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문학

홍수, 르 클레지오

지하련 1998. 7. 29. 23:35




     『洪水Le De'luge』, 르 클레지오 지음(* 이휘영  옮김), 동문선.
     1988.

           

        * 그대들은 죽음을 모르고 있다 *


        익명성: 이것은 누구나 혼잡한 거리에서 느낄 수 있는 현대 도시의
     비극적 특성들 중의 하나이다.  작품의 주인공인 프랑소와 베송은  이
     익명성 속에 자신을 파묻는다. 그래서, 소설은 프랑소와  베송의 뒤를
     따라다니며 전개되지만, 프랑소와 베송은 그렇게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고, 도리어 그가 보는 사람들, 거리들, 풍경들만 독자의  눈동자 속
     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주인공 대신 독자의 눈동자 속에  들어온 사람
     들, 거리들, 풍경들에서 독자는 르 클레지오 특유의  서정적인 분위기
     를 제외하곤 아무런 것도 얻을 수 없다. 특별한 사건도,  특별한 줄거
     리도, 특별한 인물도 없으며, 아무 것도 특별하지 않은 공간 속을, 특
     별하지 않은 것들을 휩쓸고 지나가는 '홍수'뿐. '홍수' 속에선 그대도
     나도 어디있는지 알 수 없다. 나무조각이라도 잡아야  하건만, 물살이
     너무나 세차기 때문에 난 이미 지쳤고, 오직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프랑소와 베송은 그런 나이다. 오, 저주스런 오늘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