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오래된 프랑스 시인의 시를 읽는 일요일 오후

지하련 2012. 6. 3. 18:06



개울가 목장은 … 




                           프란시스 잠 





개울가 목장은 풀이 무성하다.

퍼부은 비에 밀이 젖어 포기 포기 쓰러졌고

연회색 빛인 버드나무 말고는

둑마다 잎새들이 진초록이다.

베어 놓은 꼴은 벌통처럼 쌓여 있다.

언덕들은 너무 완곡하여서 애무를 받고 있는 듯하다.

시인인 친구여, 우리에게서 마음 속 기쁨을 빼앗아 가는

괴로움만 없다면 모든 게 달콤하리.

하지만 괴로움을 벗어나려 함도 쓸데없는 일,

말벌이 풀밭을 떠나는 적이 좀처럼 없듯이.

그러니 ‘삶’을 가는 대로 흐르게 내버려두고,

검은 소떼에게 마실 물이 있는 데서 풀 뜯게 하자.

서서히 괴로움에 시달리는 사람을,

우리와 같은 모든 사람을 측은히 여기자.

그들 모두가 재능이 있는 건 아닌 것 말고, 우리와 같은 그들.

그것이 유일한 차이이면서 중요한 사실이 되기도 하지만

오래 퍼붓는 급류가의 맺혀 있는 싱그러운 딸기처럼,

매혹적인 사랑만이 훌륭한 위안. 



(* 번역: 김기봉, 혜원출판사, 1994년) 




번역이 좋지 않지만, 프란시스 잠 특유의 세계를 엿볼 수 있었다. 특유의 세계라고 옮기긴 했지만, 서정적 프랑스라고 하기엔 그가 살았던 시기는 너무 격동의 세계였다. 서정적인 시가 씌여지기 어려운 시대에 잠은 서정적이었으니, ... 그는 현실에서 잠시 뒤로 물러나 어떤 서정성에서 위안을 얻으려고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일요일 오후도 모두 지나가고, 문득, 방에 앉아 정처없이 메모를 하다, 책을 읽다, 잡지를 보다, 쓸쓸하다는 생각에 스치고 프란시스 잠의 시를 읽었다. 


오래된 프랑스 시인의 시를 읽는 일요일 오후. 그럭저럭 견딜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