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yes24 블로그에 올린 것이다. 간단하게 소감을 적은 것이며, 조중걸 선생님의 '현대예술'은 읽은지 몇 달이 지나도록 서평을 쓰지 못하고 있다. 조만간 긴 서평을 쓸 수 있기를 기대해보기로 하자)
올해의 책을 여기저기서 발표하지만, 우리들은 올해 출판된 책만 읽는 것이 아니라 이전에 출판된 책들도 읽는다. 심지어 기원전에 출판되어 수대에 걸쳐 읽혀져 온 책들을 이제서야 읽는 경우도 있다.
책은 이미 너무 많다. 결국 얼마나 많은 책을 읽느냐가 아니라, 어떤 책을 어떻게 읽느냐로 귀결되어야 할 것이다. 나는 많은 책을 읽었지만, 비판적 사고력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을 꽤 많이 봐았다. 그들은 책을 읽는다는 '반성적 행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그들이 읽은 책과는 유리되어, 그들의 책 목록이 자신들의 빈약한 사고력과 언행의 변명으로 사용되는 것을 보고 '책을 어떻게 읽느냐'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달았다.
최고의 책이라곤 하지만, ... 이보다 더 좋은 책은 참으로 많다.
서양미술사는 역사학의 분과학문이다. 부분적으로 지성사와 철학사와 겹치며, 과학사나 문학사와도 공유하는 역사다. 특히 구체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예술적 가치(혹은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형이상학과 밀접한 연관을 지닌다. 이는 순수과학(물리학)도 마찬가지다.
이 책은 한국어로 씌여진 거의 유일한, 거의 독보적인 서양미술사이다. 대부분의 서양미술사가 양식사를 중심으로 기술되는 반면, 이 책은 지성사, 특히 형이상학의 틀 속에서 현대 예술을 탐구하고 조명한다. 내용은 어렵지만, 문장은 감미롭고, 예술 작품 면면을 살피면서 우리, 현대인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즉 왜 우리는 예술 작품을 보고 흔들리는 마음을 어쩌지 못하는가에 대한 분명한 해답을 여러 학문들을 넘나들며 설명한다.
저자의 다음 책을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민주주의는 왜 증오의 대상인가, 자크 랑시에르(지음), 인간사랑
'민주주의'국가에 살고 있지만, 그 누구도 '민주주의'에 대해 묻지 않는다. 심지어 '민주주의' 때문에 나라가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이들까지 있다. 자크 랑시에르의 이 시사적인 책은, 비단 프랑스적 문제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지나 보수화되는 모든 나라에 해당될 것이다.
자크 랑시에르는 민주주의의 정의/실체에 대해 물으면서, 동시에 그것의 가능성을 따진다. 결국 민주주의란 아직 완전한 형태로 도래하지 않았음을 드러낸다.
향연, 플라톤, EJB북스
플라톤의 '향연'이다. 이 책을 올해의 책을 올리는 것만큼 한심한 짓도 없을 텐데. 그만큼 한국의 번역에 대해서 다시 물어야 할 것이다. 화이트헤드의 말처럼 '서양철학사는 플라톤 철학의 각주'이지만, 한국에서 플라톤 읽기는 참 힘들었다. 특히 '시학'이나 '향연'과 같이 철학 뿐만 아니라 인문학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책은 번역본이 여러 존재하고, 그 대부분이 형편없는 번역서이거나 초심자에게 친절하지 않았다.
이 책은 그 점에서 번역이 정확하고 친절하다. 정암학당의 플라톤 전집은 여러모로 한국 출판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