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문학

사양, 다자이 오사무

지하련 2003. 6. 25. 21:55

 

 

사양(斜陽)
다자이 오사무 지음, 유숙자 옮김, 소화.



둘이서 소리 내어 웃었지만, 웃고 나서 한없이 쓸쓸해졌다
- 25쪽

 

책을 읽다 졸음이 왔다. 휴대용 커피 한 봉지를 뜯어 탄 흐릿한 빛깔의 커피 한 잔을 마시자마자 졸음이 밀려왔다. 오래된 독일산 듀얼 턴테이블에 척 맨지오니의 레코드판을 걸어두고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을 읽으면서 졸음을 느꼈다.

그리고 잠을 잤다.

일요일 오후 몇 주째 엉망인 사각의 방 구석에서 선풍기 바람 속에서 낮잠을 잤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밖으로 블랙 커피 빛깔로 변해 있었고 다시 사양을 펼치면서 지는 해 사이에 서있는 가즈코를 생각했다. 스물 아홉의 가즈코.

지금 일본 열도 어느 구석에선 장차 문학을 하리라 꿈꾸는 짧은 머리의 청년이 배낭을 싸고난 다음 지도를 꺼내 간단하게 다자이 오사무가 스쳐지나간 곳을 표시하고 있을 게다. 그리고 씩씩한 걸음으로 일본 열도의 여름을 가로지를 것이다.

나오지나 가즈코나, 또는 이 둘의 어머니나, 패전 일본의 분위기를 표상하고 있지 않나 싶다. 그러나 이것은 짐작일 뿐, 그런지 그렇지 않은지 나와는 관련없는 것이다. 표상하던, 표상하지 않던, 속물의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와 귀족의 굴레를 끝내 벗지 못하고 죽는 동생이나 귀족적 고고함으로 무장한 채 병들어 죽는 부인이나 ... ...

실제로는 살아야겠다는 욕망과 죽어야겠다는 욕망은 동일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오지는 살아야겠다는 욕망에 자살을 택했고 가즈코는 죽어야겠다는 욕망에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한 남자의 아기를 가지게 되었는지도. ... ...

실은 아무 것도 모르겠다. 짧은 소설인데, 여운은 무척 길다. 오래 만에 쓸쓸한 소설 하나를 읽었다. 눈물이 날 것같다. 펑펑 울고 싶다.

나는 장교에게로 달려가 문고본을 내밀고 고맙다는 인사를 하려 했지만, 목이 메어 말없이 장교의 얼굴을 쳐다보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을 때, 내 눈에서 뚝뚝 눈물이 흘렀다. 그러자 그 장교의 눈에도 글썽, 눈물이 반짝였다. - 53쪽

 

다자이 오사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