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이론

불안한 현대 사회, 찰스 테일러

지하련 2010. 12. 23. 11:50


불안한 현대 사회 - 10점
찰스 테일러 지음, 송영배 옮김/이학사



현대사회, 특히 미국 사회의 개인주의를 매우 충실하면서 정직하게 담아내고 있는 책.
하지만 찰스 테일러에게서도 실망스러운 한 가지. 개인주의의 폐해를 극복하기에 우린 너무 깊이 개인주의 속으로 들어와버렸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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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짧은 글은 몇 년 전에 노트해 둔 글이다. 이것만 올리면 성의 없어 보여 다시 몇 줄 더 넣었으나, 더 성의 없어 보였다. 그래서 기억이 나는대로 정리해본다.

가라타진 고진의 <<탐구>> 첫 머리에 '독아론(Solipsism)'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쉽게 말해서 '나만 있고 외부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태도다. 데카르트와 같은 대륙의 합리론자들은 나만 있는 세계에서 자기 존재의 근거를 찾고 그 기반을 바탕으로 외부 세계를 정립해나간다면, 영국의 경험론에서는 외부 세계는 감각의 일부이며, 그 감각은 신뢰할 수 있는가가 첨예한 문제로 대두된다. 그래서 몇몇 철학자들에게 있어서는 오직 나만 남고, 외부 세계란 내 감각이 만드는 어떤 것으로 귀결된다.

현대에서 이 문제는 '자기반영성'이나 '자기 진실성'으로 이야기된다. 끊임없는 외부 세계와의 대화 속에서, 중국에는 상처만 입게 되는 현대인들이 나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 자기만 바라보고 자기에게만 솔직하려는 태도를 견지하게 되는 것이다.

찰스 테일러는 현대인의 이러한 정신적, 심리적 태도를 비교적 차분하게, 하지만 설득력 있고 매우 감동적으로 서술해내고 있다. 마치 무라카미 하루키의 '일각수의 꿈'에서 등장하는 주인공이 자신의 머리 속에 남게되었을 때, 그것이 현대인에게 시사하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찰스 테일러의 이 책을 읽은 후에는 그것이 가지는 철학적 배경을 이해하게 된다. 실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그 소설은 모더니즘 소설들이 가지는 일련의 '자기 반영적 소설'의 맨 뒤에, 그것도 대중적 양식을 가지고 등장한 소설에 지나지 않는다.

현대란, 그만큼 불안하고 각각의 개인들은 외부 세계와 적대시하며 자기 속으로 침잠해들어가 결국에는 모나드처럼 웅크리게 될 것이라는 비극적인 전망을 나오게 된다. 이 비극적인 전망에 대한 극복이 언급되고 있으나, 감동적이지 않다.

그러나 이 책은 현대 문명과 그 문명 속의 개인들이 가지는 비극성을 매우 정확하게 관찰하고 지적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탁월한 저서임에 분명하다. 우리가 실제로 처한 일상의 현실과는 무관하게 사상의 세계 속에서 트렌디한 주제와 소재를 쫓아, 흥미로운 언어로 글을 쓰고 발표하는 일군의 철학자들의 책 대신 찰스 테일러의 책은 매우 호소력이 있으며 자신의 마음을 들킨 듯 부끄러워지게 만드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