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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지음), 이창신(옮김), 김영사
이 기묘하고 낯선 책은 무엇인가? 21세기형 출판 마케팅의 승리인가? 아니면 정의(justice)에 굶주린 한국 사회의 단면을 드러내는 상징인가? 아니면 이도 저도 아닌 그저 우연한 유행인가?
이 황당한 베스트셀러는 너무 낯설고 이해되지 않는 것 투성이다. 일반인들이 이름만 들어도 머리 아파할 벤담, 칸트, 롤즈,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이름이 나오지만, 우스운 것은 그것에 대한 불만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세상에 한국에 이토록 많은 고급 독자들이 존재하고 있었다니! 아니면 나는 그동안 이렇게 많았던 고급 독자들을 무시해왔던 것인가!
하버드 대학 교수 마이클 샌델은 실제의 다양한 사례(지극히 미국적인)들을 끄집어 내어 다양한 관점에서, 심지어 서로 반대되는 시각에서 접근하여, 누구나 봐도 거의 옳은 논리로 서로의 주장을 반복하는 경우를 이야기한다. 실은 이 책이 호소력을 가지는 부분은 바로 여기다. 모든 논리가 절대적으로 틀리지 않듯이, 절대적으로 옳지도 않다고 말하는 것.
하지만 이 부분 때문에 책은 다소 맥이 빠지고 자주 공허해진다. 마치 죄렌 키에르케고르가 '이것이냐 저것이냐'라고 말하며 '실존적 결단'을 요청했듯이, 마이클 샌델은 어떤 결정을 내리기 보다는 화두를 던져놓고 뒤로 빠져버리고 '결정 내리는 건 내가 아니라 너야'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책의 끄트머리에선 흐릿하게 결론을 이야기하지만, 포스트 모던 시대의 결론이란 너무나도 모호해서 안개라는 실체마저도 의심스러울 정도다.
다 읽고 난 다음, 일반 독자가 가지는 감동이란, 이런 책을 읽었다는 것(!)이 될 것이고 나같은 이에겐 이래나 저래나 결론 나지 않는 현대의 (정치)이론들에 대한 재확인이 되었다는 것. 결국엔 더 시니컬해지고 더 의심많아지는 일만 남은 것일까.
생각하지 않는 시대에, 마이클 샌델은 '다양한 관점에서 타인의 입장을 고려해가며 생각 좀 하고 살아라'라고 강조하지만,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것은 도리어 아무런 생각없이 고르는 독자들의 위력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 것은 아닐까 하고 씁쓸해진다.
하지만 아마 이 책을 읽고 벤담, 칸트, 롤즈,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소수의 독자들이 있을 것이고 이 책이 누군가에게는 매우 뜻 깊은 독서를 마련해주었을 것이라는 것에 의미를 두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