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예술

상징주의와 아르누보

지하련 2003. 5. 7.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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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주의와 아르누보
창해 ABC북



‘상징주의 미학은 이상주의를 맹렬하게 주장하면서 구체적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현실세계를 초월하기 위해 암시, 모호함, 신비, 내성(內省) 등을 중시하는 표현 양식을 추구하였다.’

우리는 이 한 단락만으로 이들 예술 양식이 가진 비극적 세계를 알아차릴 수 있다. 이들 양식 속에서 염세주의는 필연적으로 수반되고 비극적 사랑에 대한 추구는 뽈 베르렌느와 랭보에게서 그 한 예를 찾아볼 수 있다. 페르난트 크노프의 어둡고 우울한 색조의 작품들이나 말라르메의 모호하고 암시적이며 함축적인 언어들은 여기에서 실망한 이의 저기를 향한 염원을 담고 있다.

“상징주의 시대가 도래하기 전까지 결코 사랑은 격한 감정이나 쓰라림, 혼란, 회한 등과 결합되지 않았다”(* 에르네스 레노, 1864~1936) 여기에서 모더니즘modernism의 비극성은 시작된다. 상징주의와 아르누보 경향은 전적으로 쇼펜하우어와 니체 철학의 예술적 반영이다.

“예술이 인생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이 예술을 모방한다”라는 오스카의 세계는 19세기 말 상징주의와 아르누보가 무엇을 추구했는가를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이 세계관이 처음 등장한 것은 아니다. 로코코의 대가인 앙트완 와토나 모차르트에서 이러한 탐미주의에서 이미 등장한 바 있다. 즉 탐미주의는 극적인 우울함, 또는 멜랑콜리를 필연적으로 수반한다. 아르누보의 장식들에서 아름다움과 동시에 어떤 우울한 분위기를 느끼게 되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참조) Fernand Khnopff의 몇몇 그림들을 링크시킨다. 그림 제목들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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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lock my door upon myself, 1891, Oil on Canv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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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ister of the Artist, 18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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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andoned City, 1904