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

무인도, 주제 사라마구

지하련 2008. 12. 12. 11:45

포르투칼, 브라질 등 포르투칼어권 문학에서 처음으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주제 사라마구(Juse' Saramago)의 짧은 소설입니다. <현대문학> 98년 11월호에 실렸던 것으로서, 별 생각없이 읽다 너무 감동적인 소설이라 이렇게 이리저리 띄워보냅니다. 혹시 여유가 되신다면 <현대문학> 98년 11월호에 실린 다른 몇 편의 소설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눈 먼 자들의 도시'가 영화화되면서 덩달아 이 소설도 유명세를 탔다. 주제 사라마구를 모르던 이들도 주제 사라마구를 알게 되고, ... ... 대중 매체의 위력은 이토록 대단한 것이었다. 좋고 아름다운 것들이 사람들 손을 타서 망가질 것같은 느낌이 드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아래 소설의 번역은 김용재 부산외대 포르투칼어과 교수입니다. 이 단편이 실린 소설집도 번역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래 전에 올린 글이나 다시 갱신해서 올립니다. 한 번 읽어보면 좋을 것입니다.





무인도(A Ilha Deserta)


태우고 가던 배의 선장에게 지나친 요구를 했기 때문에, 나는 어느 무인도에 내려졌다. 내게 15일 간의, 아니 15년 간의(한 번도 정확히 알게 된 적이 없다) 식량과, 무기와 탄약(원자탄을 포함한)을 주었다. 그리고 배 안에 있던 오락거리로부터 한 권의 책과 한 장의 디스크를 꺼내가도록 허락받았다. 나는 『동키호테』와 『오르페우스』를 골랐다. 그 이유를 설명하는 게 좋을 게다. 나는 혼자, 가능하다면 평화롭게 살아가게 될 것이었다. 많은 일과 적은 휴식을 갖게 될 것이었다. 그렇다면 먼저 우리를 웃게 만들고 존재하지 않는 <둘시네아>가 있는 『동키호테』와 우리를 울게 만들고 죽은 <에우리디체>가 있는 『오르페우스』보다 더 좋은 책은 없었다. 이 꼼꼼히 생각한 부재와 더불어 나는언제 끝날지 모르는 나의 밤들을 채울 것이었다.

이렇게 그 무인도에서 살았다. 얼마 동안인지는 지금 모르나, 15일 이상이었고 15년 이하였다. 섬 전체를 다 다니지는 않았으나 무인도였다는 것은 안다, 만약 무인도가 아니었다면 나를 거기에 내려놓지 않았을 거다. 말하지 않는 습관 때문에 말하는 것을 잃어버렸고 그럼으로써 세상에 조금의 침묵을 주었다. 한 마리의 맹수(결코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울음소리로 볼 때 틀림없이 맹수다)와 새들의 울음소리 외에는 그 섬에서 <오르페우스>의 절망적인 호소나 <산초 판사>의 웃음소리밖에 듣지 못했다. 자꾸만 말라가는 동키호테, 그 사람은 매일 아침 소금과 해초 내음이 향긋하게 나는 해변을 <로시난테>의 앙상한 뼈에 올라타고서 산책했다. 밤에는 높은 바위에 올라가 별을 세곤 했다. 왼팔에는 <맘브리노>의 투구를 거꾸로 쥐고 있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곳으로 잠자러 오는 습관을 가진 작은 새에게 쉴 장소를 제공했다. 오른손에 창을 쥔 동키호테는 새의 잠을 지키고 있었다. 가끔씩 한숨을 내쉬곤 했다. 왜 한숨을 쉬는 동키호테에게 물어보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그러는 동안 이미 나는 책의 마지막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우리 넷은 아주 평화롭게 그 무인도에서 살았다. 어느 커다란 상자 하나가 해안에 도착했다. 그 상자를 여는 동안 내 주위로 동료들이 모였다. 오랫동안 머물지 않았다. 상자 안에는 에우리디체도, 둘시네아도, 또 포도주도 들어 있지 않다는 것을 금방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각자 자신의 삶으로 돌아갔지만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머리를 써야 했다. 켜졌다 꺼지곤 하는 불빛들이 있었는데, 마치 숨쉬는 것같았다. 훨씬 뒤, 섬에서의 삶이 변하기 시작했을 때, 그것이 집에서 쓰는 컴퓨터, 전자두뇌라는 것을 발견했다. 컴퓨터는 모든 것을 알았다. 물론 나는 아니다. 항상 동반자였다. 더 나쁜 일은 우리의 아름다운 무질서가 끝났다는 것이었다. 오르페우스는 특정한 시간에만 울 수가 있었고, 동키호테의 작은 새는 앵무병(맹세컨대 앵무새는 아니었다)을 옮긴다고 비난받았고, 산초 판사는 속담으로 옆으로 제쳐놓고 영어를 배워야만 했다. 우리는 어느 정도 이런 저런 변화로 이득을 얻게 되었으나 우리 모두는 거의 병과 같은 불안감이, 컴퓨터가 고치지 못하는 불안감 같은 것을 갖게 되었다. 지금 잘 기억해보면 그것은 컴퓨터가 모르는 유일한 것이었다.

말을 잘하도록 컴퓨터가 내게 해준 것은 아니다. 내가 느끼고 존재하는 모든 이유에서 내가 틀렸다는 것을 입증해주었다. 또 내 생각과는 달리 선장이 나를 섬에 내려놓게 된 것에는 수많은 이유가 있다는 것을, 무인도는 그가, 바로 컴퓨터가 거기 있기에 무인도가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해주었다. 또 인간은(전체적으로는 인간, 개인적으로는 나) 울거나, 괴로워하거나, 웃거나, 꿈굴 때조차(아니 무엇보다 그럴 때) 단순히 재밌는 농담이라는 사실을 입증해주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죽었다. 컴퓨터는 계속 거기에 있다. 그러나 나는 크나큰 희망을 가지고 있다. 만약 둘시네아가 육체를 얻고, 에우리디체가 회생한다면, 이 세상은 아직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