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내 나이 벌써 마흔, 그리고 이직 고민

지하련 2012. 7. 6. 16:54



회사 잘 다니는 친구가 나이 마흔에 젊은 헤드헌터에게 이직을 이야기해놓았는데, 연락이 없다며 웃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서른 넷에 어느 헤드헌팅 회사에서, 지금은 코스닥 상장 기업으로 나가는 벤처 기업의 마케팅팀장으로 제안이 들어왔는데, 보기 좋게 거절했다. 그것도 미술 비즈니스를 하겠다고! (그리고 아주 오래 동안 서서히 가라앉았다. 뭐, 좋은 경험을 쌓긴 했지만)


다시 이직을 고려 중인데, 쉽지 않다. 쉽지 않다는 건 '옳긴다는 사실'이 아니라 '옮기고 난 다음의 여러 권한과 책임' 탓이다.


나이가 마흔이 되고 보니, 일을 한다는 건 인간관계를 맺는다는 것이고, 관계를 맺은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얻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신뢰를 얻으면 일이 수월하게 진행되고, 신뢰를 얻은 만큼 정성과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모르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실은 올해 초부터 헤드헌팅 회사에 이력서 등록을 해볼까 했는데, 의외로 고리타분한 나는 '나를 인력 시장에 내놓다는 행위'를 심정적으로 싫어했다. 마치 19세기부터 생긴 '가난하고 불행한 예술가'라는 전형은 귀족 패트런이 사라지고(토지 귀족의 몰락과 신흥 부르조아지의 등장과 시기를 같이 한다), 자신, 혹은 자신의 작품을 시장에 내다 팔아야만 생계를 유지하게 되는 상황과 밀접한 연관을 가진 듯, ‘나를 마켓에 내놓다는 것’에 대한 심정적 거부는 의외로 복잡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사람은 사고파는 물건이 아니다’라는 것부터 ‘가난하고 불행한 예술가의 탄생’까지, ‘나를 마켓에 내놓는 행위’가 가지는 중층적인 의미는 매우 복잡하고, 한편으로는 아주 불행한 현대 자본주의 문화의 단면인 셈이다.


이런저런 고민으로 몇 주가 흐르는 사이, 술자리가 많았고, 현재 맡은 프로젝트는 아슬아슬하게 하루하루 지났고, 그 결과 원고 마감을 놓쳤다. 오늘, 내일 원고를 마무리하고 보낼 것이다. (그 전에 사과 메일을 보내야겠다.)


옮기게 된다면 강남에서 구로로 옮기게 될 것이고, 하는 일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다만 좀더 속도를 내어 회사를 성장시켜야 할 것이니. 하긴 지금 있는 회사도 내가 있는 3년 동안 사업 부문 매출이 2배로 뛰었고 인원도 2배로 늘었다. 내 혼자 한 건 아니지만. 어찌되었건 나도 어느 정도 기여를 한 듯 싶어 기쁘고, 운도 좋았던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