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이론

자유주의 이후, 이매뉴얼 윌러스틴

지하련 2004. 1. 14.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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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 이후
이매뉴얼 윌러스틴, 강문구 옮김, 당대



이매뉴얼 윌러스틴은 학계에서는 스타급의 학자에 속한다. 그만큼 명성이 자자하다고 할까. 하지만 읽고 난 소감은 한계가 보이는 학자인 것 같다. 1996년도에 나온 책인데, 불과 7년 사이에 이런 평을 적는다면 너무 심한가.

윌러스틴의 책은 많이 번역되어 나와 있으니 사서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아마 읽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적어도 그는 이성적인 판단을 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듯하다. 그것이 희망적이지만.

이 책에서 그는 1989년을 하나의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는 시기로 파악하고 있다. 구소련이 붕괴하던 시점이다. 지금은 딴짓거리들 하고 있는 국내의 많은 진보 인사들이 충격과 비통에 잠겼던 날이기도 하다. (* 지금의 나로선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지만) 그는 그 시점을 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끝나는 시점으로 파악한다. 즉 사회주의가 끝났음으로 그것의 대척점에 있던 자유주의도 끝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보수주의, 자유주의,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의 발생과 전개에 대한 분석을 하면서 이러한 생각을 보충한다.

레닌주의와 윌슨주의가 동일한 것이라는 그의 분석은 타당해 보인다. 그리고 아프리카와 페르시아만 국가들에 대한 그의 이해는 매우 시사적이었다. 하지만 나는 1989년을 하나의 구분되는 시점으로 파악하는 것에는 반대하는데, 정치시스템이 바뀌었다고 해서 경제적 삶의 방식이 바뀐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1968년 혁명에 많은 분석을 하고 높이 평가하고 있는데, 내가 보기엔 서구 학자로서의 지나친 향수는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1968년 혁명은 매우 감정적이며 우연적이고 순간적이었으며 정치 혁명으로까지 나아간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이후 급속도로 탈정치화가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반정치혁명’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타당하지 않을까 싶다. 더더군다나 그 혁명은 계급적 혁명이 아니었다. 즉 정치경제적 기반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가 이야기하는 근대성의 두 성격은 실제로는 하나이다. 그것은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분리되길 원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나는 적극적이고 전망을 갖는다는 의미였다. (중략) 다른 함의는 전진적이라기보다는 전투적(또한 자기만족적)이고, 물질적이라기보다는 이데올로기적이라 특징지을 수 있다” (178쪽)

왜냐면 적극적이고 전망을 가졌기 때문에 전투적으로 임할 수 있었으며 지극히 물질적이며 자연과학적이었기 때문에 어떤 이데올로기를 요구했던 것이다. 그것은 반대이거나 분리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라 하나인 것이다.

전체적으로 한계가 보이는 책이고 더 큰 문제는 실제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걸핏하면 등장하는 콘트라티에프 이론(* 경기 변동 이론들 중의 하나)는 그의 논리를 더욱 도식적으로 보이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