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이론

술의 역사, 피에르 푸케/마르틴 드 보르드

지하련 2003. 12. 11.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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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의 역사
피에르 푸케, 마르틴 드 보르드 지음
정승희 옮김, 한길사 (* 한길크세주 시리즈 15)*


그대는 감히 술이 정신을 흐리게 한다고 비난하려 드는가. 술보다 더 큰 이득을 가져다 주는 것이 있다면 내게 말해보라. 똑똑히 보라. 술을 마시는 이는 부자요, 만사에 성공하고 모든 재판에서 이긴다. 그는 행복하며 친구를 돕는 사람이다. 자, 어서 내게 영혼을 듬뿍 적셔줄 술병을 가져오라. 내가 그것으로써 지혜를 구할 수 있도록.
- 데모스테네스, <<기사전>>**

책의 첫 페이지부터 독자를 잔뜩 기대시키는 저 문구는 얼마 읽지 않아, 요즘 세상에는 어쩌면 어울리지 않는 문장이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즉 술을 좋아하는 독자가 이 책을 드는 건 썩 좋은 일로 보이진 않는다. 왜냐면 이 책은 술에 대한 감상적이고 문학적인 역사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술에 대한 안 좋은 점을 더 많이 우리에게 알려주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들은, 한 명은 프랑스 알코올협회 창립자이며 한 명은 알코올 중독자 심리분석의이다. 그렇다고 해서 술에 대한 안 좋은 면만을 부각하고자 이 책이 서술되지는 않았다. 적어도 술을 좋아하는 프랑스인답게 객관적인 시각을 견지하고 있으나, 그간 간과해왔던 술의 숨겨져 있는 역사를 끄집어 내고 있어 술에 대한 찬사로만 일관하는 나 같은 독자에게는 쓰디쓴 약이 되는 책이다. 이 책을 읽고 알게 된 바를 적어본다.


1. 알코올 중독에 대하여
병원에 입원하는 알코올중독자들은 한 20년 정도 매일 소주 네다섯 병씩 매일 마시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알코올중독이라는 말만 들었지, 실제 알코올중독 환자의 주량에 대해선 알지 못했는데 얼마 전에 만난 의사인 후배가 전해주었다. 상상했던 것 이상이었다.

그렇다면 알코올 중독은 언제부터 생겨난 것일까. 술이 생기고 난 다음부터 있었던 건 아닐까. 플라톤의 <<향연>>을 읽어보면 술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이 때에도 알코올 중독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러나 알코올 중독은 산업화의 산물이다.

즉 19세 산업혁명을 통한 대량화의 물결 속에서 알코올중독이 시작되었다. ‘19세기 초 유럽과 신대륙에서 일어난 산업혁명은 인간의 생활환경에 일대전환을 가져왔다. 70년이란 짧은 세월 동안 성인 한 명당 연간 술 소비량이 15리터에서 35리터로 단숨에 증가했던 것이다.’(41쪽)

고대 판테온 신전의 제대나 로마시대 폼페이의 술집에서 에밀 졸라의 <<목로주점>>에 나오는 쿠포나 페르베르 같은 인물이 있을까 하고 찾아봐야 헛수고다. 타소스 섬에서 나온 포도주나 팔레르노산 포도주는 합생트나 트루아 시스처럼 독하지 않았고, 피레우스의 기와공도 로셰슈아르 거리의 함성지붕을 이는 지붕공처럼 살지 않았다.
- P. 발라르, 41쪽.


즉 술의 생산과 보급이 확대되고 대중의 가난이 심각해졌을 때 알코올중독이 나타난 셈이다. 산업혁명 이전에는 술은 왕이나 귀족, 또는 성직자의 차지였으며, 또한 그 당시의 술은 독한 술도 아니었다. 1837년 프랑스의 의사 빌레르므는 그의 보고서에, “가난과 슬픔이 힘겨울수록 그들은 술로 잊으려 한다”고 적고 있다. (* 19세기에 진행된 빈부격차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19세기의 마르크스 사상이 그냥 생겨난 것이 아니다.)

2. 술 식민주의 alchoolonialisme

‘술 식민주의는 술의 아주 특별한 용도를 말한다. 이 신조어는 한 나라의 국민을 식민지 노예로 만들기 위해 국가 내에서 제조되었거나 수입해온 술의 공급과 사용을 조작하는 것을 가리킨다.’(* 83쪽) 그렇다면 술은 어떻게 이용되었을까. ‘1549년에서 1848년에 이르는 3세기 동안 인류 역사상 최대의 민족학살이 자행되었다. 포르투갈이 맨 먼저 노예장사를 시작했는데, 유럽의 노예상인들이 아프리카 대륙의 동부와 북동부에서 사냥한 흑인들은 약 2천만 명으로 추산된다. 그 중 6백만 명은 미대륙으로 가는 동안 배 안에서 죽었다.’ 그리고 이 노예장사에 술은 매우 유용하게 이용되었다. ‘술을 먹임으로써 흑인 부족 전체를 잡거나 그들의 머리를 둔하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아프리카의 왕들은 화약과 총탄, 오드비(술의 한 종류)를 사들였다. 그들은 심지어 “우리에게는 팔 물건이 세 가지 있다. 그것은 여자와 남자, 아이들이다”라고 말했다.’ (* 85쪽)

이 책의 6장 술 식민주의는 꼭 읽어봐야 할 부분이다. 사빈 하구스는 그의 저서 <<캐나다의 인디언>>에서 ‘오늘날 캐나다 인디언들에게 있어 경제성장은 오히려 빈곤과의 만남을 의미하며, 발전은 파멸과 고독, 그리고 무엇보다 술을 의미한다’고 적고 있다. 즉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자국의 대기업 및 세계의 다국적 기업들은 술을 생산, 판매하고 있으며 가난과 슬픔을 이기기 위해 하층민들은 술을 마시고 있기 때문이다. 로마의 역사학자 타키투스는 ‘술에 취하게 만들면 우리는 무기를 사용하는 것보다 더 쉽게 악을 동원하여 그들을 정복할 수 있다’고 했다. 술이 정치적이며 경제적인 도구로 이용된다는 사실은 매우 끔찍한 일이다. 이는 19세기, 중국에서의 ‘아편’과 비슷한 역할을 했던 것이다.

우리는 이 장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명심해야 한다. 수십 년 전만 해도 프랑스의 가난한 노동자들은 보잘것없는 월급에 매일 2, 3리터의 적포도주를 ‘현물 보너스’로 얹어 받았다. 그래야만 고용주들은 술로 인해 판단력이 흐려진 노동자들을 착취와 복종의 길로 무사히 인도해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 95쪽

3. 이슬람에서의 술

이슬람의 시에서도 포도주에 관한 예찬이 곧잘 나타난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상상 속의 포도주만을 의미한다. 의로운 사람이라면 누구나 ‘상상에만 갇혀 있는 포도주’를 접할 수 있다고 코란은 말한다.

이 상상의 포도주는 신의 말씀을 뜻한다. 그것은 사랑의 음료로, 물질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속세의 포도주를 멀리하면 천국의 포도주를 얻을 수 있다. 속세의 욕망을 뜻하는 포도주, 그것의 진정한 의미는 천국에서만 찾을 수 있다. 속세의 포도주는 덧없는 환상에 불과할 뿐이다.
- 68쪽 ***

개인적으로 오마르 카이얌****의 <<루바이야트>>를 좋아하는데, 천년 전에 씌여진 이 시집 속의 포도주도 저 상상의 포도주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나도 속은 셈인데. 왜냐면 가끔 포도주를 마실 때, 천년 전쯤에 아라비아 어딘가에서 술을 마셨을 오마르 카이얌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다자이 오사무*****였나, 그는 오마르 카이얌을 주성(酒聖)이라고 칭했는데, 그는 그 사실을 굳게 믿고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 외 이 책은 여러 정보들을 담고 있다. 술을 좋아한다면 이 책을 꼭 사서 읽어보기 바란다. 왜냐면 술에 대한 환상을 어느 정도 깨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주량이 혁신적으로 늘어난다거나 술 마시는 회수가 끔찍스러울 정도로 줄어드는 건 아닐 테지만.


<각주>
* 한길크세주 시리즈가 계속 출판되기를 바랬으나, 현재는 나오지 않고 있다. 무척 유용한 시리즈인데. 예전에 탐구당에서 ‘탐구크세즈’로 나온바 있으니 대학 도서관에서 한글로 된 이 총서 시리즈를 볼 수 있을 것이다.

** 이 책에 대해선 아는 바가 없다. 이 책에 대해서 알게 되면 소개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 이 문장을 읽으면서 국내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카드를 떠올렸다. 왜냐면 카드 사용은 매우 효과적인 ‘경기부양책’ 이였기 때문이다. 즉 카드를 통한 내수시장 확대는 기업들의 주머니를 두둑하게 했기 때문이다. 그 사이 서민들은 신용불량으로 파탄이 나버렸는데 말이다. 거칠게 말하자면 DJ 정부는 서민들의 주머니를 털어 IMF를 조기 졸업한 셈이다.

**** 이 책의 역자는 ‘비관적이고 부정적인 시각의 시로 유명한 페르시아의 시인’이라고 주석을 달아놓았는데, 어떻게 저런, 무책임하고 경멸스러우며 쓰레기 같은 주석을 달아놓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긴 <<루바이야트>>를 읽어보지 않았을 테니. 아마 이 책을 번역하면서 첨 들어보았을 게다.

***** 일본의 소설가. 아직까지 일본 내의 많은 문학 소년소녀들이 다자이 오사무의 행적을 따라 여행을 떠날 만큼 컬트적 인기를 누리고 있는 작가이다. 1948년 어느 강물에 애인과 함께 몸을 던져 자살했다. <<사양>>, <<인간실격>> 등의 작품이 있다. (* 모르는 사람이 혹시 있을지도 모르겠다 싶어. 간단하게 주석을 달았음. 국내에도 꽤 팬이 많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