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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단상 +77


계절과 계절 사이. 도로와 도로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 그 사이에 앉아 책을 읽으며 창 밖과 창 안쪽을 번갈아 바라다보았다. 풍경 안에 있지만, 풍경 밖으로 계속 밀려나갔다. 단어들이 쉴 새 없이 떠올랐지만, 그 어느 것 하나 문장이 되지 못했다. 복 없는 단어들이여. 결국 사라질 것들이다. 


고비 사막에서 발견되었다는 미이라의 뉴스가 떠올랐다. 하지만 가고 싶은 곳은 타클라마칸 사막이다. 어쩌면 우리들은 모두 사막 속으로 사라질 지도 모를 일이다.


토요일 오전, 동네 카페에 앉아 이 사람, 저 사람 보면서 잠시 나를 잊었다. 내가 있는 곳, 내가 처한 곳, 내 앞 절벽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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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과, 내 처지와 다르게, 하늘은 맑고 바람은 불고 대기는 상쾌했다. 아마 누구에겐 이런 날씨가 감미로운 휴식이 되겠지만, 누구에게는 감미로운 불안이 되었을테지. 그 불안 속에서도 다행히 한낮의 더위는 견딜만했고 아침과 저녁의 한기寒氣는 때때로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 마음 위에 앉아 아침 저녁으로 지친 손 두 개를 모으고 신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넨다. 파스칼Pascal을 읽은 까닭에, '저 끝없는 우주의  영원한 침묵' 앞에서도 놀라지 않았다. 그 동안의 독서가 삶의 고통을 견디게 하는 사소한 위안이 될 것이라 여겨지 않았건만, 예상하지 못한 사이, 다행스러운 일 하나가 더 늘어났다. (이렇게 '다행多幸'이 쌓으면 내 삶도 복으로 가득차게 될 지 모른다)


나이가 들자 눈물이 많아지고 건강은 나빠졌다. 주량은 변함이 없으나, 술친구는 줄고 술 깨는 시간은 늘어났다. 여자친구들은 사라졌고 남자친구들은 만나기 어려워졌다. 때로 술에 취해 전화를 하려고 꺼내지만, 걸 곳이 없다. 그 시절, 그 계절, 그 바람 속에서 건조한 전화기 속에 잘도 숨어있었던 그/그녀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그러나 정신없이 바쁜 탓에 쉽게 감상에 젖지 않는다, 못한다. 



8월의 어느 금요일 동네 근처 공원에 올라가 한강 북쪽을 향해 보았다. 남산타워가 저렇게 보이는 날도 일년에 몇 번 있을까 말까 인데, 그런 날 속에 있었다. 하지만 기쁘지도 슬프지도, 그저 무덤덤했다. 무감각해졌다. 애써 태연한 척했던 것일 지도 모른다.  



그 다음 날, 토요일 오후 약속이 있어 집 밖으로 나서는 길가에 서서 사진을 찍었다. 하늘 모습이 좋았다. 서쪽 하늘은 들떠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 하늘 아래서 저렇게 노래 부를 일들만 생겼으면 하고 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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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듯이 누워 밑에서 올라오는 열기와 얇게 흔들리는 콘크리트 건물의 건조함에 묻혀 아주 짧게 내 삶을 되새기며 슬퍼한다. 이름 모를 바람이 들어와 잠시 내 몸 위에 살짝 앉았다 지나고, 매 순간 매 순간, 아니 그 때, 그리고 그 때도, 그리고 그 때도, 후회는 대양의 밀물처럼 밀려와 내 마음을 휩쓸고 지난다. 


나이가 든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긴다. 그건 피부가 쭈글쭈글해지는 것이 아니다. 아무렇지 않던 곳이 아파지는 것도 아니다. 갑자기 잘 보이던 글자가 흐릿하게 보인다고 해서 나이가 드는 것도 아니다. 나이가 든다는 건, 후회와 한탄이 많아지는 것이다. 젊을 땐 후회스럽지 않던 것이 갑작스레 잘못한 것임을 깨닫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잘못으로 나이든 지금 아파하고 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많이 아프다. 


그렇게 우리는 나이를 먹는다. 나이를 먹는다고 마음이 건강해지는 것도 아닌데, 나이 먹는 게 마치 훈장처럼 보일까 고개를 푹 숙이고 걷는다. 조심하게 된다. 함부로 말을 놓지 못하고 깍듯해지려고 노력한다. 늘 배우려고 하고 겸손하려고 하고 말을 아끼려고 한다. 하지만 나이를 먹은 나는, 그것을 무시라고 종종 오해하기도 한다. 


반듯이 누워 천정을 바라보다, 삶과 죽음 사이를 흐르는 시공간과 숨겨진 우주를 생각했다. 현대물리학에선 미래란 이미 정해져있다고 말하지만, ... 나는 한사코 그걸 부정하고 싶다. 다시, 다시, 나이 먹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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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에 까페 하나가 생겼다. 몇 번 지인들과 자리를 함께 했다. 그 까페 한 쪽 면의 창문들은 어두워지면 저 멀리 63빌딩이 보이고 강변북로를 잔잔하게 물결치는 파도처럼 수놓는 자동차 불빛들이 한 눈에 들어오는 야경을 가졌다. 사무실의 술자리를 줄이니, 동네 술자리가 늘어났다. 동네 술자리가 마음 편하다. 술을 많이 마실 염려도 없고 많이 마시더라도 걸어서 집에 가니 걱정 없다. 


비가 많이 내렸다. 내린 비만큼 내 치아와 잇몸 상태도 엉망이었음을 최근에서야 알았다. 매주 치과에 가서 치료를 받고 있다. 나이가 든다는 걸 마음보다 몸이 먼저 안다. 우리는 나이 드는 훈련을 받지 못했다. 늘 상투적으로 말한다. "몸은 늙었으나, 마음만은 이팔청춘이야"라고. 


그런데 저 상투적 표현이 얼마나 우리 사회를, 우리 마음과 몸을 병들이는가에 대해선 주목하지 않는다. 청춘의 마음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경험해본 이는 다 아는 사실 아닌가. 무수한 도전과 실패로 얼룩져 중년의 몸과 마음까지 영향을 주는 그 이팔청춘! 이팔청춘이 뭐가 좋다고. 


그래, 이팔청춘 시절 그대의 사랑은 행복했나요? 그대의 학창 시절은 즐겁고 유익했나요? 그대의 대학 시절은 바람직했나요?  


제대로 된 사회는 그 나이에 맞는 역할과 책임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제대로 된 역할과 책임에 대해 고민해 볼 시간 없이 오직 대학 입학만을 준비한다. 사춘기의 철없지만 향기롭게 들뜬 사랑에 대해서도 그 어떤 조언도 받지 못하고, 머리 가득하게 퍼지는 성적 유혹에 대해서도 온 몸으로 부딪히며 아파할 뿐이다. 그렇다고 대학이 딱히 나은 것도 아니어서, 그 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건 성적 방종이거나 자유, 혹은 학문 탐구에 대한 무책임함이다. 그리고 이 때부터 갑자기 괴롭히는 것이 생기는데, 그건 취업 준비다. 



이팔청춘이 한참 지난 사람들끼리 모여 앉아 와인을 마셨다. 비는 쉴새없이 내렸고 투명한 유리잔은 채워졌다가 비워지길 반복했다. 말은 끊겼다가 이어졌고 시간은 쉼없이 흘렀다. 어느 새 나이가 들어 이제 살아갈 시간이 살아온 시간보다 적게 남은 우리들에게 청춘이란 무엇일까. 늙어간다는 건 무얼까. 인생은, ... ... 


그저 의미없이 지나갈 뿐이다. 아. 다행이다, 까뮈와 베케트를 읽어둔 것은. 까뮈와 베케트는 내가 젊었던 시절, 이 생이 아무 의미 없음을 알려주었기에, 나는 어떻게든 살아있는 것이다.


치과 치료가 있는 날이면 아련한 고통에 정신이 없다. 진통제를 먹어야 하나. 그나저나 목요일 통영에 가는데, 가서 뭘하지. 회의를 끝내고 뭘하지. 혹시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 통영에 사는 이가 없었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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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내 나이에 놀란다. 때론 내 나이를 두 세살 어리게 말하곤 한다. 내 마음과 달리, 상대방의 나이를 듣곤 새삼스레 나이를 되묻는다. 내 나이에 맞추어 그 수만큼의 단어를 뽑아 지금 이 순간의 느낌 그대로 적어볼까 하는 생각만 하고 있다. 그러게. 아직도 나는 내 글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한다, 않는다. 


나이만 앞으로, 앞으로,  내 글은 뒤로, 내 마음은 뒤로, 내 사랑도 뒤로, 술버릇도 뒤로, 뒤로, 내 몸도, 열정도, 돈벌이도, ... 모든 게 뒤로, 뒤로 밀려나간다. 


한때 꿈이, 이번 생의 끝에서 이 생을 저주하고, 다음 생에선 바다에 갇혀 그 바다에서 나오지 못한 채, 깊은 바다로 내려가 사냥을 하다 홀로 죽는 향유고래가 되고 싶다고 말하고, 적고, 읊조렸다. 그 꿈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한 것이 십 여년 전이다. 아무도 귀 기울이지도 않았고, 기억하지 않았고, 가을에 떨어져 겨울을 뒹굴다 다음 해 봄날 따뜻한 햇빛 속에서 때론 축축하게, 때론 건조하게 썩어들어갈 이파리를 그 꿈은 닮았다. 


다행히, 그런 이파리를 닮은 바다표범이 수조를 헤엄치는 모습을 보자, 내 마음이 놓였다. 잠시 눈을 감았다. 그 수조 속으로 들어갔다. 나는 말을 잃었고 얼굴을 잃었고 사랑을 잃었다, 그러자 물 속 자유를 얻었다,고 상상했지만, 계속 눈을 감고 있을 순 없다, 없었다.


 


어느 토요일 오후, 가족과 함께 한강대교까지 걸어가 칼국수를 먹었다. 거리는 고요했고 마음은 황폐했다. 대기는 건조했고 높은 하늘은 나에게, 우리에게 무관심했다. 



하지만 무관심할수록 매력적인 하늘은, 때론 우리를 기분좋게 한다. 그게 참 짧은 순간일지라도. 그렇게 오후가 가고, 또 오후가 가고. 어린 아이는 흑석동과 본동 사이의 숲에서 이루어질 숲 체험 교실을 기대하고 있었다. 도시에서의 유년기란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까. 나에겐 없는 풍경이다.


나에겐 있고 당신에 없는 걸 내가 줄 수 있으리라 여겼지만, 알고 보니, 내가 가지고 있는 건 거의 없었다,는 걸 태어난 날보다 죽을 날이 더 가까운 어느 날 새삼 깨닫게 되었다. 4월, 5월, 내내 제안서만 쓰고 프리젠테이션만 하다 시간을 보냈다. 어떤 회사로의 이직은 계속 연기되다가 결국 물거품이 되었고, 그 일 여년 사이 두 세 군데의 입사 제의를 거절한 것을 후회하게 될 줄 몰랐다. 


많은 일들이 어긋나기 시작했고, 진행 중이고,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어느 중년의 봄날들 사이, 방통대 영문과 졸업 논문은 스케치만 하다 결국 작성하지 못했고, 어떻게든 마무리해보겠다는 생각만으로 <<Shakespeare and The Mannerist Tradition>>을 주문했다. 여름이 오기 전에 '제안서 쓰는 법'을 사무실 멤버들에게 강의할 예정이고, 그리고 나는 꿈을 꿀 것이다. 그런데, 


나는 어떤 꿈을 꾸어야 할까. 향유고래는 이미 죽었고 내 마음은 식었다. 그 이전의 기억은 나지 않고 그 때를 수놓았던 무수한 단어들은 공기 속에 묻혀 찾을 수 없을 정도로 투명해졌다.  


방통대 졸업 논문 스케치 속, 멕베스는, 그 가련한 멕베스는 마녀들의 예언에 자신을 놓아버렸다. 마녀들의 예언은 실현되지만, 그건 그리스 비극의 신탁이 아니다. 신탁 앞에서 비극의 영웅은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장엄하게 자신의 고결함을 지키지만, 멕베스는 마녀들의 예언 위에서 잃어버린 자신을 찾지 못한다. 고대의 운명과 근대의 운명이 확연하게 갈라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멕베스를 마주 하면서 드는 그 아련한 불쾌감은, 외부의 힘에, 유혹에 끊임없이 흔들리는 나와 닮아있어서 그런 걸까. 


 


늦은 5월의 수요일, 아침부터 덥다. 그대 목덜미도, 내 손도, 당신의 구두도, 내 마음도 쓸쓸한 땀으로 가득 찬다. 두 손을 모아, 행복한 일들이 연거푸 일어나길 기도한다, 마음 속으로, 이 비정한 도시가 떠나갈 정도로 큰 목소리로 외친다, 외치고, 외치지만, 아무도 들리지 않는, 들을 수 없는, 그리고 흔적이 남지 않을 그 소리만 가득 안고 오늘 하루을 산다. 그렇게, 당신과 똑같이, 그렇게 하루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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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바람은 사무실 안으로도, 내 마음으로도, 그대 가슴으로도 밀려들지 않는다. 늘, 그렇듯, 우리에게 싱그러운 바람은 비켜나간다. 그렇게 청춘은 지나갔고 노년은 음울한 기운을 풍기며 낮게 깔려 들어와 자리잡는다. 노안이 시작되었다,는 말을 무심결에 했다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숙였다. 자랑은 아니지만,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라, 젊은 시절 상상했지만, 마치 SF 영화와 같다는 걸 나이 들어서야 안다. 


이런 비-일치는 우리 생애 전반을 물들이고도 모자라, 이 도시를, 이 나라를, 이 지구를 물들인다. 그래서 엘레야의 제논은 '날아가는 화살은 정지해있다'고 말한 것일까. 그 때 그녀의 손가락 끝을 잘 살펴볼 걸, 지금에서야 후회한다. 


일요일 오후, 몇 시간 일을 하고 난 다음, 남은 일을 체크하곤 집에 가긴 틀렸다며, 중얼거렸다. 그렇게 시간은 가고, 봄날은 가고, 주말은 지나간다. 


우리의 희망은 새롭게 시작될 수 있을까. 과연 그럴까. 주말의 여유가 그리운 어느 봄 일요일이 조용히 사라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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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 맨지오니의 저 LP가 어디 있는가 찾다가 그만 두었다, 술에 취해. 몇 해 전 일이다. 혹시 결혼 전 일일 지도 모른다. 아니면 술에 취한 채 이 LP를 찾았는데,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고, 그 사이 나이가 든 탓에 찾았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


'수도 있다'서술어이 가지는 느낌은, 젊었을 때는 '가능성'이었으나, 나이가 들면 무너진 터널 앞에 서 있는 기차같다. '수도 있다'는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이었는데, 무모하게 시도했다는 의미다. 가령, '그녀와 키스할 수 있었는데', '그녀에게 고백할 수 있었는데', 혹은 '사랑하던 그를 붙잡을 수 있었는데' 따위의 표현들과 밀접한 연관를 갖는다.


결국 생명이란 생명의 지속과 연장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니, 그 시작은 작은 만남과 사랑으로 포장될 것이다.


 '수도 있다'는 서술어의 사용은, 아쉽다는 느낌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기적이 세상에 존재한다면, 그건 가능한 일이었음을 주장하기 위한 첫 계단이다. 애초 불가능한 것에 대한 도전(무모한 시도)을 가능성의 회상으로 바뀌고 기적의 출현(열망)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결국 나는 LP가 어디에 있는지 찾지 못했고 대신 다른 LP를 찾아 틀었다. 


'브룩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오역이지만, 그렇게 굳어진)의 '러브이데아'를 들으며 제니퍼 제이슨 리가 분한 트랄라를 떠올린다. 


결국 삶이란, 우리가 어떻게 어긋나는가를 하나하나둘 되새기며 깨달아 가는 과정이다. 되새기지도 않고 죽는 이들이 한없이 부럽기만 저녁, 몇 주 동안 계속된 치통과 함께 불안한 미래는 장막처럼 내 앞에 드러누워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래도 'Feels So Good', 'So Goo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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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우연히 마주친, 새로 생긴 동네 더치 커피 전문점, 스테이지 나인. 

그리고 잠깐 동안의 커피 여행. 

짧고 굵은 목넘김, 낮고 은은한 향기, 

초봄 햇살이 빌딩 사이로 사라지고 그 틈새를 물들이는 어둠.  

출렁이는 어두움이 입술에 닿을 때, 살짝 미소를 짓는다. 

아, 나는 역시 예가체프구나. 

우아하고 깊은 시원함. 시큼함. 쓸쓸함. 허전함. 

지난 청춘 깊이 숨겨져 있던, 늙어가는 피부 아래 잠겨있던, 그 기억이 

무심한 거리 위로 모습을 드러내며, 함께 다가오는 공포여. 내 삶, 미래의 두려움이여. 

쫓기듯 뭉게, 뭉게, 뭉게

위로, 위로, 올라가는 내 삶의 진정성이여, 

모든 것을 앗아가는 들뜬 모험이여, 

얼마 남지 않은 내 영혼의 불꽃을 앗아갔던 사랑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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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 고장. 

아파트 계단을 내려오다 만난 봄,날의 기억. 

언제 인생의 봄은 다시 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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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지 않아요?"라고 묻는다. 매서운 바람이 어두워진 거리를 배회하던 금요일 밤, 그림Grim에 가 앉았다. 그날 나는 여러 차례 글을 쓰지 않냐는 질문을 받았다. 가끔 내가 글을 썼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스스로에게 묻지만 대답할 수 없다. 적어도 그것이 해피엔딩은 아닐 것임을 나는, 어렴풋하게 안다. 마치 그 때의 사랑처럼. 


창백하게 지쳐가는 왼쪽 귀를 기울여 맥주병에서 투명한 유리잔으로, 그 유리잔이 맥주잔으로 변해가는 풍경을 듣는다. 


맥주와 함께 주문한 음악은 오래되고 낡은 까페 안 장식물에 가 닿아 부서지고, 추억은 언어가 되어 내 앞에 앉아, "그녀들은 무엇을 하나요?"라고 묻는다. 그러게. 그녀들은 무엇을 할까. 그리고 그들은 무엇을 할까. 콜드플레이가 왔다는데,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나이는 시간을 먹고 나는 청춘을 먹었다. 게걸스럽게 먹는 사이, 많은 것들을 잃고 얻었다. 노트 한 장을 찢어 길게 반으로 접어, 한 쪽에 내가 잃은 목록을, 한 쪽에 내가 얻은 목록을 적는 사이, 계절이 가고 계절이 오고, 너무 하얀, 그녀의 창백한 볼을 닮은 눈이 내린다. 반쯤 마신 맥주 잔 위로 하얀 눈이 내린다. 하얀 눈이 쌓인다. 쌓인 눈 위로 서로 손을 마주 잡은 그들이 잔 위로 걸어나와 대학로 거리 어둠 사이로 사라졌다. 그렇게 취해가던 금요일 밤, 다행히 나는 그녀들에게 전화를 하지 않았다, 실은, 전화번호도 알지 못했다, ... 그리고 죽을 때까지 그녀들과 만나지도 못할 것이다. 


이 만날 수 없음은 얼마나 큰 행복인가. 적어도 나는 앞으로 그 찬란하던 고통을 받지 않아도, 그렇게 투명하던 눈물도, 끝없는 저주의 언어를 경험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다시 볼 수 없을, 하얀 잔 위로 그 발자국처럼, 그 쓸쓸하고 아름다웠던 청춘의 발자국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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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맘 때 대기가 제일 좋다, 나는. 적당한 차가움이 귀 끝을 스칠 때 따뜻한 술 한 잔이 떠오르고 무심한 거리 뒷골목에서 만나는 인생들에게서 정을 느낀다. 그대들과 함께 술 취해가던 그 해 겨울이 그리워지는 이 맘때, 초겨울, 나는 요즘 대기의 결이 좋다. 




아.. 그리고 술. 마시지 않은 지도 꽤 지났구나. 아름다운 술자리가 언제 였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그리고 아래 광고. 참, 술 생각, 옛날 생각, ... 휴식이 간절해진다. 요즘 너무 바쁘고 피곤하고 힘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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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각 시절에는 직장의 중요성을 잘 몰랐다. 받는 돈이 적거나 없어도 하고 싶은 일은 언제나 있었다. 하지만 결혼을 하자,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해야만 했다. 그제서야 경영의 가치나 기업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대체로 경영진의 잘못된 의사 결정의 피해는 불행하게도 회사 구성원들이 진다. 그러나 작은 회사의 경우에는 (약간 달라서) 경영진이 책임지고 아예 집안이 망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기업 경영과 연관된, 잘못된 정치적 관행(뇌물 같은 것들)에 대한 책임은 이상하게도 기업가들만 진다. 정치가나 행정가들은 교묘하게 기업가들의 마음을 움직여 금전적 이익을 취하고, 그러다가 일이 잘못되면 그 책임 대부분은 기업가나 기업, 더 나아가 그 기업이 있는 지역사회가 진다(대우조선처럼).


정치과 기업의 밀착 관계를 끊어야 하고, 정부나 정치가들은 기업가들이 올바른 경영을 할 수 있는 인프라를 제시해주어야 한다,고 교과서에선 말하지만, 한국은 아직 한참 멀었다.


고성장 시대를 살아온 노인네들은 저성장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 상당수는 우연히 사놓은 땅이나 가게로 돈을 벌었다. 특히 서울이나 수도권은 이런 경우가 너무 많다. 그들에게 노년은 행복한 일상의 연속이며 그들이 소유한 부동산의 가격만 떨어지지 않으면 된다(그래서 그들 대부분은 모두, 한결같이 박근혜를 지지했다. 이는 정치적 의견이라든가 나라의 미래, 젊은 세대들의 삶과는 무관한 결정이다).


그러나 절약해서 모은 돈으로 기업체를 차린 사람들 대부분은 망해, 흔적도 없다.(일부는 성공하여 큰 기업체를 일구었을 테지만, 아마 문어발 확장을 하거나 노동자의 삶과는 무관한 경영을 할 것이다) 즉 노동의 댓가는 실패이거나 해고이고, 부동산 투자의 대가는 여유로운 일상과 이익이다(그래서 노인 빈곤층은 부동산을 사지 않았던 노동자이거나(땅에 투자하는 것은 어리석다고 믿는 이들), 사업을 하다 쫄닥 망한 이거나, 그 외 사회시스템이 커버하지 못했던 어떤 비극을 당했거나 그런 환경 속에서 나고 자란 이들이다).


잘못된 것인 줄 알지만, 우리 세대 사람들은 결국 실패하거나 해고당할 것이라는 생각에, 돈을 모아 아파트나 빌라를 구입하고 만다. 부동산의 시대가 끝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 앞에서(왜 부동산을 사는가에 대해 원인 분석 없이 맨날 부동산 대책만 낸다. 마치 왜 젊은 부부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가에 대한 원인 분석 없이 출산 대책만 내는 것처럼).


좋은 경영자가 살아남고 승승장구하여 좋은 일자리를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나라가 되었으면 하고 바라지만, ... 쉽지 않고, 쉽지 않을 것이다. 저성장 시대의 우리 삶을 그나마 지탱하게 해줄 것은 좋은 경영자가 아닌 훌륭한 정치가일 테지만, 훌륭한 정치가가 살아남기엔 이 나라는 너무 개판이다. 멍. 멍. 멍.


포스코가 인수하여 망가뜨린 회사에 대한 책임은 포스코가 아니라 그 구성원이 진다. 하긴 경영이란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경영 실패의 댓가는 가혹하기만 하다. 그러니, 올바른 정치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혁신은 실패로부터 시작된다고 하지만, 이래저래 실패는 가난한 기업가나 기업체에 다녔던 직장인들이 지고 말기 때문이다.


왜 사업을 했냐고? 왜 그런 회사를 다녔냐고? 평생 직장이 사라진 지금, 왜 노력을 게을리 했냐고? 웃긴 개소리다. 멍. 멍. 멍. 그건 시스템이 잘못되어 모든 실패의 책임을 개인에게 지우기 때문이다. 시스템의 문제이고, 시스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건 정치다. 경제를 살리는 것도 결국 정치다. 좋은 정치가가 필요한 시대지만, 나이든 이들은 얼마남지 않은 그들의 삶을 걱정할 뿐, 미래 세대들의 삶이나 그들이 살아가야 할 사회를 걱정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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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수록 명절 보내기가 더 어려워진다. 내가 그런 것인지, 아니면 세상이 그렇게 변해가는지 모르겠지만. 과거는 화석이 되어 이젠 향기마저 풍기지 않고 미래는 어두운 터널을 지나 끝도 보이지 않는 계곡 사이로 이어진다. 중년이라 그런 건가. 돌파구는 늘 위기에 있다지만, 우리 인생은 늘 위기 위에 있다. 올웨이즈 리스크 모드라고 해야 하나. 


음악을 들었지만, 예전같은 감동을 찾기 어려웠다. 이렇게 늙어가는 건가. 



가을이 왔다고들 말하지만, 내 마음은 아직 끔찍했던 여름이 이어져, 계속 지치고 땀이 나고 흔들거린다. 그래도, 기어이 가을은 올 것이고, 그래도 나는 나이가 계속 들어갈 것이고, 그래도 내 아이는 계속 자라날 것이다. 시간이 흐른다는 건, 어쩌면 다행한 일인지도 모르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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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곰팡이 

-산책시 1 



아름다운 산책은 우체국에 있었습니다

나에게서 그대에게로 편지는

사나흘을 혼자서 걸어가곤 했지요

그건 발효의 시간이었댔습니다

가는 편지와 받아볼 편지는 

우리들 사이에 푸른 강을 흐르게 했고요


그대가 가고 난 뒤

나는, 우리가 잃어버린 소중한 것 가운데

하나가 우체국이었음을 알았습니다

우체통을 굳이 빨간색으로 칠한 까닭도

그때 알았습니다. 사람들에게 

경고를 하기 위한 것이겠지요



- 이문제, <<산책시편>> 중에서  




이문재의 <<산책시편>>(민음사)가 있는데, 서가를 찾아보니 없다. 정리되지 않는 서가, 정리할 시간도 없는 서가, 이젠 책 읽을 시간과 여유마저 사라지고, 이 시도 읽었으나 이젠 기억나지 않아, 신문에서 읽은 다음, 출처를 찾아본 다음에서야 시집을 가지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 


이문재를 읽던 시간도 이젠 드물어지고, 가을은 아직 저 멀리 있기만 하다. 끝나지 않을 것같은 여름밤, 책은 읽히지 않고 잠도 오지 않는데, 어찌 꿈을 꿀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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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토요일, 거칠고 가느다랗게 물이 내려가 커피에 닿는 순간, 참 오랜만이다,라고 속삭였다, 스스로. 내가 나에게 낯설어져 가는 40대구나.



실은 나이가 든다는 것에 대한 지각은 없고 누군가가 나이가 들어가는구나를 보며, 내 나이를 되새기게 된다. 아침에 내린 커피를 다음날 새벽까지 마시고 있다. 집중하기 어려운 환경은 마음까지 어수선하게 만든다. 미하일 길렌의 음반을 꺼내 듣는다. 베토벤이다. 베토벤도 참 오래만이다. 


그동안 어떻게 살고 있었던 걸까,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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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기사를 접했다. 그 기사 제목은 <클린턴 외교 핵심 캠벨 “한국군에 전작권 전환 반대”>이다. 일견 당연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미 민주당 인사에서 나왔다는 것에서 내가 순진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까지 미쳤다. 이미 '주한 미군 문제'라든가 '세계 경찰국가로서의 미국'에 대해선 이상돈 교수의 <<공부하는 보수>>라는 책에서 잠시 엿본 바 있었지만, 나는 두 개의 미국-공화당 정권의 미국과 민주당 정권의 미국-이 있다면, 이 둘이 확연히 다를 것이라는 건 내 일방적인 견해였다. 적어도 미국 내부의 문제에 대해선 서로 다를 수 있겠으나, 미국 외부의 문제에 대해선 그들은 하나의 목소리를 가지고 이거나 서로 다른 척 할 뿐이다. 이에 짧게 내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좀 비관적이긴 하지만. 


* * 


상식적인 미국 정치인이나 행정가이라면 당연히 미국의 국익을 우선시할 것이고, 한반도에서 만일 전쟁이 발발한다면, 한국 정부가 전시 작전권을 가지는 것에 반대할 것이다. 또한 주한 미군이 철수하는 것에 대해서도 반대하고. 다만 트럼프와 같이 주한 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미국 내 보수주의자들이 있다. 하지만 이들의 의도는 주한 미군 철수가 미국의 국익에 반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나, 미국 내부의 문제를 우선시하고 있을 뿐이며, 운이 좋을 경우에는 한국의 방위비 분담액을 더 받아낼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하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다 아는 사실일테지만) 그들이 전시 작전권 양도나 주한 미군 철수에 대해 반대하는 이유는 그만큼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는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반도는 여러모로 정치적 쓸모가 많은 땅이고 한국도 그런 나라다. 지극히 상식적인 애국주의자들인 그들은 한국이 군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자주적인 발언권이나 행동을 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들의 눈에 노무현 전 대통령은 얼마나 보기 싫었겠는가. 참여정부의 딜레마는 적절한 수준에서의 그 전 정권과는 다른, 주권국가 한국의 입장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발언이나 행동을 해야겠지만, 이 발언이나 행동이 미국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당돌을 넘어 황당해 보였을까. 이런저런 고려 속에서 한국군 파병과 같은 일들을 도모했지만, 당장 눈 앞의 것들에만 신경 쓰는 국내 진보(?) 언론과 인사들은 무조건 반대만 하고 있었다,는 걸 지금은 알까. (알겠지만 후회하진 않을 게다, 아마.)


만일 전쟁이 나면, 한국은 버리는 패다. 시간을 벌 수 있고 전 세계 여론에 호소하기 아주 좋은 나라다. 인구 밀도가 매우 높으며 사상자 수는 그 이전 전쟁들과는 비교되지 않을 것이다. 또한 경제 시설들이 파괴될 것이고, 심지어 원자력 발전소들까지 있으니, 그 파급효과는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러니 전쟁 나면 이 땅은 그냥 사람이 살지 못하는 땅이 된다.


그리고 전쟁을 수행하는 입장에선 한국은 그냥 버리고 일본에서 다음 일을 도모하면 된다. 한국이 전쟁터가 된 상황 속에서 앞으로의 정치적 협상을 진행하면 그 뿐이다. 최악의 경우를 가정한 것이지만, 언제나 최악을 가정하고 모든 정치나 행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미국의 입장에서 일본은 얼마나 좋은 친구인가. 적어도 한국보다 일본이 더 믿을 만한 친구다. 역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또한 일본 스스로도 중국과 한국보다는 미국과 친구가 되는 편이 낫다고 믿는다. 그들은 아시아 지향적이 아니라 탈 아시아를 원한다. 동시에 아시아의 맹주가 되고 싶어하지만, 역사적으로도 경제, 정치적으로 그것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러니 그들은 아시아를 넘어서 아시아 속으로 들어오고 싶어한다.


더 불행한 일은 한국의 보수적인 정치가들, 행정가들과 군인들도 전시 작전권을 회수하는 것에 대해, 주한미군이 철수하는 것에 대해 반대한다. 그들은 그들의 정체와 실력이 탄로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들은 그들 스스로 전쟁을 수행할 능력도, 전쟁을 책임질 능력도, 전쟁을 책임질 생각도 없다. 어차피 분단국가 한국은 유엔 사령부 밑에 전쟁이 일시 중단된 상태이니, 전쟁에 대해선 유엔이 책임질 일이라고 여긴다. 유엔사무총장이 한국인인 것과도 아무 관련 없다. 어차피 유엔사무총장은 얼굴 마담이라는 걸 잘 알고 있으니까. 


독자적인 전쟁 수행 능력이 없기 때문에 독자적인 전쟁 수행 능력을 키우면 되지 않겠느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한국 군대는 유엔 사령부 아래에서 미군 주도로 수립된 전쟁 작전 아래에서 움직이는 것으로 수십 년 동안 훈련해왔다. 이게 전시 작전권을 가지고 온다고 해서 바로 될 것이라 믿을 만큼 순진한 사람들이 아니다. 그러니 전시 작전권 환수에 대해 반대하는 것이다. 전쟁 수행 능력이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걸 위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인적, 물적 투자를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으니, 사서 고생하지 말자는 것이다.


더구나 독자적인 전쟁 수행 능력은 미국도 원하지 않는 일이다. 그 동안 정치적으로 약점을 가진 정권들은 미국의 요구대로 독자적인 수행 능력을 가지지 않았고 노력하지도 않았다. 어차피 미군이 가진 핵무기만으로 한국군의 독자적인 전쟁 수행 능력 따윈 필요 없으니까. 박정희 대통령 시절 핵무기 개발에 욕심을 낸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냥 한 번에 이런저런 고민을 다 해결해줄 수 있는 녀석이니까.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실패하지 않았는가. 그 이후 한국 정부는 독자 전쟁 수행 능력을 키우기 보다는 낙후된 산업 시설이나 경제를 살리는 것이 정치적으로 더 중요한 사안이 되었다. 독자적인 전쟁 수행 능력은 원한다고 해서 될 일도 아니고(미군의 반대로), 그리고 하루 아침에 이루어질 일도 아니니, 다른 것에 집중하는 것이 나은 일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다. 전시 작전권에 대해선 정권이 여러 번 바뀌고 나서야 검토된다. 우리가 귀가 닳도록 들었던 ‘자주 국방’이라는 것이 말로만 아니라 실제로 가능한가에 대한 검토가 이루어진 것이다. 그런데 이 듣기 좋은 ‘자주 국방’을 하기 위해 군대는 정말 많은 부분이 바뀌어야 한다. 그런데 하고 싶을까? 거의 모든 걸 바꾸어야 하는데, 그냥 그대로 놔두어도 아무 문제가 없는데. 미군이 있는 상황에서는 기본적으로 전쟁 억지력이 생기고 미군이 시키는 대로만 해도 전쟁에서 이걸 것이 뻔한데.


자주 국방을 위한 독자 전쟁 수행 능력을 가지기 위해 얼마나 많은 물적, 인적 투자를 해야 하는데. 그리고 한창 투자가 진행 중인 상태에서 만일 주한 미군이 철수한다면, 그리고 전쟁이 나면? 말로는 자주국방을 외치지만, 실제로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은 자주국방엔 별 관심이 없다. 도리어 자주국방 대신 미군의 영향권 안에 있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믿는다. (사드 배치 결정은 이러한 배경 아래 결정된 것에 다름 아니다) 


사드를 배치하겠다는 기사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반대하고(아니면 관심에 없거나) 주변국가들까지 나서서 반대하는 상황에서도 그 고집을 꺾지 못하는 이유는 미군의 영향권 아래 계속 머무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한국의 국익에 부합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과연 그럴까? 단기적으론 그럴 지도 모른다. 이 단기적 고려가 중장기적 관점에서 한국이라는 나라, 한국이라는 나라가 걸어온 반만년의 역사와는 어떤 관련을 맺고 미래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에 대한 고려는 아예 없다. 하긴 그런 생각을 했다면 저런 결정도 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의 한국 정부나 군대는 군사적인 측면에서는 확실하게 한 나라를 책임지고 이끌 생각이 전혀 없다. 아예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여길 지도 모른다. 실은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도리어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여길지도 모른다. 적어도 군사적인 측면에서 말이다. 어차피 자주 국방이 안 되고 앞으로 하지 않을 것라면, 그들의 입장에서 '사드 배치'는 실보단 득이 많은 수다. 그러니 마다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그리고 미국한테 밉보여서 뭐 좋은 게 있다고. (과연 그러할까? 중국의 경제 제재, 러시아의 군사적 조치들은 미국을 위험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을 위험하게 할 것이다. 앞으로 하나 두 개 어떻게 실현되는가를 가슴 아프지만, 지켜볼 수 밖에)


나는 이 상황 속에서, 이런 생각을 하는 정치인, 행정가, 군인들, 그리고 이들로 이루어진 정치집단을 지지하는 한국 국민들이 이해되지 않는다. 그들은 한국을 책임지지도, 이끌지도 않을 작정으로 한국의 정치와 경제의 주도권을 쥐고, 군대를 통솔하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들을 이해하고 지지하고 동정까지 한다. (아마 다음 선거에서도 가면을 갈아끼운 골통 보수주의자들에게 투표할 것이다. 그는 그녀와 다르다면서.)


변화보다는 안정이 낫다. 못 살더라도 안정적이고 일관되게 못 살면 미래는 예측가능해진다. 신분제와 노예제가 수천 년 이상 지속된 것도 여기에서 연유한다. 서민들은 이렇게 여기게 되었으며, 상류층도 안정된 체제가 좋다. 분단 상태도 그냥 이대로 지속되는 것이 좋다. 개성 공단이 작살나더라도 상관없다. 분단 체제가 지속되고 이러한 불안정하긴 하나 일시적 균형 상태를 계속 지속시키는 편이 다른 것들보다 낫다. 그리고 밝혀지지 않은 과거사 따윈 그냥 덮인 채로 있는 게 낫다. 이미 일은 벌어져 끝났으니까.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관심도 없거나 관심이 멀어지도록 만들면 된다. 잘못된 일도 덮으면 그 뿐이다. 가끔 마음에 들지 않은 이들이 있으면 교육 차원에서 한 번, 정해진 각본대로 밝히면 된다. 하나 두 개 각본 없이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하면 기득권 전체가 위험해진다. 정말 위험해진다.


그러니 얼마나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 정부 인사들이 미웠을까. 그들은 적극적으로 분단 체제 해소와 보다 나은 상태의 국가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실제적인 일들을 단행했으니까. 과거사도 다시 짚었고 뭔가 잘못된 것이 있으면 바로 잡으려고 했으니까. 그리고 그걸 한 번 경험한 사람들은 알게 될 테니, 그걸 어떻게든 막아야 된다. 그리고 막아냈다. 그리고 앞으로도 막아야 되니까, 종편 방송 만들고 언론부터 잡고 이젠 국정 교과서까지 가는 것이다. 다 예측 가능한 시나리오다. 어렵게 기득권이 된 이들(소위 개천에서 난 용)에겐 감투를 주면서 괜히 휩쓸리지 말라고 단도리를 한다.


그리고 계속 이 상태로 지속되면 아무 문제 없다. 모든 것들은 예측 가능해진다.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은 계속 가난하고 힘 없을 것이며, 부유하고 힘있는 이들은 앞으로 계속 부유하고 힘있을 것이다. 가끔 딴 짓 하는 이들만 가끔 본보기로 잡으면 된다. 정치란 이런 것이고 국가 경영이란 것도 이런 것이다.


어차피 대다수의 국민들은 이런 것에 관심도 없다. 먹고 살기 바쁜데, 이런 것 따윈 사회에서 도움도 안 되는 괜한 이상주의자들에게서나 나올 법한 것이니, ‘쟤들은 원래 저래’로 몰고 가면 된다. 그러면 잠시 동요하던 국민들도, 아, 원래 저런 애들이었구나 하고 거리를 두게 될 것이다. 그리고 세월호사건에서 보듯, 그렇게 거리를 두게 된다. 


이만큼 온 것도 기적이니, 이제 안정된 일상, 안정된 사회, 안정된 국가를 만들자고 말한다. 더구나 민주화까지 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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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간의 흔적이 숨겨져 있는 책상 바로 위로, 지치지도 않고 차가운 에어콘 바람은 평평한 사각형으로 떨어져 내린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나이가 들면서, 어떤 구조 속에 스스로 자신을 내몰기 마련이다. 그리고 자신을 내몰지 않으면 안 된다. 자의든 타의든 자신의 삶 전체를 내몰지 않은 사람들에겐 철없고 사회성이 떨어지며 무책임하고 제멋대로 인간임을 인정하라며 세상은 강요한다. 하지만 세상은 나를, 우리를, 어떤 시스템 속으로 자신을 내몬 이들을 책임져 주지 않는다. 책임질 생각도 없다. 강요하면서도 그 강요로 인한 결정로 생긴 좌절, 절망, 슬픔에 대해선, 네 잘못이라며 개인의 탓으로 돌린다. 


결국 세계는 피해자들로만 넘쳐난다. 승자는 없고 패자만 있다. 모든 이들은 각자 다른 이유로 떠밀려 지금 이 자리에 서서 걱정하고 슬퍼하고 아파한다. 쉴새없이 아파하면서 스스로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 똑같이 강요한다. 


애초 세상은 잘못 만들어진 곳이다. 그러니 플라톤은 애초부터 '저 세상의 이데아'를 슬프게 노래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태도만큼 잘못된 것도 없으니)


뫼르소도 조현병 환자였을까? 사람들은 '원인-결과'라는 인과율의 노예다. 자연과학에서 원인-결과의 인과율과 사회에서의 인과율은 전적으로 다르다. 하지만 자연과학을 대하듯 사회를, 사람을 대한다. 그렇다고 원인을 해결하지도, 해결할 의지도 없다. (더 불행한 건 지금 정권은 해결할 머리조차 없다.) 


영국의 EU탈퇴는 예견된 불확실성이다. 그러니 충분히 준비할 수 있고 대응할 수 있다. 그런데 이 호들갑은 무엇인가. 저 멀리 떨어진 유럽 대륙의 일이다. 직접적인 영향은 일부이고 대부분 간접적인 것들이다. 마치 스스로 무능하지 않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무능력함을 드러내 보인다고 할까.

 

아, 그러면 나도, 그런 건 아닐까. 기분 좋게 술 마실 일이 없다. 날 기분 좋게 할 사람 만날 일도 없다. 보링거는 적대적 세계에서는 추상이, 우호적 세계에선 감정이입의 경향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어쩌면 나는 지금 추상의 거친 계절을 보내고 있는 셈이다. 


원래 얼마 전 마신 와인 사진 한 장 올리려고 시작했는데, 이상한 방향으로 주절주절 글이 씌어진다.




얄리다. 칠레 와인이다. 가성비가 좋은 와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 기대했던 것엔 미치지 못했다. 카르메네르여서 그런가. 그동안 카베르네 쇼비뇽만 마셨으니까. 마트에서 손 쉽게 구할 수 있으면서 가성비가 좋은 칠레 와인으로는 에라주리스, 디아블로, 얄리가 유명하다. 




술 마실 일도 줄었고 술 마시기도 겁 난다. 나이가 든 탓인지, 술 마신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마음까지 무너진다. 세상이 슬프다거나 절망적이라든가 하는 식의 우울함이 아니라, 그냥 엄청 우울해지고 무기력해진다. 마약을 한 다음에 나타나는 무기력이 이런 걸까.


그래서 아주 무기력하게 술을 마시고 싶다. 술을 마시는 중간중간, 말러를 듣다가 밥 말리를 들으면 무기력해졌다가 잠시 유쾌해질 수 있을 것이다. 풀바디한 스페인 와인을 마시다가, 살짝 크리스탈 와인잔을 바닥에 떨어뜨리면, 유리 조각은 얇고 무겁게 바닥에 깔리며 빛이 나고, 붉은 색 와인은 옆 테이블에 혼자 앉은 여인의 가느다란 손가락 끄트머리에 가 부딪히면 좋을 일이다. 아마 베네치아의 카사노바가 이런 마음이지 않았을까. 


무기력해지지 않기 위해 일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술을 마시고 취하면서 누군가를 알게 되고, 그렇게 다음 날 다시 무기력해지고 우울해지고 ... ... 인생의 목적은 역시 먹고 마시는 데 있는 것이다. 자연이 진공을 싫어하듯 우리 몸과 마음은 어떤 것들로 채워져야만 한다. 붉고 무거운 것들로 채워지면서 삶은 한껏 가볍고 우아해질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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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06. 10 



오늘도 기다림은 이어진다. 그리움은 늘 그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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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간단하게 햄버거로 처리하고 도로를 걸었다. 작은 분수와 가로등에 달라붙은 채 갓 핀 꽃을 보여주고 있는 화분들을 보면서 참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점심 시간 길가로 쏟아져 나왔다가 다시 사무실로 향하는 사람들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지만, 그 웃음도 참 비현실적이었다.


모두, 우리들의 비극적 상황을 알고 있지만, 모른 척하고 있었다. 그리고 계속 모른 척할 것이고, 모른 척 하던 사람들이 다 죽고 도시는 폐허가 될 것이다.

이런 도시는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지르는 실크로드를 따라가다 보면 많이 만날 수 있다. 이젠 성채만 남아 부서지는...


과거가 미래의 발목을 잡고 있지만, 과거는 과거의 기준으로만 세상을 바라본다. 변화를 거부한다. 세상은 변하지 않고 정지해있다. 그들은 마치 파르메니데스의 후예들 같다. 아직도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믿고 있다. 자리는 고정된 것이고 사람은 변하는 것이니, 고정된 자리에 사람을 끼워맞추면 된다.


하지만 한국이 이토록 엉망이 된 것은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실은 정 반대다. 자리에 맞는 사람을 만들 수 있는 교육(훈련)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고, 그런 사람들을 선택할 수 있는 안목을 길러야 한다.


그러나 나는 비관적으로 바라본다. 이런 국가가 되기 위해선 몇 백년이 걸릴 것이고 그 사이 이름만 남은 국가가 될 것이라고 ... ..





커피향은 은은하지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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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고 두터운 바람이 어깨를 스치고 지났다. 비가 올 듯 구름들이 몰려들었지만, 더위는 여전했다. 병원 바로 옆에 도서관이 있었다. 서울에서 가지고 온 자료들을 가지고 도서관 안으로 들어갔다. 낯설었다. 서울에선 나이와 상관없이 도서관 열람실을 오고갔는데, 여긴 학생들만 보일 뿐이다. 


오전 10시. 


서울이라면 자리가 없었을 시간인데, 여긴 여유롭다. 하긴 도서관이 걸어다닐 수 있는 거리마다 있으니까. 책들도 제법 있고 실내도 깔끔하다. 


대도시 생활이 익숙해지니, 견디기 어렵다. 떠나보니, 이 곳이 살기 좋은 곳임을 알겠다. 주말 내내 창원에 있다가 서울로 올라왔다. 올 한 해 자주 이 생활을 반복할 것같다. 한 때 이 도시에서 내가 알던 이들도 이젠 중년이 되었겠구나. 그도, 그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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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06. 01.



이럴 때 어색하지, 그다지 좋지 못한 형편인데도 불구하고 주위 풍경이 참 여유로워 보일 땐, 슬프지, 가진 게 없는데 모든 걸 가진 듯한 풍경 속에 있을 땐 참 슬프지, 너무 슬프지. 


하나의 직선 양 쪽 끝에 서서 서로의 이름을 부르지,만, 흘러가는 세월 속에 다 부질없어, 목소리는 잠겨 나오지 않아, 이젠 말라 흘릴 눈물마저 없어, 그럴 때 별안간 나타난 여유롭게 행복한 사각의 공간은 너무 어색해, 어색해, 찡그린 채 웃고 말지. 


텅 빈 도로를 지나치는 바람이 반가워 손을 내밀지만, 그는 잡히지 않아, 바람이지. 모니터 속 그녀는 나를 향해 웃고 나도 그녀를 향해 웃지만, 우리의 웃음은 만나는 법이 없지. 그래서 그녀는 언제나 그녀지. 


어느날 아이가 우주여행을 가겠다며 여행가방을 쌀 때, 나는 이미 어제 밤 꿈에 우주를 갔다 왔단다 라고 말하고 싶었지. 나는 언제나 바람을 타고 계속 웃는 그녀와 함께 우주 여행 중이지, 꿈 속에서. 


참, 어색하고 슬프지. 내가 한없이 낯설어지는 풍경 속에 익명의 사물이 될 때, 그렇게 있지만 없는 이가 될 때, 너무 슬프지, 그렇게 슬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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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길을 올라가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이지(理智)에 치우치면 모가 난다. 감정에 말려들면 낙오하게 된다. 고집을 부리면 외로워진다. 아무튼 인간 세상은 살기 어렵다. 

 살기 어려운 것이 심해지면, 살기 쉬운 곳으로 옮기고 싶어진다. 어디로 이사를 해도 살기가 쉽지 않다고 깨달았을 때, 시가 생겨나고 그림이 태어난다. 

 인간 세상을 만든 것은 신도 아니고 귀신도 아니다. 역시 보통 사람이고 이웃끼리 오고 가는 단지 그런 사람이다. 보통 사람이 만든 인간 세상이 살기 어렵다고 해도 옮겨 갈 나라는 없다. 있다고 한다면 사람답지 못한 나라로 갈 수 밖에 없다. 사람답지 못한 나라는 인간 세상보다 더 살기가 어려울 것이다. 

 옮겨 살 수도 없는 세상이 살기가 어렵다면, 살기 어려운 곳을 어느 정도 편하게 만들어서 짧은 생명을, 한 동안만이라도 살기 좋게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에서 시인이라는 천직이 생기고, 화가라는 사명이 내려진다. 예술을 하는 모든 사람들은 인간 세상을 느긋하게 만들고, 사람의 마음을 풍성하게 해주는 까닭에 소중하다. 

 살기 어려운 세상에서 살기 어렵게 하는 번뇌를 뽑아내고, 고마운 세계를 직접 묘사해내는 것이 시고 그림이다. 혹은 음악이고 조각이다. 자세히 말한다면 묘사해내지 않아도 좋다. 그저 직접 보기만 하면 거기에서 시도 생기고, 노래도 샘솟는다. 착상을 종이에 옮기지 않아도 보옥이나 금속이 부딪쳐서 나는 소리는 가슴속에 일어난다. 

- 나쓰메 소세키, <<풀베개>>, 7쪽~ 8쪽(오석윤 옮김, 책세상)



나쓰메 소세키는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소설의 첫 문장들을 이렇게 구성했을까. 나는 몇 주째 이 문장들을 지나 앞으로 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그네슘 부족인지 왼쪽 눈 부근 근육들이 파르르 떨리기를 반복하고, 잇몸은 수시로 붓는다. 어깨가 결리고 입안은 헐었다. 내일에 대한 불안 때문일까, 아니면, ... 


현암사에서 나오는 나쓰메 소세키 전집을 장만하고 싶으나, 그의 소설을 읽을 시간마저 없는 이에게 전집은 사치라는 생각에 ... ... 


비 오는 대체공휴일, 사무실에 나와 일을 했다, 하지만 일은 손에 잡히지 않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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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04. 08 



어느 아침. 여긴 멀구나, 집에서, 그대에게서, 우주에서, 마음에서,
풀잎소리에서, 미소에서, 저 아름다웠던 시절로부터 여긴 참 멀구
나, 너무 멀리 왔구나,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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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를 드러낼 때, 사람은 아름다워진다. 그제서야 상처는 아물기 시작한다. 


상처 없는 사람 없고 상처로 아파하고 고통받지 않는 사람 없다. 상처는 영광이자 추억이고, 회한이며 깊은 후회다. 상처는 반성이며 아물어가며 미래를 구상하고 펼쳐나간다. 상처 안에서 우리는 단단해지며, 성장하고, 한 발 한 발 걸어나간다. 


떠나가는 이의 뒷모습은 아프지만, 언젠가는 아련하게 아름다워진다, 처절하게 그리워지기도 하며, 눈물겹도록, 상처,들 속에서 나는 너를 알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내 속에 너를, 타자를 키우게 된다, 같이 살게 된다. 


그렇게 타자들이 쌓여 상처는 너에 대한 예의가 되고 세상에 대한 공감과 배려가 된다. 한때 우리 젊은 날을 물들였던 절망과 분노는 상처 속에서 더 깊어지다가, 끝내 상처로 인해 사랑으로, 희망으로, 용기로 거듭난다. 


나는 어제도 상처 입었고, 오늘도 상처 입으며, 내일도 상처 입겠지만, 상처는 끝내 아물 것이고 오늘의 고통이 내일 나를 만들 것이다. 그러니 상처, 나는 너이고 너는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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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죽이지 말아요. 난 지금 사랑에 빠졌거든요.

Don't Kill Me, I'm In Love



그러게, 사랑에 빠진 이를 죽이는 건 아닌 것같다. 하지만 그것이 불륜이라면. 레이몽 라디게의 소설 <<육체의 악마>>가 끊임없이 우리를 매혹하는 이유는, 위험한 사랑만큼 진실해보이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위험한 사랑을 했듯, 젊은 날 우리는 모두 금기된 사랑을 꿈꾸었는지도 모른다. 




감수성 예민하던 시절이 지나고 벚꽃이 피고 가늘기만 한, 얇은 봄바람에도 그녀의 손톱 만한 분홍 꽃이파리가 나부끼는 거리를 걸어가면서도 나는 애상에 잠기지 않, 아닌 못한다. 생계의 위협이란 이런 것이다. 


새장 속의 새를 아들은 한참이나 바라보더니, 새 한 마리 사서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아직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아들마저도 남에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 거다. 




나라고 해서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없겠냐만은, 사는 게 그런 게 아니다. 사는 게 그런 게 아니다, 라고 중얼거리지만, 그런 게 아니면 도대체 무언가. 인류가 신을 만들고 종교를 만든 것에는 다 이유가 있지만, 그것이 새로운 종류의 악행들의 시작이 될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은 지구의 지배자가 되기엔 어리석기만 하다. 다행인 것은 어리석다는 사실을 현대의 이론가들은 희미하게 깨닫기 시작했으니. 


새장을 보면, 늘 막스 베버가 떠오르고 구조주의자들이나 비트겐슈타인을 생각하게 되는 건, ... 내가 너무 세상을 어둡게 바라보는 걸까. 


아니면 새장 속의 자유마저도 부럽게 느끼는 걸까.


지난 봄날, 그 하늘거렸던 사랑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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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많던 프로젝트를 끝내고 잠시 쉬고 있다. 마흔이 지난 후, 일만 한 듯 싶다. 한 때 미술계에 발 담근 기억이 아련하기만 하다. 전시를 보러 가는 횟수도 줄었고 미술계 사람을 만나는 일도 드물다. 


과정이 어떻든 간에, 결과가 좋지 않으면 잘못된 것이다. 돌이켜보니, 내 잘못도 많은 듯하여 마음이 아프다. 지난 1년 간 대형 SI프로젝트 내 단위시스템 PM 역할을 수행하면서 수평적 커뮤니케이션, 전체 프로젝트 관점에서의 단위 시스템에의 접근, 협업을 위한 커뮤니케이션 전략, PM으로서 인력 채용과 관리 등 많은 부분에서 그동안 내 장점으로 부각되었던 것들이 단점으로 드러나 더욱 힘들었다. 


잠시 쉬면서 지난 1년을 되새기고 있는데, 쉽지만은 않다.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 배워야한다는 건 늘 힘들다. 스스로 채찍질하며 끊임없이 변화할 수 밖에 없고, 과거의 나를 부정해야 한다. 미래라고 해봤자 불과 몇 십년인데, 계속 변화시켜야만 한다. 현대란 유동적인 것이라고 했던가. 하긴 지그문트 바우만은 아예 '액체근대'라고 했으니. 


1년 만에 이력서를 업데이트하면서, 과연 나를 채용하기 위한 의사결정에 도움이 될만한 이력서인가 돌이켜보았다. 늘 채용이 결정되고 난 다음 이력서를 냈다. 단 한 번도 이력서를 먼저 제출하고 입사한 적이 없다. 이것도 재주라면 재주인데, 그러기엔 나이도 많고 경력도 많다. 


이래저래 고민 많은 3월이다. 잠시 쉬고 있던 영어 공부를 하는 중인데, 언어는 참 부단히 배워야 한다는 걸 새삼 느끼고 있다. 여유가 된다면 몇 달 영어 연수나 갔다 오면 좋겠다. 



거의 반 년만에 교외로 나들이를 했다. 아직 서해 바다 바람은 차기만 했다. 중고차라도 하나 구입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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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일, 흔적


새해 아침 게으른 커피 한 잔 손열음의 쇼팽 이안 맥퀸의 속죄 도널드 바셀미와 몇 개의 펜 낡은 다이어리 그리고 견디기 힘든 일상의 스트레스, 하지만 올해에는 내 삶을 사랑해보기로 하자. 






1월 2일, 출근 






1월 2일, 퇴근 





어떤 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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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순간순간 묻지만, 답은 없다. 하지만 몸과 마음은 움직이고, 움직여야만 한다. 설령 그게 잘못된 방향일지라도. 그게 삶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 노력하는 것, 정성을 쏟는 것과 무관한 게 삶이다. 하지만 원하고 노력하고 정성을 쏟는다. 이게 또한 삶이다. 그러면 나는, 우리는 뭘 해야 하는 걸까?


술이나 마셔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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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많은 눈 속의 내키지 않은 출근길. 작고 낡은 검정 타이어를 끼운 초록 빛깔 마을버스가, 빠르게 떨어져 쌓이는 눈송이들을 아주 느리고 무겁게 밟으며 힘겹게 경사진 도로를 올라왔다. 누군가가 바쁜 출근길에 왜 이렇게 마을버스는 안 오는거야라고 말했지만, 정류소에 있던 다른 이들의 입술, 목, 눈꼬리, 머리, 다리는 반응하지 않았다, 못했다, 숨을 헉학대며 버스가 왔다. 계속 눈이 내렸다. 출근은 시작되었지만, 변하는 건 없었고 우리들 모두 내일이 있는지 확신하지 못했다. 어쩌면 오늘 모두 다 죽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꿈꾸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이건 사랑하던, 했던 그녀도, 한때 믿는다고 착각했던 하나님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뭔가 문제가 생기면 우리를, 나를 찾는 걸까, 정말 모를 일이다. 나이가 들수록 이 세상, 사람들을 모르겠다, 모른다고 믿기 시작했다,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없었다. 그렇게 실패하며 나는, 우리는 늙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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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은 태산같고 시간은 쏜살같다. 몇 달 사이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 일들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쓸쓸하기만 초겨울, 눈발이 날리는 강변 도로를 택시 안에서 잠시 졸았다. 나는 아주 잠깐, 졸면서 기적과도 같이 행복한 꿈을 꾸고 싶었다. 


며칠 전 가로수를 찍었다. 무심하게 계절을 보내는 은행나무의 노란 빛깔은 어두워지는 하늘과 차가워진 대기와 묘한 대비를 이루며 시선을 끌어당겼다. 그 가로수 밑에선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얇은 몸매의 미니스커트를 입은 처녀가 연신 핸드폰을 쳐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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