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문학

밀어, 김경주

지하련 2013. 4. 20. 16:23
밀어 - 6점
김경주 지음, 전소연 사진/문학동네



밀어 密語 
김경주(지음), 문학동네 





육체는 선으로 이루어진 풍경이다. 詩가 가장 부적절한 순간에 언어에게서 태어나는 하나의 육체라면, 뛰어난 散文은 그 육체를 감싸며 겉도는 하나의 선이다. 몸의 선은 그 자체로 숨 쉬는 비율이며 튀어오르는 정밀한 뼈들을 감추고 있는 이미지다. 쇄골은 육체가 기적적으로 이루어낸 선線의 풍경이다. 



오래 이 책을 읽었다. 기대되었다. 김경주 시인의 산문. 그것도 몸의 은밀함에 대한 글이라니. 그리고 그가 좋아하는 책들과 작가들이 인용되고 동양과 서양을 오가며 그의 산문은 깊이를 더하는 듯했다. 

하지만 내 독서는 금세 실망으로 바뀌고 두서없는 그의 상념들은 그의 우아한 언어를 갉아먹고 있었다. 그의 시적 감각은 질서없이 흩어지는 봄날 벚꽃처럼 내 눈 앞에서 반짝이며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몇몇 문장들과 인용구, 상념의 편린들은 좋았지만, 책은 전체적으로 내 기대에 비해 실망스러웠다. 

여러 잡지에서 만났던 그의 산문이 무척 좋았던 탓에, 요즘 젊은 시인들 중에서 탁월한 시 세계를 보여주었던 시인이었던 탓에, 이 책에 대한 내 평점은 낮다. 이는 이 책에 대한 의도적 깎아내리기가 아니라, 이 책보다는 그의 시집을 읽기를 바라는 마음의 표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