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우주/예술사

예술의 의의

지하련 2003. 12. 9. 16:22



뒤샹의 문제 제기는 예술의 본질을 건드린다는 점에서 고민해볼 필요가 있겠으나, 동시에 아무런 답을 구할 수 없다는 점에서 20세기의 예술가들은 예술 내에서 전적으로 불행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불행한 환경을 극복하기 위한 예술가들의 도전은 끊임없는 '오브제의 확장'(* 설치미술과 멀티미디어아트의 등장)과 '개념의 유희'(* 미니멀리즘과 개념미술, 아방가르드 양식)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이러한 도전은 '좌표 없는 방황'으로 인식될 뿐이다.

하지만 이러한 '좌표 없는 방황'은 비단 예술의 세계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 뒤샹의 문제 제기는 인류 역사에 있어서 예술이 누려온 바의 위치 내지 위상을 적절하게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1. 예술은 당대 환경에 영향을 받으면서 미래를 선취해나간다.

중세 고딕 양식은 신을 잃어버린 세계가 신을 어떻게 갈구하는가를 충실하게 반영하는 양식이다. 동시에 고딕 양식은 근대 도시의 등장을 알리는 양식이며 우리가 어떻게 신을 떠나오는가를 알려주는 양식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고딕은 경계의 양식인 셈이다. 초기 르네상스 화가들-지오토, 시모네 마르티니, 프라 안젤리코-등은 이러한 고딕 양식의 끝을 보여주면서 근대적 정신의 시작을 보여준다.


2. 예술은 그 당대의 정신 구조를 반영하면서 그 정신의 이면을 탐구해 나간다.

바로크 양식은 이성에 대한 신뢰와 지지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양식이다. 바로크는 데카르트, 스피노자, 라이프니츠 철학의 예술적 반영이면서 서구의 근대가 어떻게 발전해나갈 것인가를 적절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바로크 시대에 유행했던 바니타스화와 빛나는 중심으로 모여지는 표현 기법은 그 시대가 근본적인 생에 대한 불안을 본질적으로 극복하지 못하고 어둠 속에 숨겨버리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프랑스 로코코의 화가들은 그 특유의 화사함 속에서 생의 우울함을 그려낼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우울함을 로코코 시대에는 귀족들의 우울함으로 표현되지만, 19세기 이후에는 부르주아지의 우울함으로 대체된다. (*근대 표현주의)


3. 예술의 정의는 시대에 따라 변한다.

무엇이 예술인가? 이것은 표현 양식의 문제이면서 예술 제도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는 한 시대에 인정 받던 예술 양식이 후대에 가서 평가 절하되고 전대에 폄하되던 양식이 인정 받는 현상이 예술사에는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이는 표현양식이 시대에 따라, 그 시대의 정신 구조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함께 한 시대에 예술로 인정받기 위해선 그 시대의 정신 구조와는 무관하게 당대의 특정 인물(*귀족 또는 비평가), 혹은 특정 사회(*예술계)가 어떤 작품에 예술품으로서의 지위를 부여해주어야 한다는 점이다.* 뒤샹의 경우에는 이 점이 못마땅했고 레디메이드라는 당시로서는 극단적인 방법을 취하게 되는 것이다.

세 가지 정도 예술의 의의에 대해서 정리해 보았다. 다음 기회에 "뒤샹과 레디메이드"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 조지 디키, <<예술 사회>>(김혜련 옮김, 문학과지성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