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이론

극단의 시대, 하권, 에릭 홉스봄

지하련 2024. 5. 1. 16:33

 

 

극단의 시대: 20세기 역사, 하권

에릭 홉스봄(지음), 이용우(옮김), 까치 

 

얼마나 세상이 변했는가를 잊고 지내곤 한다. 터무니없는 질문이지만, 15세기 조선 사람이 타임머신을 타고 서울 한 복판으로 온다면 어떻게 될까? 내가 들었던 여러 대답들 중에 '너무 시끄러워서 기절한다'는 의견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실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환경은 인류 역사 상 최초로 경험하는 것들이다. 가끔 제 정신으로 이 세계를 살아가는 인간들이 도리어 놀랍기까지 하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인류의 80퍼센트에게 중세는 1950년대 갑자기 끝났으며, 아마도 더욱 많은 경우, 1960년대에 중세가 끝났다고 느껴졌다. (400쪽) 

 

위 말은, 195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인류의 상당수는 중세부터 살아오던 삶의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음을 뜻한다. 이는 서구 유럽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헤르만 지몬Hermann Simon은 자서전에서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마을을 언급할 때도 거의 유사한 의미에서의 풍경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만큼 인류 문명의 새로운 시기가 시작되고 있음을 저 짧은 한 문장으로 에릭 홉스봄은 진단한다. 그리고 그것의 배경에는 과학의 발전이 있었다. 

 

오늘날 세계에 철학이 들어설 자리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물론 있기는 하지만 현 상태의 과학적 지식과 성과에 기반할 경우에만 그렇다. ... ... 철학자들은 과학으로부터 자신을 격리시킬 수 없다. 과학은 우리의 인생관과 세계를 거대하게 확대시키고 변화시켰을 뿐 아니라, 지성이 작동하는 규칙들을 혁명적으로 변화시켰다. -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 (715쪽)

 

많은 사람들이 인문학의 위기나 문학 계열 학과의 폐지를 언급하는데, 이것은 예견된 일이다. 레비 스트로스가 언급하듯 이제 수학이나 자연과학적 배경과 이해 없는 순수학문은 아무 의미가 없는 시대가 되었다.

 

자연과학의 진보는 갈수록, 실험실에서 실험하기보다는 종이철에 방정식(즉 수학적 문장)을 쓰는 사람들에게 의존하게 되었던 것이다. 20세기는 이론가들이 실행가들에게 자신의 이론에 비추어 무엇을 찾게 될 것이며 무엇을 찾아야 하는지를 말해주는 세기, 바꿔 말해서 수학자의 세기가 될 것이었다. (731쪽)

 

최근 이론물리학의 발전은 놀라워서 일반인이 이해하기 아득하기만 하다. 가령 '양자 도약'은 우리의 사고를 뛰어넘는다. 시간은 없고 과거-현재-미래는 이미 결정되어 있다고 수학적으로 증명해낼 때, 우리는 이를 받아들이지도 못하고 받아들일 수도 없다.  

 

물리학자들은 영구적인 모순 속에서 사는 법을 배울 수 있었을까? 보어는 그들이 그것을 배울 수 있으며 또 배워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인간 언어의 성격을 감안할 때 자연 전체를 단일한 기술(記述)로 표현하는 길은 전혀 없었다. (737쪽)

 

20세기 후반에는 정말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문맹률이 현저히 내려갔으며, 고등교육(대학)의 유별나게 성장하였다. 특히 대학생들은 정치적 집단으로 자리잡았다. 실은 이것도 역사상 최초다.

 

1960년대가 보여주었듯이 그들은 정치적으로 급진적, 폭발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 사회적 불만을 국민적으로, 심지어는 국제적으로 표현하는데에 유례없이 효과적인 힘을 발휘했다. 독재국가에서 그들은 대체로 시민들가운데 정치적 집단행동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집단이 되었다. (413쪽)

 

그동안 20세기 전반기 대공황과 압도적이었던 두 차례의 세계 대전로 인해 20세기 후반에 일어났던 역사상 처음 일어났던 여러 양상들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못했다. 또한 나 또한 그 세계 속에서 태어났고 살아왔음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스럽게 그런 것들을 돌이켜보게 되었다. 가령 냉장고의 발명으로 인해 근교에 살 수 있게 되었음을 우리는 간과한다. 그 전에는 시장 인근에 사람들이 모여 살 수 밖에 없었다. 식재료를 장기간 보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냉장고의 발명은 도시의 확장을 불러왔다. 세탁기의 발명으로 여성이 직장을 구할 수 있게 되었다. 24시간 내내 밝은 불 아래서 생활할 수 있게 되어 자유로운 야간 활동이 가능해졌다. 여성에게 참정권이 부여되었으며, 역사상 그 어느 시대보다 여성의 권리와 인권이 보장되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여성은 정치적 주장을 이어가고 있긴 하지만).

 

그와 동시에 냉전의 시대였으며, 대중문화의 시대였다. 사회주의 국가는 초반에는 자본주의 세계보다 높은 경제성장율을 보였으나, 초반 10년 간이었을 뿐이었다. 이후 사회주의 경제는 정체를 거듭하다가 결국 해체되었다. 에릭 홉스봄은 이렇게 적고 있다. 

 

그것은 첩보물과 공포 스릴러물 작가들에게 이상적인 환경이었다. 그들에게 1970년대는 황금시대였다. 그 시대는 또한 서방의 역사에서 고문과 대항 테러라는 가장 어두운 시대이기도 했다. (611쪽) 

 

그리고 그는 '단기 20세기는 종교 전쟁의 시대였다'(769쪽)라고 단언한다. 참으로 슬픈 표현이다. 어렸을 때 나는 혼자 교회 십자가가 늘어날수록 우리 삶은 왜 어려워지고 불행해질까 의문에 빠지곤 했다. 실은 어려워지고 불행해진다는 기분 탓으로 교회에 의지하게 되었던 것이고 교회는 그들을 이용해 집단 이기주의에 빠진 것일 뿐인데, 그걸 몰랐다. 

 

한 달 넘게 이 두 권으로 나누어진 에릭 홉스봄의 책을 읽으며, 이 세계가 다시 퇴보하더라고 이상하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기후위기는 더욱 심해질 것이며 삶은 더 힘들어질 것이다. 그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눈 앞의 결과를 두고 의사결정을 하고 움직일 거니, 더 악화될 건 뻔하다. 우리 문명은 딱 우리 수명의 지혜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불과 백년 전과 비교해 수십년을 더 살게 된 지금 그 수십년 동안의 행동에 대한 그 어떤 지혜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러니 나이든 이들은 과거를 향해 살며, 과거를 회상하며 현재를 비난하고 공격한다. 그들이 지배하는 종교는 근본주의화되며 젊은이들을 오염시킨다. 그것이 자본주의 탓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에겐 새 천년을 제대로 살아갈 지혜를 갖추지 못한 건 자명한 사실이다. 

 

우리는 지난 2-3세기를 지배해온 자본주의 발전의 거대한 경제적, 과학기술적 작용에 의해서 장악되고 뿌리가 뽑히고 변화된 세계에 살고 있다. (79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