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간단하게 드립 커피 즐기기

지하련 2012. 1. 25. 09:20


방 안 가득 먼 대륙에서 건너온 향이 퍼진다. 사치스럽다.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했을 때 처음 마셨다는 이 음료는, 민비가 좋아했고 20세기 초반 식민지 조선에서는 몇몇 사람들에게나 알려졌던 그런 사치품이었다. 이제 불과 백 년 남짓 흐른 것인가.

커피의 역사는 흥미로운 사치품의 역사다. 아직도 몇몇 원두들 - 코피루왁, 블루마운틴 등 - 은 그런 사치품에 속하고, 몇몇 애호가들로 인해 꽤 고급스러운 취미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나의 취향은 너무 어중간해서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전문가스럽지 못하고 아마추어하고 하기엔 너무 아는 척해서 핀잔을 듣기 일쑤다. (아래 내용에서 그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니...)

오늘은 커피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 한다. (생각보다 재미없고 지루하기만 한 이 글을 나는 왜 적었을까.)

커피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커피 두 스푼, 프리마(상표가 그대로 고유명사가 된 커피 크림) 세 스푼, 설탕 두 스푼으로 이루어지는(이는 각자의 취향이 있다) 밀크(?) 커피에서부터 그냥 커피만 두 세 스푼을 넣는 블랙 커피, 일회용 커피 믹스로 탄 커피, 먼지 바람이 쉴 새 없이 불어대는 버스 정류장 옆 자판기 커피까지. (이런 버스 정류장 보기도 어려운 시절이 되었다. 전 국토의 도시화가 진행되어 이젠 시골 풍경이란 것이 사라지고 있으니..)

커피를 마시는 때도 여러 가지다. 인연에도 없는 낚시를 가서 어류라고 불리는 생명체와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채 쉬지 않고 마셔되는 불쾌한 커피부터, 사랑하는 연인과 눈빛을 뒤섞으며 마시는 낭만적 커피, 기말 시험을 준비하느라 잠을 거의 자지 못한 어느 아침의 정신이 번쩍 나게 하는 커피, 마감이 얼마 남지 않은 원고를 쓰던 어느 새벽의 쓸쓸한 커피까지.

참으로 많은 커피들이 각기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수많은 이들의 위로나 고통이 되었을 것이다. (왜 고통인지는 각자의 공상에 맡기기로 하자) 

나도 어느 새 여러 커피들을 전전한 끝에 정착한 것이 드립식 커피다. 이 방식의 매력은 손쉽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다양한 커피 원두의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몇 가지의 장비가 필요할 뿐이고. 

준비물은 그리 많지 않지만, 경제적 형편에 따라서는 가격이 제법 될 수도 있다.  먼저 드리퍼(Coffee Dripper)가 필요하다. 나는 두 개를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대형 마트에서 산 드리퍼와 칼리타 드리퍼이다. 당연히 마트 드리퍼가 저렴하지만, 막상 두 개를 같이 사용하다 보니, 마트 드리퍼로 내린 커피는 결정적으로 맛이 없다.

이유는 아래 유리 서버로 내리는 부분에 나 있는 구멍이 칼리타 드리퍼보다 작다. 그렇다 보니, 가늘고 느리게 물을 부어도 금세 물은 고이게 되고 커피 맛은 둔해지고 탁해지고 거칠어진다. (이런 맛을 다르게 표현하면 커피 맛이 무거워지고 진해지며 거칠 매력을 가지게 된다고 할 수 있으니, 이걸 좋아한다면 어쩔 수 없다.)

(역시 취향의 세계는 말 장난이다. 독일의 철학자 칸트Kant도 이 사실을 알았을 테니, 취미판단Geschmacksurteil이라는 어려운 단어를 만들어 내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래 뜨거운 물에도 아무런 지장이 없는 유리 서버가 필요하다. 굳이 커피 전문 샵에서 파는 것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위의 드리퍼가 올려지는 것이면 충분하다. 그냥 머그잔 위에 드리퍼를 올려놓고 조금씩 커피를 내려 먹어도 상관없다.

그 다음은 주전자! 드립 전용 포트가 필요하다. 이건 무척 중요하다. 안타깝게도 이 녀석의 가격은 최소 몇 만원 이상이다. 심지어 전문 브랜드 제품은 십만원 이상 나가고, 비슷한 모양의 대형 인터넷 쇼핑몰 제품도 최소 몇 만원 수준에서 구할 수 있다. (실은 주전자 주둥이가 긴 만원 대 녀석도 있긴 하지만, 이것도 전문 제품과 비교해 주둥이에 난 구멍 크기가 큰 관계로...)

이렇게 장비(?)들이 준비되면, 원두 커피를 구입하면 된다. 대형 인터넷 쇼핑몰이나 동네 커피숍을 이용하자. 하지만 동네 커피숍에서는 200g에 무조건 만이천원 이상 줘야 한다. 하긴 100g에 육칠천원 선을 하기도 하지만. 인터넷 쇼핑몰을 이용하였을 경우에는 400g(200g + 200g)을 만오천원 이내로 구입할 수 있으며, 여과지는 서비스로 준다. 주문할 때는 꼭 드립용임을 명시해야 한다. 커피를 추출하는 방법에 따라 커피 원두를 어느 정도 크기로 부수는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나는 이디오피아 예가체프 원두를 좋아한다.)

(일반적으로 동네 커피샵 - 원두 로스팅까지 하는 샵에서 100g이나 200g 정도 구입해서 마시는 것이 최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로스팅한 날짜와 원두의 상태 등을 모두 감안해서 골라야 할 것이다. 나도 몇 군데의 샵을 전전한 끝에 요즘에는 인터넷쇼핑몰이다. 하긴 인터넷 쇼핑몰에서도 몇 곳을 전전했다.)

모든 것이 준비되면, 뜨거운 물을 준비에 주전자(드립전용포트)에 담아 커피를 내리도록 하자. 이 때 커피 원두의 양은 몇 번의 시행착오가 필요하다. 각기 원하는 커피 농도가 다르기 때문에. 되도록이면서 가늘고 천천히 물을 붇는 것이 좋으나, 이는 조금의 훈련이 필요하고, 심지어 오른 쪽으로 돌리면서 내려야 된다고 하기도 하고 왼 쪽으로 돌리면서 내려야 된다고 하기도 하니, 각자 알아서 편한대로 하면 된다. 하지만 커피 원두에 골고루 물기가 스며들어 커피를 추출하기 위한 것이니, 천천히 돌려가며 뜨거운 물을 붓는 것은 필수적이다. 


드립용으로 부숴진 원두커피는 구입하자 마자, 바로 냉동실에 넣어 보관한다.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원두 커피의 맛과 향이 사라지기 때문에 밀폐 용기에 담아 따로 보관하거나 조금씩 구입해 커피를 내려 먹는 것이 좋다. (밀폐용기는 다이소에 가면 몇 천원에서 구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실온 보관을 추천한다. 또한 냉동실에 있다가 나온 원두로 실온 상태로 변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드리핑을 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역시 신선한 드립용 원두커피를 조금 사서 빨리 마시는 것이 드립 커피를 즐기는 최선의 방법이 될 것이다.)

이 글을 적게 된 건, 이 글을 적기 전에 이런 소재의 글이 꽤나 유용하고 재미있을 것 같아서인데, 막상 적고 보니 지루하고 유용한 것같지도 않다. (재미없는 이 글을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를!) 이미 드립 커피 마실 사람들은 알아서 다 마시고 있을 테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커피숍을 가진 나라에서 단골 커피숍 하나 쯤을 있을 테니 말이다.

9세기 무렵 이디오피아에서 시작된 커피가 유럽에 본격 전해진 것은 17-8세기 네덜란드 무역상들을 통해서이다. 그 사이 여러 무역상들을 통해 유럽에 전파되었으나, 일부 사람들에게만 알려졌으며, 또한 이교도의 음료라는 이유로 금지된 것이기도 했다.


그나저나, 이 글을 적다 보니, 내려 놓은 커피가 다 식었다. (그런데 식은 커피를 전자렌지에 데우면 확실히 맛이 없다. 차라리 다시 내리는 편이 좋으니, 렌지에 데우는 행위를 하지 마시길.)


* 파란 색으로 덧붙여진 글은 다른 곳에 올린 포스팅에 커피 애호가가 댓글을 달아주어, 이를 반영한 설명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