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문학

디지털 시대를 역행하는 종이잡지, 모노클(MONOCLE)

지하련 2011. 9. 27. 15:54





회사에서 정기구독해서 읽고 있는 동아비즈니스리뷰 82호에 흥미로운 인터뷰가 실렸다. 영국의 종이잡지 모노클(Monocle)의 대표이자 편집장인 타일러 브륄레와의 대담. 

브륄레는 이렇게 말한다.


“모노클은 성장하는 프린트 제품(print product)이다. 우리는 저널리즘에 투자하고, 시장에 도전(challenge market)한다” - 타일러 브륄레



잡지, 아니 종이 콘텐츠 시장의 거대한 흐름 -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향해가는 - 을 거슬러는 듯한 그의 인터뷰는 디지털적 삶 속에서 아날로그적 취향을 가진 나를 자극했다. 활자는 종이로 읽어야 제 맛이라고 믿는 나로선 타일러 브륄레의 인터뷰을 읽는 내내, '맞아, 맞아, 이래야 해' 라며 공감했다. 


 

“생동감 있게 콘텐츠를 전달하는 디지털과 싸워 이기려면, 종이 매체를 통한 경험(print experience)을 선사해야 한다. 즉 넘겨읽는 손맛이 느껴지고(tactible), 재미있고(exciting), 수집할 만한 가치가 있어야(collectible) 한다.” - 타일러 브륄레



과거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종이 매체와 디지털 매체의 대립각을 세우고, 종이 매체는 죽고 디지털 매체만이 살 길이라고 주장하는 덜 떨어진 디지털주의자와 논쟁을 벌일 생각은 전혀 없다. 왜냐면 종이 매체가 주는 경험과 디지털 매체가 주는 경험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아직까지도 종이 매체가 좋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종이 매체는 공간적 존재다. 공간을 차지하는 것을 눈으로 볼 수 있으며, 만질 수 있고, 느낄 수 있고, 또한 그것은 시간 속의 매체이다. 세월이 지나간다는 것을 손 때 묻은 페이지와 구겨진 종이, 그리고 그 특유의 종이 썩는 냄새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디지털 매체가 절대로 가질 수 없는 것이며, 가질려고 하지도 않을 속성이다.

종이 매체는 디지털 매체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속성,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근본적으로 다른 매체다. 마치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소설과 영화를 경쟁 구도로 파악하고 소설의 죽음을 이야기했던 덜 떨어진 문학 평론가들처럼 되지 말자. (솔직히 나는 아직까지도 이들의 덜 떨어진 견해로 인해 한국 문학은 최소 10년 이상 퇴보했다는 이상한 편견에 휩싸여 있다.) 

결국 디지털 매체는 접근 용이성과 생산 용이성이라는 허울 좋은 간판 아래, 넘쳐나는 자극적이고 쓰레기 같은 콘텐츠들 속에서 스스로의 방향을 잃지 않을까. 디지털 매체로의 전환을 고민하고 있다면, 매우 신중해져야만 할 것이다. 디지털 매체로 전환한다고 해서 잡지 생산 비용이 눈에 띌 정도로 절감되지 않을 것이다. 늘 그렇듯이 콘텐츠 생산에 많은 돈이 들어갈 것이고 디지털 매체로 전환하는 경우, 디지털 매체에 맞는 또다른 방식의 인터페이스(UI) 개발에 예상치 못한 금액이 나가게 될 것이다. 결국 종이냐, 디지털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잡지냐의 문제다.

여튼, 모노클의 타일러 브륄레의 인터뷰를 읽고 모노클을 주문했다. 그리고 어제 주문한 모노클(Monocle) 10월호가 오늘 아침에 왔다.


 

“양질의 퀄리티로 사람들이 수집할 만한(collectible) 매거진을 펴내면 사람들은 그 매거진을 집어들 것”
- 타일러 브륄레


대학 시절 잡지를 만들었고, 얼마 전에도 잡지를 만들었던 나는 아직도 잡지 욕심을 가지고 있다. 몇 년 전에 잡지 고민을 심각하게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젊은 필진들을 모을 수 있는 단계까지 갔으나, 역시 생산비는 ...

그렇다면 모노클 10월호는 나에게 어떤 자극을 줄 수 있을까. 흥미롭다.





잡지를 펼치면 위와 같다. 저 빽빽한 활자들을 보라. 마치 1980년대 잡지를 보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이런 잡지가 한국에도 있었다. '샘이 깊은 물'... 하지만, 지금은 나오지 않고...

모노클 10월호. 정기구독 신청을 하기 전에 미리 한 권만 주문했다. 안 그래도 읽을 페이지들이 쌓여있는데, 이 잡지까지 들어오면 직장 생활 이 외의 나머지 시간은 읽는 데에만 보내야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