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예술

미술시장의 유혹, 정윤아

지하련 2007. 10. 28. 23:37

미술시장의 유혹, 정윤아(지음), 아트북스, 2007


제법 묵직하고 비싼 가격에, 읽는데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쉽고 재미있게(그림 가격에 대한 호기심으로 인해) 읽힌다. 하지만 일반 독자에게 이 책 읽기를 선뜻 권하고 싶지는 않다. 미술품 투자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는 권할 만한 책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책을 먼저 읽는 건 좋지 않다. 그 이유는 매우 단순하다. 이 책은 현대 미술 작품에 대한 이해가 선행된 이후에 읽기 적당한 책이기 때문이다.

책은 뉴욕을 중심으로 한 미국 미술 시장의 동향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전 세계 미술 시장의 절반 가까운 금액이 미국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 책을 통해 세계 미술 시장의 흐름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다. 프랑스 파리에서 미국 뉴욕으로 미술 시장의 중심으로 넘어오게 된 이후부터 어떻게 뉴욕 화랑들이 어떤 예술가를 선택하고 키웠으며, 그 뒤에는 어떤 배경이 있었는지에 대해, 중요한 아트 딜러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 그리고 어떤 예술가가 세계 미술 시장에서 선호되고 있는지를 한 눈에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선호 밑에 어떤 미술사적 배경이나 미술 비평의 측면에서의 판단이나 통찰이 있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간단한 리뷰와 작품 가격이 어느 정도까지 올라갔는가에 대한 설명만 나열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쉽고 재미있게 읽히는 미술 시장 자료집의 역할에서 이 책은 멈춘다. 그러나 이것이 이 책의 단점이라고 말할 수 없다. 도리어 이것은 단점이 아니라 장점에 가깝다. 풍부한 도판과 경매 가격에 대한 자세하고 정확한 정보, 그리고 아트펀드에 대한 비판적 견해와 함께 ‘인스턴트 컬렉터’에 대한 경계 등 이 책은 미술 작품 수집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건전한 투자에 대한 가이드 역할을 충분히 해줄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단지 이 책에 언급된 예술가들 중에서 국내 미술 애호가들이 구입할 수 있는 작가는 그리 많아 보이진 않는다).

미술 작품의 투자 가치를 객관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것은 아트 옥션에서의 최종 낙찰가격이기 보다는 국제적인 공공/사립 미술관이나 명성이 자자한 개인/기업 컬렉션에서 작품을 소장하는가, 혹은 미술 평단에서 긍정적이고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가 등 여러 측면에서의 기준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요즘 한국 미술 시장을 보면, 미술 시장의 활성화라는 긍정적인 측면보다는 허황된 거품과 경매 가격을 올리기 위한 보이지 않는 작전만 난무하는 듯 보인다(이는 실제로 확인된 바는 없지만, 미술계 전반에 소문처럼 떠돌고 있다).

이 책의 저자 정윤아도 언급하듯이 미술 작품 구입은 먼저 미술 작품에 대한 사랑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리고 미술 작품 투자는 단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하지 말고 장기적으로 접근해야 된다.

그런데 과연 그렇게 될까. 한국 사람들의 냄비 근성은 미술 시장에서도 예외가 아닌 듯 싶어 걱정스럽기만 하다. 한국 미술 시장의 건전한 방향으로 활성화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미술시장의 유혹 - 8점
정윤아 지음/아트북스


last updated: 2007-1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