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수수께끼
세스 노터봄(지음), 금경숙(옮김), 뮤진트리
최초의 인간들이 느낀 지복 뿐만 아니라 불안과 혼란도 숱하게 표현된 그 그림들에서 미래가 보이는가? 보스 자신은 그 어떤 말도 없이, 그림만 남겨놓았을 따름이다. 그의 자취야 토지 대장과 문서, 매매 서류에 남아 있지만, 그는 자신의 예술에 관해서는 어떤 것도 말하지 않았다. 그는 그림을 그렸다. 우리 눈에서 사라진 한 남자는, 눈에 보이는 그 많은 것들 뒤에 어떤 것도 남기지 않았다. (21쪽)
일부 독자들은 이 책을 읽으며 상당히 실망했을 것이다. 살짝 어정쩡한 위치의 이 수필집은 히에로니무스 보스에 대한 깊이있는 이해나 분석이 나오지 않고(세스 노터봄은 충분히 그럴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스 노터봄은 짧고 담담하게 보스의 작품을 보러가게 된 계기에 대해 이야기하며 자신의 여정과 보스의 작품을 서로 겹쳐놓는다. 몇몇 보스의 작품들이 소개되면서 보스의 작품과 그 시대, 히에로니무스 보스에 대한 이야기도 이어지지만, 살짝살짝 스쳐지나갈 뿐이다. 워낙 짧은 분량이기도 하거나, 이 책은 애초부터 보스에 대한 깊이 있는 소개를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님을 독자는 알게 된다.
소설가로 잘 알려진 세스 노터봄의 미술에 대한 이해는 미술 전문가의 수준을 뛰어넘는다.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도 무엇보다 여기에 있다. 세스 노터봄의 글을 좋아하기도 하거니와. 이런 면에서 보자면, 깊이 있는 내용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다소 실망스러운 책이다. 다만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대한 책이 한 권 번역되어 출간되었다는 점에 만족하기로 한다. 그리고 도판 상태도 나쁘지 않았다(일부 표기에 잘못된 부분이 있긴 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