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우주/영화, 혹은 시네마

번지 점프를 하다

지하련 2016. 8. 2. 20:47



2001년, 혹은 2002년.. 어느 날 적은 글이란다. 이젠 가물가물한 영화이야기. 무슨 열정이 있었던 건지, 그 때 영화를 참 많이 봤다. 타란티노 처럼 비디오 가게 아르바이트도 했고, 미장센이 어떠니 하며 술자리에서 떠들곤 했는데, 지금은 영화? 1년에 한 편 볼까 말까다. 극장 갈 일도 없고 영화볼 시간도 없다. 하긴 그런 시간 있으면 책을 읽고 말지. 아놀드 하우저는 영화에 대한 대단한 기대를 했지만, 영화는 그냥 산업일 뿐이다. 문화산업. 아도르노가 그토록 비난했던.  나이가 들수록 벤야민보다 아도르노가 궁금해지는 건, 나도 아도르노같은 꼰대가 되어가는 건 아닌지 모르겠구나. 이은주를 보면, 여배우라는 직업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최근 홍상수 감독과 사랑에 빠진 김민희도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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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지 점프를 하다

김대승 감독. 이병헌, 이은주 주연

 



1.

난 남자를 사랑해. 나도 남자이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도 남자야. 하지만 눈부시게 어우러진 우리 사랑을 이 세상 모든 이들이 저주하고 미워하지. 그래서, 그래서, 변명이 필요했어. 우리 사랑은 이미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그래, 그건 변명이었어. 난 남자를 사랑하는 남자야. 난 내 사랑이 공격받는 것이 너무 싫었어. 날, 날, 이해해줄 수 있겠니. 넌.

 



2.

사랑을 미화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슬픈 독백, 그리고 공모. 그 독백과 공모 틈으로 흘러가는 시간의 여울. 끔찍한 일반화의 오류. 거짓말임이 뻔한 스토리. 어느덧 세상이 그 빛을 잃어버리고, 우리 영혼이 어떤 불순한 욕망 덩어리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우리 사랑은 이미 죽어 흔적 없고, 그 흔적 하나 하나마다 깊은 호수 바닥으로 사라졌을 때 우리들 중 몇몇은 구름 꼭대기까지 올라가 곧은 직선이 되어 떨어져 내리지. 아주 오랫동안 우리 의식 속으로 들어오지 않았던, 그 사랑의 흔적을 되살리기 위해서



3.

사랑을 하면 할수록 사랑에게 지치고, 사랑이 흔해지고, 사랑에게 미움을 당하고, 사랑의 눈물 속에 비친, 쓸쓸한 뒤돌아섬과 만나고, 그렇게 우리 곁에 사랑이 사라지고, 참혹하게 우리 젊음 곁을 지나가고, ... 하지만 영화 속 두 사람, 믿거나말거나, 이 두 사람, 사랑과 다시 만나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