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에서 1998년 사이 대한항공의 충돌사고는 항공업계 평균보다 17배나 더 많았다. 조사요원들은 한국의 사회적 상황이 조종석에 그대로 재연된 것이 근본원인임을 발견했다. 사회적으로 격이 높은 기장에게 다른 조종사들은 직설적이지 못하고 정중한 말로만 이야기했다. 결국 기장 혼자서 항공기를 조정하는 격이었다. 현대의 제트항공기들은 안전한 비행을 하려면 2~3명이 조종팀을 이뤄서 조직적으로 비행에 임해야 한다. 조종기술의 개별적인 훈련 분량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금은 대한항공의 사고기록이 항공업계 평균수준으로 내려왔다. 에일턴Aleton(보잉Boeing의 자회사)에서 파견된 전문가들이 조종사들 간의 인간역학을 대등한 사람들의 팀으로 바꾸어놓았기 때문이다.
- 찰스 펠러린, <<나사, 그들만의 방식>>(김홍식 옮김, 비즈니스맵) 42쪽-43쪽
얼마 전 읽은 아티클에서 ‘축구는 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입으로 하는 것’이라는 거스 히딩크 전 국가축구대표팀 감독의 언급을 읽고 동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개뿔 같은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이 한국의 많은 회사 구성원들을 힘들게 하는지 아는 까닭에, 입으로 하는 것 이상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도 안다. 그건 바로 태도의 변화다.
직급을 단순화하고 회의 문화를 바꾼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해마다 부즈앤컴퍼니(Booz & Company)에서 발표하는 글로벌혁신(Global Innovation)에 대해 조사해 발표하는데, 올해 글로벌 혁신 조사 보고서의 제목은 흥미롭게도 ‘왜 문화가 중요한가(Why Culture is Key)’였다.
그런데 (기업)문화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면 뭐 하는가? 변해야 하는 걸.
자신은 변하지 않고 남만 변하길 바라는 문화가 한국 사회 전반을 물들이고 있는 상황 - 자기가 하면 사랑이요, 남이 하면 불륜 - 에서 일개 기업 차원에서의 태도 변화를 기대하긴 어려울 것이다. 수직적 문화 속에서 태어나 학교를 다닌 이들에게 도리어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을 강조하는 것이야 말로 도리어 이율배반이 아닐까.
하지만 대한항공의 사례에서 보듯이 ‘격의 없는 대화’는 기업에서 매우 중요하다. 시끄러운 축구 경기장에서 서로의 위치를 확인하고 서로를 격려하기 위해 발이 아니라 입을 사용해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이는 기업에서도, 조직에서도, 작은 팀 내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격의 없는 대화’를 위해 기업은 공적인 의사소통 채널이 아니라 사적인 의사소통 채널을 활발하게 조직화하여야 한다. 가령 타 부서와 함께 점심 식사 시간이나 비공식적인 사내 커뮤니티 활동을 장려하여야 한다. 그리고 리더는 구성원들이 먼저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드는 법을 알아야 하고, 그 다음에는 그 이야기를 끝까지 듣는 훈련을 해야 한다. 구성원은 리더의 이야기를 중간에 자르지 못하지만, 리더는 원하는 언제든 구성원의 이야기를 중간에 자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종 수평이고 수직이고 관계없이 밀어붙이는 전략도 필요하다. 특히 작고 빠르게 움직여야 하는 창의적인 조직에서는. 그러나 이를 모든 조직으로 확대시키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참고)
http://www.booz.com/global/home/what_we_think/featured_content/innovation_1000_2011
- 위 사이트에 가면 부즈앤컴퍼니에서 발간한 자료를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 격의(隔意)란, 서로 터놓지 않는 속마음을 뜻하는 단어다.
- 찰스 펠러린의 '나사, 그들만의 방식'은 조직 경영, 리더십에 대한 탁월한 통찰을 전해줄 수 있는 책들 중의 한 권이다. 읽기에 다소 어렵다는 느낌을 줄 수 있을 지도 모르겠지만, 끝까지 읽기를 권한다. 특히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리더의 유형에 대해 스스로 한 번 묻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