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남자가 철든다는 것에 대해

지하련 2011. 8. 26. 12:58


 

철든 남자만큼 안타깝고 슬프고 절망스러운 사람도 없을 것이다. 종종 우리들은 성직자들에게서 ‘철 들었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철들다’의 사전적 의미는 ‘사리를 분별하여 판단하는 힘이 생기다’이니, 성직자들에게는 종교적 관점에서 사리를 분별하고 판단하는 힘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여기에서 문제는 ‘종교적 관점’이 될 것이다. 성직자들은 신앙을 향한 ‘철없는 열정’을 숨기고 있다. (즉, 모든 열정은 철없음의 소산이다!) 마음 속에서는 늘 자신들이 믿는 신을 향한 끝없는 신앙심을 숨겨져 있는 탓에, 그들은 자신의 생을 이어나갈 수 있는 것이다.

가끔 철든 남자를 만나기도 한다. 그러나 그건 병상 위의 남자다. 죽음을 향해 가는 남자. 자신의 생명력이 부질없음을 깨닫는 그 순간, 남자는 갑자기 철이 든다.

그리고 사리를 분별하여 판단하며, 그것을 병상 주위에 몰려든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곤 한다(가끔 이 때까지도 철이 들지 않는 남자가 있기도 한데, 이 경우에는 이미 사라져가는 생명력을 철없음으로 인위적으로 포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건강이 다시 좋아져, 병상을 벗어나는 순간, 그 남자를 둘러싸고 있던 ‘철 들었다’라는 동사는 마치 사막의 신기루처럼 사라질 것이다.

결국 (여성의 입장에서) 철 든 남자란 없고, 남자가 철이 든 순간 남자로서의 존재 의의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여성의 입장에서 다소 위안이 될 수 있는 것은, ‘철 들었다’는 것에 대한 기준점이 있다면, 남자의 건강 상태와는 무관하게, 세상의 거친 풍파와 여성의 사랑, 또는 잔인한 훈육을 통해 어떤 남자는 그 기준점에 가까이 다가가기도 하고, 멀어지기도 한다.

다행히 나는 아직 철이 들지 않았다. 다만 철 들었다는 기준점(만약 존재한다면)에 10년 전보다 가까이 다가갔을 뿐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