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문학

눈사람 여관, 이병률 시집

지하련 2013. 12. 15. 23:16

눈사람 여관

이병률저 | 문학과지성사 | 2013.09.22

출처 : 반디앤루니스 http://www.bandinlunis.com


















눈사람 여관

이병률 시집, 문학과 지성 시인선 434 




최근에는 일 년에 시집 한 권 읽는 듯 싶다. 그리고 시집 리뷰는 건성, 건성으로 쓰는 듯하고. 일상의 대부분이 사무실에서 산더미와 같은 업무와 스트레스로 시달리는 지금, 시집은 ... 참 멀리 있기만 하다. 이병률. 그의 글은 시보다 산문으로 먼저 알게 되었다. 그것도 여행기. 하지만 이것도 건성, 건성 읽었으니, 이번에 읽은 그의 시집, <눈사람 여관>이 처음 읽는 것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시집을 다 읽고 노트에 짧게 감상을 적었는데, 그가 읽는다면, 불편해 하거나 불쾌해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했다. 시는 소설과 달라, 드물지 않게 시를 읽으며 시 속의 시인을 만난다. 그리고 독자는 그것이 맞든 틀리든 지레짐작으로 어떤 이겠구나 여긴다. 이 시집에 대한 내 감상은 그렇게 시작해 끝난다. 


* * 


그는 손을 내밀지 않는다. 물끄러미 바라보고 견디고 걸어간다. 그 걸음걸이는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다. 바람따라 걸어갈 뿐이다. 가끔 가슴 설레기도 하고 사랑에 빠지기도 하며 수줍은 고백을 할 터이지만, 세상 풍경은 어제나 오늘이나 별반 달라지지 않는다. 이병률은 그것을 안다. 


그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이기적이다. 혼자 있기 위해서는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지만, 동시에 비겁한 일이기도 하다. 이기적이지만, 종종 아름답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하다. 그건 스스로를 늘 들여다보기 때문이고, 들여다보면서도 아무 것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바람따라 걸어가며 글을 쓸 뿐이다. 다행인 것은 그는 스스로를 내려놓거나 자책하거나 도망가진 않는다. 그저 스스로를 훔쳐볼 뿐. 





낙화



                                                    이병률



그대가 일하는 곳 멀리 자전거를 세우고

그대를 훔쳐보는 일처럼


반쪽의 반쪽밖에 안 되는 나는

비겁이라는 꽃 이파리 머리에 꽂고

시시덕 시시덕 오늘도 얼마나 비겁했던가요


당신이 자전거 쪽으로 다가와

우산을 버리고 돌아설 때에도

나는 비겁을 뒤집어쓰고 몸을 돌려 서 있습니다

그 자리에 당신 그늘이 생깁니다


천 년에 한 번 사랑을 해서 그런 거라고

그게 아니라면 머릿속에 그토록 많은 꽃술이 매달릴 수가

천 년에 한 번 죽게 될 테니 그렇게 된 거라고 

아니면 그토록 한 사람의 독으로 서서히 죽어갈 수야 


혼자인 것은 비겁하지 않은데

당신을 훔쳐보는 일은

당신 하는 일 앞에서 비겁한 일이어서


십 년을 백 년처럼 

당신을 보러 이곳에 오고

당신은 어느 바다로 흘러가지도 않으며

무슨 일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아무도 주차할 수 없는 구역에

단독 주차하는 나를 위해

마냥 봄처럼 십 년을 당신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