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문학

복화술사들 - 소설로 읽는 식민지 조선, 김철

지하련 2008. 3. 13. 18:18
복화술사들 - 10점
김철 지음/문학과지성사




복화술사들 - 소설로 읽는 식민지 조선
김철(지음), 문학과지성사



‘애국가’의 작사자로 알려진 좌옹 윤치호(佐翁 尹致昊, 1865~1945)는 그의 나이 18세가 되던 1883년부터 1943년까지 무려 60년 동안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썼다.’(132쪽) 그의 일기는 순한문 문장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다가 사 년 후 순한글, ‘국문’으로 일기를 쓴다. 하지만 ‘순한글 문체로 사 년 남짓 일기를 쓴 후에, “Corean”은 어휘가 풍부하지 않아서 말하고 싶은 것을 충분히 표현하기 어렵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윤치호’(135쪽)는 영어로 일기를 쓴다. 그가 ‘처한 언어적 환경은, 근대 국민 국가의 수립 과정에서 이른바 ‘국어national language’, 혹은 ‘공용어 official language’가 어떻게 결정되고 만들어지는가에 대한 의미심장한 생각거리를 제공한다.’(135쪽)


언어는 의식의 방향을 결정한다. 현대의 정신분석학에서 ‘언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여기에 있다. 우리의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라고 라캉은 강조하지만, 실은 무의식 뿐만 아닐 것이다. 김동인은 이렇게 회상한다.


소설을 쓰는 데 가장 먼저 봉착하여 - 따라서 가장 먼저 고심하는 것이 ‘용어’였다. 구상은 일본말로 하니 문제 안 되지만, 쓰기는 조선글로 쓰자니, (… …) 거기에 맞는 조선말을 얻기 위하여서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 있었다.
- 김동인, ‘문단 30년의 자취’, <김동인 전집8>, 홍자출판사, 1968, pp. 395~96 (18쪽에서 재인용)


이 책은 식민지 시대의 소설을 통해 한국어가 어떻게 형태를 잡아나가게 되었는지, 그 당시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일본어와 한국어, 영어와 한국어, 일본인과 조선인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위 문단에서처럼, 한국어는 19세기말까지 풍부한 단어나 쓰임새를 가지고 있지 못했다. 이 때 이광수의 <무정>은 한국어의 관점에서 보자면, 가히 혁명적인 소설이 된다.

그러나 국어의 시작은 순결하지 않았다. 생각은 일본어로 하고 있었으니, 한국어의 단어 하나하나는 일본어 단어와 연결되고 있었다. 이후 식민지 시대 소설가들의 역할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는가를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 책의 시각은 분명하다. 국어란 순결한 언어가 아니고 이종교배를 통해 어렵게, 어렵게 탄생한 것이라는 것. 격동의 세월 속에서 국문학은 일본어, 영어와 서로 몸을 섞어가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양한 관점에서 새롭게 국문학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이광수가 나쓰메 소세키의 독자였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그런데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은 매우 모던한데, 이광수의 소설은 그렇지 않은 것일까?

식민지 시대의 작가들과 지식인들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기를 기대해 본다. 우리들의 진짜 과거는 조선 시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식민지 시대에 있는 것은 아닐까. 본격적으로 우리의 사고가 근대화되고 서구의 문물에 젖기 시작한 시기가 바로 이 때이니까. 또한 한문, 일본어, 한국어 사이의 관계(언어학적, 정신분석학적, 철학적인)에 대한 연구서를 읽어보았으면 좋겠다.

이 책, 짧지만, 재미있고 매우 시사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