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이론

공정하다는 착각, 마이클 샌델

지하련 2021. 5. 5. 21:16

공정하다는 착각 The Tyranny of Merit: What's Become of the Common Good?

마이클 샌델(지음), 함규진(옮김), 와이즈베리

 

 

 

빠른 속도로 읽었고 뒤늦게 리뷰를 올린다. 능력주의(Meritocracy)라는 단어는 최근에 등장한 단어다. 그냥 우수한 성적, 능력을 가진 이들에게 더 나은 보상을 한다는 의미이다. 일견 보기에는 당연한 것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최근 여러 학자들에 의해 제기된 바이다. 특히 좌파나 중도 우파 정치인들과 결부되어 능력주의는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사회적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는 주장은 상당히 설득력을 가지며, 최근 선진국 사회에서의 정치적 지형이나 물질적 불평등을 볼 때, 능력주의는 간과할 수 없는 주제라 할 수 있다.

 

이미 많은 이들에 의해 소개되기도 하였고 또 많은 이들이 읽은 책이라 내가 여기서 이 책에 대해 길게 설명할 필요는 없을 듯 싶다.

 

능력주의의 금과옥조는 ‘우리는 개인으로서 우리 운명의 책임자다’라는 도덕률이다. 우리가 성공하면 우리가 잘한 덕이며, 실패하면 우리가 잘못한 탓이다. 사기를 올려주는 말같지만, 개인 책임에 대한 집요한 강조는 우리 시대의 불평등 상승 추세에 대응할 연대의식이나 연대 책임을 떠올리기 어렵게 한다. (287쪽)

 

능력의 가장 유일한 라이벌, ‘우리는 우리 운명의 주인이며 뭐든 우리가 얻은 것을 가질 자격이 있다’는 생각의 라이벌은 ‘우리 운명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고 우리의 성공과 실패는 다른 누군가에게, 가령 신이거나, 운명의 장난이거나, 순간의 선택에 따른 예상 밖의 결과 등에 좌우된다’는 생각이다. (300쪽) 

 

요즘 우리는 성공을 청교도들이 구원을 바라보던 방식과 비슷하게 본다. 행운이나 은총의 결과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노력과 분투로 얻은 성과라고 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능력주의 윤리의 핵심이다. 자유(힘써 일함으로써 내 스스로 운명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와 당당한 자격을 한껏 강조한다. 내가 많은 세속적 재화(소득과 재산, 권력과 명예)를 손에 넣는데 스스로 책임이 있다면, 그러한 ‘취득의 자격’이 있을 것이다. 성공의 미덕의 증표다. 나의 부유함은 나의 몫이다. (105쪽) 

 

한국 사회는 아주 오래 전부터 능력주의가 기저에 깔려 있었던 건 아닌가 싶다. 공부 잘 하는 이들에게 그만큼의 보상이 따라간 건 조선 시대부터 그랬던 것이니. 이미 지식인 중심의 사회가 형성되어 있었으며,  그것은 그냥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능력이 개인의 노력에 의거한다기 보다는 다른 배경이나 조건에 더 좌우된다면? 

 

사실 능력주의 엘리트에 대한 포퓰리즘적 반감이 트럼프 당선과 그 해 초 영국에서 예상을 깨고 이루어진 브렉시트 표결에 일정한 영향을 받았다고 믿을 이유가 있다. (123쪽)

 

대학 학력의 무기화, 그것은 능력주의가 얼마나 폭정을 자행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세계화 시대는 노동계급에 큰 폭의 불평등 확대를, 또한 임금의 정체를 안겨주었다. (144쪽)

 

결국 능력주의는 보기에는 공정하게 보이지만, 실상은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그들만의 리그를 만든다. 심지어 그들 사이에서조차 서열과 파벌을 만들어 경쟁하며 그 모든 것이 자신들의 능력으로부터 나온 것으로 미화한다.  실은 공정하다는 것은 거짓된 환상에 가깝다. 이 책에서 마이클 샌델은 우리 모두가 능력주의의 피해자가 되고 있음을 강조하며, 동시에 능력주의는 자유주의적 좌파들에 의해 조장되고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주장한다. 흥미롭게도 우파 경제학자인 하이에크는 능력주의와 반대되는 입장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능력주의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해볼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이 모든 금융활동은 우리를 더 이상 번영시키지 않는다. 대신 불평등을 심화시키며 주기적으로 금융위기를 불러와 위기 때마다 막대한 경제 가치를 파괴한다. 금융은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방해가 되고 있다. 금융 분야는 비대해질수록 우리 경제가 성장하지는 않으며 오직 느려질 뿐이다."  
- 라나 포루하 <<메이커스 앤드 테이커스: 경제를 성장시키는 자, 경제를 망가뜨리는자. Makers and Takers : The Rise of Finance and The Fall of American Business>> 중에서 (341쪽에서 재인용)

 

뭐, 현대 자본주의 금융 시스템의 문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능력주의와 결부되면서 얼마나 많은 폐해를 만들어내는지... 마이클 샌델의 이 책은 한 번 정도 정독해볼 만한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을 정도의 수준을 가진 독자라면, 그/그녀도 이미 능력주의의 혜택을 입은 이가 아닐까.

 

가끔 한국 정치를 보면서, 일반 서민들의 생각이나 주장과  정치인들이 생각하는 그것과는 얼마나 거리가 있는지, 그리고 그것은 일반 서민들의 입장이나 생각들을 전달해주는 매개가 없는 건 아닐까, 다시 말해 정치인들 옆에 있는 이들은 이미 그들 나름대로 입지를 다진 이들이지, 진짜 불평등한 상황에서 삶의 위기에 놓은 서민들과는 거의 공감대가 없는 사람들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20대의 여론이라는 것은 괜찮은 대학을 다니는, 학비를 걱정하지 않으며 정치에 관심을 가질 정도의 여유를 가진 이들의 그것이 정치인들에게 전달되지, 그 상황이 되지 못하는 이들은 아예 정치에 관심을 기울일 여유조차 없으니, 그들의 생각 따위는 정치인들에게 전달되지 못할 것이라는 가정 말이다.  이 가정이 맞다면 현실 정치는 앞으로 더욱 위기를 맞을 것이며 더 혼란을 초래할 것이다. 이제 경제적 양극화 뿐만 아니라 정치적 양극화도 우리 사회가 감내해야 될 어떤 것이 될 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선 정치인들의 반성과 정치 시스템의 개선이 함께 이루어져야 겠지만. 이런 것도 어쩌면 능력주의의 폐해인 셈이다. 


 

오늘날 고학력자들은 중도 좌파정당에 투표하며, 저학력자들은 우파 정당에 투표한다. (168쪽) 

 

능력주의 윤리는 승자들을 오만hubris으로 패자들을 굴욕과 분노로 몰아간다. (5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