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이론

변증법적 미학에 이르는 길 - 루카치와 하우저의 대화

지하련 1998. 3. 1. 23:40
         
          <<변증법적 미학에 이르는 길>>(* 루카치와 하우저의 대화).
                                        편역 반성완.    문학과비평. 1990
         
         
          01.
          새삼스럽게 '변증법'이라는 단어가 책 제목에 들어가는 걸 보니, 그
       동안 운동권의 논리에 의해 '변증법'이라는 단어가  얼만큼 훼손되었나
       를 실감하게 된다. 그러나, '변증법'이란 단어는 하우저에게 있어서는,
         
          "변증법은 내게 있어서 선입견에  사로잡히지 않음을 의미하고,  또
       그것은 나에게 매사를 두 가지 측면에서 판단할 수 있게 해주는 절대적
       자유를 보장해 주었습니다. 나는 언제나 현상은 양면적이고 주관적이며
       제한되어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했습니다.  모든 인간 행위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모순에 봉착하게 되는 내적 자극이나 아니면  물질적인 것입
       니다. 그리고 이 물질적인 것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지속적인 능력과 숙
       련된 기술이 없으면 곧장 받아들여져서 정리가 되지 않습니다. 내적 자
       극과 물질적인 것이 대결을 해 나가는 가운데 모든 인간적인 업적이 생
       겨납니다. 예컨대, 사물의 조작, 인간의 지배, 노동의 생산, 그리고 정
       치, 경제, 학문, 예술의 모든 업적 등이 이러한 내적  자극과 물질적인
       대결 속에서 생겨납니다."(23 - 24쪽)
         
          02.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를 아직 읽지 않았다. 아직 읽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이 사실로 인해 난 스스로 왜 읽지  않았나를 곰곰히
       생각하게 되었고,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그것은 아놀드 하우저의 저
       책이 우리 시대에 끼친, 특히 이 작은 나라에 끼친  영향이 지대함으로
       인해, 그 지대한 영향 속에서도 그 영향 바깥으로 벗어나  자유로운 사
       유의 힘을 보여준 글을 만나지 못했음으로해서 나 또한 그렇게 되는 것
       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변증법적  미학에
       이르는 길>>을 읽으면서, 읽지 않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그건 아
       놀드 하우저의 예리한 사유를 접하고 난 다음이었는데,
         
          "작품이 형식의 일정한 기준에  도달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예술이
       아닙니다."(84쪽)
         
          당연한 말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명확한 어조로  이야기하는 사람
       을 만나지 못했다. 여기서의 '형식'이란 고전주의의  그것도 포함되며,
       낭만주의, 모더니즘, 모더니즘 이후의 그것들도 포함되는  것이다. 즉,
       고전주의적 형식이나, 그 형식의 파괴나 현대의 형식의  몰락까지도 하
       나의 형식으로 포괄될 수 있음을 뜻한다. 그러나, 여기서의  형식은 일
       종의 시대적 기준으로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국내의 예술비
       평가들이나 문학비평가들은 형식의 문제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지 않는
       다. 그동안 폭력적인 이데올로기(* 반공이데올로기에서 운동권이데올로
       기까지)에 의해 눌려져 있었던  것일까. 기본적인 형식이 되지  않아도
       뚜렷한 주제만 담고 있어도 인정을 받곤 한다(* 솔직히 말해 뚜렷한 주
       제 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만 해도 어딘가).
         
          03.
          "괴테는 침묵이 때로는 모든 언어로 말하지 못하는 것을 말할 수 있
       다고 상상했지만, 오늘날에 와서는 이러한 상황은 이러한  꿈을 넘어선
       지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언어가 완전히 침묵한  것은 아닙니
       다. 우리의 어려움은 괴테적인 의미에서 보면 예술의  종말은 정반대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종말은   단지   예술시대
       (Kunstperiode)의 종말, 다시 말해  고전적, 낭만적 시대가 다  지나고
       난 후에  나타난 19세기  이후에 보는   예술 시대의 종말일  따름입니
       다."(31쪽)
         
          "그것은 인간이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에 대한  믿음을 상실했
       다는 점입니다. 언어 자체가 문제적이 되었습니다.  사무엘 베케트같이
       누가 봐도 재능을 지닌 작가가 말을 하는 대신에 우물거리고, 무언가를
       전달해야 할 경우 더듬거린다는 사실,  즉 입을 다물거나 침묵을  하는
       것이 예술의 수단이 되어 버린, 한마디로 언어가 상실되고 부재하는 상
       황을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하는 점입니다."(65쪽)
         
          인용된 하우저의 말은 예술의 위기에 대한 견해들이다. 그는 예술의
       위기가 예술의 종말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이것은 최근 이야기되는 미
       술의 위기나 문학의 위기에도  적용되는 말이다). 그러면서,  괴테적인
       의미의 '침묵'을 강조한다. 분명 괴테의 침묵과 베케트의  침묵은 다른
       것이지만, 둘 다 나은 미래를 위해 존재한다는 점임을 강조하며,
         
          "예술은 새로운 언어를 획득하기 위해 투쟁합니다."(65쪽)
         
          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성급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 새로운 언어를 얻기도 전에 포기하든지, 모든 것을 집어던지고
       아예 몰락의 길을 자초하기도 한다. 하지만, 변증법적이라는 말이 환기
       하듯이, 그것은 예술의 역사(* 혹은 인류의 역사) 위에서  벌어지는 투
       쟁인 것이다.
         
          04.
          '루카치와 하우저의 대화'라는 부제가 붙어있지만, 이 두 학자의 대
       화는 얼마 되지 않는다. 전반부는 하우저의 대화들이며, 후반부는 하우
       저의 <<루카치 미학에 나타나는 <제 3의 소여>의 여러 변형들>>과 페트
       루츠의 논문과 반성완의 글 하나가 있을 뿐, 루카치와 하우저의 대화는
       전반부의 <50년만의 해후>에 약간 있을 뿐이다.
         
          하지만, 하우저 스스로
         
          "저는 어디까지나 당신의 외우(畏友)이자 제자로 남을 것이며 또 제
       가 당신에게서 힘입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좀처럼 잊지  않을 것입니
       다."(80쪽)
         
          에서 말하고 있듯이 루카치의 영향은 지대한 것이었다. 그것은 1915
       년부터 시작된 부다페스트의  <일요써클>이라는 모임에서 비롯된  것이
       다. 이 모임엔 벨라 발라즈(*시인이자 영화이론가), 칼 만하임 등이 속
       해 있었다. 그리고, 이  모임의 중심은 루카치였다. 그러므로,  부제로
       붙은 '루카치와 하우저의 대화'는 별 무리가 없을 듯하다. 하우저는 대
       화 내내 루카치의 영향이 얼마나 지대했는가를 강조하고 있으니.
         
          05.
          최근 읽은 책들 중에 현대 예술이 당면한 문제에 대해  가장 명확한
       입장을 피력한 책이었다. 그런 만큼 손에 닿자 마자 쉬지 않고 읽었다.
       하우저의 책을 읽지 않은 것에 대해 다행이라고 말한 것은 예전에 하우
       저의 책을 읽었다면 분명 난 하우저의 절대적인 영향력  속에 머물렀을
       것임에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 절대적인 영향력이 나의  내부에서 비롯
       된 것이 아니라, 바깥에서 비롯된 것일 경우 그것을 뛰어넘기란 나로선
       매우 벅찬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 설명이 부족한 듯 싶으나,  지금 상
       태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설명의 전부임을 양해해주길 바란다). 아마 몇
       달간 계속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를 미루어야 할 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