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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그림 좋다 展 (KAMI’s Choice: The Soul of Korean Contemporary Art)
2008. 12. 24 ~ 12. 30, 인사아트센터

프로포즈(Propose) 展, UNC갤러리
2009. 1. 8 ~ 1. 23


1.
나에게 이 두 전시는 묘하게 겹쳐져 보였다. 작가나 작품에 대한 선호를 떠나, ‘순수’라는 단어와 ‘상업’이라는 단어는 상식적으로 서로 극명하게 대립하는 듯 보이지만, 어쩌면 동일한 궤도에서 움직이는 개념일지도 모른다. 즉 순수하기 때문에 상업적으로 성공할 여지가 높다는 … 꽤 모순적이지만 말이다.

순수 미술에 있어서 시장(market)이 본격적으로 떠오른 것은 19세기 초의 일이다. 그 전에도 미술 시장(판화나 주문 제작의 유화를 위한)이 존재했지만, 모든 예술가에게 직면한 문제는 아니었다. 하지만 19세기는 모든 것들이 바뀌는 시대였다. 예술가들은 자신의, 가족의 생계를 위해 작품을 시장에 팔아야만 했고, 부유한 귀족(패트런)의 지원을 받을 수 없었다. 더 큰 도전은 19세기의 주도 세력이었던 부르주아지의 태도였다. 철저하게 자본주의적이었던 그들은 순수예술과는 무관했고 철저히 속물적이고 돈 밖에 몰랐다. 처절하게 가난한 예술가의 전형적인 모습이 생긴 건 이 때부터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인상주의자들의 위대한 신화는 여기에 기반한다. 끔찍하게 가난한 무명의 시절을 보낸 인상주의자들은, 한 번 명성을 얻기 시작하자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인기와 부를 얻게 된다. 그리고 그들의 끔찍했던 과거는 명성의 기반처럼 여겨졌다. 어쩌면 우리가 흔히 아는 미술 시장(Art Market)이라고 했을 때, 그 시장이 본격적으로 생긴 것은 인상주의 작가와 작품들, 그리고 그들에게 열광했던 미국이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미술 작품이 시장에서 거래된다는 것은 꽤 모순적이다. 추상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는 미술 작품이 계량적 가치 수단인 돈으로 환산된다는 것은 르네상스 정신의 한 극단을 보여준다. 그것은 우리 영혼의 창조물이 돈으로 그 가치를 추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분명 혁명적인 사상이었다. 놀라울 정도로 자유로운 것이었으며 평등 지향적인 마인드의 반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

'그림 좋다' 전과 'Propose' 전은 하나는 한국 미술 시장의 트렌드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상업적 마인드를 숨기지 않는 전시라면, 다른 하나는 상업적인 주목과는 무관하게 이제 막 출발점에 있는 젊은 작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묘하게 서로 다른 지점을 향해 간다. 하지만 후자의 전시에 참여했던 작가들 중 일부는 상업적인 주목을 받기도 할 것이다. 현대의 예술가들은 참 아슬아슬하다. 하긴 이 글을 쓰는 나도, 순수와 상업 사이에는 언제나 아슬아슬한 궤도에서 자유스러웠던 적이 없었지만. ...  


2.
한국미술경영연구소에서 기획한 ‘그림 좋다 전’은 현재 한국 미술 시장의 트렌드를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높게 평가할 수 있다. 변웅필, 데비 한, 이이남, 천성명, 지용호, 정지현, 이호련, 두민, 성유진, 성태진, 김현식, 도성욱, 윤병락, 권두현, 신동원, 박성민, 김남표, 신영미, 임태규, 윤기원, 이정웅, 이강욱, 김성엽, 이길우, 황순일. 아마 최근의 한국미술(시장)에 대해 조금의 관심이라도 가지고 있었다면, 이들 중 몇 명의 작가들에 대해서 들어보았거나 작품을 보았을 것이며, 많은 관심이 있다면 대부분의 작가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점이 이 전시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즉 전시는 상업적인 관점에서 기획되었다는 점에서, 조금의 아쉬움을 갖게 한다. 현재의 트렌드가 아니라, 미래의 트렌드를 보여줄 수 있었다면. 그리고 현단계의 한국미술시장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받게 될 보물과 같은 작가나 작품을 보여주었더라면 하는 바람 같은 것을 가져보았다. 하긴 그런 전시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이라고 여겨지긴 하지만.

대신 이 전시에서 몇 명의 작가들을 새로 보게 되어, 기분이 좋았다. 데비 한의 사진 연작들에서 큰 감흥을 받지 못하고 있었던 나에게, 이 전시에 나온 그녀의 ‘스포츠 비너스’는 기발하면서도, 매우 정치적인 작업이었다. 다시 말해 시각적 즐거움을 전해주면서 그녀가 일관되게 전달해온 메시지를 표현하는 데 있어 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렸음을 보여주었다.

데비한, 스포츠 비너스, 나전칠기, 60×27×27 cm, 2008


미술사를 통해 우리는 수많은 여체와 여신상을 보아왔다. 인체조각, 초상화, 그리고 인물사진 등의 다양한 예술 장르들을 통해 여성의 몸은 그 시대의 아름다움의 기준으로서 이상화되고 오브제화 되어 영원성을 지니게 된다. 여성의 미가 한 사회의 문화적 관점을 반영하고 있다는 전제 속에서 나는 근래 작업에서 현대 사회가 부딪치고 있는 문화현실의 실체를 ‘인체’라는 매체를 통해 표현해 보고자 하였다. (데비 한, 전시도록 27쪽)


성유진의 작품들도 매우 흥미로웠다,고 한다면, 어떨까. 도록에 실린 작가의 사진과 아래의 작품은 묘한 울림을 전해주었다. 예술 표현에 있어서 '의인화의 방식'은 오래된 것이긴 하지만, 현대에 있어서 그것은 일종의 자신감 상실, 인간적인 것에 대한 (반어법적인) 경멸, 휴머니즘(혹은 휴머니티)에 대한 우회적 비판을 뜻한다.

성유진의 작품이 아픈 이유는, (의인화의 방식을 택하는 다른 작가의 작품들이 비슷하겠지만) 현대의 우리들은 우리들의 얼굴을 정직하게 그려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고통스럽게 일그러지고 아파하는 우리의 자화상을 있는 그대로 그리지 못한다. 실은 우리가 왜 아파하는지, 왜 쓸쓸해하고 왜 고통스러워 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해답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마주 보고자 하는 어떤 세계의 정면에 마주서서 싸울 무기를 가지지 못함을 알고 있기에, 일종의 우회로를 만들어 그것과 대응하고자 하며, 그 중 하나가 바로 성유진의 작품인 셈이다.

성유진, Save yourself, 다이마루에 콩테, 130.3×162.2cm, 2008


3.
사간동 어느 골목 초입에 있는 UNC갤러리(www.uncgallery.com)는 매우 작은 갤러리이지만, 종종 보물 같은 전시가 열리는 곳이다. 지난 1월 23일까지 열렸던 ‘프로포즈’ 전은 이제 갓 대학을 졸업했거나 대학원에 재학 중인 김선희, 박미경, 서고운, 양유연, 용관, 육종성 등 젊은 작가 6명의 작품들이 전시되었다.  어딘가 거친 듯한 표현들이 그들의 젊음을 보여주는 듯해, 기분이 좋았다. 그 중 내 눈에 들었던 작품은 양유연의 작품들이었다. 특히 '깡총깡총'은 너무 재미있고 발랄했다. 불안함이나 공포, 두려움이 있지만, 그것을 거부하거나 도망치지 않고, '그까지것, 덤벼라'식이다. 대신 너무 작은 사이즈였다는 점이 아쉽긴 하지만.

양유연, 깡총깡총, 한지에 먹채색(?), 2008


양유연, 생각지도못한상처, 한지에 먹채색, 90.7×100cm, 2008


* 작품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작가에게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비상업적인 목적으로, 작가와 작품의 소개를 위해 이미지를 사용하였기는 하나, 저작권자의 요청이 있을 경우 삭제토록 하겠습니다. 특히 양유연님의 작품 이미지는 양유연님의 블로그에서 퍼온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 위의 리뷰에서 소개된 작가들의 홈페이지는 아래와 같습니다. 
양유연:
http://yyy1228.egloos.com/  
성유진:
http://jinbus.egloos.com/
데비한: www.debbiehan.net



Comment +2

  • 리뷰 잘 읽었습니다. 본디 작업을 하면서 부담을 좀 받는 편인데 <깡총깡총>은 그리는 내내 근심없이 마음가는대로 슥슥 그렸답니다. 그 감정이 전해졌다는 것이 기분이 좋네요. 계속 관심가져 주세요.!

    • 작업에 대한 부담감은 모든 작가에게 공통된 부분인 것같습니다. 저도 중요한 글을 쓸 때의 부담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니깐요. 하지만 부담감의 정도와 작품의 수준과는 비례하지 않는 듯 해요. 도리어 부담감 없이 쓴 글이 더 좋은 경우가 많아요. 그렇다보니, 부담감을 강하게 느끼는 글일 경우에는, 글을 쓸 수 있는 마음의 상태부터 만드려고 노력한답니다.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한 태도(attitude)를 먼저 만드려고 하는 거죠. 그림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해보기도 하는데, 어떤지는 잘 모르겠네요. '깡총깡총'은 좋은데, '생각지도 못한 상처'는 그런 부담감들이 나타나는 듯해요. 여튼, 화이팅~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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