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이론

북 비즈니스, 제이슨 엡스타인

지하련 2011. 8. 25. 09:53
북 비즈니스 - 10점
제이슨 엡스타인 지음, 최일성 옮김/미래사


『북 비즈니스』
제이슨 엡스타인 지음, 미래사, 2001
(현재 절판임으로 도서관에서 대출해서 읽어야 함)




오늘 아침 문득 이 책을 떠올릴 일이 있었다. 2001년에 쓴 리뷰에는 내가 이 책에 대해 알고 있는 내용은 없었다. 제이슨 엡스타인은 미국 출판계의 원로이자, 지대한 공을 세운 인물이다. 하지만 그의 꿈은 작가였지, 출판인이 아니었다. 그는 언제나 깔끔한 책상, 서랍 첫번째 칸에는 권총과 미리 작성해놓은 사표를 놓아두었다고 고백한다. 현재는 출판사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언제나 마음만 먹는다면 그 곳을 벗어나 작가로서의 삶을 살 수 있다고 스스로를 위로한 것이다. 그래서 그런 걸까. 그는 미국 출판계에서 전설적이고 창조적인 일들을 하게 된다. 이 점에서 이 책은 현대 출판계가 어떻게 변화해 왔는가를 한 눈에 알 수 있는 책인 셈이다. 2011년에 2001년에 쓴 리뷰를 다시 읽어보니, e-book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실은 이 전부터 e-book 이야기가 나왔고, 모든 사람들이 된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세상은 그렇게 빨리 바뀌는 공간이 아니다. 그렇다고 변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이 책에서 서가에서 뒹굴다가 지난 번 이사 때 다른 이의 손으로 넘어갔거나, 버려졌을 것이다. 혹시 출판업에 대한 관심이 높거나, 출판사에 대해서, 또는 책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그것이 어떻게 읽히고 버려지는지가에 관심이 있다면, 이 책은 무척 재미있을 것이다. (2011년 8월 25일)

아래 서평은 2001년 10월달에 쓴 글이다.



들어가기 전에.
많은 신문과 저널에서 서평을 다룬다. 그것에 전적으로 의지해서는 안된다. 읽지 않는 책도 많고 지인의 책이거나 압력에 의해 다루어지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서평이 우리가 책을 알게 되는 여러 통로들 중, 영향력 있는 몇 되지 않는 통로라는 점에서 서평을 담당하고 있는 기자분들의 책임있는 기사가 많아지길 기대한다.


0.

이 책도 신문 서평을 보고 사게 되었다. 전공이 문학이었고 졸업생들의 몇몇은 해마다 출판사를 들어가기 때문에 출판이라는 업종에 대해선 조금 알고 있었다. 이 책. 나에게 이 업종에 대해 보다 깊이있는 이해를 도와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읽었다. 그러나 그 기대는 환호로 바뀌었고 이 책이 여러 일간지에 실린 서평 이상의 가치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이 책의 서평들은 대체로 인터넷 혁명과 관련된 일관된 시선을 가지고 있었다. 즉 어느 정도 출판사의 입장을 고려한 마케팅에 대한 의지나, 대강 읽고 출판사가 보내 준 서평을 참고했을 수도 있다. 여하튼 좋은 책을 발견한다는 것은 참 어렵다. 책은 종종 돈을 주고 사는 어떤 상품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니기도 하기 때문에)


1.
책의 미래에 대한 관심은 우리가 음악이나 영화를 담는 매체의 미래에 관심만큼이나 높다. 그래서 e-book에 대한 출판인이나 작가들의 호들갑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하지만 움베르토 에코의 지적처럼 작은 문고판 책은 자기 전 침대에서 읽을 수도 있고 사막을 횡단하는 낙타 위에서 심지어 섹스를 하면서도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오래된 책장을 넘기는 그 느낌은 어떤 신비로움까지 풍긴다. 그렇다고 e-book의 미래가 어두운 것은 아니다. 다만 e-book은 아주 유용한 버티컬 도구로 기능할 것이지 책 전체를 대체하지는 못할 것이다.


2.
"나는 비록 출판업의 몇 가지 개선책을 책임지고 있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개선책이란 모두 지나간 과거를 되찾기 위한 시도였다. 나는 진보에 회의적이며, 고고학적 천성을 지니고 있으며, 한번에 앞 뒤 두 곳을 바라보는 야누스를 좋아한다. 과거와의 확실한 연결 없이는 현재는 혼돈이며 미래는 예단할 수 없다. 우리의 문화에서 책이 그런 연결, 어쩌면 확실하고 필수적인 연결을 형성한다."(p.17)


미래란 과거를 통해서 알 수 있다. 통찰력이란 오래된 경험에서 비롯되는 것이지 얄팍한 지식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고고학적 천성이란 매우 중요한 것이다. 오래된 것들에 대한 취미를 나에게 딸이나 아들이 생기다면 가장 먼저 가르쳐주고 싶은 것들 중의 하나이다.


3.
"단테가 7백년 전에 자신의 위대한 작품을 라틴어가 아닌 소위 서민의 언어인 이태리어로 쓴 결단. 그리고 다음 세기에 활자 발명으로부터 야기된 인쇄의 혁신은 문자 생활의 서민화, 사회의 자유화 그리고 성직자와 군주의 패권에 대한 저항을 의미했다."(p.37)


인터넷은? 여기에서 대해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어 보인다. 왜냐면 단테나 구텐베르그의 인쇄술이 나온 지 벌써 6-7백 년이 지났고 지금이야 위와 같은 평가가 가능하지만 인터넷이 가져다주는 놀라운 변화 속에 있는 지금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위와 같은 비교일 뿐이다. 과거에 인터넷과 유사한 혁명들과 비교해보고 현재의 인터넷이 어떻게 될 것이다라고 추측해보는 것이 전부이다. 하지만 과거와 비교해 보는 사람과 비교해보지 않는 사람과의 차이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이다.


4.
이 책의 대부분 과거에 대한 것이다. 현재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도 먼저 과거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1948년에 나온 유명한 책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or Control and Communication in Animal and Machine>를 쓴 노버트 위너Norbert Wiener 교수와의 일화는 놀랍기 그지 없다(* 이 책의 영향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Cybernetics Art까지 등장했다). 그가 미래(인터넷으로 연결되어 있는 지금)에 대해 예언했을 때, 엡스타인은 공상소설이라고 치부했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취급한 것을 후회하고 있다.

미래를 알기 위해서 현재를 알아야 하고 현재를 알기 위해서 과거를 알아야 한다. 그건 비즈니스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아는 복합미디어 그룹, 베텔스만, 뉴스코퍼레이션, 비아콤 등은 출판업에서 높은 수익을 만들어내고 있지 못하다. 그것은 그들이 출판업의 본질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말 출판업은 가내 수공업에 어울리는 산업일까? 이건 이 책과는 전적으로 다른 시각을 필요로 하는 것이니 나중에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5.
많은 작가들이 등장하고 많은 사건들이 등장하는 이 책은 매우 감동적이었다. 나보코프와의 일화는 무척 재미있었고 CIA가 남아프리카공화국에다 장학금을 주어 뛰어난 학생들에게 미국 유학의 제공했던 것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잠재적인 반항자가 될 학생들을 미리 타국으로 이주시킴으로서 정치 안정화를 꾀했다는 사실도 재미있었다. 특히 위너 교수와의 일화는 과학의 새로운 학설이나 경고가 우리의 삶에 어떤 통찰력 있는 방향을 부여해주고 있다는 요즘 내 생각을 더욱 견고하게 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