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어떤 단상 - 부암동에서 구기동까지

지하련 2014. 11. 30. 10:27


상명대 앞까지 걸어갔다. 십 수년 전, 자주 다니던 길이었다. 내가 자취를 했던 곳들 중 많은 곳이 번화해졌다. 가을이면 노란 단풍으로 물들던 신사동 갤러리 길은 이젠 신사동 가로수길로 불린다. 호주로 떠난다는 여자 선배를 보았고 짝사랑하던 여자에게, 마음에도 없는 터무니없는 고백을 하기로 했다. 자취하던 집에서 걸어 3분이면 표갤러리가 있어, 프랭크 스텔라를 보기도 했다. 날카로운 진지함으로 무장한 스텔라는 보는 이의 시각에 도전하며 보는 것, 보여지는 것, 우리가 느끼고 인지하는 것들에 대해 의문을 던지며 미술을 다시 물었지만, 그 때 내가 관심 있던 건 오직 사랑 뿐이었다. 쓸쓸한 사랑.   





이제 자본주의 깊숙한 곳까지 내 몸이 빠져, 나이가 들수록 허우적, 허우적, ... 이젠 그럴 힘조차 없어졌다. 부암동 동사무소에서 내려 환기미술관을 지나 골목 깊숙한 곳에 있던 자취방은 너무 추웠다. 하지만 골목 맨 끝 집, 옆집의 버드나무 잎파리들이 집 뒷마당에 드리울 때의 늦 봄은 너무 아름다웠다. 아름다운 청춘은 아니었지만, 그 때 우리 모두는 아름다움을 꿈꾸기에 여념없었다. 그리고 그 쓸쓸한 사랑도, 실패하고 상처입게 될 사랑도, 그 땐 참 아름답다고 여겼다. 





부암동에서 신영동을 지나 구기동으로 ... 이 깊은 곳까지는 아직 상업화의 바람이 들어오진 않았지만, 길을 걸어가면서, 멋진 까페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면 오후부터 영업하는 작은 술집이나. 


우리는 술 속에서 사랑을 찾았고, 술 속에서 사랑을 나누었으며, 결국 술 속에서 사랑을 잃어버렸다. 어쩌면 우리가 그 때 마신 건 차가운 술이 아니라 얼어붙은 숲이었는지 모르겠다. 




마을은 그대로였고 사람들은 변했다. 그리고 나도 허우적거리는 만큼 세상 삶에 대한 이해를 가지게 되었다. 


삶을 이해하는 것과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과는 우리가 믿을 만큼 연관 관계를 찾기 어렵다. 도리어 반대다. 삶을 이해하면 세상을 잘 살아갈 듯하지만, 삶의 이해가 늘수록 세상에서 왜소하기만 나를, 우리를 만나게 되니까. 어쩌면 나이가 들어 스폰지처럼 종교에 빨려들어가는 사람은 삶에 대한 이해와 비례하여 커지는 이 세상에 대한 절망, 탄식, 슬픔 때문은 아닐까. 


말 없이 버스가 지났다. 어쩌면 그 때 사랑을 했던 그녀가 저 버스를 타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수 십 분을 걸어가 길가 카페에 들어갔다. 그러나 여유는 없었다. 마음에도, 몸에도, 지갑에도. 한 잔의 커피 사이로 몇 개의 문장을 노트했지만, ... 이 글을 쓰면서 다시 읽으니, 너무 형편없다. 


형편 없는 인생이다. 혹은 갈수록 형편 없어지고 있다. 세상의 황혼이 다가오고 보이지 않는 신들은 슬픔에 빠진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 자본주의화되고 있다. 중세말 성직자 자리를 돈을 주고 살 수 있었던 것처럼, 아름다운 사랑도 돈을 주고 살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슬픈 사랑도 돈으로 아름다워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