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우주/예술사

바로크 예술

지하련 2007. 3. 15. 11:24

* <삶은 늘 우리를 배반한다>를 쓰기 전에 적어놓은 노트입니다. 바로크 예술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을 것입니다.


1. 바로크: 근대성Modernity의 시작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이 세계를 어떤 세계일까? 그러나 이 물음에 대한 명확한 답이 존재하지 않는다. 꼭 이 물음은 '나는 누구인가?'라든가 '살아가는 것이란 무엇인가?' 따위의 물음과 유사한 것이다. 그래서 정확하게 맞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떤 특징을 부각시켜서 말하거나 아예 이 물음에 대한 답에는 아무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따지고 보면 너무 거대한 질문이라 실제 우리의 삶과는 무관해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 본다면 상황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가 지금 이 세계에 대해서 자주 듣게 되는 단어들, 신자유주의, 개인주의, 포스트모더니즘 등과 같은 것의 근원을 거슬러올라가다 보면 17세기 서구사회와 만나게 된다. 그리고 이 17세기와 2004년과의 관계를 알기 위해, 데카르트(Rene Descartes, 1596-1650), 홉스(Thomas Hobbes, 1588-1679)와 같은 철학자가 구상하였고 베르니니(Gian Lorenzo Bernini, 1598-1680), 카라바지오(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1571~1610), 렘브란트(Rembrandt van Rijn, 1606-1669), 푸생(Nicolas Poussin, 1594-1665)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 비발디(Antonio Vivaldi, 1678-1741)와 같은 예술가들이 재현하였던 그 당시의 세계와의 관계를 알기 위해서 한적한 일요일 오후에 자동차를 타고 도시를 가로지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자동차를 타고 도로를 달리다 보면 몇 가지의 규칙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신호등이라는 교통시스템만 지키면 도로가 연결되어있는 원하는 목적지라면 어디든지 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이동 속에서 자동차 안과 밖은 명확하게 구분된 공간이라는 점. 밖이 아무리 춥더라도 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근대 최초의 기획들은 기계론이다. 인과율적 체계의 다른 말이기도 하며 근대 자본주의가 그 기틀을 명확히 하는 시대이기도 하다. 드디어 시계가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는 공간으로 진입한 것이다. 이제 세계는 기계론적 관점에서 시간과의 싸움에 몰입하기 시작한다. 이 때 미래는 그 의미를 가지기 시작한다.

하나의 질서가 있다. 그 질서는 신으로부터 흘러나온 것이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신의 질서와 자연과학의 질서가 등가적 관계를 이루게 되고 이 사이를 예술가가 자리잡게 된다. 이것이 르네상스적 세계관이자 미학관이다. 그러나 르네상스적 세계관은 얼마 뒤 매너리즘적 세계관에게 자리를 내어주게 되는데, 우리들의 삶이나 현실은 신적이지도, 자연과학적이지도 않다는 인식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매너리즘에서는 나와 너, 이상과 현실, 어제와 오늘이 분열하게 된다. 고딕적 분열의 연장선상에 놓이면서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종종 겪게 되는 분열을 이미 매너리즘 시대의 예술가들은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이 분열은 바로크 시대에서 극적으로 해소된다. 그리고 그 해소의 방법은 생각하는 나를 중심으로, 이상 대신 현실을, 어제 대신 오늘, 그리고 내일을 선택하는 것이었다. 드디어 오늘날 우리가 이야기하는 근대성(Modernity)는 이 시대에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인간적인 것이 가장 우선시되는 세계. 인간들이 만든 규칙이 신의 규칙과 똑 같은 위상과 가치를 지니게 되는 세계. 유한한 세계 속에서 무한한 가치를 가질 수 있는 세계. 아니 무한한 가치를 가질 수 있다고 믿고 그것을 포기하지 않는 세계. 이제 무한한 세계에 대한 탐구는 끝이 나고 유한한 세계에 대한 탐구가 시작된다. 드디어 세속적이며 경험적인 세계가 승리를 거두게 되는 것이다. 바로크에 들어서 고딕적 분열 양상은 인간적이며 유한한 세계를 중심으로 해소되기 시작한다. 그것이 완전한 해소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살아가면서 별 불편함 없이 살아갈 수 있을 정도의 해소로도 바로크 예술가들은 만족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인간적이며 유한한 세계를 긍정하는 시대였다.

바로크는 절대왕정의 시대이면서 과학혁명의 시기요 데카르트와 라이프니츠의 시대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들의 시대이면서 우리들의 약점들이 무수한 장점들로 가려져있던 시대이기도 하다. 이 시대의 예술가들에는 몬테베르디(Claudio Monteverdi, 1567-1643), 바흐, 헨델(George Frederick Handel, 1685-1759), 카라바지오, 베르니니, 벨라스케즈(Diego Rodriguez de Silva Velazquez, 1599-1660),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1640), 렘브란트, 베르미르(Jan Vermeer, 1632-1675), 푸생, 끌로드 로렌(Claude Lorrain, 1600-1682)이 속하며 셰익스피어의 몇몇 작품들과 라신느(Jean-Baptiste Racine, 1639-1699), 꼬르네이유(Pierre Corneille, 1606-1684), 몰리에르(Moliere, 1622-1673) 등의 프랑스의 극작가들, 그리고 존 밀턴(John Milton, 1608-1674), 존 던(John Donne, 1572-1631)이 여기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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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ne Descartes
Frans HALS, c. 1649
Oil on panel, 19 x 14 cm
Statens Museum for Kunst, Copenhagen


2. 무한한 우주 속의 유한한 인간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 1473-1543)가 먼저 이야기했지만, 갈릴레오(Galileo Galilei, 1564-1642)에 와서 비로소 논쟁거리가 된 '지동설'은 인간이, 인간이 살고 있는 이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 변방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이 당시 천문학의 발전은 이 우주에는 끝이 없으며 끝 없는 우주에서 인간은 그저 티끌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천동설의 세계 속에서 인간은 신(무한자)과 가까이 있었으며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었고 그것은 신으로부터 물려받은 인간의 가치를 증명해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동설의 세계 속에서 지구는 우주의 변방이며 인간은 신(무한자)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것이었다. 즉 드디어 인간은 신과 무관한 어떤 존재, 심지어 신에게서 버림받은 존재로 떨어지게 된다. 이는 파스칼에게서 두드러지며 바로크 양식의 어두운 그림자에 해당된다. 하지만 뉴턴(Isaac Newton, 1642-1727)은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해내며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 1451-1506)는 신대륙을 발견하고 데카르트는 '생각하는 나'의 확실성을 이야기하기 시작하면서 티끌 같고 언젠가 죽어야만 하는 인간의 불안은 이 현실 세계 속에서 뭔가를 할 수 있고 알아낼 수 있다는 자신과 자만으로 변모한다. 이것은 정치 세계 속에서 나타나는데, 서구에서는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한 전제군주제가 확고하게 뿌리내리기 되었다는 점이다. 태양왕 루이 14세의 신화는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정치 세계의 안정을 바탕으로 상업이 발달하였으며 많은 것을 포기한 구교와 경제적으로 적절한 지위를 부여 받은 개신교 사이의 분쟁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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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rait of Louis XIV
Hyacinthe Rigaud, 1701
Oil on canvas, 279 x 190 cm
Musee du Louvre, Paris



바로크의 세계는 유한한 인간이지만, 그 인간에 대한 무한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진행된 양식이다. 그래서 바로크의 회화 속에서는 '진리를 잡기 위해서 운동하는 나' 즉, 데카르트적 자아가 있으며 그 운동이 모아지는 빛나는 중심으로 삶의 격정, 활력이 흘러나온다. 드디어 어둠 속에 묻어두었던 헤라클레이토스(Herakleitos)적 세계가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만물은 유전한다. 한 번 담근 강물에 두 번 다시 담글 수 없다. 그러나 바로크 시대를 살았던 이들은 한 번 담그는 그 강물 속에서 강물의 본질을 잡아낼 수도 있으리라는 신념을 가진다.


3. 정지에서 운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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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barkation of St Paula Romana at Ostia
Claude Lorrain, 1637-39
Oil on canvas, 211 x 145 cm
Museo del Prado, Madrid



움직이는 모든 것을 하나로 모아낼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는 것이 고전주의이다. 그것은 기하학적이며 무한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다. 변하는 모든 것이 변하지 않는 어떤 것으로 모아진다. 그래서 이 세계 속에서는 운동이나 생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바로크는 반대로 운동이나 생성 속에서 어떤 진리를 찾아낼 수 있다고 자신들의 생각을 전개시킨다. 인간은 언젠가는 죽는다. 나는 지금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치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경험적 세계 속에서 나는 내 가치를 만들어나갈 것이다. 드디어 진리를 향한 삶의 성실성이 요구되기 시작한다.

다시 말하자면 모든 것을 알 수 없다는 것의 포기는 경험적 세계 속에 있는 유한한 자신에 대한 믿음으로 바뀌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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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 Matthew and the Angel
Caravaggio, 1602
Oil on canvas, 232 x 183 cm
Formerly Kaiser-Friedrich-Museum, Berlin
(* 현재는 소실되어 없으며 그 당시 불경하다는 비난을 받았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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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Inspiration of Saint Matthew
Caravaggio, 1602
Oil on canvas, 292 x 186 cm
Contarelli Chapel, San Luigi dei Francesi, Rome



하나는 교회로부터 거절당했으며 지금은 사라진 작품이고 하나는 교회에 걸렸고 아직까지 남아있는 작품이다. 카라바지오만큼 바로크 시대에 걸맞은 예술가도 드물 것이다. 그는 난봉꾼에 일자 무식에 매일 사고만 치는 건달이었지만, 그는 예술가였다. 드디어 지적 교양을 가진 예술가에서 지적 교양 없이도 예술 작품을 남기는 예술가의 시대로 변해온 것이다. 여기에서부터 낭만주의 시대의 예술적 영감을 중요시하는 일군의 예술가들은 바로 한 발짝이다.

르네상스 시대부터 시작된 자연과학적 태도는 신의 질서를 자연 속에서 파악할 수 있다는 신념에서 시작되었지만, 예술의 세계 속에서는 그 반대의 결과를 가지고 오게 된다. 매너리즘 예술가인 틴토레토의 <<최후의 만찬>>에서도 알 수 있듯이 모든 것을 하나하나 분석하는 이 태도는 실제 있었던 그것을 그대로 표현해내는 것으로 변화하였으며 바로크에 이르는 그 절정을 이룬다. 그래서 카라바지오의 세계에서 성 마태와 천사는 한 쌍의 연인처럼 붙어있는 것이다. 신의 진리를 알려고 노력하는 고독한 성인과 그 고독을 위로해주는 천사로 말이다. 하지만 카라바지오의 세계는 교회로부터도 거부당했고 그 당시의 일반 대중으로부터도 거부당했다. 아마 21세기에서도 카라바지오의 작품이 불경하다고 여기는 기독교도가 있을 것이니, 17세기 때의 기독교도라면 그 거부는 당연한 것이었으리라.


4. 경험적 세계 속으로

우리 앞에서 지금 두 개의 세계가 놓여있다. 하나는 기하학적이며 영원불멸하며 경건하고 신성한 신의 세계이며 하나는 경험적이며 유한하고 언젠가는 죽게 될 인간의 세속적 세계가 놓여있다. 하나는 파르메니데스(Parmenides)의 세계이며 하나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세계이다. 하나는 정지된 공간의 세계이며 하나는 끊임없이 변화는 시간의 세계이다. 그리고 바로크는 전자보다는 후자에게 그 가치를 두는 양식이다.

베르니니에게 신과의 교감은 인간적인 그 어떤 것으로 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즉 경험해보지 않은 것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겠는가. 아니면 도리어 그의 경험이 신과의 교감과 비슷한 유형이었을 것이라고 믿게 되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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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cstasy of Saint Therese
Bernini, 1647-52
Marble Cappella Cornaro, Santa Maria della Vittoria, Rome
 


더 이상 인간적인 것은 수치이거나 불경한 것이 아니다. 도리어 인간적인 것이야말로 최고의 가치를 지닌 것이다. 렘브란트의 자화상은 그것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늙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 한 치의 주저함이나 물러남 없이 자신의 모습이 왜소해지고 얼굴에 주름살이 늘어나는 모습을 그대로 화폭에 옮긴다는 것. 이제서야 인간적인 것이 그 나름의 가치를 인정 받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데카르트의 세계이면서 우리가 이야기하는 모더니티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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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lf-Portrait
Rembrandt, 1627
Oil on wood, 23,5 x 17 cm
Staatliche Museen, Kass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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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lf-Portrait
Rembrandt, 1668-69
Oil on canvas, 82,5 x 65 cm
Wallraf-Richartz Museum, Cologne
 



어쩌면 예수도 늙는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북유럽 르네상스의 대가인 뒤러가 자신의 초상화에서 자신의 모습을 마치 예수처럼 그렸듯이 렘브란트는 그도 늙는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은 아닐까.
 


이제 드디어 변화한다는 것이 가치를 가지기 시작한다. 변화는 운동이며 생성의 세계, 경험적 세계를 뜻한다. 그것은 현실이면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죽는다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바로크 예술가들에게 이것은 훈장과도 같았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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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카를로 알레 콰트로 폰타네의 파사드
프란체스코 보로미니(Francesco Borromini, 1599-1667), 로마
 

건축에 도입된 유려한 곡선은 직선적인 느낌을 강조하던 이전의 건축과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건축 속에서 도입된 이러한 운동감은 조각에서는 더욱 두드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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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ollo and Daphne
Bernini, 1622-25
Marble, height 243 cm
Galleria Borghese, Rome
 


조각에서 극적인 장면을 만들어내라고 한다면 베르니니만큼 잘 구현했을 만한 조각가도 없었을 것이다. 사랑에 빠진 아폴론과 이 사랑을 거부하는 다프네가 올리브 나무로 변해가는 순간을 표현한 이 조각에서 바로크 시대의 사랑을, 바로크적 비극이 어떤 것인가를 알게 된다. 이제 드디어 언젠가는 헤어질 수 없는 사랑이 누군가의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사랑이 되는 것이다. 세속의 사랑이 주제가 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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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Lady at the Virginals with a Gentleman
Vermeer, 1662-65
Oil on canvas, 73,3 x 64,5 cm
Buckingham Palace, London
 


한 여인이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그 옆에 한 남자가 서서 그 음악 소리를 듣고 있다. 그는 가만히 서서 그녀가 연주하는 음악 속에 빠져있다. 그는 그녀를 사랑하지만, 그녀에게서 그 사랑을 거절당하지 않을까. 이건 이 작품에 대한 추측이긴 하지만, 이제 세속의 사랑, 불경하면서 비도덕적인 사랑도 예술 작품의 소재나 주제가 되기 시작하였으며 종교적인 그림을 그려지는 작업실에서 동시에 그려지기 시작했다.
 


5. 두 개의 바로크들


매너리즘이 전유럽적 양식이었다면, 바로크는 그 지역마다 각기 다른 형태로 발전한 양식이다. 그래서 바로크는 양식 상으로는 지역에 따라 매우 이질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한 전시실에 나란히 푸생의 'Et in Arcadia Ego, 루벤스의 Raising of the Cross, 베르미르의 Woman Holding a Balance가 걸려있다면, 이 세 작품이 같은 시대의 양식이라고 설명하기 전까지는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푸생은 확실히 고전적이다. 어떤 이는 푸생의 작품들을 두고 '바로크 고전주의'라고 말하기도 한다. 유한한 세계 속에서의 진리를 찾아낼 수 있다는, 그래서 끊임없이 운동하는 바로크적 신념은 진리를 찾아낼 수 있다고 믿었다는 점에서 고전적이며 푸생은 소묘를 중요하게 생각하였으며 자신의 작품이 기하학적이길 원했다는 점에서 당시의 다른 화가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고전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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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 in Arcadia Ego
Poussin, 1637-39
Oil on canvas, 185 x 121 cm
Musee du Louvre, Paris
 

하지만 바로크는 고전주의가 될 수 없는 시대였다. 바로크의 예술가들이 잡으려고 노력했던 바 진리는 시간과 변화를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하학적이며 영원불변하는 진리관과는 다른 것이었다. Et in Arcadia Ego, 아르카디아 속에서도 나는 있다는 말은 우리가 꿈꾸는 이상향 속에서도 죽음은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깐 이상향 속에서도 시간이 흐르고 그래서 우리는 늙어 죽는다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이 작품 속에서 나오는 여인을 크로노스(시간의 여신)이라고 해석한다. 죽음을 기억하라(Memento Mori)는 말은 죽음을 막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라는 말이기 보다는 언젠가는 죽을 것임을 알고 살아있는 동안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아가라는 것을 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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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ill-Life
Pieter Claesz, 1633
Oil on oakwood, 38 x 53 cm
Staatliche Kunstsammlungen, Kassel
 

푸생이 소묘를 중요하게 생각하였다면 이에 비해 루벤스는 색채를 중요하게 여겼던 것같다. 이는 이후에 푸생주의와 루벤스주의의 대립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더욱 격정적이며 회화 속에서 바로크적 운동이 어떤 식으로 표현될 수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격정적인 색채감은 와토나 부셰, 프라고나르 등의 로코코 화가들에게 영향을 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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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ising of the Cross
Rubens, 1610
Oil on panel, 460 x 340 cm (centre panel), 460 x 150 cm (wings)
O.-L. Vrouwekathedraal, Antwerp
 

루벤스가 궁정적 바로크의 대표적인 화가라면 렘브란트와 베르미르는 시민적 바로크의 대표적인 화가들이다. 특히 베르미르는 수수한 색채 속의 개신교적이며 시민적인 바로크를 보여준다. 네덜란드에서 유행했던 이러한 양식의 바로크는 개신교적 성격과 초기 자본주의 세계 속에서의 예술 양식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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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man Holding a Balance
Vermeer, 1662-63
Oil on canvas, 42,5 x 38 cm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네덜란드의 시민계급들이 좋아했던 것은 풍경화였다. 이러한 풍경화는 끌로드 로렌의 풍경화와는 틀리다. 이러한 풍경화 양식의 차이는 이탈리아와 네덜란드를 비교해보면서 확연히 드러난다. 이탈리아, 특히 베네치아의 풍경화는 화려하면서도 인상주의적 면모를 보여주지만, 네덜란드는 정적이면서 소박한다. 이러한 소박함은 인간적인 것에 대한 겸손으로 이어져 여러 바로크 정물화에서는 유한한 인간임을 인식하고 현실 세계에 보다 충실히 복무하라는 도덕적 메시지를 담게 된다. 또한 그들이 가지고 있던 사치품들을 정물화의 소재로 이용함으로써 동시에 현실 세계에서 축적한 부를 자랑하는 기회로 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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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ndscape with a View of Haarlem
Ruisdael, 1670-75
Oil on canvas, 52 x 65 cm
Staatliche Museen, Berl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