에 깊디깊은 이해의 다리를 잇는 것이다. 독자듥돠 말이다. 문학은 대화의 시작이다.

가치있는 문학은 독백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독자와의 연결고리다. 문학은 친구가 내미는 손이다. 따라서 응답 없이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  문학과 예술의 마력은 타신의 손, 독자의 손이 당신 손에 뜨거운 우애로 와닿을 때 나타난다. 문학은 밤의 메이라이며 암속 속에 외침이다. 메이라가 없으면 모든 것은 무의미하며 미완성일 뿐이다. 

- 234쪽 


책 말미에 실린 사라마키스의 자서전은 현대 소설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문학이란 어떤 것이어야 하며, 우리 삶은 어떻게 흘러왔는가를 한 번 돌이켜보게 만드는 글이 될 것이다. 헌책으로는 쉽게 구할 수 있으니, 구해서 읽어보길 권한다. 그리고 새로 출간된 신간으로도 구할 수 있다. 나 또한 사라마키스의 다른 소설들도 읽을 생각이니까. 




안토니스 사라마키스 기념 우표. (현대 그리스 문학에서의 사라마키스의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아래 책은 역사 관련 학술서적을 전문적으로 내는 신서원에서 1997년에 전집 형태로 번역 출판된 이후 절판되었다. 그리고 2006년에 다시 <<손톱자국>>이라는 제목으로 그림글자라는 출판사를 통해 두 권으로 다시 출간되었고 지금도 새 책으로 구할 수 있다.  

면도 - 8점
안토니스 사마라키스 지음, 최자영 옮김/신서원



Comment +0



언어 공부 How I Learn Languages 

롬브 커토(지음), 신견식(옮김), 바다출판사, 2017 



아무도 내 말을 못 알아들으니 내가 여기서 야만인이다(Barbaus hic ego sum, quia non intellegor ulli). 

- 오비디우스 




설마 이 책을 통해 외국어를 잘하게 되는 숨겨진 비결, 혹은 공부하는 방식이나 자료를 얻으려고 한다면 오산이다. 도리어 저자는 정공법을 이야기한다. 가령 '반복은 공부의 어머니다Repetitio est mater studiorum'같은 라틴 격언을 인용하니까.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언어 공부에 유용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도리어 어떤 이들에겐 이 책은 언어 공부를 다시 시작하게 만드는 열정적 권유가 될 수도 있다. 왜냐면 언어에는 천재가 없다고 말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언어 공부를 권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스스로 '언어 천재'라고 믿어라고 말한다. 


책은 의외로 짧고 쉽게 읽힌다. 헝가리인인 롬브 커토는 언어를 공부해온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하면서 언어 공부에 대한 간단하지만, 중요한 방향을 이 책을 통해서 이야기하며 자신감을 잃어버리지 말기를 원한다. 이런 측면에서 언어를 사랑하고 언어를 배우길 갈망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은 귀중한 선물이 될 수도 있겠다. 나 또한 몇 년째 영문학을 공부하면서, 왜 늘지도 않는 영어를 하고 있을까 스스로 묻곤 하지만, 영어책 읽는 게 때론 너무 재미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나, 독해가 일상 영어 회화에 도움이 안 된다는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저자는 이것저것 다 하라고 말한다. 도리어 독해를 언어를 배우는 첫 번째 과정에 넣기까지 한다. 시작은 제대로 된 셈이지만, 내가 거쳐온 학교 교육은 외국어에 대한 열정을 불어넣기에 부족했던 것이다. 하긴 중고등학교 과정의 어느 교과목인들 안 그럴까. 모든 교과과정이 학생들에게 열정을 불어넣기 보다는 진정한 공부와 연구로부터 멀리 떨어지게 만들고 있었으니까. 


롬브 커토는 책 말미에 언어공부를 위한 열가지 규칙을 언급한다. 이 열가치 규칙(십계명)만 잘 지켜도 언어 공부의 성과는 한결 좋아질 듯 싶다. 나부터 실천해보기로 할까. 


하나. 

언어를 매일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보내라. 시간이 짧다면 최소한 10분짜리 독백을 만들어보라. 이 점에서는 아침 시간이 특히 소중하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말을 잡는다!

둘. 

학습을 향한 열정이 너무 빨리 식어버린다면 공부를 너무 몰아붙이지 말되, 한 번에 그만두지도 마라. 다른 방식의 공부로 옮겨가라. 예컨대 독해를 하는 대신에 라디오를 듣거나 작문을 하는 대신에 사전을 뒤적이거나 해도 좋다. 

셋. 

말을 고립된 단위로 익히지 마라. 그보다는 문맥 속에서 익혀라 

넷. 

교재 구석에 쓸만한 표현을 적어놓고 대화에서 '미리 만들어 놓은 요소'로 사용하라 

다섯. 

뇌가 피로에 지쳐있다면 번쩍하고 지나가는 광고 표지판, 현관의 번지수, 엿들은 대화의 단편적인 내용 등을 재미로 번역해보라. 휴식이 되고 긴장이 풀린다 

여섯. 

교사가 고쳐준 것만 암기하라. 교정 및 수정을 받지 않았다면 자기가 쓴 문장을 계속 공부해선 안 된다. 실수가 머리 속에 뿌리 내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혼자 공부를 한다면 암기하는 각각의 문장은 오류의 가능성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는 규모를 유지해야 한다. 

일곱. 

관용적 표현은 늘 일인칭 단수로 암기하라.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I am only pulling your leg."(나는 너에게 장난을 치는 것 뿐이야)

여덟. 

외국어는 성곽이다. 전방위에서 포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신문, 라디오, 더빙되지 않은 영화, 기술 문서 혹은 과학 논문, 교재, 이웃의 방문객 등 모든 것을 활용하라. 

아홉. 

실수가 두렵다고 말하는 것을 꺼리지 말되, 틀린 것은 대화상대자에게 고쳐달라고 요청하라. 상대가 정말로 고쳐줄 가능성은 희박하겠으나 도와줄 때 혹시라도 짜증을 내면 곤란하다는 것을 꼭 명심해야 한다. 

열. 

스스로 언어천재라고 굳게 믿어라. 실은 그 반대라는 게 드러난다면 통달하려던 그 성가신 언어나 여러분의 사전들 혹은 이 책에 불만을 쌓아두라. 스스로를 탓하지 마라. 

(198쪽 - 200쪽) 



언어 공부 - 10점
롬브 커토 지음, 신견식 옮김/바다출판사

Comment +0



Art History - a very short introduction

Dana Arnold, Oxford, 2004 




그러고 보니, 원서를 통독한 것은 참 오랜만이다. 그만큼 읽기 쉬운 평이한 문장으로 되어있기도 하고 책 제목 그대로 introduction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부분 내가 알고 있던 내용이거나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이 책의 장점은 다양한 관점에서 미술사(art history)를 조망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술사와 예술 비평에 대한 비교나 예술작품감정(Connoisseurship)에 대한 언급도 있으며, 신미술사(New art history)나 철학사의 영역에서 바라보는 예술작품, 또는 예술사도 포함시키고 있다. 놀라운 것은 이러한 설명들이 명확하고 단순하게 언급되어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데리다의 <<The Truth of Painting>>를 설명하기도 하고 도상해석학이 등장하기도 한다. 약 100페이지 남짓한 짧은 책에서 이렇게 많은 것들을 언급하고 소개하고 있다는 점에서 Dana Arnold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책의 목차는 아래와 같다. 


What is art history? 

Writing art history 

Presenting about art history

Reading art

Looking art 


이 책의 목적은 명확하다. 


This book is intended as an introduction to the issues and debates that make up the discipline of art history and that arise from art history's central concerns - identifying, categorizing, interpreting, describing, and thinking about works of art. (이 책은 미술사라는 학문을 구성하는 동시에, 미술사의 중점 관심사들 - 예술작품들에 대해 정의하고, 분류하며, 해석하고 묘사하고 사유하는 것 - 로부터 생겨난  쟁점들과 논쟁들을 소개하기 위해 씌여졌다)


하지만 예술작품만 보자면, 어쩌면 이 책은 필요없을 지도 모르겠다. 


This kind of visual material can have an autonomous existence - we can enjoy looking at it for its own sake, independent of any knowledge of its context, although of course viewers from different time periods or cultures may see the same object in contrasting ways. (이러한 종류의 시각적 소재들은 자율적인 존재를 가질 수 있다 - 우리는 그것들의 콘텍스트(배경)에 대한 어떤 지식들에 의지하지 않고, 심지어 다른 시대나 다른 문화권에서 온 관람자가 똑같은 대상을 전혀 다른 반대의 방향의 보게 될 지라도, 작품 그 자체로 보는 것을 즐길 수 있다.)


그리고 난 다음 뒤따르게 되는 질문들, 누가 만들었지? 이 작품의 주제는? 언제 만들어진 걸까? 등에 대한 일련의 활동이 모여 예술사라는 학문이 된 것일지도.  


미술사에 관심있는 이들에게 이 책은 추천할 만하다. 다수의 도판이 나오며 미술사의, 최신 논쟁이나 주제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에 번역된 여타 책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최신의 경향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그리고 페미니즘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는데, 아래 글은 꽤 의미심장해 옮겨본다. 


The Dinner Party

Judy Chicago

1979, 브룩클린 미술관 소장 

https://www.brooklynmuseum.org/eascfa/dinner_party/home (The Dinner Party에 대한 다양하고 자세한 자료를 읽을 수 있다) 


My idea for The Dinner Party grew out of research into women's history that I had begun at the end of the 1960s ... the prevailing attitude towards women's history can be best summed up by the following story. While an undergraduate at UCLA, I took a course titled the Intellectual History of Europe. The professor, a respected historian, promised that a the last class he would discuss women's contributions to Western thought. I waited eagerly all semester, and at the final meeting, the instructor strode in and announced: 'Women's contributions to European intellectual history: They made none.'

I was devastated by his judgement, and when later my studies demonstrated that my professor's assessment did not stand up to intellectual scrutiny, I became convinced that the idea that women had no history - and the companion belief that there had never been any great women artists - was simply a prejudice elevated to intellectual dogma. I suspected that many people accepted these notions primarily because they had never been exposed to a different perspective.

As I began to uncover what turned out to be a treasure trove of information about women's history. I became both empowered and inspired. My intense interest in sharing these discoveries through my art led me to wonder whether visual images might play a role in changing the prevailing views regarding women and women's history. 

- Judy Chicago, The Dinner Party (1996) pp.3-4 (25쪽 - 26쪽) 




* Art History를 미술사로 옮기고 art work를 예술작품으로 옮겼는데, 이는 미술작품이라고 하면 painting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서였다. 






Comment +0



벌거벗은 CEO (CEO: The Low Down on the Top Job)

케빈 켈리(지음), 이건(옮김), 세종서적, 2010년 




일반적인 궤도를 그린 직장 생활이라기 보다는 중구난방으로 부딪히며 이 일 저 일 해온 탓에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를 가지기도 했지만, 지금은 마음을 접었다. 나만의 사업을 한다는 건 그만큼 어려운 종류의 일임을 새삼 깨닫은 탓이기도 하고 살짝 포기한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류의 책이 도움이 안 되는 건 아니다. 탑 레벨에서의 의사결정 구조나 리더십에 대해선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만 조직 생활이 가능하고 중간 관리자로서의 모범을 보일 수 있다. 


글로벌 헤드헌팅 회사의 CEO인 케빈 켈리는 자신이 만나고 이야기를 나눈 CEO들을 바탕으로 한 권의 책을 쓴다. CEO란 누구이고 CEO는 어떤 일을 하고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를. 막상 읽어보면 여느 경영 서적과 비슷하기도 하지만, CEO를 꿈꾸는 이들에게 약간의 도움은 될 듯 싶다. 


물론 CEO의 역할에 대한 편견이 반영되어있을 수도 있다. 이 중 첫 번째는 의사소통이다. 의사소통은 오해가 발생하기 쉽지만, 그래도 제대로 관리해야 하는 요소이다. 두 번째는 보상이다. 금전적인 보상에 그치지 않고 모든 직원에게 긍지를 심어주어 매일 아침 업무 의욕을 느끼게 해야 한다. (... ...) 변화 역시 중요한 주제이다. 찰스 다윈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가장 힘센 종이 생존하는 것이 아니고, 가장 똑똑한 종이 생존하는 것도 아니다. 변화에 가장 잘 적용하는 종이 생존한다."

결국 변화를 관리하고 맞서며 소통하는 방법이 관건이다. (10쪽 ~ 11쪽) 


새로 CEO가 되고 CEO로서 어떤 역할을 중요하게 처리해야 하는가를 이야기한다. 


취임 초기 단계에 CEO가 집중해야 할 것은 다음 여섯 가지이다. 

1. 사기 진작 Mastering morale: 사람들의 감정을 파악한다. 

2. 대화 Talking the talk: 끊임없이 세심하게 의사소통한다.

3. 최고 경영팀 구성 Assembling the team: 리더십은 팀워크이다. 

4. 실행 Action: 직중에서는 실행이 중요하다. 그러나 집중하라. 단지 실행을 위한 실행보다는 신중한 실행이 낫다. 

5. 일화 만들기 Writing your own legend: 상징적 행동을 입지를 강화할 수 있다. 

6. 기업문화 바꾸기 Culture check and change: 먼저 기업 문화를 이해한 다음에 바꾸어야 한다.

(79쪽)


그러고 보면 조직의 리더가 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모든 의사결정에 다 관여하거나 책임을 지면서 이사회나 대주주와의 정치적 우호 관계로 제대로 설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CEO가 되면 맞부딪히게 되는 여러 문제들과 해결안 등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대체로 평면적이거나 예상되었던 문제이거나 해결책이기 때문에 다소 독서의 긴장이 떨어지기도 한다. 더구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의 '디디'와 '고고'를 매춘부로 옮긴 건 치명적이다. 누구의 잘못이든 간에. 편집 과정 상의 실수는 책 전체적인 질이나 분위기까지 망친다. 그럼에 불구하고 리더십 전문가로 널리 알려진 워렌 베니스의 '핵심성과지표'는 리더가 조직을 운영할 때 관심을 기울여야 할 요소를 한 눈에 정리하고 있어, 옮겨본다. 



워렌 베니스의 핵심성과지표 Key performance indicators 

1. 조직이 잘 정렬되어 있는가? 이는 직원 전체가 성공의 기준을 동일하게 생각하느냐는 뜻이다. 

2. 적응력이 있는가? 다시 말해서 복원력이 있는가? 미래를 내다보면서 끊임없이 변화에 적응해야 하며, 거듭된 성공이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된다.

3. 재무실적이 있는가? 시가총액이든 투자수익률이든, 기업 인수나 매각의 성패는 상관없다. 재무 실적의 척도로 무엇을 사용하는, 평가에 반영해야 한다.

4. 미래의 리더 집단을 양성하고 있는가? 멘토제도mentoring system를 유지하고 있는가? 

5. 직원들이 의욕적이고 활기차며 업무에 몰입하고 권한은 있는가? 

6. 조직이 투명하고 개방적인가

7.연구개발에 자원을 얼마나 투입하는가? 

(87쪽 ~ 88쪽) 



전체적으로 서술은 평이하고 쉽다. 짧고 간결하기 때문에 읽기 부담 없다. CEO에 관심 있는 이들은 한 번 읽어도 나쁘지 않을 듯 싶다. 






벌거벗은 CEO - 8점
케빈 켈리 지음, 이건 옮김/세종서적

Comment +0




김석철의 세계건축기행

김석철(지음), 창작과비평사, 1997년



출간된 지 20년이 지난 책이라니, 새삼스러웠다. 그러나 이 책에 소개된 건축물들은 사라지지 않았고 그 이야기들도 변하지 않았으니, 좀 오래된 책이라고 그 재미와 감동은 그대로일 것이다. 또한 건축가인 저자의 글솜씨도 나쁘지 않고 내용은 어렵지 않으며 짧은 분량으로 상당히 많은 건축물들과 건축 공간을 이야기하고 있어 여행을 좋아하거나 건축사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겐 상당히 실용적이기도 하다. 


나름 건축물들에 대해 조금 알고 있다는 나 또한 이 책을 통해 간과했던 몇 개의 건축물들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이세신궁이나 자금성 같은. 


이세 지역의 신궁은 일본의 신성함과 국가의 단일성을 과시하기 위해 기원전 1세기경에 계획되었다. (... ...) 그 옛날의 목조건물이 지금까지 전해질 수 있는 것은 식년천궁(式年遷宮)의 전통 덕분인데, 이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건물을 다시 짓고 신을 옮기는 의식을 말한다. 이세 신궁의 경우 20년마다 천궁을 했는데 천궁을 할 때는 이전 건물을 해체하고 그 터를 남겨둔다. (98쪽) 


2000여년전 지어진 목조건물이 아직도 그대로 지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더구나 이 건물을 짓기 위해 해마다 나무를 심고 있으며, 그렇게 심어진 나무는 200년, 300년 후 새로 지어질 이세신궁을 위해 씌여질 것이라고 한다(아마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한 두 번쯤은 이세 신궁을 애니메이션 안에서 보았을 것이다). 가끔 일본이 놀라운 것은 이런 면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새로 지은 건물(아래쪽)과 곧 헐릴 낡은 건물(위쪽) - 출처: 나무위키

(https://namu.wiki/w/%EC%9D%B4%EC%84%B8%EC%8B%A0%EA%B6%81)


베이징의 자금성은 명나라와 청나라 황제가 머물던 곳이다. 현재의 자금성은 그 규모나 크기 면에서 여느 나라와 궁궐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서, 자연스럽게 우리의 경복궁을 떠올리면 다소 기분이 상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도 그럴 것이 자금성은 그대로 보존된 반면 경복궁은 그 원형이 많이 훼손되고 다른 궁궐과도 떨어져 조선 시대의 모습 그대로라 보기 어려운 면도 있어 문화재나 역사적 건축물에 대한 중요성을 깨닫게 한다. 


자금성은 명대의 성조가 20~30만 명의 민간인과 군대를 동원해 1407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14년에 걸쳐 건설한 황궁이다. 청조에는 부분적인 중건과 재건이 있었을 뿐 전체적인 배치는 변동이 없었다. '천하의 모든 노력을 다하여 황제 한 사람을 받든다'라고 할 만큼 500여 년간 부단히 고쳐 지어졌고 인력과 물력도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소요되었다. (232쪽) 



자금성  (출처: https://en.wikivoyage.org/wiki/Beijing/Forbidden_City


자금성과 경복궁은 비슷해 보이나, 그것이 놓인 위치나 그것의 구조나 철학은 서로 다르다.  어쩌면 서로 붙어있었으나,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중국과 한국 상당히 다른 나라였음을 이 두 궁궐을 비교해봄으로서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조선조의 정도(定都) 당시의 기록을 보면 도시 설계과정의 기록이 모호해서 답답할 때가 많다. 한양의 도시 모델은 뻬이징이 아니라 <<주례>>의 <고공기>였다. 서울과 경복궁이 많은 부분에서 베이징과 자금성을 원형으로 한 것은 사실이지만 당시 정도전 등은 단순한 모방이 아닌 <고공기>의 논리와 도가의 원리에 의해 한양을 설계하였으므로 실제의 도시와 건축은 다른 차원의 것이었다. 

베이징과 서울은 다른 도시이고 자금성과 경복궁은 여러 면에서 다르다. 건축형식에서도 공법은 같으나 건축미학에서는 독자의 모습을 갖고 있다. 자금성에는 인간이 만든 기하학과 빈 하늘만이 있는 반면 경복궁에는 북한산과 인왕산으로 이어지는 자연의 형국이 궁성과 하나가 되어있다. 자금성은 자연을 가지려 하고 경복궁은 자연과 하나가 되려고 한다. 자금은 스스로가 원점의 공간으로 주변의 자연에 상관하지 않는 독존의 질서를 가진 데 비해 경복궁은 주변의 토지형국과 자연의 흐름이 하나가 된 건축군을 이루고 있다. 자금성은 <<주례>>의 <고공기> 원리가 대공간군을 이룬 기하학적 질서의 공간이며 경복궁은 유교의 공간형식과 도가의 철학이 함께 한 유기적 질서의 공간이다. (238쪽 - 240쪽)

경복궁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EA%B2%BD%EB%B3%B5%EA%B6%81_%EC%A0%84%EA%B2%BD.jpg)


그 다음으로 르 코르뷔지에의 '유니테 다비타시옹'도 흥미로웠다. 우리나라의 주거를 지배하는 아파트의 초기 모델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 철학은 다 사라지고 공장스러움만 남아 흉물스럽기까지 한 한국의 아파트 건물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한다.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1887 - 1965)의 중후반기 대표 작품인 유니테 다비타시옹(Unites d'habitation)은 165m의 블록에 높이 56m의 단일 건물로 337개의 주거단위를 갖고 있다. 각각의 주거단위는 복층형태이며, 총 1800여 명을 수용하는 대규모 고층 집합주거이다. 특히 이 건물은 다음과 같은 그의 다섯 가지 건축원리를 잘 반영하고 있다. 첫째 개방된 지층 공간(필로티), 둘째 옥상정원, 셋째 자유로운 평면, 넷째 가로의 긴 창, 다섯째 자유로운 건물 정면 

이를 통해 벽이 건물의 무게를 지탱하는 기존의 조직적 구조물에서 탈피하여, 철근 콘크리트 기둥을 이용해 건물의 고층화와 구조적인 독립을 가능하게 했다. (280쪽) 


1997년과 달리 지금은 워낙 좋은 책들이 많이 출간되고 있기도 하거니와, 해외 여행이 일반화되어 이 책에서 언급되는 많은 건축물들을 실제로 본 이들이 예전보다 훨씬 많은 것이다. 다만 여행을 가기 전에 이런 책을 한 두 권 읽는 것이 좋을 듯하며, 이 책은 여러모로 상당히 유용한 책이다. 


오랜만에 르 꼬르뷔지에의 건물 사진을 보면서, 필로티 - 경주/포항 지진으로 널리 알려진 - 형식이 르 꼬르뷔지에의 창안임을 잊고 있었음을 알았다. 하긴 르 꼬르뷔지에의 필로티는 지층 공간의 자유를 위해 기획되었는데, 한국에서의 적용은 주차장이거나 통유리창으로 이루어진 커피숍이나 상점으로 활용되고 있으니... 르 꼬르뷔지가 지금 한국에 와서 저 무수한 빌라와 아파트 건물들을 본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 



김석철의 세계건축기행 - 8점
김석철 지음/창비

Comment +0



생각의 한계 On Being Certain 

로버트 버튼(지음), 김미선(옮김), 더좋은책 




사고는 항상 더 어둡고, 더 공허하고, 더 단순한 우리 감각의 그림자이다. 

- 니체 



책을 읽으면서 노트를 하고 노트된 것을 한 번 되집은 후 책 리뷰를 쓰면 좋은데, 이 책 <<생각의 한계>>는 완독한 지 몇 달이 지났고 노트를 거의 하지 못했으며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읽은 탓에 정리하기 쉽지 않았다. 특히 종교에 대한 부분을 읽을 땐 꽤 흥분하면서 읽었는데, 기억나지 않는다. 하긴 로버트 버튼도 우리의 기억이 변화하고 조작된다는 사실을 이 책 초반에 언급하고 있긴 하지만. 


이 책의 주제는 명확하다. 우리가 안다라고 할 때, 그것은 감각적인, 일종의 느낌일 뿐이지, 흔히 말하는 바 논리적인 것이거나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느낌feeling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편의상 나는 거의 동류에 속하는 확신certainty, 옳음rightness, 신념conviction, 맞음correctness의 느낌들을 한 덩어리로 모아 '안다는 느낌feeling of knowing'이라는 용어로 부르기로 했다. (19쪽) 


도대체 우리가 안다고 할 때 아는 건 무엇일까? 그리고 우리는 알아서 어떤 행동을 할까? 논리적 추론이라든가, 분석, 혹은 이성적 행동이라는 것은 존재할까? 이 책을 읽고 난 다음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일컬어 지는 사고나 행동도 실은 시시각각 변하는 감각적 경험에 의한, 일종의 경향일 뿐임을 알게 된다. 


프로야구 투수들이 던지는 공의 속도는 시속 130에서 160킬로미터에 달한다. 공이 떠나는 순간부터 본루를 지나는 순간까지 걸리는 시간은 대략 0.380에서 0.460밀리초이다. 공이 떠나는 상이 망막에 도달하는 순간부터 스윙이 시작하는 순간까지 최소 반응 시간은 대략 200밀리초이다. 스윙에는 160에서 190밀리초가 더 걸린다. 반응시간과 스윙시간을 합친 시간은 대략 속구가 마운드를 떠나 본루까지 오는 데 걸리는 시간과 맞먹는다.(107쪽)


생각할 틈이 없다. 그냥 무턱대로 야구배트를 휘두르는 거다. 일종의 본능적이거나 감각적인 것이다. 


저자 로버트 버튼은 다양한 관점에서, 많은 이들의 견해들을 인용하면서 상당히 설득력 있게 우리가 안다고 할 때의 그 한계를 명확하게 드러낸다. 출간된 후 상당한 주목을 받았던 이 책은 우리의 믿음이나 확신, 소위 '이성'이라고 말하는 것에 대한 맹신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말한다. 


이성은 전통적으로 대개 생각하듯이 몸에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뇌, 몸, 그리고 신체적 경험의 본질에서 일어난다. ... ... 우리로 하여금 지각하고 돌아다닐 수 있게 해주는 것과 똑같은 신경 기제와 인지 기제들이 우리의 개념 체계와 이성의 양식들도 만들어낸다. 이성을 이해하려면, 우리의 시각계, 운동계, 그리고 신경결합에 바탕이 되는 일반적 기제들의 세부사항을 이해해야 한다. 이성은 우주의, 또는 신체에서 분리된 마음의 초월적 특성이 아니다. 그것은 결정적으로 우리 인체의 특색에 의해 우리 뇌가 가진 신경 구조의 놀라운 세부 사항들에 의해, 우리가 세계 속에서 날마다 하는 특정한 움직임에 의해 형성된다. 

몸에서 분리된 사고는 생리학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신체적, 정신적 감각과 지각에서 자유로운, 순수하게 이성적인 마음도 마찬가지다. 

- 조지 라코프George Lakoff, 마크 존슨Mark Johnson, <<실물로 본 철학: 체화된 마음과 서구 사상에의 도전 Philosophy in the Flesh: The Embodied Mind and its Challenge to Western Thought>> 중에서 


결국 우리는 매사에 조심해야 된다. 신중해야 하며 끝없는 회의주의적 태도를 견지해야 된다. 그러나 그것이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부정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역을 전혀 알지 못하기에 그것을 고려한 채 조심스러운 회의주의적 삶을 살아야 된다. 


"나쁜 소식은 우리 자신을 알기가 어렵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제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단숨에 결론까지 도달하는 뇌의 영역인 적응 무의식adaptive unconscious에 직접적으로 접근할 있는 길은 전혀 없다. 우리 인간의 마음이 대부분 의식 밖에서 작동하도록 진화해왔고 ... ... 그러므로 무의식의 정신작용에 직접 접근하는 것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대개 우리의 자발적인 행동들은 우리가 의식적으로 일으키는 것 같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 티모시 윌슨Timothy Wilson, <<나는 내가 낯설다 Strangers to Ourselves>> 중에서 


아마 종교나 신앙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리처드 도킨스가 아무리 신앙이나 믿음에 대해서 부정적인 견지에서 공격하더라도 ... 


"공간과 시간이 경계가 없는 닫힌 곡면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은, 또 우주의 문제에서 차지하는 신의 역할에 대해서도 깊은 관련을 가지게 된다. ... ... 우주에 시작이 있는 한, 우리는 우주의 창조가가 있었다고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만약에 우주가 실제로 안전히 자급자족하고 경계나 끝이 없는 것이라면, 우주에는 시초도 끝도 없을 것이다. 우주는 그저 존재할 따름이다. 그렇다면, 창조자가 존재할 자리는 어디일까?" - 스티븐 호킹 (282쪽) 



저자 로버트 버튼의 홈페이지: http://www.rburton.com/






생각의 한계 - 10점
로버트 버튼 지음, 김미선 옮김/더좋은책




Comment +0




최초의 모험

헤르만 헤세(지음), 이인웅(옮김), 올재클래식스, 2018년 




"나는 작가의 역할이란 무엇보다도 회상시켜 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언어를 통해 무상하게 사라져 갈 일을 잊지 않고 간직하는 것이며, 말을 걸어 불러내고 사랑에 찬 서술을 함으로써 지난 과거의 일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그렇지만 옛날의 관념론적 전통에 따라 작가의 임무에는 어느 정도 선생님이나 경고해주는 사람이나 설교자로서의 기능이 결부되어 있다. 그러나 나는 이를 교훈을 준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언제나 우리 인생에 혼을 불어넣기 위한 독려의 의미로 생각하고 있다." 



"사물을 관조하는 일이란 연구하거나 비평하는 것이 아니다. 관조란 바로 사랑이다. 관조한다는 것은 우리 영혼의 가장 고귀하고 가장 소망할 만한 상태로서, 아무런 욕구가 없는 사랑을 하는 것이다." 



권두에 실린 역자의 헤르만 헤세 소개글에 인용된 위 두 문장은, 어쩌면 헤르만 헤세의 문학세계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는 듯 싶다. 10대 중반에 읽었던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1877 - 1962)를, 40대 중반이 되어 읽었다. 다시 읽었다. 아, 이 얼마나 아찔한 일인가. 





매일 아침 9호선을 타고 서쪽에서 동쪽으로, 저녁이나 한밤 중에는 다시 동쪽에서 서쪽으로. 단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정해진 동선을 따라 왼손에 최초의 모험을 들고 이동했다. 내가 맞이하는 매 순간은, 나에게 있어 익숙한 일상이지만, 최초의 순간이며, 어쩌면 모험과 같은 것이다, 수백년 전의 일상과 비교한다면. 


그러나 모든 것들은 식상해졌으니, ... ... 



루드비히는 연주를 계속했고, 그녀는 넓고도 검은 수면이 커다란 박자로 물결치는 것을 보았다. 거대하고 강력한 새 떼가 태고 시대처럼 침울하게 쏴쏴 날개소리를 내며 날아왔다. 폭풍이 둔탁하게 울리며, 때로는 거품이 이는 물보라를 공중으로 뿜어올렸는데, 물보라는 수많은 작은 진주가 되어 흐트러졌다. 파도와 바람과 거대한 새 날개의 쏴쏴 하는 소리 속에 무엇인가 비밀스러운 소리가 함께 울렸다. 때로는 소리 높은 격정으로, 때로는 갸날픈 어린 아이 목소리로, 하나의 노래가, 은밀하고 사랑스러운 멜로디가 울려나왔다. - 어느 소나타Eine Sonata 중에서



헤르만 헤세는 그대로였고, 전엔 읽히지 않던 부분까지 읽혔다. 실은 이렇게 로맨틱했나 하고 생각했다. 다소 낯선 문장 스타일로, 그가 겪었던 시대와 달리 애정어린 시선으로 희망을 이야기하는 모양이 마치 19세기 초 유럽을 떠올리게 하였다. 굳이 따지지면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벨 에포크와 연관지을 수 있겠지만, 카프카(1883 - 1924)의 세계와 헤세의 세계를 같은 동시대를 이야기했다고 보기 어려우니, 비평적으로 헤세는 소외당하고 무시당한 셈이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마치 스트라빈스키 같다고 할까. 복고풍의 세계로, 우리를 아련한 과거로, 혼란스럽지만 언젠간 정리되고 해결되고, 다시 그와, 그녀와 사랑을 하고 행복하게 될 어떤 일상으로 우리를 이끈다. 이 점에서 헤세의 이 산문집은 약간의 위로가 되었고 약간의 휴식이 되었으며 살짝 쓸쓸하기도 했다. 


수십 년 전엔 심야 라디오를 듣다 보면, 헤세의 여러 소설들에 대한 광고가 나오기도 했다. 자주. 다들 헤세를 읽는 거의 일종의 통과의례처럼 여겨졌고 그렇게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냈다. 헤세의 책 옆으로 짝사랑하던 여고생을 향해 편지를 쓰기도 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쓸쓸하긴 매 한 가지지만, 강도로 따지지만 지금이 더한 것같으니, 사람의 마음은 언제나 한 자리에 서서 언제나 '날 좀 바라봐줘'라고만 하는 듯 싶구나. 


활자가 작진 않지만, 빽빽했다. 독서의 속도는 느렸고 세상은 빠르게 흘렀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몇 달이 지나버렸다. 아마 그렇게 이 세상과 작별했던 헤세의 나이가 되겠지. 그 전까지 나는 얼마나 더 쓸쓸해야만 하는 걸까. 그러게 말이다. 



* * 



내가 알기로 올재클래식스는 예전에 번역되어져 나온 고전들 중, 시중에서 해당 번역서를 구할 수 없고 원 저작권도 사라진 책들을 역자들과 협의하여 기본 비용만으로 정가를 책정하고 유통하는 전집이다. 주로 사회 복지시설이나 도서관 등 우선 공급하고 일부만을 교보문고에서 판매한다. 어떤 책들은 시장성이 낮아 구할 수 없는 책들도 나오기도 하는데, 워낙 가격이 저렴하여 출판되고 난 다음 얼마 지나지 않아 품절되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온라인 판매를 하지 않아, 검색되지도 않는다(얌체같은 이들은 버젓이 올재 클래식스 책을 고가로 중고로 판매하기도 한다). 그래서 서점 한 가운데 쌓여있던 이 책을 바로 구입했다. 일종의 횡재였던 셈. (가격은 2,900원) 





 




Comment +0




브로크백 마운틴 Close Range: Wyoming Stories 

애니 프루Edna Annie Proulx(지음), 조동섭(옮김), media 2.0,2006년 





잭이 말했다. "이 생각을 해봐. 나도 이번 한 번만 말하겠어. 있지. 우리는 같이 잘 살 수도 있었어, 진짜 좆나게 잘. 에니스, 네가 안 하려고 했어. 그래서 이제 우리에게 남은 건 브로크백 마운틴 산 뿐이야. 거기 몽땅 다 있어. 우리가 가진 건 그것 뿐이야. 씹할 그것 뿐이라고.(...)" - 345쪽 


 


소설집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브로크백 마운틴>은 앞서 읽었던 거칠고 고통스러우며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끝까지도 비명을 지르지 않는 사람들의 군상들과 겹쳐져, 위 문장 쯤에선 눈물이 나올 정도다. 브로크백 마운틴 뿐이라니! 


아마 한국에서 특정 지역을 소재로 애니 프루처럼 소설을 썼다면, 소설이 나오자마자(아니면 대다수가 책 따윈 읽지 않으니 그냥 묻힐려나) 작가에 대한 무수한 인신 공격과 소설에 대한 판매 금지 신청, 소설의 문학성이나 완성도 따윈 이야기할 틈 없이 무참히 공격당하다가 소설가는 끝내 절필 선언까지 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리고 법정까지 끌려가 탈탈 털릴 게 분명하다. 해당 지역 사람들이 소송을 걸거나 고발이 들어오거나 자신의 옳고 강직한 소신과 신념을 드러내기 위해 검사가 수사를 진행할 지도 모를 일이다. 


그만큼 이 소설집은 처음부터 끝까지 폭력이 난무하고 (대체로) 여성과 장애인은 인간 대접 받지 못하며 끔찍한 방식으로 대상화된다. 심지어 동성애 장면은 너무 노골적이어서 그런 묘사가 있다는 걸 정부 관계자들이 안다면 19금 소설로 포장해 판매하라고 할 것이다. 소설들 속에선 다치는 건 늘 있는 일이고 가난은 벗어날 수 없으며 망해가는 목장이거나 트레일러가 그들의 거주지다. 


소설을 읽으면서 묘하게 한국과 겹쳐지는 이유는 문학과 현실의 경계는 어디일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특정 실존 인물이나 특정 지역 사람들에 대한 문학적 해석과 재창조는 어떤 것일까. 하긴 이 소설을 읽은 미국 사람들이 와이오밍 관광청에 전화를 해서 브로크백 마운틴이 어디에 있는 거냐며 묻는다고 한다(하긴 나도 브로크백 산이라, 어디 있는 거지 하면서 구글 맵에서 찾았으니). 그런데 실제 존재하지 않는 산이다. 


결국 우리는 꿈을 꿀 수 밖에 없는 것일까. 잭은 죽고 그의 유언은 브로크백 마운틴에 유골이 뿌려지는 것이었는데. 그 산은 실제론 없다. 


11개의 단편들로 이루어진 이 소설집은 거칠고 황량한, 거대한 자연 앞에서 순응하며 인생과 싸우는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진창The Nud Below>에서 다이어몬드는 어머니에거 '아버지가 누구냐'며 따지지만 끝내 알지 못한다. <목마른 사람들People in Hell Just Want a Drink of Water>에서는 끝없는 호기심과 모험, 도전으로 와이오밍 밖으로 나간 라스가 교통사고로 인해 고향으로 돌어와 죽는 이야기다. 실은 너무 끔찍한 이야기라서 적지 않는 편이 좋겠다. 하긴 이 소설집에서 어느 것 하나 끔찍하지 않은 이야기가 어디 있으랴. 


이안 감독의 <브로크백 마운틴>은 보지 않았으며 그저 애니 프루의 소설이 궁금했을 뿐이다. 읽는 내내 불편했고 끔찍했으며 이 소설집을 읽는 한국 독자들이 궁금했다. 이렇게 폭력적인 세계를 너무나도 태연하게 묘사하는 애니 프루에 대해서 어떻게 여길까. 이 소설이 한국어 쓰여져 출판되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더구나 특정 지역, 특정 사람들을 등장시키며 일반화시킨다면 사람들은 뭐라고 할까. 이런 식의 단상이 꼬리를 물었다. 결국 내 이야기가 아니라 네 이야기라 찬사를 거듭하는 건 아닐까. 트레일러나 목장에서의 삶이 어떤 것인지 모르는 까닭에, 노골적으로 높게 평가하는 건 아닐까. 트레일러나 목장 옆에서 지내는 여자아이이거나 성인 여성이거나 장애인이 아니기 때문에, 새로 번역되어 나온 건 아닐까. 


가끔 한국이 싫어지곤 하는데, 그건 너무 이중적인 잣대로 세상을 바라보고 평가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렇지 않아 보이는 이들까지 한 패가 되어. 


결국 우리가 기댈 곳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브로크백 마운틴 뿐이다. 이 세상에선 금지된 꿈이, 용납되지 못할 사랑이 시작되고 화려하게 꽃 피우고 소리없이 묻힐, 저 산 뿐이다. 








브로크백 마운틴 - 10점
애니 프루 지음, 조동섭 옮김/Media2.0(미디어 2.0)

내가 읽은 책이다. 절판되어 구할 수 없다. 그래서 읽는다면 아래 책으로.  



브로크백 마운틴 - 10점
애니 프루 지음, 전하림 옮김/f(에프)





애니 프루(1935 ~ )



소설을 다 읽고 난 다음 참고로 읽으면 좋을 기사들. 








Comment +0



칠드런 액트 The Children Act 

이언 매큐언 Iwan McEwan(지음), 민은영(옮김), 한겨레출판



살만 루시디(Salman Rushdie)가 추천한 이언 매큐언의 <칠드런 액트>. 소설을 읽는 내내, 루시디가 추천하는 몇 권의 책 안에 들 정도는 아닌데 하는 생각하지만, 다 읽고 난 다음 그가 왜 이 소설을 왜 추천했는지 알게 된다. 


몇몇 이들은 이 소설을 영국의 아동법 등의 여러 법률에 근거한 법과 종교의 문제로 해석하지만, 그건 잘못된 해석이다. 판사가 나오고 소설의 많은 장면들이 법정이거나 법과 관계된 사람들로, 혹은 종교와 관계된 이야기가 나온다고 해서 이를 법과 종교의 문제, 그 갈등을 다루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면, 모든 이들이 탁월한 소설 비평가가 될 것이다. 


결국 읽는 이에 따라 소설에 대한 해석은 달리 되어, 터무니없이 낮게 평가되거나 비상식적으로 높게 평가되기도 한다. 나에게 이 소설은 그간 읽어왔던 소설들 중 최고는 아니었지만, 살만 루시디에게 이 책은 최고의 소설이었을 것이다. 적어도 살만 루시디에게는. 


소설은 두 개의 이야기가 서로 교차되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피오나와 잭과의 관계. 피오나와 애덤의 관계. 이 두 관계는 서로 만나지 않지만, 이 소설의 큰 두 축이다. 하나는 성관계가 없는 중년의 판사와 교수 부부 이야기이며, 하나는 신앙으로 인해 수혈을 거부하는 한 소년과 수혈 집행 명령을 내리는 판사 이야기다. 두 이야기는 관계 없는 듯 하지만, 하나의 주제를 공유하고 있다. 이 두 이야기는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과 그 환경 속에서 개인은 어떻게 영향을 받고 어떤 사고를 하고 어떤 행동을 하며 궁극적으로 어떤 자유를 가지는가에 대한 본질적 질문을 던진다.  


소설은 우아한 몸짓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지만, 그 속에는 의외로 심각한 주제를 담고 있는 셈이다. 살만 루시디는 이걸 알고 있었다. 그는 우리가 어떻게 태어났고 어떻게 나이를 먹으며 어떻게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가는가에 대해 이미 경험했다. 집을 나간 잭이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돌아오고 피오나가 다시 잭을 받아들이게 되듯, 애덤은 수혈을 받게 한 피오나의 결정에 대해 찬사를 하지만, 결국 자신의 의지로 수혈을 거부한다. 이는 수혈 거부에 대한 법적인 기준에 질문이 아니다. 결국 '이것 아니면 저것'(키아케고르)이며, 우리가 종국에는 어떤 행동과 결정을 내리게 되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내외적으로 무수한 갈등과 고민, 방황을 하지만, 이렇게 아니면 저렇게 할 수 밖에 없는 현실. 


아마 살먼 루시디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무수한 이슬람 사람들을 떠올렸을 것이며, 자신의 무모한 신앙으로 지하드를 감행하는 이슬람의 젊은이들을 생각했을 것이다. 서방에서 태어났건 동방에서 태어났건 상관없이, 결국에는 그들의 조상이 믿었고 그들 가족이 지키고 있는 그 신앙을 따라, 그 자신 스스로의 종교적 신념과 자유의지로 다시 이슬람 근본주의를 향하는, 일부는 지하드를 벌이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바로 이 소설이었던 셈이다. 아마 루시디는 이 소설 속에서 피오나가 애덤에게 수혈을 명령하는 판결문을 읽으면서 울지 않았을까. 


그러나 이 판결문은 동시에 애덤이 결국 수혈을 거부하게 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법은 최소한의 장치일 뿐이고 결국 우리가 기대게 되는 것은 개인의 자유의지일 뿐이다. 그것이 이해가능한 것이든 이해불가능한 것이든. 소설은 결국 우리의 무수한 시도들은 애초에 예정되었던 어떤 행동에 대한 변명만 만들어줄 뿐임을 말한다는 점에서 꽤 비극적이며 소설의 시작으로 다시 돌아온다. 피오나와 잭은 같은 집에 사는 부부이고, 애덤은 예정된 대로 수혈을 거부한 채 죽는 것이다. 이 소설을 다 읽은 독자들은 소설을 덮고 무수한 상념에 빠질 것이지만, 그 뿐이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고 여러 사람들의 조언을 듣는다고 해서 우리가 탁월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건 아니다. 결국 우리 자신의 문제이며, 우리의 자유 의지가 결정하게 될 것이다. 이것 아니면 저것. 고민하기 전에, 조언을 듣기 전에 우리는 이미 이것, 아니면 저것을 할 것임을 알고 있다.  


이언 매큐언의 소설은 이번 처음이었다. 매큐언의 <속죄>를 영어로 읽다가 잠시 쉬고 있는 터라(아직도 영어 소설을 읽어내는 속도가 너무 느려서), <칠드런 액트>가 처음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번역이라서 그런가. 번역된 영어권 작가들의 소설을 읽으면 다들 비슷해보이니 말이다(그러니 영어로 읽어야 된다). 


끝으로 조금 길긴 하지만, 피오나가 애덤의 강제 수혈 집행을 명하는 판결문 일부를 옮긴다.


A는 스스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나이에 근접해 있습니다. 종교적 신념을 위해 죽음을 각오한다는 사실은 그 믿음이 얼마나 심오한지 증명합니다. 또한 그의 부모가 끔찍이 사랑하는 자식을 신앙을 위해 희생시킬 각오를 한다는 사실은 여호와의 증인이 고수하는 교리의 힘을 보여줍니다. (...) 

바로 이 힘때문에 저는 멈춰 서게 됩니다. 왜냐하면 A는 17세가 되도록 종교적, 철학적 사고라는 격변하는 영역에서 다른 표본을 접해본 경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기독교 종파는 신자들 간의 열린 논쟁이나 반대의견을 장려하는 문화가 아닙니다. 회중의 신자들은 자신들을 '다른 양'이라 부른다는데요. 적절한 명칭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겠습니다. 저는 A의 정신, 견해가 온전히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A는 아동기 내내 강력한 하나의 세계관에 단색으로, 중단없이 노출된 채 살아왔고, 그런 배경이 삶의 조건을 좌우하지 않았을 수는 없습니다. 고통스럽고 불필요한 죽음을 감수하는 것. 그리하여 신앙을 위해 순교자가 되는 것이 A의 복지를 도모하는 길은 아닐 것입니다. (... ...) A는 그의 종교로부터, 그리고 자기자신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합니다. 

- 167쪽에 169쪽 



Iwan McEwan(1948 ~ )



칠드런 액트 - 8점
이언 매큐언 지음, 민은영 옮김/한겨레출판

Comment +0



이 되어버린 남자 Das Buch

알폰스 슈바이거르트(지음), 남문희(옮김), 비채, 2001 



원제는 '그 책'이고 내용은 번역본 제목 그대로 책이 되어버린 비블리 씨에 대한 것이다. 정말로 책이 된다. 책이 되어 사람을 공격하기도 하고 서가에 꽂히기도 하며 읽히기도 하고 땅 속에 파묻히기도 한다. 그러나 책이나 독서에 대한 깊은 사색이 묻어나오지 않으며 그저 책이 된 채 떠도는 이야기이다. 독특하기는 하나 깊이 없다. 책은 짧고 금방 읽힌다. 그리고 왜 읽었을까 하고 반문한다. 그래서 책 앞에 인용된 독일 저널들의 찬사는 어색하고 난감하다. 왜냐면 내가 잘못 읽은 게 아닌가, 내 감식안이 형편없는 건 아닌가 하고. 제목은 사람의 시선을 끌지만, 시간 내어 이 책을 읽진 말자. 

(그래서 독일 아마존에서 이 책을 찾아보았으나, 나오지 않는다. alfons schweiggert로 검색하여 목록을 대강 훑었으나....) 




책이 되어버린 남자 - 6점
알폰스 슈바이거르트 지음, 남문희 옮김, 무슨 그림/비채
 


Comment +0



지적 자본론 

마스다 무네아키(지음), 이정환(옮김), 민음사 




처음 읽을 땐 꽤 시간이 걸렸다. 두 번째 읽을 때 금방 읽었다. 그러나 처음이나 두번째나 이 책을 읽기 잘했다는 생각은 똑같았다. 도리어 늘 고객가치라는 단어를 듣고 읽지만, 정작 실무에선 그걸 잊어버린다는 걸, 이 책을 다시 읽으면서 깨달았다. 


고객 가치를 우선하라. 세계 최초를 추구하는 일의 공허함 (12쪽) 


우리는 고객 중심이라는 이야기를 떠들고, 그것을 실행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론을 적용하며 오랜 기간의 관찰과 설문,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프로젝트를 수행하고도 정작 놓치는 것이 고객 가치라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만큼 실현하기 어려운 게 고객 가치다. 어쩌면 고객 가치를 추구하는 많은 기업들은 고객 가치를 보여주고 있는데, 그 제안되는 고객 가치들끼리의 경쟁 구도일까.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낮아보인다. 고객 가치 실현이란, 정교한 방법론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이칸야마 츠타야서점'이 편안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건물이 좋아서가 아니라. 사실은 건물과 건물 사이의 공간이 중요하다. 건물과 건물의 거리, 그 곳에 비쳐드는 햇살과 그늘의 조화 ... ... 즉, 풍경이다. 빛이 풍경을 만들어낸다. 빛이 없으면 사람은 사물을 볼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인식도 불가능하다. 사람에게 풍경을 느끼게 하는 것은 빛과 눈의 위치다. 거기에 가장 적합한 위치를 찾아내는 것이 건축가나 디자이너의 작업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이다. (32쪽에서 33쪽) 


츠타야 서점으로 유명한 마스다 무네아키는 디자이너가 되라고 말한다. 디자이너는 기획자이며 제안자이자 실행가이다. 저자는 '기획'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그러기 위해선 먼저 자유로워야 된다고 이야기한다. 책은 짧지만, 메시지는 분명하고 호소력이 있다. 강력 추천하는 책이다. 




* 츠타야로 검색하면 많은 기사나 자료를 확인할 수 있다. 찾아 읽어보길 바란다. 

‘츠타야’ 성공신화 마스다 무네아키를 아시나요, 비즈한국, 2016년 5월 


 



지적자본론 - 8점
마스다 무네아키 지음, 이정환 옮김/민음사

Comment +0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지음), 양윤옥(옮김), 현대문학 



소설 쓰는 게 영 쉽지 않다는 걸 깨달은 후부터 소설 쓰는 법에 관심을 기울인 듯 싶다. 실은 소설 쓰는 법 따윈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도 된다. 소설 쓰는 법을 배우고 소설가가 되는 경우보다, 그냥 소설가가 되는 경우가 더 많다. 우연히 소설가가 되고 소설가로서의 명성을 쌓은 후, 몇몇 작가들은 소설 쓰는 법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나는 그 작법 이야기를 읽거나 듣는다. 결국 내가 소설 쓰는 법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소설 쓰기와는 무관하게, 소설 쓰기에 대한 동경 같은 게 아직 남아 있어서 그런 건 아닐까. 그리고 소설 쓰는 법을 이야기할 정도로 수준 있는 소설가는 매우 드물기 때문에 내 동경은 계속 유지되고 있는 것일지도. 


젊은 하루키가 이제 노년의 하루키가 되었고, 나는 중년이 되었다. 한 때 하루키를 이해하지 못했던 오에 겐자부로는 최근에 하루키에 대해 찬사를 한다(오에의 아들 히카리도 중년이 되었다). 나는 그 찬사가 적절하다고 여긴다. 십수년 전 어느 무크지에 하루키와 관련된 칼럼이 기고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고 그 때 읽은 <해변의 카프카>가 마지막이었다. 과한 진지함이 나를 망쳐버렸다. 하루키를 좋아하지만, 그는 진지한 주제를 심도있게 끌고 나가는 소설가는 아니다라고 평가절하했다. 그런데 진지한 주제를 심도있게 끌고 나가야만 하냐고 내 스스로에게 묻는 것이 더 좋을 뻔 했는데 말이다. 그건 평가절하의 요소가 아니라 내가 바라보는 기준과 다른 방향에 서있었을 뿐이다.



이 책은 하루키가 자신의 소설 쓰기에 대해 적은 에세이집이다. 그가 소설을 어떤 계기로 썼고 어떻게 첫 번째 소설을 완성했는지, 그 이후 자신은 어떻게 소설을 써왔는지를 말한다. 심지어 '어떤 인물을 등장시킬까?'같은 챕터도 있다. 책은 가볍고 재미있다. 하루키 팬이라면 당연히 읽을 수 있는, 그리고 읽어야 하는 책이다. 


그러나 진지하게 소설을 어떤 식으로 쓰는가, 진짜 소설 작법에 대해 궁금한 독자들에게 이 책은 큰 도움은 되지 않을 지도 모른다. 왜냐면 하루키는 너무 쉽게 이야기하니까(아니면 작법 따윈 필요없으니 그냥 바로 시작하면 돼 라고 생각할지도). 하루키를 보고 있으면, 너도나도 소설가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야구장에서 불현듯, '그래, 나도 소설을 쓸 수 있을지 모른다'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소설을 쓰기 시작해, 그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신인상을 받았으니까. 


그런 기분, 나도 느끼고 싶지만, 나에겐 기회가 없었고 나와는 맞지도 않다. 나는 아예 어렸을 때부터 작가를 꿈꾸었으니. 하지만 지금은 블로그에 올릴 글조차 쓸 시간이 없다. 그냥 이렇게 늙어가는 게다. 


올해 하루키를 한 번 읽어볼까, 글쎄다. 아마 읽고 실망할 게 뻔하다. 차라리 젊었을 때의 하루키가 낫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다시 읽는 것. 그게 나을 지도. 확실히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그 때까지 나온 일본 소설들과 달랐고, 그 소설이 한국의 젊은이들에 끼친 영향은 거대했다. 그 때만 해도 번역소설에 대한 연구나 분석 따윈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심지어 왜 번역소설만 읽냐는 핀잔을 듣기도 했으니. 하지만 그 정도로 쓰는 한국 소설가는 몇 명 되지도 않았다. 지금도 별 반 다르지 않은 듯 느껴지지만(요즘엔 거의 소설을 읽지 않으니, 이건 내 추측일 뿐이다) 


이 에세이집 초반에 하루키는 어떻게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썼는지 이야기한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비난을 받았는지도. 아래는 하루키의 첫 장편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밝히는 부분이다. 그 일부만 메모해두었다. 무척 흥미로운 과정이다. 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영어로 된 소설을 꾸준히 읽어, 어느 정도 될 것이라 여겨지지만, 고등학교 영어 성적은 그와 비례하지 않았다고 한다. 소설가가 된 후, 미국 대학에서 강의까지 할 정도였으니. 너무 늦은 나이이긴 하지만, 나도 영어 소설을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수준까진 가보자. 하루키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쓸 때 일본어 초고 --> 첫부분을 영어로 번역 --> 다시 일본어로 옮기는 과정을 거쳤다. 이러면서 자신만의 문장 리듬을 만들었다고 이야기한다. 한 번 시도해볼 만한 방법인 듯하여, 아래 메모해둔다. 


하지만 대충 '아마 이럴 것이다'라는 어림짐작으로 소설 비슷한 것을 몇 달 동안 써 본 것인데, 다 쓴 것을 읽어봤더니 내가 생각하기에도 별로 재미가 없어요. '에이, 이래서는 아무 짝에도 못 쓰겠다'하고 실망했습니다. 뭐랄까, 일단 소설의 형식은 갖췄는데, 읽어도 재미가 없고, 다 읽은 뒤에도 마음에 호소하는 것이 없었습니다. (48쪽) 


만년필과 원고지가 눈 앞에 있으면 아무래도 자세가 '문학적'이 되어버립니다. 그 대신 붙박이장에 넣어두었던 울리베티 영자 타자기를 꺼냈습니다. 그걸로 소설의 첫 부분을 시험삼아 영어로 써보기로 했습니다. 아무튼 뭐든 좋으니 '평범하지 않은 것'을 해보자, 하고. 

물론 내 영작 능력이라야 뭐, 뻔하지요. 한정된 수의 단어를 구사해 한정된 수의 구문으로 글을 쓸 수 밖에 없습니다. 문장은 당연히 짧아집니다. 머릿 속에 아무리 복잡한 생각이 잔뜩 들어있어도 그걸 그대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어요. 내용은 가능한 한 심플한 단어로 바꾸고 의도를 알기 쉽게 패러프레이즈하고, 묘사에서 불필요한 군더더기를 깎아내고 전체를 콤팩트한 형태로 만들어 한정된 용기에 넣는 단계를 거칠 수 밖에 없습니다. 결국 몹시 조잡한 문장이 되어버립니다. 하지만 그렇게 고생해가며 문장을 써 내려가는 동안에 점점 내 나름의 문장 리듬 같은 것이 생겨났습니다. (49쪽) 


아무튼 그렇게 외국어로 글을 쓰는 효과의 재미를 '발견'하고 나름대로의 문장의 리듬을 몸에 익히자 나는 영자 타자기를 붙박이장에 넣어버리고 다시 원고지와 만년필을 꺼냈습니다. 그리고 책상 앞에 앉아 영어로 쓴 한 장 분량의 문장을 일본어로 '번역'했습니다. 번역이라고 해도 딱딱한 직역이 아니라 자유로운 '이식'에 가깝습니다. 그러자 거기에는 필연적으로 새로운 일본어 문체가 나타났습니다. 이건 나만의 독자적인 문체이기도 합니다. 내가 내 손으로 발견한 문체입니다. (51쪽) 


* 내 블로그에서 하루키로 검색하면 몇 개의 포스팅을 확인할 수 있다. 찾아보니, <해변의 카프카> 이후 하루키도 많은 소설을 낸 것도 아니다. 쉽게 쓰는 스타일이라 여겼는데, 그렇지도 않은 듯 싶다. 이에 비한다면 아멜리 노통브는!! 노통브의 소설 한 권 더 읽어봐야 되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 8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현대문학



Comment +0




헤밍웨이의 말

헤밍웨이(지음), 권진아(옮김), 마음산책 



헤밍웨이가 너무 유명했던 탓에, 내가 그를 읽은 건 고등학생 때였다. 이것이 세계문학전집의 폐해다. 헤밍웨이의 소설들 - <해는 또 다시 떠오른다>나 <무기여 잘 있거라>-을 고등학생이 읽고 이해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그리고 그 시절 이후 헤밍웨이를 읽지 않았고, 이 사실마저도 이 인터뷰집을 읽으면서 새삼 알게 되었다.


이 책은 헤밍웨이가 말년에 행한 인터뷰들을 소개한다. 뭔가 깊이있는 이야기가 나오기 보다는, '아, 헤밍웨이구나'정도랄까. 그래, '헤밍웨이'.  


"작가는 우물과 비슷해요. 우물이 마르도록 물을 다 퍼내고 다시 차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규칙적인 양을 퍼내는 게 낫습니다."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 지 알고 끝냈을 때는 계속 쓸 수 있습니다. 시작만 할 수 있으면 괜찮아요." 


하지만 글쓰기에 대해선 이야기하지 않고, 글쓰기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싫어한다. 그는 글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나는 헤밍웨이의 대화를 글로 읽는데, ... (그러니, 이 책의 저자는 헤밍웨이가 아니라 인터뷰어로 나와야 한다.) 


"그 때 그 때 달라요. <무기여 잘 있거라>의 결말 마지막 페이지는 서른 아홉 번 다시 쓰고야 만족했죠." 


"하지만 최고의 글은 분명 사랑에 빠져 있을 때 나옵니다. 그게 다 똑같아보인다면 차라리 아무 설명도 안 하렵니다."


"이렇게 말하죠. 글을 잘 쓰는 게 더할 나위 없이 힘들다면 나가서 목을 매야 한다고. 그러고는 무자비하게 난도질 당하고 남은 평생 최대한 잘 쓸 수 있도록 스스로 강제해야 한다고. 적어도 목매는 이야기부터 쓸기 시작하면 되잖아요."


글 쓰는 재능이 없기도 하거니와, 아주 가끔은 소설을 쓰지 않길 잘 했다고 여긴다. 문장과 싸우기엔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체력이 안 된다고 할까. 마루야마 겐지의 단어로 옮기자면, '근육'이 없거나 형편없음을 뒤늦게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헤밍웨이는 서서 글을 쓴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내내 가지고 있는 작업 습관이다. 그는 치수에 맞지 않는 커다란 로퍼를 신은 채 가슴 높이에 놓인 타자기와 독서대를 마주 하고 낡은 레서쿠두 가죽 위에 선다. 새 작품을 시작할 때 헤밍웨이는 늘 독서대에 반투명한 타자용지를 올려놓고 연필로 글을 쓴다.(23쪽)


책은 얇고 재미있다. 서점에서 서서 한 시간이면 다 읽을 수 있다. 헤밍웨이 팬이라면 한 권 집에 소장해두어도 나쁘진 않을 듯. 올해 수십년만에 헤밍웨이의 소설을 다시 읽어야겠다. 아마 예전 내가 읽었던 그 소설은 아닐 것이다. 이제서야 제대로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약간의 위안을 가져본다. 


호텔 암보스문도스 Hotel Ambos Mundos. 551호실에서 헤밍웨이는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의 첫 몇 장을 썼다. 



쿠바 하바나에 있는 플로리디타 바. 헤밍웨이 덕분에 유명해진 바로, 하바나에선 보기 드물게 신용카드 결제가 가능하다. 


책에선 헤밍웨이가 서서 글을 쓴다고 했는데, 막상 찾아보니 이 사진 밖에 없다. 




헤밍웨이의 말 - 8점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권진아 옮김/마음산책


Comment +0



은유가 된 독자

알베르토 망구엘(지음), 양병찬(옮김), 행성비, 2017년 



독자란 무엇이고 독서란 무엇일까. 책과 독서에 대해서라면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알베르토 망구엘은 이제 책 읽기와 여행, 은둔과 고독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아우구스티누스에게 독서란 '텍스트를 독파하는 여행'이다. 여행을 통해 탐구된 영역은 기억의 영역에 저장되고, 그 과정에서 미지의 영역은 점차 익숙한 영역으로 편입되면서 흐릿해진다.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은 계속된다. "<시편> 전체에 적용되는 원리는 각 문단과 구절에도 적용된다. <시편> 뿐만 아니다. 그 원리는 인간의 삶 전체에 적용되며, 인생의 각 부분에도 그러하다. 인류의 역사 전체에 그러하며, 개인의 인생사에도 또한 그러하다." '독서의 경험'과 '삶의 여정에서 겪는 경험'은 거울처럼 서로 비춘다. (31쪽)


독서에 대한 많은 인용들은 나같은 이에게 끝없는 흥미와 자극을 선사하였으며 읽은 재미를 주었다. 이 얇은 책을 완독하는 데 겨우 이틀 밖에 걸리지 않았으니, 단단하고 꽤 통찰력 있는 서술들이 이어지지만, 이것이 책 읽기를 어렵게 하진 않을 것이다. 


로건 피어설 스미스(Logan Pearsall Smith)는 "사람들은 살기 위해 읽지만, 나는 읽기 위해 산다"라는 인용문은 책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해당되는 말일 것이다. 알베르토 망구엘도 그렇지 않을까. 


망구엘은 많은 저자들과 저술들을 오가며, 독자의 의미, 은유와 상징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결국은 독자의 가치에 대해서 논하는, 제대로 된 독자가 되자 정도로 결론 내릴 수 있을 텐데, 이건 내가 임의로 정해본 것이고 망구엘은 결국 책 읽기와 진정한 의미에서의 독자란 무엇인가를 말하는 셈이다. 






Alberto Manguel (1948 ~ )  





은유가 된 독자 - 10점
알베르토 망구엘 지음, 양병찬 옮김/행성B(행성비)



Comment +0




롱기누스의 숭고미 이론

롱기누스(지음), 김명복(옮김), 연세대학교 출판부. 2002년 




수사학 책이다. '숭고sublime'에 현혹된 셈이다. 역자인 김명복 교수에 의하면, 숭고의 개념은 수사학에서 시작되어 문화와 예술 전반에, 그리고 자연에까지 그 영역을 확장되었다고 한다. 그러니 내가 알고 있는 '숭고'(예술과 미학에서의)와 롱기누스가 이야기하는 바 '숭고'(수사학에서의)는 다른 것이다.


이 책은 웅변술, 저술에서의 표현과 수사법에서의 숭고에 대해서 논의한다.  


진정한 숭고미란 내적인 힘이 작용함으로, 우리의 영혼이 위로 들어올려져, 우리가 의기 양양한 고양과 자랑스런 기쁨으로 충만하게 되고, 우리가 들었던 것들을 마치 우리 자신이 그들을 만들어냈던 것과 같이 생각하게 만드는 데 있다. - 29쪽 



그래서 철학적인 견지에서의 숭고라든가 조형예술에서의 숭고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책을 얇고, 읽는 재미가 없는 것도 아니어서, 지금으로부터 거의 이천년 전에도 그랬구나 하고 중얼거리며 읽는다. 말하는 방식이나 문장의 서술에 있어서의 '숭고'가 이 책의 주된 테마이며, 이 테마가 현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다양한 분야로 확대되었는데, 그 흔적을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다.  


따라서 숭고의 역사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역자의 해설이나 뒤편에 실린 워즈워드의 글도 좋다. 롱기누스도 간간히 조형예술에 대해 언급하기도 하나, 극히 일부분이다. 가령 아래의 부분 정도.



똑같은 관계가, 또한 회화에서도 일어난다. 비록 색으로 재현되는 빛과 어둠이 똑같은 표면 위에서 나란히 존재하지만, 시야를 붙잡아, 눈에 띠게 보일 뿐 아니라, 더욱 더 가까이 있는 듯이 보이는 것은, 바로 빛이다. 그런 현상은 문학에서도 똑같이 일어나고 있다. 우리의 감정들과 숭고미의 개념들에 호소하는 것들은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유사성과 탁월한 수사들이다. 이들 탁월한 수사적 비유들은, 무엇보다도 우리의 주의를 끌여들여, 우리의 가슴에 호소하는 까닭에, 수사의 기교는 전혀 눈에 보이지 않는다. - 69쪽 



2002년에 출간된 책인데, 아직도 구할 수 있는 것을 보면 거의 읽히지 않는다고 말해야 할까. 실은 천병희 선생이 옮긴 롱기누스의 <숭고에 대하여>가, 문예출판사에서 나온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도 수록되어 있으니, 어떤 이들은 천병희 선생의 번역으로도 읽었을 것이다. 


옛날 책 읽기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 이 책은 권할 만하다. 그리고 그리스/로마 시대의 웅변이나 문학적 표현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다. 






롱기누스의 숭고미 이론 - 8점
디오니시우스 롱기누스 지음, 김명복 옮김/연세대학교출판부

Comment +0



유혹에 대하여 De la se'duction 

장 보드리야르(지음), 배영달(옮김), 백의 



1. 


철 지난 책을 읽었다. 작년에 몇 달에 걸쳐 읽었는데, 의외로 재미있다고 하면 이상하게 들리려나. 읽다보면 반-페미니즘처럼 읽히기도 하나, 딱히 그렇지도 않다. 여성주의의 입장에서 매우 찝찝하나, 그렇다고 해서 딱히 공격할 만한 과격한 주장을 하지도 않는다. 도리어 보드리야르는 여성의 유혹, 쾌락 등은 존중받아야 된다고 말하고 있으니. 


이 책은 '유혹'의 관점에서 유혹을 둘러싼 일련의 일들을 상징적 차원, 이론적 차원에서 조망한다. 그래서 일종의 말 장난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리고 말장난이라는 점에서 이 책은 정말 재미있다! 특히 키에르케고르의 <유혹자의 일기>를 분석하는 챕터에선 절정에 이른다고 할까. 


보드리야르는 서문에서 대 놓고 유혹이 얼마나 당해왔는가는 말한다. 그리고 이 책이 유혹을 복권시키려는 시도임을 숨기지 않는다. 


지울 수 없는 어떤 운명이 유혹을 짓누른다. 종교의 관점에서 보면, 유혹은, 그것이 교묘한 것이든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든, 악마의 전략이었다. 유혹은 늘 악의 유혹이다. 아니 사람들의 유혹이다. 그것은 사람들의 기교(artifice)인 것이다. 유혹에 대한 이러한 저주는 도덕과 철학을 통해서도, 오늘날의 정신분석과 '욕망의 해방'을 통해서도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성, 악, 퇴폐가 지니는 가치들이 격상되었기 때문에, 저주받았던 모든 것이 오늘날에 와서 종종 예정된 자신의 부활을 반기고 있기 때문에, 유혹이 저주라는 생각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 그렇다 해도 유혹으 결국 제자리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 서문 



책 자체가 유혹적이고 자극적이고 은밀스럽다.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유혹당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문장들도 꽤나 은유적이면서도 직접적이서, 읽는 재미도 상당하다. 그러나 (보드리야르는 좀 덜하긴 하지만) 20세기 후반 프랑스 철학자들의 책들이 일반적으로 그렇듯, 단어나 문장에 너무 매몰되는 경향이 있어 독자들에게 분명하고 명확한 메시지 전달에 어렵고 다 읽고 난 다음 그래서 무슨 말을 하려는 건가 하는 의아심을 갖게 하는 건 이 책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이 책 읽기를 권하는데, 과거의 체계를 벗어나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려는 여러 가지 모색을 계속 시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중 보드리야르의 이론은 염세주의적이고 절망적이긴 하나, 그 시선 자체로 충분히 귀담아 들을 만한 가치를 지닌다. 일종의 묵시록적 예언가처럼 보드리야르는 '시뮬라시옹'을 주장했고, 우리는 그것을 막기 위해 노력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앵무새 인문학자들은 '시뮬라시옹'만 따라 외쳤으니. 



2. 


한 때 장 보드리야르 열풍이 분 적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요즘에는 대신 아감벤(아니 이 어려운 학자가!)이 유행이다. 인문학이 유행을 탄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현실은 더 개판이 되고 있는데, 현실에 발을 딛고 서 있어야 할 실천적 이론들은 형이상학적인 차원에서 유행을 탄다. 


가끔 불평을 하는 것 중 노선이 불분명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폴 드 만을 찬양하다가 알튀세르를 지지하면서 소개하거나 새롭게 번역된 마르크스의 저술들을 소개한다. 즉 인문학의 유행을 따라다니는 건 뭐라고 할 생각이 없으나, 분명한 가치 판단은 해야 한다. 그래서 서로 절대 만날 수도 없는 학자들을 똑같이 지지한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리고 언제나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관점에서 인문학을 바라보아야 한다. 플라톤의 '시인 추방론'도, 진시황제의 '분서갱유'도 현실 정치의 관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발을 땅에 딛고 손은 언제나 일을 하면서, 인문학도 똑같이 그런 우리 삶을 이해하고 대변할 수 있어야 한다. 보드리야르는 그것 - 우리 삶 - 이 상징적 차원으로 이동할 것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반어적 의미로 유토피아를 이야기하였는데, 한국의 앵무새 인문학자들은 탈정치화된 유토피아를 그대로 이야기했다. 도리어 미국의 감독이 시뮬라시옹이 구현된 디스토피아를 영화로 제작하는 탁월함을 보여주었다. 



3. 


보드리야르의 이 책도 품절이다. 다시 출간될 일은 요원해보이니, 헌책방이나 도서관에서 빌려 읽기를 권한다. 대체로 이해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 다만 몇몇 문장들은 무척 자극적이고 흥미롭다. 아마 이 정도만으로도 이 책을 충분히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된다. 












유혹에 대하여 - 10점
장 보드리야르 지음, 배영달 옮김/백의

Comment +0





혁신은 천 개의 가닥으로 이어져있다 

론 애드너Ron Adner(지음), 김태훈(옮김), 생각연구소, 2012년 




이 책의 원제는 'The Wide Rens'다. 혁신에 성공하려면 넓은 범위를 조망해야 한다는 의미다. 내가 그간 읽었던 대부분의 전략 서적들이 혁신 실행을 내부의 관점이나 직접적인 이해관계자들을 둘러싼 혁신 리더십 정도였다. 하지만 이 책에선 '니 혼자 아무리 잘해봤자 소용없다'고 말한다.  



먼저 생태계 내에 존재하는 두 가지 유형의 위험을 고려해야 한다. 하나는 혁신의 성공적인 상업화가 다른 혁신의 성공에 의존하는 정도와 결부된 '공동혁신위험Co-innovation Risk'이다. 다른 하나는 최종 소비자가 완전히 가치 제안을 평가하기 전에 파트너들이 혁신을 수용하는 정도와 결부된 '수용 사슬 위험Adoption Chain Risk'이다. (20쪽)  



결국 혁신을 제대로 성공시키려면 그 비즈니스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이 혁신 위험을 서로 분배하고 앞으로 나가야 한다. 사례로 등장한 미셰린 팩스 시스템은 이 경우를 제대로 설명해준다. 여기에는 최종소비자까지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아무리 좋은 제품이라도 각각 수용 단계마다 수용 가능성을 파악해야 한다. 그것이 '수용사슬위험'이다. 



기존의 산업 관행을 깨뜨리는 모든 새로운 가치 제안의 핵심에는 생태계의 재구성이 있다. (48쪽) 



혁신은 생태계를 재구성한다. 그리고 그 재구성에는 아래의 위험이 존재하고 이 책은 이 위험을 어떻게 극복하기 성공을 이룰 것인가를 말한다. 



실행위험Execution Risk: 혁신을 적시에, 필요조건에 맞춰 추진할 때 직면하는 위험

공동혁신위험Co-innovation Risk: 혁신의 성공적인 상업화가 다른 혁신의 성공에 의존하는 정도에 따른 위험

수용사슬위험Adoption Chain Risk: 최종소비자가 완전한 가치 제안을 평가하기 전에 파트너들이 혁신을 수용하는 정도에 따른 위험 

(53쪽)



몇 가지의 전략 도구(프레임웍)이 등장하지만, 그 전략 도구보다는 혁신을 생태계의 관점에서 조망하고 모든 시장 참가자들을 움직일 수 있는 전략이 요청된다는 것이 론 애드너의 주장이다. 내용은 단순하고 명확하지만, 막상 그 정도까지 고민하고 실행하기란 얼마나 어려울 것인가. 결국 혁신은 대기업 비즈니스의 일부 밖에 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책의 마지막에 사례로 등장하는 베터 플레이스는 매우 흥미로웠다. 전기차 비즈니스가 왜 아직까지도 그냥 개발 중인가를 바로 알 수 있게 해준다고 할까. 전기차의 개념은 19세기말에 등장했다. 그리고 이 때 전기차가 실제로 만들어졌고 언론에선 장미빛 기사를 실었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포드에 밀린 것이다. 그 이후 지금까지 전기차는 아직도 개발 중이다. 론 애드너는 전기차가 안고 있는 문제를 전반적으로 조망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베터 플레이스의 비즈니스를 (기대하는 어조로, 약간 흥분하며) 설명한다. 



전기차가 안고 있는 여섯가지 문제 

- 구입가 프리미엄

- 짧은 주행거리

- 충전 인프라

- 배터리 재판매 가치 

- 짧은 주행거리에 따른 한정적인 절약 효과

- 전력망 용량        



하지만 이 회사, 베터 플레이스는 2013년에 파산했다. 대단히 주목받았던 기업이라 위키피디아에 별도의 페이지가 있을 정도다. 전기차 비즈니스의 어려움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론 애드너는 케이스를 잘못 가지고 온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적어도 혁신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야를 가지게 될 것은 분명하다. 













혁신은 천 개의 가닥으로 이어져 있다 - 8점
론 애드너 지음, 김태훈 옮김, 이동현 감수/생각연구소


Comment +0




미래의 속도 No Ordinary Disruption 

리처드 돕스, 제임스 매니카, 조나단 워첼(지음), 고영태(옮김), 한국맥킨지사무소(감수), 청림출판, 2016년 





10년 전, 20년 전도 꽤 빠르게 세상이 변하고 있다고 느꼈는데, 실은 지금이 더 빠른 듯하다. 가끔 따라가기 벅차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세상의 본질적인 측면은 변하지 않거나 아주 느리게 변해 느끼기 힘들다고 믿지만, 그건 눈에 잘 띄지도 않는 영역에서의 일이니, 눈 앞에 보이는 세계는 하루하루가 다르게 변한다. 



변화의 속도, 놀라움 그리고 세계 시장의 갑작스런 방향 변화는 기존 기업의 운명에 영향을 미치고 새로운 기업에게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지속적인 단절discontinuity의 세계다. (13쪽) 



지속적인 단절, 말이야 쉽지만 이런 세계에서 비즈니스를 하고 산다는 건 매우 거친 일이다. 


이 책은 이런 지속적인 단절의 실체를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단절에 대비하여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를 조언한다. 맥킨지 글로벌 연구소(MGI, Mckinsey Global Institute)의 연구진들이 필자들이라, 이 책에서 제시되는 데이터는 무척 흥미롭고 시사적이다. 실은 이 데이터만으로도 이 책은 읽을 만한 가치다. 아니면 맥킨지 글로벌 연구소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여러 리포트들도 재미있을 것이다. 


약간 삐딱하게 보자면, 컨설팅 비즈니스가 일종의 조언으로 먹고 사는 업이기 때문에, 이 책도 마케팅의 일환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 조언이 장기적으로 그 방향이 잘못될 수도 있으나, 그 당시에는 꽤 의미있는 지적이 많다. 이 책의 저자들은 미래의 속도를 바꾸는 파괴적 메가트렌드를 아래와 같이 정의내린다. 



첫번째 파괴적 메가 트렌드는 경제활동과 경제역동성의 중심지가 중국과 같은 신흥국과 신흥국의 도시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

두번째는 기술의 경제적 영향력이 가속화되고 범위와 규모도 커지고 있다는 점

세번째는 인구변화다. 간단히 말하면 인구의 고령화 문제다. 

마지막은 우리가 흐름flows이라고 부르는 교역과 자본, 사람, 정보의 이동을 통해 세계가 밀접하게 연결되고 있다는 것.

(15쪽 ~ 19쪽에서 설명) 



위 네 가지 메가트렌드를 책 중심 주제로 잡아 하나하나 구체적인 데이터를 제시하며 설명한다. 



이 책을 읽고 난 다음, 최근 내가 변화하지 않는 세계의 어떤 것을 보려고만 한 건 아닐까 잠시 되돌아보았다. 보이는 세계는 쉴새없이 변화하는데, 나는 그 변화의 와중에 변하지 않는 것을 찾으려고 노력한 건 아닐까 하고. 이러한 태도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비즈니스의 현장에 있는 한 사람으로 한 쪽 부분을 소홀히 했다는 반성을 하게 되었다. 


저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오래된 확실성이 사라지고 기존의 경제관계가 무너지면서 사람들의 경계심은 높아지고 사회는 큰 혼란을 느낄 것이다. 변동성이 증가하면서 신속한 의사결정이 필수가 되었다.(287쪽) 



아마 2018년이 지나면 이 책도 그 시의성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세상은 또 변할 것이고 그 때에 맞추어 이런 내용을 담은 다른 책이 나올 것이다. 그러니 이 책을 읽는다면 지금도 늦지 않았을 테니, 읽기를 권한다. 


책을 읽으면서 흥미로웠던 부분은 메모해둔다. 


***


"인도와 중국을 합친 25억명이 세계 경제에 편입되면서 기술 발전이 상쇄할 수 있는 것 이상의 원자재 가격의 상승 압박을 불러오는 수요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그래서 앞으로 50년에서 75년 동안 그리고 아마도 미래에 언젠가 인간이 화성에서 광물을 채굴할 때까지 천연 자원의 가격을 상승할 것이다."

- 케네스 로고프(Kenneth Rogoff), 하버드 공공정책과 교수 (172쪽에서 인용) 


(이런 이유로 MB가 자원투자를 했는데, 말아먹었다. 이것도 까면 무시못할 텐데 말이다. 그 많던 돈을 제대로 투자를 했다면 한국 경제에 상당한 도움이 되었을 텐데 말이다.)



전 <뉴욕타임즈> 특파원인 하워드 프렌치Howard French는 자신의 책 <<아프리카, 중국의 두 번째 대륙 China's Second Continent>>에서 지난 20년 동안 약 100만 명의 중국인 아프리카 대륙으로 이주했다고 주장했다. (121쪽) 


(중국인들은 역시 모험심이 많고 도전적이다. 한국인들도..., 아니 나부터 뭔가 해야 하나. 아프리카의 성장이 중국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임은 분명해보인다.)






미래의 속도 - 8점
리처드 돕스.제임스 매니카.조나단 워첼 지음, 고영태 옮김, 맥킨지 한국사무소 감수/청림출판

Comment +0




카불의 책장수 The Bookseller of Kabul 

오스네 사이에르스타드 Asne Seierstad (지음), 권민정(옮김), 아름드리미디어 





카불에서의 일상은 참혹하기만 하다. 실은 믿어지지 않고 믿을 수도 없다. 그렇다고 그들을 비난할 수도 없다. 오스네 사이에르스타드는 비교적 차분하고 객관적으로 서술하고 있지만, 읽는 독자는 차분해지지도 않고 주관적으로 파악할 수 밖에 없다. 남녀간의 사랑이 금지된 곳이라니. 아니, 남자의 사랑은 있지만 여자의 사랑은 없는 곳이 보다 현실에 근접한 표현일 것이다. 



A WOMAN'S LOVE is taboo, banned by the prohibition of the honor code of Pashtun life and by religious sentiment. Young people do not have the right to see each other, love each other, or choose each other. Love is a grave mistake, punishable by death. The unruly are killed, in cold blood. The massacre of lovers, or of one of them (always and without exception the woman), initiates the never-ending process of vendetta between clans. 

- Sayd Bahodine Majrouh(ed), <<Songs of Love and War - Afghan Women's Poetry>>(Other Press, New York), p.3 

 


책은 카불에서 서점을 운영하는 술탄 칸과 그의 가족 이야기를 담고 있다. 술탄 칸과 여동생 레일라, 그의 아들 만수르는 영어가 가능한 보기 드문 가족의 이야기다. 인구의 사분의삼 정도가 읽지 못하는 문맹의 국가에서, 영어까지 가능한 가족의 이야기, 책을 파는 술탄과 그의 아내들(처음은 한 명이었다가 두 명이 된다), 아들들, 그 외 어머니와 남동생, 여동생 이야기라고 하면, 어떤 기대를 할까. 


책에 대한 이야기? 아니면 어려운 환경이지만 희망을 구하며 살아가는 이야기? ... 하지만 전혀 아니다. 읽으면 읽을 수록 우리가 아는 세계도 아니고 우리가 경험해볼 수 있는 세계도 아님을 알게 된다. 도리어 이 세계 속에서 부르카를 쓰고 다닌 오스네 사이에르스타드를 궁금하게 여기며, 대단하다는 생각 밖에 하지 못하게 된다. 


그 정도로 카불에서의 일상은 지옥에 가깝다. 특히 여자들에게 있어 이 곳은 ...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카불. 그러나 참혹하기 이루 말할 수 없다. 20세기 초반 영국으로부터의 독립 이후 이루어진 여러 근대적 개혁들의 실패, 외세의 개입, 부족 지도자들과 종교 지도자들의 반발 등이 어우러진 결과물이다,라고 말하긴 쉽다. 



"예전에는 샴페인으로 축배를 들었는데."

고모 한 명이 중얼거린다. 그녀는 좀더 자유로운 시절을 기억한다. 그때는 결혼식 때 샴페인과 와인을 마셨다. 

"다시는 그런 날이 오지 않겠지."

고모가 한숨을 내쉰다. 나일론 스타킹, 서양식 옷차림, 팔을 훤히 드러낼 수 있던 시절, 그리고 무엇보다도 부르카를 쓰지 않던 시절은 이제 희미한 추억이 되어버렸다. 

- 133쪽 



현재의 아프가니스탄은 어쩌면 갑작스러운 몰락의 과정일 지도 모른다. 한 때의 과거 - 지금보다 훨씬 평화롭고 자유로운 시대를 기억하는 이조차 드물어지고 있다. 이 와중에서 술탄 칸은 아프가니스탄의 문화와 예술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적어도 그는 아프가니스탄의 미래를, 자기와 가족의 미래를 믿으며 앞을 향해 걸어나가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런 그도 집안에서는 전제 군주일 뿐이다. 


책을 읽을수록 그들의 삶을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마음으로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살먼 루시디나 이슬람 문화권에 대한 적대적인 글들을 발표한 여러 작가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헌책으로만 구할 수 있는 책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읽을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으며, 많은 이들에게 권할 만하다. 적어도 젊은 남녀간의 사랑이 허용된다는 것만으로도 축복받았음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을 테니 말이다. 






2003년 사담 후세인 궁전 안 뜰에서의 오스네 사이에르스타드 






카불의 책장수 - 10점
오스네 사이에르스타드 지음, 권민정 옮김/아름드리미디어

Comment +2

  • 재밌을 것 같은데... 품절인 모양이군요 ㅠㅠ

    • 아니 딸기님께서!! ㅎㅎ 바쁘시겠지만 번개나 한 번.. 책 구해서 드릴께요. ^^

      예전에 이슬람문명에 대한 책은 한 권 읽었는데, 그건 역사책이었고 이 책은 현재 삶에 대한 책이니, 차원이 다르더군요. 객관적으로 서술해도 이 정도니, 솔직히 답이 없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의 조선 시대도 그랬을까 하는 생각까지. ~


호황 VS 불황 - 무엇이 경제의 라이프사이클을 움직이는가 Abschied vom Homo Oeconomicus 

군터 뒤크Gunter Dueck(지음), 안성철(옮김), 원더박스, 2017년 

(* 2009년에 '호황의 경제학 불황의 경제학'으로 번역되어 출간되었다가 작년에 개정판이 다시 나왔다.)




"네가 배를 만들고 싶다면, 목재를 구하고 작업도구를 준비하고 과제를 나누고
일을 분배하기 위해서 남자들을 불러 모으지 마라. 대신에 남자들에게 끝없는 바다에 대한 열망을 가르쳐라."
- 생텍쥐베리 




자연에서는 대부분 육식동물보다 초식동물이 더 빠르게 번식한다(은행강도보다는 저축자가 더 빠르게 증가하는 것처럼). 이러한 현상을 생물학에서는 '제3볼테라 법칙'이라고 부른다. 초식동물에게는 빠르게 증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종족 보전의 요소가 된다. 반면 육식동물은 각자의 영역이 필요하므로 그렇게 빠르게 증가하지 못한다.(29쪽) 


책은 호황과 불황을 특정 지역의 초식동물과 육식동물 간의 상관관계로부터 비유하여 설명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호황과 불황에 대한 경제학 책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군터 뒤크는 수학자이며, 기업가였다. 그는 경제학의 기본 가정을 무시한다. 


경제학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경제적 목적만을 고려해서 행동하는 이른바 '호모이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라고 한다. 엄격하게 합리적인 잣대로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고 자신의 효용을 극대화시킨다는 것이다.(22쪽) 


그리고 호황과 불황을 나누고 이 시기에 따라 사람들이, 우리들이 어떻게 변하고 대응하는지를 설명한다. 심지어 이러한 시기마다 널리 호응을 얻는 경제학 이론들이 따로 있다고 말한다. 


호황기 초기에 사랑받는 이론, (신)자유주의

계속되는 호황기에 사랑받는 이론, 지속적인 혁신을 통한 성장과 모두를 위한 복지 

불황 초기에 사랑받는 이론, 케인즈의 국가프로그램

계속되는 불경기에 사랑받는 이론, 감량경여과 리엔지니어링

불경기 후반에 사랑받는 이론, (신)고전주의 


결국 호황과 불황이 일종의 사이클이라면 그것을 느리게 하는 방법은 절제 뿐이라고 말한다. 필요한 만큼 생산하고 소비하는 것.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하거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저자는 알고 있을 것이다. 책 초반에 나오는 '국부적 영리함'은 우리가 일상에서 늘 경험하는 종류의 영리함이지만, 그 영리함으로 인해 전체 시스템이 실패하게 된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다. 다시 말해 우리 모두 잘 사는 방법 대신 장기적으로 우리 모두 몰락하게 되는 방식을 택하게 되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다시 '죄수의 딜레마'와도 연관지어 설명한다. 


이러한 호황과 불황의 라이프 사이클 위에 우리들이 어떻게 대응하고 살아가는가를 살펴보면서 결국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는 것은 '스트레스'라고 군터 뒤크는 말한다. 자본주의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호황에서 불황으로 넘어갈 때 우리에게 가해지는 스트레스 때문에 우리들은 자주 잘못되고 사려깊지 못한 대응들, 행동들을 하게 되고  어쩌면 그것은 우리가 자초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현대의 경영 이론들 대부분은 기업 구성원들에게 긴장과 스트레스를 주어 생산성과를 높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책은 다소 딱딱하고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 내용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가볍지 않다. 하지만 긴장과 스트레스 속에서 탁월한 업무 성과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즐기는 이들이 보기에 이 책은 어쩌면 불순하게 여겨질 지도 모를 일이다. 이를 저자는 미국과 유럽을 나누어 비교하기도 한다. 전자가 미국적 방식이라면, 유럽적 방식은 느긋하며 긴장과 스트레스가 없는 상황에서 업무를 처리한다고. 


아마 이 책을 읽게 된다면 자기 자신은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그리고 자신이 속한 기업은 어떤 문화를 지향하고 있는지 다시 한 번 고민하게 될 것이다. 또한 호황과 불황이 발생하고 어떤 사이클을 그리게 되는 여러 이유에 대해서 생각하게 될 것이다.  




호황 vs 불황 - 10점
군터 뒤크 지음, 안성철 옮김/원더박스

Comment +2

  • 권소영 2018.10.04 13:07 신고

    저는 지금 불황기 이기 때문에 절제하고 살고 있는데요,
    제 인생의 호황기에도 지금처럼 절제할 수 있을까 질문한다면, 아닐것같아요. 절제와 중용은 참 어려운것같아요



환율의 미래

홍춘욱(지음), 에이지21, 2016년 




'시장을 보는 눈'이라는 블로그로도 유명한 홍춘욱의 <<환율의 미래>>를 읽었다. 자주 그의 블로그에 들어가 읽기도 하고 가끔 실리는 신문 칼럼들도 읽기도 하는데, 경제 현상이나 투자에 대한 통찰력 있는 의견과 쉽고 명확한 서술이 돋보이는 전문가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아직까지 나는 경제학이나 경제현상의 이해에 대해선 문외한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정도 수준은 아니겠구나 생각했다. 실은 의외로 이 책이 너무 쉽게 읽혀 다소 의아스러웠다고 할까. 어쩌면 저자의 쉬운 서술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이 책은 환율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와 이를 둘러싼 기업 경영과 투자 환경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씌여졌다. 그래서 일반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으면서도 환율을 둘러싼 주요 포인트를 짚어주고 있어 환율이나 외환 금리,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된 글로벌 시장에서의 기업 투자 환경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 


채찍효과(Bullwhip effect)과 환율과의 상관관계는 매우 흥미로웠다. 


채찍효과(Bullwhip effect) - 채찍의 손잡이 부위를 몇 센티미터만 움직여도 채찍의 끝부분이 몇 미터 이상 움직이듯, 공급사슬의 가장 끝에 위치한 기업이 공급사슬의 중간에 위치한 기업보다 월등히 큰 수요의 변화를 겪는 현상 (141쪽) 


즉 선진국 경기 전망에 따라 한국 등 개도국 사정도 달라지는데, 여기에는 시차가 존재하면서 동시에 채찍효과와 같이 매우 큰 폭의 상승과 하락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글로벌 투자자는 선진국 경기가 좋으면 한국 등 개도국 자산에 투자하며, 반대로 선진국 경기가 나빠지면 한국 등 개도국 자산을 집중 매도하는 것이다.(152쪽) 


글로벌 경기의 변동을 일으키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소비'다. 그것도 미국 등 선진국의 소비다. 이걸 이해하면 한국 등 개도국 경제가 왜 그렇게 자주 경기 침체와 상승을 경험하는지 이해할 수 있고, 미래 경기의 변동을 예측할 수 있다. (131쪽) 


외국 투자자들이나 기관 투자자들의 흐름에 따라 개인투자자들은 자주 쉽게 투자손실을 입곤 하는데, 환율과 세계 경기 흐름에 대한 이해가 어느 정도 있으면 예측할 수 있겠다. 그리고 중국이나 인도가 많은 인구로 큰 소비 시장을 형성하고 있기는 하나, 이 나라들의 소비가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한데, 그만큼 소비 비중이 낮다는 것이다. 


중국이 세계 2위의 경제권으로 성장했지만, 2013년 기준 중국의 저축률은 무려 49.5%에 이른다. (131쪽)


특히 선진국(특히 미국)의 실질 소비자 지출이 매우 중요해서 세계 경제나 기업 활동, 환율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명확히 알게 되었다. 


먼저 소비가 증가하기 시작하면 0 ~ 6개월 뒤 기업의 생산이 증가한다. 그리고 생산 증가가 6 ~ 12개월 이상 진행되면 기업의 실적이 개선되는 가운데, 서서히 설비 투자 및 신규 고용이 재개된다. 물론 유휴 노동력이 많지 않다면 이 과정에 임금 상승까지 나타나, 경제는 본격적인 호황국면에 접어든다. 반대로 실질 소비지출이 감소하기 시작하면 생산 감소가 뒤를 따르며, 이후에는 자본 지출 및 고용까지 감소하는 본격적인 경기 후퇴가 진행된다. 즉 가장 중요한 것은 민간 소비의 변동이며, 그 이외의 요인은 부차적인 부분에 불과하다. (138쪽 ~ 139쪽) 


환율 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 흐름에 대한 이해와 함께 이와 관련된 투자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권할 만한 책이다. 





환율의 미래 - 8점
홍춘욱 지음/에이지21

Comment +0

보르헤스 씨의 정원

일러스트: 메테오 페리코니 보르헤스 씨의 정원 부에노스 아이레스, 레꼴레타 인근의 어느 집에는 이중의 특권을 가진 창문이 있다. 그 창문에서는 한 눈에 하늘이 들어오고, 이웃한.....

보이지 않는 용, 데이브 하키

보이지 않는 용 The Invisible Dragon: Essays on Beauty 데이브 하키(지음), 박대정(옮김), 마음산책, 2011년 몇 번 읽다가 만 책이다. 구.....

2017년, 책 읽기의 기억

2017년, 책 읽기의 기억 1. 책 읽는 병든, 그러나 고귀한 우리들 책을 읽는 여인(안지오의 소녀) 이탈리아 안지오Anzio에서 나온 그리스 조각 복제본(대리석)으로 기원.....

보들레르의 수첩, 보들레르

보들레르의 수첩 샤를 보들레르(지음), 이건수(옮김), 문학과지성사, 2011년 1846년 산문과 1863년 산문이 함께 실려있고 죽은 후 나온 수첩까지 실린 이 책은 기억해.....

메시Messy, 팀 하포드

메시Messy - 혼돈에서 탄생하는 극적인 결과 팀 하포드(지음), 윤영삼(옮김), 위즈덤하우스 이 책은 확실히 기존 통념을 깨뜨린다. Messy라는 제목 그대로, 무질서와 혼.....

단테:세속을 노래한 시인, 에리히 아우어바흐

단테 - 세속을 노래한 시인 에리히 아우어바흐(Erich Auerbach) 지음, 이종인 옮김, 연암서가 좋은 책이다. 간결한 문장으로 핵심을 찌른다. 이종인 선생의 번역도 .....

칠드런 액트, 이언 매큐언

칠드런 액트 The Children Act 이언 매큐언 Iwan McEwan(지음), 민은영(옮김), 한겨레출판 살만 루시디(Salman Rushdie)가 추천한 이언 매큐언.....

맑스주의와 형식, 프레드릭 제임슨

변증법적 문학이론의 전개 (개정판: 맑스주의와 형식, 원제: Marxism and Form) 프레드릭 제임슨 Fredric Jameson (지음), 여홍상, 김영희(옮김), .....

이사와 근황
현대 사진과 레디메이드
현대 사진과 레디메이드
현대 사진과 레디메이드
현대 사진과 레디메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