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한 잎의 여자

지하련 2010. 6. 9. 10:39



한 잎의 여자

 

 

오규원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한 잎같이 쬐그만 여자, 그 한 잎의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그 한 잎의 솜털, 그 한 잎의 맑음, 그 한 잎의 영혼, 그 한 잎의 눈, 그리고 바람이 불면 보일 듯 보일 듯한 그 한 잎의 순결과 자유를 사랑했네.

 

정말로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여자만을 가진 여자, 여자 아닌 것은 아무것도 안 가진 여자, 여자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여자, 눈물 같은 여자, 슬픔 같은 여자, 병신(病身) 같은 여자, 시집(詩集) 같은 여자, 그러나 영원히 가질 수 없는 여자, 그래서 불행한 여자.

 

그러나 영원히 나 혼자 가지는 여자, 물푸레나무 그림자 같은 슬픈 여자.



(1978년도 작품)

 

 

 

일을 하다 잠시 한 눈 판 사이, 오규원의 오래된 시가 눈을 환하게, 마음을 아리게, 6월초의 더위 속으로 밀려들어왔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수요일 오전을 보내고, 오후 내내 고객 미팅과 계약, 저녁엔 운동을 하면서 Social Media와 예술에 대한 글 한 편을 완성할 계획이다.

 

어젠 다소 어색한 회식을 했고 간밤엔 취기가 올라와 홍대 인근에서 와인 카페를 하는 동생에게 대뜸 전화를 걸어, ‘우리 와인 파티를 하자고 했다. 소주와 맥주 사이에서 최근 내 입 안을 감동시키는 와인을 마신 적이 없다는 사실은 언제나 취기가 오른 상태에서만 떠오르는 건 왜일까.

 

오규원 선생도 이제 이 세상 사람이 아니고, 그의 시만 남았다. 한 잎의 여자, 참 곱다.



 

My Funny Valentine Song Keith Jarrett Tr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