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예술

예술과 풍경, 마틴 게이퍼드

지하련 2023. 6. 19. 13:09

 

 

예술과 풍경 The Pursuit of Art: Travels, Encounters and Revelations

마틴 게이퍼드Martin Gayford(지음), 김유진(옮김), 을유문화사

 

 


“모든 화가는 자기 자신을 그린다.” - 레오나르도 다빈치

"시속 48킬로미터로 달리는 버스를 타고 지나가면서 좋은 회화와 나쁜 회화를 구분할 수 있다." - 케네스 클라크 

 

 

 

빠르게 책을 읽었다. 쉽게 읽을 수 있는 산문집이었다(이건 내 기준일테니, 다른 이들은 어떨지 모르겠구나). 마틴 게이퍼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예술 평론가이면서 데이비드 호크니나 루시안 프로이드와 같은 현대 예술가들의 친구이다(친구들과 나눈 이야기로 책을 몇 권 내었다). 이미 몇 권의 책들이 한글로 번역 출판되어, 현대 예술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이미 읽었을 것이다. 이 책은 예술작품, 또는 예술가와 함께 한 여행들에 대한 산문집이다. 편하고 가벼운 문장들이지만, 마틴 게이퍼드가 가진 예술에 대한 번득이는 재치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여러 모로 즐거운 독서였다.

 

현대예술에 대한 책은 여러 목적으로 읽게 될 텐데, 그 중 하나가 현대 미술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작품 감상에 도움을 받기 위해서일 게다. 그러나 이 점에서 예술에 대한 책은 어쩔 수 없는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 아무리 글쓴이가 탁월하고 생생한 문장으로 예술작품과 예술가에 대해 이야기하더라도, 예술 작품을 실제로 보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다. 그러니 책 몇 권 읽는다고 해서 예술 작품을 보고 바로 감동을 받는다거나 한순간에 작품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반대로 책을 몇 권 읽었냐보다 실제 작품들을 얼마나 많이, 오래 보았는가가 더 중요하다. 또한 인접 예술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 온전히 한 인간, 한 세계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공감을 하지 않고선 진짜 예술을 알지 못할 것이기에. 하지만 마틴 게이퍼드의 책들을 읽다보면, 적어도 현대 미술에 대한 짧은 이해는 구할 수 있을 것이다(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요즘 전시를 자주 가지 않고 있음에, 그리고 안젤름 키퍼(Anselm Kiefer)의 작품을 실제 눈으로 못 본 것이 벌써 십 수년이 흘렀음에 슬픈 기분이 잠겼다).

 

안젤름 키퍼, <<Man under a Pyramid>>, 1996

 

좋은 예술 작품을 발견하고 이해하고 느끼며 감동을 받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냥 어려운 일이다. 서양미술사 수업을 듣는다고 해서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몇 번의 현대 미술 전시를 본다고 해서 익혀지는 것도 아니다. 종종 (안타깝게도) 형편없는 예술가들과도 만나기 때문에, 현대 미술을 잘 모르겠다고 느끼더라도 심하게 부끄러워할 필요까진 없다. 도리어 시간이 걸리더라도 제대로 된 감상의 안목을 익히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 책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은 부분은 콘스탄틴 브랑쿠시와 안젤름 키퍼에 대한 내용이었다.

내가 안젤름 키퍼의 작품을 좋아하게 된 이유는 말린 식물, 유리 등과 같은 직접적인 재료들에서 오는 원초적인 느낌 때문이었다. 갤러리에서 그의 작품을 보았을 때, 커다란 캔버스에 다양한 오브제들 - 마른 풀, 콘크리트, 물감 등 - 이 무질서하게 펼쳐져 있었다. 상당히 거칠 질감으로 마치 캔버스 위로 세찬 바람이 지나는 듯한 느낌을 자아냈다. 그리고 꽤 시간이 흐른 후 그러한 오브제가 전후 독일에 남겨진 이들에게 역사의 상처를 해석하고 치유하는 과정 속에 위치하고 있음을 알았을 때, 그 놀라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뒤샹 이후의 현대 예술가들은 뒤샹을 넘어 오브제 자체의 의미를 형이상학적으로 통찰하기 시작한 셈이다. 

 

안젤름 키퍼, <<종려나무 일요일>>,. 2006

 

"납이나 콘크리트, 흙, 말린 식물, 유리, 철조망, 책이나 낫, 모형선처럼 발견된 오브제(found objects)들은 일련의 연관성을 지니며 상징적으로 자리한다.특히 키퍼는 납을 더욱 특별한 재료로 여기며 이에 대해 ‘인류 역사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는 유일한 재료’라고 이야기 한 바 있다."(출처: 타데우스 로팍 갤러리)  

 

하지만 안젤름 키퍼의 작품을 보고 감동받기란 쉽지 않다. 다만 안젤름 키퍼의 여러 인터뷰, 그의 작품이 현재에 이른 여러 과정, 현대 역사와 예술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가졌을 때 어느 정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충분하게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고 표현 방식에 대한 이해를 가졌다고 해서 감동이 오진 않는다. 감동은 전적으로 개인적 체험이다. 또한 작가의 의도와 무관한 해석이 나올 수도 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내가 앞서 이야기한 그런 정보나 이해가 없이도 감동 받기도 한다. 가끔 감동을 받은 후에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하는데, 그건 좋아하게 된 그 계기와 작가가 표현하고자 한 주제와 일치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는 더 나아가 예술 작품 앞에선 발가벗은 듯한 느낌을 가지게 될 지 모를 일이다. 현대 예술에서의 진실성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문학에선 프란츠 카프카가 이런 기분에 휩싸여 살았다). 

 

키퍼는 거대한 주제를 다룬다. 종종 그의 회화는 전쟁에 따른 피해의 결과, 혹은 시간이 만들어낸 황폐함으로 생긴, 폐허로 뒤덮인 고대와 현대의 풍경을 동시에 묘사한다. (179쪽)

 

“사진은 셔터가 열리는 그 순간만 보여주는 반면, 회화는 순간만을 보여주지 않아요. 역사를 보여주죠. 회화는 살아있어요. 변화하고, 깊이를 간직하죠. “ - 키퍼 (182쪽)

 

종종 사람들은 현대 미술이 온통 실험미술이거나 설치, 혹은 멀티미디어로만 이루어질 것이라 생각할 지 모르겠지만, 아직도 많은 예술가들이 천착하는 것인 바로 평면성, 회화성이다.

 

반면 회화는 크기가 정해져 있고, 그 크기가 차이를 만든다. “2킬로그램의 푸른 물감이 1킬로그램의 푸른 물감보다 더 푸르다”는 세잔의 명언은 고갱, 마티스부터 데이비드 호크니에 이르기까지 많은 화가가 인용했다. 회화에서 크기는 중요하다. (95쪽)

 

그러나 그것을 직접적으로 말하긴 참 쉽지 않다. 그것을 쉽게 이야기하기엔 회화의 역사가 너무 길고 그것을 둘러싼 무수한 도전들이 지금도 이어지기 때문이다. 심지어 평면성은 인상주의 이후의 회화 뿐만 아니라 현대 사진이 추구하는 일부 방향이기도 하다.   

 

Jenny Saville, The Mothers, oil on canvas, 2011,

 

Jenny Saville, Odysseus I, oil, oil stick, and acrylic on canvas, 2020-21,

 

제니 새빌Jenny Saville은 YBA(young british artists)의 원년 멤버로 여성의 신체를 현대적으로 눈속임 없이 그대로 표현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화장하기 전, 상처 입은 채로, 고통 받는 듯한 신체를 드러냄으로 여성 신체에 대한 현대적 관점을 드러낸다. 책에는 <<어머니들The Mothers>>가 실려있는데, 실제로는 상당히 과격한 방식의 페인팅 작품을 그리고 있었다. YBA 멤버들 중 이름만 들었던 작가였는데, 이번에 좀 유심히 다시 살펴볼 수 있었다. 

 

Michelangelo, The Crucifixion of St. Peter, Fresco, 1546-1550

 

미켈란젤로의 <<베드로의 순교>>는 그의 마지막 작품이다. 전형적인 매너리즘 작품이다. 게이퍼드는 아래와 같이 적고 있다.

 

더욱이 르네상스 시대의 많은 비평가는 하나 같이 미켈란젤로보다 라파엘로가 더 뛰어나다고 이야기했다. 미켈란젤로가 근육질의 남성 나체에 특화되어 있다면, 라파엘로는 풍경화, 인물화, 세련된 인물들의 조화, 귀여운 여자아이까지 모든 것을 잘 그렸다. 어떤 16세기 자료에서는 라파엘로가 그린 인물이 신사라면, 미켈란젤로의 인물은 근육질의 짐꾼 같다고 불평했다. (108쪽)

 

하지만 미켈란젤로는 조각가였다. 조각가로서의 정체성으로 회화 작품들을 남겼다. 그러니 저런 불평은 미켈란젤로가 어떤 예술가인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셈이다. 회화의 자연스러움으로만 보자면 라파엘로가 한 수 위였음은 분명하지만, 그 작품 밑으로 흐르는 진정성은 전적으로 다른 문제였다. 아름다움 너머 어떤 비장함, 슬픔, 절망은 라파엘로가 아니 미켈란젤로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어떤 감동일 테니.

 

Gilbert & George, Fates, 2005

 

길버트가 이 주제를 이어나갔다. “렘브란트의 회화는 무엇이죠? 바로 그 자신이에요. 미술가의 모든 내적 감정인 거죠. 반 고흐는 또 어떻고요? 단지 그 자체, 완전히 미쳐버린 사람이에요. 그의 광적인 시각이 전부인 거예요. 만약 예술이 모든 면에서 완전히 정신적이고 도발적이지 않다면, 그건 커튼 닫는 거죠. 끝난 거예요.” 이어서 조지가 분명하게 말했다. “나는 우리가 시진에 직접 등장해서 관객에게 이건 지겨운 예술작품이 아니라 미적 체험일 뿐이라는 점을 상기해줄 수 있다면 아주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들에게 무언가 말하는 사람은 우리거든요.” (200쪽 ~ 201쪽)

 

작가는 없고 텍스트만 있을 뿐이라고 해도, 그래서 작가는 사라지고 작품만 남아 다르게 해석된다고 하더라도 그건 비평의 한 경향일 뿐, 나도, 너도, 작품을 통해 작가를, 사람을, 이 세계를 보게 된다. 마틴 게이퍼드가 반복적으로 이야기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Constantin Brancusi, Infinite Column, 1938

 

이 기둥들은 무한의 조각이다. 그래서 역설적이다. 시간이라는 개념을 견고한 3차원으로 재현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훌륭한 예술작품처럼 사진을 찍기 어려웠다. 사진으로는 길고 얇은 물체가 공중을 향해 찌르듯 표현된다. 하지만 관객이 그 근처에 섰을 때 중요한 점은, 이 작품이 위로 계속 솟구쳐 오르는 것처럼 느껴지는 방식에 있다. (…) 이 과장된 순간 때문에 브랑쿠시는 이 작품을 “천국으로 가는 계단”이라고 설명했다. (33쪽)

 

콘스탄틴 브랑쿠시가 루마니아 사람인 걸 이번에 알았다. 그리고 저 작품을 보기 위해 루마니아로 가야 한다. 왜냐면 정말 무한의 조각이기 때문이다. 끝도 없이 하늘을 향해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사진으로는 그것을 알 수 없다. 그리고 게이퍼드는 저 작품을 보러가면서 루마니아 코르빈 성(Castelul Huniazilor (Corvin Castle, also known as Hunyadi Castle or Hunedoara Castle, Romanian: Castelul Huniazilor or Castelul Corvinilor) is a Gothic-Renaissance castle in Hunedoara, Romania)도 방문하였다. 이 성도 이번에 알았는데, 루마니아에선 상당히 유명한 성이다. 



 

 

 

Robert Frank, Trolly &ndash; New Orleans, 1955. From The Americans

 

Robert Frank,&nbsp;Drive-in movie, Detroit 1955. From The Americans

 

로버트 프랭크의 사진 작품이라든가 리히터의 언급들도 상당히 시사적이었다.

 

“나는 보이스가 좀 미치광이 같아요."
“보이스는 물론 중요하죠.”
“그는 훌륭한 엔터테이너예요. 나는 보이스처럼 말을 잘 못했어요. 그냥 조용히 있었죠.”
“예술은 농담이 아니라 진지해야 해요. 나는 예술을 비웃고 싶지 않아요. 나는 터무니없이 구식이고요.” - 리히터

 

게르하르트 리히터, 잊고 있었던 이름이다. 아트 페어에서 한 두점의 작품을 보기는 하였으나 집중해서 본 적이 없었다. 보이스에 대한 저 의견을 상당히 흥미로웠다. 책에는 이 외에도 많은 예술가에 대해 이야기되고 있다.

 

책을 읽은 지 몇 주가 흘렀고 그 사이 현대 미술에 대해 알고 싶다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 것이 이 책의 리뷰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그리스의 현대 음악가 크세나키스의 작품을 편안한 마음으로 들을 수 있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심지어 짐노페디나 그로시엔느를 제외한 에릭 사티의 음악도 이와 비슷하다. 현대 미술은 편하지 않다. 보는 이를 배려하지 않는다. 도리어 허위를 드러내고 진실됨을 강요한다. 그래서 이 책에 대한 글을 쓰면서 내내 머리가 복잡하기만 했다. 책에 대한 내용이 들어가야 하는데, 예술 책에 대해 쓰다보면 내 의견이 더 많이 들어가게 된다. 현대 미술 뿐만 아니라 예술에 대한 글을 자주 올려야겠다. 

 

 

마틴 게이퍼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