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문학

셰익스피어의 기억 - 보르헤스 전집 5

지하련 2014. 6. 1. 08:43

셰익스피어의 기억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지음), 황병하(옮김), 민음사 





나이가 든다는 것, 그건 보이지 않는 것, 가려진 것, 지금 없지만 다가오는 공포에 신경쓰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지상에서의 시간을 쌓아갈수록 갑작스레 부는 바람에서 계절의 수상함을 알고, 사랑하는 여인의 뜬금 없는 키스의 따스함 속에 깃든 슬픈 이별의 메세지를 읽으며, 길을 지나는 이름없는 행인의 무표정한 얼굴 아래로 차마 말할 수 없는 인생의 고단함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나도 나이를 먹고 있었다. 


민음사에서 나온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전집 중 마지막 권인 <셰익스피어의 기억>을 읽었다. <모래의 책El Libro de arena>(1975)<셰익스피어의 기억La memoria de Shakespeare>(1983)을 묶어 번역한 이 책은 짧지만 보르헤스의 세계를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소설집이다. 


나에게 보르헤스는, 내가 그를 알고 지낸 지난 20여년간 포스트모더니즘, 현대 소설가의 최고봉, 알레고리, 무수한 현대소설가에게 영향을 준 이, 백과사전, 자기반영성 등으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그는 나이가 드는 것, 죽는 것, 의미 없음의 공포를, 그리고 사랑의 위대함과 버려야만 완성되는 어떤 예술을 알고 있는 소설가였다. 


그의 문장은 짧고 딱딱했지만, 그 딱딱함은 거친 세월의 때가 묻은 낡은 나무 문짝의 것이었다. 알레고리와 은유로 끊임없이 새로워지면서도, 결국에는 우리가 잃어버린 사랑, 추억, 자기 자신을, 그리고 우리가 시작했던 문명의 시작을 되새기고 있었다.


대학 시절 읽었던 보르헤스는 없었고, 이제서야 보르헤스를 제대로 읽게 된 것이다. 며칠 전 번역되었으나, 아직 읽지 못한 보르헤스의 책 수 권을 주문해 읽기 시작했다. 





 







셰익스피어의 기억 - 보르헤스 전집 5

보르헤스저 | 민음사 | 2007.05.15

출처 : 반디앤루니스 http://www.bandinlun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