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문학

남자 삼대 교류사, 박유상

지하련 2012. 9. 17. 00:46
남자 삼대 교류사 - 8점
박유상 지음/메디치미디어



남자 삼대 교류사

박유상(지음), 메디치 



나이 마흔에 아들을 얻었다. 늦어도 이렇게 늦을 수가 없다. 난생 처음 겪는 일이니, 준비가 되었을리 만무하다. 모든 게 낯설고 힘들다. 한 해 한 해 나는 나이가 들 것이고 주름이 늘 것이고 흰 머리카락이 더 많이 생길 것이다. 아들이 야구를 하자거나 축구를 하자고 했을 때, 내 나이는 쉰을 넘길 것이니, 내가 아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건 그리 많지 않을 테고 ...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신문을 읽다, 이 책을 알게 되었다. 할아버지 - 아버지 - 아들로 이어지는, 3대에 걸친 남자들의 교류사이다. 아버지가 된다는 것에 대해 걱정을 가졌던 터라, 이 책은 내심 반가웠다. 못난 아버지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 책은 읽어야 겠다 여겼다. 


하지만 책의 완성도는 다소 떨어지거나 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내 기대란, 아버지가 된다는 것, 한 가정을 이끈다는 것에 대한 인문학적 고찰(혹은 안내)와 그에 따르는 사례를 기대했는데, 이 책엔 사례만 나오기 때문이다. 


사례만 나온다고 해서 이 책을 폄하할 순 없다. 그 이유는 사례로 나온 윤여준(현 한국지방발전연구원 이사장) 집안의 가풍이 충분히 모범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민주주의는 가정에서 시작된다. 대화와 타협, 협상 역시 어려서부터 훈련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가장의 권위가 실추되거나 어른의 위치가 상실되는 것이 아니다. 지금도 아내나 아이들은 그와 가장 먼저 의논한다. 그러면 여준은 상대의 의견을 먼저 묻고, 그 의견이 옳으면 지지하고 부족하면 지적한다. 이런 것이 넓게 보면 공론을 만드는 과정이며, 의견 수렴의 장이 된다고 생각한다. (106쪽) 



그 결과, 책은 일종의 가족사에 머물고 있지만, 다행스럽게도 윤씨 가족을 통해 우리는 바람직한 아버지 상을 만날 수 있었다. 자신의 의견을 강요하지 않고 아들로 하여금 스스로 답을 찾아가게끔 도와주며, 귀담아 들어주고, 성실, 신뢰와 같은 삶의 기본적인 태도에 방점을 찍는 것. 그리고 그것을 몸소 실천하여 모범을 보여주는 것. 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이런 연유로, 윤여준 이사장은 정치적 성향과 무관하게 많은 이들이 찾는 정치인이 된 것일게다. 그리고 그런 그도 그의 아버지에게서 좋은 가르침을 받았던 것일 테고. 


집안에 책이 가득하고 책을 읽는 아버지의 모습을 늘 보여주는 것. 아들에게 이야기하는 바를 먼저 실천해 보이는 것. ... 이 책은 그런 아버지의 모습이 나온다. 결국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책인 셈이다. 


다만 그것이 현재 정치 한복판에 서있는 어떤 이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다소 걸리긴 하지만, 반대로 이 책을 통해 한 인물의 됨됨이가 그의 아버지에게 얼마나 많이 기대고 있는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사족) 매일 격무에 시달리고 회식에, 접대에, 밤 늦게 들어가 아이들 얼굴 보기도 힘든 한국의 직장인 아빠들에게 이 책은 너무 동떨어진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기도 하다. 어찌되었건 주말에는 아이들과 놀아주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 결국 한국 기업에 다니는 아빠들의 현 주소가 먼 미래의 한국까지도 결정짓고 있는 건 아닌지 염려스러워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