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어느 토요일의 단상 - 브뤼트 Brut 6월

지하련 2011. 6. 4. 14:44





무너질 듯, 무너질 듯, 일상을 지탱해온 것 같다. 아내를 직장으로 보내고, 집 청소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아주 짧은 휴식을 취해보지만, 습관은 늘 그렇듯 활자로 나를 이끌었다. 활자 속의 삶.


대학시절, 글 쓰던 친구들은 시집이나 소설을 읽을 때 늘 작가의 등단 연도를 찾았다. 몇 년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몇 살 때인지가 중요했다. 그리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직 시간은 있어, 당연하게도 20대 초반 만에 등단하는 작가는 많지 않았으니, 가끔 김인숙이나 구광본처럼 대학 심지어 그 이전에 등단한 작가를 만나면 책을 휙 던지며 말 한 마디 없이 우울해지곤 했다. 그 짓도 나이가 들면서 점점 시들해져갔다. 보기는 하지만, 나는 대기만성형이야, 라고 주절거리는 횟수만 늘어났기 때문이다. 박완서 작가를 보라며, 작품은 인생 경험이 있어야 쓰는 거지 어린 것들이 뭘 아냐고, 그러다 그것마저 초라해지면, 더 이상 약력을 들춰보지 않고 아니 더 이상은 아티스트가 될 꿈을 버리며 서서히 뒤편으로 물러나곤 했다.
- 김봉석, 편집자의 글 중에서, 브뤼트 2011년 6월


브뤼트 2011년 6월호

편집자의 글


사무실로 날아온 ‘브뤼트’에 실린 편집자의 글을 보며 피식 웃으며, 나도 저랬지, 하고 회상에 잠기는 것도 잠시, 쉴 새 없이 어둠은 내리고 바람은 불고 시간을 흘러갔다. 약간의 공포가 날 에워쌌다.


토요일 오후를 지탱한 힘, 혹은 가식과 허위의 미장센


하늘은 높고 토요일의 시간은 쉼 없이 흐른다. 며칠 전 심하게 마신 술은 아직까지도 여파가 있는 듯, 나를 쉽게 피곤에 지치게 한다. 종이 잡지를 뒤적거릴 좋은 시간이다. 몇 개의 잡지를 책상 위에 놓고 노트를 펼친다. 돈 벌이와는 무관하거나 거의 보이지 않을 도움을 주는 취미를 지탱하는 건 뒤편으로 물러나기 싫은 어떤 반항심과 관련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내가 사랑하는 루이지 피란델로는 나이 쉰이 거의 다 되어 최초의 글을 출판했고, 결국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내가 아는 등단한 친구들은 다들 어디로 간 걸까. 요즘 습작하는 친구들도 등단에 목을 맬까. 별의별 생각이 주절주절 머리카락처럼 자라나기 시작하는 오후다.


브뤼트에 실린 알렉산더 메퀸 기사




브뤼트 BRuT 2011.6 - 10점
브뤼트 편집부 엮음/오니트(월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