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이론

주제, 강유원

지하련 2020. 4. 26. 08:28



주제 - 강유원 서평집

강유원(지음), 뿌리와 이파리 



이 책은 2005년 겨울에 나왔으니, 이 땐 나도 적절한 시간을 책 읽기와 글쓰기에 투자하고 있었다.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으나, 대단한 사명감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뭔가 다른 것을 하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내 행동이나 태도에 많은 문제점들이 있었으나, 이를 깨닫지 못했다. 그저 빈둥거릴 생각만 가득했다. 그리고 내 모든 것이 끝났던 무렵니다. 사랑이랄까, 미래랄까, 꿈이랄까. 


그리고 2020년에, 2005년, 혹은 2006년에 읽었던 책을 다시 꺼내 읽었다. 실은 다 읽었는지도 모르겠다. 일부는 기억 나지만, 대부분 기억나지 않는다. 저 때가 10년도 채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14년이 지났다. 그 사이 너무 많은 일이 있었고 나도 변했다. 변하는 게 당연하다. 다만 좋은(?) 방향으로 변했는가에 대해선 이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요즘 종종 드는 생각, 나는 왜 책을 읽는 걸까, 왜 책 읽기에 시간을 투자하는 것일까, 그렇게 한다고 해서 내가 이 세계에 대한 통찰을 가지는 것도 아니고 내가 남 앞에 서서 내 식견을 뽐낼 일도 없고, 직장 생활에 커다란 도움이 되지 못하는 상황인데, 왜 나는 읽는 걸까. 그래, 그냥 병든 것일지도. 


책은 ‘자기’를 찾는 과정을 보여줌과 동시에 그 과정에서 찾아낸 자기의 모습을 드러내 주어야 하며, 이러한 보여줌과 드러냄의 주체는 그러한 행위의 출발점이자 귀착점인, 분열되어 있으면서도 통일된 자기여야 하고, 이 모든 것을 완결된 서술 구조 속에서 제시하여야만 하거니와, 이러한 것이 책이라면, 몇몇 다른 것들은 그것들에 대한 주석이거나 해설이거나 아니면 그것들을 베낀 것일 따름이니, 여기에 묶인 글들은 주석이나 해설이나 베낀 것에 대한 하찮은 푸념일 뿐이요, 주석도 해설도 베낀 것도 아닌 것들에 대한 비웃음이다. 

- <서문> 중에서 


서평집이므로, 이 책에서 언급되는 책들은 모두 2005년 이전에 출간된 것들이다. 일부는 구할 수 없고 일부는 아직도 구할 수 있다. 이 책을 읽고 필요하다면 구해 읽으면 된다(구할 수 없는 책이란 없다. 읽고 싶다면 복사를 해서라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책과 교양>, <역사>, <근대>, <파시즘>, <전쟁>, <한국과 동아시아>로 나누어 각 주제별로 읽은 책들 중 서평이 필요한 것들을 모아 정리하고 있다. 서평 하나에 여러 권의 책이 소개되기도 한다. 책에 대한 서술은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책 소개에 머무르지 않고 책 내용에 대한 비판적 언급과 가치까지 이야기하고 있으므로 꼼꼼히 읽을 만하다. 


책을 읽다가 메모한 내용들을 옮긴다. 아래 내용은 나에게만 의미 있는 것들 위주로 옮긴 것이니, 이 책을 읽을 다른 이들의 그것과는 다를 것이다.  


“정신의 몸, 그리고 문화가 함께 하나의 인격체가 되는 형식이며, 다른 사람의 거울 속에서 자기를 비추어보는 형식”인 교양

- 디트리히 슈바니츠, <<교양>> 중에서 


“나는 역사학이라는 전문 영역이 핵물리학과는 달리 최소한의 해악은 끼치지는 않는다고 생각하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역사학이 해악을 끼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 일반적으로 우리들은 역사적 사실에 책임을 져야 하며, 특히 역사를 정치적. 이데올로기적으로 악용하는 일은 비판해야 한다.”

- 에릭 홈스봅, <<역사론>> 중에서 



“역사적 사건에 대한 견해와 정치적 소신은 여전히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항상 밀접하게 연결될 수 밖에 없다. 과거의 경험은 바람직한 정책이나 제도들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뒷받침해주는 토대이며, 현재 우리의 정치적 견해는 필연적으로 과거에 우리의 해석에 영향을 주고 색깔을 입힌다.”

- 하이에크


만약 우리가 아우구스티누스가 자신을 인간 존재의 수수께끼를 풀려고 노력하는 의식적 정신Conscious mind을 가진 개인일 뿐 아니라 우주, 역사적 과정의 일원이며 증인으로 자각했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고백록>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체계적이지만 이미 낡은 사회적 유대와 가치를 지닌 구세계가 붕괴되고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는 시기에 살았던 인물이었다.

- 아론 구레비치, <<개인주의의 등장>> 중에서 


“카알라일이나 슈펜하우어로 하여금 외딴 문명이나 이상화된 과거로 도피하게 하고 자기 시대에 대한 최대의 적인 니체를 히스테리와 광기로 몰고 간 어지러운 시대에 오직 마르크스만이 흔들림없이 꿋꿋하게 자신을 지켰다.”

- 이사야 벌린 


파시즘은 근대의 세 요소, 즉 형이상하적 원리로서의 기계론, 자각적 시민이 기계적 체계 속에서 전락한 모습인 대중 그리고 마모된 의식의 마지막 형태인 니힐리즘이 집약된 것이다. (145쪽) 


“인간과 국가의 내부에는 본성으로 뒷받침되고, 습관으로 강력해진 어떤 충동이 들어있다. 이 충동은 그들이 한 조각 힘을 가지고 있는 한 계속 그들을 앞으로 몰고간다. 자신을 억제하는 것은 거의 신적인 경지에 이른 사람들 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 앞에 놓인 파멸을 보면서 그 속으로 들어간다.” 

- 레오폴트 랑케 


“대중Masses이라는 용어는 19세기 중엽(영국의 경우 1830년경, 스페인의 경우 1870년경)에 나타난 것으로, 산업 프롤레타리아나 도시의 하층계급, 곧 토지를 떠나 자본주의적 공업화나 도시화 과정에 편입된 사람을 의미한다.” 

- 황보영조, <프랑코 체제와 대중> 


“벤야민은 근본적인 회의를 통해 진보의 모든 신비화를 비판적으로 논박하며 역사 속에 파묻혀 있는 희망들의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희망을 호소했던 반면, 벤야민의 (남성) 전문가들은 1960년대 이래 줄곧 진보의 진보에 매달리면서 보잘 것 없는 것에 대한 심사숙고와 과거의 희망들에서 힘을 만들어 내는 것을 강조한 벤야민의 역사 방법론을 거부했다.” 

- 루츠 니트함머, <<역사에서 도피한 거인들>> 


경찰의 무자비함은 여순 사건의 직접적인 원인이기도 했다. 당시 여수군청의 직원이었던 김계유에 따르면, “우리는 흔히 식민지 경찰 운운하면서 일제 경찰을 욕했지만 그래도 일제 경찰은 법에 걸려야 단속을 했고 무고한 양민을 건드리지는 않았다. 미군정을 거쳐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이승만 정권 치하에서의 우리 민주 경찰(?)은 일제 경찰을 뺨칠 정도로 강팍했다. 국민 생활의 모든 면에 걸쳐서 간섭하지 않은 것이 없었고, 걸핏하면 생사람을 좌익으로 몰아 때려잡는 바람에 ‘관제 공산당’이라는 새 용어가 생겨났고, 사람들은 그게 무서워 무조건 쩔쩔 맸다.” (2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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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원 지음/뿌리와이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