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우주/리뷰

아라키 노부요시 개인전

지하련 2003. 2. 9. 16:18

아라키 노부요시 개인전
- 소설 서울, 이야기 도쿄 Novel Seoul, Story Tokyo
20021115-20030223, 일민미술관


사랑이 없는 시대에 사랑을 노래하는 것만큼 고통스럽고 슬픈 일도 없다. 사라져 가는 시대에 사라져 가는 것들을 붙잡는 시도만큼 처절한 것도 없다. 에로티시즘이란 생에 대한 열망이다. 그것은 생명이라는 관점에서 고귀한 것이지만, 이성적이고 체계적이길 원하는 문명의 관점에서는 되도록 숨기고 있는 원시의 유산이다.

아라키 노부요시의 작업은 전적으로 사랑에 국한되어 있다. 하지만 그 사랑은 한 곳으로 쏠려있거나 파헤쳐져 있다. 새디즘이나 매저키즘도 우리의 문명이 만들어놓고 어떤 구획선을 제거해버릴 경우에 사랑의 감정, 또는 형태라고 말할 수 있다.

아라키 노부요시의 사진들이 뜨거우면서도 슬픈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는 도달하지 못하는 어떤 열망을 향해 달려가지만, 그가 선택하는 주제나 소재는 일탈적이면서 동시에 직접적인 것이다. 성적인 것에 대한 그의 집착은 식물의 성기만을 보게 만들고 여성을 밧줄로 묶고 음식물을 크로즈업한다.

내가 보기엔 아라키 노부요시의 사진들이 논란을 불러일으킬만큼 선정적이거나 문제적이지 않다. 그의 사진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태도, 사랑이 없는 시대에 보여질 수 있는 어떤 집착이라는 점에서 현대적이기는 하지만, 놀랍다거나 충격적이지 않았다.

그의 사진들은 대체로 슬프고 끈적거린다. 하지만 이 슬픔과 끈적거림은 장난스러운 그의 스타일 밑바닥으로 가라앉고 다분히 기만적이고 즉흥적인 분위기가 그 위로 떠오른다. 아라키 노부요시의 사진전을 보러 가지 않아도 특별한 일은 생기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