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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145년 만의 귀환, 외규장각 의궤
2011.7.9 - 9. 19, 국립중앙박물관


의궤란 ‘의식(儀式)의 궤범(軌範)’이란 말로 ‘의식의 모범이 되는 책’이란 뜻이다. 왕실과 국가에서 의식과 행사를 개최한 후 준비, 실행 및 마무리까지의 전 과정을 보고서 형식으로 기록한 것이다. 의궤는 철저한 기록 정신의 산물로서 예禮를 숭상하는 유교 문화권의 핵심 요소가 담겨 있을 뿐만 아니라 조선 시대 국가의 통치 철학 및 운영체계를 알 수 있는 자료이기도 하다.

의궤는 왕의 열람을 위해 제작한 어람용(御覽用)과 여러 곳에 나누어 보관하기 위한 분상용(分上用)으로 구분되어 5~9부 내외가 제작되었다. 통상 어람용은 1부를 제작하는데, 외규장각에 있던 의궤는 대부분 어람용이라는 데 그 중요성이 크다. 어람용을 분상용과 비교해 보면 필사, 재료, 장정 등에서 그 수준이 월등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고급 종이에 해서체로 정성껏 글을 쓰고 안료로 곱게 그림을 그린 후 고급 비단과 놋쇠물림으로 장정한 외규장각 의궤는 당대 최고의 도서 수준과 예술적 품격을 보여준다.




세월이 참 많이 흘렀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서양이 최고였고 동양은 전근대적이며 뒤떨어진 곳으로 여겨졌으며, 학교 선생님들의 말 속에, 우리가 배웠던 교과서 속에서도 그렇게 여겨졌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그렇게 가르치고 있는지 모르겠군요.

하지만 서양에서 정치적 권력과 헤게모니를 쥐었던 이들은 군대를 보유한 왕이거나 종교의 힘에 기댄 성직자들이었고 이 추세는 18세기 계몽주의가 등장할 때까지 이어집니다. 즉 한 나라를 가지려면, 군대를 일으키거나 종교에 호소하면 되었습니다. 일반 대중들에게 호소할 수 있는 어떤 세계관이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말이죠.

하지만 조선은 달랐습니다. 왕이 있었으나, 정치 권력과 헤게모니는 사대부가 가지고 있었고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합법적인 방식으로 왕을 폐위할 수 있는 지식인의 나라였습니다. 이 사대부 지식인들이 의지했던 것은 군대나 종교가 아니라 유교라는 지식으로 축조된 어떤 세계관이었습니다. 마치 마음 속의 성벽과도 같은 세계관이었습니다.  

이런 나라에서 숟가락과 젓가락이 아닌 칼과 포크로, 다 익히지도 않는 고기를 먹던 유럽인들은 미개한 족속으로 여겨지지 않았을까요?

최초의 네덜란드 선교사들이 이웃 나라 일본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음식에 손을 대지 않으면서 젓가락으로 식사를 하고, 매일같이 목욕을 하며 몸을 청결히 하던 일본인들에게 놀라게 됩니다. 그들 눈에 일본은 문화와 격식을 아는 이들이었습니다. 일본을 무시하고 깔보던 조선인들로서는 상상하지 못할 생각을 네덜란드 선교사들이 하게 된 것이죠. 

거대한 나라 중국은 기원 전부터 유럽에 알려져 있던 제국이었으며 실크로드의 동쪽 끝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 일본은 근대 유럽과의 활발한 무역으로 알려지고 있었으며, 세계 권력의 중심을 향해 이동해가고 있었습니다. 다들 알다시피, 19세기 인상주의 미술 등장에 일본의 우키요에가 영향을 끼쳤을 정도로 일본의 영향력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조선은 어땠을까요? 영,정조 시대 이후 조선은 안동 김씨를 위시한 사대부 집안의 섭정으로 인해 무너져가는 제국이었고, 동아시아를 둘러싼 외교 지형 변화에 현명한 대처를 하지 못했으며, 민중들의 삶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져 가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서양인의 눈에도 그렇게 보였을 것입니다.


조선인들이 찾아왔다.우리가 그들을 전혀 해치지 않는 다는 것을 알자, 그들은 소심했던 태도를 버리고 교육이 부족해 비롯되는 결점들을 드러냈다.과연 그들의 행동은 일본인의 품위와 세련과 거리가 멀고 중국인의 아첨과도 달랐다.그들은 거칠고 조심성 없으며 매우 불결하다.
- 프랑스 군인 쥐베르가 기록한 병인양요(살림출판사)



이 시각의 차이는 조선 후기의 사대부들에게 명확한 정치적 결단을 요구했음에 분명했고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은 상당수의 지식인들에게 지지를 받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반대로 서구 열강들의 눈에는 조선은 무시해도 될 작은 나라로 여겨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일본인들에게는 옆 나라 조선은 자신들의 발전에 방해가 될 가시같은 존재였을 테니, 어떻게든 자신들의 지배 아래 놓아 대륙 진출의 발판으로 삼아야했을 것입니다.





그러던 와중에 외규장각 의궤가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연유는 아래와 같습니다.


19세 중엽 조선은 서양 선박의 빈번한 출몰과 통상 요구, 영국 프랑스 연합군의 베이징 점령과 러시아의 연해주 진출 사건 등의 대외 정세에 대해 위기 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더불어 청에서의 천주교 탄압 소식과 유생들의 위정척사 운동 전개는 결국 천주교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으로 이어졌다. ‘병인박해(1866년)’라 불리는 이 탄압으로 9명의 프랑스 신부들과 수천 명의 신도들이 처형당했다.

1866년(고종3) 10월, 프랑스는 천주교 탄압사건을 구실로 조선을 침략하여, 이른바 ‘병인양요’를 일으켰다. 프랑스 극동 함대 사령관 로즈 제독이 이끄는 7척의 군함은 강화도를 점령한 후 서울로 진격하려 하였다. 그러나 프랑스군은 흥선대원군의 굳은 항전 의지와 한성근, 양헌수 장군이 이끄는 조선군의 분전으로 김포의 문수산성과 강화의 정족산성 전투에서 참패를 당하였다.

같은 해 11월 11일, 조선 침공의 무모함을 깨달은 프랑스군은 강화도의 장년전, 외규장각 등 모든 관아에 불을 지르고 퇴각하였다. 프랑스군은 조선군의 강렬한 저항에 부딪혀 퇴각하면서 대량의 은괴와 외규장각에 보관되어 있던 의궤를 비롯한 189종 340여 책, 기타 자료 등을 약탈했다. 그들은 외규장각에 대한 방화로 그 곳에 남아 있던 수많은 귀중 서적들이 불길과 함께 세상에서 사라졌다.


의궤는 그렇게 프랑스 어디론가 사라지고,  이씨 조선도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긴 일제 식민지를 거쳐 대한민국이 건국되지만, 우리들의 현대사는 전쟁과 갈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일제 식민지와 초기 여러 정부를 거쳐오면서 조선은 버려야 하는 전근대적 전통이 되었고 소수의 학자들만이 조선을 되살리고자 하였을 뿐입니다만, 서구의 문화적, 학문적 전통만이 우리들의 살 길이라고 여겼던 대다수의 학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으며(아마 조선의 전통을 이야기하는 학자는 앞 뒤가 꽉 막힌 나이든 노친네 취급을 받지 않을까요), 군사 정권의 정부 관계자들에게 오래되고 낡은 조선의 책들은 무시해도 좋을 어떤 것이 아니었을까요? 더구나 외규장각 의궤는 병인양요 당시 불에 타 소실된 것으로 학계에 알려져 있었으니 말이죠.

하지만 1975년 재불학자 박병선 박사의 외규장각 의궤 발견은 우리에게 조선에 대해 새롭게 보게 만든 계기를 마련한 것입니다. 그 이후 수 십년 동안 외규장각 의궤 반환 운동이 이어졌고 그 결과, 올해 초 외규장각 의궤가 145년만에 한반도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무척이나 슬픈 귀환인 셈이죠. 그 사이 나라는 세 번 바뀌었고, 그 의궤를 만들었던 제국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전시된 의궤들에게 마음이 있다면, 조선의 후손들이 살아남아 그 대지 위에 세워진 건물 안에 전시된 의궤를 보러 온 모습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역사란 마치 거대한 강물과도 같아서 이 땅이 살아있는 한 끝도 없이 흘러갈 것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이번 외규장각 의궤 반환과, 반환된 의궤 전시가 지난간 우리 과거 문화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계기를 마련하고 우리 전통에 대한 자부심으로 이어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랜만에 좋은 도록 한 권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외규장각 의궤가 만들어졌을 조선 후기, 조선의 종이는 세계 최고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합니다. 전통 종이를 만드는 과정이 번거롭고 힘들기도 하겠지만, 종이 장인에 대한 관심이나 지원이 없었던 탓입니다. 왕실에서 책을 손수 만들던 몇 되지 않던 나라에서 이제는 고급 종이를 수입해 오는 나라로 변했으니깐요. 고급스러운 '145년 만의 귀환, 외규장각 의궤' 도록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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