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파아란 영혼



중력과 은총 La Pesanteur et La Grace 

시몬 베유 Simone Weil(지음), 윤진(옮김), 이제이북스 




신은 오직 부재不在의 형태로 천지만물 속에 존재한다. 

- 183쪽 




나이에 따라 읽는 책, 읽히는 책은 달라진다. 새삼스럽게 지루하던 고전이 재미있어질 수 있고 웃고 열광하던 대중 소설이 식상해질 수도 있다. 이건 책의 탓이 아니다. 나이의 신비일 뿐이다. 


성당을 다닌 지 벌써 1년이 되어간다. 그렇다고 미사에 쓰이는 모든 기도를 외우는 것도 아니지만, 아주 조금은 시몬느 베유(1909-1943)의 마음을 알 것같기도 하다. 


이 책은 세계2차대전, 그야말로 전쟁통에 쓰여진 짧은 아포리즘 모음집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모든 존재를 끌어당기는 ‘중력’ 앞에서 신을 향해 상승하려는 신앙의 은총에 대해 이야기한다. 


종종, 자주 기독교적 테마가 극적인 불행, 견딜 수 없는 고통, 그 속에서의 믿음, 신앙의 확인, 은총과 기적, 마치 그리스 고전비극의 한 장면들처럼 극적인 비애감으로 가득차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가 그렇기 때문일 테고, 최선을 다해 보이지 않는 가치를 지켜 살아가는 선량한 우리-신앙을 가졌거나 가지지 않았거나, 심지어 종교나 신앙을 거부하거나 싫어하는-들이 살아가게 되는 삶의 서사구조일 탓이다.


책은 기독교적 테마로 가득하지만, 비극적인 상황, 고통과 두려움 앞에서 어쩔 수 없이, 또는 최선을 다해, 진심으로 신, 보이지 않는 질서, 저 영원한 침묵을 지키는 우주 그 자체에 의지하고자 하는 우리 인간의 본성을 비애조로 노래한다.



창조는 사랑의 행위이며 영원하다. 매순간 우리의 존재는 곧 우리에 대한 신의 사랑이다. 그러나 신은 오직 자기 자신을 사랑할 뿐이다. 신이 우리를 사랑하는 것은 곧 우리를 통해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존재를 부여해 주는 신은 우리가 존재하지 않겠다고 동의할 때 우리를 사랑한다. 

우리의 존재는 오로지 이와 같은 신의 기다림과 그리고 존재하지 않겠다는 우리의 동의로 이루어진다. 우리에게 존재를 부여한 신은 우리들 곁에서 영원히 그 존재를 얻으려 애걸한다. 우리에게 주고 나서 바로 얻으려고 애걸하는 것이다. 

- 58쪽 



 



13살 때의 시몬느 베유




* 책에서 몇 개의 문장을 더 인용한다. 



인간에게 애원하기, 그것은 자기 자신의 가치 체계를 타인의 정신에 억지로 강요하려는 절망적인 시도이다. 반대로 신에게 애원하는 것은 신의 가치를 자기의 영혼 속에 받아들이려는 시도이다. 그것은 우리가 집착하고 있는 가치들을 집요하게 생각하는 것과 전혀 다르며, 내 안의 빈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47쪽) 



두통, 때로 통증을 우주를 향해 던져 버리면 조금 줄어든다. 하지만 그럼으로써 우주가 변질된다. 통증을 원래 자리로 되돌리면 두통은 더욱 심해지지만, 나의 내부에는 고통 받지 않는 어떤 것이 있어서 변질되지 않은 우주와의 접촉을 잃지 않는다. 정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행할 것. 무엇보다도 모든 고통들을 이와 같이 다룰 것. 고통이 사물에 다가가지 못하게 할 것. (18쪽) 



진리를 사랑한다는 것은 빈 자리를 견뎌 내는 것. 따라서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진리는 죽음과 같은 곳에 있다. (26쪽) 





중력과 은총 - 10점
시몬느 베이유 지음, 윤진 옮김/이제이북스


Comment +0

2017년, 책 읽기의 기억

2017년, 책 읽기의 기억 1. 책 읽는 병든, 그러나 고귀한 우리들 책을 읽는 여인(안지오의 소녀) 이탈리아 안지오Anzio에서 나온 그리스 조각 복제본(대리석)으로 기원.....

보들레르의 수첩, 보들레르

보들레르의 수첩 샤를 보들레르(지음), 이건수(옮김), 문학과지성사, 2011년 1846년 산문과 1863년 산문이 함께 실려있고 죽은 후 나온 수첩까지 실린 이 책은 기억해.....

경쟁 우위의 종말The End of Competitive Advantage, 리타 맥그레이스

경쟁 우위의 종말 The End of Competitive Advantage 리타 군터 맥그레이스(지음), 정선양, 김경희(옮김), 경문사 "소니는 스스로 경쟁우위의 함정에.....

단테:세속을 노래한 시인, 에리히 아우어바흐

단테 - 세속을 노래한 시인 에리히 아우어바흐(Erich Auerbach) 지음, 이종인 옮김, 연암서가 좋은 책이다. 간결한 문장으로 핵심을 찌른다. 이종인 선생의 번역도 .....

우리는 모두 식인종이다,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우리는 모두 식인종이다 클로드 레비-스트로스Claude Le'vi-Strauss(지음), 강주헌(옮김), 아르테, 2015 누구나 자신의 관습에 속하지 않은 것을 야만적인 것.....

요즘 근황과 스트라다 로스터스 STRADA ROASTERS

안경을 바꿔야 할 시기가 지났다. 나를, 우리를 번거롭게 하는 모든 것들은 우리의 예상보다 빨리 도착해 신경쓰이게 한다. 글자가 흐릿해지는 만큼 새 책이 쌓이고 잠이 줄어드는 .....

반듯이 누워

반듯이 누워 밑에서 올라오는 열기와 얇게 흔들리는 콘크리트 건물의 건조함에 묻혀 아주 짧게 내 삶을 되새기며 슬퍼한다. 이름 모를 바람이 들어와 잠시 내 몸 위에 살짝 앉았다.....

촘스키, 끝없는 도전, 로버트 바스키

촘스키, 끝없는 도전 로버트 바스키(지음), 장영준(옮김), 그린비 노엄 촘스키를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지만, 그의 언어학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할 것이다. 대체로 우리에게 .....

헤밍웨이의 말, 헤밍웨이

헤밍웨이의 말 헤밍웨이(지음), 권진아(옮김), 마음산책 헤밍웨이가 너무 유명했던 탓에, 내가 그를 읽은 건 고등학생 때였다. 이것이 세계문학전집의 폐해다. 헤밍웨이의 소설들.....

지식인의 표상, 에드워드 사이드
지식인의 표상, 에드워드 사이드
유현경, <은주>
비 오는 날
데이비드 밴 David Vann 인터뷰 중에서 (Axt 2017. 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