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우주/예술가

수 코우(Sue Coe), 또는 정치적 예술(Political Arts)

지하련 2008. 1. 28.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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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pe, Bedford (horizontal)
Woman Walks Into Bar & Is Raped on Pooltable by 4 Men While 20 Watch, 1984.
photo-etching / Rives
9 3/4 x 11"


우연찮게 수 코우(Sue Coe)의 작품을 보게 되었다. 영화 <피고인>으로 잘 알려진 ‘베드포드(Bedford) 성폭행 사건’을 그린 작품이었다. 작은 이미지 만으로도 끔찍해서 보기 힘들 정도인데, 실제로 보게 된다면 어떤 기분일까, 생각만 해도 오싹해졌다. (미주 1)


종종 우리는 끔찍한 성폭행 사건을 접하게 된다. 예를 들자면 ‘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건’ 같은 것이다. 사람들은 그냥 뉴스 기사로만 접했을 뿐이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그 사건은 ‘현실’이지만, 미디어를 통해서만 경험한 것이기 때문에 ‘현실’이라고 할 수 없다. 나는 종종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에게서 어떤 두려움(혹은 공포)을 느끼곤 하는데, 바로 이 지점이다. 한 개인, 한 집단을 비탄과 절망, 죽음으로 내모는 어떤 것들은 분명 ‘현실’이지만 ‘현실 아닌 어떤 것’으로 포장되어 우리에게 전달된다. 포스트모더니즘의 탈정치화, 혹은 탈역사화는 이렇게 이루어지고 결국 우리는 진짜 현실로부터 유리되고 소외된다. 보드리야르를 비판적으로(거꾸로) 읽을 때, 우리는 현대가 어떤 상황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는지 알게 된다.

이 때 예술은 그 현실은 진실하게 옮길 수 있는 유일한 매체가 될 수 있다. 수 코우의 작업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되고 받아들여진다. 주류 언론에서는 그녀를 비난하고 매도하지만, 그녀의 작업이 예술적으로 형편없으며, 사회적 이슈를 제기하여 돈을 벌려고 하며, 떠버리 사회주의자(raving socialist)이라고 할 지라도, (미주 2)

그녀는 1951년 영국 태생이며, 1972년 미국 뉴욕으로 오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이전까지 그녀는 전혀 정치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녀는 뉴욕 타임즈 매거진(The New York Times Magazine)의 일러스트 작가로 일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변한다.

시기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그녀는 ‘인민들의 예술을 위한 위크샵(Workshop for People’s Art)’의 자원봉사 예술가로 참여하면서, 그녀의 정치적 의식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후 그녀의 작품은 놀라운 속도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잡지의 일러스트 작가에서 미국 미술계에서 보기 드문, 정치적이고 공격적이고 직접적인 작품 스타일로 무장한 여성 예술가로 변신한 것이다.

그녀의 정치 예술 작업은 1974년의 ‘KKK(Ku Klux Klan)단에 대한 작업’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1981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자살하는 방법’(How to Commit Suicide in South Africa)라는 책부터 본격적인 주목과 논란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감옥에서 Stephen Biko와 다른 학생 운동가들의 죽음에 대해 파헤친 책이었다. 1986년에는 Malcolm X의 삶과 그의 시대를 다룬 책 ‘X’을 만들어, 인종문제에 대해 다시 다루었다. 이후 그녀는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의 ‘동물학대’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며, (식품)산업 속에서 돼지, 닭, 소 등의 권리(rights)를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Porkopolis’로 알려진 그녀의 이 작품들은 의학적인 측면에서 조사와 유전 공학적인 접근을 통해 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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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to Commit Suicide in South Africa, Knockabout Comics(1983)

끊임없이 그녀의 작품이 논란이 되는 이유는 민감한 정치적 주제나 소재를 다룬다는 점에도 있지만, 그녀의 작품들이 한결같이 끔찍하고 오싹하다는 점이다. ‘예술은 아름답다’라는 고전주의적 견해를 정면에서 부정한다는 것과 ‘정치적 주제/소재를 끊임없이 예술 작품으로 생산한다’는 두 가지 이유로 인해 그녀의 작품 스타일은 자주 논쟁거리가 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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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d Meat, 1996


그렇다면, 우리라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아니, 과연 표현할 수 있을까? 아마 대부분은 이러한 작품을 만들지 않을 것이다. 이는 시도해보기 전에 포기하는 것이고, 포기하기 전에 아예 그러한 시도에 대한 욕망을 자기 스스로 거세하는 것이다. 현대 예술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부정도, 긍정도 아닌, 그저 현실에서 고개를 돌린 냉소주의는 공포스러운 현실을 정면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현대 예술가들의 소극적 태도, 아니 정면으로 대응하더라고 결국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지고 말 것이라는 어떤 니힐리즘에 기반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머지않아, 결국에는 모든 예술은 정치적이고, 현실도 추하기 때문에 결국 예술도 추해질 수 밖에 없음을 인정해야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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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man Walks into Bar - Is Raped by Four Men on the Pool Table - While 20 Watch.
Sue Coe(1951 ~ )
1983. Mixed media, (232.7 x 287.7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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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uclear Family Goes Shopping,
Sue Coe,
lithograph on heavy white wove paper



--- 미주

(1) <피고인>을 통해 본 한국의 성범죄 진단, 위드뉴스, 2007. 7. 9.

(기사 본문 중 일부를 인용함)

1983년 3월 6일, 술집 안에서 15명이 환호를 지르는 가운데, 여러 명의 남자가 21세의 여성을 윤간했다. 목격자의 증언에 의하면, 두 남자가 오럴섹스를 강요했고 다른 두 남자는 당구대로 끌고 가서 성폭행했다. 영화에서는 단지 세 사람이 강간을 범하고 세 명이 강간을 유도하는 교사죄를 저질렀을 뿐, 나머지 손님들은 그 사실을 모르는 것으로 설정했다.

즉 영화보다 실제가 더 참혹했던 것이다. 더욱이 한 남성은 경찰에 신고하려는 바텐더를 제지하고 엉뚱한 전화번호를 누르는 등, 범죄를 도왔다고 했다. 이 사건으로 뉴 베드포드의 많은 시민이 분노하였으며, 그 술집은 곧 폐쇄되었다. 그러나 그 후 그 지역에 사는 포르투갈계 주민은 강간범들을 두둔하기 시작했다. 피해 여성이 술집에 들어와서 술에 취해 흐느적거리며 헤픈 웃음을 짓는 행동 자체가 성범죄를 유도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설사 성폭행을 당했다고 할지라도 동정할 여지가 전혀 없다는 게 그들의 논리였으나, 그 이면에는 가해자들이 바로 포르투갈계 출신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이러한 인종적 갈등을 전혀 언급하지 않고, 가해자들을 단지 백인으로 설정하였다

(2) 워싱턴 DC에서 발행되는 ‘City Paper’라는 잡지의 M.D. Carnegie는 ‘수 코우는 돌의 지성과 아메바의 의식을 가진 떠버리 사회주의자임에 분명하다’고 주장한다. (1994년 4월 29일자)


--- 참고한 글(문서)
Sue Coe and the Press: Speaking Out, Judith Brody, <<FlashPoint>>, Spring 1998, Web Issue 2

--- 수 코우에 대해서 보다 알고 싶을 때에는
http://www.graphicwitness.org/coe/enter.htm 
http://www.gseart.com/coe.html 

--- 비상업적 블로그이며, 위에 사용된 이미지들은 수 코우의 작품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서 사용한 것입니다. 하지만 저작권을 득하지 않았으므로, 저작권자의 요구가 있을 경우 바로 삭제할 것임을 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