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우주/미학연습

알튀세르의 눈으로 본 19세기의 철학적 사생아들

지하련 2013. 1. 23. 13:21



"내가 알기로는 19세기에 두세 명의 어린 아이가 태어났다. 사람들이 예기치 못했던 그들은 맑스와 니체, 그리고 프로이트다. 그들은 자연(la nature)이 풍습과 도의, 도덕, 그리고 예법(savoir-vivre)을 해친다는 의미에서는 '사생'아들(enfants naturels)이다. 자연(nature)은 위반된 규칙이고 미혼모이고, 따라서 합법적인 아버지의 부재인 것이다. 서구의 이성은 아버지 없는 아들로 하여금 그것에 대한 비싼 대가를 치르게 하였다. 맑스, 니체, 프로이트는 때로는 잔혹하기까지 한 생존의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그 대가는 배척, 비난, 모욕, 가난, 배고픔과 죽음, 혹은 광기로 기재되어 있다. 나는 지금 그들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다(색깔, 소리 혹은 시 속에서 사형선고를 체험했던 다른 저주받은 자들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들이 과학 또는 비판의 탄생이었기 때문에 그들에 대해서만 말하고자 한다."

- 루이 알튀세르, 프로이트와 라깡, 1964년 ('아미앵에서의 주장'(솔 출판사)에 실림)



오래 책을 가지고 있었지만, 필요한 부분만 읽었다. 그니까 처음부터 완독하지 않았다. 작년에도 한 번 꺼냈다가 읽지 못했고 올해 다시 꺼내 읽기 시작한다. 


실천적 상태로 존재하는 마르크스를 과학적이고도 이론적인 견지에서 다시 재해석하고자 한(이론적 실천) 루이 알튀세르. 하지만 젊은 마르크스가 시인을 꿈꾸었듯이 루이 알튀세르는 한 명의 냉철한 이론가이기 이전에 한 명의 작가로, 예술가로 여겨지는 건 어떤 이유 때문일까.  



아미엥에서의 주장, 루이 알뛰세르(지음), 김동수(옮김), 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