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는 어떻게 오는가>>, 사이언 그리피스 엮음/이종인 옮김, 가야넷, 2000년
예전에 <<춘아, 춘아...>>에 대한 글을 올린 적이 있었다. 이 책도 그와 비슷한 책이다. 하지만 <<춘아, 춘아...>>라는 책은 한 쪽으로 치우쳐 있으며 오고 간의 대화들의 깊이가 그들의 가지고 있는 명성에 비해 턱없이 모자라는 경우가 눈에 띈다. (생각해보면, 그 정도의 책이 나온 것만으로도 뜻깊은 일이지만) 그에 비하면, 이 책은 매우 잘 구성된 책이다.
이 책은 런던타임즈가 21세기를 맞이하면서 30명의 학자들과 인터뷰를 한 내용을 담고 있다. 움베르토 에코, 프렌치 앤더슨, 칼 제라시, 갤브레이스, 아마티아 센, 노엄 촘스키, 스티븐 핑커, 케빈 워웍, 셰리 터클, 프랜시스 후쿠야마, 슬라보예 지젝, 일레인 쇼월터, 아서 C. 클라크, 대니얼 골먼, 안드레아 드워킨, 리처드 도킨스, 린 마걸리스, 스티븐 제이 굴드, 제임스 웟슨, 데일 스펜더, 피터 싱어, 돈 노만, 수잔 그린필드, 폴 너스, 스티븐 와인버그, 크리스 스트링어, 대니얼 데넷, 폴 데이비스, 셔우드 롤런드, 치누아 아체베 등.
생각해보면, 우리는 미래에 대해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다. 왜냐면 그건 명백한 거짓말이기 때문이다.(난 미래학자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앨런 토플러 같은 사람들.) 우리는 과거를 통해, 분명한 실험과 합리적인 논거를 통해, 아주 조심스럽게, 그것도 매우 작고 구체적인 일부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수 있을 뿐이다.
"인간은 지난 수천 년 동안 존재의 문제를 토론해왔다. 바로 그 때문에 나는 그 동안 나온 대부분의 답변에 대해서 회의적이다. 현대과학의 가장 위대한 가르침 중 하나가 1천 년이라는 시간이 순간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과연 이런 궁극적인 질문이 그 짧은 시간 내에 답변될 수 있는가. 우리가 태양계라는 좁은 놀이터에서 거주하면서 우주를 많이 아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도 실은 웃기는 일이다."
- 아서 C. 클라크.
이러한 지적 회의주의 속에 21세기는 시작되었다. 이러한 회의가 19세기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이 책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사람이 찰스 다윈이다. 다윈의 진화론은 20세기 전체를 물들인 사상이다. 사회주의는 사회도 진화한다는 기본 관념을 바탕에 깔고 있고 나치즘은 진화론의 왜곡된 해석을 담고 있기도 하다. 따지고 보면 진화라는 것들 중에는 퇴행도 있는데 말이다)
하지만 감정적 회의주의와 달리 지적 회의주의는 왜 우리가 회의에 빠졌는가를 이성적으로 논증을 해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논증을 바탕으로 회의를 극복할 수 있는 어떤 길을 찾는다. 이 책에서 각기 다른 말을 하고 있는 학자들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이러한 회의를 극복하려고 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의 미래가 어떻게 될 지, 우리의 후손들이 어떻게 살아가게 될 지, 당장은 아무 쓸모도 없고 금전적으로 아무런 이익도 되지 않는, 하지만 언제나 우리 주변을 맴돌고 우리 주변을 변화시키는 것들에 대해 조금의 관심이라도 있다면 이 책은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나의 경우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