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이론

블랙 스완(Black Swan),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지하련 2012. 2. 5. 23:03

블랙 스완 - 10점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지음, 차익종 옮김/동녘사이언스



블랙 스완 Black Swan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Nassim Nicholas Taleb(지음), 차익종(옮김), 동녘사이언스


이 책을 알게 된 것은 몇 년 전 비즈니스 저널을 통해서다. 금융이야기가 나오고 월가의 허상을 파헤쳤다는 식의 서평이 나왔기에, 그 땐 파생 금융 상품의 허점을 통렬하게 비판한 경제 서적이라고 생각했다. 확실히 이렇게 홍보하는 편이 책을 많이 파는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검은 백조의 발견'과 같은 아주 예외적인 사건으로 우리의 문명이나 이론, 학문의 세계라는 것이 한 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으며, 연역법적 접근은 이미 폐기되었고(책에선 연역법은 아예 언급되지도 않지만), 귀납법적 접근마저도 믿을 수 없다고 말하는 이 책을 '플라톤주의에 반기를 든 금융공학자의 탁월한 저서'라는 식의 인문학 서적으로 포장했다면 팔리지 않았을 것이 분명할 테니.

금융 관련 서적에 대해선 큰 관심이 없었고, 읽을 책들이 밀려있었던 탓에, 나는 이 책을 몇 년이 지난 최근에서야 읽었다. 그런데 이 책은 지난 세기 최대의 과학철학자 칼 포퍼(Karl Popper), 그 전에는 영국 경험론 철학자 흄(David Hume), ... 기원전까지 거슬러 올라가 에피쿠로스의 영향을 받은 후기 회의주의자로 알려져 있는  섹스투스 엠피리쿠스(Sextus Empiricus)까지 언급하는 정체불명의 책이었다. 거기에다 독일의 천재 수학자 가우스(Carl Friedrich Gauss)의 정규분포곡선을 거대한 지적 사기(GIF, Great Intellectual Fraud)라고 공격하며 그 옆에 만델브로(Benoit Mandelbrot)적 무작위성, 프렉탈(Fractal)을 대비시킨다.

이 쯤 되면 이 책의 난이도가 걱정스럽겠지만, 생각만큼 어렵진 않다(반대로 번역이 염려스럽긴 하다). 어렵지 않은 이유는 저자,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의 목적은 매우 분명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
단 하나의 예외로 무너질 수 있는 이론들로 사람들을 현혹시키지 마라'는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필요없는 이야기들은 다 제외하고, 최대한 쉽게 풀어쓰고, 노골적인 표현('통계학자들은 강의실을 떠날 때 뇌를 두고 나오는 경향이 있어서 너무나 사소한 추론 오류에 빠진다')으로 주장을 명확하게 강조한다.

1000일의 칠면조 - 흄의 문제

칠면조가 있다. 그리고 이 칠면조에는 매일 같이 안부를 묻고 모이를 가져다 주는 주인이 있다. 귀납법에선 경험적 사실(증거)를 누적시켜 명제를 도출해낸다. 칠면조의 경험 세계 속에선 이 주인은 너무 선량하고 칠면조에게 우호적이다. 1000일째되는 날까지도 주인은 그 칠면조에게 미소를 띠며 모이를 가져다 주었다. 그리고 1001일째 칠면조는 죽임을 당했고 그 주인 가족은 맛있게 칠면조 요리를 해먹는다.

귀납법적 접근에 의하자면, 1000일까지의 칠면조에게 1001일째의 죽음은 전혀 예상할 수 없다. 1000일까지 칠면조의 경험 세계 안에서 누적된 모든 정보들을 다 모아도 1001일째의 죽음은 논리적으로 나올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단 하나의 극단적인 사건이 그 전까지 누적되었던 모든 경험적 정보들을 가치없게 만들어버렸다(이런 측면에서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는 신문들을 읽으며 정보 수집하는 것이 아무런 의미 없다고 말한다. 정보 수집에 열 올리지 말고 지식을 쌓으라고 조언한다. 플라톤주의(*)에 대한 적절한 포기와 함께).  


(*이미지 출처: http://whywereason.wordpress.com/tag/nassim-taleb/)


검은 백조 

'백조는 희다'라는 것이 정설이지만, 검은 백조가 발견된 후 이 정설은 바로 폐기되었다. 단 하나의 예외가 기존에 통용되던 이론을 거짓말로 만들었다. 탈레브는 평범의 왕국과 극단의 왕국을 대비시키며 극단의 왕국에서는 '불평등이 극심해서 하나의 관측값이 불균형한 비율로 전체에 충격을 가한다'고 말한다. 

주목할 점은, 현대 기술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전쟁도 평범의 왕국에 속했다는 사실이다. 적을 한 사람 한 사람 처치할 수 밖에 없는 시대에는 전사자 수는 많지 않았다. 오늘날에는 대량살상무기로 인하여 단추 하나, 미치광이 한 명, 단 한 번의 작은 실수로도 지구상의 인간을 다 쓸어버릴 수도 있다.
- 89쪽 

하지만 검은 백조는 예측할 수 없다는 점에 우리 지식의 한계를 벗어나 있다. 이 점이 중요하다. 우리 앎의 범위를 벗어나 있다고 해서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를 무시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무시하는 학자들을 공격하고 조롱하고 비아냥거리기 위해서 씌어졌다고도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하지만 도리어 당연한 것들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 로마의 웅변가, 문학가, 사상가, 스토아 철학자, 정략가이자 덕망가였던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지어냈다. 신에게 예배를 드림으로써 난파선에서 살아남았다는 이야기를 담은 그림을 무신론자 디아고라스(Diagoras of Melos)의 한 추종자가 보게 되었다. 그림의 목적은 기도가 우리를 익사하지 않게 만들어 준다는 교훈을 알려주는 것이다. 무신론자는 이렇게 물었다. "그런데, 기도하고도 빠져 죽은 사람의 그림은 어디 있소?"


키케로의 저 이야기는 읽고 나면 당연한 것이지만, 현실 세계에선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다. 가령 의사들이 자주 쓰는 표현 NED는 No Evidence of Disease(질병의 증거 없음)의 약자라서, 증거가 없기 때문에 질병이라고 100%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지, 질병 없음의 증거는 아니다. 하지만 저자는 얼마나 많은 의사들이 NED를 질병 없음의 증거로 여기고 환자들에게 말하는가를 지적한다.

아주 오래 전에 '성공시대'라는 TV 프로그램이 있었다. 악전고투 끝에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이 프로그램에는 결과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사연이 나온 것이지, 악전고투 끝에 결국 실패한, 실패할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사연은 나오지 않았다. 실은 한 명의 성공 뒤에는 나머지 아흔아홉 명의 실패가 가려져 있는 건 아닐까.

그렇다고 성공을 향해 달려가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허황된 믿음을 심어주는 이야기는 이제 그만이라는 것. 

불확실성 속에서 살아가기 

이 책을 다 읽고 난 다음, 저자는 예외적인 상황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이론적 논리만을 고집스럽게 주장하는 플라톤주의자들을 공격하기 위해 이 책을 썼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우리 대부분은 평범의 왕국 속에서 살아가고 아주 드물게 검은 백조를 만날 뿐이다.

무수한 보험회사에서는 검은 백조를 들이대며 영업을 하고 검은 백조 상품들은 지금도 보험회사의 기획실에서 연구되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와 반대로 투자회사 담당자들은 고객 앞에 가서 예외적인 상황이 오더라도, 그것이 발생할 확률은 0.1% 이하라며 99%의 확률에 투자하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결국 기업들의 마케팅 위에 우리의 일상은 만들어지고 흘러갈 것이다. 

실은 너무 많은 정보가 문제다. 거주하는 사람들이 100명도 채 되지 않는 시골 마을에 들어가 1년에 한 두 번 도시에 나온다면, 여러 통신 수단을 다 없애버리고 살아간다면 우리 삶이 불확실성 위에 있다는 생각이 들까? 이렇게 묻자. 1920년도의 식민지 조선이 불확실할까? 아니면 2012년의 한국이 더 불확실할까? 

이 책은 거짓말을 진실인 양 호도하는 많은 경제학자들과 금융 산업 종사자들, 강단의 교수들을 비난하기 위해 씌여졌지만, 일반 독자에게도 이 책의 호소력은 꽤나 크다. 하지만 현대의 이론들이 다 그렇듯, 그건 틀렸어, 그건 잘못되었어(혹은 반대로 그건 옳아, 그것도 타당한데)라고 말하곤, 그럼 진짜 정답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지는 않는다.

실은 정답을 몰라도 상관없다. 정답이란 없는 것이니까. 실존주의 이후의 우리(의 인생)는 여분의 존재이고 내던져진 존재이다. 결국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세계다. 다만 그 치부를 플라톤이 숨겨주고 있었을 뿐이다. 

리뷰가 길어졌다. 하긴 짧게 쓰기엔 이 책은 흥미롭고 재미있으며 시사적이기까지 하다. 철학에서 순수 수학까지 종횡무진하는 이 책, 한 번 읽어둘 만하다.





* 플라톤주의(Platonism): 이 단어는 이제 일반명사화되었다고 보는 편이 좋을까. 이 책에서도 별다른 언급없이 '플라톤주의'라는 단어가 수시로 등장하니 말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플라톤주의'는 칼 포퍼의 '열린 사회와 그 적들'(탈레브가 이렇게 이야기한 것은 아니지만)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음이 분명하다. 플라톤주의란 플라톤 철학과 그 철학에서 영향을 받은 철학자들, 혹은 철학(학문)적 경향과 전통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가 말하듯, '철학의 역사는 플라톤 철학의 각주'이니, 학문의 세계 종사자들 대부분은 플라톤주의자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이 책에서 언급하는 플라톤주의자들은 예외를 인정하지 않고 배제하며(현실세계), 학문 체계의 순수성(이데아세계)만을 추구하는 주류 경제학자들, 금융 산업 종사자들, 강단 철학자들과 일군의 교수들을 모두 지칭한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결과적으로 극단적 예외 사항으로 무너질 것이 뻔한 이론적, 학문적 틀을 고집하는 바보들로 표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